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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04화 (404/573)

근육조선 404화

2부 19장 4화 통곡의 벽(1)

히데요시의 전략은 혼란을 일으키고 병사를 사방으로 보내게 만들어 나를 지치게 만들려는 대전제를 깔고 진행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혼란을 어찌 감당하라고?

“이미 왜인 백성들이 구만여 명이 넘게 몰려왔습니다!”

왜군과 싸우기도 전에 육주성에 거주하던 일본 백성들이, 그마저도 전쟁에 거의 도움을 줄 수 없는 아녀자와 노약자가 피난 행렬을 이어갔다.

이 기괴한 사태를 알아보려고 몇 명을 잡고 심문하였지만 돌아온 답은 거의 같았다.

“후지와라 토키치로라는 왜장이 저희 마을을 무너트리고 장정들을 잡아갔습니다! 저희는 가까스로 먹을 양식만 챙겨서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참말이오? 그런 것치고는 행색이 온전하구려. 급히 마을에서 퇴거당했다면 이렇게 멀쩡한 겨울 누비옷을 챙겨올 여유가 있었겠소?”

“최소한의 자비라고 하며 한 시진의 시간을 주어서…….”

눈빛을 보니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이 섞여 있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혹시나 적의 첩자가 아닐지 염려하였지만 무작위로 선별해 조사하니 첩자는 없었다.

남상정은 고개를 저으며 귓속말을 건넸다.

“이대로는 군량이 축날 지경입니다. 이들을 받아들이지 말고 내치십시오.”

“내친다 하여도 대책이 있소? 축후천(지쿠고 강)은 아주 큰 강이 아니니 맨몸으로도 건너올 수 있는 법이오. 차라리 이들을 받아들여 혼란을 더는 것이 나은 법이오.”

이게 다 히데요시의 계획이다. 길을 막으면 지금까지 9만, 돌아온 신립과 황진의 보고에 의하면 15만 이상의 난민들이 사방으로 파고들 것이고 방어체계가 무너진다.

그렇다고 길을 열면 방어체계는 멀쩡히 작동하겠지만 이들의 치안유지를 위한 병력이 소모되리라. 참으로 악랄한 계획을 세웠으나 놈을 반드시 이기고 싶은 오기가 솟아올랐다.

나는 패잔병 몰골의 명나라 병사들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내가 일전에 경진만란에서 남경을 수호한 공으로 임시로 명국 관직인 독사(督師)의 권한을 가졌음을 잊지 않았을 것이네. 그러니 첫 명령을 내리겠네. 지금부터 받아들일 육주성 백성들을 관리하도록.”

“놈들의 아비와 자식이 저희의 뒤통수를 노렸는데 너무한 처사가 아닙니까!”

“너희들이 제대로 군문의 일을 수행했다면 간자 몇 명에 휘둘릴 일이 있었는가! 내 알기로 지엄한 대명률과 황명에 의거하여 상관의 명령에 항거하였을 경우 요참(腰斬)을 시행할 수 있다고 들었다!”

뭔 생각으로 종1품 독사에게 빠득빠득 개기고 있나? 하지만 너무 윽박지르면 반항심이 생겨나는 법이다.

상대가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자 나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공좌를 한 번 하였다.

“하지만 상관으로서 책임감을 보여야겠지.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이 운동을 공좌(스쿼트)라 하는데 서로 공좌를 하면서 우애를 다져보지 않겠는가. 자네들이 공좌를 하는 만큼 나도 공좌를 하겠다.”

명나라 병사들은 내가 체격이 작아서 운동을 별로 안 했다 생각하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엄청난 속력으로 공좌를 실시하였다. 문제는 내 공좌 횟수인데 맨몸 기준 240회다.

파김치가 된 명나라 병사들은 땀범벅이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쓸데없는 힘을 썼으니 이제 제대로 된 힘을 써야겠지.

이마에 흐르는 땀 줄기를 닦아내며 점잔을 빼고 재차 명령을 내렸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작태이나 이 또한 상관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겠지. 기껏해야 군문에 발을 들이지도 않은 나보다 체력이 약한 너희들이니 전선에 나서 싸울 자격은 없다.”

이렇게 말은 해뒀지만 15만의 난민을 대충이라도 관리하려면 병사가 1만 명은 필요한 실정이다. 결국 6천의 병사를 어디서 차출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의외의 손님이 왔다!

“충무위 소속 상호군(上護軍: 오위 정3품 무관) 신각! 가까스로 대내씨의 강역에서 퇴각하여 병졸 오천여 명을 인솔하여 당도하였습니다! 어서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충무위가 생존하였다 했는가? 자네 대체 대내씨의 강역에서 어찌 퇴각하였는가!”

“모두 다 대우종린(오토모 소린) 덕분입니다. 자네는 어서 인사를 올리게.”

머리가 훤히 벗겨진 채 서양식 외투를 입은 오토모 소린이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행색을 보니 포로 신세였던 것 같은데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걸까.

신각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내씨에서 저희를 포위하여 섬멸하려 하였지만 선봉장인 대우종린이 마음을 돌렸습니다. 의(義)는 자신이 섬기는 야소(예수)도 배반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를 지키겠다고 하였지요.”

“의는 어디에나 있으며 데우스(Deus)께서도 이를 지키라 하였습니다. 저희를 지키던 사람의 등에 칼을 꽂는다면 설령 일을 성사하여도 아무도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오토모 소린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놈은 오우치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먹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삼아 함선을 깡그리 긁어모아 충무위를 탈출시켰으리라.

충무위 병사 중 천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이유는 다른 가신들이 오토모 소린의 패전, 정확히는 스스로 포로로 잡힌 사실을 알아차리고 뒷북을 친 덕분이겠고. 가뜩이나 손이 부족해졌는데 잘되었다.

모든 장수를 동원하여 명령을 내렸다.

“남 조방장에게 명령을 내리겠소. 남 조방장은 성형요새 남쪽에 위치한 문구(紊具: 어지러움을 갖추다) 성에서 적도를 맞이하시오. 또한 신 상호군은 북쪽에 위치한 겹성에서 용양위 병사들과 함께 적도를 맞이하시구려. 나는 충무위 장졸들과 성형요새를 막아내겠소.”

신립의 상관으로 신각을 앉혀두면 녀석이 폭주하는 일을 막겠지. 히데요시로 추정되는 장수에게 당했지만 고작 백여 기의 기병을 손실했다면 큰 패전도 아니라 넘어가기로 했다.

각 병사의 배치를 마치고 다섯 개의 도개교를 통해 난민들을 도합 십오만 명이나 받아들이자 2월 4일이 되었다.

머나먼 남쪽 벌판에서 왜병들이 몰려왔고 맨 앞에 진격하는 히데요시는 성 10리 밖에서 멈추더니 대화를 나누고자 하였다.

“우리의 병사는 십만 명에 달하는데 당장 항복하고 퇴거하시오! 내 설령 전투를 벌여 유성룡 당신을 포로로 잡더라도 좋은 대접을 행한 뒤 조선으로 돌려보내겠소!”

“그렇소? 좋은 대접을 받을 것 같으니 나도 좋은 대접을 해야겠구려! 설령 등하 등길랑 당신이 패하더라도 나는 주상전하께 요청하여 교형(絞刑: 교수형)을 청하겠소!”

“적장의 시체를 온존할 수 있게 청하시다니 참으로 배려심이 많으시구려. 우리는 통하는 바가 있소.”

“사통팔달(四通八達: 사방으로 통함)이라는 좋은 말이 있으니 교형을 당한 이후 열한 조각으로 찢어 오대양 육대주에 뿌려 버리겠다! 네놈이 원귀가 되어도 영영 이 세상을 떠돌게 만들겠다!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뒤에서 뭔 소리를 하건 놈이 여기서 뼈를 묻게, 아니, 뼈를 묻지 않고 서둘러 도망쳐도 도망치기 전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놈이 뒤에서 뭐라 소리를 쳤지만 듣지도 않고 전쟁을 시작했다.

성의 공략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거의 사만 명에 달하는 병사와 거의 같은 규모의 보인, 도합 팔만 명의 인원이 있으니 모든 방법을 동원할 수 있으리라.

사방을 에워싼 병력은 성이 무너질 때를 대비해 느슨한 산개진형으로 돌격할 준비를, 보인들은 무리를 이뤄 지그재그로 참호를 파며 나아갔고 명나라 포로들은 화포를 끌고 발사 준비를 마쳤다.

“놈들이 화포를 쏠 준비를 합니다!”

“염려하지 말도록! 혹여나 곡사로 날아와 상부를 타격할 수 있으니 엎드려라!”

첫 방법은 화포 사격이다. 충분한 화포를 동원하면 요새를 무너트릴 수 있고, 설령 요새를 무너트리지 못해도 구조물을 붕괴시키고 병사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히데요시는 성형요새를 경험한 적이 없으니 내 요새가 만들다 만 어설픈 둔덕이라 여겨 신나게 쏘아댔지만 그 어설픈 둔덕은 화포를 거의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두부에 이쑤시개를 꽂아보았자 무얼 하겠나? 두부가 무너지기라도 하던가!”

“여장(女墻)이 무너졌습니다! 한 명이 찰과상을 입었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친구 참으로 운이 없군. 염려하지 말고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힐 장소를 선별하라! 아직 쏘지 말고 놈들이 화약을 낭비하게 내버려 두어라!”

명나라 영토인 육주성에서 알뜰살뜰하게 노획한 화포 수백 문을 동시에 쏘았지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힌 녀석은 각도를 잘 재서 성가퀴를 타격한 한 발이었다.

성형요새의 둔덕에 틀어박힌 포탄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지만 히데요시는 대응사격이 없으니 우리가 제법 큰 타격을 입은 줄 알고 있었는지 계속 포탄을 쏘아댔다.

“두 명이 더 다쳤습니다! 한 명은 눈먼 포탄이 다리를 날려 버렸습니다!”

“차라리 제대로 조준해서 쐈다면 모를까 다들 머리를 비운 채 손만 놀리니 피해를 입는군!”

화포가 어마어마한 연기를 뿜어내 히데요시의 진영이 뿌연 포연으로 뒤덮여 제대로 된 상황 파악조차 못 하는 상황일 거다. 더군다나 사격을 실시하는 명나라 병사들은 의욕이 없어서 대충 마구 쏘아댄다.

덕분에 애매한 곡사사격 몇 발이 요새 상부를 타격하였고 도합 병사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미 이천여 발이 넘는 포탄을 쏜 성과치고는 초라하지만 슬슬 상대의 포격이 줄어들고 있으니 반격의 시간이 다가왔다.

“쏘아라!”

충무위 병사들은 화승막대에 있는 조준기로 상대의 위치를 계산하고 있었기에 화포는 대다수가 적이 밀집한 장소를 향해 날아갔다. 우리의 목표는 애초에 타격을 입힐 수 없는 명나라 포로들이 아니다.

이천 발이 넘는 포격을 쏘아서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면 화약만 잡아먹는 돼지이니 오래오래 보존해서 화약을 낭비하게 만들어야지.

대신 여섯 문의 천용포는 굉음을 내며 특별히 제작한 사석(射石: 둥글게 깎은 돌)을 발사하였다.

-꾸르릉!

히데요시는 우리의 반격이 화포를 향해 날아올 것이라 예상하고 화포 주변의 병사들을 산개시켰지만 타격 범위는 놈의 본진 한복판이다.

적당히 산개해 진영을 갖춘 일본군의 진영 한가운데로 여섯 발의 사석이 내리 찍히며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네 발이 적진에 명중하였습니다! 적게 잡아도 한 발에 열 놈이 죽어 나갔군요!”

“천용포 여섯 발로 마흔 명을 죽였다니 놈들이 어중간한 산개진형을 택했으니 피해가 적군.”

둥글게 깎은 사암이 바닥에 닿는 순간 부스러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그 파편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포탄보다 강하다.

삽시간에 본진을 유린당한 히데요시는 퇴각 명령을 내렸고 왜병들이 하나같이 몸을 돌려 도주하였다.

“놈들이 후방으로 퇴각한다! 모든 화포를 방포하라! 다음 천용포 사격은 정량의 화약을 넣어 적진의 중앙을 재차 타격하라!”

아무리 산개진영이어도 움직이면 저절로 뭉치는 법이다.

요새에 가까운 적이야 화포 사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며 소식이 빨라 발걸음도 빠르지만 후방의 적은 소식이 늦으니까.

“얼씨구? 이놈들 산개진형을 유지한 채 퇴각합니다! 오히려 후방의 퇴각이 빠릅니다!”

“그럼 뭘 하나! 계속 쏴라! 놈들이 진형을 계속 물리도록 사거리를 늘려가며 쏘아라!”

과연 히데요시다. 퇴각이 더딘 후열과 퇴각이 빠른 전열이 엉키며 화포에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놈의 병사는 나름 질서를 갖추어 전력으로 퇴각하였다.

오위보다는 못하여도 지금까지 조정에 보고된 왜장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과연 일본 수뇌를 딱지치기로 딴 놈이 아니었지만 아직 즐길 거리는 차고 넘쳤다.

적진이 모조리 퇴각하고 소강상태가 된 전장이라 들어가 휴식을 취했지만 다음 날이 되니 야음을 틈타 참호를 파서 차근차근 요새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포병은 뭘 했는가? 하지만 충무위 병사들도 손사래를 치며 보고하였다.

“저희도 새벽 해가 뜨고 나서야 참호를 파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놈은 거적과 널판을 이용해 상부를 막고 거의 토굴과 같은 방식으로 참호를 파냈으니…….”

“마치 흰개미가 나무를 쏠아먹듯이 참호를 파내었군.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니 염려하지 말게.”

드넓은 논밭에 사람 세 명이 지나가도 충분할 폭의 참호 십여 개가 마치 흰개미가 나무에 굴을 파는 모습으로 성형요새를 향해 좁혀 들어왔다. 참호는 적의 포화를 막아내며 안전한 공격 경로를 만드는 방법이다.

요새 코앞까지 적이 침입하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뭘 했겠는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삼각대와 평판측량기가 요새를 만들 때부터 지정한 장소에 설치되었다.

내가 관료 초창기에 만든 평판측량기에는 이제 크기를 줄이고 배율을 높게 만든 망원경이 결합되었다.

세월이 지나며 이현전의 후임자들이 개량을 거듭해 현대에서 간혹 사용하는 시준기와 유사한 물건이 완성된 것이다.

“제 이 측점에서 관측 결과 보고 올립니다! 정남 기준 동향으로 14도! 하방으로 6도입니다!”

“제 사 측점에서 관측 결과 보고 올립니다! 정남 기준 서향으로 6도! 하방으로 7도입니다!”

요새 안에 준비된 20개의 측량 지점에서 각각의 참호를 측량한 각도를 불렀고 이 각도는 다시 본영에 있는 거대한 배치도에 그려졌다. 자고로 한 점의 위치를 알려면 두 점에서 선을 교차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 점들이 연결되어 참호의 형태를 완성하였고 고스란히 충무위 포병들에게 전달되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산출한 포병들은 참호를 향해 화포를 조준하고 일제 포격을 날렸다.

-갸아아아아아악!

천자총통의 일제 사격이 참호를 향해 날아가자 안에서 쉴 새 없이 흙을 파내던 보인이 포탄에 짓뭉개졌다. 잘린 팔다리가 참호 위로 솟구치며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큰 비명이 들려왔다.

참호를 파면 뭘 하는가? 정확히 각도를 산출하여 반격할 수 있는데.

하지만 다음 날부터 다른 참호들이 생겨났다.

히데요시가 처음 판 참호는 우연히 적중하였다 설득하였는지 새 참호들은 더욱 멀리서부터 야금야금 본진을 향해 방향을 잡았고 당연히 사거리 내에 들어온 순간 불벼락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놈의 진영을 높은 배율의 망원경. 조정에서 가까스로 얻어낸 20배율 망원경으로 보니 어디선가 토굴을 파내고 있었다.

저 많은 흙은 해자를 파내서 나올 양이 아니다.

“결국 토굴을 파내 해자의 물을 빼내려 하는 의도를 숨기려고 병사와 보인을 희생시키고 있었군. 내가 그러한 사실을 눈치 못 챌 정도로 우둔하다 생각했는가?”

“네? 토굴을 파낸다 하셨습니까? 본래 토굴이라 함은 높이가 여섯 자(2.1m)에 달해야지 효험이 있지 않습니까? 단순히 계산해도 토굴을 파내다 아국의 원병을 맞이하겠는데요.”

“왜인들은 신장이 작으니 다섯 자, 혹은 넉 자 하고 절반이면 충분히 드나들 수 있는 토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네. 한 시진에 여덟 자는 파낼 수 있지.”

간단한 계산에 들어갔다.

사람이 흙을 파낸다 치면 1㎥를 파내는 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 작업에 소모된 잡부를 계속 교대한다 치면 높이 1.6m, 폭 1m의 토굴은 이론상 1시간당 1.5m에서 2m 정도 파낼 수 있다.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토굴을 파냈다 치면 5일이 지났으니 200m 정도의 굴을 파냈으리라.

대충 3일 뒤에는 성형요새의 튀어나온 해자까지 토굴이 닿고 해자의 물이 빠져나오겠지만 준비한 물건이 한 개만 있겠는가?

성형요새 외부에는 넘쳐나는 석회석과 공사 중에 발굴된 자갈과 모래를 섞어 만든 콘크리트를 넓게 깔아 일종의 경보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굴을 파내는 입장에서는 얇은 바위로 착각하고 아래 방향으로 굴을 파내 지나가려 하겠지.

그리고 넓게 깔린 콘크리트 위에는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를 꽂아두었다. 그리고 이 나무는 콘크리트 아래를 파내고 있을 인부들의 진동으로 바람이 불지 않아도 조금씩 흔들렸다.

“왜인들이 토굴을 파느라 애쓰는구나! 너무 애쓰니 묫자리를 만들게 비격진천뢰를 쏘아라!”

화약은 15만 근이나 비축해 두었으니 비격진천뢰야 언제나 만들 수 있다.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내가 만든 콘크리트 경보장치 위에 내리 찍힌 비격진천뢰가 연속적으로 폭발하자 아예 토굴이 주저앉아 버렸다.

이쯤 되면 히데요시도 똥줄이 타들어 가겠지?

#작가의 말

다음 화에서는 히데요시 시선에서 이 지옥도를 풀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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