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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03화 (403/573)

근육조선 403화

2부 19장 3화 진공(進攻)(2)

병사들은 피로가 심할 뿐 그럭저럭 상태가 괜찮았다.

신립은 내 명령을 어겼음에도 당당한 얼굴로 피와 흙먼지로 뒤덮인 판금갑옷을 닦지도 않고 보고를 올렸다.

“관찰사 영감께 보고 올립니다. 적도를 추격하여 산야를 넘어 해안까지 당도하였습니다. 적이 해안을 통해 병력을 움직이고 있어 이를 격퇴하다 시일을 지체하였습니다.”

“그 적도가 얼마나 되는가?”

“이천 명에 달합니다. 적도를 모조리 진멸(殄滅: 절반 이상을 죽임)…….”

정예에 속하는 용양위 기병 이천 기를 5일 동안 산길을 뱅뱅 돌게 만들고 고작 이천 명 가운데 천 명의 적을 해치워?

산길에 적이 있고 적을 죽이다 보니 해안에 적이 있어서 또 죽인 꼴이다.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화를 눌러 참고 다독였다.

“전공은 전공이지만 명백한 실책일세. 분명 적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루만 진격하고 돌아오라 하지 않았는가. 혹여나 적이 산길에 매복하였다면 허리가 잘렸을 것이요, 해안가에 적이 더 많았다면 역으로 기습당했을 것이네.”

“실은 매복에 당했지만 이를 문제 없이 격퇴하였습니다.”

매복에 당한 것이 문제지 격퇴한 것이 문제냐! 지금까지 신립의 공격성으로 상대할 수 있는 만만한 적만 상대했지 히데요시의 본대를 상대했다간 정말 큰일을 당할지 모른다.

순간적으로 남상정을 장수로 내세워야 하나 고민하였지만 문제가 있다.

남상정을 보내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저격이라도 당하면 상관을 잃은 용양위를 문관인 내가 쉽사리 통제할 방법이 없으니 신립을 다시 한번 믿기로 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다시 출병하게. 자네가 빨리 돌아오지 않아 적도들이 이미 웅본 일대까지 엄습했음이 분명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후회해서 무얼 하겠나.”

신립도 눈치는 있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내 명령을 받았고 부관인 황진도 내 명령을 경청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확실하게 안전장치를 달아줘야 하니 상대해야 할 적을 명확히 규정했다.

“삼천 기의 기병을 인솔하여 웅본 및 웅본 인근의 평원을 순시하게. 적도가 대등한 규모이거나 더 적은 규모일 경우 맞서 싸우되 그 이상의 적은 절대 싸우지 말고 피하게.”

“관찰사께서 명하신 것을 마음 깊숙이 새기겠습니다.”

“자네가 출병하는 목적은 적의 염탐과 선발대의 분쇄이네. 부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지 말기를 빌 뿐이네. 어서 출병 준비를 하게!”

돌아가는 신립의 뒤통수를 보며 놈의 멱살을 잡아끌고 내가 말을 타고 같이 출진하려는 생각이 솟구쳤지만 설마 정찰조차 하지 못하는 멍청이는 아니겠지.

차라리 신립을 쉬게 만들고 황진을 주장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 날 새벽이 밝자마자 신립의 출병을 실시하였다.

다자이후 일대에 설치된 방어선에는 큐슈에서 가장 커다란 강인 지쿠고 강이 있는데 이 강을 기병이 넘어갈 방법은 내가 마련했다.

“밧줄을 풀어라! 교각이 상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내리도록 하라!”

목재 도개교(跳開橋)지, 현대처럼 철골을 쓸 수는 없지만 기껏해야 사람이 지나갈 도개교는 기둥을 몇 개 튼튼히 박아두고 지판에 여유를 두면 버티는 법이다.

문제는 도개교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섬세한 손놀림인데 이건 근육으로 해결하는 것이 조선이더라.

현수교 상부만 따져도 길이는 두 개로 나누어 각각 15m에 폭은 3m, 평균 두께도 60㎝나 달하는 목재를 썼으니 겨울이라 수분이 빠졌다 해도 12톤에 가까운 무게이다.

하지만 병사 200명이 달라붙으니 부드럽게 내려가 강 중앙에 설치한 토대에 안착하였다.

신립은 기병 10여 기를 이끌고 먼저 현수교를 건넜고 흔들리거나 무너질 기미가 없자 손짓을 하며 병사들을 인솔하였다.

본래 반나절이 걸릴 도하 작업이 한 각이 지나지 않아 끝나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도개교는 다섯 개를 설치해 두었으니 적도가 엄습하기 전이라면 몇만의 병사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네! 염려하지 말고 다녀오게!”

애매한 상황이나 적의 매복 혹은 기타 함정이 의심될 경우 황진이 절반의 병력을 인솔하라 하였다.

신립이 아무리 최악의 수를 둬도 절반인 1,500명의 병사는 살아서 돌아오겠지.

* * *

1월 27일 다자이후를 떠난 신립의 용양위 병력은 최대한 신속히 움직여 다음 날 아침 구마모토 인근의 평야에 도달하였다.

적진에 다가왔으니 신립은 주변을 살펴보다 명령을 내렸다.

“말의 속도를 올려라! 평보에서 속보로 올리고 주변을 정탐하라!”

느슨한 대열로 변경한 채 속보(速步: 15㎞/h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용양위 병사들의 눈에 보인 광경은 참으로 기이했다.

길로 쓸 수 있는 평평한 곳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피난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금 저 백성들이 뭐라 하는가! 왜 우리가 보이자마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겐가!”

“저도 왜인의 말을 잘 모르겠지만 적이 아니니 보내달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길목이 모두 왜국, 아니, 육주성 백성들로 뒤덮이다니 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혹시나 적의 매복일지 몰라 망원경을 손에 쥐고 사방을 살피는 신립의 눈에는 백성들만 보였다.

매복을 염려하여 면밀히 살폈지만 보인이나 병사로 쓸 법할 장정들은 없고 노인과 아녀자들만 있었는데 수가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지나친 백성들만 따져도 대략 팔만 명에 달하였고 저 드넓은 평원을 보면 최소 십이만 명은 조선 땅으로 밀려오리라. 그나마도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다.

구마모토가 함락당하면 일대 평야의 백성들까지 합류할 것이니 최소 이십만에 달하는 피난민을 맞이해야 한다.

백성들을 피해 방향을 틀며 진군하던 신립은 분통을 터트리며 말하였다.

“왜인들이 서로 내전을 벌일 적에 백성들에게 손대는 일이 없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저렇게 많은 피난민이 생겨났단 말인가! 그리고 다들 굶주리고 피로에 질린 얼굴일세!”

“아무래도 왜장이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백성들의 마을을 불태워 하주도로 몰려들게 만들어 아국의 미곡을 모조리 털어먹을 계략이 분명합니다!”

“이 개놈의 새끼! 등하 등길랑(히데요시)라 하였는가! 네놈을 잡으면 살가죽을 벗겨주마!”

이를 악문 신립은 아예 등자 위에 선 채로 망원경을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판금갑옷을 입은 병사들에다 마갑까지 갖춘 상황이라 말의 속도가 더딘지라 잘못하면 보병에게 포위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윽고 신립의 눈에 저 먼 벌판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보였다. 어제 이슬비가 내렸으니 사람이 움직여서는 저런 흙먼지가 피어오를 리가 없다.

한참 동안 벌판을 바라보던 신립은 적의 규모를 예측하고 명령을 내렸다.

“동쪽 방면에서 적 기병 이천여 기가 다가오는 중이다! 모두 병장기를 꺼내 적을 맞이하라!”

적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선발대를 보냈다.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인 구마모토 평원에서 검은 원 안의 소나무를 형상화한 가몬(家紋: 깃발)을 펄럭이기에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적을 맞이하려는 신립은 망원경을 으스러져라 쥐더니 눈에 핏발이 솟구치며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지금껏 도주한 육주성 백성만 보이고 병사가 보이지 않아 의아하던 상황이었다.

“저놈들이 명국의 패잔병을 도륙하고 있다! 모두 층진(여러 겹의 일자진)을 갖추어 습보(襲步: 최대 속력, 이론상 60㎞)로 짓쳐 나아가 놈들의 옆구리를 노려라!”

육주성이 무너졌고 구마모토가 공략당하는 상황이기에 히데요시의 진격경로에서 벗어난 명나라 병사들은 패잔병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어떻게든 조선 영토로 도주하려 하였다.

히데요시는 선심을 쓰듯 이 패잔병의 처리를 3군 담당자인 사에구사 모리토모에게 넘겼고 그는 기쁜 마음에 기병을 분열시켜 구마모토 평원 사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상대도 신립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대열을 갖추었다.

“적이다! 저 기병은 명나라 기병인가 아니면 조선 기병인가!”

“뭐든 상관없다! 우리는 다테의 기마 철포대를 도륙한 정예이다! 조선이 화포를 제법 쓴다지만 충분히 격퇴할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라!”

다테 가문의 자랑인 기마 철포대는 보병을 말 위에 올려 이동하고 말에서 내려 조총을 쏘는 기병도 아닌 기병이지만 이들이 자랑할 전과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치고는 느린, 그리고 아주 둔중한 돌격을 맞이한 3군 소속 장수 하라 마사타네(原昌胤)는 적이 지나친 진격으로 피로가 심하다 판단하고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일자진을 택하였으니 어린진을 갖추어 일점 돌파하라! 궁시를 쏘아…….”

백오십 보, 약 270m를 날아온 편전이 하라 마사타네의 왼쪽 눈알로 파고들어 뇌를 뒤흔들었다.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바닥에 널브러진 장수를 본 병사들이 경악하였지만 신립은 재차 손을 놀려 편전을 쏘아댔다.

“죄다 짓이겨 어육을 만들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들! 다 죽여라!”

용양위 기병들 대다수가 편전을 두세 발씩 난사하며 진형을 뒤흔들고 바로 등짐에서 거대한 편곤을 꺼내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지휘체계가 붕괴한 일본 기병대는 필사적으로 신립의 진영에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으랴아아아앗차아아아!”

신립을 비롯한 기병들의 근육이 꿈틀거렸으나 판금갑옷이 조금씩 휘어질 지경이다.

간혹 날아오는 화살은 튼튼한 갑옷에 막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애써 휘두른 창날은 편곤에 두 동강이 났다.

간혹 말을 앞세워 몸으로 막으려 하였지만 완력 차이가 너무 강했다.

기병과 기병이 충돌하여 한쪽만 날아가 짓밟히는 꼴이 벌어졌지만 더 흉악한 병기가 조선 측에서 튀어나왔다.

“쏴라! 나팔총을 쏘되 아군의 등판을 쏘지 마라!”

신립은 오인사격을 염려해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위의 기병들은 난전을 대비한 나팔총을 두 정씩 지급받았으며 황진은 아예 여섯 개의 나팔총을 바꿔가며 쏘아댔다.

기병의 갑주를 뚫기 위해 산탄을 넣지 않았지만 지근거리에서 쏘아지는 총탄은 대부분 상대 기병의 치명적인 부위에 박혀 버렸다.

대등한 수의 기병끼리 맞붙었지만 단 한 번의 돌격이 교차하고 절반 일본 기병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퇴각! 퇴각하라! 당장 본영으로 돌아가 진형을 갖추라 전해라! 어서!”

“놈들을 추격하라! 놈들이 본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모조리 도륙하라!”

“호군님! 아니 됩니다! 지금 명나라 병사들이 사방에서 습격당하고 있으니 다른 장소에 있는 왜병들을 격멸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신립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주하는 적 기병은 마갑도 제대로 된 판금갑옷도 없으니 자신들보다 속도가 빠르다. 차라리 황진의 의견대로 움직이는 것이 더욱 많은 적을 격멸할 수 있으리라.

황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천 단위로 쪼개진 일본 3군의 기병들은 세 배에 달하는 용양위 기병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모조리 궤주하였다.

하루 종일 명나라 병사를 구조하며 적의 기병을 도륙하다 육주성의 성도 웅본, 구마모토 인근까지 다가온 신립의 눈에는 함락 직전의 위기에 놓인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피난민들이 벌판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내가 크나큰 실책을 저질렀군. 관찰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즉시 복귀했으면 웅본을 지원하여 이런 꼴이 벌어지지 않게 했을 것인데.”

“자책하지 마십시오. 저렇게 많은 병력을 상대로 용양위 기병이 지원을 행해 보았자 중과부적으로 밀려났을 것입니다.”

삼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구마모토를 공격하였지만 후방을 보호하기 위해 전열을 갖춘 육천 명가량의 분견대도 보였다.

기병의 돌격을 예상했는지 다급히 세운 여러 겹의 마방책을 정비하는 모습이 신립의 눈에 들어왔다.

“놈들이 경인년(1470년)에 했던 방법대로 우리를 막으려 하는군. 지금 작렬신기전이 충분히 있는데 놈들의 마방책을 쏘아서 무너트리고 한 번 휩쓸고 돌아감은 어떠한가?”

“아니 됩니다. 관찰사께서 명하시길 대등한 병력과 상대하라 하였지 더 많은 병력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가 저들을 모조리 격멸해도 웅본의 병력이 되돌아 나올 것입니다.”

“당연히 본대가 되돌아 나오면 도주해야겠지만 함락 직전인 웅본을 구원할 수 있으며 다시 공성에 나설 때까지 시일을 벌 것이네. 그렇게 되면 삼 일을 허비한 일을 무마할 수 있겠지.”

합당한 말이지만 적장은 기이한 전략을 사용하기에 쉽사리 신립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미 유성룡의 말을 들어뒀던지라 신립은 병력을 분열하여 앞으로 나섰다.

“그래, 관찰사께서 명하신 바를 잘 기억하고 있으니 자네가 후위를 담당하게. 놈들이 보총을 쏘아대도 작렬신기전을 쏘아붙일 사거리에서는 위력이 부족해 마갑도 뚫지 못해.”

신립의 기병들은 대열을 갖추고 선발대가 작렬신기전을 어깨 위에 올렸다. 김지라는 장인이 만든 4연발 작렬신기전은 기병이 쓸 물건이 아니었지만 보통 작렬신기전은 잘 사용할 수 있었다.

신립은 검을 들어 대열을 인솔하며 작렬신기전의 발사를 기다렸다.

그러나 적진의 마방책 뒤에 있던 천이 걷히며 발사 준비를 마친 노획 화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망할!”

작렬신기전의 약점이라 할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적들은 기병 돌격에 대응하려고 밀집대형을 갖추거나 마방책을 잔뜩 쌓아두었으며, 결국 마방책이 붕괴되느냐 밀집대형이 붕괴되느냐 둘 중 하나의 손실을 입었다.

화포로 대응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지만 화포를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일본군에서 이 대응책을 쓸 줄은 몰랐다.

작렬신기전이 터지며 마방책이 무너졌지만 신립의 대열은 포격에 휩쓸려 혼란에 빠졌다.

“신 호군님! 다들 뭘 하나! 어서 들어가서 놈들을 막아라!”

무너진 마방책을 넘어 진격하던 일본 보병들은 황진의 예비대를 마주하자 진군을 멈추고 조총을 쏘아대었다.

판금갑옷에 마갑까지 갖춘 용양위 기병이기에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돌격거리가 나오지 않아 공세를 취하기 힘들었다.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일본군은 마방책을 보수하고 화포를 정비할 뿐 더 나서지 않았다.

황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흙먼지에 뒤덮인 신립을 말 뒤에 태우고 후퇴하였다.

얼마 뒤 정신을 차린 신립은 힘없는 목소리로 자책을 시작했다.

“내가 경솔했다네. 적이 저렇게 태만하게 대응할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애꿎은 병사 수백 명의 목숨만 날려버렸군. 이래서야 관찰사님을 뵐 면목이…….”

“정신을 차리십시오! 적도가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으니 오히려 지금이 기회입니다!”

일백 기에 달하는 기병이 적에게 손실도 입히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것이 패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황진의 눈이 빛나며 적진을 가리켰다.

적은 더 많은 기병이 몰려올 것을 경계하며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서운 법이라는 말이 있었으니 이를 착실히 지키는 장수가 아닌가.

황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음 계획을 제안했다.

“사방에서 명국의 패잔병들이 적의 기병에게 습격당해 명을 달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적의 분견대는 지금 진형을 풀지 못합니다. 그러니 패잔병을 구원해 하주도로 올려보냅시다.”

“그러다 분견대가 우리를 소탕할 것…… 아니군! 놈들은 방진을 세우지 않으면 대응할 방법이 없어! 처음에야 당했지만 두 번 당할 이유가 없지!”

지나치게 수세로 나서면 적의 우회를 막지 못하는 법이다. 적의 진영을 뚫을 방법은 없지만 기병은 기동력이 우월하니 적의 진형을 우회하면 충분한 법이다.

고작 삼천 기, 사상자와 소식을 전하기 위한 병력을 제외하면 이천사백 기의 용양위 기병들은 흩어져 명나라 병사들을 구원하기 시작했다.

이틀이 지나 구마모토가 함락당했지만 도합 사천 명에 달하는 명나라 병사들이 구조를 받고 하주도로 도주하였다.

“방금 전 쏘아 죽인 놈은 갑주를 보니 적장 같은데. 하긴 적장이 그렇게 멍청할 리가 없지.”

명나라 병사를 구원하며 적진을 누비던 황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조금 전에 격퇴한 적을 떠올렸다.

초승달 문양이 장식된 화려한 투구를 썼으니 고위 장수라 여겼지만 구마모토가 함락당했으니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 * *

구마모토를 함락한 히데요시의 군대는 대열을 정비하고 2월 1일 재차 진군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히데요시의 귀에 들려왔다.

“지금 뭐라 하였나? 조선군이 사방을 들쑤시며 패잔병을 구원해? 이렇게 만만한 먹잇감이 있는데도 들어오기를 마다하고 패잔병을 구원했다고! 거기다가 3군 지휘관인 사에구사님이 명을 달리해!”

“적의 기습을 당해 퇴각하다 재차 기습을 당했다 합니다. 이미 3군은 궤멸 직전입니다.”

명나라 병사의 사냥에 심취한 사에구사 모리토모는 신립의 기병과 맞서 싸우다 가까스로 도주하였다.

하지만 황진은 적의 퇴각을 예의주시하며 재차 기습하였고 그는 권총 탄환에 미간이 뚫리며 명을 달리하였다.

다케다 24장이라 명성이 자자하던 장수의 어처구니없는 최후였다. 히데요시는 멍한 표정으로 전령의 멱살을 잡고 갑자기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더니 꺽꺽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렇기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 하였는데! 사에구사 님! 내가 돌아가서 주군을 뵐 면목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이 원통하고 분한 심정을 어찌해야 좋겠는가!”

“지금 3군의 장수들이 하나같이 명보(明甫: 황진의 자)라는 장수에게 당해서 병사들이 퇴각하려 합니다! 지휘권을 어서 넘겨받으셔야 합니다!”

“알겠네. 하지만 나를 잠시 내버려 두게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던 히데요시는 전령이 나가자 통곡 소리를 멈추지 않은 채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 거들먹거리던 놈을 조선군이 대신 치워줬으니 반가운 일이다.

조선 기병의 습격을 유도하기 위해 잔뜩 준비해 둔 방법이 통하지 않았으며 적이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어 명나라 병사들을 구원했지만 큰 손실은 아니다.

명나라의 하급 관료는 조선에서 고위 관료로 대접받는 풍습이 있다 하였다. 패잔병을 받아들여 보았자 서로 의견이 충돌해 방비가 더욱 흐트러지리라.

점점 자신의 계획이 완성되어 가는 히데요시는 웃는 얼굴로 통곡 소리를 내며 진군에 박차를 가하였다.

#작가의 말

2월 1일 차 전황입니다. 3군은 3일 동안 하나하나 찢겨 궤멸당해 6천 기가 넘는 손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황진이 지휘관을 너무 많이 사냥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성룡이는 고려천자의 명을 받아 한정적이지만 명나라 군권을 통솔할 수 있습니다. 진린이 머리 박아야 하는 계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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