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02화
2부 19장 2화 진공(進攻)(1)
한나절 가까이 시마즈의 영토로 행군한 히데요시의 본대는 산길을 이리저리 돌아가며 진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간혹 매복이 있었는지 길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본대에는 영향이 없었다.
“역시 간자들을 보내 포섭하길 잘했다니까. 다들 산책을 나왔다 생각하고 편안히 움직이도록. 내가 한창 아시가루로 일하던 삼십 년 전에는 말이야…….”
처음에는 시마즈의 매복을 염려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던 병사들도 어느새 히데요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미천한 신분에서 출발하여 명문가 후지와라의 양자가 된 그는 출세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일본 리수로 2리(8㎞)를 넘게 행군한 본대는 피로를 호소하며 자리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병사들과 함께 병량환을 뱃속에 욱여넣은 히데요시는 병사들을 돌아보며 면모를 살피다 한 고참병의 앞에 다가갔다.
“내 자네의 생각을 알 것 같은데? 지금 자네는 이런 생각을 하겠지. 아! 우리 장군께서 미쳤나 보다. 이만사천의 병력을 인솔하는데 보인을 팔천 명만 두었다. 이대로는 보급이 위험하다!”
고참병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번 원정에 1,200척의 세키부네를 동원하였지만 세키부네는 조선에서 어선으로 쓰이는 작은 배여서 2만4천의 병사와 8천의 보인, 그리고 사용할 병장기를 가져온 것이 전부이다.
원정에는 병사의 수와 대등한 보조병력이 필요하다. 병사가 짊어질 짐을 옮기며 잡무를 담당하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지금 세 명 어치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보인들이 지쳐 쓰러질 이틀 뒤에는 진군이 불가능해지리라.
사카이에서 추었던 경박한 춤을 추며 손가락을 튕기는 히데요시의 모습을 본 고참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히데요시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장수답지 않은 얼굴로 얄궂게 말하였다.
“간자가 보고한 것이 틀림없다면 저 앞에는 일천 호 정도가 거주하는 큰 마을이 있다네. 내 저기서 이천 명의 보인을 소집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저기…… 적진에서 보인을 소집한다 하셨습니까?”
히데요시의 본대가 다시 진군하여 마을을 포위하자 피난 준비가 한창이던 마을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병사들을 시켜 마을 주민들을 공터로 끌어냈다.
갑자기 전쟁에 휘말린 주민들이지만 일본의 전국시대는 언제나 전쟁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소집되어 공포에 질린 주민들의 앞에 임시로 만든 단상이 설치되고 히데요시가 위에 올라가 일장 연설을 시작하였다.
“나는 후지와라 가문의 양자가 된 토키치로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고자루(小猿: 새끼 원숭이)라 불리던 백성의 아들이자 너무 비천한 출신인 나머지 궁녀로 일하시던 어머니의 성을 빌려 썼었지!”
백성들이 불신 대신 흥미가 가득한 눈초리로 히데요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난 이 년 동안 진린의 휘하에서 막중한 세금과 축성 및 군사 훈련에 매진하여 불만이 쌓인 이들이었다.
“그러니 너희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명나라의 가혹한 통치에서 해방하고 옛 땅을 점거한 조선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이 땅에 당도했을 뿐이다!”
“개소리 집어…… 읍!”
반항하던 이는 히데요시가 미리 배정한 간자에게 끌려갔다. 사실 간자가 입을 막지 않았으면 본보기로 죽이려 했지만 피를 적게 흘려야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히데요시는 커다란 자루를 가져오더니 이를 칼로 찢어 은자를 흘렸다.
“너희가 전선에 나서서 싸우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있는 힘껏 짐을 옮기고 병사들을 보조하면 무조건 은자 한 냥을 주겠다! 이는 강요가 아니다! 가장 먼저 나서는 이는 내 배배신(가신의 가신)으로 임명할 것이다!”
마을에 거주하고 있던 간자들이 앞을 다투며 히데요시에게 달려들었고 히데요시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간자들에게 임시로 작성한 임명장을 내어 주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심드렁한 눈치로 경계하였다.
“그럼 이건 어떠냐! 지금 너희가 사 할의 막중한 세금으로 신음하고 있다 들었다. 혹여나 막부에 소속되어 육공사민(세금 6할)에 짓눌리리라 여기더냐? 세금은 향후 십 년 동안 이 할 오 푼으로 거둬갈 것이다!”
“지금 미치셨습니까!? 그렇게 적게 세금을 거두면…….”
“입 다물게. 어차피 세금을 거둘 방법은 많고 넘치니까.”
어차피 목표를 달성하면 눈치를 살살 보다 조선에 항복해서 넘길 땅이니 공수표를 마음껏 던져도 좋다. 지금 할 일은 오로지 이 원정을 성사시키는 것 하나이다.
주민들이 슬슬 동요하자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의 환심을 살 계책을 논하였다.
“혹여나 전쟁에 시달리기 싫은 이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짐을 싸서 북쪽으로 도망쳐도 좋다! 내 부친께서 전장에서 명을 달리하였으니 너희가 같은 일을 겪게 내버려 둘 성싶더냐?”
마을 주민들이 웅성거리더니 보인으로 나설 수 있는 장정들은 히데요시에게 달라붙고 나머지 주민들은 식량을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서 마을을 떠나 머나먼 피난길에 올랐다.
히데요시는 조선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몇 가지 사실은 알았다. 백성을 끔찍하게 아낀다 하였는데 아마 조선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의리가 있는 자라 여기며 매우 기뻐하리라.
이천 명에 달하는 보인을 소집한 히데요시는 진격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윽고 해가 저물 무렵, 소식을 접한 시마즈의 중심부 가고시마 성 앞에 히데요시의 본대가 도착했고 징이 울리며 병사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병사들이 피로하였으니 군진을 차리고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서둘러 막사를 차립시다!”
“필요 없다! 지금 당장 지체하지 말고 공격하라! 화포도 무엇도 필요 없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요! 상륙에 행군에 다시 공성전이라니, 말이 안 됩니다!”
“기습을 당하여 소식이 전해지고 한나절이 지났을 성이 제대로 된 방비를 했겠나? 시마즈의 병력이 일만에 달해도 지금 성의 병력은 절반에 불과할 것이다!”
히데요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봉수대가 점거당해 제대로 된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지금 시마즈 가문에서 필사적으로 소집한 병력은 기껏해야 3,000명이 조금 넘어설 뿐이었다.
하루를 쉰다면 각지에서 증원을 보내고 늦게 당도한 가신들이 사방에서 히데요시의 군대를 습격했겠지만 이미 공격이 시작되었다.
상식을 초월한 빠른 공격에 직면한 시마즈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지만 압도적인 수는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었다.
“갈고리를 걸고 성벽을 오르며 적을 혼란케 하라! 충차에 화약을 넣어 성문을 분쇄하라!”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가고시마 성의 사방이 포위당해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병사들의 수가 부족하기에 각 구획은 기껏해야 화포 몇 발을 쏘고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성문이 폭음과 함께 붕괴하며 히데요시의 병사들이 산노마루(三の丸: 다이묘가 머무는 장소까지 두 구역 앞)를 넘어가자 영주가 머무는 혼마루(本丸)에서 군기가 걷히며 항복의 의사를 드러냈다.
“요시히사 님! 조금만 더 버티면 무네시게의 원군이 도달할 것인데 어찌하여 항복하셨습니까!”
시마즈의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무기를 떨구었고 당당히 성문 안으로 들어가던 히데요시는 외침을 듣더니 고개를 돌려 머나먼 북쪽을 보았다.
병사들이 전력을 다하여 진군하였는지 어둠이 내리는 산길이 횃불로 환히 밝아올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전투가 길어졌다면 후방을 기습당해 큰 손실을 입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시마즈의 가주인 시마즈 요시히사가 항복을 뜻했으니 끝난 전투이다.
비통한 표정으로 칼을 떨군 장수는 히데요시를 보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건 말도 안 돼!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몸은 많이 커졌지만 네 얼굴은 이미 본 적이 있어 알 수 있구나. 마사노부 어르신의 아들이자 내 사촌인 이치마츠(市松: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아명)가 아니더냐!”
손쉬운 승리에다 소식이 끊긴 친척을 만난 히데요시의 표정이 밝아졌다.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앞세워 가신들을 휘어잡고 계속 진군하면 아무리 늦어도 열흘 뒤에는 구마모토까지 닿을 수 있으리라.
시마즈의 곳간을 털어 재물을 보충하며 부족한 보인들은 간자들을 통해 포섭한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면 충분할 것이다.
잘만 하면 다 죽어 마땅한 3군이 다른 공격로로 당도하기 전에 구마모토를 함락할 수 있으리라.
* * *
본래 병사의 완전 소집과 배치에 10일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질적인 배치는 7일 만에 끝났다. 정월 대보름의 휴가는 내 비상명령과 함께 날아갔지만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휴가를 잘린 병사들이 나에 대해 욕을 한창 토해내던 1월 21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항구인 박다목(하카타)에서 전령이 도착하였다.
아마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는지 권율은 적습이라는 간단한 보고만 올린 상태였다.
“박다목(하카타)에서 급보입니다! 해안을 향해 대내씨가 삼천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해 육로로 공격을 시도하였습니다! 또한 화공선 무리가 세 차례 항구로 엄습하였습니다!”
조방장이자 군권을 통솔하는 남상정도 처음에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으나 보고를 듣자마자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내 말이 맞는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보고는 한 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전군(日田: 히타) 인근에 대내씨의 병사 오백여 기가 출몰하였습니다!”
“태재부(다자이후) 동쪽의 산간지대로 이백여 명의 간자가 잠입하여 화공을 행하려다 발각되었습니다! 후속 병력이 도착할 징후가 보입니다!”
어제까지 내 지시에 마지못해 따르던 관원들은 모두 전쟁이 벌어졌음을 알고 복장부터 변했다.
움직이기 편한 철릭과 간편한 갑주를 패용한 관원에게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보았다.
“피해는 어떠한가? 내가 계획한 대로 대응은 마쳤는가?”
“박다목은 사절이라는 이가 병사들을 인솔해 관문해협(시모노세키 해협)의 징후가 심상치 않다 경고하였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권 목사께서 먼저 화포를 퍼부었습니다. 적은 기습이 실패했지만 착실히 맞서 싸우며 퇴각하였습니다.”
“일전 일대에 출몰한 적도들은 상인과 잡부인 양 위장하였지만 용양위를 인솔하는 신 호군이 짐을 수색하려 하자 도주하였습니다. 놈들이 건너온 산길로 병사들이 역공에 나섰습니다.”
“태재부에 행하려던 화공은 미리 드므에 물을 잔뜩 받아놓고 물에 축인 짚단을 준비하여 집 두 채를 태우고 실패하였습니다. 이미 진화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보고를 올린 관원들의 안색이 파리해졌지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첫 기습공격을 무리 없이 격퇴했으니 좋은 징조이다. 오우치 입장에선 뭔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도 못 하겠지.
내가 방비를 허투루 했다면 기습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겠지만 병사의 소집은 물론이요, 지정된 망루와 요새의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기습을 시도했으니 역으로 피해를 입었다.
아직 공세로 전환할 수는 없으니 명령을 하달하였다.
“우선 박다목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네. 주둔 중인 병사가 오천 명에 달하니 대내씨의 공격은 쉬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며 화공선은 맞불을 놓듯이 백성들에게서 소선(小船)을 징발하여 먼바다에서 밀어내게.”
“하지만 대내씨를 응징해야 하지 않습니까. 당장 병력을 보내서…….”
“대내씨가 이런 무의미한 기습을 시행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저 머나먼 남쪽 어딘가에서 왜인들이 착실히 진격하고 있으니 아국의 시선을 자신들에게 돌리기 위한 방책이지요.”
오우치의 총 병력은 3만 이상이지만 실질적으로 공격에 참여시킬 수 있는 병력은 크게 줄어든다. 배신이 성공하려면 주둔 중인 충무위 병사들을 해치우는 것이 우선 과제니까.
오위의 정예병인 충무위 병사들을 상대하려면 기습과 지형적 유리함을 따져도 2만 명 이상이 공격을 퍼붓는다 했을 때 승산이 있다. 결국 우리에게 보낼 수 있는 병력은 1만 내외다.
결국 기습의 묘미를 상실한 놈들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방법을 택했다.
소수의 병력으로 계속 자극하여 병사들의 피로를 쌓아나가는 것이 분명하다.
“손자병법의 허실 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싸움터에서 자리를 잡고 적을 기다리면 편안히 싸울 수 있지만 뒤늦게 끌려가는 군대는 쉬이 피로해진다.’ 적이 대내씨를 앞세운 이유는 병사들을 피로하게 만들고 피해를 누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하면 응전이 무의미하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최소한의 응전을 행하지 않으면 적도가 계속 아국의 경계를 희롱하며 산길을 마음대로 오갈 것입니다.”
“미리 병사들에게 말해두었습니다. 적도를 추격하더라도 하루만 추격하고 본진으로 복귀하라 하였으며, 오위의 병사들은 날래기로 소문나 있으니 이만큼만 하여도 충분할 겁니다.”
조선 기준으로 지방군 보병의 일일 행군거리는 16㎞, 약 40리다. 하지만 왜인들의 경우에는 장비가 가볍고 전국시대를 통해 단련되어서 50리인 20㎞ 혹은 그 이상도 나온다더라.
반면 오위는 40㎞인 100리를 행군할 수 있으니 하루만 추격해도 충분하다.
추격당하는 적들 가운데 낙오되는 놈은 죽을 것이요, 무리한 퇴각을 성공해도 탈진하여 며칠은 공격이 불가능하니까.
남상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결국 남쪽에서 올라오는 본대를 상대하기 전까지 병력을 온존해야 하겠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박다로 엄습하는 이들은 권 목사에게 용양위 보병들을 보내 상대하게 하고 산길을 통해 침투하려는 놈들은 남 조방장께서 병사를 이끌고 막아주십시오.”
히데요시 이 원숭이 놈의 전략은 아무런 논리가 없이 닥치는 대로 공격을 퍼붓는 것 같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니 핵심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놈은 자신을 상대하기 전 우리의 힘을 최대한 빼놓을 생각이 분명하다.
놈이 계획한 대로면 한창 정월대보름을 즐기는 병사들이 기습을 당해 큰 피해를 입고 모든 병력을 동원해 오우치를 공격할 거라 생각했겠지.
이에 과도하게 대응하면서 힘을 빼다 보면 조만간 밀고 올 히데요시의 본대에 농락당하리라.
하지만 피해는 없고 대응도 효율적으로 실시했다. 이제 첫 습격을 막아냈으니 적의 규모와 경로도 명확히 예측할 수 있으니 선봉대를 파견해 적의 전력을 점검해야 하리라.
그런데 다음 날이 되어도 돌아올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
“신립 이 양반은 대체 뭘 하느라 산길에서 뭉개고 있지?”
이미 육주성의 성도인 구마모토에 경고서한도 보냈고 오우치의 침공 직후 전령을 보내 아예 적이 침공했으니 대비하라 했다.
하지만 오우치의 침공 소식보다 늦게 봉화가 올라온 육주성은 히데요시에게 신나게 털리고 있으리라.
당연히 적의 규모와 상세를 파악하지도 못하는 형편이니 기병을 보내서 적의 선봉대와 싸워 진격속도를 늦추며 정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병은 내 손에서 벗어나 있었다!
“신 호군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가!”
“마지막으로 전해진 소식은 적이 산속에 진지를 차렸다는 보고였습니다.”
삼천 기의 기병 중 이천 기를 신립이 이끌고 산속으로 사라져서 문제다!
군대가 어느 정도 규모여야 정찰의 의미가 있지 기껏해야 일천 기의 기병을 보내 이리저리 쪼개면 오히려 적의 포위공격을 당해 하나하나 잘려나가리라.
솔직히 말해 신립이 능력이 있어서 내버려 두었지 문제투성이이다.
어마어마한 저돌성과 거기에 걸맞은 재능이 있지만 그 외에는 모든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현대에서 친구 영직이에게 물어봤을 때 답한 말이 떠올랐다.
-탄금대? 상식이 있다면 탄금대에서 절대 안 싸운다. 모내기를 마친 진흙 덩어리인 논밭이 1㎞나 이어지는데 어느 누가 기병으로 회전(會戰)을 벌이냐? 차라리 말에서 내려 싸우지.
설마 탄금대처럼 적의 함정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립의 상관인 남상정을 보내 기병대를 인솔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후회를 할 지경이었다.
1월 23경에 돌아와야 할 신립은 1월 26일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나도 더는 못 기다려서 아예 보병을 소집하는 저녁 무렵이 되자 신립이 병사들과 함께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