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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98화 (398/573)

근육조선 398화

2부 18장 4화 이성과 감성(2)

바둑에만 집중해서 몰랐지만 벌써 음력 6월이다.

이 시기 교토의 더위는 끔찍했기에 사방에서 시종들이 부채를 부쳐 바람을 보내고 있지만 공좌를 거듭하니 내 머리에도 땀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짓을 하자마자 시종이 다가와 차가운 물수건을 건넸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놈이 정계를 장악하건 장악할 와중이건 상관없다. 적어도 일본은 침략의 야욕을 드러낸 상황이다.

“유월의 교토는 참으로 더운 고장입니다. 조선은 북쪽에 있기에 별로 덥지 않아 적응하기 힘든 곳이 아닙니까. 여기 차를 한 잔 내오너라!”

어느새 돌아온 히데요시가 명령을 내리자 그냥 우려냈다 식혀 맛도 없는 차가 나왔다.

내가 차를 마시는 사이 꼼지락거리며 다시 반지를 끼우는 모습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놈을 철저히 기만하며 정보를 빼낸 뒤에 이 사기극까지 드러내 아예 모욕을 주리라.

옆의 무사가 칼만 안 찼어도 달려들어 내수린으로 박살 내버렸겠지만 이 동네에는 칼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다시 바둑을 시작하고 놈을 압박하였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후지와라 토키치로 당신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소. 우에스기 가문과 다케다 가문이 일전을 벌일 때 선봉에 서서 진열을 궤멸시켰다 하였는데.”

“당시에는 주군의 명령을 받아 필사적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휘하 병사들이 우에스기의 병사를 상대로 주눅이 들어 있던 터라 허세를 부리며 앞으로 나섰을 뿐이지요.”

“그렇게 앞으로 짓쳐 나아가면 이렇게 먹여치기에 당하는 법이오.”

이쪽 방면을 담당하던 기사(棋士)는 공격적인 놈이기에 슬슬 유도해서 돌 두 개를 내주고 여덟 집을 먹어버렸다. 삽시간에 한 곳의 형국이 붕괴하자 히데요시는 울상을 지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되돌려 치기를 비롯한 현대 바둑의 정수가 재현되었다. 생각해 보니 이 시대의 바둑에는 포진 정석이나 사활문제를 비롯하여 각 국면 싸움을 명확하게 끝내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곧 정석이고 내가 사활의 해답이다. 처음에는 한 수 한 수가 묘수라 여기며 감탄하는 히데요시였지만 삽시간에 패배하자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사람은 언제나 살아나갈 방도가 있소이다. 설령 수십 수 이전에 파놓은 함정에 빠져든다 하여도 발목을 자르고 뛰쳐나올 수는 있는 법. 언제나 살 궁리를 하는 법이지요.”

이쯤 되면 유령 바둑왕 대신 조선 바둑왕이라는 만화가 현대에 나오지 않을까.

어느새 얼굴에 땀이 축축하게 들어찬 히데요시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몰려 바둑을 두고 있었다.

꼭두각시를 부리듯 정권을 휘어잡아도 결국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뿐 책임은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내 말과 행동으로 압박당한 히데요시에게 슬쩍 속내를 물어보았다.

“생각하여 보니 궁금한 점이 있소. 다자이후소치는 품계가 매우 높은 관직인데 일전에 무품으로 지내오다 어찌하여 갑자기 품계를 높이 받았는지 모르겠구려.”

“저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다케 아니! 후지와라 가문에서 힘을 썼다고 하더군요.”

분명 다케다라 했다.

히데요시는 겁에 질려 주변을 돌아보았으니 중요한 정보이다. 아마 군재가 부족한 다케다 가츠요리가 나름 능력이 검증된 히데요시를 포섭하였다가 역으로 장악당했으리라.

저녁 해가 기울어가기에 마무리를 지을 준비를 하였다. 정보를 잘 털어놓지 않던 히데요시지만 조선 편이 된 고니시를 빼고 임진왜란의 주요 왜장들을 언급하면 슬슬 정보를 쏟아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왜장들을 언급하였다.

“듣자 하니 도도 다카도라라는 명장이 있다 들은 적이 있소. 조선에도 소식이 퍼졌을 것인데 혹여나 아는 바가 있소?”

“이누카미(현 시가 현) 촌놈 도도 말입니까! 그놈은 사람도 못 된 놈입니다! 주군을 다섯 번이나 갈아치운 놈인 데다가 한미한 출신이라 도미를 먹고 기겁하였다더군요. 도미 따위에…….”

“그럼 가토 기요마사라는 자는 알고 계시오? 젊은 장수라 하였는데?”

“모릅니다.”

표정이 싹 변하면서 모른다 하는 걸 보니 답이 나온다. 아직 정권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한 히데요시지만 휘하에 가토 기요마사는 포섭해 두었으리라.

다행히도 고니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웃으며 답을 하였다.

“신의가 있고 씀씀이가 호탕한 자입니다. 비록 키리시탄(가톨릭교도)라서 흠결이 있지만 조선에 대해 잘 알고 제가 미천한 시절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신의에 대해 아주 중요히 생각하나 보구려.”

“사람은 신의가 없으면 시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정돈하고 뜻을 온건히 가지며 신의를 배반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지요. 제가 그래서 도도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신의? 신의 좋아하시네. 사기바둑을 두면서 신의? 바둑에 훈수만 둬도 몽둥이가 날아올 텐데 신의?

슬슬 웃는 표정을 짓자 히데요시도 따라서 웃으며 바둑돌을 두려 하였다. 하지만 나는 바둑돌을 두지 않고 바둑판을 잡고 말하였다.

“내 지금까지 일어난 사기극을 잘 보았소이다. 내가 완력이 아주 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나무토막 정도는 쉽사리 뭉개버릴 수 있소!”

“지금 대체 뭘 하고 계십니까! 여기는 쇼군께서 만드신…….”

목조주택의 마루는 기둥과 엮인 장귀틀과 장귀틀에 엮인 동귀틀, 그리고 그 위나 옆에 끼워진 반자로 구성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마루판은 두꺼워 봤자 4㎝ 내외의 나무판이다.

두툼한 통짜 원목으로 만들어 무게만 20㎏이 될 바둑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히데요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등허리에 패용했던 칼을 뽑으려 하였다.

하지만 내 목표는 바닥이다!

“지금까지 사람을 손가락으로 부리며 얼마나 재미있었소! 내 그런 재미를 느끼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재미는 느끼고 싶구려!”

바둑판을 내리찍자 바닥이 우직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장마루 판자가 박살 나 바둑판이 저 아래 기사들에게 내던져졌다.

한 기사가 팔을 맞았는지 뒤틀린 팔뚝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고 나머지 기사들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내 왜국 사람 모두를 평가하진 않겠지만 후지와라 토키치로 당신에 대해서는 평가할 수 있소! 당신은 사람을 손가락으로 부리기를 좋아하는 자이며 남을 기만하려는 자요!”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제가 사람을 부린 적은 없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더 이상 말을 섞기도 싫어 몸을 돌려 바로 은각사를 빠져나왔다. 히데요시가 소매를 잡아챘지만 이 더러운 손이 닿은 옷을 만진다 생각하니 혐오감이 들었다.

옷의 어깨 부분을 잡고 힘을 주니 실이 뜯어지는 소리가 나며 솔기가 모조리 뜯겨 민소매 한복이 되었다. 혹여나 반대쪽 소매를 잡을지 몰라 양 소매를 모조리 뜯어내 버렸고 히데요시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건 상관없다.

지금 다케다 가츠요리와 한창 협상을 진행할 이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 일을 확실히 하리라.

* * *

유성룡이 히데요시와 바둑을 둘 무렵 율곡 이이는 조선 사신을 대표하여 일본의 실세 다케다 가츠요리와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접견 과정의 허례허식이 끝나자 가츠요리는 진중한 표정으로 요청을 제시하였다.

“빈말은 하지 않겠소이다. 작금에 이르러 막부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분봉을 받지 못한 이들이 상잔을 일삼으려 하는 판국이오. 그러니 조선과 명국이 큐슈를 분봉한 영주를 아국의 사람으로 바꾸고자 할 뿐이오.”

“빈말은 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면서 뭐라 하셨습니까?”

“무례하지만 청하는 입장이니 정중히 말하겠소. 예전처럼 명국과 조선에서 세금을 받아갈 수 있도록 세율을 조정하겠으니 우리가 영주를 분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오.”

천재로 소문난 이이도 이 말을 듣자 눈빛이 흔들리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지경이었다. 영주를 분봉할 수 있는 기회라 하였지만 조선과 명은 중앙집권을 실시한 지 200년이 다 되어가는 국가이다.

먼 고장이 개척될 경우에는 지역 세력을 토관(土官)으로 임명해 파견한 관리를 보조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관리에게 수조권(收租權)을 주어 녹봉을 거두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통치권만큼은 조정에 있었다.

하지만 다케다 가츠요리의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조선은 이미 옛 세력을 거둬들여 영주로 분봉하였으며 조정에서도 자주 영주와 가신들을 갈아치우며 매년 산킨쿄타이(参勤交代: 참근교대)를 시키지 않소이까. 그러니 다음 교대하는 이들을 우리 세력으로 갈아치우자는 말이오.”

예의고 나발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이는 짐승을 보는 눈빛으로 다케다 가츠요리를 노려보았다.

참근교대는 뭐고 분봉은 또 뭐란 말인가. 이들이 정녕 세상을 알기는 한단 말인가?

확고한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한 조선은 물론 느슨한 중앙집권체제를 이어가는 명나라도 이런 제안을 들으면 상대의 정신 상태를 염려할 지경이다.

예전에 남경에서 서애 유성룡과 접촉한 스페인 원정대가 그러하였듯이 봉건제도만 알고 있고 당연하게 여기니 다른 나라를 자신들 멋대로 판단한 것이 분명하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이이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앉아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여나 아국의 주상전하를 왜국의 정이대장군과 같은 이로 보고 계십니까? 아국의 관리들이 모두 영지를 가져서 왜국의 대명(大名: 다이묘)처럼 사병을 이끈다 보십니까?”

“당연한 일이 아니오. 예부터 이어지는 토관이라는 자들은 막부로 따지면 슈고(守護: 무로마치 시대의 행정 지방관)이며 파견된 이들은 분봉된 다이묘들이 아니오?”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아국도 참근교대인지 뭔지를 하며 사람을 교대하니 왜국의 사람을 앉혀놓아도 될 일이며, 세금을 비롯한 수익도 아국으로 전해줄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바로 보았소. 내 다자이후소치로 임명한 후지와라 토키치로를 필두로 십여 명의 관리를 염두에 두고 추후 임명하려 하였지. 하지만 다이묘로 임명될 이들이 지나치게 촉구하여 먼저 임명하고 조선에 알리게 된 것이오.”

안색이 변하지 않고 답하는 다케다 가츠요리를 찬찬히 뜯어본 이이는 가급적 내색하지 않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미 중앙집권 체제에 있는 조선이 아닌 저들이 망상하는 봉건제 조선의 입장에서 제안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조정으로 올라가는 세금은 변하지 않고 토관도 현상 유지한다. 얼핏 보면 좋은 말 같지만 결국 수조권과 통치권에 대해 할양하라는 말이니 사실상 협상을 빙자한 협박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이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미치셨습니까? 주상전하의 명으로 파견된 관료들이 어찌하여 왜국의 영주와 같은 반열에 있으며. 옛 문종대왕 시절 복속을 행한 이들이 조상의 은덕으로 관직을 세습하는 것이 어찌하여 왜국의 관리와 같은 반열에 있다는 말입니까?”

다케다 카츠요리의 표정이 굳어지며 호위무사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지만 이이는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폭언으로 인한 침묵이 이어지자 다케다 가츠요리는 억지로 웃으며 사태를 무마하려 하였다.

“참으로 무례하구려. 하지만 막부와 조선의 풍습이 다른바 이 무례를 이해해 주겠소. 대체 어디가 문제란 말이요? 혹여나 분봉될 다이묘들의 자리가 부족하면 유예를 충분히 주겠소.”

“어디가 문제냐 하셨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문제입니다! 아국과 왜국의 제도가 다르고 풍속도 다르니 지독한 무례이지요! 아국도 명국도 조정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뻣뻣한 수염을 쓰다듬는 다케다 가츠요리지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상대가 침묵하자 이이의 말이 이어졌다.

“설령 구주(큐슈)를 양도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명국의 황상에게 먼저 진언을 올려 뜻을 정한 이후에 차근차근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법이 아닙니까. 그러하면 정식으로 구주를 양도받는다 칩시다. 대체 뭘 주실 것입니까?”

“군사요. 명국과 조선은 지금 군사가 부족하지 않소?”

이제야 정상적인 논의에 접근하였지만 군사라는 말을 듣자 이이의 눈썹이 휘어졌다. 대체 일본에서 뭘 원하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나선단 말인가. 가츠요리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자신 있게 말하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소. 무례한 일임을 알고 하였지만 조선은 지금 남만인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바. 우리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가 남만인에게 기습이라도 당하면 큰일이 아니요?”

“남만인에게 기습을 당한다 하셨습니까?”

“그렇소이다. 소문을 듣기로는 경진년에 남만해적들이 조선의 영역에서 난동을 부려 명국의 함대를 짓밟고 다시 남경을 짓밟아 조선 함대 모두가 나서 가까스로 격퇴했다 하였소. 이런 상황에서 명국과 조선이 우리에게 눈을 돌릴 수 있겠소?”

왜곡된 소식이 일본까지 전해졌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경이 함락당하기 직전까지 몰렸으며, 조선의 함대 전체가 아닌 전력의 3할을 차지하는 경기수영 함대가 격퇴도 아닌 낙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조선은 여송 일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인삼 무역을 중단하였지만 스페인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소수의 상인만 일본으로 보낼 뿐 아직까지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었다.

결국 수군의 주축인 경기수영과 대양도수영 함대가 장기간 발을 뺄 수 없는 대치국면이 이어졌다.

만력제의 명령으로 경기수영 함대가 남경을 오가게 되었고 원정대에게 대항할 수 있는 대양도수영은 대양도 일대와 여송 북부를 오가며 감시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군대가 어디 양 수영만 있던가.

이이는 조선에서 취합한 정보를 되새기면서 답하였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왜국은 영토가 필요하고 조선은 남만인의 침략을 방비해야 하는 입장이지요. 그러니 구주를 할양하고 동맹을 맺어 전쟁을 방지하며 왜국의 강대한 병사들을 헐값에 사용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케다 가츠요리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부채를 펼쳤다. 조선의 약점을 자극하여 협상에 나서는 것만 보아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가 정국을 장악하고 외교를 주도한다면 쓰지 않았을 얕은 수작이었다. 상대를 핍박하는 방식을 택하면 훗날 화근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니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가츠요리는 흔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바로 보았소. 혹여나 필요하다면 남만인과 싸우는데 병력을 차출해 줄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지금 차출할 수 있는 병력만 따지자면…….”

“왜국의 병사를 모두 집결시키면 사십만가량의 대군이 나온다. 이런 말씀을 하시려 하였습니까? 선박을 모두 합치면 이천여 척이 넘는다 하시겠지요.”

무례하게 상대의 말을 끊어버린 이이지만 다케다 가츠요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으며 눈이 사방으로 핑핑 돌아갔다.

자신도 가까스로 파악한 상세를 조선의 관리가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이지만 이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십만 대군이라 하지만 왜국은 정군(正軍)과 보인(保人)을 합산하여 계산하는바. 아국으로 따지면 이십만의 병사들이 아닙니까. 아국은 이미 십칠만의 병사가 있으며 충원에 여유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천여 척의 함대라 하셨습니까?”

“어! 어찌 알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하지만 일단 넘어가겠소. 이천여 척의 함선은 물론이요, 명성이 자자한 무라카미(村上) 수군의 후예들도 있으니 여유는 충분하오.”

“그 임상(村上) 수군이라는 이들의 배 중 팔 할은 아국에서 조운선으로 사용하는 함선이 아닙니까. 아국의 군선은 이백여 척에 불과하지만 각기 왜선 열다섯 척은 상대할 수 있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지는 다케다 가츠요리를 보며 이이는 표정 변화도 없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조선은 첩자를 보내진 않았지만 상인을 통해 각지의 전쟁 양상을 분석하고 일본에 얼마나 많은 병사가 있는지 역산(逆産)을 실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일본 기준으로 30만 대군이자 조선 기준으로 정군 15만 명으로 계산하였지만, 이이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세력을 감안하여 정군 20만 명이라 하였고 이는 제대로 적중하였다.

더군다나 선박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군선은 희소한 물건이며 조운선을 개조하여 관선(関船: 세키부네)이라는 선박을 쓰기에 왜국에서 사용 중이라 추산한 4,000척의 상선 가운데 절반을 차출한다고 여겼지만 적중한 것이 분명하였다.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조선 사람인 이이가 손금 보듯 군사에 대한 이야기를 논하자 겁에 질린 다케다 가츠요리는 입을 다물고 침묵하였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이이는 기세를 올려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형국이니 필요가 없습니다. 설령 남만인이 다시금 난을 일으키고 왜국이 전력을 다하여 침공하여도 둘 다 막아낼 수 있으며 추후 정비하여 보복에 나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추후 정비하여 보복에 나선다. 이미 서로의 군사를 비교하여 전면전을 불사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가츠요리는 분노를 삭이며 이이를 노려보았지만 이이 또한 눈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가츠요리의 이마에서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려 눈썹을 타고 내려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가츠요리는 분노를 삼킨 채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는 말하였다.

“알겠소이다. 조선이 얼마나 강성한 국가인지 알게 되었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협상이 진전되지 않아 안타깝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오. 우선 큐슈에 임명한 관리들은 명목상의 관직임을 조선에 전해주시오.”

“고견을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아국과 막부가 의견을 일치하여 합의를 보면 좋은 일이겠지만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디 훗날에는 더욱 좋은 의견을 나누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기대한다는 말을 하며 나왔지만 이이는 가슴 속의 화를 누그러트리며 생각을 거듭하였다.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일본의 실세는 다케다 가츠요리지만 감정적으로 따져보니 한구석에는 이상한 기색이 있었다.

정녕 일본의 실세가 저렇게 중언부언을 일삼으며 말을 바꿔댄단 말인가.

다른 이들과 만나 의견을 종합해야 결론이 나오리라.

#작가의 말

일본 : 너희 봉건제지? 참근교대 자주 하고 분봉된 영주들 잘 갈아치우니까 봉건제 맞네. 그러니 세금 절반은 너희 꺼 절반은 우리 꺼.

조선 : 님들 돌았음?

일본 : 우리 군사가…….

조선 : 40만에 2,000척? 내가 스페인 원정대와 동시에 일본이 전면 침공해도 방어는 가능하고 좀 시간 들여서 역공도 가능하다. 우리도 34만에 더 징병하면 숫자 얼마든지 늘어나는데 쫄리면 덤비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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