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91화
2부 17장 7화 군사적 업무(1)
수작은 다 부렸으니 본업으로 돌아갈 시점이다. 제자들이 오려면 한 달은 걸리니 전임자이자 이황의 제자 중 한 명인 구사맹(具思孟)과 인수인계를 계속 진행하였다.
일단 하주도의 상세는 다음과 같다.
“인구는 사십만이 조금 넘어서고 호적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합치면 오십만이 조금 넘을 것이네. 작황이야 언제나 좋은 데다가 식량이 차고 넘치며 병사들은 육천 명에 달하지.”
“그런데 육주성과의 경계를 저렇게 나누다니 아국이 축성한 산성입니까? 육주성 일대를 다녀오면서 열다섯 자(4.5m) 높이의 산성과 길목을 막은 소초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명국이 방비를 행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우리가 담당한다네. 칠십여 년 전 명국의 관리가 상국과 번국은 격식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람들을 차출해 산성을 축조하고 소초를 만들어 경계를 세웠지. 지금 보니 속내가 훤히 보이는 행동이었어.”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매일같이 발전하고 평안한 조선의 하주도와 관리가 엉망이라 서서히 전국시대의 영향을 받은 육주성의 경계를 나눈 것이다.
예상보다 하주도의 인구증가가 큰 것도 육주성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하주도에 기어든 덕분이겠지. 덕분에 하주도가 격리되어 전국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받긴 했나 보다.
구사맹은 한숨을 쉬며 말을 덧붙였다.
“덕분에 왜국이 전란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평온하였지만 요즘 들어 그 평온함도 서서히 깨어지고 있다네. 십여 년 전부터 왜인들이 식량이 부족하면 한겨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하주도에 잠입하는 일이 있다네.”
“설마 내해(세토 내해)를 통과한다는 말인지요? 아무리 왜국에서 하주도까지 잔잔한 바다가 이어져도 해적은 물론이요, 나룻배로는 목숨을 감당하기 힘든 험난한 겨울 바다입니다.”
“험난하여도 한 해에 오백 명 정도는 목숨을 걸고 건너오는 형편일세. 많은 경우에는 이천 명까지 건너오는데 해안 일대를 틀어막을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지. 왜국의 세율은 사 할에 심한 경우 육 할에 달하니 아국의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목숨을 걸고 넘어온다네.”
굶어 죽느니 뭐라도 해보고 죽자고 조선의 영토로 잠입하다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조선의 세율은 기본 2할에 증액까지 합쳐야 2할 5푼, 25%이다. 더군다나 경제 규모와 무역이 발달해 체감 세율이 낮아져 실질적으로 일본의 반도 안 된다.
심지어 명나라 육주성의 세율도 일본보다 적은 3할이니 운이 좋으면 조선으로, 운이 없어도 형편이 넉넉한 명나라로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형편이다.
이외의 상황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식량도 여유로우며 병사도 더 소집할 수 있지만 육천 명만 소집한 뒤 나머지는 훈련만 시키고 해산하는 속오군(束伍軍)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더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쟁 대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왜인들이 난을 일으켜도 정군과 보인을 합쳐 오만 명 정도의 병사를 파견하는 것이 한계이니 큰 염려를 하지 말게. 설령 적이 과감한 수를 써도 보름에 걸쳐 십만 명의 적이 넘어온다 생각하면 된다네.”
임진왜란 규모의 25%로 예측하다니 너무 적다.
내 염려스러운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구사맹은 다른 서류들을 건네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따라서 하주도로 파견된 정군 사천 명과 하주도에서 소집한 정군 육천 명, 여기에 명국 육주성의 병사와 보름 이후 파견될 경상도의 병사 오천 명을 합치면 원군이 올 때까지 방비를 할 수 있을 거라네.”
“하지만 더 많이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아국이 왜국에서 벌어진 각 전쟁 기록으로 추산한 왜국의 병사는 정군이 이십만이요, 보인이 이십 만에 달한다 합니다.”
“대내씨가 아국의 은혜를 입고 있는데 해로로 많은 병사를 보내면 대내씨가 보급을 끊어버리겠지. 육로라면 대내씨가 멸망하겠지만 한 달은 걸릴 것이고 하주도를 공격하면 열흘 이내에 오위가 도착하겠지.”
머릿속에는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파견한 병력은 20만 정유재란 병력은 15만이라는 사실이 나와 있다.
일본이 정말 미쳐서 임진왜란을 다시 일으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상황이라 슬쩍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해로로 이십만에 달하는 군사를 파견하면 어떻게 됩니까? 대내씨도 손을 댈 수 없으며 정군만 따져도 십만 대군이니 이런 상황이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겁니다.”
“더 많이 보낸다? 지금 왜국을 차지한 무전(다케다)가문이 수양제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 보급은 어찌할 것이며 지원은 어찌하겠는가? 실패할 경우 이십 만에 달하는 대군이 바다를 헤엄쳐 도주해야겠군.”
본래 역사에서는 했다니까요? 이렇게 답하면 나를 미친놈으로 볼 것이 분명하니 입을 닫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상에는 미친놈이 많고 그 미친놈이 가끔 성공하면 영웅이 되는 법이다.
구사맹은 내 의견을 아예 묵살하지는 않는지 지도를 여러 장 건네주며 말하였다.
“주상전하께서 이미 자네 휘하의 조방장을 두기로 하였는데 아는 사람이니 염려하지 말게. 그리고 자네는 축성의 달인이자 수성에서 재능을 보이고 있으니 재능을 살리면 충분하겠군. 내가 조사한 일대의 산세라네.”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상세하게 조사하시다니 이렇게 상세한 지도가 있다면 이후의 축성이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대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하주도의 백성들이 편히 지낸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네. 자네의 말대로 왜국이 미쳐서 준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니 내가 도성으로 돌아가 상소는 물론이요, 간언도 아끼지 않을 것이네.”
구사맹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리라.
열흘 뒤, 내가 파견된 지 도합 두 달이 지나자 조정에서도 조전절제사, 흔히 조방장(助防將)이라고 부르는 정3품 무장을 추가로 파견하였다. 그리고 파견된 장수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관찰사 영감 아니십니까. 관찰사께서 어찌하여 항구까지 나와 직급이 낮은 사람을 맞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십 년 만에 뵙게 되었는데 보잘것없는 재주로 출세를 하여 제 품계가 높아졌군요.”
“보잘것없는 재주라 하였습니까. 삼룡대첩이라 하여 아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데 당시의 장계를 보니 저라 하여도 그러한 대승을 거두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줄 차례이지요.”
파양군을 만들 때에 상관이었던 남상정이 내 휘하 조방장으로 부임하였다.
남상정은 무과에 합격한 이후 한창 기세를 올리던 왜구를 상대하였으니 경험 또한 부족함이 없으리라. 더군다나 휘하 병사들이 누구인지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호랑이에게 날개라 하였는데 파견된 병력이 오위에 속한 이들이 아닙니까? 복식과 편제를 보니 용양위(龍驤衛: 경기도 수비군, 기병과 보병의 혼성부대로 총원 2만)에 속한 이들이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왜인들은 제대로 된 기병이 없으니 용양위 육천 명을 파병하였지요. 이중 절반인 삼천에 달하는 기병으로 몰아치면 모조리 도주할 것입니다.”
용양위는 보통 부대가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많은 머릿수로 경기도를 수비하는 병사들이라 여기지만 훈련원 출신 병사가 3할이나 배정되는 부대이다.
더군다나 기병들은 최근 양산된 판금갑옷을 착용하고 마갑까지 갖추고 있어 보총 사격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더라. 기동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보병과 함께 움직이니 큰 손해는 아니다.
일본이 미쳐서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 지원군이 올 때 까지 목숨을 건지는 것도 급하다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공세를 막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남상정은 배에서 차례대로 내리는 용양위 병력을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또한 주상전하께서 대내씨(오우치)에게도 은혜를 내리셨습니다. 왜인들이 집결하여 난을 벌이면 육로로 대내씨를 공격할 것이 분명하니 충무위와 화기도감 출신 삼천 포병(砲兵)들이 대내씨의 영토를 수비할 예정입니다.”
“주상전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으니 감읍할 뿐이군요. 설령 왜인들이 미쳐서 난을 일으켜도 제가 축성한 성채와 용양위가 인솔하는 병력이 합쳐지면 이십 만 대군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기병 장수들 또한 명장의 자질이 넘치는 이들을 정하여 보냈습니다. 거기 신 호군(護軍: 오위의 정4품 관직) 있는가! 관찰사 영감께 인사를 올리게!”
구름 문양이 새겨진 판금 갑주를 입은 장수가 부관과 함께 말에 탄 채 구름처럼 달려와 인사를 올렸다. 신 호군이라 하였는데 눈빛이 형형하고 철사 같은 수염이 보이니 맹장(猛將)의 자질이 엿보였다.
“신 호군 부름을 받고 인사를 올립니다. 장졸들의 인명을 파악하고 아국에서 건너온 말들이 제 주인을 찾게 대열을 갖추게 하였습니다!”
“이 친구가 제가 키우는 인재인 평산 신 씨의 명(名)은 립, 자(字)는 입지 현재는 빠른 승진을 거듭해 호군의 자리에 있는 이입니다. 옆에는 부관인 황 정승의 오대 손 황명보(明甫: 황진의 호)이고, 아직 사과(司果: 정6품 관리)에 불과하지만 자질이 남다르지요.”
평산 신씨의 립이면 임진왜란에서 왜군에게 당한 비운의 장수 신립이라고?
신립이 판금갑주를 철컥거리며 인사를 올리자 나도 인사를 받아들였다. 이런 맹장들과 함께라면 임진왜란을 큐슈에서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보급도 문제이다.
“주상전하께서 하해와 같은 은혜를 내리시니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군사가 너무 많아져서 보급 문제도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명국의 관료들이 부임할 예정인데 이들에게도 인사를 하여야지요.”
“명국이라 하였습니까? 솔직히 말해 척가군이 사라진 명국의 군대는 천병(天兵)은커녕 잡졸보다 못하건만. 그래도 이들이 무너지면 우리가 피해를 입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며칠 뒤 명나라에서 장수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상정과 함께 육주성으로 찾아갔다. 장성을 지나자마자 분위기가 달라졌으니 얼마 전까지 살벌한 변란이 이어진 고장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큐슈를 분할한 육주성은 인구가 조선 추정기준 80만, 명나라 추정기준 45만에 달하였다.
한 개의 성을 구성하기엔 명나라 기준으로 지나치게 적은 인구이며 정상적인 관료 체계를 그대로 붙이면 머리만 비대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명나라에서도 나름 절충안을 내세웠다. 행정을 담당하는 포정사 및 휘하 관료들은 품계를 그대로 유지하되 군사를 담당하는 장수들은 한 품계를 낮게 배분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신립의 말을 들으니 병사들의 수는 처참할 지경이었다.
“듣자 하니 육주성의 군사는 기껏해야 일만 명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절반 이상은 명국에서 파병한 군대이며 나머지 절반은 옛적의 기본(旗本: 하타모토) 출신들이 선별한 사람들이지요.”
“만나보지 않아도 그들의 수준이 눈에 보일 것 같군요. 척가군이 토벌을 행하기 전에는 육주성 일대가 혼란과 내전이 빗발쳤으니 기껏해야 아국의 각 도에 속한 정군(正軍)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겠지요.”
“도성에만 근무하였으니 모를 것입니다. 아국의 각 도에 속한 정군이라 하여도 방비에는 능한 법이지요. 경험이 일천하여 왜인들과 맞서 싸울 수는 없으나 백성을 지키고 시일을 벌 수 있습니다.”
남상정은 지방관으로 부임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니 지방 사정을 잘 알고 있겠지.
나야 매번 오위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만 보았으니 눈이 높아졌지만 남상정은 아닌가 보다.
외적이 전제조건을 다 제외하고 한반도에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한 작전 계획을 본 적이 있다. 각 도의 지방군이 산성과 요새로 백성들을 피난시키고 지연전을 벌인다.
이후 여유 병력을 동원해 적의 후방을 기습하고 군량을 불태우며 시간을 끌다 도성에서 뭉쳐 내려온 최소 삼 만 이상의 오위로 짓누르는 것이 핵심이다.
근데 왜인과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혹여나 왜인들과 맞서 싸운 적이 있습니까? 듣자 하니 아국과 왜국이 전쟁을 벌인 것은 백여 년 전의 일이고 왜구들이 득세한 시기도 삼십 년 전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상삼씨(우에스기)가 있지 않습니까. 왜인 가운데서도 군재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상삼씨에게 오위에 속한 정병만 파견하지 않고 각 도 병사들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하여 병사 일부를 파견하고 실전 같은 훈련을 하였지요.”
이건 몰랐네. 지방군 입장에서는 상관이 불러다 놓고 ‘너 멀리 가서 힘 좀 쓰고 추가급여 좀 받지 않을래?’ 하고 권유하면 따랐으리라. 그리고 일본까지 건너가 실전 같은 훈련을 실시했겠지. 남상정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훈련이라 하여도 칼과 창 대신 목검과 장대를 사용해 부상자가 빗발치고 화포마저도 탄을 넣지 않고 쏘아대는 훈련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회전(會戰)에서는 공세 경험이 적어 이 할의 승률이지만. 방비를 하고 적을 맞이하면 칠 할의 승률이지요.”
“각 도에 속한 이들이 방비를 철저히 하여 적을 맞이하면 왜군을 상대로 능히 칠 할의 승률을 거둔다 하셨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군요. 그럼 오위는 어떻습니까?”
“당연한 결과를 왜 묻고 계십니까? 왜병이 세 배가 많아도 회전에서 능히 상대할 수 있지요. 오위의 보급을 담당하는 충좌위면 몰라도 사실상의 말석인 충무위(忠武衛)조차도 이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오위 출신 병사가 적의 예봉을 꺾은 사이 소지보딘 병사들을 내가 세울 성채에 보내 방비하면 한 달은 너끈히 버티겠지.
심지어 이건 하주도 한정으로 계산한 것이다. 아무리 명나라가 바보라 해도 육주성을 휩쓸고 진격하는 데 보름은 걸린다.
도합 45일을 버티면 조정에서 오위를 파견하고 남을 시간이고 그때부터 반격을 실시할 수 있다.
#작가의 말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곡창을 털고 마을을 약탈해 식량을 벌충하였고 조선은 곡창을 불태워 대응하였습니다.
결국 해로를 통해 식량을 보급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이순신이 부산포 해전을 벌이면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