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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88화 (388/573)

근육조선 388화

2부 17장 4화 신부님 근육 신부님(2)

대결을 주선하였는데 명분은 충분했다.

나는 일 년 정도 가르친 세스페데스가 제대로 된 법도는커녕 사적 제재를 당한 사실을 알고 분노하여 대결을 주선한 것이다.

하지만 공증인은 따로 두어야 하는 법이라 대결 전날 아는 사람을 찾아갔다.

애초에 세스페데스를 내수린까지 몰고 갈 때까지 방임한 성균관 대사성은 제쳐놓고 더욱 윗선의, 나보다 직급이 높은 관료인 성균관 대제학(大提學: 정2품 관직)을 찾아갔는데 아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까지 사헌부에서 일하다 한 달 전에 대제학으로 임명된 정인홍이었다. 그동안 인사는 주고받았지만 이렇게 만난 것은 몇 년 만의 일이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정인홍은 눈썹을 찌푸리며 화를 삭이고 점잖게 말하였다.

“내가 주상전하의 은혜를 받아 대제학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다니. 이번 일을 그대로 두면 성균관의 평판이 땅으로 떨어질 것이네.”

“내암(정인홍의 호) 자네의 말이 옳다네. 내 입신체비를 겨루다 내수린으로 이행하였다면 개입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이번 일은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내가 사헌부에 있었다면 이번 사건에 개입한 유생들을 모조리 처벌할 것이네만 대제학으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벌일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참고 넘어가진 않겠네.”

정인홍은 보통 인물이 아니다.

당장 사헌부에 근무할 당시 그에게 정식 절차를 밟아 탄핵된 관리만 서른 명에 달하고 상인들 가운데 매점매석이나 시세조작을 시도하는 자는 아예 명세부와 합동 조사에 나서서 박살 냈다더라.

과거 시험을 볼 당시에는 내가 진급이 빨랐지만 어느새 나보다 품계가 높아졌으니 능력과 강경함을 가진 인물이다.

내가 꾀를 부려 만든 승근도를 본 정인홍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즐겼던 승근도를 이렇게 변용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하여 보니 당시에 퇴계 대감께서 창안하신 승근도는 어지간한 입신체비사도 고꾸라질 위험이 있었지.”

“그래서 내가 머리를 조금 굴려 변용해 보았네. 순흥군 대감이 변용한 승근도 가운데 현재에도 쓰이는 승근도는 맨몸운동만 넣은 단 한 종류 아니던가.”

내가 한창 이황 아래에서 학문을 배울 때에 이황이 창안한 승근도는 그리 널리 퍼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너무 잔인한 난이도이기 때문이다.

학문으로 명망이 높은 두 거유(巨儒)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대결을 벌일 목적으로 만들었으니 전략 전술도 없이 오로지 입신체비로 승부를 겨룬다.

그래서 아예 방식을 변경했다.

“승근도를 이렇게 변용하다니 자네는 역시 재주가 좋다니까.”

“이래저래 잔꾀만 많은 것 같은데 칭찬해 주어서 참으로 고맙네.”

현대에는 보드게임을 많이 했으니 승근도를 변형하여 그린마블, 자본주의와 투기의 상징인 보드게임을 만들어 버렸다. 자본주의와 투기 대신 근육이 들어찬 규칙이다.

정인홍은 규칙문을 읽어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내가 입신체비를 많이 행할수록 해당 칸의 입신체비가 늘어난다니 이 어찌 악독한 규칙이 아닌가. 어찌 보면 상인들 가운데 투기에 몰두하는 이들과 닮은 점이 있는데.”

“삿된 투기(投機)와 견주지 말게. 투기에 몰두하는 이들은 재물을 쌓아만 뒀다 물품을 매점매석하는 데 몰두하지만 내가 변용한 승근도는 몸을 놀리는 만큼 상대가 몸을 놀리게 만들지.”

자본주의가 아닌 근육주의며 투기가 아닌 입신체비를 기반으로 한 공격이 이 그린마블, 아니, 변형 승근도의 규칙이다.

정인홍은 이어지는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공증인이 되기로 하였고 처절한 입신체비 대결이 시작되었다.

* * *

대결의 명분은 성균관의 기강 해이와 사적 제재에 대한 항의다.

내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세스페데스가 성균관 학생의 신분으로 자신을 탄압한 기수가 높은 학생들에게 대결 의사를 표명하였고 상대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거짓을 논하는 자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서다니! 제가 이번 대결에서 완벽하게 이겨서 성균관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 것입니다.

상대도 꿍꿍이는 있었다.

승근도의 기본 규칙은 각자의 운동능력에 맞는 중량을 설정하는 것이며 세스페데스가 850근을 들든 1,050근을 들든 부상을 회복한 후유증으로 지구력이 떨어졌으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여긴 것이다.

세스페데스의 이야기를 들은 이덕형과 이항복은 당연히 세스페데스의 편이 되었고 상대도 세 명의 사람을 데려왔다.

변형 승근도라 하였는데 내가 만든 승근도에는 40개의 칸이 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번잡해지니 두 명은 앞에 나서서 진행하는 사람, 나머지 한 명은 앞의 두 명이 탈진하면 대신하는 사람으로 정했다.

사람들에게 말과 규칙을 적은 종이를 나눠준 다음 간단히 설명을 시작하였다.

“규칙을 말할 것이네. 변용한 승근도는 놀이판을 십 회 완주하는 쪽이 승리하네. 각 칸은 입신체비장이 있는 고을을 뜻하며. 여기에 도달하면 규정된 입신체비를 행하면 된다네.”

“동지사 영감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소역기를 닮은 작은 말은 무얼 뜻하는 겁니까?”

“만약 해당 입신체비장에 도달하여 입신체비를 추가로 행하면 점거(占居)로 인정받을 수 있다네. 여기서 입신체비를 더 많이 행하면 다음번에 도착한 상대에게 입신체비를 강권(强勸)할 수 있는 법이지.”

“입신체비를 강권한다 하셨습니까? 규정을 보니 입신체비 세 회차(세트)를 행해야 상대방이 두 회차를 행하는군요. 그리고 자신의 편이 점거한 지역에서는 입신체비 면제인데 이게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무슨 쓸모가 있기는 아주 큰 쓸모가 있지.

상대도 머리가 없지는 않으니 확률을 따지기 시작했다. 주사위 두 개를 굴리면 평균 7이 나오고 칸은 40개에 10회를 돌아야 한다.

이론상 57회의 입신체비를 행하면 이길 수 있고 간혹 있는 교지(열쇠)칸을 감안하면 50회 정도의 입신체비를 행하면 된다고 여겼다.

서로 대화를 나누길 운이 아주 좋다면 승리를 거저먹을 수 있다 했지만 이건 운 싸움이 아니다.

원본인 그린마블은 땅을 사고 투자를 하여 건물을 세운다. 해당 땅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자금도 많이 소모되며 다음 방문하는 상대는 세워진 건물만큼 돈을 뱉어내야 한다.

하지만 근육마블은 모두 다 입신체비로 변형되었다.

땅에 도착했다고? 일단 규정된 입신체비를 해야 한다. 땅을 사고 싶다고? 그럼 더욱 많은 입신체비를 해야 한다.

세스페데스는 이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제가 당도한 장소는 원주목입니다. 원주를 점거할 것이니 규정된 복시거(復尸擧: 루마니안 데드리프트)를 다섯 회차 행하겠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기본으로 한 회차를 행하고 점거하는데 다시 한 회차를 행하니 다음 여기에 방문하는 사람은 네 회차의 입신체비를 행해야 한다네.”

각자의 삼대운동에 맞게 정해진 대역기로 복시거를 실시하는 세스페데스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처음 가르쳤을 때에는 입신체비를 피하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지금은 상대를 꺾고 싶어 다섯 회차를 꽉 채워 입신체비를 행하는 모습이다.

반면 상대방은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입신체비를 정해진 횟수만 하면 되는데 몇 배를 해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교지를 받는 칸에 도달하자 기회를 엉뚱하게 사용하였다.

“교지를 받았는데 이번 교지는 조운(漕運)으로 나아가는 것일세. 다음 바퀴를 빨리 돌아야 하니 도성 바로 뒤에 있는 인천 곡창에 나아갈 것이네.”

그린마블의 규칙인 백금열쇠는 교지로 바꿔 만들었는데 이걸 엉뚱하게 사용하였다. 나라면 저걸 동래 곡창에 사용해 다음번의 알짜배기 자리인 진주 입신체비장을 노렸을 것이다.

상대는 전력을 다해 치고 나섰지만 이 승근도를 이기는 법은 따로 있다.

입신체비는 한 회차를 하는 것과 두 회차를 하는 것이 천지 차이이다. 더군다나 내가 정해둔 입신체비 태반이 근육을 여럿 사용하니 연속적으로 행하면 한 부위에 피로가 쌓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초반부터 몸을 놀려 땅을 사야 한다.

이덕형도 눈치가 빠른지라 세스페데스처럼 과감하게 나서지 않고 어느 정도 투자를 하며 진행하였다.

이윽고 4바퀴가 지나갈 무렵부터 세스페데스의 전략이 빛을 발휘하였다.

“창원 대도호부의 입신체비장입니다. 여기는 제 소속의 입신체비장이고 제가 다섯 회차를 행하여 투자하였으니 규정대로면 네 회차의 엄신(俺身: 딥스)을 행하셔야 합니다.”

“자네가 다섯 회차를 행했는데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창원 대도호부 칸에는 세스페데스의 색인 갈색으로 칠해진 소역기 미니어처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자신이 바라지도 않는 엄신을 네 회차나 한 상대는 맥이 빠졌지만 쉴 새도 없이 다음 장소에 걸려 버렸다.

“충주목이라니. 한음(漢陰: 이덕형의 호) 자네도 충주 향교의 권리를 사들였다고?”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저는 네 회차를 행하였으니 어서 상체기(上体起: 윗몸 일으키기)를 세 회차 행하시지요.”

상대는 10바퀴를 먼저 돌면 우승이니 상대는 입신체비를 최소화하고 빨리 치고 나서려 하였다.

하지만 네 바퀴쯤 되니 세스페데스와 이덕형이 구매한 땅이 이미 17칸이나 된다.

당연히 다음 바퀴를 돌 때까지 최소 2회 최대 4회를 꽉꽉 채운 입신체비를 확률적으로 3회 행해야 한다. 단 한 바퀴가 지나갔을 뿐인데 상대방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상대도 바보는 아니니 지친 세스페데스를 공격하기 위해 피로가 쌓이면서도 닥치는 대로 땅을 구매했고 세스페데스도 초반에 몸을 놀린 덕분에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세스페데스는 싱긋 웃으며 교지를 꺼내 들었다.

“제가 지난번에 받은 교지는 마패입니다. 마패는 본디 정해진 장소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여송도로 가겠습니다.”

“여송도라 하였나! 여송도는 세 회차를 쉬는 장소가 아니던가!”

“제가 세 회차를 편히 쉬는 동안 다른 땅을 투자하시면 될 일이 아닙니까.”

내가 현대에서 그린마블을 할 때 자주 썼던 전략이지. 후반부가 되어서 땅 하나에 걸려도 서로 박살 나는 상황이면 여행권을 사용해 무인도에 들어가 상대가 자멸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변형한 승근도는 자본 싸움이 아닌 근력 싸움이 되었지. 세 회차나 편히 쉬고 상대를 탈진시키는 이 악랄한 전략을 어떻게 버티겠는가.

결국 상대는 눈물을 머금고 주사위를 던지더니 조금 더 지나 항복을 선언하였다.

“우리가 졌다네! 고작 두 바퀴만 더 돌면 되는 것을 이렇게 패하다니!”

더 이상 했다가는 피오줌(횡문근융해증)을 쏟을 지경이라 정인홍이 말리려 했는데 상대도 절제할 줄은 알고 있었다.

세스페데스는 승리를 거둬 기쁜 마음이지만 여전히 착잡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다 말하였다.

“이미 대제학 대감께서 제 말에 거짓이 없다 하였습니다. 제 말에 거짓도 없고 대결에서 승리하였으니 일전의 내수린 건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 내가 미안했다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자네는 거짓을 논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세!”

이게 뭔 소리야? 나도 눈을 부라리고 정인홍도 한소리를 하려고 목에 핏대를 세웠는데 상대방은 미리 가져왔는지 봇짐에서 예자문집, 조선에서 번역한 성경을 꺼내며 말하였다.

“자네는 성균관의 유생이기 이전에 서반아의 승려가 아닌가! 내 궁금해서 서반아의 승려가 읽는 예자문집을 보았는데 다른 행적은 다 과장한 것이 있어도 십자가와 관련된 일은 거짓된 말일세!”

“참으로 옳은 말이네. 애초에 삿된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섬기는 자가 성균관에서 유학을 배워 무엇에 쓴단 말인가! 내 시비를 걸어 조용히 내수린으로 쫓아내려 하였던 것이네. 자네가 섬기는 예자문집 자체가 거짓되었으니 이를 어찌할 셈인가!”

이런 추잡한 놈들을 봤나. 애초에 시비를 걸고 상대를 사적으로 제재했으면서 그 명분을 종교적 논리로 삼아? 그럼 유학도 잘못된 것이 많다니까!

사서삼경이니 십삼경을 비롯한 경적에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 많고, 도원군이 남긴 저서에서도 갑골문의 내용과 경전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판국이다.

문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정인홍이 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예자문집 자체가 거짓된 내용이 있다니?”

“대제학 대감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다른 일이야 옛 성현의 행적을 추앙하여 과장한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저는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십자가에 매달려 한나절, 세 시진이나 버틸 수 있단 말입니까!”

문제는 이놈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못을 잡고 매달린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아니, 착각이 아니다! 이놈들 아예 자신들이 패배할 때를 대비해 십자가를 준비해 왔다!

“그러니 자네가 직접 체험해 보게. 예자가 아무리 대단한 자라 하여도 체계적인 입신체비를 배운 자네와 견줄 완력은 아닐 것이네. 가로대에 박힌 못을 잡고 아래에 박힌 못을 발판삼아 세 시진을 버텨보게!”

뼈로 지탱하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잡고 발로 못을 밟아 지탱하라고? 내가 해도 30분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세스페데스가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드리더니 스스로 십자가로 나아간 것이다.

“지금 미쳤나! 세스페데스! 그러다가 사지가 절단 날 것인데 어찌하여 고난을 자처하는가!”

이제는 말릴 방법도 없다. 말이 안 된다면서 거절했으면 모를까 세스페데스가 십자가에 박힌 못을 부여잡고 사력을 다하여 버티니 정인홍도 시간을 재며 정말 세 시진을 버티는지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나자 세스페데스의 사지에서 땀이 샘솟고 팔 근육이 경련하며 이윽고 광배근까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한도에 달한 근육이 경련하며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조만간 힘이 빠져 앞으로 넘어지리라.

아니, 힘이 빠져 넘어지면 차라리 나은 일이다. 억지로 버틴다면 근섬유가 파열되는데 가장 중요한 어깨가 파열될 지경이다.

정인홍은 심각한 표정으로 세스페데스를 지켜보았다.

“자세가 점점 흐트러지고 있어. 억지로 버티다가는 어깨 근육이 모조리 결딴날 것이네. 복잡하지 않은 이두박근이나 대퇴근이야 재활이 가능하지 어깨 근육은 재활이 불가능하다네.”

“세스페데스! 당장 그만두게! 두 각(30분)을 버텼다면 예자의 행적을 증명하지 못하여도 한 명의 입신체비사로서 완성된 사람이 아니겠는가!”

착잡한 심정으로 세스페데스를 지켜보는데 그도 이를 악물고 손에 힘을 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손아귀에서도 피가 새어 나왔다.

이윽고 그의 몸이 거세게 휘청거린 찰나,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처럼 자세가 변하였다.

다들 홀린 눈으로 세스페데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근육의 경련도 멈춘 세스페데스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정말 다섯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밤이 되어 인경(오후 10시의 통행금지 종)이 울리고 나서야 세스페데스는 앞으로 쓰러졌다.

“당장! 당장 의원을 부르게! 이렇게 오래 버텼다면 사지의 근골이 모조리 상했을 것이야!”

통금시간이지만 성균관 대제학의 엄명인지라 의원이 쏜살같이 방문하였다. 한참 동안 세스페데스의 몸을 매만진 의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였다.

“몸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근육을 만져보니 전체적으로 혹사를 당하였지만 근골이 어긋나거나 틀어진 것은 없고 그저 입신체비를 맹렬히 행한 사람 수준이군요.”

“지금 뭐라 하였나? 저 친구는 십자버티기를 세 시진에 조금 못 미치게 행하였는데!”

“영감께서 농이 지나치십니다. 제가 보기에는 보름 정도 정양하면 충분할 것 같군요. 십자버티기 세 시진? 말이 됩니까?”

다음 날 깨어난 세스페데스는 사지에 알이 박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고 당시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엉뚱한 표정으로 나에게 되묻기까지 하였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서애 영감께서 그만두라 하신 것이 마지막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대제학께서 아직도 남아서 저를 보고 계십니까?”

이걸 기적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인체의 신비라 해야 하나. 정인홍은 헛기침을 하며 밖으로 나갔는데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마 세스페데스가 조선에 있는 시일 동안 성경의 내용을 들먹이며 공격할 사람은 없으리라. 이러다가 정말 세스페데스가 조선에 가톨릭의 포교를 성공시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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