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84화 (384/573)

근육조선 384화

2부 16장 9화 오문 해전(2)

거리를 벌리고 포격전을 이어갈 것인가 이대로 백병전에 돌입할 것인가.

생각 같아서는 포격으로 제압하고 싶었지만 정걸의 눈에 쇄탄(사슬탄)을 맞아 찢어진 돛과 저 멀리서 선회하는 스페인 원정대의 멀쩡한 돛을 보았다.

포격전을 벌이면 적에게 손실을 입힐 수 있겠지만 약간의 손실이 전부이다. 돛이 손상된 조선 함대는 계속 추격할 수 없으니 대부분의 적을 놓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적을 몰아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경기수영이 손실을 입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혀 다시는 조선의 영역에서 날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부들이 예비 돛을 꺼내 물을 축이자 정걸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놈들이 백병전을 시도할 것이다! 돌진하는 적에게 포화를 퍼붓고 맞서 싸우도록 하라! 놈들이 다시는 아국을 경시하지 못하도록 엄벌을 내리자! 화공을 실시할지도 모르니 배 전체에 물을 축여라! 고 수사! 준비하게!”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얘들아 도끼 꺼내고 나팔총(권총)에 화약 챙겨라!”

파양군의 전공을 인정받아 수군평사(評事: 정6품 관직)로 임명된 고란은 기함의 백병전 전담 지휘관이었다.

예전이라면 볼 것 없이 밧줄을 타고 적함으로 올라탔겠지만 그도 세월이 지나며 제법 잔꾀가 늘어났다.

“섣불리 들어가지 말고 놈들이 먼저 밧줄을 타고 오면 나팔총으로 쏘아 죽여라! 이런 싸움에서는 먼저 들어오는 놈이 불리한 법이다!”

레판토 해전보다 못하여도 동아시아 역사에 잠시 남을 수전이 막바지로 치달았다. 사략선이 사라지고 세 척의 함선이 침몰한 17척의 원정대 함선과 경기수영의 함선 20척이 최후의 전투를 시작하였다.

사선으로 도열한 조선 수군의 화포가 돌진하는 원정대 함선을 강타하였고 다시 피해가 누적되었다.근접한 상태의 유폭을 염려해 비격진천뢰는 쏘지 못했지만 벽력포의 포격까지 견뎌낸 원정대 함선이 접근했지만 사람이 먼저 뛰어들지 않았다.

“저놈들 뭔 고리를 던지지? 지금이 단옷날이라도 되나?”

“고리에 다가가지 마라! 가급적 고리를 병장기로 걷어내 바다로 되돌려라!”

상대가 사력을 다해 등나무 고리를 던져대니 영문을 알 길이 없었지만 보총 사수들은 끊임없이 총을 쏘며 원정대를 저격하였다.

어느새 경기수영의 함선 갑판에 쌓인 등나무 고리는 날아온 횃불에 맹렬히 타올랐다.

그리스의 불이 겨울바람을 만나자 삽시간에 하늘 높이 타올랐고 백병전에 대비하려고 바닷물을 축여둔 갑판의 물이 증발하며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이 사태를 예측하고 있던 정걸은 즉시 명령을 하달했다.

“역시! 저건 끈끈한 불이다! 어서 물에 적셔둔 돛대로 불을 덮어라!”

아무리 거세게 타오르는 그리스의 불이라도 두꺼운 돛에 물을 축여 덮으면 산소가 고갈되어 진화되는 법이었다.

화공에 실패한 상대가 등선을 시작하자 고란은 이를 악물며 명령을 하달하였다.

“다들 나팔총 쏴! 갑옷 입은 놈은 피해서 쏘라고!”

“놈들도 나팔총을 지참하고 있습니다!”

“그럼 뭐하나! 어차피 비슷한 수준이니 비슷한 무기 쓰겠지! 다들 잘 노려 쏴라!”

공격하는 원정대나 수비 이후 반격에 나서는 조선군이나 처음 사용한 무기는 수석(燧石)식 권총이었다.

선상에서 머스킷을 비롯한 대형 화약병기를 사용하기 힘든 형편이라 나온 고육지책은 서로의 병기를 수렴(收斂)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의 권총은 강선이 없는 납환(蠟丸)을 쏘니 위력이 부족하고 정확도도 매우 부족하였다.

사정거리가 20미터에 불과하니 원정대의 사격에 당한 병사들은 5명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조선군은 납환 대신 산탄을 사용하였다. 유성룡이 처음 이현전에서 일할 당시 개수하였던 산탄 권총은 여전히 연복사에서 대량생산되는 산탄을 품고 있었다.

방아쇠가 당겨지자 격철이 불을 뿜으며 원정대의 몸에 산탄을 선물했다.

해상 전투는 숙련병이라면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갑주를 입지만 숙련되지 않은 이들은 물에 빠질 상황을 염려하여 가급적 가벼운 복장을 패용한다.

이들의 몸에 수십 발의 산탄이 박히자 밧줄에서 미끄러지며 바다로 추락하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저건 대체 뭐야! 놈들이 권총에도 포도탄을 사용한다고?”

“대충 쏴도 맞는 권총이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첫 격돌에서 등선을 시도한 원정대 병사가 60명 가운데 20여 명이 물귀신 신세가 되었다. 적에게 피해를 입혀 잔뜩 기세가 오른 고란이 선두에서 당당하게 전진하는 로베르토와 격돌한 순간 굉음이 울리며 몸이 휘청거렸다.

“이 미친놈이! 너 대체 뭐야!”

“이역만리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명나라의 장수보다 몇 배는 강한 것 같구나!”

고란에게 훈영제식법과 입신체비로 다져진 근육이 있었다면 로베르토에게는 중세 기사의 훈련방식으로 다져진 몸과 실전 경험이 있었다.

고란은 철퇴를 막아내며 다시 도끼를 휘둘렀지만 상대의 몸은 조금만 흔들렸을 뿐 다시 공방이 반복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인의 훈련방식은 흡사하다. 근육량도 중요하지만 몸의 균형과 탄력 그리고 사지 전체의 발달을 요구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리고 수십 년 동안 몸을 단련한 로베르토는 고란보다 근력이 부족할 뿐 나머지는 모두 우위에 있었다.

오히려 고란의 괴력이 아니었다면 경험 미숙으로 몇 합을 버티지도 못하고 로베르토의 철퇴가 고란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을 것이다.

고란이 온 힘을 다하여 도끼를 내료치는 덕분에 자세가 흐트러지며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할 뿐이었다.

“이놈들 정말 강합니다! 세상천지에 이런 놈들이 있다니요!”

“그럼 뭐해! 보총을 쏘고 밀어붙여! 놈들의 수가 더 적으니까 계속 몰아붙이라고! 이 새끼 임 부장님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일단 대열을 유지한 채 싸워! 우리가 유리하다!”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임해도감 병사들도 단독으로는 상대하기 힘들어 수적 우위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에 몰두하는 고란의 옆으로 한 원정대 병사가 권총을 들이댔다.

“고 수사! 위험하네!”

고란의 뒤를 노리는 적에게 난간을 뜯어 던진 정걸은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며 자신도 창대를 들고 적을 후려쳐댔다. 경험과 숙련도로는 원정대가 위이며 근력으로는 경기수영의 병사들이 위이다. 그리고 조선군이 수적으로도 우위였다.

난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병사가 갑주를 패용한 원정대에게 당해 바닥에 자빠졌다.

갑판 뒤로 몰린 병사가 내수린 기술을 걸기 위해 다리를 부여잡는 순간 등골에 칼이 박히며 피를 토하였다.

“썩을 놈아! 나만 죽겠냐! 너도 죽어!”

“이 미친놈이! 이거 놓지 못해!”

등골에 칼이 쑤셔 박힌 상황에서도 상대의 허리를 부여잡은 임해도감 병사는 몸을 젖혀 시퍼런 바다를 향해 뛰어들더니 핏물이 솟구쳐 오르고 임해도감 병사만 올라왔다.

갑주를 착용한 상대이니 아마 물속 깊이 가라앉아 영원히 뭍으로 나오지 못하리라.

임해도감 병사 한 명이 죽을 때 원정대 한 명이 죽는 상황이었다. 수적 우위와 지원 사격을 바탕으로 조선군은 차츰 우위를 점하였다.

더군다나 백병전 와중에도 서로 포격을 교환하니 스페인 선박들은 더욱 큰 피해를 입으며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조선의 함선이 더 많아졌기에 양면으로 포위된 원정대 전선들은 아예 나포당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경기수영이 유리해지는 전황이지만 정걸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몰두하였다.

“대체 뭔 생각으로 무모한 전투를 벌였단 말인가. 비격진천뢰는 유폭을 염려하여 사용하지 못해도 나머지 화포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거늘. 이놈! 내가 생각을 하는 데 방해하지 마라!”

창대를 휘둘러 상대를 날려버린 정걸이 전세를 확인하였다.

백병전도 서서히 승패가 갈리기 시작해 오로지 로베르토를 비롯한 몰타 기사단 출신 덕분에 전선이 유지되는 형편이었다.

“저도 도와드리게아아악!”

“감히 우리의 싸움에 끼어들다니! 네놈이 미쳤나 보구나!”

온몸이 용수철로 이루어진 듯 고란의 공격을 받아낸 직후 옆에서 달려드는 임해도감 병사를 허리만 돌려 제압한 로베르토는 슬쩍 기함 산 마르티노를 바라보다 다시 고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 종일 싸울 수 있겠지만 퇴각할 때가 되었다.

“지금껏 수많은 상대와 싸워보았다네. 안면만 보면 서른 초반 같은데 이렇게 대단한 장수를 만나다니. 안타깝지만 자네를 죽여야 내가 퇴각할 수 있겠어.”

“뭐라 씨불이는 거야, 이 얼굴 찌그러진 놈이.”

거대한 근육을 쉴 새 없이 놀린 고란의 피로가 점차 누적되었다. 근육량이 많으면 완력은 강하지만 소모되는 열량도 많다.

상대의 입에서 단내가 피어오르고 식은땀이 솟구치자 로베르토는 다시 철퇴를 휘둘렀다.

“얼굴 찌그러진 놈이 날 꼭 죽여야겠냐! 이런 썩을! 갑옷도 하필 쇄자갑이라서 문제지!”

철퇴가 지나간 여파만으로 콧대에서 뚝 소리가 나며 코피가 치솟고 입술이 찢어졌다.

이런 무인이면 철퇴를 수만 번을 휘둘렀을 것이며 지금까지 죽인 사람만 따져도 수백 명에 달하겠지.

순간 다리의 힘이 풀린 고란에게 어디선가 호통이 들려왔다.

‘고 수사! 입신체비의 근본은 하체이며 훈영제식의 근본도 하체이네! 자네가 하체에 매진하지 않으면 적도를 만나 쓰러질 수밖에 없다네. 강철과 같은 허벅지는 입신체비의 상징일세!’

“알고 있습니다! 이 우후님!”

수백 번은 들은 이순신의 목소리에 절로 몸을 추켜세우며 다시 철퇴를 막아낸 고란은 이를 악물고 로베르토를 노려보았다.

저놈의 철퇴에 맞으면 단번에 두개골이 박살 나고 늑골이 으스러지며 내장이 터지리라.

하지만 상대가 수만 번이나 철퇴를 휘둘렀다면 이쪽은 공좌를 수만 번이나 하였다.

참으로 미친 생각이지만 고란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두 도끼를 몸 안쪽으로 모았다.

지금까지 상체와 하체를 번갈아가며 방어했다면 이제는 하체를 포기할 차례이다. 고란의 도끼가 번뜩이며 빛을 발하였고 로베르토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철퇴를 휘둘렀다.

“이럴 줄 알았네. 그럼 잘…….”

로베르토는 기계적으로 방패로 오른손의 도끼를, 철퇴로 왼손의 도끼를 쳐 낸 다음 고란의 텅 빈 허벅지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언제나와 같이 고란은 대퇴골이 부러지며 땅바닥을 구를 거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고란의 텅 빈 허벅지는 철퇴에 맞아도 피가 솟구치며 부풀어 올랐을 뿐,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다시 철퇴를 휘두르려던 로베르토의 팔에 고란의 도끼가 내리 찍혔다.

“으어어어어어어어억!”

“봤느냐! 내 허벅지가 네놈의 철퇴보다 강하다! 근육은 강철보다 강하단 말이다!”

고란도 다음 도끼를 휘두르지 못하고 허벅지 근육이 파열된 충격으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근육을 내주고 팔을 거둬갔으니 이 대결은 명백히 고란의 승리이다.

로베르토는 망연자실하게 잘린 팔을 보다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작전은 성공하였다! 신속히 퇴각하라!”

“퇴각! 퇴각이다! 어서 배로 돌아가라!”

썰물이 빠지듯 배로 돌아가는 원정대를 보며 정걸은 전열을 재정비한 후 포격으로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리려 하였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닿지 않은 돛대에서는 이미 스페인 원정대의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몰타 기사단이 그리스의 불을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군선을 상대할 때에는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갑판에 그리스의 불을 붙인다.

하지만 무역선을 상대할 때에는 다르다.

무역선을 약탈하려면 기동성을 꺾어야 하니 갈고리에 그리스의 불을 적신 밧줄을 엮고 던져 돛을 불태우는 방법을 택하였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런 갈고리 여러 개가 경기수영 함선의 돛대에 걸렸다.

스페인이 백병전을 벌인 이유는 적과 싸워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위해 도주할 목적이었다.

날아오는 불화살을 확인한 정걸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나도 퇴물이 다 되었군. 놈들이 도주를 택했음을 망각하고 맞서 싸울 것이라 여겼다니. 놈들에게 필요한 건 적셔둔 돛이 마르는 것 하나였어.”

백병전이 진행되는 동안 바닷바람에 돛이 말라 버렸고 때가 되자 불을 붙이라는 신호가 전달되었다. 돛대가 삽시간에 불길에 휩쓸리자 원정대는 사력을 다해 퇴각하였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모든 수부들은 돛대의 화재를 진압하라!”

갑판에 발생한 화재는 물에 적신 돛대로 진화할 수 있지만 돛대의 화재는 진화할 방법이 없다.

사력을 다해 물을 부어도 돛이 타오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으니 진압된 이후 예비 돛을 달아야 하리라.

만신창이가 된 원정대 함선 7척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정걸은 이를 꽉 깨물며 먼바다를 노려보았다.

40척에 달하는 원정대와 사략선단을 상대로 13척을 격파하고 20척 이상이 조만간 격파당하겠지만 정걸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적을 몰살시킬 기회를 놓쳤다.

“놈들의 심계(心計)에 당하여 진멸시킬 기회를 놓치다니. 갑판에 불을 놓아 실패한 전략이라 여겼지만 돛대에 다시 사용할 줄을 예측하지 못하다니 참으로 한심하군.”

은퇴를 생각한 정걸이지만 고개를 저었다.

조만간 자신의 후임자로 부임할 대양도 수영의 지휘관인 이윤범(이개의 증손자)은 조만간 파직당할 여송도 수영의 지휘관을 대신하기 위해 여송에 머물러야 하리라.

허벅지를 부여잡은 채 아직도 바닥을 뒹구는 고란을 물끄러미 바라본 정걸은 치료를 지시하고 생각에 몰두하였다.

조만간 여송도 수영의 사람들이 줄줄이 파직당할 것이니 새로운 인재가 수군을 개선해야 하리라.

“여해라는 친구가 고 수사를 저렇게 훌륭한 장수로 육성하였다던가. 그 친구가 공을 세웠다면 전라수사로 천거해야겠어.”

불에 그슬린 돛대가 온전히 정비되고 정걸은 다시 항해에 나섰다.

부상병을 후송한 다음에는 사방으로 흩어진 적의 잔당을 추격해야 하리라.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포르투갈의 식민지이자 동군연합이 된 스페인의 식민지인 인도 고아로 귀환한 스페인 원정대는 목숨을 건졌음에 안도하며 두 달 넘게 정비에 몰두하였다.

말라카 해협을 건너 인도로 돌아온 사략선은 세 척에 불과하였으며 모두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나마 얻은 소득이라고는 명나라 수부 출신 신자 칠십여 명이 전부였다. 이들은 본래 이백여 명이었지만 전투에 휩쓸리며 명을 달리해 칠십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역만리로 끌려가게 생긴 명나라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린 마태오 리치는 눈을 부라리며 한 팔이 잘려 침대에서 아직도 정양하는 로베르토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결국 조선과 척을 지게 되었군요. 은자를 조금 얻어오긴 했지만 박살 난 함선 가격을 생각하면 이득은커녕 손해가 아닙니까?”

“내가 얼굴을 들고 할 말이 없소. 펠리페 2세 전하께서 내 목을 치신다 하여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오.”

원정 비용과 급료, 그리고 함선을 다시 만들 비용까지 감안하면 이번 원정은 가까스로 이득과 손실의 분기점에 서 있었다.

문제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조선은 손실을 감수하고서 모든 인삼 거래를 중단하고 스페인을 비롯한 서양의 상인들을 모조리 추방하였다.

고아의 총독부에는 수십 명의 상인들이 몰려와 고함을 질러댔다.

“당장 총독님과 면담하고 싶소이다! 조선의 영토인 여송에서 추방당했는데 뭐라 하시는지 아십니까? 앞으로 인삼 거래를 끊겠다고 하였습니다! 총독 양반 빨리 나오라고! 이게 뭔 짓이야!”

“이런 빌어먹을! 대체 어떤 미치광이가 조선의 동맹국을 마음대로 약탈했소? 조선 수군에게 사로잡혀서 속옷까지 수색당하고 매몰차게 추방당했으니 손해를 어찌 메꾸려는 거요!”

로베르토를 비롯한 원정대 지휘부 모두가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쉬었다.

오로지 이 사태의 피해자인 마태오 리치만이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말하였다.

“목이라 하셨습니까? 당장 가산을 탕진하더라도 상인들 손해액부터 메꾸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가 나라가 파산할 지경입니다.”

조선 입장에서는 200만 냥의 손해지만 이를 수입하여 유럽에 공급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3배의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 교역 중단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오. 조선도 손해가 크면 무역을 재개할 것이고 아마 내년쯤이면…….”

“명나라의 인구가 일억 명이 넘는데 인두세를 한 사람당 십 분의 일 냥만 거둬도 은자 일천만 냥이 되겠지요. 동맹국인데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졸지에 두 개의 거대한 국가를 적으로 돌린 스페인 원정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귀국하였다.

이후 마드리드의 궁정에는 진노한 펠리페 2세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