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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82화 (382/573)

근육조선 382화

2부 16장 7화 장강의 승리

단 한 번의 승리이지만 육상의 전세는 완벽하게 뒤집혔다.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며 등자룡과 조선 관리 유성룡이 육지로 진격하던 해적들을 격멸하였다는 소문은 남경 일대에 퍼져 나갔다.

물론 해적들도 바보는 아니니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도주하면서 삼만 대군은 없고 오로지 삼천 명의 병력에 농락당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원군이 나타났다.

“제가 병력을 동원하지 않고 촌락을 지킨 이유는 도적들이 남경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우회할 것이라 잘못 예측하였기 때문입니다. 지휘동지께 임하였으면 더욱 쉽게…….”

“웃기지 마시오! 도적들이 명백히 남경으로 향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아예 방비를 포기하고 자신의 살 길만 찾으려 사병을 동원한 것이 분명하구려.”

“참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지휘동지께 힘을 보태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승리를 거둔 다음 날부터 남경 병력을 사병처럼 동원하였던 인근의 권세가에서 장정들을 보내오기 시작하였다. 애초에 남경을 포기했었는데 희망이 생기니 달라붙는 추잡한 몰골이라니.

친왕부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 하급 관리들이 머무는 관청에서 이들을 접대 아닌 접대를 받은 등자룡은 삽시간에 쌓인 일만 냥가량의 은자를 보고 혀를 내두르다 명령을 내렸다.

“일단 이 은자들을 휘하 병졸들에게 배분하고 명을 달리한 병졸들의 유가족에게는 세 배를 지급하도록. 그나저나 조선에서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시오?”

“당연하지만 단순 가담자는 삭탈파직 후 재산몰수에 주동자는 교형(絞刑)입니다. 이를 도운 이들조차 형무소에서 평생을 썩어야 하지요.”

“나도 그렇게 처벌하면 참으로 좋겠소. 아니, 능지형 정도로 형을 올렸으면 좋겠구려.”

어차피 부패할 대로 부패한 명나라이니 처벌이 내려와도 뇌물을 먹이고 ‘어쩔 수 없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목숨을 부지하겠지. 한숨이 나왔지만 나머지 상황은 정말 좋다.

남경을 빠져나가던 백성들도 자리로 돌아왔으며 해적들의 잔당은 사병을 동원한 세도가에서 알아서 처리하고 있다.

오늘이 11월 15일이니 앞으로 닷새 정도 뒤에 남경을 공격할 수군을 상대하는 것이 전부이다.

병력이 삼천 명에서 일만 명으로 늘어났으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등자룡도 평상시와 같은 방비를 취하라 하였고 그저 척가군 출신 장교들을 배치하여 화포를 잔뜩 먹여줄 준비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해적들은 닷새가 지난 11월 20일에도 보이지 않았다. 듣자 하니 아직도 약탈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던데 뭘 어쩌겠는가.

대신 세도가에서 잡아 온 포로를 확인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 있었다.

“이야 반갑구만. 자네 명줄이 참 긴걸? 이미 절반에 달하는 해적들이 추포당하거나 목숨을 잃었는데 여기서 보게 되다니.”

“저…… 저는 어르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나는 자네 말을 똑똑히 기억하네. 목책도 제대로 만들지 못해? 폭약도 제대로 매설하지 못해? 화포는 뒀다 국을 끓여 먹어?”

적의 진군이 늦어지니 차츰 군기가 흐트러지고 병사들이 돌아가려 하였다. 한심한 몰골이지만 사람은 본래 즐길 거리가 있어야 모이는 법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음 날 점심 무렵 내수린장을 만들고 살인, 아니, 처벌용 내수린을 시작하였다.

해적은 내 근육을 보더니 제발 살려달라고 빌어대는데 살려주긴 할 거다.

“보아라! 이것이 내 장기인 오성와락(파이브스타 프로그 스플래쉬)이다!”

사람 두 명 높이에서 복근으로 상대의 등판을 내리찍으니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만 어찌어찌 버티긴 했다.

게거품을 물고 사지가 꺾인 해적에게 응급처치를 시키고 승리의 흑룡세, 아니, 소룡세를 취하니 사람이 급하게 달려왔다.

“나리! 자…… 장강에서 함선이 몰려옵니다! 여든 척에 달하는 함선입니다!”

“그런데 왜 보고가 없었나! 이런 망할!”

“그것이 전부 조선수군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뭐라 했지? 왜 조선수군이 여기에 있지? 지금쯤 장강을 거슬러 올라오느라 진땀 뺄 사람들 아닌가?

내가 흑룡세를 취하자 남경 사람들도 멋대로 흑룡세를 따라 하며 승리를 축하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 * *

유성룡의 권유로 피난길에 올랐던 진해대군은 북경이 아닌 장강 하구에 있었다. 자신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유성룡이 목숨을 걸고 남경을 지키려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하였다.

해적의 진격을 피하고 정보를 수집한 진해대군은 마침내 11월 15일 저녁 충청수영의 병력을 만날 수 있었다.

충청수군절도사인 최호는 화들짝 놀라 인사를 올렸다.

“대군 어른! 이런 위험한 장소에 어찌하여 계십니까!”

“내가 위험하겠소? 남경에서 일만 대군을 상대로 싸움을 벌일 서애가 더 위험할 거요. 그나저나 예상보다 빨리 오셨구려! 내열여드레(음력 11월 18일) 정도에 도착할 것이라 여겼지만 오늘은 보름이오. 어떻게 사흘이나 빠르게 당도하셨소?”

“천만다행으로 훈련 준비에 몰두하는데 소식이 전해졌기에 바로 출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수사(이순신)가 철저히 준비를 한 덕분에 판옥선마저도 끌고 올 수 있었지요.”

이순신이 겸손하게 인사를 올리자 그의 호가 여해라는 것을 듣게 된 진해대군이 손을 맞잡았다. 그의 스승인 유성룡이 아끼는 친구이니 부족한 점은 없으리라.

진해대군은 이미 수집한 자료를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참으로 대단하구려. 그나저나 내가 수집한 정보를 보시구려. 일단 장강으로 북상한 해적선은 이백여 척이고 남쪽은 인근 어부들에게 은자를 주고 정탐을 실시하게 하였소.”

지도 위에 적을 표시한 나무토막이 놓였다.

해적들은 이미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닷새가 지났으며 아마 11월 21일경에는 남경에 당도할 예정이라 하였다. 그리고 남쪽 항주에는 거대한 나무토막이 단 하나만 놓였다.

“해적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적도들도 있소. 남쪽으로 이틀 거리에 서반아 해적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보선함대를 격파하고 항주(항저우)를 함락시켰다 하였소.”

“하지만 적선의 수량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부 여럿을 보냈지만 한 척만 살아 돌아왔소. 상륙을 마쳤는데도 수병(水兵)들이 남아 보이는 모든 함선에 화포를 쏘아댄다 하였소. 알아낸 사실은 적들의 함선 가운데 여덟 척이 순주선 급의 거함이라는 점이며 최소 스무 척에 달한다는 점이오.”

처음에는 항주의 서반아 해적을 공격할 마음이었던 최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섣불리 공격하였다간 역으로 몰살당할 상황이며 이순신도 여기에 한마디를 보탰다.

“보통 해적들이 아닙니다. 거대한 보선함대를 손실 없이 격파하였다 하니 충청수영의 전력을 다하여도 승산이 없을 겁니다. 일전에 시험해 보았는데 순주선과 같은 함선은 비격진천뢰를 대여섯 발 맞아도 버틸 수 있더군요.”

“그렇지, 우리가 섣불리 공격하였다간 코끼리 수십 마리를 공격한 산군 스무 마리의 꼴이 될 것이네. 처음이야 소득을 거둘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적의 덩치에 밀리겠지.”

정3품의 수군절도사 최호가 자신보다 두 품계 낮은 수군우후 이순신에게 질문 겸 의견을 묻는 기묘한 상황이었지만 최호는 이미 이순신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다.

병사들이 그의 아래에서 일 년만 훈련하여도 숙련병이 되며, 수군 경력이 길지 않음에도 군무에 손색이 없으니 오로지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며칠 동안의 강행군과 정보수집으로 지친 진해대군이 잠을 청하려 들어가자 이순신은 머나먼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싸울 수는 있어도 먼저 공격을 퍼부을 상대는 아니다.

“만에 하나 아군의 수군이 모두 진멸(盡滅)하고 적도가 도성을 엄습할 상황이라면 적의 진로를 막고 사력을 다해 싸워 격퇴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옳은 말일세. 며칠 뒤에는 경기수영에서 원군을 보내 적도들과 해전을 벌이겠지. 지금 우리는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구원에 나서야 하지만 시일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군.”

판옥선의 가장 큰 문제는 범선이 아닌 갤리선이라는 점이다.

이순신의 휘하 장졸들의 비상식적인 능력 덕분에 예정보다 이틀이나 빨리 도착하였지만 이들도 사람이니 피로가 쌓였다.

판옥선의 주 동력은 사람이 노를 젓는 것이다. 아무리 훈련된 이순신 휘하의 격꾼(노를 젓는 사람)이라도 4시진, 약 8시간을 항해하면 체력이 고갈된다.

최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순신을 보며 권고하였다.

“남경까지의 거리는 일천 리(400㎞)에 달한다네. 바다라면 나흘 만에 도달할 거리지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해적 잔당을 소탕하는 것을 감안하면 열흘 가까이 걸리겠지. 그러니 자네는 하구에 남아 있게.”

“제 계산이 틀리지 않다면 엿새, 조금만 더 재촉하면 닷새 만에 남경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오로지 판옥선으로 구성된 선단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이순신의 말을 들은 최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능력이 좋다지만 이렇게 과도한 자신감을 가진다면 장수로서 성공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순신은 반드시 적이 남경에 닿기 전에 격멸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자신이 늦으면 벗인 유성룡이 해를 입을 수 있지 않은가.

이순신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본래 장강은 명국의 장강수군이 치안을 담당하였습니다. 이 장강수군이 도적들에 밀려 사방으로 흩어졌겠지만 자신들의 고향을 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장강수군을 다시 소집하고 장구를 갖추는 데 시일이 걸릴 것이 아닌가.”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됩니다. 훈련을 마치고 본영으로 돌아와 격꾼들을 교대시키듯 장강에 위치한 각 포구의 해적을 격멸하고 이들을 격꾼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지금 뭐라 했나? 장강수군을 격꾼으로 사용해?”

최호가 경기수영절도사 정걸 휘하에서 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판옥선을 처음 만든 정걸은 보인이 아닌 정군(正軍: 실전을 치르는 병사)을 격꾼으로 사용하면 힘이 좋으니 전투력이 더욱 올라간다고 주장했었다.

예상대로 힘이 좋아 배의 속도가 빨라지지만 격꾼을 대신해 노를 저은 병사들은 팔 힘이 빠져 탈진 상태가 되었으니 오히려 손해가 컸고 정걸은 인생 최대의 실수라며 병졸들에게 사과한 전적이 있다.

하지만 이순신은 지도에 손을 짚어가며 설명하였다.

“진군하며 분열한 적을 모조리 분쇄하며 지정된 장소의 곡창을 탈환합니다. 바로 격꾼들을 뭍으로 내려 다른 병졸들을 소집하게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음 곡창으로 향하는 겁니다. 이를 반복하면 남경까지 닷새 이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명국의 병졸들도 해적에 대한 원한이 깊으니 원하는 대로 징집하여 격꾼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자네의 계획의 문제가 뭔지 아나? 단 한 번이라도 틀어지면 어떻게 되겠나?”

강을 거슬러 올라 자신이 원하는 장소의 적을 격퇴하고 바로 입항하여 보급과 인원 교대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향한다.

말은 쉽지만 틀어진 순간 이순신의 선단은 위기에 처한다.

만약 계산이 어긋나 적을 격퇴하지 못한다면? 격꾼들의 체력을 감안하지 못하고 지나친 항해를 이어간다면? 격꾼들이 탈진하면 최소 몇 시진 동안 판옥선은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

바다라면 흐름이 적은 곳에 정선하면 충분하지만 강 위에서는 닻을 내리고 떠내려가지 않게 버텨야 한다. 그리고 닻을 내려 정박한 배는 포위 공격과 화공에 지극히 취약하다.

병사들의 피로 또한 문제이다. 적절한 휴식과 전투를 반복하지 않으면 정작 이겨야 할 적을 상대로 패퇴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순신은 작년에 남경에 단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이니 지형을 모를 것이다.

최호는 고개를 저으며 만류하였다.

“혹여나 자네가 장강 일대의 수류를 완벽히 파악한 지도를 가졌거나 남경까지 여러 번 오가며 이를 체득하였다면 모를 일이지만 작년에 단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가 아닌가.”

“이미 수류와 각 곡창의 위치를 적은 지도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측량을 행하지 못하여 부족한 점은 있지만 그리 큰 오차는 없을 것입니다.”

이순신의 지도를 확인한 최호는 혀를 내두르며 상세하게 묘사된 장강 유역을 보았지만 이순신은 오히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아 측량을 실시하거나 경험이 더 쌓이고 난 뒤 지도를 알려드리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지도를 완성하지 못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론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적을 삽시간에 격멸하여 병사들의 호응을 얻어내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투로 손해를 입지 않아야 남경까지 닷새 이내에 진격할 수 있으리라.

최호 자신이라면? 사람이니 실수를 저지를 것이고 단 한 번의 실수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오리라.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는 언제나 모범을 보이고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자이다.

최호는 이순신을 믿으며 한 가지 조언을 더하였다.

“하지만 자네에게 물자가 부족할 수도 있다네. 자네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보급이 필요할 것이니 내 함선에 비축된 화약과 포탄을 어부를 통하여 전달하도록 하겠네. 나는 자네가 남겨둔 장강수군을 재소집하여 도주한 적도를 추포하도록 하지.”

“소관(小官)의 뜻을 받아들여 주시니 사력을 다해 적도들을 모조리 도륙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적들의 함선은 이백여 척이 넘으니 이들이 모조리 결집하면 자네에게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어. 혹여나 일이 틀어지면 돌이킬 수 없으니 곡창에 정박해 있게나.”

최호의 허락을 받은 이순신은 바로 명나라 병사들을 소집해 선창 아래에서 격군으로 사용하였다. 병장기도 없이 허드렛일이나 하는 잡부로 취급당하였지만 이미 패배한 이들이니 딱히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이순신의 함대는 전력을 다하여 세 시진 가량을 항해해 목표한 첫 곡창에 닿았다.

약탈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던 해적들은 난데없는 판옥선의 등장에 질겁하며 승선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다.

“놈들이 약탈에 여념이 없으니 포위하여 격멸할 것이다! 대장선과 일 번부터 사 번 함선은 전방으로 나아가 퇴로를 막고 오 번 함선부터는 자리에 멈추어 화포를 쏘아라!”

“배를 세차게 모십시오! 전력을 다하여 짓쳐 나가야 합니다!”

“사람 다루기를 무엇으로 아는 거요! 이런 망할! 이러다 팔이 떨어져 죽겠소!”

장강 하구에서 소집한 명나라 병사들은 뭐라 욕설을 퍼부을 힘도 없이 전력을 다하여 노를 저었다.

명나라로 치면 정6품(명나라의 품계는 4단계 높다)에 불과한 하급 장수이지만 지휘관이니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염병할! 이래서 이기기야 하겠어!”

“이기고 있는데요.”

해적들이 일제 포화에 두들겨 맞고 제대로 빠져나오지도 못하자 명나라 병사들이 환호성을 울렸다. 그들의 상관은 부패한 사람이라 도주하였지만 병사들은 인근에 가족을 둔 이들이 차고 넘쳤다. 적의 기세가 꺾이자 이순신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적의 대장선을 격멸하기 위하여 등선 전투를 벌일 것이니 노를 전력으로 젓고 충격에 대비하라! 격꾼들은 충격이 가해진 후 노를 거꾸로 저어라!”

“이런 망할! 뭔 당파야! 저 사람 지금 정신이 나갔나?”

장강수군이 남중국해의 해적들에게 괜히 밀려난 것이 아니다. 적은 보선함대에 억눌려 지내는 동안 육전(陸戰)으로 인근의 마을을 약탈했으니 근접전 실력 하나만큼은 왜구와 대등하거나 더 뛰어났다.

결국 백병전이 벌어진 순간 장강수군은 철저히 격멸 당했다.

하지만 이순신의 장기인 화포사격으로 제압 후 등선 전투가 실시되었다.

이미 사방에서 쏟아진 화포에 두들겨 맞은 적은 사방으로 포화를 쏟아대며 돌진하는 판옥선을 보자 질겁하여 장강으로 뛰어들었다.

“멀리 있는 배에는 불화살을 쏘아라! 물자가 부족할지도 모르니 비격진천뢰와 신기전은 아껴두어라! 놈들을 격멸하는 데 당파와 날붙이면 충분할 것이다!”

양 떼 사이로 파고든 사자처럼 열 척의 판옥선은 스무 척의 해적선을 삽시간에 격퇴하였다.

불타오르는 배 안에 쌓인 곡식이 아까운 상황이지만 지금은 남경의 구원이 먼저이다.

“장군님! 저 멀리 곡창에서 장정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원병(援兵)으로 알고 접근한 것이 분명합니다!”

“적의 간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격꾼 아니 명국의 병사들을 내려 이들의 신상명세를 확인하게 하고 배에 탑승시키도록. 부상자를 탈환한 곡창에서 쉬게 하고 바로 다음 장소로 향한다!”

그다음 곡창에서도 스무 척의 적선을 격파한 이순신의 함대는 사람을 갈아치우고 장강으로 다시 나아갔지만 이순신은 지도와 지형을 주시하더니 난데없는 명령을 내렸다.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저 하중도(河中島: 하천 안의 섬) 뒤에는 매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이니 밤이 되면 매복한 해적들이 기습할 것이 분명하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혹여나 점괘를 보실 줄 압니까?”

“지리와 경험에 의거한 것이 전부이네. 일전에 남경으로 향할 때에 인근의 시야가 좁아져서 함선이 부딪힌 사례를 보았기에 하는 말이지. 배를 천천히 정선하는 척 적을 방심시켰다가 단번에 치고 나아가라!”

아니나 다를까.

하중도의 그늘 아래에 숨어 있던 해적들은 기습을 꾀하려다 역으로 기습을 당하며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장강의 물귀신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이순신이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자네들은 왜 여기에 왔는가? 이 함선들은 다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저희도 수군입니다! 조선 수군이 강대하다 하지만 장강수군 또한 강의 지리를 잘 아니 함께 진군하려 찾아왔습니다!”

고작 다섯 척에 불과한 함선이 합류하였지만 장강 하구부터 제해권을 되찾기 시작한 효과가 속속들이 드러났다. 심지어 밤이 되어 항구에 정박한 이순신의 함선에 물자가 보급되었다.

“어차피 높으신 양반들이 다 도주하였는데 창고에 쌓인 물자는 알아서 소비해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부디 남경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처음에는 열 척으로 시작한 선단은 열다섯 척, 서른 척, 마흔 척이 되며 점점 거대한 선단이 되었다. 이순신의 압도적인 진군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 여긴 장강수군도 사력을 다해 진군을 거듭했다.

명나라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 격꾼이 되었기에 이순신의 함대는 거대한 전단(戰團)이 되었다. 심지어 후방 보급에 힘쓰는 최호의 본대를 나룻배가 모여 억지로 본대에 합류시킬 지경이었다.

이윽고 남경에 닿았을 무렵 팔십 척의 선단을 이끄는 이순신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해적의 우두머리인 임아봉(리마홍)은 오십 척의 해적선을 동원하여 일전을 벌였으나 무의미한 저항에 불과하였다.

더 많은 함선에 철저하게 격멸당한 임아봉의 시체는 장강을 떠다니다 조선 수군에게 잡혀 그 자리에서 목이 베어졌고 이순신은 수급을 장대에 꽂으라 명령하였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고이 보내줄 것이나 놈은 도적의 수뇌이니 반드시 명국 황상에게 올려 죄과를 물을 것이다!”

“지금 남경에서 내려온 척후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애라는 분과 등자룡이라는 분이 남경을 수호하였다 합니다! 이미 전쟁은 끝났습니다!”

도도하게 흐르는 장강을 바라보던 이순신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문관에 불과한 친구는 사력을 다하여 훨씬 불리한 싸움을 이겨낸 것이다.

“참으로…… 참으로 완벽한 승리일세! 벗과 함께 가장 중요한 남경을 수호하였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장졸들은 승리의 자세를 준비하라!”

남경의 백성들이 승리를 축하하며 유성룡을 따라 흑룡세를 취한 것과 동시에 이순신 휘하의 장졸들도 승리의 흑룡세를 취하였다.

훗날 이 전투는 육지의 쌍룡과 바다의 흑룡이 힘을 합친 삼룡의 전투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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