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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79화 (379/573)

근육조선 379화

2부 16장 4화 남만인의 난(2)

로베르토가 휘어진 철퇴를 바닥에 내던지고 다른 철퇴를 손에 쥔 직후 다른 보선 한 척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굉음이 솟구쳤다.

모든 병사들이 직무를 내팽개치고 바다로 뛰어들어 불씨가 마음대로 번져나갔으리라.

“저게 다 노획품인데. 가만 보니 설계는 형편없지만 함선 하나는 휘황찬란하군.”

무덤덤하게 철퇴를 휘둘러 발악하는 병사의 어깨를 짓뭉갠 로베르토는 금으로 장식된 만력제의 필적이 담긴 현판과 은과 금이 상감된 기함의 화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로베르토의 눈에 여기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보였다.

“십자가가 아닌가! 당장 함선 내부를 수색하라! 여기에 십자가가 있다!”

“네? 놈들이 형제들을 핍박하여 십자가를 약탈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나무 십자가가 무엇이 귀하다고 약탈했겠는가! 분명 세례를 받은 교인들이 이 배에 있었다네. 오! 세상에 주 예수시어 내가 형제들을 핍박했단 말입니까!”

병사들이 사방을 수색하였고 로베르토의 눈이 바다로 향했다. 병사가 아닌 수부(水夫)들은 이미 함선을 포기하고 바다로 뛰어들었으나 열대 바다의 상어들이 이들을 노리고 몰려들었다.

한 수부는 나무토막을 잡고 필사적으로 발을 놀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동료가 상어에게 끌려가 고깃덩어리로 변했으니 콧물까지 흘려대며 정신없이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려댔다.

“야소(耶蘇: 예수)님! 부처님! 미륵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 이대로 죽기 싫습니다!”

거대한 상어의 지느러미가 넘실거리며 수부에게 다가오자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십자가를 머리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정말 구원이 찾아왔다.

“형제여! 염려하지 말게!”

널브러져 있던 창을 쥔 로베르토가 전력을 다하여 바다로 뛰어들었다.

갑주를 입은 채 갑판에서 뛰어드는 모습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으나 창은 정확히 상어의 등골을 꿰뚫고 핏물이 넘쳐났다.

갑주를 입었음에도 그의 몸이 솟구쳐 수부의 몸을 지탱하였다.

“형제여! 참으로 고난이 많았네! 이 십자가는 대체 누구에게서 받았는가!”

구원이긴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세상만사를 판단하고 매우 과격하며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구원이었다.

약탈에서 인명 구조와 잔당 처리로 업무를 변경한 원정대는 사람들을 배 위로 끌어올려 분류하였다.

“자네는 교인이로군. 아 그리고 네놈은 교인이 아니니 노예로 팔아넘기면 되겠어. 고아로 보내서 알아서 잘 팔아넘기도록 하게.”

평상시에는 천대받던 수부이지만 세스페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형제라 불리고 병사들은 노예 신세가 되어 밧줄에 묶인 채 선창에 대충 처박혔다.

문제는 기껏 구해낸 수부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은 명나라와 교역을 할 적에 조선의 땅인 대양도(대만)와 여송(필리핀)에서 조선의 중개로 거래를 하니 스페인 상인들도 필담이 전부일 뿐 발음을 모르고 있었다.

“말이 통한다면 이 형제들에게 제대로 된 사정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데 답답한 노릇이군.”

“형제들 가운데 몇 명은 조선말을 조금은 알긴 하지만 대화가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보선 가운데 한 척이 손상을 견디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가운데 더듬더듬 대화가 이어졌다.

이어진 대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조선에서 방문한 세스페데스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이들이고 지금은 남경이라는 고장에서 머물고 있지만 마테오 신부가 이상하다고?”

“뭐가 이상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한다더군요. 어딘가 부족한 점도 있는 것 같고 미사도 집전하지 못하게 한답니다.”

수부들은 자신들과 일을 함께 하였으며 든든한 근육으로 선교 활동을 벌인 세스페데스가 정상적인 신부이며 마테오 리치는 몸이 둔하고 게으른 신부라 여겼기에 이상하고 행동이 굼뜨다고 말하였다.

부사령관인 베르나르는 한참을 고민하다 의견을 제시하였다.

“일단 명이라는 나라는 카타이(Catai: 거란에서 비롯된 북중국 일대의 명칭)의 후신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왔다는 남경이라는 지역은 만지(Mangi: 남중국 일대의 명칭)의 영주가 거주하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타이는 박해를 행하지 않지만 남경을 수도로 삼은 만지의 영주는 우리를 먼저 공격한 것은 물론이요, 박해를 행한다는 말인가?”

명나라와 조선은 중앙집권제를 이룩하였지만 일본과 서양은 아니었다. 스페인만 하여도 카스티야를 비롯한 수많은 지방의 영주들이 상호 계약관계로 얽힌 영지의 집합체였다.

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중국은 수많은 영주가 계약관계로 얽힌 영지의 집합체였다.

결국 이번 사태를 남중국의 영주 가운데 한 명이 신부를 핍박하고 자신들에게 공격을 퍼부은 상황이라 해석하였다.

“당장 공격을 실시해야 하네. 카타이 전체를 상대할 수 없지만 만지에 세력을 둔 영주 휘하의 해군이 실책을 저질렀다면 카타이도 이를 용납할 것이 아닌가.”

로베르토는 탁자를 내리치더니 콧김을 내뿜으며 일어섰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카타이, 즉 명나라는 올바른 판단을 하였지만 만지의 영주는 잘못된 뜻을 품었다.

이미 영주 휘하의 해군을 물리쳤으니 전면전을 벌여도 승산이 있으리라. 과격한 로베르토와 달리 베르나르는 한참을 더 생각하더니 현실성 있는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어도 문제입니다. 당장의 싸움이야 원정대가 이긴다 하여도 증원군은 어찌 막아냅니까? 또한 보급도 문제입니다. 가느다란 실과 같은 보급선을 믿느니 차라리 돌아가 보고를 올리는 것이 옳을 일입니다.”

“보급이 문제라 하였는가? 저 수많은 배를 보게나.”

보선 함대의 최후를 목격한 인근의 호족들은 이미 줄을 스페인으로 갈아타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논리는 참으로 단순했다. 명나라에 굴종하자 조선이 적극적 공세를 중단했으니 명나라가 조선보다 강하다 여겼다.

하지만 스페인 원정대가 명나라의 보선 함대를 격파하였으니 가장 강하다 여겼다. 이제 살길은 개종을 택하여 스페인의 휘하에 들어가는 길 하나였고 이를 충실히 따랐다.

로베르토는 자신들을 환영하는 호족들을 보며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저들의 힘을 빌리면 만지 일대까지 나아가기에 충분하지. 또한 만지를 차지한 영주가 실정을 저질렀다면 우리가 방문하자마자 영주를 몰아내려는 이들이 빗발칠 것일세.”

“만지 남부까지 나아가서 호응이 있으면 원정을 계속하고. 호응이 없다면 원정을 중단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어차피 형제들을 고향인 만지로 돌려보내야 하니 좋은 방법이군요.”

“그리고 만지의 영주에게 또 다른 수군이 있을지도 모르네. 그들이 우리의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이 거대한 함선 네 척을 선두에 세워 진군하면 좋겠군.”

어느새 몰려온 사략선단이 십여 척이 추가되고 다시 민다나오 섬의 호족이 보낸 백여 척의 보급선이 추가된 스페인 원정대는 진로를 돌려 남중국해 일대로 향하였다.

* * *

황대중의 보고를 받은 조선의 여송도 수영은 나름 사태의 파악에 나섰다. 함선을 보내 정찰을 실시하고 주요 함대를 보내 주요 해로의 관측이 이어졌다.

하지만 주요 함대의 지휘관인 이각(李珏)은 평상시 업무는 잘 행했으나 급한 일에 직면하면 일을 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이각이 이끄는 여송도 수영 함대가 마침내 스페인 원정대를 발견하였다.

“북서쪽에 함선이 보입니다! 돛대를 보니 보선 다섯 척인데 나머지 한 척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 척의 돛은 형태가 변했는데요?”

먼 거리에서 관측하면 가장 큰 함선의 돛대만 보이는 법이었다. 거함 산 마르티노와 보선의 돛대만 관측한 조선의 병사는 다섯 척의 보선이 남아 있으리라 짐작하였다.

아직 거리가 멀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보선이 기함이니 명백한 명나라의 승리이리라. 자신이 접근하면 조선의 지원이 없었다고 갖은 떼를 쓰며 행패를 부리리라.

수군 병사들의 입에서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보선 함대는 근처에만 접근해도 행패를 부리고 항의 서한을 보내며 항구에서 억지로 보급품을 뜯어가려 윽박지르는 일이 잦았다.

부관은 이각에게 추가 보고를 올렸다.

“황 사과님이 보고한 대로면 서반아인들이 보선 함대와 전투를 벌였다 하더군요. 전투가 벌어진 뒤에 흔적을 확인했는데 이미 시신은 상어 밥이 되었고 함선의 파편이 즐비하답니다.”

“호족들이 우리 함선을 몰아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통에 제대로 접근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명나라 함대가 승리했다는 뜻이잖아? 또 유가 놈(유정)은 발광을 하겠군. 그놈의 머리통을 쪼개 버릴 기회라도 생기면 좋으련만.”

지나치게 행패를 부리면 근육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엄연한 동맹국이니 아예 접근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 여겼다.

귀찮은 일을 피하려는 마음을 먹은 이각은 짜증을 내며 명령을 내렸다.

“장계는 보선 함대가 격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올리지. 한 척 정도야 애초에 썩어들어 가던 함선이니 화약이 유폭해서 바다에 가라앉았을지도 모르고 나머지 한 척은 화공을 당해 돛대를 임시로 만들었겠군.”

유정이 올바로 행동했다면 격전 끝에 승리를 거둔 보선 함대를 축하하려 조선 함대가 방문했을 것이며 조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스페인 원정대는 승리를 축하하고 돌아갔으리라.

하지만 유정의 행패 덕분에 스페인 원정대는 남중국해까지 무혈 입성하였다.

지나친 원정으로 모두가 지쳐가는 와중에 함대는 해안 인근에 정박하여 상황을 확인하였다.

“딱히 해군이 없군요. 아마 이 함선이 만지의 영주가 가진 해군 전체임이 분명합니다.”

“잘된 일이긴 하지만…… 저 작은 함선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기세를 보니 한낱 상인이나 어부는 아닌 것 같은데 이쪽으로 다가오는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승선을 허가하세”

본래 역사에서 남중국해 일대에는 명나라 출신 해적이 들끓었다. 본래 역사에서 약탈을 감행하던 해적이지만 역사가 변하여 보선 함대가 생겨났다.

이를 당해낼 방법이 없는 남중국해의 해적들은 살기 위해 굴종을 택하였다.

이후 함대 지휘관이 된 유정은 해적을 압박하여 뇌물을 바치게 하였다. 이들은 보선 함대를 보자 반사적으로 뇌물을 바치기 위해 바다로 나섰다.

평소와 다른 장소에 정박하였지만 해적들은 언제나와 같이 굽실거리며 보선에 승선하였다.

“유정 어르신께서 이번에는 지나치게 피로하셨나 봅니다. 하지만 소인 임아봉(林阿鳳: 중국의 해적 리마홍)은 먼 곳에 계셔도 언제나 상납을…… 잠깐! 너희들 누구야!”

평상시보다 먼바다에 정박한 기함에 승선하여 뇌물을 바치려던 임아봉은 로베르토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넘어졌다.

지휘관인 유정은 없고 얼굴이 일그러진 서양인만 있었다.

하지만 로베르토의 눈은 그의 품에서 굴러 나온 은자로 향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만지(남경)의 영주는 탐욕스러운 자이기에 살길이 막막한 백성들을 쥐어짜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 우리와 함께 만지를 토벌하여 자네들의 은원을 풀 길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네.”

“지금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유정 어르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신들은 누굽니까?”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남경, 만지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서양인들은 분명 명나라의 남경을 노리고 있으리라.

보선 함대를 물리친 실력자인 데다 위용이 넘치는 수십 척의 함선이 함께 하니 이번 기회를 잡아야 하리라.

“저 임아봉! 어르신을 대형(大兄: 따꺼)으로 모시고 평생을 함께하겠습니다!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 지긋지긋한 찰나였습니다! 형제들을 모두 소집하여 함께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 머나먼 이국에서 형제를 청하는 이가 있으니 자네에게도 세례를 내려야겠군. 베르나르 자네 보았나? 만지의 영주가 백성들을 핍박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세!”

“제가 보기에는 해적 놈들이 분명하지만 우리를 돕겠다고 나섰으니 상관은 없겠지요. 이정도면 어지간한 전대 두 개에 해당되는 전력이니 충분히 공격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보선 함대에게 억눌려 울분만 삭이고 있던 남중국해의 해적들이 모조리 뛰쳐나왔다.

삽시간에 집결한 백여 척의 함선들이 합류하자 남경 출신의 수부들은 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감을 알아차리고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 애썼다.

그저 고향 근처로 돌아가려는 생각만 하였지만 이제는 정말 남경이 불타오를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남중국해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해적들이 늘어나서 대만 근처까지 도달했을 때는 이미 휘하 해적선만 백오십 척에 달하였다.

이각의 실책으로 보선 함대의 패배와 스페인 원정대의 진군을 뒤늦게 알아차린 조선에도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팽호(澎湖)열도에 있는 조선의 성채에서는 병사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런 미친! 저게 뭐야! 보선이 왜 해적 놈들이랑 한패가 되었어! 그리고 저건 서역인들의 함선이잖아? 저걸 어떻게 감당하라고!”

“함대 규모만 따져도 경기수영 전체의 전력을 동원해야 할 겁니다! 대체 남방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서둘러 장계를 올립시다!”

남중국해 해안 일대의 도시가 실시간으로 약탈당하고 원정대가 진군하길 반복하였다.

보선에 탑승한 수부들은 어쩔 수 없이 불타오르는 도시들을 외면하였지만 차마 남경까지 진군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대신 엉뚱한 항구를 공격하길 원하며 그나마 큰 항구인 항주(杭州: 항저우)로 향하였다.

작은 나룻배에 오른 로베르토는 망원경으로 저 멀리 있는 항주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 고장이 남경인가? 정녕 만지의 수도란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대형은 지금 속고 계십니다. 여기는 남경이 아니고 남동쪽의 도시인 항주입니다.”

로베르토가 수부를 노려보자 수부의 바지가 오줌으로 젖어 들며 다리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임아봉은 천연덕스럽게 수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안내하였습니다. 병력이 지나치게 많으면 장강 하구에서 가로막히는 법이지요. 병력을 반으로 나눠 대형께서 육로로 진격하시고. 저희는 장강을 거슬러 남경으로 진격하면 될 일이지요.”

“동방의 형제들과는 통하는 바가 있다니까. 무리한 명령을 내려도 이를 잘 해석하여 올바른 명령으로 바꾸니 참으로 훌륭하군. 그럼 만지의 거대한 함선으로 항주라는 도시를 함락시키겠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보선의 기항지는 항주가 아닙니다. 그저 보급만 행한다더군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항주 먼바다에 정박한 보선에는 차곡차곡 바닷물에 젖은 화약과 마른 장작 그리고 머나먼 유럽부터 챙겨온 그리스의 불이 실렸다.

다음 날 새벽이 밝자마자 항주의 해안요새에는 소동이 일어났다. 먼바다에서 보선 단 한 척이 위용을 뽐내며 전속력으로 진입하려 하였다.

평소와 다른 움직임에 항주의 병사들은 의문을 품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보선 여러 척도 아니고 한 척만 보낸다고? 혹시 함선이 크게 손상이라도 입었나? 여기서는 기껏해야 두어 척만 수리할 수 있으니 본 함대는 바다에 있나.”

“속력을 줄이지 않는데 이대로 계속 항해하면 그대로 항구에 틀어박히는 꼴 아니야?”

“당장 깃발을 휘둘러 신호를 보내! 정지하라고 신호를 보내라고! 그리고 사람 보내서 배를 빨리 세워! 유정 어르신이 미치셨나 보다!”

아무리 느린 보선이라지만 전속력을 내면 10㎞ 정도의 속력은 낼 수 있으며 평범한 함선들로는 거대한 보선을 세울 방법조차 마땅하지 않았다.

배 위로 기어오른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돛을 감고 닻을 내렸지만 보선은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뿐 여전히 항구를 향해 움직였다.

충격에 대비하려 선체를 부여잡은 병사들은 손에 묻은 기름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당장 선창(船倉)으로 내려가! 당장!”

진득한 기름 냄새와 물에 젖은 화약 특유의 찌릿한 냄새가 맴도는 선창에 뛰어든 병사들은 저 구석에서 타들어 가는 여러 개의 양초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보선이 항구 시설을 부수며 뭍으로 올라왔다. 선체가 거세게 흔들리며 양초가 받침에서 떨어져 내렸고 절대 꺼지지 않는 그리스의 불이 타들어 가며 장작과 물에 젖은 화약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삼십 리(12㎞) 밖에서 들릴 정도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작가의 말

현재 상황은 말 그대로 망했습니다…….

대양도에 도착한 경기수영 함대가 보급과 원정준비를 다시 마치며 조선 본토에 있는 수영에서 병력을 지원하려면 11월 17일경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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