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76화 (376/573)

근육조선 376화

2부 16장 1화 - 무역 체질 개선

이지함의 장례는 정말 소박하게 치러졌다.

한때 관료였던 사람이니 충분한 토지도 있을 것이며 내가 알려준 피뢰침을 응용해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을 만들어 팔아치운 사람의 장례치고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지함의 장남인 이산두가 말하기를 아버지는 재산이 쌓이면 빈민들을 구휼하는 데 사용하였으니 가까스로 양반 체면을 세울 정도의 재산만 남겼다더라.

이지함의 묘는 유언대로 충청남도 보령까지 내려가 조상들이 묻힌 선산에 안장하기로 하였다.

조정에서는 관련된 사람들에게 보름 동안 장례에 참가하고 돌아오라며 휴가를 내렸고, 나도 이 휴가를 받아 묘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벗이지만 참으로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던 사람이야. 성룡이 너를 그렇게나 아끼던 친구였는데 이렇게 명을 달리하다니 안타까울 뿐이구나.”

아버지도 이미 환갑을 넘기셔서 슬슬 관절염이 시작되어 나를 비롯한 제자와 친인척들이 삽을 들고 구덩이를 만들었다.

본래 조선이면 인부들을 동원할 테지만 이미 근육화가 진행된 조선에서는 스스로 몸을 놀리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다섯 자의 구덩이가 생겨나고 이지함의 관이 안장되며 다시 흙이 덮어졌다. 삼년상의 예식은 없지만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이산두가 마지막 흙을 덮었고 이지함이 묻힐 봉분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인부들이 주변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있었다.

“이보게나, 지금 왜 주변의 나무를 베어내는가? 나무가 지나치게 적으면 산사태가 일어나 묘소 전체가 휩쓸려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인데.”

“선친(先親: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대추나무에 벼락을 내리게 하여 괴롭혔으니 자신의 묘소 주변에 벼락이 지나간다고 하셨네. 높은 것은 벼락을 불러오니 그런 해괴한 일을 막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 보니 벼락이 내리친다가 아니고 벼락이 지나간다는 점괘였다. 주변 땅을 보니 둔덕이 많고 보령 시내까지 뚫려 있어 송전탑이 세워지기 좋은 위치가 아닌가.

고압송전탑이라면 벼락이 지나간다 해도 무방하니 여기서도 점괘를 적중시켰단 말인가. 지나치게 많은 나무를 베어내면 송전탑은커녕 뭣도 생기지 않을 것 같아 키가 큰 나무만 베어내라 지시를 변경하고 돌아왔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후 이지함의 집에는 위패가 들어왔고, 마당에 삼년상을 대신해 장남 이산두가 일 년 동안 생활할 움막이 세워졌다.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정리하고 조정에 출석하니 정말 보기 싫은 얼굴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거 서애 아닌가? 지난 육 년 동안 요람을 만들 자료를 수집하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네! 덕분에 근손실이 심각하고 사지를 온전히 놀릴 수 없게 되었어!”

정철이 육 년 만에 돌아왔다.

내가 은근슬쩍 전국을 떠돌며 온갖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다고 백과사전을 편찬하기를 추천했었다. 사람은 졸렬한데 글솜씨는 대단했기에 추천한 일이지만 생각 외로 이 일에 몰두했나 보다.

하지만 정철의 평판이 좋았다면 사람을 여럿 붙여 신속하게 자료를 수집했겠지만 정철은 졸렬하다 소문이 자자하다. 홍문관에서도 문제 사원을 한직에 배치하는 심정으로 정철과 한석봉 단둘만 발령시켰고 이제야 돌아왔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나 보군. 그나저나 자네 섭생이 부족하여 뱃살이 조금 늘어난 것 같은데.”

“섭생이 부족하여 뱃살이 늘어났다 하였는가? 우스운 소리는 하지도 말게! 내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뱃살이 늘어난다네!”

“자연스럽다 하면 나는 뭔가. 아직도 뱃살이 없이 뱃가죽이 복근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데.”

육 년 만에 만난 정철의 몸은 그냥 술에 전 중년 남성의 몸이 되었다. 조정에 있을 적에야 체면을 차리려고 입신체비를 하여 삼대 500근 턱걸이만 하였지만 지방까지 내려가니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에는 입신체비의 정체가 보디빌딩임을 알고 체면치레를 할 정도만 하고 넘기려 하였는데 잘못하면 정철처럼 변할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스승인 이황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으며 정철의 투정 아닌 투정을 들었다.

“……참으로 험난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관동(關東: 영동)을 지나다니며 온갖 고생을 하였는데 덕분에 산골에서 나는 기화요초의 이름조차 알 수 있었지.”

“혹여나 관동별곡(關東別曲)이라고 시구라도 만들지 않았는가?”

“관동별곡이라. 아직 시구의 이름을 정하지 못하였는데 참으로 잘된 일이야!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였는지 알겠나?”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네. 북방의 산이 험하다 하지만 관동 일대도 수많은 고개가 있으니 자네의 발이 부르트고 허벅지가 끓는 듯 아파왔겠군.”

이렇게 말했지만 별 고생도 아니다. 북방은 기껏해야 경원 일대에만 올라가고 하르빈을 비롯한 최북단에는 올라가지 않았지? 애초에 정철이 올라왔다면 북인들을 통해 소식이 전해졌겠지만 그런 적은 없다.

투정을 부리는 정철을 마지못해 위로하니 괜히 화가 올라왔다. 내심 좀 반성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어 나와 뜻을 함께할 것이라 여겼는데 변한 것이 없다니.

하지만 정철은 갑자기 손가락을 들이대면서 놀란 눈빛으로 말하였다.

“육 년 전에는 항시 여유를 가지고 모든 일을 대범하게 처리하던 사람인데 이제는 왜인지 몰라도 승냥이 같은 눈빛일세! 혹여나 집안에 우환이라도 있는가?”

“승냥이 같은 눈빛이라 하였는가. 내가 사람을 잘 대하고 언제나 업무를 떠맡아 행했지만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나도 내 뜻을 내세울 때가 되었다네.”

이제는 정국을 주도할 준비를 하고 계파를 만들어 정치에 뛰어들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정철은 영 못 쓸 사람이 아니다. 정철같이 인격이 황폐한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니 인격이 얼마나 대단하냐며 칭송받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니 대화가 너무 길어졌어! 나는 요람 편찬을 위하여 홍문관으로 돌아가 보겠네!”

성격은 안 좋아도 눈치 한번 빠르다. 순식간에 홍문관에 들어간 정철의 뒤를 쫓아가기도 뭣하니 신도시 계획을 위해 설립된 임시 부서인 변계도감(邊界都監)으로 돌아가 보고서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였다.

신도시야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눈으로는 장계를 보고 손으로는 장계와 관련된 대책을 하나씩 써 내려가면서 조선의 체질 개선을 위한 대책을 생각하였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서류를 훑어보니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들어왔다.

“일단 명나라에 의존하는 성향이 너무 심하잖아. 인구가 12배에 달하고 관리의 부패가 심해 마음먹은 대로 이득을 챙길 수 있어도 명나라에 위기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건데.”

조선 정부의 재정수입 가운데 2할인 160만 냥은 명나라와의 무역 수익이며 총생산 가운데 4할인 1,000만 냥가량이 연관되어 있다.

더군다나 여기서 끝이 아니고 기근이 발생하면 명나라에서 곡식을 들여올 준비까지 마친 상태이다.

경제학을 많이 배우지 않았지만 의존도가 너무 높다. 이 시대에 체계적인 무역 계획이나 수입 조절 정책이 있을 이유도 없으므로, 말 그대로 시세 붕괴만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한정 물건을 팔아치우니 이 의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만약 명나라에 내란이 벌어지면 귀중품의 수출이 막힐 것이다. 하다못해 척계광이 막아냈던 왜구처럼 남경 일대가 외부의 세력에게 공격당해 불에 활활 타버릴지도 모른다.

명나라는 지금 제대로 된 군대가 20만 명에 불과하다던가.

“남경이 불길에 휩싸이면 그냥 끝장인데. 당장 700만 냥의 총생산이 감소하고 여기서 얻어낼 수 있는 관세가 사라지면 긴축재정도 아니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할 거야. 잘못하면 무기를 팔아치울지도 모르지.”

그나마 변란이면 무기를 팔아서 버틸 수 있지만 아예 남경이 홀라당 타버리면 무역이 중단되며 재정이 붕괴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명나라가 공격당하면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서 조선이 나서야 한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관세가 생겨나고 백 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국경 통관 과정을 책임진다며 관세를 일괄 부가하였는데 이제는 온전히 정착했지.

“문종 시절에 2할의 관세를 일괄 적용한 덕분에 재정은 건실해졌지만 이건 일괄 적용이니까 말이 안 되는데. 쌀도 2할이고 귀금속도 2할이면 너무 엉성한 것 아니야? 어차피 일괄 적용이면 무조건 중국과 거래를 하겠지.”

이래저래 체질 개선을 위해 생각을 거듭하니 조선의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났다. 지금까지야 그러려니 하는 마음에 넘겼던 일이지만 이제는 마냥 두고 볼 수 없는 문제점이 아니겠는가.

* * *

석 달이 흘러 9월 초가 되었다. 이미 조선의 체질을 개선할 정치 세력을 만들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나이가 많은 관료들 가운데 내 의견을 경청해 줄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업무에 치어 살았으며 관성대로 조선을 움직여오다 간혹 체계를 조금 정돈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내가 할 일은 장기 계획이다.

당연히 찾을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자네가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몇 달 동안 업무에만 몰두한다고 들었는데 업무를 진행하며 명국과의 교역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였다니,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토정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남긴 유고(遺稿: 죽는 사람이 남긴 원고)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읽고 바로 태웠지만 마음속 깊이 스미는 것이 있었지요.”

이조판서로 여전히 재직 중인 이이를 찾아가는 것 외에 뚜렷한 방법이 있던가.

스승이자 친구이며 조만간 내가 세울 당파의 대표가 될 이이는 내가 가져온 장계를 읽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명국과의 교역을 축소할 방안이라니. 참으로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군.”

“하지만 명국에 변란이 생기면 당장 재정이 위험하며 백성들이 도탄에 빠질 지경입니다. 명국의 변고가 일어날 적마다 아국의 병사들이 나서서 맞서 싸워야 합니까? 다급히 일어난 사태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한도가 있습니다.”

“자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네. 나도 관료로 일하면서 명국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행태를 좋지 않게 여겼지만 자네처럼 대책을 세운 적은 없었지.”

이이는 한참 동안 내가 계획한 안건을 읽어보더니 머릿속으로 계산에 몰두하였다. 그러더니 관세 조절 안건을 보고 설명이 필요했는지 내가 작성한 표를 지목하며 말하였다.

“명국에서 물건을 들여올 적의 관세를 높이는 연유는 알 수 있다네. 명국의 물산이 차고 넘치니 이에 의존하는 상인들을 다른 국가로 돌릴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 기준이 무엇인가?”

“명국에서 구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높은 관세를 부과하여 명국이 아닌 타국과의 교역을 촉진하려 합니다. 당장 수우각(물소뿔)만 하여도 대양도와 대월(베트남)에서 구할 수 있지만 값싼 명국 물건을 찾지 않습니까.”

관세를 높인다고 대놓고 높이겠는가. 명나라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줄일 생각으로 제안한 정책이니 다른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물자 위주로 관세를 높인다.

대표적인 물건이 물소뿔이다. 여전히 각궁을 사용하는 조선에서는 물소뿔을 남경에서 수입하였고, 정작 물소만 기르는 여송(필리핀)은 물소뿔이 남아서 군관들이 헐값에 사들여 가외 수익을 만들고 또 다른 물소를 기르는 국가인 베트남에서 들여오지도 않는다.

상인들이 좀 반발하겠지만 적응이 끝나면 알아서 다른 나라로 무역을 실시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명나라와의 무역 비중이 감소하리라. 처음에야 진통이 좀 있겠지만 그게 대수인가.

이이는 충분히 이해하긴 했지만 내가 작성한 표가 조금 부족했는지 깃펜을 들어 항목을 조금씩 수정하였다. 전반적인 세율 조정을 실시하려 했지만 이이도 지식이 많지는 않았는지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탁상공론(卓上空論)이 될지도 모르는 제안일세. 지나치게 세율이 높다면 부패한 명국 관리들을 통해 밀무역이 성행할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답이 하나밖에 없다네.”

“혹시 아국이 기르고 있는 명나라 관료들을 이용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닐세. 아국이 명국의 정계에 관료들을 양성하여 명국의 국론을 움직일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정국을 주도할 수준은 아니라네. 지금 보니 대다수의 물산이 남경 일대에서 유통되는 물건이로군.”

일본이나 베트남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의 관세를 명나라 한정으로 상승시키는 것이 계획의 골자이다. 북경에 다녀오는 황해도 일대의 상인이 아닌, 경상도와 전라도의 상인을 대상으로 삼은 정책이지.

이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나를 지그시 보며 말하였다.

“아국의 상인이야 큰 문제는 없다네. 하지만 수입이 줄어들어 타격을 입을 명국에 주청사(奏請使: 외교를 위해 보내는 임시 사신)를 보낼 수밖에 없지. 그러느니 누군가가 남경에 나가 친왕(親王: 황실 종친 중에 임명된 왕)과 담판을 지어야겠지.”

“제가 나서겠습니다. 애초에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저이니 제가 나설 수밖에 없지요.”

“자네가 나선다 하였는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아니, 생각해 보니 자네도 조만간 당상관의 자리에 오를 사람이고 명국에서 명성이 자자하니 나서봄 직하지.”

매는 나서서 맞는 것이 덜 아픈 법이며 말은 나서서 해야 제대로 통하는 법이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이이는 내가 제시한 장계를 조금 고쳐 쓰고는 십조 관원 가운데 외조와 호조를 소집하여 논의를 진행하였다.

내가 세운 조선 체질 개선 계획 모두를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나름 수면 위로 올라온 문제이니 조정에서도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결국 명목상의 대표자인 진해대군을 시작으로 남경에서 무역 조정을 진행할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런 세상에! 산천을 떠돌다 가까스로 도성에 돌아왔는데 왜 자네가 나를 남경으로 보내려 하는가! 어찌하여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가! 삭신이 쑤셔서 도저히 갈 수 없다네!”

이 계획에 의외로 필요한 사람이 있었으니 정철이었다.

성품이야 개판이지만 이미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각종 물산에 대한 정보를 축적한 관료이고 시세 조사도 마친 사람이 아니겠는가.

물론 정철을 위해 귀띔은 해뒀다.

“자네가 그동안 고생이 많아서 남경에서 상인들에게 접대를 받으며 진귀한 물산을 섭렵할 기회를 마련하였다네. 내가 마련한 기회인데 어찌 이를 마다하는가.”

정철을 다루는 방식은 술을 마실 기회를 주는 것이지.

처음에는 온갖 변명을 들먹이던 정철이지만 내 말이 나오자마자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정리하더니 일행에 합류하려 용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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