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75화 (375/573)

근육조선 375화

2부 15장 7화 근육조선을 대조선으로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않은 덕분에 그리 많은 사실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또 지식이 늘어나다니.

“혹여나 스페인이 조선과 전면전을 벌일지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성모독을 당하지 않고서야 이 머나먼 동방까지 함대를 보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예전에 세조대왕(홍위)께서 오사만국을 벌할 적에 함대를 파견한 적이 있다 하였소. 하지만 첩목아국(티무르 제국)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은자 이백만 냥에 달하는 막대한 전비를 소모하였지. 그런 전비로 얻을 이득이 대체 뭐요?”

“위신이 바닥에 떨어져 이를 복구할 경우라면 이득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당시의 일은 사서를 읽어서 알고 있다. 서신을 위조하고 기만을 행한 오스만 제국에 분노한 조선이 함대를 파견해 홍해 일대를 들쑤시고 일전을 벌였다던가.

그렇게 화끈하게 오스만 제국을 두드린 덕분에 십 년 동안 비축한 재정이 바닥났으며 이후 십 년 동안 긴축재정을 운영했다더라.

군주의 위신은 중요하지만 돈은 더 중요한 법이다.

지금 조선이 콧바람만 내뿜어도 동방 선교는 물거품이 될 것이요, 조선 수군과 상대할 원정대를 낸다 치면 재정이 고갈될 것이다.

그렇다고 조선이 신성모독을 하겠는가? 다른 나라의 풍습은 거절할지언정 무례를 범하는 경우는 없고 무례한 일을 해도 국가가 공식으로 사과한다.

괜한 소리를 하는 세스페데스를 위해 가볍게 내수린을 시작하였다.

* * *

수원에 정착한 백성들의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1580년 5월이 되어 직사각형으로 정돈된 논을 배정받고 모내기가 한창이라 중간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이산해가 달려왔다. 여기는 궁궐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계(鵝溪: 이산해의 호) 자네 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기는! 숙부님께서 쓰러지셨네!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네!”

아버지도 이제 환갑이 넘어 관직에서 진작 은퇴하셨고 아버지의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가고 있었다. 간혹 장례에 참석하여 위로하여도 생판 남의 일이라 생각했었지.

하지만 이지함은 내가 조선시대에 떨어지고 나서 처음 만난 위인이며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다.

사실상 내 삼촌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조바심이 생겼다.

“토정 어르신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지금 환후가 어떠한가!”

“의원들이 방문하여 시침을 행하고 있다네!”

이지함의 장남인 이산두(山斗: 본래 역사에서 요절한 이지함의 큰아들)는 얼굴을 아는 사이였는데 모여든 사람들을 통제하느라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심지어 궁궐에서 사람들이 뛰어왔다. 은퇴한 관료이니 광제원(廣濟院: 의료 관련 통합 기관)에서 의원 한 명을 보낸 것이다.

놀랍게도 파견된 의원은 구암 허준이었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는지 그는 이산두를 잡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토정 어르신의 환후가 대체 어떠하였기에 정정하시던 분이 급히 쓰러지셨는지 알 수 있겠는가? 이는 지극히 중요한 일일세.”

“며칠 전부터 손이 저리고 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하셨습니다. 오늘 갑자기 숨이 막히시고 왼쪽 어깨부터 가슴까지 쥐어짜 내는 통증이 시작되셨습니다. 그리고 수족의 색이…….”

“흉통 가운데 가장 중한 진심통(眞心痛: 심근경색)인 것 같구려. 내가 시침은 잘 행하지 못하여도 진맥과 탕약에는 능하니 서둘러 안내하시오!”

증상만 들어도 작은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때와 똑같은 심근경색이다. 허준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니 침이 사지에 꽂힌 이지함이 있었는데 사지가 시퍼렇게 질려 있었고 안색은 창백하였다.

맥이 잡히지 않는지 손목의 침을 피해 한참 동안 맥을 잡은 허준은 사지의 침을 한 바퀴씩 돌려 움직이고 다시 맥을 잡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억지로 숨기며 처방을 내렸다.

“족삼리와 척택을 비롯하여 심부의 모든 혈에 침을 놓았는데도 맥이 되살아나지 않는군. 일단 수족을 주물러 혈을 원활히 틔우고 당장 양지황(디기탈리스)을 처방하도록 함세!”

“양지황이면 서역에서 들여온 한 숟가락만 먹어도 사람이 절명하는 극약이 아닙니까!”

“이대로 두어도 이틀을 버티지 못할 것이니 서둘러 처방하고 경과를 지켜봐야지. 양지황은 독초라 궁궐에서 기르지 못하지만 무계정사에서 기르는 물건이 있으니 서둘러 받아오시오.”

뭔가 했더니 정원초로 흔히 쓰이는 디기탈리스가 양지황의 정체였다.

작은 종 같은 꽃은 바닥에 내던지고 잎을 몇 장 뜯어내더니 세심하게 분량을 정해 탕약을 달여내라 말했지만 저걸로는 효과가 없다.

작은할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을 때 여섯 시간 만에 발견해 심장혈관을 뚫는 도구를 넣던 중 사망하셨다. 현대에도 이런데 조선시대에는 답이 없으리라.

이지함의 창백한 얼굴을 볼 길이 없어 고개를 돌렸는데 이지함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뭐…… 가 이리 소란스럽…… 더냐. 거기 성룡이 있더냐?”

“저 여기 있습니다. 조만간 탕약을 처방하여 쾌차하실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쾌…… 차는…… 되었고 어서 산…… 산가지를 가져오…… 려무나.”

허준도 가망이 없다 여겼는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이지함의 방 안으로 들어가 산가지를 챙겨왔다.

이지함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산가지를 하나하나 추려내더니 합하여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 점괘가 모조리…… 빗나갔어…… 이미 이 년 전에 죽어…… 무덤에 묻혀 있다? 무덤 위에 벼락…… 이 친다고? 설마 내가…… 이건 점괘를 더…….”

“그만두십시오! 이 상황에서 점괘를 보아 무엇을 한단 말입니까. 잘못하면 화기가 치밀어 명운이 경각에 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이지함은 점괘를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 나와 친해서 내가 함부로 제시하지 못한 피뢰침을 이용해 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피뢰침의 개념을 알려줬는데 이를 황당하게 사용했지.

자신이 소유한 산을 벌목한 다음 대추나무를 여럿 심고 위에 피뢰침을 박아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을 만들어내서 무당들에게 팔아 수익을 거뒀다던가.

이지함은 내가 산가지를 빼앗아 품에 넣자 슬쩍 웃으며 답하였다.

“내가 대추나무를 못…… 살게 굴던 벌을…… 죽고 나서야…… 받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산…… 가지는 내가 쾌차한…… 이후 돌려받을 것이다. 네게 남길 말은 더 없구나.”

쾌차한 이후라 했지만 다른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억지로 힘을 낸 것이 분명했다.

다시 핏기가 사라지며 혼절한 이지함은 잠시 뒤 일어나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였다.

“내가 지…… 금 머리가 혼미하니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어질 것 같구나. 산두 네가 남아 내 옆에 있고…… 나머지는 제발 물러나 주시게.”

장남인 이산두를 시작으로 이지함의 지인들이 한 명씩 방 안으로 불려가 유언을 들었다.

진성이는 도저히 참지 못했는지 나와서 마당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음을 터트렸으며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쳐다보셨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나를 부르지 않았는데 멀뚱멀뚱 있자니 장남인 이산두가 와서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였다.

“아버지께서 쾌차한 이후 산가지를 돌려받을 것이라 하여 들어오지 말라 하셨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아무리 병환이 중하다 하여도 말은…….”

생각해 보니 남길 말이 없다 하였다. 조만간 목숨을 잃을 사람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싶었지만 이지함도 다 생각이 있으니 나를 들어오지 말라 했겠지.

이산두도 어쩔 수 없으니 가만히 있으라며 나를 다독였고 마당에서 한참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통금시간 직전에야 마포나루 인근에 있는 이지함의 집에서 빠져나와 내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인 진성이가 들은 유언은 조만간 시행될 별시에 반드시 합격하라는 유언이다.

정작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잠이 오지도 않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오밤중까지 눈을 말똥말똥 굴리고 있자니 좀이 쑤셔서 버티질 못하겠다.

“토정 어르신이 본래 역사보다 더 산 것이야 역사 자체가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고, 역사가 변해서 점괘가 맞지 않는 것인데 이다지도 점괘에 몰두하시다니.”

몸을 피곤하게 하면 잠은 잘 오겠지. 문제는 한밤중에 입신체비를 하면 의압(벤치프레스)을 하다 역기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다른 운동을 하자니 괜히 땀만 흘리는 것 같아 할 마음도 나지 않았다.

모깃불과 등잔을 피우고 정자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자니 잡념이 밀려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이지함이 놀러 오면 이 정자에 앉아 입신체비와 결합된 바둑을 두며 대화를 나눴는데 그런 일은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네가 바둑을 두려고 이 한밤중까지 나를 기다렸더냐?”

괜히 비어 있는 바둑판을 매만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없던 이지함이 이미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채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

“내가 약조한 것이 있었지. 쾌차하고 나서 산가지를 받아가려 하였는데 이제 산가지가 필요 없는 몸이 되었으니 그건 네가 사용하도록 하여라. 대신 바둑이나 한번 두어보자꾸나.”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사람이 몇 시간 만에 멀쩡해졌어?

정신을 차리려 뺨을 꼬집으려 하였지만 이지함은 성큼성큼 걸어와 검은 돌을 잡고 천원(天元: 바둑판 정중앙)에 착수하였다.

혹시나 회광반조(廻光返照)가 아닐까.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나와 바둑을 두고 싶기에 가족들이 통금도 마다하고 이지함을 여기로 보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 모든 수는 삽시간에 가로막혔다.

“어허 대마(大馬)가 잡혔구나. 성룡이가 나를 많이 봐준다 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아니 된다.”

“방금 전의 행마는 잘못된 것이지만 한번 둔 돌을 되돌릴 수 없는 법입니다!”

130수가 지나서 돌을 내던졌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패배한다고?

내가 아마추어 1단 수준인 아버지를 이기고 프로 1단과 대결해도 돌 6개를 미리 깔아두면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

이미 조선에서 바둑으로 나와 견줄 실력자가 없었으며 그나마 잘 둔다는 사람도 승률이 2할에 미치지 못한다.

이지함은 나에게 흑돌을 내어주며 말했다.

“다시 하자꾸나. 네가 이렇게 삽시간에 패할 사람은 아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는데 한번 시작한 건 끝을 보아야지요!”

기세는 좋았지만 말 그대로 처참한 패배만 이어졌다. 아무리 용을 써도 150수 이내에 승부가 갈렸으며 이지함은 껄껄 웃으며 바둑돌을 정리하고 다시 경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수가 보이지 않았다.

“허허.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는가?”

뭐 이리 잘하지? 이정도면 프로 1단 수준도 아니고 최소한 4단은 되는 실력이다.

암묵적인 시간제한도 무시하고 한 수에 5분 가까이 소모하였는데…… 그럼 해가 밝아야 하잖아? 지금 대국을 여섯 번이나 했어!

“이제야 눈치를 챘느냐. 나도 조금 전에야 눈치를 챘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로구나. 내가 지금까지 점괘를 보아도 모두 틀려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그 이유를 방금 전에야 알았다.”

온몸의 털이 솟아오르고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침을 꼴깍 삼키고 주변을 돌아보니 아직도 어두컴컴한 가운데 진작 꺼졌어야 할 등잔불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귀신에게 홀렸나?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 유성룡의 몸에 끼어들었고 내 이전에도 수양대군에 빙의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해괴한 일을 체험했는데 이지함의 혼을 만나는 일이 뭐가 이상하겠는가.

마음을 정돈하니 이지함이 바둑돌을 모조리 치우고 산가지를 내놓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이미 객인(客人: 손님) 한 명이 바꿔놓은 길이라 애초에 점괘가 틀린 것이 아니겠더냐.”

이지함이 점괘를 귀신같이 적중시켜도 모두 본래 역사의 점괘만 적중시켰지. 하지만 이미 죽은 이지함은 변한 역사의 점괘도 적중시킬 수 있는 것 같았다.

“제 이전의 객인은 수양대군이 분명합니다.”

“이미 알게 되었다. 내가 다시 점괘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마지막 점괘 하나만 볼 수 있겠구나. 그러니 국조(國祚: 나라의 명운)에 대한 점괘를 보도록 하겠다.”

다시 산가지가 뽑혀 나오고 이지함의 눈이 가늘어졌다. 점괘가 아무리 해석에 따라 갈린다지만 명백히 부정적인 점괘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지함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쇠락과 예속이다. 국운이 쇠하고 흉년이 이어진 덕분에 외방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고립된 아국이 천천히 쇠락하다 결국 중원을 공격해 천명을 찬탈하고. 중원의 인구로 인하여 아국의 근본을 잃어버리겠구나.”

“그러하면 대책이 무엇입니까? 제가 도대체 무엇을 해…….”

이지함은 산가지를 다시 쓸어 넣더니 나를 똑바로 지목하였다.

왜 나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푸근한 미소를 짓고 산가지를 건네주며 말하였다.

“이 점괘는 네가 아닌 이전의 객인이 바꾼 역사의 점괘이다. 네가 지금까지 뭘 했는지 알고는 있더냐? 내가 보기에는 네가 이미 아국의 국조를 뒤틀어 놓았구나.”

내가 뭘 했나 고민했는데 생각 외로 많은 일을 했다.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면 나라에서 새어나가는 돈을 막고 각종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외부 영토를 다스리는 데도 공헌했지.

아마 내가 없었으면 재정은 여전히 궁핍했을 것이며, 파양군도 없는 민다나오 섬이 반란을 일으켜 이를 제압하느라 더욱 많은 재정을 소모했을 것이다. 당연히 반란이 한번 일어나면 다른 지역도 어수선해지니 군사력을 더 동원해야 한다.

틈을 타서 스페인을 비롯한 서방 세력이 야금야금 식민지를 만들며 침탈하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재정이 한번 고갈되면 행정 공백이 생기며 민심이 흐트러진다.

여기에 인구 증가 대책이 없으니 온갖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국고 고갈과 인구 증가라는 중대사를 하루하루 막던 조선에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대기근이 찾아온다면?

쇠락해도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조선이 살기 위해 천명을 차지할 수 있지만, 중원을 차치한 수많은 이민족과 마찬가지로 백여 년 정도 지나면 조선이 아닌 또 다른 중국이 되겠지.

이지함은 내 얼굴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이미 왜국이 어수선하고 조만간 또 다른 변란이 일어날 것 같다. 이런 시국에 네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 아니더냐. 또 다른 객인으로서 네가 할 일이 뭔지 알겠느냐.”

조선은 수양대군 이후 보디빌더와 마찬가지인 국가가 되었다. 군사와 체계를 정비하였으니 근육량은 많아 힘은 어마어마한데 위기를 모면할 내실이 부족하다.

수십 년이 지나 소빙하기가 본격화되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조선의 안정화와 외부 영토 개척으로 근육만 많은 국가인 조선을 거대한 국가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근육량만 많은 조선의 골격을 키워 근육질 거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기근과 재정고갈에 취약한 조선이지만 체질개선이 끝나면 소빙하기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외부에서 매년 오백만 석 정도의 식량을 들여올 여유가 생기면 버틸 수 있지.

생각해 보니 이거 완전 근육 덩어리 국가네.

“아국의 국명은 조선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근육이 많은 입신체비사와 닮았으니 근육조선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대(大)조선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근육조선이라. 그것참 마음에 드는구나. 그럼 대조선이 언제쯤 시작되는지 먼 곳에서 기다려 보도록 하겠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진 이지함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한 직후, 시야가 핑핑 돌며 바닥에 고꾸라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니 방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는지 누가 등 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버지! 토정 어르신이 어제 자(오후 11시~다음날 1시)경에…….”

“명을 달리하셨더냐.”

스승인 이지함의 집에서 밤을 지새운 진성이가 새벽이 되자마자 돌아와 말했는데 나는 이지함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지함이 유언 대신 더 좋은 선물을 주었으니 앞으로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이 조선의 체질개선을 완료한다. 내가 미주로 갈지 호주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근육 덩어리 조선을 거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기반을 반드시 마련하리라.

그리고 왜국이 어수선하다 했는데 어수선하게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지금까지 조정에서 시키는 일이나 조만간 벌어질 일을 하며 인맥을 유지하는 데 몰두했지만 이제는 정치에 투신할 차례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