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74화 (374/573)

근육조선 374화

2부 15장 6화 내수린과 신부

산성 공사와 신도시 건설을 반복하며 일하니 한 해가 삽시간에 지나갔다. 이미 산성 주요구간 축조는 모두 끝나 현장에서는 설치한 녹로(크레인)와 거중기를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산성의 일반적인 구간은 그리 큰 공을 들이지 않았다. 높은 구간은 20자(6.8m) 낮은 구간은 자연석으로 10자(3.4m) 정도의 성벽을 설치한 것이 전부지만 나름 세심하게 신경 써서 악랄한 구간으로 만들었다.

“이거 정말 심어도 됩니까? 나중에 보수할 적에 이걸 다 어찌 제거하려고 그러십니까?”

“보수할 적에야 주변 흙을 모조리 드러내야 하니 염려하지 말게. 자고로 내가 불편한 것이 적에게는 끔찍하게 돌아오는 법이지.”

“이거 잘 베어지지도 않는 점어수(粘魚須: 청가시덩굴) 씨앗인데 어찌하시려는지…….”

현대에 산성 실측을 할 때 내 몸에 구멍을 송송 뚫어댔던 가시가 달린 식물들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낫을 사용해도 질긴 덩굴이라 쉽게 베어지지도 않는 독한 녀석들이지.

이 시대에는 한약재로 쓰이지만 수효가 많지는 않아 구하려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인부들은 내 지시에 따라 나무를 벌채한 자리에 미리 구해둔 조각자나무(튼튼한 가시가 있다) 묘목을 심고 가시덩굴 씨앗을 사방에 뿌려 산성 아래를 덮었다.

“몇 년이 지나면 점어수가 무럭무럭 자라 사람 키 높이로 무성해지고 간혹 성벽을 휘감고 올라갈 것이네. 그렇게 되면 이 험한 언덕을 기어 올라온 적도들이 몸을 둘 데가 있던가?”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적의 침입을 막으려면 마름쇠를 뿌리면 될 것인데요.”

“마름쇠도 비축해 두었으나 이는 문루에 사용해야지. 이제 여장(女墻: 성가퀴)만 쌓으면 모든 업무가 종료되니 정월을 보내고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세.”

벌써 1580년이 되었다.

며칠 뒤에는 정월 대보름이고 내가 조선시대에 오고 30주년이 되었으니 가볍게 자축이라도 해볼까. 거의 석 달 가까이 산성만 오가던 덕분에 몸이 찌뿌드드했는데 재활원이나 가서 수기치료(추나요법)이나 받아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기껏 방문한 수기치료원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생각해 보니 산성 공사에 나선 인부들의 몸이 상하면 일정 부분 치료비를 대주는 것이 국가 방침이다.

“자고로 몸을 날쌔게 놀리면 있던 통증도 사라지는 법이니 내수린이나 하러 가야지.”

“이거 서애 어르신이 아닙니까? 산성 일이 다 끝나셨습니까?”

누군가 했더니 세스페데스다. 이미 조선에 머물고 5년 가까이 지나 예전처럼 말투가 이상하거나 발음이 새어나가지 않아 목소리만 들으면 조선 사람이라 착각할 지경이 아닌가.

얼마 전에는 강화도에 머물면 서로가 불편해진다는 이유로 아예 성균관에서 학문을 배워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물론 정식 입학 자격인 소과 응시는 불가하고 하재생(下齋生)이라 하여 입학시험을 본 격이 낮은 학생이지만 그게 어디인가.

하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싶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은근슬쩍 내수린장으로 끌고 갔다.

자고로 고통을 좀 겪으면 근심도 쑥 들어가는 법이다.

“정월 대보름이니 쉴 시기지. 요즘 몸이 찌뿌드드하여 몸이나 좀 풀까 하는데 좋은 장소를 알고 있소이다. 입신체비를 배운지 오 년이 지났으니 다음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소.”

“다음 단계라 하니 더욱더 심한 고난이 닥쳐올 것 같습니다.”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소이다. 분명히 말할 것인데 아국에서 입신체비를 배운지 오 년이 지나면 내수린이라는 풍속을 익혀 몸을 더욱 단련할 길을 찾는다오.”

나는 지방이 부족해서 내수린을 하면 삽시간에 온몸에 피멍이 올라오고 경기가 길어지면 사지의 힘이 빠진다. 애초에 북방에서 지겹게 당했으니 더 당하기도 싫다.

대신 지식은 풍부하니 초보자에게 접수개념을 가르치며 몸을 움직이려 했는데 초보자가 여기 있지 않은가.

세스페데스는 풍속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

“뭔가 이상한 풍속 같지만 애초에 조선의 풍속을 배우라는 명을 받았으니 이번 기회에 익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래서 그 풍속은 어디서 배웁니까?”

아무 말 없이 세스페데스를 이끌고 마포나루 인근에 있는 전문 내수린 시설에 찾아갔다. 내수린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을 정도로 드높아 예전에 보았던 건물이 더욱 크게 개축되었고 안에서는 고함이 새어 나왔다.

생각해 보니 정월 대보름이 코앞이다.

내수린꾼들은 여기서 연습하고 경기도 각지로 내려가 내수린을 벌일 것이니 가장 열을 올릴 시기이다. 당연히 내수린장에는 경기도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 있으리라.

“역시 내수린장은 이래야지. 혹여나 내수린을 본 적이 없소? 강화도에서 오 년을 보냈다면서 어찌하여 내수린을 본 적이 없는지 모르겠구려.”

“아무리 보아도 병사들이 훈련할 때에 나는 고함이 들립니다만 이게 풍속이라니요.”

“어허, 나쁘지 않다 하였으면서 발을 주춤주춤 뒤로 내빼려 하다니 그래서야 제대로 배울 수 있겠소? 내수린은 입신체비가 일정 경지에 달한 이들이 터득하는 예식과 비슷한 무예요.”

침을 꿀꺽 삼킨 세스페데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주변을 살펴보다 어쩔 수 없이 내수린장의 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내수린 연습에 몰두하느라 눈을 흘기고 다시 내수린에 전념하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내수린을 충실히 익혔으며 생업으로 삼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세스페데스의 갈색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거 보게! 주상전하의 허가를 받아 아국의 풍속을 익히는 이가 마침내 내수린을 익히러 왔다네! 국기(國技)인 내수린을 배우려 하니 우리가 각자 접수하는 방법만 알려주어도 차고 넘치지 않겠나!”

사람들의 시선이 세스페데스에 몰렸는데 모두 열정과 의무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미 세스페데스의 반응을 예상했기에 빗장을 걸어 문을 막았고 세스페데스는 빗장을 부여잡고 절규하였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저는 여기서 나가겠습니다! 안 되잖아! 서애 당신 대체 왜 문을 걸어 잠근 겁니까!”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오.”

상체를 탈의하고 하체에는 단단히 동여맨 바지만 입은 근육덩어리 수십 명이 새 내수린꾼. 그것도 서양에서 건너온 외국인을 보자 흥분하여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위압감이 어마어마한지라 나도 구석으로 빠져 슬쩍 옷을 갈아입었다.

“어허 이 대흉근을 보게. 서역인의 몸이라 하여도 아국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군. 그리고 대퇴부가 아주 튼실하여 대들보와 견줄 수 있으니 누구에게서 하체운동을 배웠는지 궁금하군.”

“영흥부정이라는 분입니다.”

“영흥부정 어르신 말인가! 세상에! 하초가 이렇게 튼튼할 법하지!”

“이 팔을 보게! 이렇게 형성된 팔 근육은 이판대감(율곡 이이)과 그에게 입신체비를 배운 사람이 전부가 아닌가. 이런 팔이면 메치기도 들어치기도 던지기도 쉽사리 할 수 있겠어!”

“제가 이조판서 대감께 입신체비를 배우긴 했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세스페데스는 오 년 동안 입신체비의 정수만 배웠다.

나에게 기초를 배우고 이이에게 근육의 분절을 배웠으며 이황의 제자인 이양원에게 상체를, 조식의 사위로 생존을 위해 하체에 몰두한 내 큰동서에게 하체를 배웠다.

입신체비를 시작한 지 오 년 만에 삼대운동 850근을 달성하였으니 재능 또한 차고 넘칠 지경이다. 수양대군보다는 못해도 하성군과 견줄 수 있는 재능이라 하던가.

그 뒤에 일어난 일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나름 절육에 몰두하였지만 체중이 130근(83㎏)에 달하는 세스페데스는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땅에 틀어박히며 비명을 질러댔고 수십 명의 내수린꾼은 그의 몸에 접수의 개념을 때려 박았다.

한 시진 정도 흐르자 세스페데스는 생존을 위해 접수 개념을 터득하였고 오히려 잡념이 사라져 홀가분한 얼굴이 된 것 같았지만 잠시 쉬고 있으니 다시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대체 왜 이리 죽상이시오. 혹여나 내수린이 너무 과격하여 속이라도 상하였소?”

혹시 어디 배라도 크게 다쳐 내출혈이라도 일어나면 끝장이다. 내수린을 배울 때 접수 개념을 철저히 가르친다 하여도 간혹 내출혈로 요절하는 사람이 생겨나서 좀 걱정되긴 한다.

현대라면 그냥 똥 밟았다 치고 개복수술로 내장을 꿰매지만 이 시대의 마취제는 마약인 아편이 전부이고 개복수술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더라.

하지만 세스페데스는 내 염려와 다르게 생소한 답을 하였다.

“제가 꿈에도 만나기 싫은 사람이 안부를 물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나 궁금했습니다.”

“꿈에도 만나기 싫은 사람이 안부를 묻는다 하였소? 얼마 전에 내 벗인 송강(정철)이 탐라에서 요람(백과사전)을 만들며 서신을 보낸 적이 있는데 이와 견줄 수 있는 일이오?”

정철은 한석봉과 조를 이뤄 신나게 지방 먹거리와 술을 먹으며 온갖 물건에 대한 기록을 적어나갔다.

이미 홍문관에 정철을 위해 수천 장의 목록이 비축되어 있으니 몇 년은 글만 쓰면서 조용히 시간을 때우겠지.

그런데 조선까지 서신을 보내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세스페데스가 받는 서신은 기껏해야 스페인 정부에서 보낸 서신과 인도에 있는 예수회에서 보내는 서신 두 종류가 전부이다.

이건 좀 궁금하네.

“서신을 보내려면 적어도 서반아(스페인)의 관료여야 가능한 일인데 대체 누가 보냈소?

“모스구즈만(Mosgusman) 레예스 대주교입니다. 제가 몇 번 만난 사람이고 한때 존경하기도 했지만 진상을 알고 나니 그 오뚝한 콧대만 보아도 싫어질 지경이었지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한데?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성경으로 사람 두개골을 박살 낼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대주교면 성직자고 성직자는 세례명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다.

“대주교라 하면 신부를 통솔하는 종사(宗師: 수십 년 동안 수행을 쌓은 승려, 보통 주지스님 이상이다)와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런데 마치 남을 대하듯 부르는구려.”

“그자는 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여 년 동안 저지대(네덜란드) 일대를 순회하며 이천 건이 넘는 심문을 행하고 화형당한 사람만 천여 명이 넘습니다. 아무리 저지대 사람이라 해도 사람을 장작개비로 보는 짓이 아닙니까.”

이게 뭐 마녀사냥인가 그거냐? 중세에 마녀사냥이 유행했다던데 그때가 지금인가?

그 규모가 얼마인지 몰라 뚱한 표정으로 세스페데스를 바라보니 그는 손을 휘저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제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언제나 교화할 수 있으니 저는 말로 다스릴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인퀴시도르(Inquisidor: 이단심문관)들은 기껏해야 수십 명을 문책할 뿐이지요.”

“수십 명을 문책한다 하였소? 그 수십 명을 문책하는 과정에서 친척과 이웃을 같이 문책할 것이니 적어도 일천여 명은 문책에 포함된 고문을 당하다 명을 달리하겠는데.”

“그러니 제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사랑과 참회로 다독여야 할 이들을 닥치는 대로 고문하고 불태우는 일도 못마땅하고. 가장 사람을 잘 태우는 자가 제 안부를 물으니 얼마나 우울한지 모르겠습니다.”

나 같아도 사람을 장작개비로 취급하는 놈이 안부 물으면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겠지. 그놈이 꼬투리 잡아서 나를 장작으로 만들지도 모르잖아.

적어도 세스페데스는 온건파거나 정상인이 확실하니 이야기를 돌려야겠다. 사람으로 우울해졌으면 그 사람을 씹는 것이 기분을 풀기 가장 좋은 방법이고 나도 상사 씹으면서 많이 해봤다.

“그러면 여기서 내수린을 배워서 모스구즈만이라는 자를 단매에 때려눕힌 다음 역차돌리기로 날려버리시구려. 혹여나 벽에 얼굴을 박고 그 높은 콧대가 평평해질지도 모르잖소.”

“후일이 되면 그자의 조카 로베르토가 내수린을 신청할 것이고 제가 무조건 패할 것입니다. 내수린이 얼핏 보면 기사들의 훈련과 닮은 점이 있는데 그는 몰타 기사단의 장교이니 내수린을 잘하겠지요.”

조카도 있었어? 하긴 이 시대의 귀족이건 양반이건 한 번 정계에 진출할 수 있으면 친척의 힘으로 가문 전체가 잘 나가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몰타 기사단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현대의 고등학교 시절 했던 게임에 나오는 기사단을 물어보았다.

“듣자 하니 튜턴 기사단이라는 이들은 들어봤는데 몰타 기사단은 처음 들어보는구려.”

“배반자 튜턴이요? 한때 교황성하의 덕을 받았지만 기세가 쇠락하고 단장 알브레히트가 루터교회로 개종하였으니 역겨운 자들입니다. 몰타 기사단은 가톨릭의 수호자이자 영웅이니 애초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지요.”

얼마 전 조선군의 화력시범을 봤으면서 이런 태도를 취한다니 정말 강한 자들이 맞나 보다.

나도 사람이고 남자인지라 누가 강하냐는 논쟁을 벌이면 하루 종일 언쟁을 할 자신이 있다.

기왕 정보를 얻었으니 조금 물어봐도 되겠지.

“영웅이라 하면 대체 어떤 위업을 이룩하였기에 영웅이라 불리는 것이오?”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십여 년 전 오스만 놈들이 십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칠백 명이 머무는 섬을 공격하였고(로도스 공방전) 결국 여섯 달의 전투 끝에 오스만 병사 오만 명이 죽고 나서야 몰타 기사단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게 사람이냐 살육기계냐? 서방도 기록을 과장하는 면이 있어 적의 규모를 2~3배 정도 늘리고 희생자도 늘리는 편이다. 그걸 감안해도 700명이 최소 만 명의 적을 무찔렀으니 말이 안 되는 위업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한 번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제가 태어난 이후에는 거처를 몰타 섬으로 옮겼는데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565년 오스만군 십만 명이 몰타 섬을 공격하였는데(몰타 공방전) 성 엘모 요새가 함락되고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였지요.”

“함락되었다 하면 이번에는 항복하지 못한 모양이구려. 거기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소?”

“이번에는 오스만이 수많은 화포와 폭약을 가져왔습니다. 두 달의 싸움 끝에 성이 무너지고 화살과 탄환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 기사단이 돌격하였지요. 천오백의 병력이 모조리 전사하였지만 이만 명에 달하는 적을 무찌른 다음이었습니다.”

대충 과장을 덜고 계산하면 1,500명이 화약병기로 무장한 3만가량의 병력을 상대로 2개월을 버티고 마지막 결전에서 적과 동귀어진한 격이다.

성이 무너졌다면 사방에서 화약병기를 마음대로 쏘았다는 뜻이요, 무너지기도 전에 병력이 줄줄이 죽어 나가고 모든 지휘체계가 엉망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최후의 돌격으로 적을 상대했다면 참 대단한 일이다.

“싸움 한번 잘하는구려. 그런 기사단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사람이니 내수린 솜씨는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행할 것이오. 혹시 다른 특기가 있소?”

“몰타 기사단의 주특기는 해상전입니다. 적이 다섯 배쯤 되면 싸움을 피하지만 세 배 정도라면 신들린 항해 솜씨와 사격술로 적을 유린한 이후 그리스의 불을 던지고 등선하여 적을 모조리 도륙합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적이 세 배인데도 거침없이 등선한다고?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내가 알기로 오사만국(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는 나름 강병에 속하오.”

간혹 마사이족과 거래하고 오는 조선 병사들이 마사이족이나 솔로몬 제국의 의뢰를 받아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와 소규모 교전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에 두 배가 넘으면 제법 고전한다더라.

동등한 수의 예니체리는 쉽게 상대하지만 두 배가 넘어가면 어렵사리 이기고 세 배가 넘으면 승산이 없다더라. 그런데 세 배를 상대로 대놓고 백병전을 벌인다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세스페데스는 냉정하게 말했다.

“몰타 기사단은 복수를 위해 인생을 바친 자들입니다. 조상들이 바르바리(북아프리카 해적)들에게 죽임을 당하여 원한이 하늘에 닿았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다면 해적들을 죽이기 위해 뭘 배운단 말이오.”

“무예, 군략, 그리고 항해술은 물론이요, 사분의(四分儀)를 비롯한 측량술은 달인의 경지라 합니다. 조선이야 다른 기구(육분의)를 사용하지만 이들은 그냥 실력이 좋습니다. 더군다나 모략에도 재주가 있는지라 오스만의 수도에 첩자를 심어두고 적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그런 이들이 한 개의 단체에 몰려 있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구려. 혹여나 다른 장소에서 고용되어 지휘관으로 활동하는 일은 없소?”

“당연히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한 로베르토 우리엘 레예스는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 기함에 탑승해 병력 일부를 통솔하였지요. 기함 간의 백병전을 주도하고 예니체리 여덟 명을 도륙하고 갑옷 채로 물에 빠진 이후 다른 배 위로 기어올라 여섯을 도륙한 장교였습니다.”

세스페데스의 말을 요약하면 몰타 기사단은 다음과 같다.

도둑놈도 아니고 나름 정예병에 속하는 예니체리를 삽시간에 도륙하며 주특기인 해전에서는 세 배 정도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

이건 몰타 기사단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고 장교쯤 되면 족쇄나 마찬가지인 갑옷을 입고 헤엄도 칠 수 있으며 배 위로 어떻게든 올라올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조선에서도 흔하지 않은 자이다.

더군다나 싸움만 잘하는 것이 아니고 지휘관으로서 기본 이상은 한다.

아마 몰타 기사단에서 장교쯤 하는 사람이면 최고의 인재인 이순신이나 권율보다는 부족해도 어디 가서 한 자리는 차지하고도 남을 것이다.

#작가의 말

*뒤늦게 말씀드리지만 모스구즈만 레예스와 로베르토 우리엘 레예스는 가상인물입니다.

몰타 기사단은 본래 역사 기준으로 인류 최강의 집단입니다. 서방의 일방적 기록이라면 과장이라 말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교차검증이 되는 기록입니다.

물론 인원이 소수라서 군단 단위 편성은 불가능하지만 바꿔 말하면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군단 단위로 나설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