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71화
2부 15장 3화 대책
북한산성을 축조하며 참 많은 고생을 했다. 인부들을 위해 본보기를 보인다며 소빙하기로 인해 추위가 거세지는 북한산성에 거처를 마련해 집에는 보름에 한 번 돌아왔었지.
이제는 정반대로 보름에 한 번 북한산성을 다녀오면 되니 휴가가 따로 없다. 이 기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려고 신도시 계획을 쓰는데 술술 써내려갈 수 있었다.
흔히 말해 백년지대계라 하며 멀리 내다본 계획을 제안하는데 내 계획의 목표는 정말 백 년 동안 조선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이 시대의 성저십리 바깥은 대부분 옛 과전(科田)이며 지금은 조정 소유지이니 개발도 쉽다.
“물론 개발이 쉬운 것과 사람이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지만. 결국 이 시대는 소수의 상인을 제외하고는 땅 파먹고 사는 시대잖아.”
인구집중 해소를 위해 외곽에 도시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사람이 이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 조정에는 무엇보다 좋은 사민 대책이 있다.
“세종 시기나 문종 시기에는 죄다 북방으로 보냈는데 이제는 도성 바로 옆 동네로 보낸다면 불만도 적을 것이고. 소작농 생활이라 해도 도성 인근인데 안 이주하고 배기겠어?”
빙의자인 수양대군이 개입한 덕분에 국가 체계가 건실하게 변경되었다.
본래 역사에서 경기도 일대의 농토는 과전법에 의거하여 관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땅으로 주었고 이후 공신전(功臣田)으로 변하고 세습되며 모조리 사유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이 시대의 공신전은 소수의 개국공신을 제외하면 북방과 대양도에 있다.
녹봉제가 도입되며 경기도 일대의 농토는 고스란히 조선왕실의 땅이 되었으니 억지로 도성에 온 사람들에게 소작농의 권리를 주면 되리라.
5개의 신도시마다 2,000호이자 8,000명의 이주계획을 만들고 이 신도시를 단계별로 확충하자 제안하면 정말 백 년은 가겠지.
하지만 내가 손댈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북인들 대책이다.
“사참(사설 역참)에 사람이 좀 부족한 편인데 어느 정도는 스스로 사참에 참가하고 신도시에 필요한 물동량을 스스로 담당해 주겠지. 그래도 소빙하기가 계속되면 대책은 필요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아니야.”
첫 장계는 며칠 만에 필요한 근거자료를 첨부해 작성할 수 있었지만 다음 장계가 문제였다. 소빙하기의 도래와 인구증가로 인한 맬서스 트랩 관련 장계인데 이런 개념은 이 시대에 없다.
“이런 빌어먹을. 정말 인구증가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한 사례가 없나?”
늘어난 인구로 인한 문제를 겪은 사례가 아예 없다. 빙의자로 인한 빠른 발달이 맬서스 트랩을 가속화 하였지만 이에 대한 선례(先例)가 없으니 이를 예측하는 사람은 나 혼자이다.
그나마 본래 역사의 조선과 다르게 은결(隱結)도 없고 간척사업도 활발하며 신작물의 도입으로 부양 가능한 인구가 늘어났지만 이 땅에서 잘해야 1,800만 명을 부양할 수 있으리라.
내가 늙어 죽은 이후인 50년 뒤에는 부양 인구를 초과한 사람들 덕분에 산림이 황폐화되고 유랑민이 급속도로 늘어나리라. 그나마 답이 하나 있는데 쓰면 안 되는 답이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나우루의 인광(燐鑛: 구아노)을 채굴해서 비료로 쓴다 하면 광맥이 고갈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겠지.”
나우루를 다뤘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기억난다. 섬 전체가 비료나 화약의 원료로 사용 가능한 인광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십 년 동안 이 광맥을 파내 잘 먹고 잘살다 고갈된 순간 국가 경제가 파멸했다던가.
광맥의 정확한 양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우루의 인광을 파내어 퇴비로 사용하면 한동안 조선 전체의 농업 생산량이 폭증할 것이고 인구도 증가한다. 그리고 비료가 떨어진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겠지.
그렇다고 20세기 초에 개발된 질소 합성을 한다? 대충만 아는데 200기압과 합성에 필요한 수백 도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걸 만든다고?
“화학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라 해도 전반적으로 17세기 초반이고 몇몇 요소만 18세기 초반 수준인데 암모니아 합성법은 절대로 불가능하지. 용기를 만드는 데만 수십 년은 걸릴걸.”
역사가 변했으니 기술 발전 양상도 변화했다. 조선은 18세기 초에 개발된 프러시안 블루를 화청(化淸)이라 부르며 단청에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고대 이집트에서 합성한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의 존재는 모른다.
철저히 필요에 의해 발달된 기술이 지금 조선의 화학이다.
당연하지만 내가 공기로 비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하면 미친 소리로 받아들일 것이요, 이를 실제로 만들려 하면 국가 단위의 자금을 수십 년 동안 투자해야 하리라.
“지금 암모니아 합성법에 대한 제안을 해도 기술을 감안하면 1차 세계대전 시기에 스마트폰 만들자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지. 정말 맬서스 트랩과 관련된 자료가 없나?”
“아버지. 소자 서적을 다 읽었습니다.”
“진성이더냐. 벌써 대양유람기를 다 읽다니 네 배움이 제법 깊어진 모양이구나. 어서 들어오도록 하여라.”
장남인 진성이도 벌써 열아홉 살이 되어 올해 시행된 식년시에 응시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낙방하였다. 녀석과 어울리는 친구인 이덕형과 이항복은 합격했으니 부담감이 막대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예조 관원에게 듣기론 인재가 몰려 낙방하였을 뿐 다음 시험이라면 언제든지 합격할 수 있다 하였으니 실력에 부족함은 없다.
녀석이 때가 타도록 읽은 대양유람기를 돌려받고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였다.
“몇 달 뒤에 공표될 일이지만 미리 말해둬도 좋을 것 같구나. 주상전하께서 관원이 부족하니 내년에 별시(別試)를 실시할 것이라 하였다. 그동안 심사를 기울여 필적을 정돈하면 능히 급제할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거라.”
“소자가 부족하여 벗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되었으나 이를 어여삐 여기시니 항상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네가 부족하다 하였더냐. 네 종형(사촌)들과 내 벗의 자제들은 하나같이 낙방을 달고 사는데 단 한 번 낙방한 일로 서운해하지 말거라. 다음 서적은 이거면 좋을 것 같구나.”
과거 시험 주제는 국가 시책과 연관되어 있다. 지난번 과거 시험은 아들의 순수한 실력을 가늠하고자 내가 개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움을 줘도 되겠지.
내가 건넨 서적은 도원군이 남긴 금석과안록이라는 서적이었다.
“내가 북악에 산성을 만드는 일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서적은 도원군이 북악에 남긴 신라시대의 비석을 해석하고 영감을 얻어 만든 서적이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소자가 불민하여 아버지의 심기를 쇠하게 만들었으니 더욱 학문을 갈고닦겠습니다.”
“쇠할 일이 없거든 네 벗들과 함께 입신체비나 행하면 좋겠구나. 아니면 내수린이라도 하여 땀을 쭉 빼는 것도 좋은 일이지. 그만 들어가 보거라.”
질릴 정도로 내수린을 해서 더 할 필요가 없지만 세스페데스에게 내수린이나 가르쳐 볼까.
잡념을 정리하려고 나도 다 읽지 못한 대양유람기를 이어서 읽는데 내가 바라던 내용이 있었다.
[내가 석성도(이스터 섬)를 방문하였을 때 눈을 의심하였다. 그 거대한 섬을 천리경으로 살펴보아도 나무가 보이지 않았으며 돌하르방의 몇 배나 되는 석상들이 즐비하였다.]
“한명회 이 양반 이스터 섬에 다녀왔었다고!”
한명회의 저서인 대양유람기의 원본은 그리 많이 읽지 않는 서적이다. 정확히는 속편(續編)이라 하여 그의 후반 행적을 잘라내고 중반의 찬란한 항해일기만 읽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직이니 퇴청이니 하는 단어의 파자가 즐비하여 난이도가 폭증하며 제발 일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다는 한탄을 빙빙 돌려서 적어놨으니 조정에서도 이를 불순하게 여겨 적당히 편집하였다.
대양유람기의 뒤쪽 내용은 잊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도 구하기 힘들었던 대양유람기 원본 맨 끝에 이스터 섬 이야기가 있다니.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내용이 여기 있었어!
* * *
내가 장계를 제출한 지 며칠 지나기도 전에 도성에 몰리는 인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미 조정에서도 이 문제를 체감하고 있었으며 호조에서는 이미 약식으로 호구조사를 실시해 장계를 작성했던 것이다.
논의에서 가장 높은 관직은 좌의정인 정유길(鄭惟吉)이지만 지금은 의정부서사제가 아닌 십조직계제로 전환되어 그는 논의의 주제를 정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이 전부이다.
오히려 실세는 따로 있었다.
“이번 논의에 있어 내가 논할 것이 많지가 않다네. 내가 호구와 인명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면 모르겠건만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자네들이 삿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지.”
“좌상 대감께서 저희의 부족한 의견을 들어 주시는 것만 하여도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러하면 제가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논의의 주역은 이조판서 율곡 이이이다. 42세에 불과한 나이에 권력의 핵심인 이조판서가 되었으니 조만간 왕명 출납기관인 중추부(中樞府)로 승진하고 정승은 맡아놓았으리라.
이이의 눈빛이 전해지자 호조판서 김귀영이 나서서 보고를 시작하였다.
“얼마 전 약식으로 호구조사를 마쳤는데 도성의 인구가 칠만이천 호(약 28만 명)에 근접하였습니다. 상왕전하께서 계획하여 지금 실행 중인 도성 확장 계획이 이십 년에 걸쳐 인구 칠만 호를 수용할 것이라 하였는데 이를 넘어서 버렸지요.”
“인구가 늘어나면 언제나 좋은 일이지만 범죄도 늘어나며 본래 취토군(염초를 모으는 병사)들이 수거하여 염초를 만들어야 할 분변들도 일손이 닿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지는 실정입니다.”
논의 내용은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환경오염과 범죄증가 그리고 난개발로 인한 화재 위험까지.
결국 도성 외곽의 확장계획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견까지 나오자 내가 일어서서 의견을 제시하였다.
“대책은 단 하나입니다. 어차피 도성으로 몰릴 백성들이라면 차라리 도성 인근에 여러 고을을 확충하여 그 고을을 계속 키워나가는 방법입니다. 제 계획이 적용된다면 백여 년 가까이 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상은 나도 대책을 못 세우고, 각지의 약식 배치도를 구해 약식으로 만든 신규 고을 조성 계획을 제시하였는데 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의견에 동의하였다.
“어차피 행할 일이라면 유 부정(종3품 관직)과 같이 빼어난 이가 본(本)을 만들고 다른 이들이 이에 힘을 합쳐 나가는 것이 옳은 일이지. 새 고을에는 얼마 전에 공조에서 실험한 급수와 분변 대책을 적용하면 어떻겠나?”
“라마국 사절단이 증언한 상수도(上水道)와 하수도(下水道) 말입니까? 죄다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얼어 터졌는데 라마국 사람들이 허언을 했나 봅니다. 그냥 우물을 파서 물을 길어 올리고 취토군을 불러 분변을 수거해야지요.”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얼어 터진다는 말을 듣자 감을 잡았다. 고대 로마의 유산인 수도교와 거대 하수도인 클로아카 막시마를 조선에 적용하려는 과감한 시도를 했었나 보다.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로마와 영하 20도 이하의 혹한이 몰아닥치는 한반도의 환경은 다르다.
고대 로마의 유산을 한반도에 적용하면 백 년이 지나기도 전에 동해(凍害)와 폭염으로 말랐다 얼어서 균열이 생기며 소멸하리라.
억지로 상하수도를 만들면 적어도 2m 깊이로 매립하고 죽어라 보수해야 하겠지.
정유길은 씁쓸한 표정으로 내 도시 계획안을 건네받고 다음 논의로 주제를 돌렸다.
“새로운 고을은 이전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사용하면 좋겠지만 큰 하천이 없으니 준천(濬川) 작업을 맹렬히 행해야 할 것이네. 그러하면 되었고 최근 북방 한파의 대처는 어찌 되나.”
“기록을 살펴보니 한파가 삼 년 전이 아닌 육 년 전부터 거세졌습니다. 북인 자제들이 도성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달자(몽골)들은 더욱 추위에 시달려 북인들에게 신세를 지는 이들이 늘어난다더군요.”
“달자들이 북인에게 신세를 진다고 하였는가?”
“신세라 하여도 기마술이나 궁술을 비롯한 무예 전반을 가르치고 급료를 받는다 합니다. 북방에서는 참으로 잘된 일이라 여겨 달자들을 받아들이는 형편이지요.”
역시 소빙하기의 시작이 확실하다. 몽골 일대는 황무지와 초원만 있는데 여기에 추위가 몰아닥치니 그 황무지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결국 세력이 약한 이들이 조선에서 일자리를 찾는 격이지.
다른 이들은 북방의 변고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아니다.
다들 달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나는 다음 서류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작금의 사태는 제가 시선으로 보기에는 커다란 재난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혹한이 거듭되어도 길어야 두 해 이내에 끝난 일이 대부분이 아닙니까.”
“커다란 재난이라 하였는가. 하지만 한파가 이대로 십 년이 이어져도 큰 문제는 아닐세. 아직 북방 밀의 소출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어.”
“아닙니다. 좌상 대감께서 말씀하신 바가 옳을지도 모르지만 만에 하나 한파가 이십 년이 이어지면 어찌하겠습니까. 일 층 아래에는 바닥이 있지만 바닥 아래에는 토실(土室: 지하실)이 있는 법입니다.”
김귀영은 제발 돈 쓸 일을 만들지 말라며 눈을 부라렸지만 이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정유길도 내 발언에 주목했는지 눈을 빛냈고 나는 대양유람기의 후편에서 발췌한 기록을 읽었다.
“청해군 한명회가 기록하길 석성도의 사람들은 미신에 빠져 거대한 석상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여 산림을 벌채하였고 자신들이 행한 일을 알아차렸을 적에는 배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고 흙이 유실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석성도가 그러한 경우를 겪었지만 아국은 엄연히 뭍이며 정 여의치 않으면 명국과 왜국에서 식량을 수입할 수 있지 않은가.”
틀린 말은 아니다. 머나먼 바다에 고립된 이스터 섬과 조선은 다른 상황이지. 하지만 소빙하기의 극대화와 인구증가가 겹친다면 조선 체계는 삽시간에 붕괴되리라.
그러니 여기서 조금 뒤에 일어날 일을 말했다.
“하지만 들여올 수 있는 식량과 생산할 수 있는 미곡에는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알음알음 늘려온 은결(隱結)도 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니 조만간 산림을 벌채하여 농사를 짓는 화전민이 늘어날 것입니다.”
나는 조만간이라 말했지만 조만간이 백 년 뒤겠지. 하지만 지나치게 늘어난 인구로 자멸하거나 중국으로 쳐들어가 천명을 차지한 뒤 중국에 흡수되어 ○나라 조선성이 되는 결말을 바라진 않는다.
여기에 한마디를 보탰다.
“한파가 거세지면 결국 아국 전역이 한파에 몸살을 겪을 것이요. 인접한 나라인 명국과 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결국 천축까지 나아가 식량을 수입할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답은 단 하나입니다. 사민(徙民)이지요.”
“은결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맞네. 또한 한파가 몇 년이 넘게 이어질 수도 있는 법이지. 그렇다고 사민을 무턱대고 시행하면 대양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답은 하나입니다. 미주와 호주에 사민을 실시하여 또 다른 아국의 영토를 머나먼 바다 너머에 만드는 것이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귀영을 시작으로 각 판서들이 목소리를 높여 언쟁을 시작하였다.
이론상 가능하다는 공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조는 핏대를 세워 일갈했고 서로 멱살을 잡고 내수린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사태가 진전되었다.
아니, 난 일어났고. 눈을 부라리던 호조판서 김귀영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나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밀치고 넘어트리더니 그 울퉁불퉁한 팔뚝으로 머리를 짓뭉개댔다.
“어르신! 물리적으로 해결하면 아니 되는 법입니다! 제 두개골이 쪼개질 것 같습니다!”
“미주와 호주에 사민을 실시해! 사람을 보내는 데만 한 달하고 보름이 걸리는 머나먼 땅에 사민을 간다 하면 범죄자도 가지 않을 것이네! 차라리 형무소를 만들자 하지!”
“그럼 지금 미주에 간 사람들은 왜 갔습니까!”
“왜 가기는! 철부지들이 새로운 땅이라 하여 날뛰면서 가거나 군문에서 은퇴한 병졸들이 이주하였지! 그런 이들이 한 해에 오백 명에 불과한데 대규모 사민이라고!”
“다들 그만두시구려! 미주와 호주에 당장 사민을 실시할 필요는 없고 혹한이 아직 닥치지도 않았으니 미리 제도만 정비해 두면 되는 일이 아니오!”
머리통이 부서질 정도로 두골헌을 당해 정신이 없는데 이이가 사람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각자 뜯어놓았다.
다들 이이의 날렵한 움직임에 정신이 빠져 서로를 부여잡은 손을 놓고 이이의 의견을 경청하였다.
“사민이라 하여도 대양도(대만)에는 아직 여유분의 농지가 많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한 해 만 명 정도를 보낸다 하면 십 년이 지나면 여유분의 농지도 다 찰 것이지만 그 이후에도 혹한이 계속되면 미주에 사민을 보낼 일을 계획하면 되는 법입니다.”
“대양도에 일만 명을 보낸다 하였습니까?”
“그렇소. 정말 혹한이 십 년을 이어지면 대양도를 넘어 미주로 향해야 하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이미 제도를 정비하였으니 조금만 수정하면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회의의 결론은 한양 도성 주변의 신도시 건설과 지원자에 한정한 대양도 이민 두 가지의 결론으로 끝났다.
하지만 한파가 계속 이어진다면 내 계획대로 미주로 사람을 보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