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69화 (369/573)

근육조선 369화

2부 15장 1화 경기 수영

스페인 신부 세스페데스가 입신체비를 꾸준히 배운 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나 5년에 접어들었다.

1579년 음력 3월의 화사한 봄날이자 부활절을 앞둔 강화도 성당 인근에서 세스페데스는 여전히 입신체비에 몰두하였다.

“교행훈련(크로스 핏)을 행할 적에는 쉴 틈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주사위 두 개의 합이 팔 이 되었다네! 다음은 외줄 오르기, 아니, 사마리아 성벽 오르기 십오 회일세!”

온 몸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세스페데스는 평소처럼 성호 대신 악 소리를 내며 밧줄을 부여잡았다.

올해부터 시작된 끔찍한 고통도 이제 며칠 뒤에는 끝난다.

세스페데스는 지난 재의 수요일부터 이어진 사순절(부활절 이전의 절제와 회개기간) 내내 절육을 행하였다.

지난 사 년 동안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지만 지금 세스페데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는 이양원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양원은 요동 사건 이후 미주 관찰사로 발령받은 뒤 돌아와 휴가를 겸해 세스페데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쳤다. 세스페데스에게 악감정은 없었지만 그의 자질 하나는 대단하였기에 세스페데스의 입신체비를 조금 더 강화하였다.

그가 주목한 점은 가톨릭 교리에 있는 사순시기였다. 유성룡도 이이도 사순시기에는 세스페데스와 가벼운 입신체비만 행하였지만 이 시기를 절육시기로 정한다면 충분하다 여겼으니까.

‘자네는 예자의 행적을 믿고 따르는 신부라는 자이면서 어찌하여 예자의 고난을 추도하는 사순절이라는 기간을 헛되이 허비하는가?’

절제와 금육을 행하고 하루 종일 기도를 올리는 사순절은 식물성 고단백질 식단으로 몸에 쌓인 지방을 태우는 끔찍한 시기가 되었다.

물론 세스페데스도 교리에 의거해 항변하였다.

교리에 의거해 사순절 기간 내내 고기를 금하고 몸을 절제해야 합니다. 입신체비를 행하는 것이야 큰 문제가 없지만 항시 고기를 입에 대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독하기로 소문난 회회교 신도들도 노약자, 병자, 아이, 임산부 그리고 군인은 금식을 행하지 않는다 하였네. 그리고 자네가 먹는 식단에 고기가 들어간다고 문제가 있던가?’

‘아무리 그래도 고기를 대놓고 먹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예자문집(성경)을 살펴보니 금식과 금육은 자신을 단련하는 의무라 하던데 희멀건 죽을 들이켜느니 거친 절육식단을 먹는 것이 더욱 자신을 단련할 수 있을 것일세. 하지만 자네가 바란다니 어쩔 수 없군.’

금육을 감안한 식단은 일반적인 절육식단보다 더욱 끔찍한 녀석이었다.

밥은 귀리와 현미가 반반씩 들어차 부슬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며, 반찬으로는 육류 대신 단백질을 보충할 말린 두부를 비롯한 식물성 단백질이 나왔다.

그나마 치즈나 우유를 먹을 수는 있었지만 뼛속부터 조선 사람인 이양원의 입장에서는 유락(치즈)을 귀한 음식이라 여기니 양을 적게 주었다. 결국 그의 단백질은 대부분 콩 위주의 식사가 되었다.

심지어 강화유수부에서 일하는 잡부들조차 세스페데스 전용 절육식단과 희멀건 죽 가운데 희멀건 죽을 택할 지경이었다.

논리적으로도 피할 구석이 없어진 세스페데스는 이를 악물고 이를 따라왔다.

더군다나 이양원 또한 이황의 제자로서 입신체비 지식이 풍부하다. 수양대군이 남겨둔 교행훈련을 변형한 세스페데스 맞춤형 교행훈련이니 난이도는 어지간한 입신체비사들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상체로 밧줄을 지탱한다고 다가 아닐세! 하체는 밧줄을 꼬아서 잡아야 하며 복근은 이를 튕겨내야 제대로 오르는 법이지! 설령 떨어져도 크게 다치진 않는다네!”

“일곱!”

“가급적이면 밧줄을 거꾸로 잡아 내려오게 하고 싶지만 그냥 내려오게!”

세스페데스를 가르친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자질을 높게 평가하였다.

수양대군과 견줄 수 없어도 근육 한계량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았으니 잘만 하면 삼대운동 1,000근을 노려볼 수 있는 체격이다.

평범한 체격이었던 그의 몸은 어느 새 사지에 근육이 들어차 입신체비사보다 부족하지만 여느 유생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졌다.

하지만 이미 삼대운동 800근을 달성하였음에도 세스페데스는 교행훈련을 마치고 바닥에 널브러져 거친 숨만 토해냈다.

“자세가 아주 좋다네. 벌써 사십 일 동안 절육을 행하였지만 기본은 잘 익혀뒀군.”

“이…… 이러다 정말 주님 곁으로 갈 것 같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이게 뭔 짓입니까.”

“그게 절육의 묘미라네. 수양자(수양대군)께서도 절육을 행하다 그만두고 싶다 말한 적이 수십 번이나 되었지.”

평상시의 세스페데스라면 이 정도의 훈련으로 널브러지지 않겠지만 지금은 절육 기간이다. 일반적인 입신체비사가 30일 절육을 행하지만 그의 절육은 벌써 40일에 근접하였다.

일본으로 돌아간 고니시 대신 시종으로 부임한 가톨릭 신자인 오토모 치카이에(大友親家)가 세스페데스를 일으키고 미리 준비한 소금이 조금 섞인 끓였다 식힌 물을 건넸다.

처음에는 약간 짠맛이 감도는 미지근한 물이 뭐가 좋다고 마시는지 몰랐던 세스페데스이지만, 이제는 소금이 들어가야 몸에 빨리 스며든다는 사실을 체득하였기에 거침없이 들이켰다.

격렬한 운동으로 수분과 전해질이 모조리 빠져나간 세스페데스의 몸은 1리터에 가까운 소금물을 삽시간에 흡수해 균형을 되찾았다.

어느새 얼굴에 혈색이 돌자 세스페데스는 성호를 그으며 오토모 치카이에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세바스찬(오토모 치카이에의 세례명) 형제여 참으로 고맙네. 이 머나먼 조선까지 당도해 내 시종으로 일하다니. 듣자 하니 자네는 프란시스코 형제에게 세례를 받은 몸이자 당주의 동생인데 나를 돌봐주러 올 줄은 몰랐네.”

“바테렌(선교사)께서 우리 가문에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제 가문인 오토모는 조선의 신하인 오우치의 신하이므로 조선의 신하이기도 하지요. 어차피 가문에 남아 있어봤자 형님 등쌀에 시달리지 않겠습니까.”

서로 웃는 낯으로 말하지만 이양원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자이다. 정보에 의하면 오토모 가문은 지난 백 년 동안 조선의 충실한 가신으로 일한 오우치에게 모반을 꾀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은퇴한 이후에도 오토모의 실권을 부여잡은 오토모 소린(大友宗麟)이 오우치를 뒤엎기 전 조선을 염탐하려 보낸 것이리라.

하지만 왕인 이연도 생각이 있었기에 그를 내치지 않았다.

‘대내씨를 뒤엎을 역심을 품는다 하였는가? 대내씨를 뒤엎는 일은 왜국 내부의 일이니 개입할 필요는 없지만 아국에 역심을 품을지도 모르겠구나. 역심을 품은 이에게 아국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두 눈에 똑똑히 새기도록 하겠다.’

자고로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놈에게는 날뛴 이후에 벌어질 결과를 보여주면 충분하리라.

어느 정도 숨을 고른 세스페데스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 이양원은 며칠 뒤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그에게 미숫가루도 아닌 두부 가루를 내어주었다.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으니 역시 예자(예수)의 행적 가운데 삿된 행적이 없다는 것을 하나 더 증명하였어. 이걸 공식적인 입신체비 방법으로 만들면 좋겠군.”

“저기 그분은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을 행하고 사탄에게 유혹을 받은 분입니다.”

“행적이 과장된 바가 있을지도 모르지. 금식(禁食)이라 함은 함부로 행할 수 없는 일이라네. 자네도 금육(禁肉)을 행하며 느낀 바가 없지 않을 것인데.”

논리적으로 뭐라 항변하고 싶었지만 내일은 부활절이고 이 지옥 같은 절육도 끝난다.

육체적 고난이 끝나자 다시 신앙심이 샘솟아 오른 세스페데스는 성당을 보며 십자성호를 올렸고 이양원은 이 모습을 보면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였다.

“자네에게 보상을 하나 줄 것이 있다네. 다른 일은 아니고 자네가 명국의 보선함대에 축성(祝聖)이라는 의식을 행한 적이 있다던데 그 의식을 다른 장소에서 행해줄 수 있겠는가.”

“축성…… 이라 하셨습니까? 대체 어디란 말입니까?”

“이번에 경기수영에 신형 선박이 진수되어 첫 항해에 나설 예정인데 주상전하께서 머나먼 서역의 도사라 자네를 소개하고 축성이라는 의식을 기록에 남길 것이라 하더군.”

구석에서 세스페데스용 훈련장을 정리하던 오토모 치카이에가 귀를 쫑긋거렸고 세스페데스는 다시금 성호를 올리며 감사를 표시했다.

슬쩍 오토모 치카이에의 모습을 본 이양원은 괜히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흐려댔다.

“너무 좋아하지는 말게. 뱃사람들이 삿된 믿음에 집착하는 일은 흔하고 자네의 행적을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행하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 부활절이라는 절기가 끝나면 바로 개성으로 올라갈 수 있게 짐을 싸두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제 행적이 머나먼 동방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니 제가 고향에 있을 때보다 더욱 충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이양원의 입장에선 세스페데스가 뭘 하건 큰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요즘 들어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왜인들에게 힘의 격차를 알려주어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 단 하나이다.

절육이 끝나고 신자라고는 오토모 치카이에 단 한 명만 남은 성당에서 만찬, 아니, 절육이 끝난 부활절 식사가 시작되었다. 절육 시기에는 뻣뻣한 두부만 먹어댔던 세스페데스는 보드랍고 포슬거리는 노른자를 보자 눈물을 왈칵 쏟으며 입에 넣었다.

40일 동안 경험하지 못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의 맛이 그의 입에 감돌고 모든 미각이 살아났다.

평범한 식사마저도 즐겁게 경험한 세스페데스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날려 보내고 행복한 표정으로 오토모 치카이에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세바스찬 형제가 보기에는 이 고난이 어디와 견줄 수 있던가? 사순절 내내 수면을 제외한 모든 생활을 내놓는 이 참담하고 암담한 현실을 무엇과 견주겠는가?”

“어디에도 견줄 수 없으며 솔직하게 말씀드려 제가 배 한 척만 있었다면 신부님을 당장 제 영지로 불러들여 편히 지내게 했을 것입니다.”

헛된 꿈이지만 마음만은 받아들여야 하리라.

오토모 치카이에의 속내를 모르는 세스페데스는 성호를 올렸지만 정작 상대는 조선의 수군을 염탐할 기회를 꿈꾸고 있었다.

* * *

개성의 외항 벽란도에서는 경기수영의 새 함대의 진수식이 한창이었다.

일반적으로 선박의 수명은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이고 조선의 군선은 평균적으로 7년 주기로 함선을 바꾼다.

하지만 이번 진수식은 7척의 거선(巨船)이 동시에 교체되었으니 이를 기록하기 위한 도공(圖工)은 물론이요, 각 수영의 장수들도 집결하며 왕인 이연이 친림하는 자리였다.

경기수영의 함선 20척을 본 세스페데스는 겁에 질려 손가락을 덜덜 떨며 가리켰다.

“이게 한 함대의 선박이란 말입니까? 산탄데르(Santander: 스페인 북부의 항구)나 세비야에서도 이런 함선이 집결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세스페데스를 안내하는 사람은 경기수영이자 우도수군통제영(도성에 있는 임금 기준에서 우측이며 평양, 황해, 경기, 충청, 전라도)의 통제사인 정걸이었다.

그는 오히려 흥미로운 표정으로 세스페데스의 말에 답하였다.

“흔치 않아? 그럼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거야 일개 전단(戰團)과 상단이 결합되는 경우에만 있었지요. 더군다나 저 거대한 선박은 뭡니까? 저는 이런 거선이 군선으로 쓰인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서야 제가 탑승했던 보선이라는 배보다 큰 것 아닙니까?”

세스페데스의 손가락이 가리킨 거대한 함선은 정말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였다. 한때 조선에서 건조하여 명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보선과 견줄 수 있으며 오히려 길이가 길고 폭이 좁기에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정걸은 그 모습을 보자 껄껄 웃으며 답하였다.

“이전에 서양에서 나포한 선박의 설계와 예전 보선을 만들며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삼아 새로 만든 대장선일세. 아직 부족한 점은 있고 많이 양산할 수 없지만 배수량(排水量)만 일천이백 돈(墩)에 이르지.”

“돈? 돈은 또 뭡니까? 근이나 관이 아니고 돈이라니요?”

“서애 그 친구가 북한산성을 만들며 관 단위가 너무 늘어진다고 새로운 단위를 만들게 되었네. 돈은 열 석(890㎏)인데 영 익숙하지 않은 단위라서 계산하기 까다로워.”

실은 최대한 익숙한 톤(ton) 단위와 맞추려는 유성룡의 애처로운 노력이었지만, 조정은 이를 괜찮은 생각이라 받아들여 바로 적용하였고 함선과 대규모 토목공사에 쓰이게 하였다.

대장선은 1,070톤에 달하는 거선이기에 탑재된 함포만 좌우로 27문씩 도합 54문이며 갑판 위에 놓인 신형 대완구와 신기전 그리고 자모포를 합치면 60문이 가뿐히 넘어가리라.

더군다나 도열한 병사들의 모습을 보자 더욱 주눅이 들었다.

“함대의 규모가 대체 얼마나 됩니까? 모인 사람들이 적게 잡아도 오천 명은 될 것 같습니다.”

“규모라? 자네가 서역으로 돌아가 이를 알릴 것이니 잘 말해주겠네. 여기 모인 함선의 총 배수량은 일만 이천 돈(10,840톤)에 달하며 인원은 칠천 명이지. 나머지는 배 위에 올라 말하도록 하겠네.”

이연의 일장연설이 끝나고 배가 항구를 떠났지만 함대의 규모는 점점 불어났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함선 열 척이 달라붙자 함대의 규모는 더욱 늘어났고 세스페데스는 당연한 일이라 여겼지만 오토모 치카이에의 표정은 아예 흙빛이 되었다.

“자고로 함대가 무력만 행사하던가? 뒤에 붙은 열 척의 함선은 예부터 쓰이던 풍역선을 개수한 순방선인데 평시에는 화포 대신 물자를 옮기고 무역을 행하지. 우리 경기수영의 권역은 남경 인근까지이며 대양도(대만)를 한 번 찍고 다시 돌아온다네.”

“그러하면 저 함선이 왜국에 다니는 이유는 조선에서 쓰이지 않는 함선이라 그런 것입니까?”

“틀린 말은 아닐세. 칠 년을 사용하여 폐선 직전이 된 함선은 민간에 불하하여 수리하는 법일세. 상인들이 이를 이용해 왜국과 무역을 행하지. 자고로 사백 돈(360톤) 이하의 함선은 다루기 편한 법이니까.”

오토모 치카이에는 물론이요, 조선과 친하지 않은 왜인들이 가진 환상이 삽시간에 깨어지고 있었다. 조선의 거선이라 불리며 경외하던 함선이 폐기 처분된 함선을 재활용한 녀석이라니.

주변을 돌아보니 이보다 작은 함선은 없었다. 눈으로 보아도 크기 차이가 역력하니 일본에서 즐겨 사용하던 세키부네는 열 척이 접근전을 시도해도 대장선은커녕 일반 선박을 당해내지 못하리라.

이 함대는 최소한 세키부네 삼백 척으로 달려들어야 승산이 있다. 하지만 이게 조선 함대의 ‘일부’라는 말이 떠오르자 치카이에는 뱃머리로 달려가 속의 모든 물건을 게워냈다.

“허어 이 왜인은 왜 이러는가? 자네 혹여나 멀미를 심하게 앓는가? 신형 선박은 좌우 선회력은 조금 떨어져도 배가 잘 흔들리지 않아 좋은 법이거늘.”

“그…… 그렇습니다. 배가 흔들리지 않아도 멀미가 생기는군요.”

“이게 다 근육이 부족해서야! 자네가 섬기는 세스페데스를 보게! 저 친구는 대퇴근을 발달시켜 상체를 꼿꼿하게 유지하지 않던가! 하지만 자네의 의기만큼은 높이 사겠네!”

정걸은 멀미에 약한 사람이 배에 잘도 올랐다고 좋아했지만 오토모 치카이에는 조선의 신하인 오우치를 집어삼키려는 형과 아버지를 말리려는 마음만 들었다. 이 거대한 함대라면 오우치의 모든 항구를 한 달 이내에 초토화시키리라.

자고로 멀미는 하체를 꾸준히 움직여 상체를 유지하면 사라지는 법이지만 잡념을 지우고 정신을 맑게 하여도 사라진다.

정걸은 겁에 질려 창백해진 두 외국인의 얼굴을 보며 지레짐작으로 함대의 설명을 늘어놓았다.

“대장선은 경기수영과 대양도수영에 각기 두 척을 배정할 예정이네. 거대한 함선이라 비용도 많이 들고 양산할 필요성도 없지. 이 함대의 중핵은 저 뒤에 있는 순주선(順州船)일세!”

“저 함선만 하여도 어지간한 갤리온보다 큰 녀석인데 대체 몇 척을 배정할 생각이십니까?”

“초기 물량은 일곱 척이고 이후 매년 일곱 척씩 생산하며 차츰 수량을 늘려나갈 예정이네. 이 함대에만 칠백 돈(620톤) 급 순주선 열한 척을 배정하면 완성되지.”

정걸은 대장선의 경로를 서해상에 있는 조그마한 암초 인근으로 지시했다. 주상전하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화력시험을 실시하라 하였는데 이는 장졸들의 사기에도 좋은 일이리라.

흥이 돋은 정걸은 다시 선박의 상세를 말하였다.

“순주선이 크기가 작다고 무시하지 말게. 장착한 화포만 서른여섯 문이요 갑판에 올린 화포를 포함하면 쉰 문에 달할 것이네. 그리고 개수한 뇌력포를 네 문이나 올릴 수 있다네.”

“그 돈은 어디서 나셨습니까?”

“뭐 인삼을 팔면 함대 유지비는 나오는 법이지. 여하튼 조금 작은 순방선도 만만치 않다네. 신형 뇌력포는 올릴 수 없지만 오백 돈(450톤)급 함선이니 왜…… 아니, 여송 해적 따위야 충분히 격퇴할 수 있어.”

서른 척의 함대가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여 학익진을 이루었다. 지평선 한쪽이 모두 함선이 들어찬 모습이라 세스페데스는 자연스럽게 탄사를 올렸다.

“일개 전단 규모를 넘어섰군요. 이 정도면 제 고향인 스페인에서는 두 전단으로 나누어 운영할 수준입니다. 그럼 조선은 이런 함대를 각 수영마다 두고 있습니까?”

“그건 아닐세. 경기수영과 대양도수영은 쌍둥이처럼 같은 함선을 운영하고 나머지 모든 수영은 규모가 작은지라 모두 합쳐야 경기수영과 대양도수영의 합과 대등하지. 여기 모인 함대가 전체의 이할 오 푼(25%)이라 생각하게.”

세스페데스는 자연스럽게 함대 규모를 계산하며 답이 없다 생각하였다. 그가 기억하는 스페인의 함대(armada) 전체 비교하여도 양과 질 모두 뛰어나며 아마 세월이 흘렀음을 감안해도 우위에 있으리라.

모든 함대가 명령에 맞추어 깃발을 흔들며 신호를 교환하였고 대장선에 여덟 문이나 배치된 뇌력포를 시작으로 모든 화포가 불을 뿜었다.

직사로 날아가는 뇌력포와 벽력포를 비롯한 화포부터 화약 연기를 흘리며 날아가는 신기전, 그리고 곡선으로 날아가는 비격진천뢰까지.

약간의 나무가 자란 무인도는 삽시간에 쏟아진 포격으로 흙먼지와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졌다.

흙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지표면에 있는 모든 물체가 사라졌다.

“역시 나는 화포를 쏘고 나서 밀려오는 찌릿한 포연이 좋아. 자네들도 그렇지 아니한가?”

지발(遲發)로 인해 뒤늦게 터진 비격진천뢰가 다시 무인도를 뒤흔들어놓았고 오토모 치카이에는 그 광경을 보며 눈을 돌릴 줄 몰랐다.

설령 일본 전체가 하나 되어 힘을 합쳐도 조선 상대로 승산이 희박하리라.

이 함대가 오사카를 공격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말

세스페데스의 비교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레판토 해전 기준으로 스페인 함대 총 배수량은 2만 톤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니 현재 조선보다는 부족하거든요.

스페인은 현재도 함대를 계속 찍어내며 훗날 칼레해전이 되었을 때 원정군 함대규모 4만 톤을 달성하여 양적 측면으론 조선을 넘어섰습니다. 조선 함대의 상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준은 1579년 초기 계획안이 아닌 1583년 함선 교체 계획 직후를 기준으로 합니다.

역사 변경으로 인해 화포 등급이 변하였기에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변한 역사에서 서양과 비교한 화포 등급은 다음과 같습니다

뇌력포: 서양 기준 캐논-로열, 데미캐논이나 캐논보다 상급 화포

벽력포: 서양 기준 소형 카로네이드. 현재 동일 화포 없음

대완구: 사석포, 현재 서양은 유탄 사용 없음.

천자총통: 서양 기준 컬버린

지자총통: 서양 기준 데미컬버린

현자총통: 서양 기준 대형 세이커(본래 역사의 천자총통)

황자총통: 서양 기준 셰이커보다 하급(본래 역사의 현자총통)

*함선 상세

상무선(서방 기준 대형 캐러벨, 함대 보조업무 및 무역)

항해일수 : 45일 내외

배수량 : 180~240톤

치수 : 길이 24.8m(75자), 폭 5.3m(16자), 흘수선 2.4m(7자)

무장 : 현자총통4문, 황자총통 8문 이외 갑판 함포 4문 추가편성 가능

선원 : 화포담당 선원 56명, 백병전 선원 20명, 기본 조함인원 36명 기본편재 112명 전시편재 160명

순방선 (서방 기준 소~중형 갤리온, 풍역선 후기형이며 대규모 함대 보조임무)

항해일수 : 30일 내외

배수량 : 300~400톤

치수 : 길이 30m(90자), 폭 6.6m(20자), 흘수선 2.9m(9자)

무장 : 지자총통 6문, 현자총통 12문, 갑판 소구경 함포 8문 추가편성 가능

선원 : 화포담당 선원 68명, 백병전 선원 30명, 기본 조함인원 45명 기본편재 145명 전시편재 180명

순주선 (대형 갈레온급)

항해일수 : 30일 이하

배수량 : 550~700톤

치수 : 길이 37m(112자), 폭 8.3m(25자), 흘수선 3.5m(10.5자)

무장 : 뇌력포 4문, 천자총통(컬버린) 12문, 벽력포(소형 카로네이드) 4문, 갑판 함포 대구경 추가편성 가능

선원 : 화포담당 선원 100명, 백병전 선원 40명, 기본 조함인원 80명 기본편재 220명 전시편재 260명

대장선 (초대형 갈레온급, 1583년 기준 4척만 존재하며 경기수영 및 교대하는 수영에 2척씩 배치)

항해일수 : 20일 내외

배수량 : 1,000~1,200톤

치수 : 길이 59.4m(180자), 폭 13.2m(40자), 흘수선 4.3m(13자)

무장 : 뇌력포 8문, 천자총통 16문, 현자총통 24문, 벽력포 6문, 갑판 함포 대구경 추가편성 가능

선원 : 화포담당 선원 176명, 백병전 선원 80명, 기본 조함인원 120명 기본편재 380명 전시편재 450명

-보선은 크기만 키운 함선이기에 실질 전투력은 대장선의 절반 수준입니다.

판옥선 (첨저선이 다니기 힘든 충청, 전라수영에 배치)

항해일수 : 5일

배수량 : 270~350톤

치수 : 길이 30m(90자), 폭 10m(39자), 흘수선 2.4m(7자)

무장 : 현자총통 6문, 황자총통 6문, 갑판 대형화포 추가편성 가능

선원 : 화포담당 선원 60명, 백병전 선원 40명, 기본 조함인원 160명 기본편재 260명 전시편재 300명

본래 역사의 임진왜란 시기 대형 판옥선

항해일수 : 7일

배수량 : 150~200톤

치수 : 길이 20m(60자), 폭 7m(20자), 흘수선 2.1m(6자)

무장 : 본래 역사의 현자총통 12문, 기타 화포 6문

선원 : 화포담당 선원 35명, 백병전 선원 30명, 기본 조함인원 100명 기본편재 165명

*각 수영 함선 배치 상세

-전시에 긴급 편재되는 함선은 배수량에 산입하지 않았습니다. 서양도 상선을 징발해 긴급 편성할 때는 주 함대 배수량이 아닌 용병함대로 산출합니다.

-총력전이 시작될 경우 군선 이외의 보급선으로 추가 함대가 편성됩니다. 이런 수송선들 또한 전력에 산입하지 않았습니다.

1. 경기수영: 전시편재 30척, 평시편재 20척: 총 배수량 11,500톤

대장선 2척(예비 1척), 순주선 11척, 순방선 8척, 평시 무역 전시 참전 상무선 10척

수비 범위는 서해 일대부터 대양도까지 관할. 주 무역경로는 남경 일대.

2. 대양도수영: 전시편재 30척, 평시편재 20척,: 총 배수량 11,500톤, 경기수영과 동일 함선 사용

대장선 2척(예비 1척), 순주선 11척, 순방선 8척, 평시 무역 전시 참전 상무선 10척

수비 범위는 대양도부터 여송 일대이며 분견대는 여송(필리핀) 함대와 교대. 주 무역경로는 산동반도 일대.

3. 경상수영: 전시편재 26척, 평시편재 20척. 관할구역은 사도가시마까지: 총 배수량 8,200톤

순주선 4척, 순방선 10척, 상무선 6척, 평시 무역 전시 참전 상무선 6척

수비 범위는 경상도. 큐슈 북부, 대마도 그리고 사도가시마. 주 무역 경로는 사도 금광과 일본 큐슈 북부 특산물.

4. 전라수영: 전시편재 30척, 무역은 충청수영에 일임: 총 배수량 8,000톤

순방선 5척, 순주선 5척, 판옥선 20척

5. 충청수영: 전시편재 35척 평시편재 20척: 총 배수량 7,000톤

순주선 10척, 판옥선 10척, 평시 무역 전시 참전 상무선 15척

수비 범위는 충청도 일대이며 무역 경로는 남경 일대.

6. 황해수영: 경기수영과 통합 운영

7. 외방 수영: 여송 일대 수영으로 징집된 상선, 태평양을 오가는 군선 등으로 구성되어 정확한 편재는 없음: 총 배수량 1만5천 톤 내외.

총 배수량은 6만 톤에 달하며 이 중 수비 위주가 아닌 공격 작전으로 사용 가능한 선박은 3만5천 톤 내외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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