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68화 (368/573)

근육조선 368화

2부 14장 9화 대결 이후에는

발굴조사를 기초 삼아 각 성문의 간단한 모형을 만들어 박순에게 보고를 올렸다.

처음에는 옛 산성에서 배움을 얻었다 하여 심드렁해진 박순도 점토를 쌓아 올린 모형을 보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허가하였다.

“과연 왕태조가 패퇴하였던 산성이로군. 나도 기록만 알고 있을 뿐 실체는 몰랐는데 이를 되살리다니 과연 유 부정(副正: 종3품 관직)일세. 예산이 빠듯하겠지만 잘 추진해 보게나.”

이렇게 넘어갔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 삼년산성 하나만 있겠는가.

반쯤은 제자인 진해대군을 가르칠 겸 각 문의 위에 세울 누각(樓閣)의 설계안을 진해대군과 추진하는 동시에 배움을 쌓게 만들었다.

변란이 발생하면 주상전하가 피난해올 가장 큰 문인 대성문은 악의를 가득 담아 공중 3m에 띄운 현문 방식을 택했는데 여기에 주상전하가 어떻게 이동하냐고? 통나무를 밟고 오르면 된다.

“내가 현문(懸門)이라 불리는 문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궁금했는데 참으로 간단한 방식이구려. 안에서 튼튼한 통나무를 내어 발판으로 삼고 변란이 벌어지면 통나무를 내놓지 않다니.”

“세상일은 간단하기도 하지만 복잡하기도 한 법이지요. 저도 배운 바가 있으니 옛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을 하여 여러 방안을 창안하고 적용하려 합니다. 다음에는 대서문입니다.”

“형태가 참으로 기괴하구려. 성벽을 ‘ㄱ’ 자와 ‘ㄴ’ 자로 얽어매듯 만들었으니 여기도 적들의 시체로 가득 찰 것이오.”

포천 성동리산성은 어긋문이라 하여 성문으로 향하는 경로를 ‘ㄹ’ 자 형태로 만들었다. 포위당해 진격하는 적들은 이 좁아터진 길목을 시체로 막아버리겠지.

그리고 동문은 아예 대문을 두 개 만들었다.

“여기를 보십시오. 대군 어른께서 설계하실 누각 아래의 문은 가짜 대동문입니다. 문이 계곡 정중앙에 나 있는 것 같지만 적들은 여기를 무너트려도 석벽이 나와서 절망할 것입니다.”

“그럴싸한 가짜 문을 만들고 옛 신라 사람들이 만든 것처럼 정문을 엉뚱한 장소에 두었구려. 생각해 보니 진짜 정문과 누각 간의 시야가 트여있으니 혹여나 정문이 들켜도 막아내는 일이 쉬울 것이오.”

이 산성을 뭐라 하지? 이미 북한산성의 틀을 벗어났으니 북한삼년칠중대모망이산성?

설령 성벽이 뚫려도 내부에 참호를 파 수비병이 머물 장소를 만들고 뚫릴 경우 화포 사격이 가능한 곳에는 화포사격 방어력이 뛰어난 판축다짐으로 이중성벽을 설계하였다.

전쟁이 벌어져 여기까지 밀려난다면 조선은 이미 반쯤 망한 상태겠지만 이런 산성을 설계한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장소에 가서 제대로 된 산성을 쌓으리라.

산성이 차곡차곡 진행되니 군기시에서도 새로 만든 화포를 설치하였다. 험한 산을 통과하느라 지나치게 무거운 광철포는 운반할 수 없었지만 각 성문에 최소 열두 문의 화포를 두었으니 이것만 하여도 어디인가.

그런데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

“저기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는 보이지 않는데 어디에 있는가?”

“비격진천뢰요? 그거 요즘 각지의 읍성에서나 쓰이는데요?”

병법서를 보니 비격진천뢰는 문종시기에 개발되었고 꾸준히 쓰였다 했었다.

내가 병기에 대해 많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임진왜란 시기 드라마에 주구장창 나와 왜놈을 싹 쓸어버린 비격진천뢰가 왜 없단 말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던 화포인 완구(碗口)를 찾아보았는데 정말 없다! 정작 조선시대에는 흔치 않다던 신기전화차도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 시선을 느낀 군기시 장인은 지나가는 말로 답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장손이라는 친구가 비격진천뢰를 개수할 예정이긴 한데…….”

개수? 비격진천뢰가 뭐가 부족해서 개수까지 한단 말인가?

* * *

군기시에는 오늘도 화포의 개량 이후 시험이 한창이었다.

북한산성의 축조 과정에서 벌어진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군기시가 패하자 모든 장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전력을 다해 업무에 임하였다.

“예순셋! 화포 시험은 언제인가? 한시 빨리 보고 싶은데!”

“재촉하지 말고 일흔 번을 채우게나. 그나저나 이 활대망치(스쿼트 랙을 적용한 망치)를 일흔 번이나 다루다니. 자네 신장은 늘어나지 않았어도 하체 하나만큼은 비범해졌군.”

하성군과 유성룡이 힘을 합쳐 만든 활대망치를 하체의 힘으로 놀리던 왜국 출신 장인은 어느새 하체에 몰두한 남명 조식의 제자들과 견줄 거대한 대퇴근을 꿈틀거리며 다시 망치를 들어 올렸다.

군기시 장인들과 다툴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소문이 도성 전체에 파다하게 퍼질 지경이었으니 그들의 자존심은 어마어마하였다.

결국 이들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 유성룡을 꺾으려는 마음 하나로 모든 장인들이 뭉쳐 신형 화포의 제조를 손꼽아 기다리기에 이르렀다.

“이봐! 신형 화포의 시험을 시작한다네! 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확인하러 가보세!”

수많은 장인들이 집결하였고 마침내 유성룡의 경사요새(성형요새)에 대응할 막자사발처럼 생긴 포구를 가진 화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화포가 아닌 탄환이 주요 시험 대상이었다.

신형 포탄을 쏘기 위해 조금 크게 만든 대완구를 45도 각도로 거치한 화포장들은 농구공만 한 탄환을 세 명이 들어 포구에 밀어 넣고 심지에 불을 붙인 뒤 멀리 도망쳤다.

“이번에는 내부에서 자폭하지 않겠지. 장손(長孫) 자네만 믿고 있겠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의 철물을 더 두껍게 만들고 진흙을 바깥에 둘렀으니 포격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 년 전에 군기시에 들어온 이장손(李長孫)은 뇌력포와 신형 화포인 광철포의 개수를 진행하던 김지의 작업에 끼어들지 못하는 경력을 가진지라 예전 병기를 배워 실력을 쌓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장손은 본래 역사에서 비격진천뢰를 개발한 인재였기에 25세에 불과한 나이에도 비범한 실력을 보였으며, 백 년 동안 진보하지 않아 도태되었던 비격진천뢰를 개량하기에 이르렀다.

짧은 화포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농구공만 한 철환이 허공으로 치솟아 포물선을 그리며 200보(320m) 거리의 둔덕에 꽂혔다.

잠시 뒤 철환이 터져나가며 요란한 폭음이 들려오고 마름쇠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성공이다! 성공이라고! 이 녀석이면 서애가 만든 그 경사요새(성형요새)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겠어! 드디어 문종대왕이 만든 기물을 넘어섰군!”

“아직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새로 만든 비격진천뢰이니 최소한 다섯 발은 쏘아 한 발도 자폭하지 않아야 실전에서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연속된 사격에도 비격진천뢰는 화포 내부에서 자폭하지 않고 멀쩡히 쏘아졌다. 오히려 한 발이 지발(遲發)도 아니고 불발되어 장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이 정도면 차고 넘치는 성공률이다.

내부의 파편으로 쓰이는 마름쇠가 날아간 거리를 계산한 김지는 열 보(16m) 이내의 모든 사람이 갈기갈기 찢겨 육편이 될 위력임을 알아차리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위력을 확인하던 이장손의 어깨를 두들긴 김지는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서애 그 친구는 정말 머리 하나는 좋은 자일세. 서역의 학자들의 방식을 본받아 그런 기괴한 요새를 만들다니. 하지만 비격진천뢰는 서애가 만든 요새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서애 어르신이 처음부터 유리한 조건이 아닙니까? 우리가 만든 모든 수를 파악하고 두 달의 시간을 보냈으니 대결을 한 번 더 행해야지요!”

“이 모두가 이장손 자네 덕분일세. 문종대왕께서 만드신 비격진천뢰를 개수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런 효험을 보여주다니!”

문종이 본래 역사보다 백 년 가까이 빠르게 만든 비격진천뢰와 이를 발사하는 화기인 대완구가 사장된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풍족한 구리와 화약 덕분이었다.

풍족한 자원은 더 많은 평사포를 만들 수 있게 하였으니 아예 다른 탄환을 사용하는 비격진천뢰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화포가 사용하는 화약량은 점차 늘어났다.

하지만 비격진천뢰는 늘어난 화약으로 인해 증가한 발사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내부에서 자폭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비격진천뢰에 대한 고려를 하여도 딱히 나은 점이 없었다.

뇌력포를 위시한 평사포보다 화력이 좋아도 사정거리가 짧으며, 비격진천뢰를 날릴 사정거리에서는 벽력포(소구경 카로네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사거리와 화력 모두 애매한 데다, 자폭이라는 치명적 단점이 존재하니 서서히 도태되어 각 읍성(邑城)에서 애물단지 노릇을 하거나 함선에 투척용으로 배치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장손은 이를 완전히 새로 설계하였다. 비록 문종이 이름을 정한 비격진천뢰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문종이 본다면 참으로 흡족할 일이었다.

“세상일은 알 길이 없는 법이야. 자네가 옛 무기를 답습하는 과정에서 비격진천뢰의 가능성에 눈을 떴고. 비격진천뢰가 자폭하지 않게 개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력도 늘어나다니.”

“하지만 비격진천뢰의 단가가 올라갔으니 이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로군요.”

“단가가 올라간 것이 대수인가! 오히려 수철연의환(水鐵鉛依丸) 방식을 빌리니 정확도도 올라갈 것이요 파편도 더 많이 비산하겠지! 이 녀석이 적함에 꽂혀 단번에 적을 분쇄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대퇴근이 웅장해지는군!”

문종이 개발한 비격진천뢰는 거푸집에 주철을 부어 만들어 일체형으로 만들고 안에 마름쇠와 진흙 그리고 화약을 잔뜩 담아두고 지연폭발을 위한 심지를 꽂아 넣었다. 덕분에 충격이 바로 전달되어 자폭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장손은 이를 철저히 새로 만들었다.

사발 형태로 만든 두 개의 철물을 조립하되 외곽부터 진흙 - 마름쇠 - 화약 순서로 쌓아나가고 겉을 납으로 감싸 고정하는 방식이다.

단가는 세 배 가까이 올라 한 발에 은자 10냥에 달하게 되었지만 자폭의 위험성이 사라졌으니 큰 문제는 아니리라.

하지만 탄착군을 확인한 이장손은 실망스러운 눈초리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거…… 정확도가 너무 떨어지지 않습니까? 본래 사백 보(640m)는 쏘는 비격진천뢰를 절반 거리인 이백 보(320m)로 쏘았는데 탄착점이 마흔 보(64m)까지 차이가 나다니요.”

“작은 대완구에서 무거운 탄환을 발사한 덕분에 발사한 순간 균형이 흔들리며 포구가 휘청거린 탓이 분명하네. 그러하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무거운 화포로 발사하면 어떨까?”

군기시의 창고에는 수많은 시험화포가 있었다.

개중에 구경이 비슷하고 길이가 여섯 자보다 조금 부족한 녀석을 꺼내온 김지는 화약량을 최대한 적게 하여 설치하고 다시 발사하였다.

충격에 강한 신형 비격진천뢰지만 길어진 포신으로 인해 더 많은 충격을 받았다.

결국 예상과 달리 굉음을 내면서 화포 입구에서 불꽃이 치밀어 오르고 이전과 다른 굉음이 터져 나왔다.

-투쿵!

“이런 망할! 내부에서 자폭해 버렸어!”

시험용이라 튼튼하게 만든 화포조차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나버렸고 장인들은 혀를 차며 달려들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화포 조각을 줍는 동안 김지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역시 포구가 길면 충격이 더욱 커지니 견디질 못하는군. 결국 대완구의 뒤통수만 엄청나게 키워야 하는데 이래서야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하면 화포를 쏘아도 각도가 흔들리지 않게 철물을 두어 보조하면 어떻겠습니까?”

“일단 주상전하에게 보고를 올리고 다음 개발에 착수하여야지. 탄환을 개수한 것 하나만 하여도 충분한 일이니 앞으로 일 년 정도 시간을 두며 천천히 개발하자고.”

철물로 보조해도 방법이 문제다.

일단 보고를 위해 정확도는 포기하고 위력에 집중하기로 한 김지는 며칠간의 야근을 보상하듯 대낮까지 군기시의 숙소에서 잠을 청하였다.

“어르신. 손님이 도착하였습니다.”

아직도 피로가 가시지 않은 김지는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다 애써 눈을 비벼댔다.

어지간한 일은 서신으로 전하면 충분한데 왜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대체 누구인가. 혹여나 주상전하께서? 아니면 병판대감이라도 방문하였단 말인가? 내가 곤히 자고 있으니 어지간한 사람이면 돌려보내도록 하게. 대체 날 찾아온 목적이 무언가?”

“여해라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화포를 잘 사용하였지만 부족한 점이 있어 고변할 것이 있다 하더군요. 그냥 돌려보낼까요?”

“여해라 하였는가? 혹여나 충청수영의 수군우후인 여해를 말하는 건가? 잠시 기다리라 하게.”

여해 이순신은 얼마 전에 주상전하에게 상을 받아 충청수영의 수군우후(水軍虞候)로 임명된 자이다. 아마 휘하에 판옥선 열 척을 두어 병사를 조련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인데 화포에 부족한 점이 있다니.

화포를 다루는 솜씨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라 칭찬하고 병사를 맹렬히 다룬다 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화포의 사격을 기록한 사표(射表)를 가장 많이 보낸 사람이니 만나볼 가치는 있으리라.

세수를 한 김지를 만난 이순신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어르신을 뵙게 되었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직책인 수군우후를 담당하는 여해라 합니다.”

“다른 일은 되었고 화포에 부족한 점이 있다 했는데 대체 무엇인가? 지금까지 화포가 부족하다 하는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현지에서 개수해 완성하였는데.”

“화포의 정확도가 부족한데 이러한 설계 방식을 적용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본래 제가 뭍에서 화포를 쓸 적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배 위에서는 한계가 있었지요.”

군관들이 현지에서 화포를 개수하는 일은 흔하고 간혹 성과를 보이면 실제 설계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어 가져오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판옥선의 크기를 키우고 화포도 크기를 키우자는 정걸 정도만 자신을 찾아왔으니까.

하지만 거의 책과 비슷한 크기의 화포 요구사항을 살펴본 김지는 그 상세함에 혀를 내둘렀다. 당장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궁금한 부품도 보였다.

“명국의 척계광이 사용했다던 호준포(虎蹲砲)의 도본이 아닌가? 여기서 호준포의 앞을 받치는 철물을 화포에 적용하자고? 이걸 왜 쓴단 말인가?”

“새로 만든 포가에 화포를 올릴 때 화포 중앙의 철물로 고정합니다. 하지만 사방으로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화포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아 각도가 틀어지지요. 앞을 굳건히 받칠 철물이 필요한데 호준포는 그러한 철물이 있더군요.”

장거정으로 인해 죽은 이후 탄핵을 당하였던 척계광은 장거정이 죽은 이후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자 역으로 간신과 척을 진 명장이라 부각되며 칭송을 받았다.

그의 행장록은 물론이요, 각종 전투 기록과 사용한 병기를 정리한 기효신서(紀效新書)가 조선에도 전해졌고 군기시에도 한 질이 비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어느새 스스로 입수한 기효신서를 터득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요구사항의 뒤에는 표의 형태로 화포 사격기록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고 간혹 녹색 물감으로 강조하고 부(不)라 적힌 기록이 보였다.

아마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균형이 틀어진 화포가 멋대로 날아간 것이리라.

“고봉(高峰: 기대승의 호) 대감이 각도를 정밀히 측정할 수 있는 포가를 만들어도 군관들이 사표를 대충대충 적어댔었지. 팔선(삼각함수)을 제대로 익히지도 않고 대충 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자네는 항시 모든 일을 온전히 행한 것이네.”

“저는 모든 명령을 완수하려 항시 사력을 다할 뿐입니다.”

“그것만 하여도 평범한 장수가 아닐세. 여하튼 자네가 제안한 화포 개수 방법은 참으로 마음에 들긴 하네. 하지만 이 화포를 다른 장수에게 주어도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겠지.”

김지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개수한 화포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이순신 외에는 없었다.

다른 장수들이 보낸 사표를 보면 엉망진창이라 애초에 적당히 보다 넘기는 실정이었다.

대충이라도 적는 자는 나은 편이며 화포 종류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적어대는 자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심지어 예전 기록을 그대로 베껴 적는 이도 흔했다.

어명으로 정한 바가 아니고 이현전에서 연구 목적으로 보내라 권고한 것이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고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온전한 사표를 적어나가는 이순신이라면 자신이 만든 신형 화포의 사격 방식을 온전히 규정할 수 있으리라.

#작가의 말

좌측이 구형 비격진천뢰, 우측이 신형 비격진천뢰입니다.

둘 다 최소 지연시간은 1분이고 가급적 5분 정도로 설정합니다. 이 시대의 도화선은 초석을 흡수시킨 새끼줄인데 불안정한 녀석이라 방법이 없습니다.

비격진천뢰는 위력은 좋지만 자폭하면 배를 날려 먹으니 지방 읍성 수비용으로 도태되었습니다. 하지만 신형은 배 위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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