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54화
2부 13장 1화 장거정 죽이기(1)
북경에서 돌아오고 석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은 산적해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외조는 외교는 물론이요, 외교 활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업무를 모두 책임진다.
오늘 아침의 논의 내용은 요동과 관련된 논의였다.
그사이에 요동을 정찰하고, 아니, 아예 업무 교대를 한답시고 하르빈부터 의주까지 종단(縱斷)해 버린 임차손은 말솜씨가 부족한 사람답게 쭈뼛거리며 보고를 올렸다.
“명국에 보고를 올리기를 오천 기의 기병을 동원해 북원의 잔당을 소탕한다 하였고 이를 허가하였습니다. 요동 일대에는 북경에서 내려온 오만에 달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오만에 달하는 병력이라. 혹여나 도적이 들끓지는 않던가? 도적이 많이 남았으면 명국의 병졸들이 이를 수상히 여길 것이네. 그리고 요동총병관은 어찌 되었나?”
“요동총병관 이여송은 부하에게 암살당해 북원의 수도로 목이 끌려가고 몸뚱이는 심양성에 버려져 있었다더군요. 심양성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 죽고 살아남은 이들은 노예로 끌려갔지요.”
본래 조선의 계획은 요동이 도적으로 들끓을 때 조사관과 병사를 파견해 요동총병관 이여송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도적들의 실상을 파악할 계획이다.
하지만 증언을 할 사람이 사라졌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임차손의 보고는 더욱 막막했다.
“요동 일대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도적들이 살던 마을은 달자들에 의해 약탈당하여 마을이 있던 흔적만 남았고 요동에 있는 도적 가운데 절반이 사라졌습니다.”
“절반이 사라졌다면 나머지 절반의 도적들은 여전히 남아 있단 말인가? 혹여나 명국에서 온 병사들이 도적을 소탕하지 않던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도적들이 달자들에게 고향을 잃은 유민(流民)이 되었다고 명국 병사들의 보호를 받았지요. 아시다시피 전쟁이 끝나면 유민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김종인도 한숨을 내쉬었고 상이경은 아예 이마를 감싸 쥐었다.
지나친 약탈과 살육으로 실상이 사라졌다! 모두 거지 신세가 되었으니 도적과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약탈과 살육을 일삼는 북원은 물론이요, 도적들에 대한 복수심에 일단 장정은 다 죽이고 보는 북인 청년들까지 합세하였다.
여기서 증거가 남을 리가 있는가?
김종인은 혀를 차면서 장계 초안을 작성하며 입을 열었다.
“장거정을 비롯한 명국의 관료들은 아주 신이 났겠군. 명백한 도적이 보여도 북원의 침입으로 삶이 피폐해진 백성들이 돌변했다 하면 되니 변명하기 좋겠어.”
“이미 식량이 부족한 도적들이 서로를 죽이다 명국 군대로 나아가 군량을 축내는 실정입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더군요.”
“잠깐! 생각해 보니 명국 병졸들이 순시를 도는 와중에 자네는 어떻게 의주까지 요동 일대를 종단하였나? 명국 병사들이 엄히 책망하였을 것인데 혹여나 명국과…….”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서 임차손을 노려보았는데 그는 오히려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저희가 요동으로 들어온 이유가 달자 잔당을 소탕하는 이유가 아닙니까? 그런데 주변에 머리를 기른 달자들이 넘쳐나는 형국이라 손을 썼습니다. 덕분에 달자를 좀 잡고 명국의 쌀을 얻어먹으며 편히 종단하였지요.”
임차손의 말을 해석하면 보이는 도적을 다 때려죽이고 머리를 변발 형태로 깎은 다음 명나라 병사들에게 뇌물로 줬다는 말이다.
김종인도 상이경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지만 이거 어디선가 들은 내용이다.
요동 일대에 임명된 경략(經略)들이 자신의 위업을 드러낼 때 서로를 죽이거나 애꿎은 백성들을 죽이고 머리를 깎아 달자라 속이고 조정에 보냈다던가. 자기들이 했던 짓거리를 후손들이 돌려받으니 이게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임차손의 상세한 보고에 따르면 도적 두목 가운데 세 명의 사망을 확인했다더라.
북인의 목표물인 철령경략 소삼진팔은 장대에 매달린 채 까마귀밥이 되었고 나머지 둘은 북원의 별동대에게 사로잡혀 참수당했다.
“듣자 하니 부신(阜新: 요동 북서부의 도시)경략은 산속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고 무순경략 독고율이라는 놈은 살아남았는데 놈도 심양성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기반을 잃어버렸더군요.”
“그렇다면 당분간 요동은 평안하겠군. 실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적어도 십 년은 도적들이 사라질 것이네. 독고율이라는 자도 주제를 알았으니 조용히 살 것이고.”
결국 요동의 실상을 알아내지 못하니 명나라 관료들이 그동안 쌓은 요동의 실상에 대한 증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당장에 할 수 없는 일이라 조용히 업무에 매진하려 했다. 지금은 국제적 분쟁이 끝난 직후이니 일거리가 쌓여 버렸다!
명나라와 북원이 요동에서 전쟁을 벌였으니 조선은 전쟁 이후 물자를 납품하는 척 수많은 상인을 보내 정보를 수집했다.
상인들이 정성껏 올린 보고서는 첩보의 핵심이었다. 상인을 어떻게 첩보원으로 쓰는지 궁금했는데 이게 다 돈으로 해결되더라.
조선의 세금제도에는 관세(關稅)가 있는데 외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하는 상인들에게도 일괄 적용된다. 하지만 2할에 달하는 관세를 줄이는 방법이 있으니 각종 정보를 캐내어 조정에 올리는 것이다.
정보가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면 관세가 1할로 줄고 정말 민감한 정보라면 아예 관세를 면제하니 스스로 세금을 덜어내려고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하는 풍속이 정착되었다.
정보의 신뢰성도 제법 뛰어나다.
조선의 상인들은 보통 남경에 머무르지만 북경에 다녀오는 일도 있는데 이는 값을 매기기도 힘든 귀한 물건을 팔 때의 일이다.
전 세계의 진귀한 상품을 주문대로 들여오니 조선 상인들은 고관대작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보고서를 읽으니 속에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장거정 이 개, 아니, 자라새끼는 인두겁을 쓴 악마라도 되나? 사람이 이렇게 행동해?”
[내각수보 장거정은 매일같이 척계광에 대한 탄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병부시랑이 천보총의 효용성에 대하여 의심하여 이를 만든 장인들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장거정이 출세를 거듭할 때에 신뢰할 수 있는 군관으로 척계광을 천거하였다. 척계광이 어마어마한 자금이 소모되는 신병기를 계속 만들고 전술훈련을 한 이유가 다 장거정의 후원과 만력제의 신뢰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보고서에서는 장거정이 척계광이 태만하여 패배하였다 주장하며 시호(諡號)를 폐하고 패장으로 대접하라 하였다.
심지어 다음 보고서는 더 가관이다.
[조정 관료들이 한 몸이 되어 척계광을 공격했지만 황상께서는 자신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다 힘에 부쳐 실행하지 못했다 하며 시호를 그대로 둘 것이라 하였습니다.]
[산동반도로 피신한 철령 이씨의 가족들과 척계광의 아들들은 졸장의 자식이라 하여 같은 죄인으로 대접하라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명나라 조정 관료들은 척계광의 편을 들지 않는 상황이다. 심지어 자식들이 졸장의 자식이라 매도당하니 나라가 개판이어도 이만큼 개판일 수가 있는가.
첩보를 취합한 서류를 제출하니 외조판서 상이경도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며 분노를 삭였고 분을 참지 못했는지 뒤뜰로 나가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항시 올바른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충성을 목숨으로 증명한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니 그도 분이 치밀어올랐나 보다.
상이경은 시퍼런 가을 하늘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말하였다.
“어린 황상이 내린 황명은 요동을 구원하라는 뜻이었고 이는 요동 일대가 도적의 소굴이 되어 애초에 실행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 적을 몰아낸 것이 기적인 판국인데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네.”
척계광은 지나치게 올곧은 사람이라 자신의 친척이 군령을 어기면 바로 곤장으로 응대했다 하더라. 이런 사람이니 정치력이 전무할 것이요 자신의 편이 없었을 게 분명하다.
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쉬고 답했다.
“명국에서도 척계광을 안타깝게 패한 장수라 하여 시호만 내린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죽은 이에게 내릴 수 있는 시호마저도 폐하라 하면 아예 부관참시까지 행할지도 모르겠군요.”
“장거정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세. 그의 휘하에 있던 두 장수는 그나마 제대로 된 직급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휘하의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군관이 되었다더군.”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오 년 이상 경험을 쌓은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니요?”
장난치나? 조선군에서도 고참병은 엄청난 우대를 받는다. 당장 이순신도 초임 무관 시절에는 무과도 보지 않고 훈련원 초모에도 응하지 않은 10년 경력 고참병의 의견을 듣고 배운 것이 많다 했다.
당장 문관들도 생소한 지방에 내려가면 육방관속의 의견을 듣는 판국이다. 이건 척계광의 모든 업적을 묻어버리겠다는 의지이다.
상이경은 이 원인을 알고 있었는지 분을 삭이며 말했다.
“문제의 핵심은 장거정이라네. 장거정은 지금까지 황상의 스승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으며 단 한 번도 탄핵을 당한 적이 없다네. 오로지 모함만 당했을 뿐이니 흠결이 없는 사람이지.”
“그러하면 탄핵을 당하여도 역으로 모든 것을 묻어버려 모함으로 만들었다는 뜻 아닙니까?”
“아마 그렇겠지. 자신의 세력을 동원해 척계광을 선제와 자신을 현혹시킨 졸장으로 만들어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생각이 분명하다네.”
고작 책임을 모면하려고 나라를 구한 영웅을 이따위로 대접하고 모든 일을 없던 걸로 되돌린다고?
척계광은 그냥 싸워서 지킨 수준이 아니다. 당장 북원은 명나라 군대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오로지 머릿수만 앞세워 몰아붙이는 명군에서 2배 이상의 전력 차이에, 각종 불리함을 감안하면 3배 이상의 격차에서도 무승부를 낼 수 있는 군대가 출몰하였다.
아마 필사적인 항전을 준비하고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남쪽에 눈도 돌리지 않고 버티고 있겠지.
장거정과 언쟁도 벌였지만 논리정연하고 부패한 놈이 능력까지 좋으면 얼마나 나라를 말아먹는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혹여나 장거정을 탄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나?”
“그런 놈인데 탄핵이 무엇입니까? 명국을 망치는 놈이니 목을 베어 효수하고 싶은 심정이지요. 아국에 해가 된다면 참겠지만 도움이 된다면 당장에라도 행할 것입니다.”
나라를 망치는 간신을 죽이자는 말은 어디까지나 상식과 교양을 가진 사대부로서 했을 이야기다. 지금까지 배워온 논리대로면 간신은 다른 나라의 간신이라도 죽어 마땅한 놈이 아닌가.
물론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내가 고작 당하관에 불과한데 장거정은 황제의 스승이자 명나라 관료의 으뜸인 내각수보이다.
그러니 나라에 도움이 되면 실행한다 했는데, 상이경은 한참을 고민하다 귓속말을 하였다.
“이틀 뒤에 상왕전하께서 계시는 별궁으로 유시(酉時: 오후 5~7시) 말엽에 찾아가게.”
상왕전하라. 이번 북인의 준동은 모두 상왕전하의 작품이고 말재주가 좋은 김성일을 보낸 사람도 상왕전하이다.
나이가 많은 분이니 항시 올바른 방법만 택하는 주상전하와 다른 방식을 취할지도 모르지.
한때 수강궁으로 불리고 지금은 창경궁이라 불리는 궁궐에 찾아가니 쪽문으로 내금위 병사가 나와 나를 안내하였다.
과거시험장에서 보았을 때보다 확연히 늙은 상왕전하께서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하였다.
“유성룡 자네가 명국과 관련된 일에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에게 내릴 밀지(密旨)가 있었는데 오히려 먼저 찾아오니 반가운 일이군.”
왕으로 있을 때의 위엄은 사라졌지만 자연스럽게 긴장이 솟아올랐다.
그 표정에는 어떤 심계(心界)가 숨어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스승 이황이 호수 같다면 상왕전하는 끓어오르기 직전의 쇳물 같은 사람이다.
밀명이 있다니 내가 가만히 있어도 당할 일이었다.
매를 맞는다면 스스로 나서서 맞는 것이 덜 아픈 법이니 다시금 인사를 올리고 예의를 다하여 일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상왕전하께서 부족한 신에게 내릴 밀지가 있었다 하시니 이를 직접 받아들일 기회를 주시어 감읍하옵나이다. 하오면 제가 무엇을 행하면 되겠사옵니까?”
“조금 난해한 일이라네. 자네는 기억력이 빼어나다고 알려진 사람인데 일전에 명국에 보낸 함선을 건조한 일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그러하면 함선의 상세를 명확히 알고 있던가?”
함선의 상세? 대놓고 전함사 관원들에게 면박을 당한 사례인지라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떤 일일지 궁금했지만, 설계와 관련된 일인가?
하지만 상왕전하의 말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명확하게 알고 있사옵니다. 당시의 일은 생소하여 열심히 배우려 했는지라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사옵니다.”
“또한 자네는 명세내역이라 하여 물건을 상세히 측정하고 비용을 산출하는 업무에 매진하였으며 여송에서 근무할 적에는 목재의 형태를 파악해 이를 간자를 색출하는 데 사용하였다 했지.”
“신이 부족한 지식을 사용해 간자를 색출하였을 뿐이옵니다.”
“자네의 행적을 보니 명국에 보낸 함선의 상세도 알고 이 함선이 어떻게 설계와 달라졌는지도 알 수 있으며 목재를 어떤 종류로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파악한다는 뜻이군.”
가능은 하지!
생각해 보니 저 모든 일이 가능한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 전함사 관원이면 명세내역을 모르고 명세부 관원이면 목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목수는 나머지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상왕전하의 밀명은 내 억장을 무너뜨렸다.
“장거정은 아마 명국의 자랑인 보선함대를 수리하며 뇌물과 불순한 자금을 챙기고 있을 거라네. 장거정을 실각시키고 싶다 하였으니 그 보선에 탑승하여 비리를 조사하도록 하게.”
다른 나라 함대에 어떻게 타라고! 지금 나보고 머나먼 바다를 떠다니는 명나라 함선에 탑승하라고?
그 함대는 또 어디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