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53화
2부 12장 11화 결말(2)
북경으로의 관문인 산해관을 통과하고 13일 만에 팔백 리(320㎞)를 넘게 행군한 척계광 휘하의 척가군(戚家軍)은 아직 기강이 살아 있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다.
척계광은 불안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망원경으로 전방을 끝없이 살펴보았다.
잠시 뒤 그의 부하이자 진무(鎭撫: 명나라의 종6품 무관)인 장신위가 보고를 올렸다.
“도독님. 행군속도가 지나치게 빠릅니다! 포병들에게 배정된 말도 지쳐서 힘을 잃고 포가(砲架)의 바퀴가 부서진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행군속도를 조금만 늦출 것이니 철물을 사용해서라도 포가를 보수하게. 더욱 빨리 행군하고 싶지만 도리가 없군. 가급적이면 심양이 함락되기 이전에 도달했어야 하는데.”
“병사들이 가혹한 행군에 군기가 바닥으로 떨어질 지경입니다. 차라리 산해관에 머물며 훈련받는 것이 좋았다 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달자들을 토벌하고 나서 산해관으로 돌아가 훈련을 이어가도록 하겠네.”
척계광도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이미 진실을 알고 있기에 사지(死地)인 요동으로 진군을 멈추고 안전한 산해관에 틀어박혀 사태가 끝날 때까지 위기를 모면하고 싶었다.
출병 직전 전달된 장거정의 서신은 더욱 처절하였다.
[남당(南塘: 척계광의 호)에게 애석한 말이 있소. 황상께서 명을 하달하였지만 모든 거짓이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와 제대로 된 명을 하달하지 못하였소. 척가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당도하면 허허벌판에서 수만의 적병을 상대해야 하니 이는 자진(自盡)이나 마찬가지요.]
[척가군은 정병이 6천에 신병을 합쳐야 1만6천에 불과한데 4만에 달하는 달자들을 평원에서 이길 방도는 없소이다. 어떻게든 출병을 보름만 미뤄 달자들을 요서회랑으로 끌어들여 싸우도록 하시오. 황명을 어긴 뒷일은 모두 내가 감당하겠소.]
장거정도 자신의 세력인 척계광을 헛되이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황명을 거부하라고 대놓고 말하였다.
하지만 척계광은 장거정과 친할 뿐 충신 중의 충신이었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나섰다.
“자고로 죽기는 쉬우나 길을 열기는 어려운 법이지.”
“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잡생각은 거두고 직무에 임하게. 우리는 황상께 수많은 은혜를 입어 여기까지 위업을 쌓아나갔다네. 이 은혜에 보답하려면 사력을 다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어.”
황상의 은혜에 보답하자면 상대를 이기지는 못해도 크나큰 피해를 입혀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악재에 악재가 겹쳤다는 점이다.
척가군에 속해 있던 장수들 가운데 고위관료와 끈이 닿아 있는 이들 상당수가 소식을 듣고 이런저런 명분으로 군대에서 빠져나갔다.
시급한 상황에 쓸 만한 부관은 오유충(吳惟忠)과 마귀(麻貴)를 비롯한 몇 명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적을 방치하면 최악의 경우 요서회랑까지 유린한 북원의 군대 때문에 방어체계가 붕괴하고 이는 명나라에 심각한 악재로 남으리라.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나라의 운명과 맞바꾸는 선택을 하였으나 아쉬운 마음은 남았다. 어느덧 식사시간이 되었고 척계광은 평상시처럼 하급 장교들과 식사를 함께하였다.
“제가 척가군에 처음 들어올 적에는 바로 죽을 것이라 생각해 손자의 이름을 헌충이라 지었는데 머리가 굵어지니 새로 지어야겠군요. 도독님께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헌충이라. 어떤 자를 썼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헌충(獻忠)이면 충심을 상대에게 보인다는 뜻이니 굳이 개명할 필요도 없겠군. 분명 나라를 위해 충심을 다할 것이네.”
장신위는 출신은 부족했지만 몸 하나는 건장했고 머리도 영민한 사람이기에 아끼려 하였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는다면 반드시 장수로 성공하겠지.
그렇게 마음먹은 척계광에게 땀에 전 병사들이 달려왔다.
“도독님! 도독님! 달자들의 척후가 보였습니다! 스무 기 정도가 진영 근처로 다가오다 저희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도주하였습니다.”
“지금 무어라 하였나? 스무 기 정도가 진영 근처로 다가왔다고? 말을 타고?”
“네. 무언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적을 발견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 척가군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표정이 변하며 척계광을 보았고 눈치를 살피던 마귀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보통 달자들은 척후병을 두셋씩 분열하여 기마로 온 다음 땅을 기어서 본영을 염탐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인데 척후 스무 기를 두었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요동 일대에서 난전을 거듭하다 보급이 끊겨 척후를 많이 보냈거나. 아예 심양성을 함락하여 더 이상 요동에 저항하는 세력이 없거나. 아마 심양성이 함락당했겠지.”
심양성이 함락당했다는 말에 모두 표정이 굳어갔고 오유충과 마귀는 아예 사색이 되었다.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현실이며 이미 요동으로 깊숙이 들어온 상황이니 퇴각할 방도도 없다.
결국 적을 물리치고 돌아가거나 적에게 몰살당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만 남아버렸다.
척계광은 이미 벌어진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명령을 하달하였다.
“적들이 척후를 저렇게 많이 보냈다면 손쉬운 승리로 자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굳건함을 보여준 이후 적에게 손실을 입혀 퇴각하게 만들자!”
이기던 군대는 사소한 패배를 두려워하는 법이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유목민족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법이지만 살아남을 방법이기에 바로 군영을 차려 내일의 전투를 대비했다.
“다들 방진을 형성하라! 목책에 의지할 생각을 하지 말고 너희들이 들고 있는 창이 목책보다 튼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대열을 무너뜨리면 곧 죽은 목숨이다!”
척계광의 예상대로 적은 이 지형도 충분히 유리하다 여겼는지 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고 이틀 동안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단 이틀의 시간동안 척계광은 최소한 양패구상을 노려볼 만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목책은 물론이요, 수레와 조립식 천막을 분해해 목책을 만들었으며 삽과 곡괭이를 동원하여 말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구렁을 만들었다.
하지만 저 머나먼 평원에서 흙먼지가 일어나자 신병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평원이 모두 먼지야! 지금은 여름이고 비가 내렸는데 먼지가 피어오르다니!”
“닥쳐라! 도독께서 언제 패배한 전투를 치른 적이 있더냐! 적을 공격할 적에는 작전상 우회한 적이 있어도 적이 공격할 적에는 언제나 이겨왔다!”
-쿠웅!
적이 사거리에 들어왔는지 포병들은 최대한의 사거리를 노려 곡사로 포탄을 발사하였다. 엉성하게 돌격하는 기병에게 큰 효과는 없지만 적어도 적을 위축시킬 수 있었다.
다음 차례는 조선에서 들여온 중신기전이었다. 명나라도 많은 화약병기를 사용하였지만 작렬신기전(중신기전의 탄두를 키운 것) 같은 실전성이 뛰어난 무기는 없었기에 이를 재현한 물건이다.
다만 화차를 사용한 조선과 달리 사람이 남아도는 명나라는 탄체의 크기를 키워 사거리를 극대화하고 소수를 사람들이 쏘아댔다.
희뿌연 연기를 뿜는 신기전이 날아들어 북원 기병들을 강타하였지만 엉성한 대형이기에 큰 효험이 없었다.
희뿌연 포연과 먼지가 맴도는 전장을 망원경으로 주시하던 척계광은 지휘봉을 높게 쳐들더니 명령을 내렸다.
부관인 마귀와 오유충조차 알 수 없는 전략이 그의 눈에는 훤히 들어왔다.
“사격을 중단하라! 지금 당장 동쪽과 서쪽을 주시하며 화포의 방향을 돌려라!”
척계광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하달되었지만 조선의 훈련원의 방식을 따른 군관들은 사력을 다해 화포의 방향을 전환했다.
이윽고 북쪽에서 밀려오던 북원의 기병들은 엉성한 진영을 유지한 채 돌아갔지만 말의 꽁무니에 나무토막이 뒹굴고 있었다.
“역시나! 기껏해야 오천 명의 기병을 동원해 화력을 받아내려 했다? 적도가 토묵특(투메드)의 한(칸)이라 하였는데 머리를 제법 쓰는군.”
아무리 북원의 기병대라 하여도 화약병기의 일제사격을 당하면 크나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첫 돌격은 예비대가 엉성한 진형을 유지하고 흙먼지만 피워 화력을 받아내려 했다.
척계광은 타타르족과 싸우면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기에 유목민족의 기만전술에 대한 지식이 많았고 적이 돌격할 때부터 엉성한 진형을 경계했다.
예상대로 동서 양면에서 진짜 적이 몰려왔다.
“적은 기병이다! 일백 보(160m) 이내로 몰려오면 사격을 개시하라!”
“일백 보다! 멍청한 놈들아! 지금 쏘는 녀석은 천보총(千步銃)이니 따라 쏘지 마라!”
망루에 올린 천보총도 척계광이 창안한 병장기였다.
조선처럼 운총을 만들려 해도 숙련공이 부족하여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값비싼 병기를 전술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거대한 운총을 만들었고 오로지 사거리와 정확도에 집중했다.
총신 길이만 6자(2m)에 달하는 천보총이 불을 뿜자 정말 삼백 보 거리에 있는 기병이 고꾸라지며 돌격속도가 조금은 늦춰졌다.
이윽고 일백 보 거리에서 보총의 일제사격이 쏟아졌고 북원의 기병들은 여지없이 고꾸라지면서도 활을 쏘고 말을 크게 돌렸다.
서로의 진영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지만 척가군은 피해를 어떻게든 줄였다. 천막의 목재를 소모했으니 천을 억지로 몸에 둘둘 감았고 상당수의 화살이 두꺼운 천에 막혀 힘을 잃었다.
하지만 돌격이 한 번으로 끝날 이유는 없다.
적이 아직 남아 있기에 보총수가 일제 재장전을 실시하는 동안 장창수와 팽배수가 앞으로 나와 대열을 갖추어 방비했지만 북원은 이번에도 허를 찔렀다.
사람을 가리고도 남을 거대한 방패가 대열의 오십 보(80m) 거리에 설치된 것이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있었지! 화포를 쏘아 성가신 방패를 걷어내라!”
보총은 무조건 직선으로 쏘아야 하니 저 방패에 대부분 가로막히리라.
하지만 척계광은 이를 예상하여 화포의 방향을 돌리라는 명령을 먼저 내렸고 다음 돌격이 시작되기 전에 대부분의 방패가 박살 났다.
적도 이렇게 대응이 빠를 줄은 몰랐는지 잠시 돌격을 멈췄다.
자신보다 두 배는 많은 기병을 어떻게 상대할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척가군의 사기가 점차 올랐지만 척계광은 망원경으로 적진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적들이 모조리 돌격해 온다! 우리를 반드시 궤멸시키려 작정하였으니 여기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자! 마귀! 자네는 내가 죽으면 지휘권을 물려받게! 그다음은 오유충일세!”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예비대만 두었던 북쪽에 적도가 더욱 많이 몰리고 있다! 북쪽에서 적이 일만 기(騎) 이상 올 것이며 동쪽과 서쪽에서는 일만 기보다 조금 적게 올 것이다. 사력을 다해 막아라!”
척계광이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이 시작되었다. 거세게 저항하면 적이 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 돌아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힘든 상대를 잡고 명성을 얻을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
병사들의 피로도 풀리지 않았으며 전열에 선 고참병들이 죽어 나가면 신병들은 사기가 꺾여 사방으로 분열하며 대형이 풀리리라.
이런 상황을 막을 방법은 단 하나이기에 척계광은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도독께서 여기 어인 일이십니까! 당장 본영으로 돌아가셔서…….”
“오자병법에 말하기를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 하였다! 이곳은 사지(死地)이나 모든 이들이 뭉쳐 싸운다면 반드시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너희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
금실로 수놓은 갑주는 전장에서 거대한 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참병이나 장교조차 척계광과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지만 척계광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연설을 늘어놓았다.
“보총과 장창 그리고 장패는 셋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법이다! 적이 멀리 있으면 쏘고 가까이 오면 창을 들며 활을 쏘면 장패로 막아라! 이 세 가지 일만 행한다면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다!”
오로지 순수한 힘과 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화살을 쏘아 진영을 붕괴시키고 진입하려는 북원의 기병들과 필사적으로 보총을 쏘고 장창으로 적을 걷어내려는 척가군의 싸움이, 그리고 아홉 번의 돌격이 이어졌다.
무수한 시체가 쌓여 시체를 벽으로 삼아 싸울 지경이었다.
테무르 칸도 퇴각하고 싶었겠지만 패배하느니 막대한 피해를 입고 승리를 거두려고 악을 쓰니 서로의 피해는 점점 늘어났다.
척가군이 버티는 것은 오로지 가장 앞에서 병사들과 운명을 함께한 척계광 덕분이었다.
이미 본진의 화약은 일곱 번째 돌격에서 바닥나 포격은 물론이요, 신기전조차 없었다.
하지만 북원의 기병들도 지치기는 매한가지였다.
“도독님! 적도 지친 것 같습니다! 돌격이 점점 더뎌집니다!”
“우리도 지쳤으나 마지막까지 힘을 내라! 우리가 한 명이 죽을 때 적은 세 명이 죽어 나간다! 이대로라면 적이 손실이 커 퇴각할게 아니겠느냐!”
실제로는 척가군의 상황이 더욱 불리해 이미 전선을 유지하고 명령을 하달할 고참병들은 대다수가 절명하거나 중상을 입고 신음하는 상황이다.
척계광도 갑옷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을 뿐 몸에 화살 두 발을 맞았다.
갈수록 얇아지는 전열을 보고 기껏해야 두 번을 버틸 수 있다 여긴 척계광은 제발 마지막 돌격이길 빌며 망원경으로 적을 보았다.
적도 마지막 돌격을 감행하는지 지나치게 속도가 느리고 신중하였다. 병사들도 이 차이를 눈치챘는지 오로지 이 힘이 빠진 돌격만 막으면 물러가리라는 생각만 하며 보총을 쏘고 창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느릿느릿 돌격하는 북원 기병 가운데 일부는 장창이나 검을 들지 않고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선에서 사용하는 편곤인 줄 알고 안심하였지만 길이가 지나치게 짧았다.
조선과의 무역, 그리고 부패한 명나라 관리와의 거래로 입수한 보총을 착용한 오십여 명의 기병이 그들의 정체였다. 간혹 화포를 쏘지만 이번 전투에서 화포 소리도 듣지 못했으니 척계광도 허를 찔렸다.
사격이 능숙하지 않았는지 엉성한 솜씨로 도열해 보총사격이 끝난 척가군의 진영을 조준한 북원 기병의 보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척계광은 보총사격을 피하려 바닥에 몸을 던졌지만 허우적거리며 일어나질 못했다.
“도독님! 도독님! 괜찮으십니까!”
“빗나갔다! 놈들의 사격술이 형편이 없구나! 하지만 다리를 접질렸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 뱃속에서 불길이 치미는 통증을 감내하려고 이를 악문 척계광은 배를 눌러 피를 보여주지 않으려 하며 마지막 명령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진영 안쪽에서 함성이 들리며 난데없는 병사들이 전열에 추가되었다.
“도독님! 이미 화약이 다 떨어졌는데 저희가 있어봤자 뭘 합니까! 예비 장구를 갖춰 입고 창과 방패를 들었습니다!”
자신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본영에는 포병과 예비인력을 합쳐 삼천 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있었으며 이를 장신위가 전선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이들은 창을 다룰 줄도 모르니 신병보다 못한 오합지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마지막 예비대를 꺼낸 것으로 여긴 척가군의 사기는 상승하고 북원은 더 이상의 돌격이 소용없다 여겼으며 척계광도 멀쩡하다 여기고 퇴각하였다.
“이겼군. 아니, 양패구상을 하였으니 달자들은 수십 년은 명국을 두려워하겠구나.”
승리라 할 수 없었다.
척가군에서 살아남은 이는 기껏해야 절반인 팔천 명이며 태반은 신병이다. 오 년 이상 경험을 쌓은 정예병이 대다수 전사하였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리라.
그래도 이번 전투를 경험한 오유충과 마귀가 있으니 황상께서 뜻이 있다면 십여 년 이내에 척가군을 능가하는 군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척계광은 힘을 잃은 채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척계광의 향년 49세. 평생을 전장을 오가며 병사들과 함께한 명장의 최후는 기적적인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