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51화
2부 12장 9화 진짜 전쟁(4)
투메드부와 북원에는 끔찍한 기억만 남아 있던 철령을 차지한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경인왜변에서 잡혀 온 잇신과 왜인이었다.
잇신은 한때 우에스기(上杉) 가문에 속한 사람이라 자신의 성을 코스기(小杉)라 정하였다.
그는 휘하에 있던 왜인들과 힘을 합쳐 철령 일대를 요새화하였고 제대로 된 관직을 받으려 애썼다.
하지만 요동 일대가 혼란에 빠지게 되어 후손들은 결국 도적 두목으로 전락하였다.
그나마 요동도사가 머무는 심양을 제외하면 가장 온전한 장소이기에 제대로 된 농사와 목축을 할 수 있었고 도적질은 부업에 불과하였다.
이미 요동도적이 된 철령경략 소삼진팔은 뿌듯한 마음으로 농토를 순찰하며 말하였다.
“언젠가 증조부께서 전하신 대로 요동 일대의 수호(守護: 슈고)가 되어 귀향해야지. 그나저나 수호가 무슨 관직인지 모르겠는데 혹시 엄청 높은 관직은 아닐까.”
농사는 잘되었고 우역도 자취를 감췄다. 조만간 돈을 더 모으면 다른 도적들을 소탕하고 명나라에 제대로 된 관직을 받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웬 병사들이 혼비백산해 달려왔다.
“경략님! 경략니이이임! 북원 놈들이 떼로 몰려옵니다! 저희도 장성에서 버티다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어 가까스로 도주하였습니다. 이미 뚫리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지금 뭐라 했나! 장성이 뚫려? 너희들이 알아서 막기로 했는데 왜 뚫려! 일단 사람 불러오고 너는 숨 좀 돌려!”
자신이 직접 벼슬을 내린 진 천총이 혼비백산한 모습을 보자 소삼진팔은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다. 대체 왜 북원이 공세를 퍼부으며 규모는 얼마이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말안장 위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사지를 덜덜거리는 진 천총은 가져온 냉수를 들이켜고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보고를 시작하였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화포가 끝없이 쏟아지고 장성 북쪽을 가득 메웠습니다. 적의 기병이 수백만, 아니, 최소한 오만 이상에 달합니다!”
“야 이 미친놈아! 그럼 북쪽 토묵특(투메드부) 수준이 아니고 북원 본대가 온 거잖아! 적의 상세는! 지휘관의 깃발은! 적의 전략은!”
“그걸 제가 알 리가 없지요! 경략님은 아십니까?”
소삼진팔은 욱하는 마음에 칼을 뽑으려다가 자신도 명확한 군략을 배운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서로 도둑인데 가방끈이 길어봤자 얼마나 차이가 날까.
어떻게든 적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진 천총을 일으켜 세운 소삼진팔이 정보를 얻어내려고 뭘 좀 먹이려 하는데 북쪽 언덕에서 먼지구름이 밀려왔다.
“저건 또…… 적이다! 북원의 기병이 습격한다!”
“내가 죽어라 말을 달렸는데! 여기서 장성까지 사백 리나 떨어져 있는데!”
160㎞의 거리를 3일 만에 주파하였으니 정주민족으로는 불가능한 행군속도이지만 북원 입장에서는 거추장스러운 화포 때문에 진군이 지독하게 늦어진 상황이었다.
공포에 질린 소삼진팔이 손톱을 씹다 그나마 적과 싸워본 진 천총을 찾았지만 바닥에 다시 널브러진 사람이 어느새 기력을 찾아 저 멀리 있던 자신의 말을 타고 달아났다.
“북원 군대가 쳐들어온다! 북원 군대다! 놈들의 수는 칠만이 넘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야!”
아마 죽어라 달려 심양까지 도망칠 놈이니 애초에 잡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적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지만 그나마 한 가지 정보는 알고 있었다.
부하들이 괜히 화살을 날리지 않게 최대한 빨리 본진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이 들은 바로는 북원은 깊은 원한 관계가 아닐 경우엔 적을 만나면 우선 항복을 제안하며 항복을 받아들이면 부하로 삼아준다 하였다.
항복을 거절하고 싸우면 수레바퀴보다 큰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다 하였으니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급히 목책으로 돌아가 병사들을 다그친 소삼진팔은 항복을 권하는 사절을 기다렸지만 사절 대신 포탄이 쏟아졌다.
“달자들이 화포를 쏜다! 대체 어떻게 화포를 구한 거야!”
“장성이 뚫렸으니 장성에 있는 화포를 쏘겠지! 우리도 응사해!”
어디선가 얻어온 보총이나 자모포 그리고 소구경 화포들이 처절하게 응사하였지만 상대는 화포를 쏠 줄만 아는 북원 병사들이 아니고 북인 출신 군관들이 섞여 있었다.
사격술이 미숙하였지만 점차 정확해지는 사격은 마침내 한 개의 화포를 적중시켰고 비축해 둔 화약에 불이 붙으며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 순간 모든 병사이자 도적들의 전의가 사라졌고 공포만이 감돌았다.
“북원 놈들이 우리 목줄을 따내러 온다! 어서 도망쳐!”
“야 이 자라 새끼들아! 도망쳐 봤자 얼마 가지 못하고 잡힌다니까!”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부하들을 다그치려는 소삼진팔이지만 상대는 사격이 멈춘 것을 알아차리고 일제 돌격을 준비하였다.
목책 귀퉁이에 지속적으로 포격을 날리니 기병이 드나들기 적당한 구멍이 생겼다.
“증조부님! 분명 항복을 권한다 하셨잖아요! 원한 관계가 아니면…… 원한?”
자신이 무슨 원한을 샀단 말인가.
고함과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해일이 몰려왔다. 목책에 뚫린 구멍을 파고든 북원의 철기는 거대한 바위와 같이 길거리를 닥치는 대로 누비기 시작하였다.
목책을 끼고 계속 싸웠다면 며칠 정도는 분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방으로 흩어진 도적들은 서로를 짓밟고 어떻게든 도망치려 추잡한 몸부림만 반복하였다.
“네놈이 혹시 소삼진팔이냐?”
사방에서 뻗어 나온 창날이 목덜미에 닿았고 소삼진팔은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4대에 걸쳐 일군 철령이, 팔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던 도시가 궤멸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도망가던 도적들 가운데 성공한 이는 수백에 불과했고 이들도 추격대가 따라붙었으니 덜미를 잡히리라.
창날에 떠밀린 사람들은 한 자리에 집결하였고 테무르 칸은 시퍼런 칼을 들이밀며 소삼진팔에게 물었다.
“네 이야기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왜인의 후손이자 철령경략이며 일대 도적의 두목이라지. 그리고 우역을 제압하는 방법을 퍼뜨린 사람이 아니더냐.”
“그…… 그렇소! 내가 도적 생활을 청산하고자 아랫놈들에게 이런저런 지식을 알려주었지. 내가 듣기로는 달자들은 으아아악!”
달자는 몽골을 비하하는 말이기에 몽둥이가 소삼진팔의 몸을 여지없이 두드렸다.
삽시간에 피멍으로 물든 소삼진팔은 물리적 치료로 예절을 주입당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부하들에게 이런저런 지식을 알려주었지요. 그러나 제가 무슨 원한이 있습니까? 예케 몽골 울루스 분들은 원한이 없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네놈의 부하들이 원한을 샀지. 네가 우역을 막는 방법을 퍼뜨렸는데 반대로 우역을 퍼뜨리는 방법도 가르쳐 줬다 생각은 못 했나? 네놈의 부하들이 일대에 우역을 퍼뜨려 소 수십만 마리를 죽였다. 이러면 원한이 아니고 뭔가?”
“제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좋은 뜻으로 가르쳤습니다!”
테무르 칸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기에 제법 고민을 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일족을 모조리 죽이고 싶었지만 직접적인 원한은 아니니 직접 심판할 수는 없으리라.
북인 병사를 부른 테무르 칸은 점잖게 물어보았다.
“자네가 보기에 이놈과 이놈의 가족에게 쓸 수레바퀴는 어떤 녀석인가?”
아마 성정이 온화한 조선 사람이면 키보다 큰 수레바퀴를 가져와 목숨만은 건지게 하리라. 하지만 간접적으로 우역에 시달린 투메드부와 달리 직접 우역에 시달린 북인들의 원한은 더욱 깊었다.
현자총통의 포가(砲架)에 쓰이는 손바닥만 한 바퀴를 받은 테무르 칸은 병사를 한참 노려보다 한숨을 쉬었다. 그냥 다 죽이자는 말이니 이 상황에 대해 고민하다 하늘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다.
“야 이 개새끼들아!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차라리 칼에 맞아 죽지 이대로는 못 죽는다!”
“네놈에 대한 처분은 천신 텡그리에게 일임하겠다. 목숨을 연장할 뜻이 있다면 비를 내릴 것이요. 죽으면 텡그리의 아래에 있는 독수리의 밥이 되며 혹여나 부하들이 돌아올 수 있지.”
소삼진팔에게 내려진 처분은 거대한 기둥에 묶어두는 형벌이었다.
제대로 된 나라의 사람들이면 돌아올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도적이다. 아마 하늘을 저주하고 스스로의 행적을 저주하며 말라 죽으리라.
나머지 장정은 죄다 죽이고 남은 이들을 노예로 삼아 카라코룸까지 보낸 테무르 칸은 병사들을 점검하였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적을 한 번 제대로 공격하면 무너지니 앞으로의 원정 계획은 더욱 단축할 수 있으리라.
“이 수준이면 심양까지 가는 길을 모조리 분쇄해 버릴 수 있겠어! 군을 다시 절반으로 나누어 심양성에서 합류한다! 기한은 보름이니 지나치게 약탈에 몰두하지 마라!”
전쟁을 시작하고 한 달, 진격이 더욱 빨라진다면 20일 이내에 심양을 함락하고 요동 일대를 평정할 수 있으리라.
다만 산해관과 그 산해관의 길목인 요서경략은 실질적 명나라 영토이니 북인 병사들의 지원이 불가하여 아쉬울 뿐이었다.
* * *
김성일의 말을 들은 만력제는 물론이요, 장거정과 각부 대신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며 의심했지만, 김성일은 천연덕스럽게 답하였다.
“조선이 지난 일백여 년 동안 야인(野人)이나 다름없는 북인들을 통솔하고 삿된 풍속을 버리게 만들어 북방을 안정화시키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작금에 이르러 야인들은 대다수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변명을 하여도 지지부진하군. 야인 아니 북인들에게 말이 없소? 듣자 하니 말이 넘쳐나는 고장인데 어찌하여 마경(馬耕)을 하는데 군관의 말을 빌려야 한다는 말이오!”
“북인들은 오 년간 우역에 시달려 최소한의 말을 제외하고 모조리 내놓았고 삶이 궁핍해져 산짐승을 사냥할 지경입니다. 이제는 마경에 쓰일 말조차 부족한 실정입니다.”
장거정의 날카로운 지적을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기는 김성일의 모습을 보니 내가 할 수 없는 교묘한 언변이라 칭찬해 주고 싶은 지경이었다.
북인 대다수가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김성일의 말은 농사가 주업이라 왜곡했으니까.
목장주가 부업으로 농장에도 좀 손대는 격이다. 경제적 비중으로 따지면 농사가 2할, 목축이 8할이다.
하지만 이를 알 길이 없는 장거정은 반박하지 못했고 반격을 시작한 김성일은 말에 살을 보태며 장거정을 몰아넣었다.
“북인들은 한 무리에 소 서너 마리와 말 열 마리를 기른다 합니다. 여기서 우역으로 소를 잃고 말을 사용하여 농사를 지어도 마경을 행하려면 말이 다섯 마리는 필요하지 않습니까?”
한 무리라 말하며 여러 호가 모인 대가족인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4인 가족 1호 기준으로 소 4마리에 말 10마리가 북인들의 평균 재산이다. 더군다나 농사에 말 다섯 마리가 필요한 건 작은 말 기준이다.
북인들의 말은 덩치가 크기에 농사를 지으려면 3마리만 사용해도 차고 넘친다. 오히려 농사를 부업으로 여기니 튼튼한 말 두 마리로 충분하리라.
하지만 이 변명은 충분히 먹혔는지 장거정도 반박하지 못했고 만력제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성일의 말에 동의했다.
“결국 우역이 퍼진 덕분에 수비의 공백이 생겼고, 수비에 공백이 생긴 틈을 타서 우역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달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그런 말이로구나.”
“번국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하해와 같은 은덕과 인자하심을 바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겠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저 우역을 잡아내지 못하여 벌어진 일이면 엄히 죄를 묻겠으나 이미 친국으로 우역을 퍼뜨렸음을 시인하지 않았더냐. 이는 잘못이 잘못으로 돌아온 일이니 큰 죄는 아니다.”
말을 안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진실을 알아차린 북원에서 요동을 공격하였는데 여기에 혈기 넘치는 북인들이 끼어들었겠지.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파견한 병사들이 북원 군대를 따라다니는 북인들을 공격할지도 몰라서 조바심이 들었다.
제발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며 만력제의 다음 황명을 기다렸는데 예상대로 군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조선의 왕 이연에게 당장 사람을 보내 의주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달자들의 진공을 막아내도록 하여라. 달자들은 분명 요동 일대를 병탄하려 할 것이니 시일이 늦으면 아니 된다.”
“황상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아국도 병사를 동원하려면 시일과 천기(天氣)를 따져 행동하는 법이옵나이다. 소집과 진군을 감안하면 한 달 이상이 걸리니 이를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군사를 움직여 달자들을 소탕하는 데 두 달이 걸리면 족하다 여겼지만 오히려 빠르구나. 그나저나 두 달이라 하였는가. 병부상서가 보기에는 요동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요동은 인외마경이며 모든 명나라 관료들의 약점이 결집된 장소이니 누구도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병부상서 왕숭고(王崇古)가 답하였다.
“요동의 병력은 치…… 칠만 명에 달하지만 각 경략과 요동도사 휘하에 분열하여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달자들에게 밀려 제대로 된 싸움이 불가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명확한 시일이다. 단 두 달의 시일만 벌 수 있어도 북경 일대에서 소집한 병사들을 동원해 달자들을 밀어내고 조선의 병사들이 옆구리를 눌러 달자들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달은 불가하옵나이다. 열흘 전에 장성이 뚫렸고 규모를 감안해 보면 잘해야 한 달을 버티고 심양성이 함락될 것이오며 이후 요서 일대로 달자들이 침략할 수 있사옵니다.”
창백한 얼굴로 답하자 만력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마 요동을 포기하자고 말하려 하는 것 같지만 만력제는 어린 나이에도 골똘히 생각하다 장거정을 돌아보고 말했다.
“척계광! 척계광이 신병의 조련을 위하여 산해관 밖에서 훈련을 거듭하지 않는가! 척계광 휘하의 병력이 삼 만에 달하는데 이들을 동원하면 달자들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에서 훈련원의 방식을 배워 돌아간 그 장수? 명나라 직할령인 큐슈에 들끓는 도적들을 모조리 토벌했다 명성이 자자한 사람인데 벌써 삼만의 병사를 다룬다고?
만력제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듯이 흥분한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산해관에서 즉각 출병하면 심양성이 버틸 수 있는 한 달 이내에 다다를 수 있다. 달자들이 분열하여 싸운다면 삼만의 병사에 각개격파 당할 것이요. 합류해서 싸우면 잔존한 요동 병력에 후방을 얻어맞을 것이다!”
왕숭고를 비롯한 관리들은 창백함을 넘어서서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제대로 된 병력이라고는 요동도사 휘하의 칠천 명밖에 없는 심양이 한 달을 버틴다 하였고 이게 진실이 되었다.
척계광은 최대한 빠르게 기동해 심양성을 구원하려 하리라. 문제는 강행군으로 지친 척계광 휘하의 병사들이 최소 삼 만의 북원 병력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만력제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 가관이다.
“넉 달 전에 척계광이 말하기를 육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다시 일만에 달하는 신병(新兵)을 소집해 훈련한다 하였으니 호랑이의 새끼라도 호랑이이다.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겠느냐!”
삼만 명은 병력인 정군(正軍)과 보인(保人: 보조병력)으로 구성되었고 일만 명은 신병이라니.
당연히 장거정은 이 상황을 통제하려고 애썼다. 지금까지 쌓아온 거짓과 여기에 추가된 거짓이 돌아온 격이지만 장수의 목숨은 살리고 싶었나 보다.
“하오나 달자들의 기세가 삼엄합니다. 차라리 요서회랑까지 끌어들인 다음 북경의 병력을 보태 막아내며 조선이 뒤를 노려 단번에 몰아치심이 옳사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듣기로는 요동의 방비는 철저하며 간혹 생겨나는 도적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들었다. 칠만에 달하는 이들이 사력을 다해 지키면 달자들도 손실을 입을 것이다.”
도적이 대다수고 북원 병사들은 별다른 피해도 없이 신나게 약탈할 건데.
하지만 만력제는 영민한 사람이었고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최선의 명령이자 장거정을 비롯한 관료들에게는 최악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손실을 입은 달자들이 배를 불리고 백성들을 약탈하면 기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또한 요동을 내버려 두면 백성들의 삶은 무엇이 되겠는가! 당장 척계광에게 황명을 내릴 것이다!”
환관은 이제 더 말릴 수 없으니 포기하자는 표정으로 붓을 놀렸고 장거정은 어떻게든 도와줄 마음이 들었는지 다른 상서들에게 눈빛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끔찍한 결과만 나오리라.
적의 손실은 없고 사기는 풍부하며. 일대에 아군은 존재하지도 않고 오히려 방해물만 넘쳐난다.
지독한 강행군에 지친 병력들은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회전을 벌이겠지.
이건 세상의 불리한 요소를 결집한 꼴이다.
내가 전쟁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척계광이 할 수 있는 일은 양패구상 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