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50화
2부 12장 8화 진짜 전쟁(3)
장성을 넘은 지 사흘 뒤. 잔잔한 이슬비가 내린 초여름의 요동 벌판은 수많은 기병들이 진군을 거듭하였다. 각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큰 길이 작은 길로 변할 무렵 만 단위의 별동대는 천 단위로 분열하였다.
각지의 도적들을 추적할 목적으로 일백 기 단위로 분열한 별동대는 곳곳에 요택(遼澤)이라 불리는 늪지대를 돌파하였다.
늪지 사이에는 명확히 사람이 지나다니던 길이 있으니 정찰병의 눈에는 훤히 감지되었다.
“저쪽이다! 저쪽에 도적놈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보이니 당장 말머리를 돌려라!”
“이런 썩을. 왜 늪 한가운데에 길을 만들었지?”
요동 내부는 서로를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였기에 각 마을로 향하는 길은 험하기 그지없었다.
물로 뛰어든 북인 청년들은 형편없는 기마술과 덕분에 진격이 멈췄고 뒤에서 따라오던 케식이 잠시 멈춰 말을 진정시키고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새끼들아! 그따위로 말 몰다가 다리가 엉키면 낙마해서 목 부러지고 초원의 독수리 밥이 되는 거야! 처신 잘하라고!”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말이 니들 명령에 혼란스러워하니까 고삐 조이지 말라고! 너희 몸이라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허벅지는 가만히 두나! 그리고 수풀을 왜 얼굴로 헤치고 다니는 거야! 이런 기술 배운 적도 없어?”
퉁명스러운 말이었지만 모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청년들 가운데 몇몇은 북원의 말을 배웠으니 어설픈 통역이 가능했고 케식들의 기마술은 실전 환경에서 청년들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이런 배움에도 한계가 있었다. 갈대밭으로 뛰어든 북원 기병들은 칼을 휘둘러 갈대를 잘라 내거나 여의치 않으면 말 아래에 매달리는 마상재(馬上才)를 취하다 뒤의 동료들과 교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북인 청년들의 기마술은 부족했으니 몸으로 때우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말고삐를 움켜쥐고 무기를 휘두를 수도 없으니 갈대를 두들겨 맞았고 케식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허벅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덩치만 커서는! 허벅지도 튼튼해 보이는데 말을 타는 사람이면 허벅지 힘을 쓰라고!”
허벅지 두께로 따지면 평생 말을 타온 사람보다 두껍고 돌덩어리같이 튼튼하지만 정작 그 힘을 사용할 줄 모르니 더욱 답답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전쟁이 불러올 약탈과 폭력을 즐기려 했었지만 약탈은 멀었다. 투메드부의 칸은 북인이라 불리는 금나라의 후예이자 여진족들을 통솔하여 도적들을 약탈 아니 징벌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완수해야 하니까.
처음 만났을 때에는 자신보다 큰 키와 튼튼한 체격에 질렸지만 녀석들은 허우대와 장비만 좋은 것 같았다.
이 촌극을 보자니 케식은 고향에 있을 열네 살의 아들을 생각하며 이를 갈아댔다.
“내 아들보다 못한 녀석이라니! 스물이 넘게 처먹고도 자기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머저리 새끼들. 전리품의 절반도 아까워 죽겠네! 마을은 언제쯤 나올 것 같나!”
“대충 말을 타고 한나절 거리에 있을 것 같습니다. 발자국이 조금씩 짙어지는 것이 아직 사람이 자주 드나든 길은 아니군요.”
“한나절? 뭔가 좀 수상한데. 거기 너! 천리경 내놔라!”
케식이 말 위에 똑바로 서서 망원경을 사용하였으나 여전히 적이 보이지 않았고 케식의 입에는 초조함이 감돌았다. 장성이 무너지기도 전에 도망친 놈들 중 놓친 녀석들이 제법 되니 이미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싸움에 능숙한 도적들이니 가급적 마을 밖에서 자신들과 싸우려 하리라.
몽골 전사의 초월적인 시력과 결합한 천리경은 마침내 수풀 사이에 숨은 옷자락을 발견하였다.
“팔백 보 거리에 적! 수풀을 끼고 매복해 있다! 잘해야 일백 명인데 제대로 숨지도 못했군!”
“도적이다! 도적이 나타났다! 활을 들어라!”
북인 청년들은 다들 말안장에 매어둔 활을 손에 쥐고 화살을 재었다. 형편없는 기마술이지만 속도를 늦추고 활을 쏠 실력은 되니 이런 소규모 전투에도 쓸 방법은 넘쳐났다.
케식들은 지형을 파악하고 즉각 명령을 내렸다.
“핏덩어리들! 오른쪽으로 말을 돌려서 우회하여 화살을 쏘아라! 우리 머리통 위에 활을 쏴서 한 발 맞을 때마다 니들 모가지가 하나씩 날아간다! 우리는 너희의 사격이 끝나면 바로 난입해 놈들을 부숴 버리겠다!”
케식의 입장에서 적은 많아봤자 일백 명. 다들 기 싸움에서 밀리면 도주하는 도적들이니 일제사격으로 기를 꺾고 난입하면 충분하리라.
하지만 돌진 직전에 이견이 나왔다.
“당장 우회해서 다른 자굿(백인대)을 불러 오백 명이 결집해야 하지 않습니까? 예케 자르구치(대단사관, 보르지긴 나란수렌)께서 손해를 보지 말고 신중히 싸우라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우회했다 돌아오면 한나절은 걸리겠지. 그동안 온갖 준비를 할 놈들이니 오히려 힘들어져! 놈들이 몸을 숨기지도 못한 지금 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다들 준비해라!”
일백 보(160m)까지 접근했을 무렵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으로 우회한 북인 청년들이 일제히 활을 날렸고 케식들은 아군이 쏜 화살을 맞을까 잔뜩 긴장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높였다.
“이 미친놈들 거리가 이렇게 먼데 말 위에서 활을 쏘면 당연히…….”
말 위에서 쏘는 활은 크기가 작고 장력이 약한 편이다. 튼튼한 지면에서야 힘을 모조리 사용해 이백 보(320m)까지 활을 날릴 수 있지만 말 위는 불안정하고 상반신의 힘이 흐트러지니 작은 활을 사용해 사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거의 150보를 날아간 화살은 자신들의 머리를 지나 도적들이 매복해 있던 수풀에 일제히 떨어지고 바로 다음 화살이 날아들었다. 도적들이 사방으로 달아나는데 일백 명은 될 법한 도적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스무 명의 도적이 옷가지를 갈대 사이에 끼워 넣어 수를 불렸으니 명백한 함정이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케식들이 북인 청년들을 확인하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함정이 넘쳐나는 지형이었다.
“당장 말 돌려서 나와! 나오지 못하면 그냥 돌파해! 말을 껑충껑충 뛰어 밧줄을 넘어 돌파하라고!”
멀리서도 뻔히 보이는 함정이었지만 북인 청년들은 경험이 부족하기에 함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방에 가로놓여진 밧줄이 말의 발목을 휘감으면서 대열은 혼란에 빠졌다.
“멈! 아니, 말 돌려!”
“젠장 이걸 뭘 어떻게 아아악!”
부족한 기마술 때문에 멈추지도 못하고 말과 함께 나뒹구는 이들.
동료의 모습을 보고 질겁해 말을 멈춘 이들이 생겨나며 기병의 가장 큰 장점인 속도가 사라졌고 적은 기회를 충실히 이용했다.
잠시의 틈을 노려 사방에서 밧줄과 갈고리가 날아드니 북인 청년들은 삽시간에 낙마하여 바닥을 뒹굴었다.
케식들이 말을 돌렸지만 이미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빗발쳤다.
“이런 망할! 우리들만 있었으면 걸리지도 않을 함정인데 저런 애들이 걸리다니!”
낙마로 인한 충격과 포위당한 상황의 불리함. 숙련된 병사들이 아니면 삽시간에 궤멸하리라.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건지려는 마음에 케식들의 발이 다급해졌지만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이 도둑새끼들아! 더럽게 아프잖아!”
“나를 묶어! 이 갈고리는 또 뭔데!”
그물에 사로잡혀 질질 끌려가야 할 청년이 세 명의 힘을 어떻게든 버텨내는 광경. 팔에 걸린 갈고리를 역으로 잡아채 상대를 끌어당기는 광경.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인지라 기습에 성공한 도적들도 흥분이 사라지고 당혹감에 휩싸였다.
북인 청년들이 알음알음 배운 훈영제식법과 입신체비로 다져진 몸은 어중간한 충격 따위는 견뎌낼 수 있었으며 싸움 하나는 자신 있었다. 심지어 무기의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기에 기습의 이점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창으로 찔러 죽여! 창 휘두르지 말고 찌르라고!”
“알고는 있는데 안 박혀!”
“안 박히니까 그냥 죽어!”
도적이 북인 청년의 등을 찔렀지만 둔탁한 쇳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날아온 칼에 팔이 잘려 나갔다.
병장기 대다수가 조선에서 비축 중인 물건이기에 품질 하나는 우수했고 이는 몇 번이나 당할 치명상을 작은 부상으로 완화시켰다.
오히려 눈에 핏대를 세운 북인들은 평상시 연습한 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키가 반 뼘 가까이 큰 데다 체중은 30근(19.2㎏)이 큰 북인들이니 아무런 기교도 없이 휘두르는 무기만 하여도 흉물 그 자체였다.
북인 청년이 한 손으로 휘두른 장검을 막아낸 요동 도적이 뒤로 자빠지며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즉사하였다.
도적답게 순식간에 사기가 떨어진 상대는 도주를 택하였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길로 도망치면 잡힌단 말이야! 저놈들 말이 있어!”
“그래! 덩치가 큰 놈들이니 갈대밭에서는 허우적거리겠지!”
억센 갈대밭으로 들어가면 무기를 휘두를 수 없다.
결국 순수한 완력 다툼이 시작되었지만 내수린을 즐기는 북인들에게 이런 맨손 싸움은 장기이다.
갈대밭으로 뛰어든 북인 청년들은 평상시 즐기던 ‘놀이’를 하였다.
“갈대밭에서 도망치지도 못하는 놈들이 왜 싸우러 왔어! 그냥 뒤져!”
“돌 어디 있어! 이놈 솟대 부수기로 머리통을 부숴 버릴 거다!”
“자! 이리로 왓! 한 대 쳐 맞아! 맞고 저승에 가라!”
갈대밭에서 얼굴을 맞거나 복부를 맞아 사지를 휘청거리는 도적들이 끌려 나와서 청년들의 분노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사방에서 뼈가 부서지고 사지가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한 청년은 아예 역차돌리기를 실시하였다.
“네놈은 죽어도 되니까 역차돌리기다!”
다리를 잡힌 채 엄청난 힘으로 수십 바퀴를 돌다 하늘로 치솟은 도적은 땅으로 떨어지며 목이 꺾여 즉사하였고 동료들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뒤늦게 도착한 케식들은 땅에 떨어진 도적을 보고 투메드부에서 전해지는 전승을 떠올렸다.
[투메드부를 부흥시킨 위대한 칸께서는 조선의 근육요괴와 싸워 지혜를 얻으셨다. 근육요괴는 칸의 다리를 잡고 수십 바퀴를 돌려 바닥에 내던졌으나 타고난 용력으로 목숨을 건진 칸께 지혜를 주었다.]
전승은 백여 년 전 테무르 칸의 조부인 타이순 칸이 조선의 왕족과 부흐 대결을 벌여 패한 사건이 왜곡된 것이며 케식들은 알 권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과장이 있다 여겼지만 실제로 사람을 빙빙 돌려 내던질 수 있는 자들이 엄연히 존재했다.
“이게…… 이게 대체…… 다들 괜찮은가?”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낙마하여 목이 부러진 사람이 넷이고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이 둘이지요. 여기에 한 열 명 정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청년들은 자신의 기마술이 부족해 피해를 입었다 자책했지만 이런 함정에 걸렸다면 보통 병사들은 몰살당했으리라. 전투가 끝난 청년들이 갑주를 풀고 부상자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장정들이 몇 년이 지나 기마술을 온전히 익히면 어떤 병사가 되겠는가.
지금이라도 기습하여 몰살시킬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은 청년들이 전하는 물건을 보자 사라졌다.
“어르신들께 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부족하여 팔이 꺾인 바람에 더 이상 징벌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장에서 쓸 물건들은 저에겐 사치이니 어르신께서 요긴히 사용해 주십시오.”
부상을 입은 청년들은 자신이 가져온 군수품을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비상시에 쓰려고 가져온 은자부터 말에게 먹일 보리, 보르챠(몽골식 보존식품)와 흡사한 가루 그리고 나무처럼 뻣뻣한 이상한 물건(황태포)까지.
전장은 삽시간에 물건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장소가 되었다.
케식들도 가만 생각하니 북원 일대는 겨울 추위가 거세져 점차 삶이 빠듯해지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이 부유한 청년들에게 기마술을 가르치면 말년을 쏠쏠하게 보내리라.
이런 재물을 제공하는 이들이라면 가르칠 마음이 없더라도 생길 지경이었다.
케식은 과일 맛과 흙 맛(유목민족은 채소를 먹지 않아서 먹으면 흙과 흡사한 맛을 느낀다)이 나는 보르챠를 퍼먹으면서 부상자를 수습하는 일을 도왔다.
“조금 쉬었다 어서 출발하자! 이제 네놈들을 핏덩어리라 부르지 않겠다! 살이 넘쳐나니 불친(булчин: 몽골어로 근육) 덩어리라 부르겠다!”
몽골어에는 근육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으니 힘줄과 섞인 고기나 수족에 있는 살덩어리를 뜻하였지만 의미는 어떻게든 통하였다.
이윽고 마을의 목책에 도달했지만 휑하니 비어 있는 마을을 본 케식들은 혀를 차며 추적할 흔적을 찾아댔다.
“이쪽이군! 이쪽으로 놈들이 도망갔으니 어서 잡아 올리자고!”
말을 타고 도망간 장정들은 잡아들이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은 잡아들일 수 있었고 이들은 스스로 일군 마을을 무너뜨리고 전리품의 신세가 되었다.
문제는 전리품의 분배 과정이었다.
“저희들은 귀중품이나 좀 챙기겠습니다. 이놈들을 데려가서 노비로 삼아도 그리 큰 이득을 보지 못하거든요.”
“뭐? 아니, 이렇게 적당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노비로 삼아도 이득을 못 본다 말하나?”
“세조대왕께서 정하신 지엄한 법률에 의해 노비 한 명당 매년 세금으로 은자 한 냥을 내야 합니다. 노비를 먹이고 재우는 것도 일인데 이런 핏덩이들을 키워서 뭘 합니까?”
노예를 많이 두면 곧 권력인 북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관습이 이러하니 어찌하겠는가.
조만간 북원으로 머나먼 행군을 시작할 옛 요동 도적들은 울분을 터뜨렸지만 이런 이들이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지로 흩어진 좌우군은 흡사한 전과를 올렸다.
함정에 걸리지 않으면 적을 몰살시키고 설령 미숙한 북인 청년들이 함정에 걸려도 역으로 적을 궤주시키기니 전투다운 전투는 닷새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합법적인 징벌이 시작되었지만 그들이 애타게 찾아대는 도적 두목이자 가정제에게 임명된 경략도 북원 정예 병력의 맹공을 받아 애처로운 저항을 거듭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