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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48화 (348/573)

근육조선 348화

2부 12장 6화 진짜 전쟁(1)

장거정의 입술이 찢어지건 말건 만력제는 정말 자신의 명령이 통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만력제가 나서서 업무를 행한 적은 없으리라.

“걸어! 이 새끼들아 거기부터 계단이다! 빨리 걸어!”

만력제의 명령대로 안대를 차고 귀에 솜을 넣고 재갈까지 물렸으니 뭘 어찌 알겠는가.

계단을 만난 도적들은 넘어져 정강이가 부딪히고 바닥을 굴렀지만 만력제의 명령이 하달되어 안대는 용수(사형수의 머리 위에 씌우는 두건)로 바뀌었다.

황제 자리에 오르고 스승의 명령만 받아온 황제에게 이번 외교 분쟁은 신선하게 느껴졌으리라.

장거정조차 함부로 가부(可否)를 정할 수 없는 조선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려는 의지 때문에 몸이 앞으로 기울어…….

“죄송합니다만 황상께서 혹여나 척추가…….”

“목소리를 낮추게. 자네가 본 것이 틀림이 없으니 날 때부터 저런 체형이셨네.”

내 눈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김종인이 목소리를 낮추어 답했다.

만력제의 몸은 14세로 성장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척추가 앞과 옆으로 휘어 있었다. 이대로 성장하면 흔히 말하는 꼽추가 되겠지만 치료할 방법도 없다.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운동은 불가능하겠지. 몸도 온전치 않고 자신의 뜻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는 와중에 개입할 여지가 생겼으니 얼마나 신나겠는가.

하지만 나는 신나지만은 않았다.

“이러다가 홀리늑태(쿠릴타이, 몽고의 정책 결정 회의)가 끝나 북원이 쳐들어오면 모든 일이 무용지물이 되는데.”

지금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북원의 침략이다. 조선에서 도적이 들끓는다고 아무리 주장하여도 도적이 생긴 이유가 북원의 침략 때문이라 발뺌하면 어찌하겠는가.

김성일은 내 말을 듣더니 손가락으로 셈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농조 관원이지만 내 이전에 외조에 근무한 경험이 있었으니 내가 논쟁에서 밀릴 때에 나서려 했다던가.

그는 괜찮다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드리고 호기롭게 답했다.

“내가 알기로 홀리늑태는 오 년 간격으로 매년 삼월에 개최된다 하였다네. 재작년에 홀리늑태가 열렸으니 아마 큰 변고가 없으면 이 년 뒤에 열릴 것이네.”

“하지만 토묵특(투메드부)에서 홀리늑태를 열어 전쟁을 시작할 가망성도 있지 않은가.”

“토묵특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여도 홀리늑태를 열려면 각 지파에 소식을 전해야 한다네. 올해 일월에 벌어진 일이니 전령이 가는 데 한 달, 소식이 전해지는 데 한 달, 지파를 소집하는 데 두 달이면 지금쯤 홀리늑태가 열리겠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마 1576년 5월인 지금 긴급 쿠릴타이를 개최하겠고 다시 결론을 내려 병사를 소집하는 데 석 달은 걸리리라.

열흘이 지나자 친국도 막을 내렸고 장거정은 그동안 밤잠을 설쳤는지 파리한 얼굴로 변했으며 만력제는 침통한 표정을 짓더니 억지로 입을 움직였다.

“친국을 행하여 본 결과 요동의 백성이 삿된 마음을 품고 아바…… 아니 선제께서 임명한 철령경략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조선에 막대한 해악을 끼쳤다.”

“황상께서 엄정한 친국을 행하시고 올바른 결론을 내리시니 번국의 신료로서 묵은 한이 사라지옵니다. 황상께서 내리신 은덕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그러한 공치사는 되었다. 엄연히 요동의 백성이 삿된 마음을 품었으니 최소한 삼십만 마리의 가축이 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한 보상은 내탕금을 털어내 해결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삼십만 마리는 조금 과장된 수치이지만 만력제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나보다.

그냥 가축이 죽었다 보고가 들어온 사항을 일제 취합해서 보냈으니 우역으로 죽은 가축에 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사고로 죽은 가축도 포함되었으리라.

이래저래 이득을 보았으니 가장 중요한 결실을 얻어야 할 차례이다. 인삼 좀 많이 팔면 거둘 은자는 되었고 요동의 토벌이 중요하다.

이제 다시 공세를 취할 시기이다.

“하오나 황상께 청이 있사옵니다. 사람이 해를 입지 않았으니 몇 년간 고난을 감내하면 될 일이옵니다만 요동의 도적들이 더욱 많아져 기승을 부리니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옵나이다.”

“이미 선제께서 임명한 다섯 경략과 요동도사가 있거늘 무얼 조사한단 말이오. 요동에 도적이 있다지만 이는 어디에나 있는 도적이옵니다.”

어디에나 도적이 있으면 그게 나라냐! 듣자 하니 북경 인근에도 도적이 가끔 출현한다던데 이걸 정상으로 만드는 명나라 관료들이 문제지!

다시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졌고 만력제도 피로함을 느꼈는지 나와 장거정의 언쟁이 지속되었다.

그러기를 열흘쯤 지났을까. 자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하며 몸을 단련하는데 자금성에서 군관들이 급히 우리를 불렀다.

나를 비롯하여 조선 관원 다수가 한밤중에 급히 개최된 논의에 참석하였는데 기세가 삼엄한 것이 뭔가 문제가 있나? 하지만 창백해진 얼굴의 만력제가 옥좌에 앉고 내가 아닌 진해대군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방금 전에 변고가 들어왔다. 열흘 전에 요동에 칠만 가량의 달자들이 쳐들어와 이미 장성을 무너트리고 요동 일대를 들쑤시고 있다 하였다.”

“칠만 가량의 달자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옵나이다!”

내가 잘못 들었나? 칠만? 북원 전체에서 최소한의 수비병을 제외하면 15만 정도의 병력을 쥐어짜 내는 것이 한계인 상황에서 절반이 공세를 퍼붓는다?

이 정도면 하르빈은 물론이요, 일대의 북인들이 몰려들어도 막아내지 못하는 규모이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오히려 김종인이 말을 받아냈다.

“정녕 칠만이라 하면 정군(正軍: 병사로 복무하는 사람)만 셈한 것이 아니옵니다. 치중은 물론이요, 정찰병과 후위를 감안하면 오만 명 이하가 분명하옵니다.”

“그리 셈하고 과장이 있다 하여도 사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다. 요동의 병력이 기껏해야 칠만에 불과하며 쥐어 짜내야 십이만 명에 불과한데 이를 어찌 막아내는가.”

투메드부는 북원의 곡창지대이니 이래저래 비정기 쿠릴타이를 개최할 가능성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내 능력으로는 진실을 말해 이를 앞세울 뿐이지 비상 상황에서 대처할 능력은 부족하다.

4만의 적이 쳐들어왔다면 최소 한 달 전부터 이런저런 움직임을 보일 것이고 이를 전달하지 못한 조선의 책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김성일이 앞으로 나서서 변명을 시작하였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삼십만에 달하는 가축이 우역으로 죽은지라 아국의 북방 병력에서 사용하던 말로 마경(馬耕: 말로 짓는 농사)을 실시하였사옵니다. 그리하여 수비의 공백이 생겼사옵니다.”

김성일 네가 여기 온 이유를 알겠다! 나는 주상전하의 명령을 받고 끝났다 여겼지만 김성일은 상왕전하를 만난 적이 있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밀명을 수행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 * *

북인이라 불리는 옛 여진족들은 조선에 귀부한 이후 조선이 설립한 군현을 중심으로 삼아 커다란 공동체를 만들었다. 일백여 호 내외의 마을 열 개가 결집하면 인구만 따져도 오천 명에 달하였다.

당연히 겨울 동안 모이지 못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술판이 벌어졌다.

겨우내 비축해 두었던 옥수수로 만든 탁주를 들이켠 청년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요즘 도적놈들이 보이지 않는데 자네 마을에서는 몇 놈이나 죽였나?”

“우리 마을에서는 여섯 놈을 죽인 것이 전부라네. 놈들도 북쪽에만 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걸 아는지 요즘은 도통 보이지를 않아.”

“거 건넛마을 최 씨 아저씨가 실수를 저질러 도적을 놓친 것을 잊었나? 소문이 퍼졌겠지!”

“내 마을에서 죽은 소만 백오십 마리인데 도적놈들 백오십의 목을 베기 전까지는 밤잠도 이루지 못할 거라네!”

우역의 진상이 밝혀진 이후 신나게 요동 도적들을 사냥하였지만 도적 생활에 도가 튼 놈들이라 한계가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추격하여도 장성을 넘을 용기는 나지 않았으니까.

여러 마을에서 모인 청년들이 도적을 얼마나 죽였는지 셈을 해보더니 기껏해야 오십 명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왔고 술을 계속 주문하였다.

한 청년은 분통을 터트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고함을 질렀다.

“아이고 이놈의 요동 도적들을 소탕해야 하는데! 당장 하르빈에 있는 족친위 기병과 정지운 어르신의 호분위 병력을 파견해서 모조리 쓸어버려야 하는데!”

“거 그러면 명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걸세. 요동 놈들이 엄연히 명나라 백성임을 잊었는가.”

“전면전? 그런 도적들을 백성으로 삼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조정에서 내린 대책은 삼 년 동안의 세금 면제와 피해를 계산하여 손해를 본 가축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지만 한계가 명확하였다.

서로 술을 마셔대 얼굴이 벌겋게 변한 청년들의 울분은 점점 거세졌다.

“나라님도 무심하시지! 요동 도적놈들이 몰래 우역을 퍼트리면 또 손해를 입을 게 아닌가! 그렇다고 보이지도 않는 우역에 시달리는 일이 말이나 되는가!”

“한겨울에 말발굽을 닦아내고 목욕을 시키려다가는 우리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거라네!”

“결론은 하나일세! 요동으로 쳐들어가 도적놈들을 모조리 소탕하면 된다네!”

“그럼 명국과 전쟁을 벌여서 불가능한 일이라니까! 왜 자꾸 말이 되돌아오는가!”

끝없는 언쟁의 순환은 술을 목으로 넘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안주도 없이 옥수수탁주를 쉴 새 없이 들이켜던 청년들은 말안장에 오른 채 휘청거리며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장성을 넘으려면 밧줄 걸고 들어가면 충분하잖아! 혹시 밧줄 말고 사다리라도 가져오리?”

“야 이 머저리 놈아! 들어가서 끝이야? 사방에서 도적들이 몰려오는데? 당장 임 사직님의 춘부장(春府丈)께서 돌아가신 연유가 요동 도적의 함정에 빠져서라잖아!”

“당시의 일은 나도 알아! 이천 명의 병사들이라 함정에 빠진 거지 이만 명이라면 충분하다! 우리 북인들이 한 호당 한 명의 병력을 뽑아내면…….”

허허벌판에 술에 취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퍼져 나갔고 저 멀리 수풀이 움직이더니 웬 늠름한 기병 여럿이 청년들에게 다가왔다.

청년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허리춤에 매어둔 칼을 더듬었다.

“대…… 댁들은 뉘쇼!”

“조만간 투메드부에서 명나라를 징벌할 것이다. 너희들도 가축에 손해를 입어 울분을 터트리지 않던가? 말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 위대한 징벌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정신이 번쩍 돌아온 청년들은 상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몰래 잠입하였는지 자신들과 흡사한 복식을 갖추었지만 야성이 번뜩이는 눈빛과 흉터가 가득한 얼굴을 보면 엄청난 실전을 경험한 투메드부 혹은 북원의 기병이리라.

“지금 위대한 징벌이라 하였소?”

“그렇다. 이미 쿠릴타이가 끝나 예케 몽골 울루스의 동방의 모든 병력이 징벌을 천명하였으며 조선의 협력을 바랄 뿐이다. 징벌은 다음 달부터 시작할 것이니 합류하려면 한 달 이내에 마음을 정하도록.”

이야기를 전달한 투메드부 병사는 거리낌 없이 말을 돌려 다른 마을에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는지 강 건너로 달려갔다.

멍하니 시선을 교환하던 청년들은 하나같이 마을로 돌아가 이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하였다.

“관찰사님! 북원에서 징벌을 선언하였는데 조선도 합류하여야 합니다! 요동 도적들에게 평생 당하고만 계실 생각입니까!”

“요동 도적들이 다시 우역을 퍼트리면 모두 관찰사님이 태만한 탓입니다!”

“요동을 정벌하자! 정지운 어르신의 기병이면 충분합니다!”

말을 타고 다니는 이들이니 소문도 빨랐다.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소문이 퍼져나갔고 하르빈 요새 앞에는 이천 명에 달하는 북인 청년들이 병장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르빈 요새 안에도 청년들이 도열해 있었다. 아마 관아 앞에서 편곤을 들고 신장(神將)처럼 버티고 서 있는 임차손이 아니라면 당장 관아로 밀고 들어가 관찰사 이양원의 사지를 부여잡고 애원하였으리라.

“야 이 머저리들아! 우리는 정규군이라서 함부로 요동에 들어갔다가는 명나라와 전면전 시작이라니까! 가려면 니들 혼자 가든가 해라! 사내놈이면 그 정도는 해야지!”

“사실 저희의 무기가 변변치 않아서요.”

“그거면 북원 놈들보다 무장이 좋은데 뭘 따져! 말 타고 사는 애들답게 그냥 합류해!”

북인들은 엄연한 여진족 출신이었지만 조선에 귀부하고 백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들의 증조부는 온전한 기마민족이었지만 4대가 흐르니 옛 풍속은 사라지고 조선의 풍습에 물들었다.

약탈과 폭력은 옛말이 되었으니 통치에는 좋은 일이지만 전투력은 급감했다. 북인들도 이를 알고 있으니 가급적 정규군에 합류하여 손실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시위를 하였다.

갑자기 임차손이 고개를 돌려 경례를 올렸다.

“관찰사님 기침하셨습니까?”

“기침은 무슨. 자네들은 여기 모여서 뭘 하는 것인가? 나는 이번 일에 대하여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네. 날이 풀렸으니 휴가나 다녀오면 되겠군.”

이양원의 복장은 관복도 아니요, 움직이기 편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으며, 뒤에는 관아에서 근무하던 관리 여럿이 정말 휴가를 가려는지 평상복을 입었고 심지어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따라붙었다.

“아이고! 정지운 어르신! 어찌하여 이런 중요한 때에 한가하게 뱃놀이나 하러 가십니까!”

“날이 풀렸으니 뱃놀이나 가야지. 기왕이면 휘하의 호분위 기병들도 놀며 지내게 해야겠으니 오래간만에 몸을 편히 지내겠군. 노저(이양원의 호) 자네가 경치가 좋은 장소를 알아뒀다 하는 데 얼마나 좋을지 궁금하군.”

“경치가 아주 좋고 산세도 수려합니다. 배를 타도 좋고 말을 타도 좋을 장소이지요.”

오위 가운데 순수한 기병으로 편성된 호분위의 수장이자 부총관(副摠管: 종2품 무관)이며 북인들의 우상인 정진영의 후손 정지운이 한가로이 뱃놀이나 떠나는 모습을 보자 북인 청년들의 억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관아에서 나온 이양원의 소매에서 열쇠 꾸러미가 떨어졌고 북인 청년들의 시선이 쏠렸다. 형태와 크기를 보니 무기고에 사용하는 열쇠인데 왜 떨어진단 말인가.

하지만 이양원의 행동은 기이했다.

말을 타고 떠나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관아로 돌아오며 일부러 열쇠 꾸러미를 발로 차 북인 청년들 근처에 밀어두고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를 냈으니까.

“어이고 내 정신 좀 보게나. 가죽으로 만든 옥대(玉帶: 허리띠)와 은자를 관아에 두고 왔으니 실컷 놀 준비도 안 했군. 자네들은 어서 알아서 행동하지 않고 뭘 하나?”

청년들의 시선이 저 멀리 사라진 이양원으로 쏠리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열쇠 꾸러미로 향했다.

한 청년이 임차손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열쇠에 손을 가져다 대자 임차손은 억지로 귀를 후비며 시선을 돌렸다.

“주상전하 천…… 아니! 이건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울분을 견디지 못한 일이지! 다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는 우연히 열쇠 꾸러미를 손에 넣었다네!”

“암 그렇지! 우연히 열린 창고에서 병장기를 좀 챙겨가서 우연히 요동 도적들의 배때기에 쑤셔 박을 뿐이지! 이런 우연 중의 우연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 병장기에 함부로 손을 대면 곤장을 맞겠지만 곤장 정도야 좀 맞을 수 있지!”

“옳은 말일세! 병장기를 들고 요동 도적의 사지를 박살 낸 다음 되돌려 놓으면 형무소에 다녀올 죄도 아니지! 화살이야 값을 치르면 될 것이 아닌가!”

공식적으로 요동 도적을 토벌할 수 없지만 북인들의 분노를 풀 장소를 마련할 방법도 필요하다.

상왕 이호는 이 모순을 해소할 방법으로 이런 우연과 근무 태만을 가장한 ‘사고’를 택하였다.

이호의 배려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호분위에 속한 기병과 하르빈에 거주하던 북인 출신 군관들 이천여 명이 난데없는 장기휴가를 받았고 이들은 합류하며 괜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요즘 마을에 소가 부족하다 해서 내 말로 마경을 실시하려 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땅 농사보다 사람 농사가 좋겠어. 요동 도적들의 피로 농사를 좀 지어야겠군.”

다시 보름이 지나고 4만에 달하는 북원 기병 앞에 2만에 조금 못 미치는 북인 청년들과 휴가를 받은 군관 이천여 명이 도열하였다.

모두 군관들의 지시를 받고 병장기를 패용하였으나 아직 경험만은 부족한 이들이 대다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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