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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45화 (345/573)

근육조선 345화

2부 12장 3화 북방에서(3)

강을 건너 추위에 시달리며 말을 빠르게 놀리기를 반나절. 저 멀리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저게 다 마시에 참가할 가축들이 분명했다.

내 말의 속도가 늦어지자 임차손은 망원경을 건네주며 말하였다.

“이런 장소엔 내가 들어가서 돕고 싶지만 이번 마시를 담당하는 사람이 기가 영 드센 것이 아니라…….”

임차손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누가 임꺽정의 아들 아니랄까 봐 명나라 황제를 앞에 둬도 당당하게 나서겠지만 말솜씨로 싸우면 바로 기세에서 밀린다.

“차라리 술수에 능한 학봉(鶴峯: 김성일의 호)을 데려올 것을 그랬나? 하긴 자네라면 누굴 만나더라도 말솜씨로는 이길 수 없지. 내가 세 치 혀를 놀려 설득하여 보겠네.”

나는 김성일처럼 정치에 투신해 술수를 부린 적이 없다. 하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대를 엮는 기술이 부족하지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지라 보통 사람보다는 뛰어나다.

임차손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말하였다.

“그래도 항시 조심하게나. 상대는 북원에서 세력이 손에 꼽히는 토묵특(土默特: 투메드부)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온 패아지근(孛兒只斤: 보르지긴) 혈족의 후예일세. 아국에서 따지면 종친이란 말이네.”

“염려하지 말게나. 내가 외조에 근무한 일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강화도에 근무할 적에 외조 관원이라 해서 여러 외교 사항을 서적과 서신을 통해 배웠다네. 역관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하겠군.”

저 멀리 보이는 막사에 몽골의 왕족인 황금씨족의 후예가 있었는지 호위병들이 나서서 나와 역관 한 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안내했다.

삼엄한 분위기라 조금 긴장했지만 어차피 외교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천막 문을 들추고 들어가자 예상대로 맹장의 기운이 느껴지는…… 여성이 있기는 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좀 주눅이 들었지만 태연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올렸다.

“조선의 외조 관원으로 방문한 유성룡이라 합니다. 예케 몽골 울루스(대 몽골국)의 황금씨족을 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황금 씨족의 말예이자 투메드부를 일군 타이순 칸의 후예 보르지긴 나란수렌이오. 이번 마시에 대해 논의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본론을 시작합시다.”

뭔 분위기가 이래? 누가 유목민족 아니랄까 봐 보르지긴 나란수렌은 어지간한 조선 군관보다 덩치가 우람했다. 손을 보니 활을 얼마나 쏘아댔는지 굳은살은 물론이요, 손가락이 활을 쏘기 편하게 뒤틀려 있었다.

아내가 입신체비만 했다면 나란수렌은 무예만 수련한 것 같았다. 이런 여장부가 여기 올 줄은 몰랐는데 장수라면 외교는 잘 모르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이번 마시에 상품으로 제공될 인삼을 쓸 곳이 있어서 이 대신 다른 물건을 제공하려 합니다. 그러하니 거래의 내용을 변경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인삼은 우리가 다른 부와 무역을 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니 미곡이나 철물로 받지 않겠소. 최소한 무역에 쓸 수 있는 차를 주고 가급적이면 은으로 주시구려.”

강압적인 제안이지만 지금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변경하길 원하여 불리한 입장이다. 나 대신에 김성일이 왔어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 외에는 답이 없으리라.

하지만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알겠습니다. 다만 상품을 준비하려 하는데 인삼 오천 근 어치의 은이나 차라면 준비하는 데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낙타를 통해 운반해도 한 달은 걸릴 것이니 거래를 먼저…….”

“그럴 수 없소. 인삼 오천 근이면 말과 소를 합쳐 일만 이천 필의 값이니 해당하는 은이나 차를 먼저 내오시구려. 내온 이후에 거래를 성사할 것이니 협상할 수 없소이다.”

인삼 오천 근이면 은으로 팔만 냥이요, 잘 말린 엽차로는 약 오십만 근이다. 경원부터 하르빈까지 탈탈 털어내면 나오지만 조정에서도 힘을 써야지.

이건 좀 무리한 요구이니 이들도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혹여나 투메드부에 문제라도 발생하였습니까? 혹여나 거래를 먼저 성사하여 부족을 통솔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면 아국이 조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뇌물을 안 받지만 뇌물수수죄도 없는 이 시대에는 지나치게 많이 받아 손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다.

나란수렌은 코웃음을 치며 웃옷을 걸치고 나를 천막 밖으로 몰아냈다.

“문제라? 지금 우역으로 투메드부에서 기르는 소의 삼 할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라 가축의 값이 하늘로 치솟는데 당연히 값을 먼저 셈해야 하는 것이 아니요? 우역에 관해 할 말이 있으니 당장 따라오시구려.”

나란수렌은 엄청난 힘으로 나를 떠밀어 말에 타라 독촉하더니 말을 거세게 몰아 저 멀리 말과 소들이 모인 곳까지 달려갔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사람들이 도열해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예케 자르구치(대단사관, 일대의 행정과 법률을 총괄한다)님 오셨습니까!”

“가축들은 잘 지내고 있는가? 잘 지내고 있다면 이 조선 관원에게 자네들이 어떻게 우역에 대처하는지 상세히 알려주도록!”

수십 명의 마부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간단히 요약할 수 있었다.

가축에게 끓인 물을 먹이고 몸을 씻기며, 다른 부족을 만날 때에는 보름간 가축을 접촉시키지 말고 우역의 발병 여부를 확인할 것.

물이 부족한 지역이라 가축을 씻길 수는 없지만 나머지는 충실히 지켰고 우역은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았으나 다음 해에 다시 창궐하였다.

나란수렌은 당시의 고생을 떠올렸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분노를 삼켜가며 말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허사였소. 조선의 조언을 지켜 우역을 통제하려 사력을 다하는데 투메드부로 돌아가면 우역이 번지더구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시오?”

“설마 아국이 우역을 퍼뜨리는 행동을 불순한 짓을 행한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그런 정도는 아니오. 그저 조선에서 우역을 통제하지 못하여 우리에게 옮겨오는 것이라 여기고 있지. 하지만 조선이 우역을 퍼뜨리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점차 생기고 있지.”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투메드부는 마시를 열 때마다 우역이 퍼져 소의 삼 할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꾸준히 거래를 이어준 것이니 이는 동맹국이라 보아도 된다.

이들은 유목민족이며 장정이 곧 병력이니 조선에 원한을 돌리며 파상공세와 약탈을 반복할 수도 있지만 그런 쉬운 길 대신 백 년 동안 이어진 거래를 이어가길 원하고 있었다.

지배층인 나란수렌의 형제자매들은 사력을 다해 민심을 통솔하여 자리가 남는 나란수렌이 여기까지 온 것이리라. 이런 상황이니 북원의 요구사항을 존중함이 마땅하리라.

이양원에겐 안 된 일이지만 나란수렌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제가 소식이 늦어 이런 상황일 줄 몰랐습니다. 조금 시일이 걸리더라도 거래 품목을 조절하여 거래를 성사시킬 것이니 시일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결국 경원까지 전령을 보내는 시간 10일과 필요한 물자가 오는 데 걸리는 20일, 도합 한 달을 하르빈에서 보내게 되었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누굴 원망하겠는가.

* * *

이양원은 보고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찰사로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변고가 속출하니 일촉즉발의 상황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여긴 것이다.

“손해야 좀 보겠지만 참으로 다행일세. 그나저나 참 이상한 일이야. 내가 알기로는 우역이 번져도 달자 아니 북원에서 기르는 소들은 우역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알고 있네.”

“우역이 소의 품종마다 다르게 퍼집니까?”

“물론이지. 인수인계를 받을 적에 배웠는데 북원의 소들은 우역에 걸리면 삼 할이 죽고 나머지는 한 달을 버티고 회복되지만 아국의 소는 구 할이 보름 내에 죽는다고 들었네. 그런데 이렇게 크게 번지다니 뭔가 문제가 있다네.”

품종별로 사망률이 다르다면 천연두나 마찬가지이다.

조선인은 천연두에 걸려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사망률이 30% 이하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사망률이 90%에 육박하니까.

이양원은 괜히 천장을 올려보고 나에게 장계를 건네주었다.

“당장 경원에서 물자를 호위할 병력을 마련해야 하며 한 달 동안 강 건너에 대기할 북원의 말과 소를 먹이고 관리하는 인원도 배정해야겠지. 사람이 부족하니 자네는 장계에 적힌 부락에 가서 우역의 현황을 확인하게.”

먼 북방까지 와서 업무를 받으니 속이 답답했지만 한 달 동안 허송세월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임차손을 비롯한 호위병과 함께 하르빈 사흘 거리에 있는 부락에 방문하였다.

“거기 있소? 이 지역에 우역이 창궐하였다던데 이를 확인하러 왔소!”

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한 청년들이 허둥거리다 마을로 향하였고 촌장이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빛을 보니 명백한 두려움이 가득하였다. 이 두려움은 뇌물을 받거나 실책을 저지른 두려움이 아니고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분명하였다.

“염려하지 마시오! 우역에 대한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황을 확인하러 온 것이오! 북원을 비롯한 일대에 우역이 퍼졌으니 이를 확인해야 마땅하지 않겠소!”

뒤늦게 나온 촌장은 눈치를 살피며 우리를 안내했다. 지금까지 소의 질병인 우역의 정체를 몰랐기에 혹시나 우두(牛痘)를 우역이라 부르는 줄 알고 있었다.

조선에도 우역이 퍼졌지만 세조(본래 역사의 단종) 시기에는 홍수 이후 우역이 퍼졌다 해서 수인성 전염병이 여럿 창궐한 거라 여겼었지.

하지만 내 눈앞에 놓인 광경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이게…… 이게 다 소의 시체란 말인가?”

“서애 자네는 모르고 있겠군. 그나마 북원에서 들여온 소들이 많은 고장인지라 피해가 덜하다네. 오 년 전에는 아국의 소를 기르던 고장은 말 그대로 소가 전멸했다 하더군.”

임차손도 기분이 나쁜지 고개를 돌리며 헛구역질을 하였는데 나는 헛구역질을 할 힘조차 나지 않았다.

마을 인근에 설치된 울타리 안에는 형형색색의 소들이 혹한에 엉겨 붙어 거대한 사체 덩어리를 만들었다.

간혹 버르적거리는 다리가 보이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니 아직 죽지 않은 소도 증세가 심각하면 즉시 마을 밖으로 버리는 것이 분명했다.

촌장은 아예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하였다.

“겨울철이라 꽁꽁 얼어 있어서 다행이지만 여름이 되면 썩으니 봄이 될 무렵에 모조리 태워 버립니다. 가을부터 지금까지 마흔 마리의 소가 우역으로 죽어 나갔습니다. 올 한해를 따지면 여든 마리가 넘지요.”

소 두 마리의 시체가 수레에 실려 와 거대한 무덤에 버려졌다. 얼굴의 모든 구멍은 피와 고름을 쏟아내 뭉그러졌으며 지독한 설사에 시달렸는지 수척해진 몸에는 분변 자국이 가득했다.

죽은 이후에도 몸에서 김이 피어오르니 체온도 높았으리라. 사람으로 빗대면 홍역과 콜레라를 동시에 걸리는 질병인데 어느 소가 버티겠는가. 그나마 피해가 적다는 임차손의 설명을 생각하니 본래는 더욱 끔찍한 질병이리라.

이 마을에서 기르는 소가 삼백 마리 정도 되니 거의 삼 할의 소가 절명한 것이다.

자신의 생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보고를 올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 분통이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어찌하여 장계를 올리지 않은 거요! 우역이 이리 퍼졌다면 소가 아예 자취를 감출 지경인데 이를 감내하는 연유가 무엇인가!”

“오 년 전에 조정에 장계를 올리긴 했습니다. 우역의 해결법은 낙타를 제외한 모든 짐승을 몰살시키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하였지요. 이를 가까스로 복구하니 이 년 뒤에 다시 우역이 퍼졌습니다.”

“조정에서 충분한 보상을 했을 것인데 또 장계를 올려 보상을 받으면 되는 일이지 않소. 이를 감내만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오!”

“가축을 수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십니까! 새로 가축을 받아들이고 이들을 길들여서 장성할 때까지 이 년은 걸리는데 녀석들은 제 피붙이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현대에도 구제역에 걸린 돼지를 파묻는 농민들의 사연을 들으면 서글픈 마음이 드는데 지금은 전근대이다. 가축을 가족처럼 여기니 몰살시키는 대신 끝까지 책임지며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태도라서 말릴 방법이 없었다.

그대로 장계를 보내면 마을이 뒤집어질 것이요 민심은 더욱 요동칠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답답할 지경인데 임차손은 다시 성을 내며 마을 어귀를 가리켰다.

“요동 도적들만 신났어. 저기 보게나, 저 청년들은 요동 도적들을 마을에 들이지 않는가. 고작 스무 마리의 소를 사들이려고 도적들에게 마을을 안내하는 것이네.”

마을 밖으로 나서는데 낙타를 끌고 온 요동 출신 상인 아니 도적들이 소를 마을 어귀에 묶어두고 여독을 풀려고 마을에 들어갔다. 여기서 보름 동안 우역이 발병하지 않으면 저 소는 마을에 들어와 우역의 손해를 벌충하리라.

임차손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본래 요동 놈들과 거래를 트면 치도곤을 날려도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눈감아줘야지 도리가 있던가. 억지로 막으면 더 교묘하게 들어올 놈들이라 방법이 없다네.”

임차손의 말을 들으니 오는 길에 나를 만났던 청년들의 눈빛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우역을 조사하고 모든 가축을 도살할 관리로 여겼을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부당거래를 적발하기 위해 파견된 관리로 오해했으리라.

우역을 잡아내지 못하면 북방의 민심은 붕괴할 것이요, 북인들은 다시 조선의 통치를 거부해 여진족으로 돌아가리라. 한번 떠난 민심을 잡으려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곰곰이 생각하니 가축 전염병을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다.

구제역 유행지역에서 문화재 실측을 마치고 돌아가다 방역 당국에 걸려 조사서를 썼고 차바퀴와 신발 깔창까지 석회수를 뿌리던 공무원의 말이 떠올랐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흙에서 최소 한 달! 최대 200일을 버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발바닥에 묻은 흙에 돼지 수천 마리의 목숨과 농부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독한 석회액을 맞은 내 등산화는 얼마 버티지 못했지만 돼지 수천 마리의 목숨이라 하니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지.

구제역은 모르겠지만 본래 역사의 단종이자 변한 역사의 세조가 제시한 우역 대처법은 합리적이었다.

몸을 씻기고 끓인 물을 먹이면 질병 유입을 방지할 수 있으며, 가축을 몰살시키고 몇 달이 지나서 들여오면 대부분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수명이 다해서 사라졌으리라.

우역이 발생한 부락도 복구했다 했으니 세조가 제시한 해법은 확실히 효험을 보였다.

하지만 다시 우역이 퍼진 원인을 알 수 없어 잠시 쉬고 있자니 임차손이 타는 거마(巨馬: 샤이어종 말)가 능숙한 솜씨로 황토를 긁어내 핥아먹었다.

“내 말인 궁기(躬驥)를 보게나. 머나먼 서방에서 건너온 거마인데 지형을 익히더니 알아서 잘 먹고 다닌다네. 돌아가서 소금을 좀 줘야겠군.”

어린 시절 보았지만 소들은 농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알아서 풀도 뜯어 먹고 필요한 것을 다 먹은 다음 외양간에 돌아와 여물을 챙겨 먹는다.

늠름한 궁기의 모습을 보니…… 잠깐 황토를 알아서 챙겨 먹었지?

소는 황토를 먹고 싶을 때에 먹는 것이 전부이며 하루 정도 안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지천에 널린 물건이 황토라서 챙겨갈 필요도 없고 저렇게 잠시 풀어두면 알아서 먹으니까.

하지만 황토를 챙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마을로 향하는 요동 도적들의 낙타에도 황토가 들어 있는 마대자루가 보였으니까.

이제야 모든 일의 아귀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지금 당장 마을로 돌아가야 하네! 요동 도적들이 또 우역을 퍼뜨릴지도 몰라!”

“요동 도적들이 우역을 퍼뜨리다니 서애 자네 대체 뭔 말을 하나!”

끔찍한 추위를 무릅쓰고 전력으로 말을 달려 마을로 향했다.

내가 듣기로 우역에 면역인 짐승은 말과 낙타가 있다. 만약 낙타로 가져온 황토에 우역에 걸린 소의 분변이 섞여 있다면? 그 흙을 몰래 마을에 뿌린다면?

갑자기 돌아온 나를 보고 청년들이 화들짝 놀랐지만 나는 요동 도적이 타고 온 낙타로 달려갔고 황토 자루가 반쯤 비어버린 것을 확인했다. 황토 자루를 풀어 확인하니 미약한 소똥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저기…… 조선에서 오신 분이 무슨 일이십니까? 저는 물건을 팔고 여독을 풀기 위해 여기 있는데 그건 왜 집으십니까!”

도적들이 달려들어 자루를 빼앗으려 했으나 임차손도 눈치는 빨랐는지 역으로 도적의 멱살을 쥐고 바닥에 집어 던졌다.

뒤늦게 청년들이 몰려들었는데 나는 흙을 한 줌 움켜쥐고 요동 도적에게 보여주며 말하였다.

“너희들이 황토에 우역에 걸린 소의 분변을 섞어 퍼뜨리는 것 같군. 조선에서 가져온 소 열 마리에게 이 황토를 먹일 것인데 증세가 나타나면 네놈들은 우역을 퍼뜨린 중죄인이다. 지금이라도 실토하면 살려줄 것이다.”

이미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니 이놈들이 범인이다.

청년들도 뒤늦게 상황을 눈치채고 몽둥이와 칼을 가져와 들이댔고 사지에 몰린 도적 중 한 명이 사지를 덜덜 떨더니 손을 들며 말하였다.

“사실이긴 한데 제가 가장 먼저 말하였으니 살려주실 겁니까?”

“그래 살려줘야지! 아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임차손은 갑자기 허우적거리더니 전력을 다해 날린 주먹을 도적의 안면에 꽂아버렸다.

손이 미끄러졌다면서 저런 주먹을 날려?

다들 멍하니 임차손을 보는데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한 번의 실수가 있었는데 두 번의 실수도 있을 수 있지!”

이번의 실수는 전력을 다해 날린 옆차기였다.

도적이 단 두 방에 얼굴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바닥을 뒹굴고 기절하니 다른 북인 청년들도 몽둥이를 들고 계속 실수를 저질렀다.

“나도 손이 미끄러졌다네! 어이고 또 미끄러졌는데 몽둥이에 기름칠을 했나!”

“살려주시오! 제발 살려달란 말이오!”

“그만! 이러다 상세한 일을 알아보기도 전에 모조리 절명하겠소! 제발 손속을 멈추시구려!”

반쯤 가족인 가축에게 병을 퍼뜨리고 생활을 피폐하게 만든 도적들을 어찌 용서하겠는가.

결국 열 명에 달하는 도적 중에 둘만 살아남았지만 청년들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

“다들 말에 올라타라! 요동 도적들이 보이면 모조리 잡아다 하르빈에 계신 관찰사께 바치자!”

“도적 가운데 나이가 많은 한 놈만 살려둬라! 이 썩은 놈들을 모조리 잡아 족치자!”

분노를 주체할 길이 없는 북인 청년들이 병장기를 패용하고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조만간 벌어질 끔찍할 사태에 나는 제발 도적들에게 증언이라도 들을 수 있길 바라며 서둘러 하르빈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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