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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44화 (344/573)

근육조선 344화

2부 12장 2화 북방에서(2)

북방의 지독한 추위는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한참 내륙인 부여도(扶餘道: 하얼빈이 속한 현 흑룡강성 서부와 길림성 동부)는 내가 있었던 애단현과 비교할 수 없는 혹한이 몰아칠 것이다. 더군다나 이 추위를 뚫고 거기까지 향하는 것도 일이다.

진짜 몸이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을 것 같아서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하였다.

“내가 이미 북방의 추위를 경험해 보았지만 하르빈은 내륙에 속하고 시월만 되어도 강물이 얼어붙는다 하였네. 이런 험난한 고장에 다녀올 방법이 어디 있겠나? 내 몸을 보게나.”

난 이미 소룡식 입신체비로 완벽한 절육(커팅)에 성공하였고 지방이 극도로 줄어들었으니 추위를 견딜 재간이 없다.

현대에서는 두툼한 지방 덕분에 겨울에 강했는데 여기서는 정반대의 몸이라 적응하기 힘들지만 도리가 있나.

소매를 젖히자 구릿빛으로 타들어 간 팔이 꿈틀거리며 근육을 보여주었다. 니당개는 내 팔을 보더니 숨을 들이켜며 지방으로 뒤덮인 자신의 팔뚝과 비교해 보더니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옛적 수양대군께서도 절육을 꾸준히 행하시어 온몸의 근육의 결을 살리셨는데 서애 어르신께서는 절육만큼은 수양대군보다 한 수 위이십니다.”

“지나친 칭찬은 금물이오. 내가 이런 몸이니 겨울을 버틸 수 없을 것이라 사람을 보내 인삼을 사들이고 올 한 해는 북원에서 사들이는 소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구려.”

“아닙니다. 계읍 아씨는 물론이고 작은 규모의 북인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입니다. 당장 우역이 만연한 북방에 소의 공급이 끊긴다면 무슨 변고가 벌어지겠습니까. 그러니 서애 어르신께서 직접 나셔서야 합니다.”

빠져나오려 했는데 생계가 걸렸다는 말에 정말 피할 구석이 없어졌다.

인삼을 사들이면 소의 공급이 끊기고, 소의 공급이 끊기면 우역이 퍼지는 상황이라 굶주린 유민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다.

북방에 파견된 외조 관원 중 품계가 가장 높은 내가 직접 나서서 하르빈에 열리는 마시(馬市)에 참가하여 북원 관리에게 인삼을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값을 지급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통상원(通商院: 외교통상 관할부서)의 관원을 하나 데려올 걸 그랬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니당개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사람을 불러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다음 날, 경원부에서 내 호위를 위해 병사를 두 명 붙여줬고 머나먼 하르빈으로 향할 내 앞에 놓인 물건은 타고 다닐 말이 아니고 낙타였다.

우람한 쌍봉낙타를 한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나 준비했는데 이거 사막에서 다니는 생물 아니야?

“귀하신 분이라 제가 조금 준비를 해 보았습니다. 우역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데다 추위에도 능숙히 버티는 낙타로 끌고 가는 썰매면 하르빈까지 한 달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낙타가 추위에도 능숙히 버틴다 하였소? 내 듣기로는 낙타가 이주(아프리카) 북방의 사막에서 사는 짐승이라 했는데.”

“그거야 혹이 하나만 있는 낙타고 혹이 두 개가 있는 낙타는 겨울 추위를 어떤 짐승보다 잘 버틸 수 있습니다. 발바닥이 거칠어 얼음 위도 능히 지날 수 있으니 얼어붙은 강을 따라 썰매를 끌게 하면 되지요.”

낙타 네 마리의 힘으로 지탱할 법한 거대한 썰매가 도착했다. 얼마나 돈을 퍼부은 녀석인지 썰매 날을 쇠로 덧댄 튼튼한 썰매 위에 모피를 엮어 천막을 지었으니 추위에도 버틸 수는 있겠지.

물론 이 거대한 썰매를 나 혼자만 타는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버스노선처럼 겨울에 얼어붙은 만주의 강은 제법 많은 낙타 썰매가 이동하였고 나 외에도 손님은 넘쳐났다.

“아이고 외조에서 오신 나리와 동승하게 되니 영광입니다. 이렇게 튼튼한 낙타 썰매는 저도 구하기 쉬운 물건이 아닌데 나리가 움직이시니 제가 덕을 보았습니다.”

“짐이 참으로 많구려. 보아하니 쇠붙이와 소금 같은데 벌이가 쏠쏠해 보이겠소.”

“그렇습니다. 저희 같은 보부상은 낙타를 마련하기 전에는 이렇게 겨울마차를 타고 상행을 합니다. 언젠가는 낙타를 사서 율도상회의 상인으로 들어갈 겁니다.”

율도상회는 들어본 적이 있다. 서얼 출신 홍길동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번성한 상회이며 조선 상단의 기본 원칙인 박리다매를 기본으로 한다더라. 심지어 북방의 빈민 구휼을 위한 활빈소(活貧所)라는 사설 기관을 설립했다.

이후 어떤 상단도 박리다매와 빈민구휼의 양대 원칙으로 움직이는 율도상회를 넘어설 수 없었고 지나치게 커지면 윤원형처럼 사고를 저질러 자폭했다. 결국 율도상회는 수익은 몰라도 대접만큼은 업계 최고이자 근본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실존 인물인 홍길동은 범죄자라 알고 있었는데 범죄자라도 환경이 좋으면 이렇게 변하나 보다.

썰매가 마을에 들러 쉴 때마다 손님이 바뀌며 끝없이 나아갔다. 이윽고 손님이 뜸해질 무렵 마부가 밖에서 천막 문을 두드렸다.

“어르신! 잠시 나와보십시오! 여기가 옛적 야선(에센)의 야욕을 저지한 전쟁터입니다. 당시 북인 족장들이 사력을 다해 야선의 별동대와 일전을 벌였지요.”

수양대군이 나서서 요새를 만들었던 그 전쟁의 이야기였군.

잠시 추위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서니 드넓은 강이 얼어붙으며 깨진 얼음이 솟구쳐 올라 거대한 파도처럼 변해 있었다. 겨울 추위로 모든 풍경이 얼어버린 광경을 보자 가슴이 웅장해질 지경이었다.

“참으로 숨이 막히는 풍경이구려. 당장 시구가 떠오를 지경인데 나의 벗인 송강이 여기에 온다면 시구 수십 개를 읊으며 찬사를 마지않았을 것이오.”

“시구 수십 개를 읊는 동안 혀가 얼어서 떨어질지도 모르지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여기부터는 제대로 된 관아도 없으니 사흘에 한 번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익히 알고 있소이다. 북인 가운데 가장 늦게 조선에 귀부한 이들이 몇 개의 고을을 제외하면 소규모 부락으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들었소.”

조선의 행정력은 대단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행정력을 발휘할 장소도 없었다. 애초에 사람이 적게 사는 국경지대인 데다 기후도 험난하여 농사를 짓기 힘든 부여도는 별도의 통치법을 적용하였다.

개발하기 편한 지역 몇 군데에만 조선 관리가 나서서 통치하는 것이 전부이다. 해당 지역에 속한 북인들은 인삼을 비롯한 농작물 재배법도 익혔지만 인구가 지나치게 적었다.

차선책으로 관리가 있는 고을에서 간접적인 호구조사만 마치고 전쟁이 발발하면 즉각 병력으로 나선다 하였다. 세금을 걷는 방법도 간접적이라 이들이 고을에 제공한 수확물을 받고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며 수익을 거두는 것이 전부이다.

이런 상황이니 하르빈 마시에서 소와 말을 사들이지 않으면 이들이 손해를 보는 법이다. 물론 충성심이야 여전하다지만 충성심이 한번 무너지면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지.

마차가 첫 마을에 멈추자 하르빈에서 열리는 마시에 참가하려 했는지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지만 갖옷(모피옷) 아래의 내 관복을 보자 쭈뼛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염려하지 말게. 나는 하르빈에서 열리는 마시의 세부사항을 조정하려고 방문한 외조 관리일세. 대체 무슨 변고가 있기에 이렇게 눈치를 살피는가.”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그저 올여름에 소들이 산군에게 잡아먹혀 조금 많이 사려 합니다.”

평상시에는 조선을 통해 사들이는데 아마 손해가 막심해 직접 나서서 약간이라도 더 사들이려 발품을 팔았을 수도 있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나를 대놓고 기피하는 청년들에게 더 물어볼 것도 없기에 잠자코 하르빈까지 향하였다.

* * *

하르빈은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조선 최북방의 군사 도시이며 여기에 주둔하는 병력만 칠천 명에 달하였다.

당연히 이런 규모의 병사를 통솔하려면 관찰사는 물론이요, 관찰사 휘하의 병력을 통솔하는 단병사(單兵使)가 있었다.

“외조에서 관원 한 명을 보낼 것이라는 서신을 받았는데 하필 자네가 올 줄은 몰랐네.”

“저도 선배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를 강화도로 박아 넣어 엿을 먹이고 이후로도 사이가 영 좋지 않던 선배님인 이양원이 어느새 승진을 거듭하여 관찰사가 되었다.

이양원은 나를 째려보더니 외조에서 보낸 장계를 살펴보고 떫은 감을 씹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서반아에서 홍삼 오천 근을 필요로 하여 북방까지 나섰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야. 머나먼 서쪽에서 벌어진 일이 자네를 이 북방까지 보내게 되었군.”

“제 형편이 영 좋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혹여나 선배님께서 힘을 좀 보태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를테면 소를 사들이는 주변 북인들을 일 년만 달래신다든가…….”

“내가 오히려 자네의 도움을 얻어야 할 신세일세. 그렇지 않아도 우역이 점차 퍼지는 징후가 보이는데 주변 북인들이 조사에 나선 관원들을 물리치고 있지.”

조선에 귀부한 이후 별문제 없이 지내던 북들이 관원들의 접근을 거부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양원의 눈치를 보았는데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조곤조곤 말했다.

“오 년 전에 우역이 퍼져 조치를 취하고 가축들을 다시 사들여 야인들에게 보상을 하였는데 또 우역이 퍼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알 수 없어서 참 의문일세. 일단 가축을 사들이지 않으면 북인들의 생계가 끊어질 지경인 것은 확실하지.”

“혹여나 부여도의 예산을 끌어 쓰신다면 조금의 손해로 벌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많은 예산을 사용한다면 군비로 비축해둔 자금을 모조리 털어낼 지경이라 결국 용원도(龍原道: 경원이 속한 현 흑룡강성 동부)의 예산도 받아야 할 실정이라네. 그러니 자네는 외조 관원답게 마시에 나서서 협상을 하고 시일이 남으면 내 일을 도와주게.”

졸지에 이 혹한에 사방에 있는 소규모 부락을 돌아다니게 생겨서 분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여기서도 손을 벌릴 사람은 있었다.

임차손이 하르빈에 근무한다 했는데 녀석은 어디 있을까.

요새를 살펴보니 수양대군은 성형요새를 만들려 하였지만 정말 뿔 달린 요새를 만들어 버렸다. 이 과도기적 물건으로 수만에 달하는 기마병을 막았다니 차라리 목책을 세웠으면 효과가 더 좋았겠지만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니 방법이 있을까.

병영으로 찾아가도 임차손은 순찰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러 흑룡사로 향했다던데 녀석은 불교 신자가 아닌데?

혹시나 잔치가 열리는 곳이라 찾아갔을지도 모르니 흑룡사에 향했는데 저 멀리서 함성이 들렸다.

“이건 대체 뭔 절이야! 수양대군 당신은 뭔 짓거리를 했어!”

흑룡사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광경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간혹 불교인들이 자신의 정성을 드러내고자 돌을 조각해 작은 불상을 만들어 절 앞에 두는 일이 있었지만 그 수도 어마어마했고 자세도 문제였다.

수양팔근도에 속한 자세를 취한 불상들이 즐비한데 이게 다 수양대군 때문이리라.

북인들이 순수하고 과격한 입신체비를 즐긴다던데 불교 신앙과 근육적 신앙이 결합된 기괴한 자세들이 즐비하였다. 그리고 흑룡사 마당에서는 고함이 들려왔다.

“그랴아아아아아앗!”

분명 절의 양식을 지켰지만 침묵이 가득해야 할 사찰의 마당 한복판에 거대한 내수린장이 있었고 두 사람이 서로 어깨를 대고 힘을 주며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심지어 내수린도 아니고 몽골의 씨름복장이 아닌가!

임차손이 거칠게 밀어 자세가 무너진 상대를 머리 위로 들어 메쳐 버렸다.

유도의 들어 메치기와 비슷한 자세로 깔끔한 메치기가 들어가니 내수린장이 진동하고 덩치가 제법 큰 몽고 청년은 바닥에 내던져져 게거품을 물고 사지를 버르적거렸다.

“임 사직(司直: 오위의 정5품 관직) 승!”

“임승우(임차손의 자)! 임승우! 임승우!”

“이야! 육 연승이다! 내 승리를 끊을 사람 누구더냐!”

가만히 보니 임차손에게 덤빈 몽고 청년들이 사방에 널브러져서 아직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한 명은 팔이 부러졌는지 부목을 대고 끙끙거리며 탕약을 들이켜고 있었다.

흑룡사는 땅에서 파낸 절이라 조정에서도 유물로 취급하여 가급적 존중하는 장소라 했었다.

실제로 존중하는 이유는 파견된 조선 군관과 북인 그리고 몽고 청년들이 근육을 겨루는 장소라 어쩔 수 없이 존중했겠지.

“이거 서애 아닌가? 이런 북방에 온다 해서 제법 놀랐는데 오는 길은 평안하였는가?”

“오는 길은 평안하였지만 지금은 사지가 떨려 뼛속까지 냉기가 스밀 것 같군. 다름이 아니고 마시에 나가 볼일이 있는데 자네의 도움이 좀 필요하다네.”

임차손은 그렇지 않아도 마시가 벌어지는 곳 주변을 순찰하고 몽고의 투메드부에서 찾아온 이들을 만나보고 돌아왔다 하던데 흔쾌히 말 위에 올라 나와 함께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 한참을 올라가는데 저 멀리 낙타와 소 떼가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소를 팔러 가는 상인 같았는데 임차손은 망원경으로 멀리서 보더니 말을 놀려 달려 나갔다.

“거기 야! 야 이 놈팡이야! 멈춰!”

“승우 자네 뭘 하는 건가! 그자는 아무리 보아도 상인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가까이 다가갔는데 가죽옷 안에 명나라 복식을 한 사람이 바닥에 납죽 엎드려 임차손과 군관들의 눈치를 보았다.

왜 이런 난폭한 행동을 하는지 몰랐는데 임차손은 그의 짐을 하나하나 수색하더니만 바닥에 침을 뱉고 외쳤다.

“이 새끼 이거 요동 도적놈이라니까? 평상시에는 도적으로 활동하다 약탈품이 좀 쌓이면 물건을 팔아넘기려고 상인으로 위장하지. 그리고 이 흙더미는 뭐야?”

“흙이 아니고 황토입니다. 소들이 황토를 먹으면 힘이 좀 나지 않습니까.”

“너 이 새끼 운이 좋았어. 증거품이 하나라도 나오면 모가지를 틀어서 늑대 밥으로 내던지려 했는데 다른 증거물은 없네. 훔친 물건이나 팔아치워!”

요동 도적에게 부모를 잃은 임차손이 쓸데없이 분노를 퍼부었다 생각했지만 다른 군관들도 이를 부득부득 갈며 노려보는데 내가 다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임차손은 나를 돌아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요동 놈들에게 당해보면 자네도 몇 달 안에 이렇게 변할 것이네. 요동 도적들은 이미 북원 사람들을 납치해서 목을 톱날로 천천히 베며 입단식을 치른다 하였지.”

목을 톱으로 벤다고?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저 상인도 좀 굶주리면 사람을 거침없이 죽이는 도적 떼로 돌변한다 생각하니 임차손의 태도를 이해할 만했다.

#작가의 말

요동은 여진족 생존자, 북원 내전 피난민, 생존을 위해 도적으로 돌변한 요동 출신 백성 그리고 무로마치 막부 출신 유민이 결합되어 말 그대로 인세 지옥이 되었습니다.

요동도사를 함부로 죽이면 이들이 조선 - 명 - 몽고 3개 연합군에 의해 토벌당할 수 있기에 이여송은 도적 사이에서 사육당하는 신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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