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42화
2부 11장 10화 서방의 입신체비사(2)
세스페데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겠다는 보고를 올린 직후 조정에서는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입신체비를 배우겠다는 말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배우겠다고 나서 버렸다.
조정에서는 내 일정을 조금 변경해 후임자가 오기 전에 기초는 잡아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름이 지나고 세스페데스는 오늘도 기초인 하체와 심부근육(코어근육) 단련에 매진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형제여 조금만 더 힘을 내게!”
“신부님도 힘을 조금만 더 내십시오!”
연자방아에 매달린 세스페데스와 세례명을 받은 고니시는 서로 안간힘을 쓰며 장대를 돌렸다. 신성로마제국 사람들은 별의별 고행이 다 있다 혀를 찼는데 어차피 이들이 이해하건 말건 입신체비는 계속될 것이다.
오히려 서역인이 입신체비를 배운다는 소식을 들은 강화도의 유생들이 몰려왔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사력을 다해 연자방아를 돌리는 둘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 유생은 손뼉을 치면서 말하였다.
“일전에 경원 북쪽의 변방에서 본 적이 있다네. 북인들은 사지를 단련하고 돈도 벌 겸 연자방아를 손으로 돌리는 일이 있었는데 덕분에 신체를 단련할 수 있었군!”
“생각하여 보니 입신체비를 행할 적에 미수(미숫가루)를 자주 마시는 법이니 이거 참 도움이 되겠네. 보행기는 하체만 단련할 뿐이지 연자방아는 전신을 단련하지 않는가.”
“연자방아의 크기와 축을 변용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몸을 단련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유 교감(校勘)은 이런 단련법을 어디서 들었는지 궁금하구려. 대부분 연자방아를 소로 돌렸을 것인데?”
시선이 나에게 쏠리자 성경의 일화를 들먹이려 했는데 순순히 답하면 나를 선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유생으로 판단할지도 몰랐다.
어디까지나 입신체비로 해석해야 하니 조금 말을 뒤틀어 이야기했다.
“서역의 종교인 천주교에서 받드는 성현 중 하나인 삼손의 일화를 보고 창안하였습니다. 그는 괴력을 지닌 판관이자 장수였는데 함정에 빠져 적에게 십 년 동안 잡혀 있었습니다.”
“적의 수도에 십 년 동안 잡혀 있었다 하였는가? 그럼 몸을 단련할 어떤 방법도 없었겠지.”
“모욕을 주고자 십 년 동안 연자방아를 돌리게 하였다더군요. 십 년이 지나 적국의 축일이 되었고 삼손은 기회를 노려 신전의 기둥을 밀어 부숴 수천 명을 몰살시켰다 하더군요. 거기서 창안하였습니다.”
다들 몸을 놀리는 법을 배웠기에 한참 동안 생각하다 스스로 기둥을 밀어보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동작을 시험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평가를 내렸다.
“아무렴, 판관이자 장수면 선천적으로 힘이 막강했을 것이며 그런 사람이 십 년 동안 연자방아를 돌렸다면 미는 힘만 단련했을 것일세.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나무로 만든 기둥이야 한두 개가 무너진다고 큰일이 나진 않지만 서역은 기둥을 돌로 만든다고 들었네. 하나가 무너지면 순서대로 무너지며 수천 명을 몰살시킬 수 있었겠지.”
주님의 기적과 은총은 사라지고 입신체비에 의거해 가능은 한 일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세스페데스가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눈을 뒤집고 게거품을 물리라. 물론 세스페데스의 귀에 들리지 않으리라.
연자방아를 돌리느라 눈을 뒤집고 게거품을 물고 있으니 중단하라 하였다.
곱게 빻아진 밀가루는 신성로마제국 출신 요리사가 가져갔고 둘 다 자리에 대자로 뻗어 숨을 헐떡였다.
“오늘은 기쁜 소식도 있고 기쁘지 않은 소식도 있소이다. 무얼 먼저 듣고 싶소?”
“그…… 아무거나 들려주십시오.”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시어 내가 강화도에서 올해 말까지 입신체비를 전담하라 하였소. 본래 다음 달에 도성으로 돌아가 업무에 종사할 예정이었소.”
“그럼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갓 태어난 톰슨가젤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세스페데스는 제발 좋은 소식을 전해달라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이게 좋은 소식인데?
“첫 소식이 좋은 소식이오. 다음에 배정될 입신체비사는 나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쳐준 사람이자 소룡식 입신체비로 명망이 높은 이율곡이니 이게 나쁜 소식이지.”
“왜 나쁜 소식이라 하십니까? 이율곡이라는 분은 사카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분이 아닙니까? 저도 그분의 서적인 동몽선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1573년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근손실을 회피하고 그 시간에 입신체비를 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삼년상은 사라졌지만 일 년 동안 마음을 추스르라며 휴가를 받는데 이이는 짬을 내서 서적을 집필했다.
본래 역사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서적인 격몽요결(擊蒙要訣)이라는 아동 학습서를 만들었고 사자소학보다 배우기 쉽고 동몽선습(童蒙先習)보다 양이 적어서 인쇄기가 뭉그러질 정도로 찍어냈다던가.
단 일 년 만에 일만 부가 인쇄되었다던데 일본까지 퍼질 줄은 몰랐네. 문제는 조선에서 학식과 입신체비 난이도는 대부분 정비례한다는 점이고 이이보다 입신체비를 혹독하게 가르치는 사람도 손에 꼽는다는 점이다.
“내 학식은 율곡에게 비할 수 없으며 내 입신체비 또한 율곡에게 비할 수 없다네. 단적으로 말해 내가 창안한 입신체비는 자네에게 가르치는 입신체비가 전부이지.”
이이는 나를 소룡식 입신체비를 같이 완성할 동료로 여기고 있지만 나는 열정이 부족하다. 결국 이이의 천재성과 근육 사용법 및 단련법을 이해할 뿐이다.
이 말을 듣자 세스페데스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정말 진심으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걸 해야 합니까? 입신체비는 이렇게 의미 없이 몸을 움직이는 학문입니까? 이게 정녕 학문이란 말입니까?”
결국 고난을 겪은 세스페데스에게서 거부반응이 튀어나왔다. 나도 퇴계 이황에게서 입신체비를 배울 시기에는 이놈의 정체가 학문이 아니고 보디빌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황은 나를 위해서 이런저런 수단을 동원했다. 입신체비 대신 몸을 거칠게 움직이고 단련의 효과도 있는 여러 방식을 동원해 나의 관심을 유도했고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줬다.
“스승님 보고 계십니…… 까가 아니고 아직 안 돌아가셨지.”
당연히 세스페데스도 입신체비를 몸을 혹사시키는 기괴한 수련법이라 여겼지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떡밥을 마련해 두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그가 했던 말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학문이 맞소이다. 서역의 수도승들은 몸을 호되게 내던져 옛 성현의 고행을 체험하고 영성을 완성한다 하였지. 입신체비는 부모에게 완성된 몸을 보여주기 위한 효심의 표현이네. 완성으로 이르는 길은 다르지만 과정은 흡사한 점이 많지.”
“그러니 제 입장에서는 고행을 행하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저도 고행을 몇 번이고 행하였지만 신앙 하나로 견딜 수 있었으니까요.”
고행에 대해서도 들었다.
쐐기풀이나 장미 덩굴에 몸을 뒹굴고 무릎을 꿇고 하루 종일 기도를 올리며 채찍으로 등을 치고 멀건 죽만 먹으며 쫄쫄 굶는다 했던가.
잘 태워서 구릿빛 근육을 드러냄이 마땅한 피부를 손상시키고, 하체운동의 핵심인 무릎관절을 박살 내며 멀건 죽만 먹으며 근손실을 일으키라고? 이걸 내가 허락할 성싶더냐!
나를 말리려는 고니시를 무시하고 말했다.
“입신체비를 변용하여 성경이라는 서적에 나오는 서방의 성현들의 고난을 안전하고 최대한의 고통을 겪는 과정으로 변용한 것이요. 내 들은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몸을 소중히 하라는 구절이 있소이다.”
“몸을 소중히 하라는 말은 대체 또 뭡니까!”
“분명 이런 구절이 있었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이 머무는 성전이며. 그 성령을 하느님에게 받았으니 몸으로 영광스럽게 하라’. 이게 맞소이까?”
자신이 했던 말이 고스란히 돌아온 세스페데스는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지만 연자방아에 막혀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금 불쌍한 마음도 들었지만 나는 스승이고 세스페데스는 제자다.
애초에 입신체비를 배우겠다고 했는데 어딜 도망가! 나도 도망가지 못해서 삼대운동 800근만 찍고 적당히 하려는데!
쐐기를 박으려고 세스페데스를 일으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하느님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으나 정녕 우리를 창조하였다면 몸이 건장한 모습을 더욱 좋아할 것이오. 그러니 고행을 하더라도 몸을 온전히 단련할 수 있는 고행을 옛 성현의 행적을 본받아 만들지 않았소.”
“옛 성현의 행적을 받든 것은 맞습니다만.”
“삼손이 편히 휴식을 취했겠소? 항시 숙련된 스승이 달라붙어 몸을 손상시키지 않을 한도만 연자방아를 돌렸겠소? 하지만 여기에는 내가 있잖소. 혹여나 신앙을 증명할 방법 가운데 이보다 좋은 것이 있소?”
성경 구절을 들먹여 건장한 모습을 좋아한다 하면 일단 몸을 단련할 이유가 된다. 고행을 하더라도 몸을 건장하게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이 필요하니 신앙심도 증명할 수 있지.
세스페데스는 마지막 변명이라도 하려고 악을 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을 수행하셨…….”
“비슷한 것은 입신체비에도 있소. 절육이라 하여 삼십 일 동안 섭생을 엄금하는데 아직 절육을 시행할 시기는 아니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다음 운동은 백다록(베드로)이라는 성현의 일화에서 따온 것이니 앞으로 즐길 것이 무수히 많소이다.”
세스페데스도 신부의 길을 걸을 적에 예수의 고난을 체험한다고 수십 일 동안 희멀건 죽만 먹고 지냈다더라. 하지만 절육을 하면 그 희멀건 죽이 그리워질 정도로 식생활이 황폐해진다.
나도 버석거리는 귀리밥을 먹으면 절로 비명이 나오는데 세스페데스는 견딜 수 있겠지.
하지만 입술이 대자만큼 튀어나온 고니시는 퉁명스럽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신부님이야 신앙을 증명한다지만 저는 왜 이리 혹독하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니시 자네는 입신체비를 꾸준히 해야 의심을 덜 수 있으니 당연히 해야지. 자네가 일 년에 홍삼을 오백 냥 어치나 사는데 왜국 출신 시종이 이만큼의 돈을 쓰는 것이 누구 덕이겠나?”
고니시가 의심받지 않는 이유? 시종이라 했는데 승려 아래에서 수행을 쌓는 일종의 출가제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연히 세스페데스와 동일한 고난을 겪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조정에서는 고니시에 대한 인식을 상인 아버지와 천주교에 관심을 보이는 일본 영주가 키우는 중요 인물이라 인식하고 있었고 홍삼을 사들이는 일은 부차적이라 여겼다.
“자네는 여기서 얼마나 머물지 모르지만 머무는 동안은 세스페데스의 행적을 고스란히 따라가야 한다네. 그렇지 않으면 대번에 추방당할 것이 아닌가.”
“이래서야 이 년 정도 머물 생각이었는데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년이면 성장기가 끝난 고니시의 키는 크지 않겠지만 체격은 우람해질 것이다. 대충 삼대운동 500근을 달성하면 일본 전역에서 체격으로 고니시를 능가할 사람은 없으리라.
다음 날 수행한 입신체비는 등근육 운동이다.
베드로는 어부요,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겠는가.
당연히 세스페데스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바다에 잠겨 있던 그물을 끌어 올렸다.
“입신체비로 따지면 이는 직흉강(랫 풀 다운)이오. 가슴을 쭉 내밀고 팔꿈치를 옆으로 빼지 마시구려! 등의 광배근을 수축시키면 효험이 더욱 좋소이다!”
“이게 고행입니까, 아니면 제가 어부라도 된 것입니까!”
“성현의 생활을 이어받는 일 또한 고행이 아니겠소! 이를 입신체비에 적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오! 사람을 낚는 어부라 하였는데 사람 무게는 들어야 하지 않겠소!”
세스페데스가 뭐라 하건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룻배를 젓는 고니시의 자세도 틀어져서 지시를 내렸다. 번갈아가며 직흉강과 요상만(로잉)을 꾸준히 실시하니 등근육이 아주 튼실해지겠지.
육지로 올라와 보충제를 꺼냈다. 세스페데스와 고니시를 위한 보충제는 아주 특별한 녀석이다. 나도 비싸서 잘 먹지 않는 물건이지만 성경을 적용한 입신체비이니 이 귀한 물건을 들여올 마음이 들었다.
“이건 또 뭡니까! 새하얀 벌레를 볶은 흉물을 먹으라 하십니까!”
이미 다년간 입신체비사들이 검증한 대만산 흰개미 볶음이다. 진주 일대에 상륙한 흰개미는 멸종하였으며 대만 흰개미도 입신체비사들이 웃돈을 주고 구하는 형편이라 하더라.
벌레를 먹는 일은 서양에서 빈민의 구휼식이나 별식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헛구역질을 하는 세스페데스에게 또 거부할 수 없는 성경 구절을 말했다.
“세례자 요한…….”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이 먹은 메뚜기를 주십시오! 아니, 메뚜기는 또 어디서 났습니까!”
어디서 나기는 따로 구해왔지. 메뚜기를 으적으적 씹어 먹고 미숫가루로 억지로 넘긴 세스페데스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가만 보니 보름 만에 근육이 제법 생겼다.
수양대군처럼 최고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이 사람도 재능으로 따지면 진안군과 견줄 수 있는 무골이리라.
선교사 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몸이 좋아야 한다던데 선교사로 입신체비 군단이라도 만들어볼까.
* * *
늘어난 임기도 1575년 11월에 종료되었다. 단 여섯 달 만에 세스페데스의 체격은 놀랍게 변해 삼대운동 기준으로 300근에 가까스로 미치던 사람이 400근을 거뜬히 들게 되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입문자는 벗어났으니 그나마 고난이 덜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근육이 성장억제를 시작하는 구간까지 한 달에 삼대운동 10근이 증가했는데 세스페데스의 성장속도는 나의 두 배이다.
그동안 세스페데스가 열심히 입신체비를 실시하는 모습을 본 유생들은 그를 초청하여 술을 대접해 주었다.
“세스페데스라 하였는가? 본래 입신체비를 시행할 적에는 괴롭고 험난하여 누구나 도망가고 싶다 하였는데 입문자를 벗어났으니 조만간 모든 일이 잘될 것일세.”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양손으로 술잔을 받는 모습을 보니 내일은 하체를 조…… 이건 이이가 알아서 할 일이니 넘어가야겠다.
이이는 아직도 선교사인 세스페데스를 의심하는지 그냥 공을 치하하는 말만 하며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아마 시작부터 혹독하게 다룰 사람이라 정을 안 붙일지도 모르지.
이이에게 간단히 세스페데스의 신상명세를 소개하고 입신체비 진도를 설명한 다음 도성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배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활대(랙)와 각종 고립운동을 위한 입신체비 기구를 보니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나는 외조에서 일해야 하니 당분간 관심을 두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