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41화
2부 11장 9화 서방의 입신체비사(1)
오늘도 세스페데스는 스스로 공부하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꾸벅 올렸다. 두 달 동안 벌어진 일이기에 나도 책을 펴고 자리에 앉았으니 또 배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저를 가르쳐 주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배움을 청하는 이를 거절하면 심각한 결례요. 군사나 정책과 관한 배움이라면 몰라도 오로지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는 사력을 다해 가르치는 것이 도리이지.”
고작 두 달이 지났지만 세스페데스의 조선어 실력은 어느새 일상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향상되었다.
외국어를 배우려면 단어를 외운 다음 많이 대화로 사용법을 알아내는 것이 답인데 세스페데스는 머리도 좋지만 사력을 다해 임했다.
하루에 세 시진(6시간)도 자지 않는데 효험이 있지. 거기다가 세스페데스는 난해한 어휘를 익힐수록 쉬운 어휘도 익힐 수 있다면서 나에게 고사(古事)를 말해주라 하고 이를 해석한 이후 비슷한 고사를 찾아 말하였다.
조만간 익힐 사서삼경도 논설문이나 궁중 대화를 엮어둔 것이다. 이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어휘의 폭을 넓히며 공식적인 자리에 사용할 예법을 익히는 것과 같다.
그래도 세스페데스를 위해 쉽게 풀어준 역사 이야기를 하였다.
“초한대전의 결말인 해하전투에 대해 논하겠소. 사방이 포위되어 곤란을 겪던 와중에 사면에서는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 사면초가라 하였으며 서글픈 마음에…….”
필사적으로 발음을 찾아 사전을 넘기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내 친구인 김성일인데 재능이 좀 부족해서 정치로 방향을 정했지.
세스페데스는 내 말을 옮겨 적고 한참을 해석한 뒤 답하였다.
“산을 뒤집는 힘이라 하였는데 판관기(判官記)에 나온 삼손이 그러한 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시절의 판관이었는데 블레셋 사람과 다툼이 잦았습니다.”
영화로 봐서 알고 있다. 고전 명작영화인데 그럭저럭 볼만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신전이 무너지는 장면이었지. 생각해 보니 저작권이 사라진 고전 영화는 야근하면서 많이 봤었다.
거의 세 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목이 말라왔지만 고니시가 재빨리 다가와 잘 우려낸 보리차를 주었다.
시원한 보리차로 목을 축이고 있으니 세스페데스는 의아한 듯이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서애 유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선교사의 말이라 하여 귓전에만 들려도 자리를 피하려 하는데 오히려 저와 문답을 주고받으시니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하베르라는 사람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벌어진 일이지. 대놓고 제사를 금지하라 하였으니 입신체비와 완벽히 대치되는 종교라는 소문이 편견, 아니, 사실이 생겼다. 나는 현대의 기억이 있으니 무덤덤하게 대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현대인이라는 소리를 할 수 없으니 뭐라 변명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딱 하나 있었다.
분명 주상전하께서 말하기를 사람들을 대접하라 했으니 업무 방침이라 변명해야지.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바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오. 출신이 서반아건 직업이 선교사건 가리지 않고 업무에 충실하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소. 배움을 청하면 가르치는 것이 내 일이오.”
“그러하면 입신체비에 대한 배움을 원하니 이를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미 세스페데스가 몇 번이고 요청하였고 그가 서방으로 보낸 서신에도 언급되었던 내용이다. 조정에서는 그냥 승려가 입신체비를 배우니 별일이 다 있다 여겼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니다.
천주교는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스페데스는 초임 신부이지만 엄연히 성당에 소속되어 있고 이것이 주교와 추기경을 거쳐 교황까지 직속 배달되는 격이다.
세스페데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면 이게 수직적으로 전해져서 교황청까지 들어가니 입신체비의 모든 내용이 서방에 전해지는 꼴이 아닐까.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한 달 전처럼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입신체비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이를 가르치는 방법도 나 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늘의 배움은 끝났으니 어서 미사인지 뭔지를 준비하시구려.”
세스페데스는 태연하게 인사를 올렸지만 입신체비가 고스란히 넘어가면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나도 업무가 남아 있으니 도호부 관아로 향했는데 알치드 데 상갈로와 고니시가 한창 짐을 풀고 있었는데 양이 너무 많았다.
“왜국에 소식을 보내서 화물을 조금 많이 들여올 것이라 하였는데 이게 다 무엇입니까?”
“조선의 복식이 영 어울리지 않아서 선원들을 시켜 옷가지를 조금 사 왔습니다. 품이 너무 넓어서 답답한 감이 있으니까요. 제가 분배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흔히 중세 회화를 보면 묘사되는 스타킹과 반바지 조합의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들은 조선에서 지급한 도포를 싫어했는데, 일본에 머무는 스페인 상인을 통해 옷까지 들여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고니시는 따로 은 덩어리를 받았는지 잔뜩 챙기고 있었는데 내가 슬쩍 헛기침을 하니 자기가 겁에 질려서 호들갑을 떨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 우키타 님이 명령을 완수한 제 급료를 늘리겠다며 은자 일백 냥을 주셨습니다. 이걸로 홍삼을 사서 팔면 더욱 많은 이문을 챙길 수 있으니 속히 보내라 하셨지요.”
“그것참 속이 훤하게 보이는 방식이라 웃음이 나오는군.”
홍삼의 일본 시세는 최소 은 석 냥에 홍삼 한 냥이다. 반면 조선의 시세는 은 한 냥에 홍삼 한 냥이지. 조선에서 인삼을 사서 일본에 팔면 두 배에 이상의 시세차익이 생긴다.
심지어 유럽의 시세는 홍삼 한 냥에 은 스무 냥이라서 신성로마제국에서 온 이들은 거의 모든 돈을 투자해 홍삼을 예약구매 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니시를 막을 명분도 없다.
현대로 보면 면세품을 되파는 행위이지만 나도 중국에 가서 홍삼을 팔아 차익을 챙겼으니 허락해 줘야지.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는 고니시를 보면서 적당한 선에서 그치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많은 재물은 화가 되는 법이니 자네를 고용한 사람에게 서신을 보내 일 년에 은자 오백 냥의 인삼을 구입하는 것이 한도라 말하게. 이 정도면 조정에서도 군말이 없을 것이네.”
“아이고 오백 냥이면 감지덕지죠! 이번에 손해가 막심하였는데 이현 어르신 덕분에 한숨 돌렸습니다.”
손해가 막심하다니 뭐 사고라도 났나?
고니시를 슬쩍 바라보니 녀석은 내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마음을 풀어주려 하였다.
“이 년 전에 약종상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키노시타 토키치로(木下 藤吉郞)라는 장수의 모친이 중병을 앓아 제가 약을 댄 적이 있습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나중에는 홍삼을 매달 여섯 냥이나 달여서 먹이더군요.”
“조선이라면 모르겠지만 왜국의 홍삼은 값이 최소 세 배가 아닌가. 내 녹봉을 다 털어도 인삼 여섯 냥을 매달 모친께 드릴 수는 없을 것일세. 참으로 지극한 효자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줄이고 항상 전열에 나서며 급료를 더 받아 돈을 아꼈다 하더군요. 이런 사람은 어디서든 성공할 것이니 저도 제법 투자하였습니다.”
일본 시세로 따지면 한 달에 은자 18냥을 어머니의 병환을 위하여 사용했다. 당상관 녹봉보다 많이 투자한 것이다.
일본은 효심을 내다 버린 줄 알았는데 이런 효자가 있었나?
고니시는 당시의 일을 떠올렸는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다만 본인이 이미 은자 이백 냥에 달하는 채무를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서 모친의 명의로 약을 투자했는데 모친이 덜컥 죽어버렸지요. 덕분에 제가 빈털터리 신세가 될 뻔했지요.”
“모친이 죽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토록 지극한 효심을 보이다니 보기 드문 효자일세. 혹여나 이 좁은 세상에서 만날 길이 있을지도 모르지.”
조선에서는 제법 흔한 사례이지만 전국시대의 일본은 서민조차도 지나친 세금에 신음하다가 갓 태어난 자식을 짓눌러 죽이는 삭막한 시대라 더욱 돋보이는 사례이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사라진 알치드 데 상갈로를 찾았는데 난데없이 관아에 배치된 대역기를 짊어지더니 어설픈 자세로 공좌(스쿼트)를 실시하였다.
저 사람 어떻게 입신체비를 아나 했는데 저 사람 조상이 조선에 다녀왔었지!
이미 유럽 전체에 입신체비가 퍼졌나? 그렇게 여겼는데 알치드의 몸은 별로 발달해 있지 않고 자세도 형편이 없었다.
조선에 대해 배운 사람이 왜 저 꼴인가 했는데 알치드도 멋쩍은 듯이 웃더니만 손을 털고 말했다.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동양의 수련법이라 했는데 이제는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보통 특이한 수련법이어야 대대로 전해지지요.”
“지금 뭐라 했습니까?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동양의 수련법?”
“여기서 입신체비라 불리는 수련법을 조상들도 어느 정도 익혔습니다만 이를 꾸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변의 시선이 문제여서 서서히 쇠락해 가더군요.”
백 년 전에 조선에 당도한 미술가들이 스무 명이 넘는데 지금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몸을 단련할 수 있는 쉬운…… 이 아니고 유럽에는 쉬운 길이 아니다.
알치드도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조상님들은 연회에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풍습을 배웠다 손가락질을 당했다 하더군요. 더군다나 무쇠 덩어리를 드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합니다.”
“입신체비를 꾸준히 하려면 섭생에도 신경 쓰는 일은 당연하며 값진 철물을 사람 무게만큼 엮어 들어야 하니 조금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알치드도 더 이상 언급하기 싫다는 듯이 손을 털며 짐을 옮기라 지시했고 나도 뒤를 따랐다. 생각해 보니 대규모로 입신체비를 전수하지 않는 한 퍼질 일은 흔하지 않다.
수양대군이야 세종대왕의 질병을 치료하고 이후 왕들인 문종과 세조(단종의 묘호도 변했다!)를 통해 오십 년 이상 정책을 주도하였다.
조선이 호수요 입신체비가 설탕이라 따지면 설탕을 트럭으로 꾸준히 퍼부어 설탕 호수를 만든 격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입신체비를 배운 이들은 명망이 드높은 이들이 아니었다. 문화를 주도할 방법도 없으며 정치적인 입지도 좁을 것이니 파급 효과도 적었겠지. 호수에 각설탕 한 줌을 던진 꼴과 다를 바가 없으니 가문의 전통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세스페데스에게 입신체비를 전수해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만약 세스페데스가 추기경이라도 오른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저 동방의 기묘한 풍습이라 여겨 조용히 잊히게 될 것이다.
“세스페데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쳐야겠어.”
“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입신체비라 하셨습니까!”
“본인이 원하는데 뭘 어쩌겠나. 생각해 보니 자네는 세스페데스의 시종 자격으로 여기 찾아오지 않았는가. 선교사가 입신체비를 행하는데 시종이 지식이 없다면 말이 안 되는 소리이지.”
창백하게 질린 고니시를 보니 그의 아버지가 보낸 서신의 내용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 조선 사람과 친해지려고 입신체비를 배우려 했다가 육 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도주하였다지.
그나마 육류를 섭취하면 몸이 성장한다는 사실은 알아서 어린 시절의 고니시에게 가끔 육류를 먹였고 일본인 기준으로 상당한 장신(160㎝)을 달성했다더라. 그런 고니시에게 입신체비는 고문과 마찬가지일 거다.
물론 세스페데스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니 그럭저럭 잘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고니시의 경우에는 애매한 위치에 있으니 내 스승 이황처럼 관심을 북돋워 줄 훈련법이 필요하다.
내 묘한 미소를 보며 고니시는 몸을 움츠렸지만 이미 벗어날 방법은 없다.
* * *
보름이 지나고 내가 주문한 대로 세스페데스를 위한 입신체비기구들이 한양에서 강화도로 운반되었다.
세스페데스는 소풍 나온 어린아이마냥 어쩔 줄 몰라 하였는데 하는 말이 가관이다.
“다른 이들은 덩치가 너무 우람하여 위압감이 느껴지니 답답하였지만 서애 유 선생님은 참으로 친절하고 체격도 작으셔서 좋은 일입니다.”
뭔가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지만 강화도호부에서 삼대운동 무게로 따지면 내가 한 10위권 내에는 든다. 체중은 입신체비사 기준으로 뒤에서 10위권이고.
입신체비의 시작은 몸을 덥히기 위한 뜀뛰기이다. 강화도 관아까지 가볍게 몸을 덥혔는데 세스페데스는 벌써 목 끝까지 숨이 차올라 있고 고니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입신체비의 기본은 하체요. 본래 조금 더 몸을 덥혀야 하지만 처음 실시하는 바이니 잠시 쉬도록 하시구려. 나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으니 도삭희(줄넘기)를 하겠소.”
이황에게 배우고 이이에게 단련된 이후 내 입신체비는 다른 이들이 쉽사리 견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채찍처럼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줄넘기를 하니 세스페데스는 입을 벌리고 자신의 몸을 더듬더니 말했다.
“저기 서애 유 선생님과 저는 체격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체격은 비슷하겠지. 하지만 나는 조선 전체를 통틀어 체중과 비례한 삼대운동 무게를 기준으로 삼을 때 두 번째로 뛰어난 사람이오.”
삼대운동 1,000근을 달성하는 사람? 조정에만 스무 명은 된다. 그런데 체중 110근(70.4㎏)으로 750근(480㎏)에 도달한 사람? 체중비례로 따지면 이이 빼고는 아무도 없다.
몸이 풀렸으니 공좌 한 번을 하려고 대역기를 꾸준히 쌓아나갔다.
“지금 뭘 하시는 것입니까! 그 철봉의 무게만 하여도 어마어마할 것인데 쇳덩어리를 끝없이 쌓아가고 계시니 짓뭉개져 죽을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시구려. 요즘 들어 몸이 뻐근했는데 전력을 다하여 공좌를 실시하면 몸이 풀리겠군. 이미 체중의 두 배가 넘는 공좌를 할 수 있으니 어디 한번 보시구려!”
240근에 달하는 대역기가 삐걱거리며 몸을 짓뭉갰지만 이미 전신이 소룡식 입신체비로 단련되어 고도로 압축되고 정련된 근육이 되었다.
한 번의 공좌가 끝나고 활대에 대역기를 걸어두자 세스페데스는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읊었다.
“어떻소. 이제 몸이 쇠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삼대운동 팔백 근이 내 인생의 목표요. 세스페데스 당신의 체격은 나보다 좋은 편이니 가볍게 삼대운동 칠백 근을 오 년의 목표로 삼고 도전해 봅시다.”
“저는 시종에 불과하니 절반인 삼백오십 근이면 충분하겠지요?”
“이런 일은 당치도 않습니다! 사람이 저런 무게를 짊어져서 무얼 찾는단 말입니까!”
고니시야 그렇다 치고 세스페데스는 내 예상대로 변명을 하였다.
저런 무게를 짊어져서 뭘 하냐고? 몸이 좋아지지!
하지만 사상 자체가 다른 서양인이다 보니 그를 위한 특별 코스를 준비해 뒀다.
“나도 여러 가지로 배운 바가 있으니 따라오시구려. 서방의 성현들이 지나온 행적을 입신체비에 의거하여 해석한 여러 도구를 마련하여 몸을 단련하도록 변형해 보았소.”
피할 길이 있을 줄 알았나? 본인이 말한 것에 책임은 져야겠지?
그동안 들었던 성경에서의 수많은 고난으로 몸을 단련하는 방식을 마련했다.
뒤뜰로 간 세스페데스는 거대한 연자방아를 보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삼손이라는 판관이 겪은 고행을 입신체비적으로 재해석해 보았소. 연자방아를 몸으로 돌리는 방식은 전신의 협응력은 물론이요, 하체를 온전하게 단련할 수 있더구려.”
“저는 말이나 소가 아닙니다!”
“그렇지! 입신체비사는 말이나 소보다는 못해도 충분히 힘을 낼 수가 있소!”
세스페데스가 지난 두 달 동안 알려준 고난과 고행은 손에 꼽고도 넘칠 정도로 많았다.
내 이후 방문할 후임자도 내가 만든 방식을 적용하며 세스페데스를 철저한 입신체비사로 만들리라.
#작가의 말
키노시타 토키치로(木下 藤吉郞)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초창기의 이름입니다. 오다 노부나가 아래에서 일하다 관직을 받으며 하시바 히데요시로 개명했고 최종적으로 도요토미라는 성을 받았지요.
일본을 통일하며 사치와 향락, 그리고 과대망상증에 빠지기 전까지의 히데요시는 지극히 정상인이자 효자였습니다. 여색을 밝히는 기질과 원숭이를 닮은 외모를 제외하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