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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40화 (340/573)

근육조선 340화

2부 11장 8화 먼 길을 온 이들(3)

성당 지하실에 있었던 십자고상을 고니시와 세스페데스와 함께 꺼내왔지만 절로 탄식이 나왔다. 예수님은 삼대 1,000근을 넘어서서 더욱 근육이 충만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고니시는 간혹 조선 사람과 접촉했던 기억을 떠올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스페데스는 십자고상을 보고 무언가 알아차린 듯이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예전에 들은 적은 있습니다. 동방에서 온 왕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회화를 남겼는데 사지가 굳건하고 골격이 살아 있다 하였지요.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안평대군의 라마국연행기에 있는 내용인데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체격은 3대 700근 정도이고 이를 회화에서 묘사하는 남성의 표준으로 삼았다. 간혹 덩치가 큰 사람을 묘사할 때에는 수양대군을 참고해 묘사한 경우도 있다 했지.

“이 근육 덩어리를 보십시오. 이래서야 예수 그리스도를 매달고 있는 십자가가 부러졌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 모습을 보니 사자를 짊어지고 다닐 체격이군요.”

불상에 가까운 묘사 방법과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근육을 드러낸 선을 보니 이걸 조각한 사람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이 성당을 보수할 적에 진안군이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가 장인을 파견했었나 보다.

당연히 수양대군의 후손들이 시주하는 절의 사천왕상을 만들던 장인일 것이며, 평상시에 만들던 대로 십자고상에 매달린 예수의 체격을 삼대운동 일천 근은 거뜬히 할 몸으로 만들었다. 왠지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것 같아서 괜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마 체격이 클수록 덕이 많다 판단한 장인이 일부러 체격을 크게 묘사했던 것 같구려.”

“그렇다면 따로 방도가 없습니다. 당장 사흘 뒤가 주일(主日)이라 미사를 드려야 하니 어서 성당을 사람이 거닐 수 있게 바꿔 놓아야겠군요.”

성당의 정비를 배정된 관원에게 일임하고 신성로마제국에서 온 이들의 편의를 봐주면서 사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지나치게 큰 종소리는 풍속에 어긋난다며 대신 지급한 징이 울렸고 성당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야 천주교 신도는 아니지만 이들의 행적을 보고할 이유가 있기에 조선 본토에서 최초로 거행되는 미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성당 내부를 돌아보며 혼란에 빠졌다.

“세상에, 십자고상의 모습이 왜 저리 부풀어 올랐단 말이오? 벽화는 왜 이리 듬직하오?”

“이거 체형이 피렌체의 몇몇 가문에서 전해지는 건강 비결을 한 사람들의 체형과 닮았는데…….”

그들의 시선은 순식간에 내 방향으로 쏠렸다. 대체 뭐가 문젠가 하고 괜히 벽을 바라보는데 내 옆에 있는 성화가 기괴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변질이라고 해도 예전의 벽화를 긁어내고 새로 회화를 덧칠하려는 시도였는데 처참하게 실패했다. 현대의 문화재 훼손 사례로 손꼽히는 스페인의 벽화 손상사건처럼 세례자 요한의 몸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것이다.

“저건 천으로 가려야 하지 않겠나?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원숭이와 닮게 뒤틀렸군.”

시종인 고니시가 눈치를 슬슬 보더니만 아마포를 가져와 벽화를 가려 버렸다. 아마 세스페데스의 부탁을 받은 사절단의 미술가가 나섰다가 캔버스와 전혀 다른 벽화의 특성을 감안하지 못해서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이래저래 성당을 다시 만들기 전에는 이 벽화를 감내하며 살아야 하리라.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세스페데스는 미사의 시작을 알렸고 라틴어로 된 기도문을 읊으며 미사가 진행되었다.

고니시는 일본인이며 조선말도 할 줄 알고 라틴어도 기도를 비롯한 극소수를 익히긴 했는지 미사 예식에 맞추어 일어섰다 무릎을 꿇었다 반복하고 성가마저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역관은 예전에 기록된 내용과 대조하는지 놀라움을 억지로 숨기며 속삭였다.

“생각 외로 체계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삼십여 년 전 하베르라는 자가 당도하였을 적의 법회(法會)와 내용 대다수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불당에서 벌어지는 법회는 주제를 정하면 이에 대한 논지만 펼치지 않는가. 천주교에서는 음악과 예식이 정해져 있으니 어찌 보면 제사라 할 수 있겠군.”

미사가 한참 진행되고 엄숙한 말이 들리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사가 끝났으니 복음을 전합시다, 이 말인가?

미리 준비한 점심 식사를 위해 성당 마당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다.

세스페데스의 요청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미사가 끝나면 성당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베푼다 하였는데 여기에 나도 끼어들게 되었다. 가끔 서양식으로 점심을 먹어도 되겠지.

방금 전에 구워낸 빵을 받은 사람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빵의 향기를 즐기고 손으로 북 찢어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한 입을 물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빵을 내려놓더니 국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빵 한 조각을 먹고 국을 비우니 대체 왜 저러나 싶었는데 심지어 세스페데스도 빵을 먹고 나서 의문스러운 눈으로 보다 슬쩍 말을 하였다.

“빵이 너무 찰기가 넘치며 질겅거려 목으로 넘기기 힘든데 왜 이러는지 아십니까?”

뭔가 했더니만 떡 먹고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든다고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는 외국인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지금 조선에서 쓰이는 밀이 좀 찰진 품종이래야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빵을 삼키고 세스페데스에게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국의 밀이 다 이렇습니다. 듣자 하니 대여섯 종류의 밀이 있지만 모두 질겅거리고 찰기가 넘치기에 빵의 맛이 다 이렇게 되지요.”

“이래서야 사람들이 즐기기 힘들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선원들이 동방에 가면 빵이 목에 걸려 죽은 이가 있다 하였는데 괴담이 아니고 참된 말이었군요.”

조선의 밀은 빙의자인 수양대군의 개입으로 품종개량을 실시해 수확량이 50% 이상 상승하였다. 하지만 특성은 전혀 변하지 않아 현대인인 내 입맛에는 빵의 형태를 한 떡과 흡사했다.

압도적인 수확량이 장점이지만 서양인의 입맛에 지독히 맞지 않는다는 단점 때문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잘된 일이 아닐까. 세스페데스는 가만히 식탁을 보더니 난데없는 요청을 했다.

“생각해 보니 조선에 대해 배우려고 찾아온 사람이니 시장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주일 미사는 마쳤으니 수도인 한양의 시장을 보고 올 수 있겠습니까?”

수도인 한양의 시장이라. 현대라면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 될 일이지만 이 시대에는 포구로 달려가 웃돈을 주고 사공을 구해 한강진(漢江津)까지는 나가야 하리라.

나도 좁은 섬에만 있으려니 갑갑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주한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도 있으리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시종이랍시고 따라온 고니시를 정말 시종으로 두어 출발하였다.

* * *

지금은 음력 7월이고 여름답게 제법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나야 얼마 전까지 적도 근처에서 거주하던 사람이라 이런 더위에는 익숙하고 세스페데스도 무더운 스페인 출신 아니랄까 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었다.

나루터에는 평상시와 같이 군관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평상시보다 경계가 삼엄해서 대놓고 호패를 내놓으라 하였다. 외조에 부임하며 품계를 기입해 새로 만든 호패를 제시하자 병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통상원에서 일하는 유 교감(校勘)일세. 옆에 있는 이는 아국에 당도한 서역인이고 뒤에 있는 이는 왜국 출신 시종이라네. 이번에 방문한 서역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러 시장에 들르려 한다네.”

“유 교감님께서 정하신 일이지만 저희가 호위로 따라붙겠습니다. 혹여나 불민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항시 유념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병사들이 말은 천연덕스럽게 해도 일선 병사들에게 지시가 하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혹여나 간첩이 도성에 잠입하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당연한 태도이다.

나는 간혹 있는 일이라 넘어갔지만 세스페데스는 내 소매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보았는데 아마 호패인 것 같다.

내가 소매에 넣은 호패를 꺼내자 놀라운 듯이 말했다.

“다른 이들과 크기와 형태가 다르지만 그게 신분증입니까? 평민들도 신분증을 항시 패용하는 일이 조선에서는 당연한 일입니까?”

“물론일세. 어린 시절 임시 호패를 만들고 나이가 차면 제대로 된 호패를 만들며 관원이 되면 관직이 바뀔 때마다 호패를 새로 만들지.”

“참으로 좋은 제도군요. 귀족들이야 인장이나 복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지만 평민들에게 이를 적용하면 세금을 걷기도 쉬우며 비상시에 소집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까.”

아직 서양은 평민에 대한 신분증 제도가 없나 보다. 고니시도 호패를 보고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감탄하였는데 그러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외국에 방문하면 놀라움의 연속이긴 한데 세스페데스는 한양의 풍경을 보고 놀랐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퍼부었다.

길거리에 분변이 없는 이유는 이를 가져가 화약과 비료로 만들기 때문이라 답했는데 말을 듣자마자 대번에 반박하였다.

“퇴비를 분변으로 만든다 하셨습니까? 퇴비는 본래 뼛가루로 만드는 겁니다!”

“뼛가루를 왜 퇴비로 쓰……. 생각해 보니 이건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어.”

조만간 농조 쪽에 떠넘길 일거리 하나 추가. 이래저래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접촉하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법이라니까.

한 골목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좋은 일인데 짐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었다.

저 뒤에서 고니시가 자신의 몸뚱이만 한 짐을 지게에 짊어지고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불쌍해서 내가 지게를 짊어졌다. 한 100근(64㎏) 정도 될 짐인데 이 정도면 내 하체에는 식은 죽 먹기지.

앞으로 세스페데스를 가르치다 지겨울 때마다 도성에 들려야겠다. 고작 시장에 들렀다고 이런저런 정보를 캐갈 방법은 없을 거다. 그게 가능하면 신부가 아니고 첩보 요원이겠지.

* * *

조선에 오고 한 달이 지났지만 세스페데스는 매일같이 새로움이 가득 찬 조선의 모습을 보며 하루가 멀다고 보고서에 작성할 내용을 적어가고 있었다.

방문할 당시에만 해도 조선이 어떠한 국가인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마드리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는 조선의 약재를 귀하게 취급하니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먼 고장이라 여겼다.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에 대해 알고 조선을 머나먼 동방의 국가로 인식하였지만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나라였다. 그는 평상시와 같이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리며 보고서의 첫 글귀를 작성하였다.

-조선에 당도한 지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이 머나먼 땅에 닿지는 않더라도 이 나라의 풍속과 관습에 대해 익혀나갈 것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사절단에 포함된 이들을 돌보는 서애 유라는 관리는 제법 뛰어난 사람 같습니다.

아직 배움이 부족해 이 나라의 언어와 기존에 익혔던 한자를 배우고 있습니다. 서애 유라는 학자는 다른 귀족과 다르게 덩치가 작은 편이라 위압감이 적으며 저를 비롯한 주님의 종을 경계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이 또한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불안한 점도 있습니다. 제가 파견될 적에 선교 방안을 찾으라 하셨는데 지금까지 사용한 어떠한 방법도 적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의 기술은 저희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는 면이 있으니 귀족을 포섭할 길이 막막합니다.

평민들에 대한 포교도 힘들 것입니다. 서애 유가 말하길 한양의 생활 수준이 높다 하였는데 조선의 평민들은 여느 고장과 비견할 수 없는 풍족한 삶을 유지하고 있으며 학식도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간단한 셈이나 정음이라 불리는 문자를 읽고 쓰는 이들이 열 명 중 둘 이상이며 간혹 한자라 불리는 난해한 문자를 읽고 쓰는 이들이 보입니다. 부유한 이들은 귀족들이 만든 학교에 다니며 자식들을 가르치기까지 합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가르침을 전할 때에 언제나 베푸는 입장에서 접근하였지만 조선은 다릅니다. 물산은 넘치고 학식이 빼어난 국가이니 이들에게 학문으로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방안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조선에서 궁금해하던 서적의 정체가 성경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주님의 말씀이 아닌 위대한 자의 발자취를 적은 서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사대부라 불리는 귀족과 친해질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서애 유는 한사코 반대하지만 저는 유학이라는 학문과 입신체비라는 조선 귀족들의 수련법을 익히고자 합니다. 부디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첫 보고서는 이 정도면 되겠지. 만약 조선과 같이 강성한 국가에 주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면 세상 어디라도 주님의 은총이 가득 차게 될 것이야.”

고작 한 달을 돌아본 게 전부지만 조선은 호락호락한 국가가 아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아르케부스를 전해줬다 핀잔을 듣고 베르소(자모포)를 주어 선교에 성공하였지만 조선은 화포가 넘쳐나는지 주변에서 화포를 훈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족에 대한 기술제공도 평민에 대한 교육도 힘든 시점에서 세스페데스가 택한 방식은 학문적 접근이었다. 유교라 불리는 조선의 종교를 논파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퍼뜨리는 방식이다. 참으로 험난하겠지만 그는 아직 젊고 몸 또한 건장했다.

“서애 유라는 사람이 학문으로 칭송받으니 그에게 모든 학문을 배우면 충분하겠군. 그나저나 입신체비라는 수련법이 대체 뭐기에 이렇게 준비할 게 많지?”

한양에서 가져온 라틴어–훈민정음 사전을 펼친 세스페데스는 이 나라의 말을 한시라도 빨리 익혀 입신체비의 달인이 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문득 자신의 복사이자 시종인 고니시를 떠올린 세스페데스는 손뼉을 치면서 말하였다.

“그래! 서애 유가 말하기를 배움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였는데 고니시 그 친구도 나와 함께 입신체비를 배우게 하면 충분하겠군! 서애 유라면 학식이 빼어나니 우리에게 배움을 전하고도 남을 사람이겠지.”

유성룡의 고도로 정제된 근육은 이미 삼대운동 700근을 넘어 750근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스페데스와 따지면 거의 두 배 가까운 완력 차이가 나지만 오로지 덩치만 보고 만만하게 생각한 것이다.

세스페데스의 오판은 조만간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입신체비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는 젊은 신부가 이런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작가의 말

유성룡의 체격은 신장 180㎝, 체중 71㎏, 삼대운동 750근(480㎏)입니다.

세스페데스는 신장 181㎝, 체중 77㎏ 정도로 건장한데 일반인 수준이라 삼대운동은 350근(224㎏)에 불과합니다.

세스페데스는 유성룡의 옷깃 안에 숨겨진 체형을 알아차릴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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