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35화
2부 11장 3화 주변 사람도 챙겨야지(3)
오늘도 이연은 조선의 근본이자 왕으로서의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근대 기준으로도 조선의 군주로서의 생활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으며 몸을 버리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개입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소갈(消渴: 당뇨병)을 앓고 있다 입신체비를 시행하여 몸을 다스릴 수 있었다 공언하였으며 이후 석강(夕講)은 사라지고 효행을 위하여 몸을 다스리는 입신체비가 석강을 대신하였다.
하지만 입신체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녁 해가 저물 시기가 되고 당직자를 제외한 이들이 퇴청한 후에도 이연은 내금위 병사들과 함께 후원을 날래게 뛰어 몸을 덥히고 아직 덜 풀린 몸을 다스리기 위해 도삭희(줄넘기)를 반복하였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도삭희를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셔야 효험이 있사옵니다.”
이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줄을 거세게 놀렸다. 보통 왕이나 세자를 비롯한 주요 종친의 입신체비사는 입신체비의 종주나 마찬가지인 예진원 대제학이 담당한다.
하지만 예진원 대제학인 하성군이 태조 이성계의 제사를 대행하려 자리를 비운 상태이기에 당상관 가운데 셋을 선발하여 입신체비사를 대신하였고, 하필 율곡 이이가 이 자리에 있었기에 더욱 험난한 입신체비가 진행되었다.
“이이 자네는 입신체비로 나를 혼절시킬 생각이던가? 내가 삼대운동 칠백 근이 넘는데도 힘에 부치니 자네의 벗인 유성룡이 어찌 버텨냈는지 모를 일일세.”
“유성룡이야 빼어난 사람이니 잘 따라올 수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주상전하의 말씀도 틀림이 없으시니 제자를 두려 하였는데 대부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도주하는 일이 많았사옵니다.”
이연의 입신체비는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낼 수준으로 계속되었다. 나라의 근본이나 마찬가지인 입신체비에서 군주가 모범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였고 이이의 성격에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근력 운동을 마친 이연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아직 입신체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이가 인사를 올리고 돌아가자 시종들이 이연을 위해 목욕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전하, 세신(洗身)하실 준비를 마쳤사옵니다.”
거대한 나무통에 담긴 따듯한 물에 들어가자 이연의 표정이 풀어지며 단단하게 굳은 근육도 풀어졌다. 이후 이어질 저녁식사를 기대하려 했지만 섭생도 복이라며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절육(커팅)의 시기이다.
“평상시에는 입에서 부드럽게 넘어갈 수라(水刺)가 먹기 힘들게 변하니 안타까운 노릇이지. 섭생도 입신체비라 하였는데 더는 견딜 수 없구나.”
입신체비는 양생(벌크업)과 절육(커팅)을 반복하며 근육을 부풀리니 여기에는 왕도 해당되었다.
평상시에는 12첩에 달하는 수라상을 받지만 절육의 시기에는 반찬이 7개로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효심의 완성인 입신체비를 중단할 수 없었다. 상왕이 있다면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절육을 시행하며 돌아가신 뒤에는 후계자를 위하여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연도 아직 혈기가 넘치는 나이이며 절육시기에는 술도 기름진 음식도 금지되었기에 불만은 날이 갈수록 쌓여갔다. 하지만 이런 삭막한 식단을 우회할 방법을 마련해 냈다.
이연은 수건을 가져온 궁녀에게 명을 내렸다.
“사옹원에 숙제를 내린 일이 있었고 보름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요리를 하나씩 선별해 석수라에서 직접 검수하고자 하니 사옹원에 전하여라.”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전하.”
얼마 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유생으로 위장하고 잠행을 나선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닭의 목과 갈비를 졸여낸 반찬을 먹었는데 군내는 많았지만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기에 꾀를 내었다.
기름진 음식은 목에서 피를 토할 듯이 절육에 임하라는 관료들 덕분에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백성들을 위해 요리를 시험할 것이라는 명분이면 반찬 하나 정도는 넘어가겠지.
어떤 반찬이 나올지 기대하던 이연의 앞에는 처음 보는 생소한 요리가 담겨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닭날개를 기름에 살짝 튀기고 간장과 물엿에 졸인 음식이었다.
“수라에 올릴 물건이라고 팔각(八角: 중국 향신료)을 넣어 졸였단 말인가? 기름지고 달아 목으로 넘기기에는 쉽지만 이 어찌 백성들이 먹을 수 있단 말인가. 팔각이 후추보다 몇 배는 값진 물건이 아닌가.”
이연도 나름 미식(美食)에는 관심이 있었기에 팔각이 빠진 닭날개의 맛을 상상해 보았다.
지금이야 풍부한 향으로 식욕을 돋우지만 팔각의 향이 빠지면 평범한 요리이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수라에 닭의 부속을 활용한 요리는 계속 끼어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결점이 있었으니 지나치게 값진 재료를 사용하거나 맛이 부족하였다.
하지만 닷새째에 나온 음식은 여느 요리와 달랐다.
“이번에는 고초를 사용했단 말인가? 재료가 닭의 모가지와 갈비라니 참 이상하군.”
참으로 기묘한 요리였다.
한입 크기로 썰린 감자와 고구마는 물론이요, 푹 익은 배추와 양파 사이에 다른 요리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모가지와 갈비가 즐비하였고 고기 대용으로 사용했는지 닭의 내장도 잔뜩 들어 있었다.
붉은빛과 알싸한 향을 보니 분명 고추를 활용했을 것이요, 기름이 번질번질하게 묻어 있는 것을 보니 다른 곳에서 기름을 넣었을지도 모른다.
이연이 반으로 갈라진 염통을 입에 넣자 맵싸한 맛이 퍼져 나갔다.
“이건 돼지기름도 유감람(올리브) 기름도 아니며 아마기름은 더더욱 아니군. 죄다 닭기름인데 이 닭기름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그리고 매운맛이 일품이군!”
처음 접하는 맵고 짭짤하며 기름진 맛에 정신을 차려보니 밥공기를 모조리 비웠고 정신을 차린 이연은 천천히 요리를 분석해 보았다. 당장 양념장은 닭의 군내를 잡으려 고추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도 손을 쓴 것 같았다.
번잡하지만 값진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고 기껏해야 고추를 넣은 것이 특이하지만 참으로 대단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결국 이연은 이 요리를 백성에게 퍼트리고자 하였고 자리에서 일어나 곤룡포로 환복하였다.
“오늘 수라상에 찬을 올린 이가 대체 누구인가? 아니 내가 직접 소주방(燒廚房)으로 행차할 것이니 내금위장과 내금위 관원 다섯은 채비를 갖추라 하여라.”
절육 시기에는 땅에 떨어진 물건도 주워 먹는다는 속담이 생길 지경이라 아예 미각이 뒤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른 이들의 입맛도 확인해야 하리라.
이연이 소주방으로 향하니 한창 야식을 만들던 숙수들은 경기를 일으키며 고개를 숙였다.
“주상전하! 혹여나 석수라에 비례(非禮)가 있었사옵니까?”
“비례라 하였는가? 오늘 석수라에 백성을 위한 반찬을 올린 숙수가 궁금하여 찾아왔으니 염려하지 말라. 이런 훌륭한 반찬을 만든 숙수는 누구인가?”
유운룡이 앞으로 나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이연은 얼굴을 살펴보더니 익숙한 외모임을 알아차렸다.
난형난제(難兄難弟)라는 말이 있듯 자신이 눈여겨보던 유성룡의 형임을 알아차리고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내가 처음으로 고초를 사용한 음식을 먹어보았으나 맛이 아주 좋았다. 지금까지 고명이나 향을 돋운다며 조금씩 즐긴 적은 있었지만 지독하게 매운 고초로 장을 내온 것은 처음 보았지. 우선 요리를 만든 과정이 궁금하군.”
“백성들의 부뚜막을 돌아다니며 실제로 있는 재료나 구하기 편한 재료만 사용한 요리를 생각하다 창안하였사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고초를 제외한 모든 물산은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옵니다.”
“쉬이 구할 수 있다 하였는가? 생각하여 보니 자네 동생이 고초를 즐긴다 하였는데 도성에서도 기를 수 있는 물건이니 불가한 것은 아니군. 지금부터 내금위 관원을 통해 시험할 것이니 여섯 명에게 먹일 요리를 만들도록 하라.”
유운룡은 건장한 내금위 군관 여섯 명을 보자 어깨를 움찔거렸다.
한 명을 위한 반찬이야 번철(프라이팬)을 쓰면 충분하지만 하나하나를 볶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녀석은 무쇠로 철판을 만들어 그 위에서 달달 볶아내야 맛이 좋다 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넓은 철판은 소주방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밥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설거지를 마친 솥뚜껑을 들어다 부뚜막 위에 올리고 엉덩이의 기름덩어리와 닭껍질에 마늘을 잔뜩 넣어 기름을 우려냈다.
이연이 궁금한 마음에 슬쩍 목을 가다듬자 유운룡도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본디 닭의 껍질에서 기름을 우려내 요리에 사용하지만 절육을 행하는 이들은 껍질을 먹지 않습니다. 고로 부속 가운데 값이 조금 나가지만 구할 수 있는 부위이옵니다. 다음으로는 닭의 부속을 넣고 볶아 내옵니다.”
맵고 짠맛이 강한 고추장에 양파를 잔뜩 갈아 넣었으니 익으면 양파의 단맛이 생겨나 맛이 중화될 것이었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기름에 닭의 부속이 투입되어 볶아졌고 다음으로는 내장과 채소가 순서대로 들어갔다.
큰 철판에는 삽시간에 여섯 명이 먹고도 남을 볶음 요리가 완성되었다.
군관들은 이연에게 인사를 올리고 젓가락으로 볶음을 하나씩 집어 먹고는 입이 마르게 칭찬하였다.
“맛이 아주 좋사옵니다! 맵고 알싸한 맛이니 밥이 끝없이 넘어갈 지경이옵니다!”
“닭의 맛이 배어 있는 채소라 입이 아린 줄도 모르고 있었사옵니다.”
삽시간에 닭의 내장과 부속들이 사라지고 채소들만 남았다. 군관들이 밥을 더 달라 하자 유운룡의 눈이 번뜩이며 아직 열이 식지 않은 번철을 다시 부뚜막에 올리고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밥을 여기에 볶아서 먹으면 더욱 맛있지 않겠습니까?”
솥뚜껑 안에는 닭의 뼈에서 우러난 골수와 내장에서 흘러나온 육즙 그리고 이 시대에는 귀한 기름이 잔뜩 고여 있었다.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국자를 놀린 유운룡이 볶음밥을 내왔고 군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었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군관들이 다시 복장을 정돈하고 도열하였으나 이연의 궁금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그마한 옹기에 담긴 고추장을 찍어서 맛본 이연은 생각보다 덜 매운 맛에 놀라서 질문을 퍼부었다.
“이 고초의 맛이 연한 것 같군. 이건 어떻게 만들었나?”
“신의 동생이 어린 시절부터 고초에 맛을 들여 이십여 년 동안 접붙이기를 반복하여 연한 고초를 찾아냈사옵니다. 신은 부족한 손재주를 놀려 동생의 도움을 얻은 것에 불과하옵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동생의 도움을 얻건 말건 참으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절육의 고난을 이겨내려고 꾀를 낸 것이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을 만나자 한 가지 요리를 건져내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이 요리는 닭의 부속 대신 닭의 살을 사용하면 더욱 맛이 좋아질 것이다. 아마 연회에서 즐기는 난로회(煖爐會: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풍속)에 쓰여도 누구나 만족할 요리이다.
하지만 백성들을 위해 쓰이려면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이연은 주방 생활로 굳은살과 화상 자국이 역력한 유운룡의 손을 맞잡고는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냈으나 고초의 값이 비싼 것이 흠이구나.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고초를 널리 퍼트리도록 농서를 편찬하고 종자를 육성할 것이니 유성룡에게 씨앗을 내어놓으라 전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또한 자네의 품계가 사옹원의 주부(主簿: 종6품 관직)이나 이를 두 품계 올려 판관(判官: 종5품 관직)으로 승진시킬 것이다. 다만 지금도 판관의 자리가 있으니 따로 관직을 마련할 때까지 고초를 활용한 요리를 만드는 방안에 대해 알아보아라.”
수라를 진두지휘하도록 제검(提檢: 종4품 관직)에 올리려 하였지만 사옹원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솜씨가 빼어난 이들이니 몇 번만 반복하면 동일한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치가 번뜩이는 자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여 새로운 물산을 활용한 요리를 만들게 하면 되리라.
포상을 내린 이연이 가만 생각해 보니 요리의 이름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 요리를 무엇이라 명하였는가?”
“저는 부속볶음이라 하였사오며 제 동생은 계륵(鷄肋)이라 명명하였사옵니다.”
“계륵이라? 닭의 갈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니 계륵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아예 닭갈비라 하면 좋겠구나. 그나저나 저기 번철에 수라에 올린 닭갈비가 남아 있는데 밥을 볶아오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아도 내금위 군관들이 기름진 볶음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군침을 삼켰는데 지금은 개인적인 시간이라 사관이나 입신체비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유운룡이 기름이 번질거리는 밥을 볶아오자 이연은 입맛을 다시며 숟가락으로 눌어붙은 밥을 퍼먹었다.
“역시 진미로구나. 절육도 좋지만 이런 기름지고 맛이 넘치는 밥을 언제 먹어보겠느냐.”
“주상전하, 신 하성군 이균 태조대왕께 예를 올리기를 끝마쳐 방금 전에 함흥에서 돌아왔사옵니다. 하온데…….”
숟가락이 떨어지고 기름이 번질거리는 입술을 훔친 이연은 뒤로 흠칫거리며 물러났다. 여기에 왜 하성군이 있는가 생각해 보니 소주방은 동궁과 내전 사이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다.
동궁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 입신체비장이며 하성군은 입신체비장에 드나들 권리가 있는 예진원 대제학이었다.
아마 밤늦게 돌아와 내일의 입신체비를 준비하려다 자신을 만나려 찾아왔을 것이고, 야식으로 기름진 볶음밥을 퍼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주상전하! 어찌하여 국본인 입신체비의 핵심인 절육을 헛되이 행하시나이까? 신의 배움이 부족하여 다른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절육보다 중요한 것은 없사옵니다!”
“나…… 나는 지금 한 수저만…….”
“한 수저라 하여도 모조리 뱃살로 변하면 열흘의 절육이 허사가 되는 일이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하성군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는 모습을 보니 이번 일은 쉽게 넘길 수 없어 보였다. 입신체비에 정면으로 반박한 일이나 마찬가지이니 조만간 상왕의 귀에도 들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