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34화
2부 11장 2화 주변 사람도 챙겨야지(2)
형님이 받은 명은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닭의 부속을 사용한 요리를 만들어라’이다.
하지만 이게 정말 서민에 먹히려면 상세한 사정을 알아봐야 한다. 혹여나 주상전하가 현실을 모르고 잘못된 명령을 내렸다면 수행할 수 없지 않은가.
형님은 소쿠리 하나 가득 담긴 닭의 부속을 바라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 정도 양이면 스무 마리의 부속이 몰려있는 것 같은데 당장 중요한 것은 가격을 알아내는 일이다. 기껏 요리를 만들어도 백성들이 입에 댈 수 없이 비싸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예전에 형님께서 닭을 길러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기르기만 하였고 가격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다. 대략 커다란 닭 한 마리에 넉 전(錢: 최소 화폐단위이며 한 문의 1/10, 은자 한 냥의 1/100) 정도라 하더구나.”
형수님은 털털한 성격이었는지 형님이 가져온 가계부를 보자 처음 직장에 다니던 시절 작성했던 입출금 내역과 닮아 있어 골치가 아팠다. 요약하면 그냥 얼마 쓰고 얼마 벌었다가 전부다.
기껏 요리를 만들었는데 한 달 내내 돈을 모아서 먹을 수 있다면 모욕이나 마찬가지이다.
혹시나 해서 아내에게 찾아가니 가계부랍시고 책 덩어리를 꺼내놓았다.
“낭군님께서 어찌 이런 사소한 일에 관심을 보이는지 영문을 알 길이 없습니다만 미리 적어두어 효험을 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아내는 철두철미하게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어서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도움이 되었다. 시장에 다닐 때마다 물가를 기록하였는지 각종 상가의 호칭과 관련 기록이 한 달 단위로 상세히 적혀 있었다.
“너무 상세하게 적지 않았소? 이걸 조금만 다듬으면 요람(要覽: 상세히 적은 책, 백과사전) 수준에 이를 것 같은데.”
“부친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의 근본은 앞서 일어난 일로 훗날을 대비함에 있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족하여 생활에 사용하는 물목만 적어나갔을 뿐입니다.”
아내가 뭘 적는 걸 보고 개인적인 일이라 여겨 관심을 보이지 않았건만 머슴들의 식대는 물론이요 각 시기별로 집안의 재정에 대한 입출금 내용이 빼곡히 적힌 서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현대의 물가동향처럼 세세한 항목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 별로 없었다. 돈은 자연스럽게 쌓이고 쓰이는 것이라 여겨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물가는 각종 기행문과 조선 후기에 작성된 만기요람(萬機要覽)이라는 서적으로 간접적으로 계산하였다.
그나마 내가 품셈을 도입하며 물가를 기록할 목적이 생겨났지만 아직 부족했는데 이런 좋은 자료가 튀어나왔다.
“참으로…… 참으로 대견하구려. 역시 빙장어른은 현명하신 분이오. 생각하여 보니 주변 사람들 가운데 이런 가계부를 적은 이들이 제법 있지 않소?”
“듣기로는 제 언니들과 친인척들은 모두 가계부를 저와 유사하게 적는다 하였습니다. 부친께서 엄히 가르치셨으니 몸에 밴 행동이지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니 이러한 가계부를 모아 정말 요람을 작성할 수 있겠소. 당분간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이 서적을 필사할 수 있게 해주시오.”
백과사전이 별거인가? 주변 잡다한 내용을 모조리 적고 정리하면 백과사전이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자료가 쌓이면 홍문관에 제공해 백과사전의 편찬을 독촉해 봐야지.
홍문관에서 언제 가계부를 모아 백과사전을 작성하겠나! 하면서 이를 갈고 내 멱살을 잡을 것 같았지만 필요한 일은 해야지.
여하튼 아내의 자료를 보니 닭의 가격이 얼마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형님은 한참을 읽더니 자료를 간추려서 말했고 가격대가 다양한 이 시대의 동물성 단백질을 보면서 내가 생각보다 비싼 식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닭은 보통 무릎을 넘는 큰 닭을 넉 전으로 매기고 무릎보다 아래인 중간 닭을 석 전으로 매긴다 하였다. 여기에 부속은 닭값의 이 할 오 푼이라 하였지.”
“결국 은자 한 냥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따지면 청어 육백 마리, 큰 닭 스물다섯 마리, 돼지고기 스무 근 그리고 쇠고기 열두 근이군요. 닭의 부속은 일백 마리 어치를 살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지출의 대다수가 식대이니 한 해에 식사 비용으로 은자 4냥을 사용한다 치면 도정된 쌀로 약 4석이다. 결국 닭 한 마리의 가격은 일 년 식비의 1% 정도이다.
보통 사람 두 배는 먹는 내가 포함된 3인 가족의 한 해 식비가 천만 원보다 조금 적었다.
현대 감각으로 따지면 닭 한 마리의 가격은 10만 원에 육박하고, 닭의 부속도 부위도 값을 따지면 3만 원에 육박하니 절대 싼 음식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식단은 서민 입장에서는 매일매일이 잔칫날이나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입신체비를 하려면 이렇게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니 답이 없다.
“우리들은 닭을 매일같이 먹지만 백성들은 기껏해야 몸보신을 한다며 잔칫날에 닭을 사서 먹는 일이 전부이다. 아마 여유를 부려도 한 해에 은자 한 냥을 미식(美食: 맛있는 음식)에 쓰는 일이 전부겠지.”
“하지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듣기로는 수양대군이 명국에서 돼지를 들여오고 천축에서 닭을 들여와 값이 싸졌다 하였습니다. 대체 이전에는 어떻게 살아온 겁니까?”
“예전 기록을 찾았는데 수양대군이 계실 적에 돼지고기는 세 배가 비쌌고 소와 닭은 두 배가 비쌌다. 가장 가관인 것은 생선인데 네 배가 비쌌다 하더구나.”
빙의자인 수양대군이 힘을 써서 끌어내린 물가가 이런 꼴이다.
하지만 현실과 다를 수 있으니 일하는 머슴 중 한 명에게 닭의 부속을 들고 찾아갔고, 휴일을 맞아 새끼를 꼬고 있던 머슴은 꾸벅 인사를 올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식생활을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사흘에 한 번 청어를 구워 먹거나 근어(북어)로 국을 만들어 먹고, 보름에 한번 닭의 부속을 요리해 먹으며, 잔치가 있으면 돼지고기로 수육이나 먹는 게 전부군요.”
“하지만 자네들은 생각보다 부유한 것 같은데.”
“그래도 교수님의 집에서는 세경을 많이 주어 여유가 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수양대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매일같이 생선을 먹일 수 있지요.”
마당에서 다소곳하게 서 있는 아이들의 체격이 제법 컸으니 이 또한 수양대군의 업적이리라.
영양공급이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니 먹고 살기에 급급한 백성들도 입신체비에 발을 들일 길을 마련할 것이요, 실제 그런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형님은 이들이 닭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는지 알아보려 했는지 부속이 잔뜩 담긴 소쿠리를 내밀었다.
“여유가 있다 하였는가. 일단 자네들이라면 이걸 어떻게 쓰겠는가?”
“아이고 닭 부속이 아닙니까? 스무 마리 어치는 되니 근처 사람들을 모아서 분배해야겠군요. 거기 최 씨! 사람들을 좀 불러오게!”
삽시간에 모인 머슴의 이웃들은 서로 제비뽑기를 하여 원하는 닭 부위를 골라 갔다.
여러 번 있었던 일인지 좋은 부위를 골라 가려 혈안이 되었고 머슴은 자신이 골라낸 닭의 머리와 다리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고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자네 지금 이웃들과 닭 부속을 나누었단 말인가? 본래부터 이런 풍속이 있었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닭 한 마리를 사서 통째로 먹지 않으면 한 마리에서 부속을 건져도 한 명당 한 점이 나옵니다. 결국 열 마리의 부속을 모아서 분배하지요.”
왜 애물단지처럼 닭의 갈비와 모가지만 남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장을 모아 구워 먹으면 되고 머리나 다리로는 육수를 내면 되지만 굽기도 힘들고 살점도 적은 갈비와 목은 열 마리 어치를 받아도 먹을거리가 없다.
형님은 벌써부터 요리에 들어갔다. 가장 힘든 부위를 처리하려 했는지 잔뜩 쌓인 닭의 갈비와 모가지는 찜통에 들어갔다 나왔고 윤기가 흐르는 간장 찜이 되었다.
“먼저 물엿과 간장을 섞어 쪄내 보았는데 네 입에는 어떻게 느껴지느냐?”
“먹지 못할 물건은 아니지만 껍질이 축 늘어져 질겅거리고 속에서 군내가 올라옵니다.”
솔직하게 말해 간장 졸임보다 못하다. 형님은 한숨을 쉬더니만 쪄낸 닭 부속을 막자사발에 넣고 으스러트려 동그랑땡 비슷한 부침개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입으로 술술 넘어가다 잇몸에 무언가 박혀 피가 흐르는데 갈리지 않은 뼛조각이 아닌가.
“뼈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남아 있군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요.”
“생각해 보니 익힌 뼈는 무르지만 질겨진다는 사실을 잊었구나. 하지만 네 튼튼한 치아로도 끊어내지 못했다면 함부로 먹다 입이 상하거나 속이 다칠 수 있을 것이다.”
툇간에 가서 속을 게워냈는데 형님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생닭의 부속을 막자사발에 넣고 으깨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닭을 풀어놓고 기르는 데다 대부분 오래 기른 닭이니 으깨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한참을 돌절구와 씨름하던 형님은 아직도 갈려 나가지 않은 뼛조각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차선책을 택하였다.
양념장을 머금은 닭 모가지와 갈비를 숯불에 구워 내왔는데 맛은 있지만 이래서야 간장 졸임보다 나을 것이 없다.
“맛은 좋지만 여전히 군내가 나는구나. 뼈 사이에 끼인 핏덩어리와 골수가 맛을 북돋워주지만 덕분에 구워서 습기가 빠지면 역한 냄새가 느껴지니 답답한 노릇이다.”
현대의 도축은 공장식이다. 살아 있는 닭에 전기충격을 가하고 레일을 통과시켜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털을 모조리 벗겨 버리는 영상을 보고 하루 정도 닭고기에 입도 안 댔으니까.
하지만 이 시기의 도축은 목을 치고 대충대충 진행한다. 당연히 피도 남아 있을 것이며 배를 가르면 신선도가 떨어지니 털만 벗긴 닭을 매달아뒀다가 판다.
팔다리는 몰라도 내장의 냄새는 몇 배로 심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군내를 잡으려면 후추가 제격입니다만 후추를 백성들이 함부로 쓸 수 없지 않습니까.”
“후추 한 냥 정도를 모셔뒀다가 잔칫날이나 우환이 있을 때에 사용하는 일이 전부이다. 마늘로 향을 잡을 수 있겠지만 어차피 간장 졸임에도 마늘은 들어가지 않더냐.”
향신료의 가격이 싸지긴 했지만 백성들 입장에서 부담이긴 마찬가지이다. 은자 1냥이면 후추 40냥을 사들일 수 있지만 현대로 따지면 150만 원으로 후추 1㎏ 정도를 사는 수준이다.
하지만 향신료라 하니 현대 한국에서는 향신료 취급도 안 하는 녀석이 뒤뜰에서 자라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고추의 향기도 향신료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더군다나 재배법만 알면 뒤뜰에서 맘대로 기를 수 있지 않은가!
“형님! 만약 고초(고추)를 사용한다면 이 군내를 잡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초라…… 분명 고초의 향이 독하여 쓸모는 있을 것이다. 매운맛이 문제이지만 시도해 보아서 나쁠 것은 없지 않더냐!”
부엌에 모셔져 있던 고춧가루를 내놓으니 형님은 신이 나서 이리저리 움직여 양념장을 만들어냈다. 숙성시킬 시간은 없지만 살이 별로 없는 부위라 구워지면서 알아서 속으로 스며드리라.
현대에서 보았던 숯불닭갈비와 유사한 녀석이 자글거리며 석쇠 위에서 기름을 뿜어냈다.
잘 익은 목을 끄집어내 한입 물었는데 지독하게 맵다! 매운 걸 넘어서서 혀가 아릴 지경이다!
“이건 너무 매운지라 술안주로 쓰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군내야 온전히 잡혔지만 이래서야 식사가 아니고 제 벗인 송강(정철의 호)의 안줏거리로 주면 딱 좋겠군요.”
“하지만 이보다 고초의 양을 줄이면 군내가 잡히지 않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조금 줄인 녀석을 먹어보려무나.”
조금씩 줄여나가며 시식했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계속 청양고추보다 매운 고추를 사용한 양념장을 먹은 내 위장도 끓어오르고 형님의 안색도 창백해졌다.
형님의 요리 솜씨는 좋았지만 이 고추는 너무 맵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고추의 매운맛을 줄이는 방향의 품종개량을 하였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넘쳐났다.
결국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을 줄이면 군내를 잡지 못하고, 군내를 잡으면 나도 먹기 버거운 매운 숯불닭갈비가 나온다.
답답해하던 형님은 마당에 놓인 장독대를 보더니 손뼉을 치면서 뛰어갔다.
“그래! 된장의 맛을 섞으면…… 아니 된장 말고 다른 물건도 섞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녀석이 되겠구나. 잠시만 기다리려무나.”
나는 요리솜씨가 좋지 않아 고추장을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형님은 매운맛을 줄이려는지 체에 걸러낸 된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물엿과 간식으로 준비한 과일을 갈아 섞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한참을 힘쓴 형님이 만들어낸 물건은 현대의 고추장과 유사한 양념장이었다. 아직 숙성이 덜 되어 맛은 부족하겠지만 저절로 군침이 돌 지경이다.
하지만 형님은 맛을 보더니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구워내면 지나치게 짜서 먹지 못할 물건이 되겠구나. 여러모로 궁리하여 백성들이 가진 물산으로 편히 만들 수 있는 장을 만들어냈는데 부족한 점이 있구나.”
“형님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백성들이 가진 물산이라 하셨습니까?”
“당연한 일이 아니더냐. 닭의 부속을 사용하라는 명이었지 닭의 부속‘만’ 사용하라는 명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지나친 힘을 들이지 않고 닭의 갈비나 목을 먹을 방법을 찾아내야 하니 매달린 것이다.”
형님의 말을 듣자 촉이 왔다. 이 시대에는 주방에 이런저런 찬거리는 물론이요, 채소를 사들일 때에도 기본적으로 대량구매가 우선이다. 바꿔 말하면 주방에는 언제나 반찬거리가 있다.
당장 집에 있는 채소도 시들어가는 봄동(겨울배추)이나 땅에 묻어둔 고구마, 이제는 싹이 나서 먹지 못할 감자를 비롯해 다섯 종류가 넘었다.
이걸 조합하면 떠오르는 요리가 있다.
“형님. 지금부터 닭의 갈비를 사용한 요리인 닭갈비를 만들어봅시다.”
양념장도 있고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형님도 있다. 다른 이들이 어떤 요리를 가져올지 모르겠지만 우리 형제의 힘을 합친 요리를 이겨낼 방법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도 애물단지로 남아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만 먹는 고추도 조선 전역으로 보급할 길이 열리겠지.
이건 통한다! 무조건 통한다!
#작가의 말
수양대군 덕분에 이래저래 식생활이 좋아졌지만 아직 근대에 다가서기에는 험난하고 머나먼 길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보기에 조선의 식생활은 호화찬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