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24화
2부 10장 1화 항구를 만들라며(1)
정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으니 나름 준비를 하며 지냈다.
당장 중요한 일은 내가 부임할 장소에 대한 정보를 예습하는 건데 다행히도 현지 출신 통역관은 외조에서 바로 섭외하였다.
문제는 내가 부임할 지역의 상세 정보인데 외조에서는 일을 잘하면서 잘하지 못하였다. 민다나오 섬에서 조선에 친한 부족을 찾아낸 것은 좋은데 거기가 외조의 한계점이었다.
“인구 2만 내외이며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어업위주의 촌락이라 큰 가능성은 없음. 주요 산출물은 목재, 구리, 약간의 금과 각종 임산물(林産物) 그리고 수석?”
예전에는 제법 번성한 지역이었지만 조선이 필리핀 북부부터 압력을 가해 천천히 호족들을 포섭하는 칠십여 년 동안 발전 속도가 더뎌지며 조선이 새로 만들어낸 교역 중심지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던가.
예전에는 사람이 넘쳐나 사금을 캐었으며 성인이 되면 금목걸이를 패용하던 이들인데 몰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서적을 읽고 있으니 형님이 헛기침을 하며 나를 불렀다.
예정에도 없이 내가 여송으로 부임하자 조정에서도 나름 신경을 썼다.
가족 모두가 휴가를 받아 나름 오붓한 생활을 즐기게 하였으니 식사도 조만간 크게 고생할 나를 위해 형님이 마련한 것이다.
“머나먼 남방에 부임한다 하였다. 나야 사옹원 주부(主簿)에 불과하여 네 고생을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근어(勤魚)국을 잔뜩 끓였으니 어서 들어 보거라.”
“근어국이라 하셨습니까? 형님이 만든 음식이 곧 주상전하의 수라가 되는 법이니 어찌 들지 않겠습니까!”
정성껏 우려 사골국물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뽀얀 국물을 들이켜니 속이 풀렸다.
근어는 현대로 따지면 황태이다. 조선이 캄차카 일대를 개척하며 원주민을 포섭하였고 이들은 조선의 문물을 사들일 돈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수양대군이 진양근(삼대운동 1,000근)을 달성할 때에 먹었던 명태가 지천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선에서는 소금에 절여 유통하는 명태가 대세지만 가난한 이들이니 자신이 먹을 소금을 마련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건어물을 만드는 데 능숙하였고, 명태를 조선에 팔려고 성실하게 여러 달을 말려 푸석푸석한 황태로 만들었다.
이윽고 어마어마한 양이 잡힌 황태는 도성에서도 겨울마다 즐겨 먹는 식량이 되었다.
“남방에 내려가면 이 좋은 근어국을 먹을 수 없으니 아쉬운 노릇이군요.”
정작 애단현에서는 지겹게 먹어대어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필리핀까지 내려가면 가는 와중에 죄다 습기에 절어 입에도 대지 못할 물건이라 게걸스럽게 먹었다.
형님은 내 모습을 보더니 황태 보푸라기를 얹어주며 말하였다.
“여름이 되면 습기에 찌들어 입에도 대지 못하는 근어이니 남방에서는 배를 타고 내려가다 모조리 상할 것이다. 아쉬운 일이니 많이 먹고 가거라.”
근어국이라 부르니 입에 달라붙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표면적으로는 근면(勤勉)하게 말리기에 근어라 하지만 아마 근육을 기르는 데 좋기에 근(筋)어라 하였겠지.
여기에 여전히 기르고 있는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보았다. 삽시간에 퍼지는 알싸한 맛은 좋았지만 여전히 지독히 매운 고추라서 먹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형님은 이 모습을 보더니 여전히 내 식성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더위만 시작되면 맥을 추지 못하던 녀석이 몸을 덥게 만드는 고초(고추)는 즐겨 먹으니 참 특이하구나. 나도 고초를 사용해 보았지만 주상전하에게 올릴 물건은 만들지 못하였거늘.”
“몸을 덥히는 고초의 맛에 익숙해지면 더위도 쉬이 견딜 수 있다 여겨서 계속 즐겼지만 한도가 있더군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내가 더위에 약한 것은 체질이 아니고 현대의 기억 때문이다. 살이 찐 이후에는 조금만 기온이 올라도 움직이기 싫어지며 피로가 쌓였으니까. 이건 몸이 변해도 뼛속까지 남아 있었다.
물론 이런 모습 덕분에 잘 먹지 않는 고추를 먹는 변명거리가 되었지만, 식사도 마치고 다시 서적을 읽는데 생각 외로 할 만할 것 같았다. 수석의 묘사를 보니 간혹 양반가에 장식으로 놓인 기다란 종유석이 아닌가.
종유석이 있다면 인근에 석회암 지대가 있다는 뜻이요. 조선에서는 험지인 영동 인근에 석회석이 산출되어 운송 문제로 콘크리트를 만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무도 널려 있고 석회암도 널려 있으니 어설픈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으리라.
* * *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음력 십일월 초하루,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조만간 엄청난 습기와 더위에 시달릴 예정이라 삼마로 만든 옷에 밤잠이라도 편히 자려고 죽부인을 챙겨왔는데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이번에 파견되는 관료 가운데 신주랑도 있었다. 조식의 제자로 생소한 문화에 적응하느라 온갖 애를 썼지만 어떻게든 외조 관원으로 자리 잡았으니 다행이다.
문제는 죽부인을 세 개나 끼고 있다니!
“창산(신주랑의 호) 자네도 죽부인을 챙겨왔나? 아내도 있으면서 죽부인도 둔단 말인가?”
“저도 더위에는 약해서 꾀를 부려봤습니다. 그나저나 머나먼 미주에서 세상의 절반을 건너왔는데 다시 남방으로 갈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파견에 참가하는 문관들은 나와 신주랑, 그리고 하급 잡직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대남도(대만) 출신이거나 토관 가운데 임명된 이들이다.
문제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관인데 내 상관이자 실질적으로는 군사 업무만 담당하는 수군만호 남상정이다.
“이거 유 경차관을 처음 뵙게 되는구려. 수군만호이자 이번에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어 찰리사(察理使: 전시에 임명되는 종3품 군관)로 임명된 남유훈(남상정의 호)이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젊은 나이부터 명성을 떨친 분이니 제게 힘을 보태주실 것이니 앞으로의 일이 평안할 것 같습니다.”
“허어, 이번 일은 유 경차관이 주역이 아니오. 명분이야 변방이 어수선해 사람을 보내 기강을 올바로 세우는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군사를 다스리는 일이 전부가 아니겠소.”
대외적으로 그리고 업무에 관여하지 않은 이들에게 알리기는 ‘남대주(민다나오 섬) 일대가 어수선해 군관을 파견하여 요새를 만들어 만일을 대비한다’라 하였다. 이는 인근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만약 조정에서 특정 세력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공언된다면? 조보를 작성할 정도로 정보력이 뛰어난 상인들이 소식을 듣고 먼저 나설 것이며 이런 사실이 호족에게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결국 명분은 군사기지 건설이니 돈 될 구석이 없다 말한 것이다.
그래서 군관으로 명망이 높으며 남이장군의 후손이라는 명성까지 꿰찬 남상정에게 종3품의 임시직을 주어 표면으로 내세우고, 실질적으로는 내가 항구를 건설하고 주변을 발전시키는 이중적 방침을 택하였다.
덕분에 필리핀까지 항해하는 동안 상인들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물자를 전달하기로 정한 여송 일대의 상인들이 기세등등한 군함들을 보고 쭈뼛거리며 물자만 전달하고 도망쳤다.
거의 한 달이 넘어 45일에 걸친 항해도 마침내 막을 내릴 시기가 되었다.
“거의 다 닿았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리가 부족이 사는 비랑비랑(Bilang Bilang: 빌랑 빌랑)이라는 지역에 도달하게 되는구려.”
“비랑비랑이 무슨 뜻인가? 혹여나 비랑(備郞)이라는 뜻이라도 되는가?”
“말하고 말하다 라는 뜻이니 말을 전달하자는 의미가 됩니다. 주변에 섬이 많으니 이런저런 이들이 모인 장소라 저런 명칭이 붙었나 봅니다.”
남상정이 건넨 망원경을 보니 나룻배 수십 척이 우리의 방문을 알아차리고 일제히 다가왔다. 천천히 접근하는 모습에 환대하는 몸짓을 보이니 아무리 보아도 해적은 아니다.
이윽고 사다리를 타고 부족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배 위에 올라왔다.
“조선에서 오신 분들이시군요. 제가 수리가오의 부족장인 엥가라인데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몸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이미 일 년 전부터 여러분을 위한 준비를 하였지요.”
“참으로 반갑소이다. 그나저나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진 않았을 것이라 믿겠습니다. 아국은 요새를 만들어 해구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당신들의 땅 일부를 점유하려고 온 것이오.”
“물론입니다. 사실 저희도 먹고살기 힘든 지경이라 요새만 만들어 사람만 거주시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서 배를 갈아타시지요.”
남상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나도 이유를 몰라서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남쪽에 있는 해안을 가리키고는 말하였다.
“지금은 물이 빠질 시기입니다. 저희가 번성한 원인은 저 수림이 물길을 막아주어 나룻배가 드나들기 쉬워서이며, 쇠락한 원인도 저 수림 덕분에 큰 배가 드나들 항구가 없어서이지요.”
수림이라 했는데 나룻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이동하니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인근 해안에는 맹그로브 숲이 빼곡하게 깔려 있어서 큰 배도 드나들기 힘들고 나룻배도 이리저리 물골을 거스르며 나아가야 했다.
맹그로브를 처음 보았지만 사방에 나무가 빼곡하며 뿌리가 불쑥불쑥 솟아 나와 있다. 이들이 쇠락한 이유도 거대한 상선을 사용하는 조선을 비롯한 세력이 접근하지 못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덕분이겠지.
남상정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여기에 항구를 만들라 하였는데 애초에 조사가 잘못되었소. 이 수림을 모조리 벌채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며 설령 벌채를 마쳐도 바다에 물골을 파낼 수 없는 노릇 아니오.”
“주변을 살펴서 항구를 만들 다를 장소를 찾아봐야겠군요. 물고기가 넘쳐나니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만 큰 배가 드나들 수 없는 장소입니다.”
아마 외조 관원들은 토관들의 작은 배를 타고 드나들거나 아예 다른 경로로 조사를 하였기에 항구 위치를 엉뚱하게 선정했겠지.
그래도 어딘가에는 암반지대나 물살이 세서 맹그로브가 없는 지역이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맹그로브 숲을 지나가자 외조에서 말한 대로 너른 평야가 보였고 어지간한 읍내보다 큰 규모의 마을이 있었다. 한때 번성하였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수많은 이들이 도열하여 우리를 보고 환대하였다.
“변두리에서 물고기나 잡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저희들을 택하여 주신 조선의 사람들에게 감사하여 저희도 선물을 마련하였습니다. 조선에서 모시는 분들을 위한 성전을 마련해 두었지요.”
“성전을 마련해 두었다 하였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번역되니 역관을 슬쩍 쳐다보았는데 성전(聖殿)이라는 뜻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슬람교 세력이 강한 지역이라 여겼는데 성전이 있다고?
정상적인 물건이면 향교라고 칭했겠지만 성전이라는 말을 듣자 어딘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우리를 배려해 만든 물건이니 지금 방문하겠다 말했고 사람들은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며 우리를 안내하였다.
“이들이 아국을 받아들이려 무던히 애를 썼구려. 참 좋은 일이 아니겠소.”
“저는 조금 염려하고 있습니다. 도로가 너무 정비되어 있지 않습니까?”
남상정도 내 말을 듣고는 이상하다 여겼는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기는 우기에 장마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진다. 조선처럼 도로가 조금 망가지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유실되리라.
하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최소한 여러 해 동안 정성을 들여 모래와 자갈을 깔고 다진 대로이다.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길을 마련하려면 보통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거의 다 왔습니다! 저희가 조선에서 모시는 분들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얼마 뒤에 축제가 열리니 참으로 잘된 일이지요.”
“이건 인도교(印度敎: 힌두교) 사원이 아니오!”
“인도교? 인도교가 왜 여기에 있소? 인도교는 천축 일대에서 믿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성전이라 했더니 황토색 사암을 잘 깎아 만든 힌두교 사원이다!
내가 목조건축을 주로 했으며 인도에는 다녀온 적도 없지만 앙코르와트의 부분을 본떠 축소한 이 형태를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가파른 계단과 특유의 좁아지는 탑 형태의 모습만 있으면 모르겠다.
사방을 형형색색의 끈으로 장식하여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으로 흩날렸다. 남상정도 이 광경을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는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주민들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조선에서 모시는 분들은 여기 있습니다. 어서 오시지요.”
“이게…… 무슨 일인가! 지금 뭔 짓을 하였는가!”
“저희가 신을 모시는 방법입니다.”
현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또한 종교의 용광로라 불릴 정도로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다. 사실 다른 종교의 신을 마음대로 편입하는 거지만.
인도에 선교사가 방문해 개신교를 전도하자 얼마 뒤에 ‘예수를 믿는 힌두교인’들이 생겨나고 사원에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하더라.
그리고 이런 일이 여기서도 벌어졌다. 남상정은 신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상대의 멱살을 잡았다.
“중니(仲尼: 공자)를 비롯한 공문십철(공자의 가장 뛰어난 제자)이 왜 이런 장소에 있는 것이오! 위패도 아닌 돌을 깎아 억지로 만든 상이라니 당신들에게는 법도조차 없소?”
“컥! 이거 좀 놓으십시오! 저희가 뭘 잘못했습니까? 들어보니 이분들의 가르침도 마음에 들어서 사원에 안치해 두고 신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외조에서 접촉한 관원을 통해 조선에 관심을 보였고, 조선 사람들은 유학을 전파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섰을 것이다. 당연히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퍼주게 마련이니 성현들의 조각상도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종교가 힌두교이니 유학을 아주 제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신들의 방식에 맞게 힌두교 양식으로 한껏 멋을 내고 안료를 칠한 공자상을 집어 든 남상정은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 지금 중니와 세상을 미혹하는 불씨(석가모니를 낮잡아 이르는 말)를 같은 반열에 놓는단 말이오! 심지어 불씨의 상도 종류별로 다 있구려! 이건 또 뭐요!”
“아주 유명한 분이라서 신으로 모셔두었습니다. 듣자 하니 조선에서는 이 분의 가르침이 계속 이어진다 하면 충분히 반열에…….”
예전에 회령군의 집에서 수양팔근도, 빙의자인 수양대군이 전파했을 여덟 개의 보디빌딩 자세를 묘사한 병풍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수양팔근도는 입신체비장 벽면을 장식하는 일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신들과 같이 놓인 흑룡세(빅토리 포즈)를 묘사한 신상을 보자 나를 포함한 조선인 모두 탄식을 내뱉었다.
심지어 흑룡이랍시고 시커멓게 옻칠을 했다!
#작가의 말
칼리 : 여보, 새로 들어온 애가 더 파괴력이 강한 것 같으니까 파괴신 딱지 떼쇼
시바 : 으아악 너무 근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