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20화 (320/573)

근육조선 320화

2부 9장 4화 군기시(1)

1572년 2월이 되어 명세부에서 일할 관료들을 가르치고 칠 개월이 지났다. 각종 건축 관련 비리를 포착하는 방법을 가르쳤지만 내 분야를 가르치는 일이 전부였다.

이 공으로 정5품의 정랑(正郎)으로 진급했지만 아쉬움만 남았다.

“유 정랑께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저희가 기본적인 방법에 대해 익혔습니다.”

“많은 도움이라 하여도 충분한 자질이 있으니 이리도 빨리 익히신 것이 아니겠소. 하지만 아직 끝난 일이 아니오. 함선이나 병장기와 관련된 일도 배워야 하지 않겠소.”

내가 함선과 관련해 쌓은 지식은 도면만 잘 그리지 초보자를 벗어난 정도이며 병장기와 관련된 지식은 거의 없다. 당연히 명세부에서 일할 이들은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서 새로 지식을 쌓아야 한다.

다들 의욕은 넘쳐났다. 성리학적 논리로 탐관은 철저히 배제하며 하늘 같은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려는 이들을 적발하는 일은 당연하니까.

하지만 최립은 기본 지침이 적힌 서적을 펼쳐 보이며 말하였다.

“업무가 참으로 난해합니다. 사헌부야 자기 마음대로 탄핵을 실시할 수 있지만 명세부는 철저히 근거를 내세워야 탄핵을 실시하지 않습니까. 지식은 많이 필요하고 과정은 복잡하군요.”

최립의 말대로 사헌부와는 완전히 다른 기관이다. 풍문거핵(소문만으로 탄핵이 가능하다)과 불문언근(주장의 근거를 들지 않아도 된다)으로 무장한 언론 양사인 사헌부와 사간원과 달리 명세부는 철저한 근거를 바탕으로 비리를 포착한다.

지켜야 할 규정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감춘 것을 명확히 드러내고 탄핵한다는 뜻의 명장거핵(明藏擧劾)이요, 다른 하나는 주장에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시무언근(時務言根)이다.

최립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니 나도 한껏 놀려주고 싶었다.

“언론(言論)이야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지만 기둥이 사라지는 법은 없지 않나. 실물을 확인하고 이를 철저히 조사하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손가락질을 받기에 십상이지.”

“그러하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명세내역이 십 년 주기로 갱신된다 하였는데 기존 건물도 새 방식으로 계산하여야 합니까?”

당연히 시대가 변하고 실정이 변하면서 기준도 변한다. 이를 대비하려고 십 년에 걸쳐 수집한 자료를 홍문관에서 정리하고 공조와 호조 관료들이 나서 새로 갱신하기로 하였다.

당연히 이런 경우에도 규정은 마련되어 있었다.

“염려하지 마시구려. 공사를 실시한 날을 기준으로 삼아 계산하면 될 일이 아니겠소.”

“참으로 명확한 규정이군요. 앞으로 발전의 여지가 충분하지만 저희가 배울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유 정랑께서 가르치신 일을 기본으로 삼아 저희도 더욱 업무에 매진하겠습니다.”

최립과 이원익을 비롯한 이들이 다음 과정을 배우려고 전함사로 떠나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명세부가 사헌부 휘하 임시관청 시기를 거치고 완전히 자리 잡으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만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지금도 도성 어디에서는 내가 완성한 품셈과 산출로 인부들을 독촉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부를 다루는 방법이나 업무를 배정하는 지침서 정도로 인식되었지만 일단 효율과 예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 시대에는 조선은 물론이요, 내가 아는 세계 어디에서도 남겨 먹는 일이 당연하다. 업무 중에 술판도 벌이고 좋은 재료가 있으면 빼돌리는 일은 다반사라 하였지. 공사가 차일피일 늘어나는 일은 일상이고.

하지만 규정이 정해지면 이런 모습은 볼 수 없다. 급료는 올랐지만 업무에 몰두해야 하니 공사기간이 짧아지고, 자연스럽게 급료도 감소하며 나라의 돈이 굳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를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첫 삽을 뜬 기관이지만 돌아가려면 당상관은 달고 돌아가야겠구나. 그나저나 이놈의 연령 기준의 품계 제한은 내 입장에서 너무 불리한데.”

본래 조선이었다면 전문성이고 재능이고 일단 왕의 마음에 들고 청요직에 올랐으면 무조건 품계가 높아진다.

하지만 변한 역사의 조선은 업무능력과 안전성 위주의 인사를 택한다.

불세출의 천재라 하여도 경험이 부족하면 실책을 저지를 수 있다 여겨 30세에 정5품, 40세에 정3품을 넘어서기 힘들다 하던가. 내 나이가 딱 30세이니 진급 한계치에 가깝다.

결국 명세부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급 관료로는 말이 안 되고. 대놓고 두 품계를 올려 정4품 장령(掌令)으로 둘 수도 없으니 공조에 남아 있어야지.

덕분에 공조 업무를 반복하였다. 어디서 사용할지 모르는 각종 산악 지형과 누각을 올릴 계획을 세우라 했는데 계획주제에 제법 상세하였다.

덕분에 며칠 동안 계획을 세우니 판서 유잠이 나를 따로 불러내 서류를 전했다.

“유 정랑 자네에게 따로 배정된 업무가 있네. 조만간 군기시(軍器寺)를 북악(북한산) 인근으로 옮길 예정인데 자네가 담당해 주게나.”

“북악이라 하셨습니까? 듣자 하니 일전에 예산이 부족하여 행궁(行宮)을 두고 산성을 축조하려다 일이 틀어졌다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 군기시를 두다니요.”

이현전에서 일하며 관여한 업무 가운데 하나가 지방 산성의 보수였는데 본래 공조의 업무였다. 본래 북한산성을 축성할 예정이었는데 예산이 부족해 불가능했다더라.

덕분에 예산이 조금 남는 이현전으로 배정되어 주 업무가 아닌 지방 산성의 보수업무로 전환되었다 하는데. 육조에서 일하니 이놈의 나라가 얼마나 예산에 쪼들리는지 알 수 있었다.

듣자 하니 문래국(브루나이)의 해적들을 소탕할 때 이십 년 동안 모은 예산에 명나라의 지원금을 모조리 사용해 원정군을 꾸렸다 하던가.

유잠도 내 의문을 알아차리고 다른 이에게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주상전하의 뜻이 이러한데 의문을 가지지 않고 행하면 될 일이지. 다만 훈련원의 전신인 훈련도감이 남한산에 세워지자 산성을 크게 세우고 행궁을 두었다네. 아마 군기시를 두는 연유도 같을 것일세.”

진해대군의 집에 오가며 본 적은 있지만 군기시는 비좁다 못해 미어터질 것 같은 곳이었다. 이런 장소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요구사항은 한도 끝도 없어서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는데 예산은 충분하다 하였다.

아마 호조를 비롯한 재정 관련 기관들이 비명을 질렀겠지만 어찌어찌 예산을 쥐어짜 내지 않았을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예산이 생길 구멍이 있는 것이다.

“아…… 내가 산출을 만든 덕분이구나. 예상 효과가 일 할에 조금 못 미치게 예산을 감축한다 하였는데 몇 년 정도 쌓이면 산성 정도는 가뿐하게 쌓겠네.”

지금도 경제에 밝지 못한 관료들은 별로 효험이 없다 여겨 일손만 많이 든다고 여겼지만 유잠의 말에 따르면 한 해 최소 은자 삼만 냥 이상의 예산을 절감할 수준이라 하였다.

이것도 최소치고 더욱 많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으며, 절감한 예산은 쌓이면 사용할 구석이 어디엔가 생기게 마련이다.

먼저 군기시를 옮겨 명분을 만들고 남는 예산으로 차근차근 북한산성을 세울 게 분명하다.

솔직하게 말해 조선이 너무 강해서 북한산성을 쓸 일은 없겠지만 대비는 언제나 중요한 법이지.

내 직무에 충실하려고 유잠이 전해준 서류를 읽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대감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군기시의 장인들이 건축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적어 제대로 된 요구사항을 전하지 못하였으니 직접 따져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군기시를 북악으로 옮기면 산세가 험하니 고치기 힘들 것이라 처음 만들 때에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라네. 속히 다녀와 상세히 알수록 좋은 일이니 함께 가세나.”

처음에는 병조(兵曹)와 연관된 군기시에 나만 보내나 했는데 의외로 판서인 유잠도 먼저 나서려 하였다.

평상시에는 자신의 업무 외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럴까.

* * *

유잠이 군기시에 들어서자마자 친한 척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는데 장인들이 유잠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나누는 대화만 들어도 유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익현 자네 아직도 여기 있었나? 내가 병조정랑으로 일할 무렵부터 자네를 보았는데 벌써 이십 년이 넘게 있을 줄은 몰랐네. 몸은 괜찮은가?”

“무릎도 손목도 끊어질 것 같지만 가족들이 기다리는데 제가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릎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다고? 내가 병조참판으로 있으며 문래국 원정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관심을 소홀히 하였더니 자네가 이런 고생을 하는지도 몰랐군.”

유잠은 지방관으로 일할 적에 백성의 삶에 관심을 보이고 각종 노역의 과중함을 줄이는 데 힘썼다 하는데 이런 성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업무는 업무요 친목 도모는 친목 도모이니 유잠의 인사치레도 끝나고 각 분야에 있는 기술자들의 지휘자인 권직장(權直長)이 의견을 제시하려 모여들었다.

일하는 분야는 24개요, 소속된 장인만 900명에 달하니 장인들의 의견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나마 차근차근 이야기하니 어느 정도 의견이 수렴되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매번 망치를 내려쳐 강철을 창날로 벼려내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라오. 그러니 다른 방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도록 만들어주시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벽돌을 두 겹으로 쌓고 사이에 밀짚을 좀 채워두면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주요 주제는 업무환경 개선이었다. 바닥을 튼튼히 만들어 쇳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하라는 말은 방전을 좀 깔고 모래를 두면 해결될 일이고.

하지만 도검 분야를 담당하는 권직장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입신체비장을 만들어주십시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듣다 보니 발음이 조금 어눌해서 상대를 자세히 보니 체격이 작고 어깨 폭도 좁았다.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상대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제가 왜국에서 하남도(큐슈 북부)로 열여섯의 나이에 건너와 칼을 만드는 솜씨를 인정받은 덕분에 서른이 넘어 군기시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좋아도 체격이 작은지라 많은 칼을 벼려내지 못하고 있지요.”

“그리하여 입신체비를 행할 장소가 필요하다. 그런 말이오? 왜 입신체비요?”

“입신체비를 하면 체격이 담대해지지 않습니까? 제가 알음알음 다른 이들에게 배워서 행하여보았지만 체격이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입신체비장이 필요하겠지요.”

애석하지만 이 사람은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체격 차이가 생긴 이유는 이 사람이 한창 성장기일 때 제대로 된 영양소, 특히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한 덕분이다.

마흔에 가까운 사람인데 성장한다고?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칼을 만드는 장인이라 했는데 망치를 쉴 새 없이 내려치는 작업이니 양팔의 근육과 관절이 모조리 손상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입신체비를 하면 쉰이 되기 전에 불구가 되리라.

참으로 가엾고 딱한 노릇이라 노력해 본다고 에둘러 말하며 돌려보냈는데 다음 사람이 도착하였다.

그런데 나를 보면서 반갑게 손을 내미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자네가 명성이 자자한 이현이군. 나도 한때 이현전에서 일해서 자네의 소문을 듣고 기뻐했다네. 내가 김자헌(子獻: 김지의 호)일세.”

“네? 그러하면 이십 년 전에 이현전에서 일하셨던…….”

악수를 나눴는데 이 사람 오른손 손가락이 하나가 없다! 넷째 손가락이 잘려 있는 데다 얼굴에도 흉터가 역력히 남아 있는데 폭탄에 당하기라도 한 것인가?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김지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며 말하였다.

“화공원에서 일할 적에 사고가 있었다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질산과 수은이 원흉이지.”

“질산과 수은 모두 몸에 해로운 물건이 아닙니까? 혹여나 질산이 튀셨습니까?”

“손이 질산에 상하여도 바로 씻어내면 크게 상하지는 않지. 다름이 아니고 송나라 시절의 서적인 태평광기(太平廣記)를 보니 화약을 처음 만들 당시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네. 당시에 수은은 넣은 단약을 만들다 집이 타버렸다 했지.”

나도 여기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중국 문명은 수은을 사랑한다. 진시황이 수은을 마시다 목숨을 잃었지만 한나라도 수은을 사용한 단약을 사랑하였으며 이는 지금의 명나라까지 이어진다.

북경에서 정력제랍시고 수은을 파는 모습을 보며 기겁하였지만 그냥 풍속이라 하였다.

하지만 수은으로 폭발물을 만들 수 있던가?

사고 당시의 일을 떠올렸는지 어깨를 으쓱거린 김지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당시에는 수은이 몸에 나쁘지 않다 여겨 이리저리 실험을 하였지. 질산과 수은을 섞은 다음 주정으로 희석하니 회색 가루가 나왔다네. 이걸 사발에 담아두니 다음 날 타올라 재만 남아 있었지.”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스스로 타버리는 물건을 만든 것입니까?”

“그랬다면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네. 하지만 다음에 만드니 실패하고 그렇게 십여 회를 반복하여 만들자 마침내 두 번째 성공을 거두었다네. 문제는 볕에 말린 이후 접시를 들어 올리자 바로 폭발하여 내 손가락을 날려 버린 것일세.”

이이의 말로는 화약에 몰입한 사람이라 했는데 아주 점잖고 완곡하게 돌려 말한 것이리라.

불을 붙이지 않아도 터지는 물건을 만들었다면 이 시대의 기준으로는 폭발의 신이다.

김지가 만든 것은 일종의 폭약이며, 시대를 뛰어넘어 너무 일찍 만든 덕분에 불순물이 함유되어 처음 물건은 터지지 않고 자연발화하고 두 번째 물건은 자극을 받자 폭발했으리라.

김지는 한숨을 내쉬며 잘린 손가락을 감싸 쥐고는 말했다

“내가 사건을 저지른 이후 작금의 상왕전하께서 크게 노하셔서 질산과 수은을 섞으려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일 년에 한 번만 행하라 하신 이후 나를 군기시로 보내셨지. 생각해 보니 이게 적성에 더 맞는다네.”

예측 불가능한 폭발을 만들던 기술자는 예측 가능한 폭발을 만드는 기술자로 전직하였다. 가장 마지막에 온 사람이자 이백여 명의 화포 장인들을 통솔하는 김지의 요구사항은 무엇일까.

침을 꼴깍 삼키니 김지도 본격적인 요청을 늘어놓았다.

“자네의 행적을 들어보았는데 기준을 세우고 규칙을 만드는 일에 능숙하더군. 그러하니 군기시 전체에 동일한 척관(尺貫: 도량형)을 적용할 방법을 마련해주게.”

행적만 보아서는 더욱 거대한 화포를 만들자 하거나 더욱 폭발력이 강한 화약을 만들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상식적인 말을 해서 다행이긴 하다.

“자고로 동일한 규격의 화포를 쉬이 만들 수 있다면 화포를 더욱 많이 만들어내지 않겠나. 거포(巨砲)를 다루기 힘들면 작은 화포를 여럿 두면 된다네.”

취소! 이 사람은 폭발의 신이며 화포에 미친 사람이다.

#작가의 말

김지가 우연히 만든 물건은 뇌홍 맞습니다. 다만 현재 기술력으로는 뇌홍의 조제법을 알아도 불순물이 끼어 있어서 민감한 뇌홍이 즉시 터지거나 아예 자연적으로 발화하는 상황을 초래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들려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니트로글리세린은 미량의 불순물만 있어도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자연적으로 폭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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