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16화 (316/573)

근육조선 316화

2부 8장 9화 종친을 짓밟다(2)

본래 역사에서 세조의 손자인 월산대군의 사저인 명례궁이 위치할 장소에는 변한 역사에서 세조가 왕위에 오르지 않았기에 건물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현대인인 수양대군은 셋째 손자인 이훈(燻)을 위한 저택인 덕수정(亭)을 마련하였으나 50칸에 불과한 별로 크지 않은 집이었기에 종친의 집으로 쓰였다. 이 덕수궁의 새로운 주인은 진해대군이었다.

“보시구려!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시어 우 연희당을 성저십리 외곽으로 옮기라 하였소. 드디어 넓은 집을 새로 만들게 되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오.”

진해대군이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고 궁궐 방향으로 큰절을 올리자 다른 이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며 궁궐 방향으로 같이 절을 올렸다.

이들이 진행하게 될 연희당 공사는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으나 진해대군이라는 방패는 이를 막아주기 충분하리라.

“대군 어른의 정성과 능력을 주상전하께서도 아신 것이 분명합니다.”

“옳은 말이오. 내가 행적을 다스리느라 상가나 문루(門樓: 문과 누각, 여기서는 장식적인 요소가 들어간 정문)에는 손을 대지 못하여 솜씨를 발휘하지 못하였는데, 소문이 퍼졌나 보구려.”

이들은 덕수정 인근에 거주하는 이들의 자제였다. 덕수정은 궁궐까지 거리가 멀어 관료가 아닌 재산이 많은 이들이 모이는 장소였으니 대부분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이들의 자제들 중 재능이 있는 이들은 학업에 몰두하여 양반의 신분을 이어가며 공부에는 재능이 없는 이들이라도 머리가 좋으면 상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중간한 이들은 어디에도 나서지 못하고 다른 형제들의 뒷바라지나 하며 평생을 보내는 신세가 되었으나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어리숙하고 마음씨만 좋은 진해대군에게 빌붙은 것이다.

“대군 어른의 재능이 마침내 빛을 보았으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진해대군은 건축에 관해 소질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축에 속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건축은 대목장(大木匠: 건물을 만드는 장인)이 설계도 시공도 모두 담당하니 이런 부족한 설계도면으로 건물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나쁘지는 않은 일이었다.

왕권이 안정되고도 한참 동안 한량처럼 지내다 마흔이 다 되어 외교 사절로 활동하는 영천대군의 사례를 보면 소일거리로 삼기에 적당한 일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이 문제였다.

“부친께서 이미 연희당에 물건을 납품한 일이 있습니다. 사십 칸이 넘는 커다란 저택이니 대군 어른의 실력을 뽐낼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연희당은 공포(栱包: 처마를 길게 내밀기 위하여 만든 기둥 상부 구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익공 방식을 시험해 보심이 어떠합니까? 아니면 고주(高柱: 높은 기둥)를 섞은 오량(五梁)을 처음 설계해 보심은 어떠하신지요.”

진해대군의 성품은 유순하나 남을 의심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진해대군의 인맥을 이용하려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자 만만한 민가를 택하여 진해대군이 설계하도록 주선했다.

그가 설계한 민가는 여러 요소가 배제되고 외형만 그럴싸한 주택이 되었다.

당연히 남는 차액은 고스란히 그들의 주머니에 빨려 들어갔다. 물론 무너질 정도의 부실은 아니니 훗날에 들통 날 것이다.

대략 대규모 개보수를 시행하는 이십 년 뒤의 일이며 그때가 되면 진해대군이 추문을 당하겠지만 자신들은 다른 고장에서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진해대군은 이런 속마음을 모르는 채 들뜬 얼굴로 말하였다.

“내가 어린 시절 자선당을 고치는 유 박사의 모습을 보고 건물을 설계하는 일에 관심을 보였소. 일에 꾸준히 열중하니 마침내 궁궐은 아니더라도 저택을 설계하다니 유 박사가 보면 가슴이 뿌듯해하겠구려.”

“유 박사라 하시면 지금 공조 좌랑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현이라는 분이 아닙니까? 그분이 재주가 빼어나다 들었는데 저희도 언젠가는 그러한 분 아래에서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은 했지만 유성룡의 악명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시중에 과장된 소문이 아닌 명확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근처에도 가기 싫은 사람이었다.

듣자 하니 모든 업무에 임할 때에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 모두를 야근과 철야에 휩쓸리게 하며 업무를 되로 받아 말이 아닌 창고로 돌려주는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대문이 열리고 손님이 왔다.

“대군 어른을 뵙습니다! 세자저하가 명을 내리셔서 이번 좌·우 연희당을 보수하는 일에 대군 어른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진해대군의 아직 앳된 기가 남아 있는 얼굴이 환히 펴지고 다른 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절대 만나기 싫은 서애 유성룡이 무언가를 잔뜩 가져온 것이다.

* * *

팔 년 만에 만난 진해대군은 아직 16세의 청년이다.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지만 성품이 순진무구한 것을 숨기지 않듯이 표정 자체가 맹한 감이 있었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니고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은 것이다.

성큼성큼 걸어온 진해대군은 내 손을 맞잡았지만 나는 주변에 있는 이들을 째려보고 눈치를 주고 크게 웃으며 화답하였다.

이들이 시공했다는 민가도 취토관(염초를 모으는 관원)이라 속이고 방문해서 수법은 대충 파악했으니까.

“유 박사를 세자저하께서 보내시다니 얼마나 이 일을 중히 여기는 것이오!”

“세자저하께서 명하시기를 일을 도우라 하셨지만 저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군 어른께 필요한 것은 회령군께서 정하시고 공조의 근본이 된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요.”

“아무리 공조의 관료라 하여도 업무에 매진하지 않고 사사로이 종친을 가르쳐도 되겠소?”

“이번 업무는 열심히 직무에 임한 제게 편한 일을 주선하는 자리이니 조금의 시간은 남습니다. 세자저하께 청하여 대군 어른에게 근본을 가르치라는 허가를 받았지요.”

진해대군은 경복궁 방향으로 크게 인사를 올려 세자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였다.

이렇게 순진한 사람을 가지고 남겨 먹으려는 저놈들이 괘씸해서 못 봐주겠지만 속내를 숨기고 진해대군에게 준비한 물건들을 내밀었다.

“회령군께서는 제 선생님이시자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셨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마음에 둔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와 대군 어른이 이를 이어가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웬 오동나무요?”

“제가 대군 어른을 가르칠 방법이라 택해 보았습니다.”

이번 업무의 중점은 두 가지이다.

진해대군이 건축에 손을 놓지 않게 철저히 가르치고, 이 망할 놈들의 비리를 적발하는 것.

제법 힘든 일이지만 품셈을 일반 건축에 적용하여 산출과 감사 작업까지 마치는 현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설계를 시작한 지 석 달이 흘렀다.

처음 한 달 동안 진해대군의 의견을 수렴하고 실제 도면을 작성하여 시공자들에게 보냈으며 정기 보고를 받기로 하고 진해대군을 가르쳤다.

회령군을 비롯하여 수많은 설계자들이 있는 한양에서 진해대군을 가르친 스승은 회령군의 제자인 진 목장이라는 자였는데 기본기는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고작 기본만 배운 것으로 먹고사는 진해대군을 위해 나도 내 실력을 모조리 발휘했다.

“이러다 죽겠소! 본래 도본을 만드는 일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건축이 이리도 고통스럽단 말이오? 유 박사가 일에 매섭다 하였는데 근손실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될 지경이구려!”

“저는 근손실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가혹할 정도로 입신체비를 행하니 그럴 법하구려.”

지난 삼 개월 동안 진해대군에게 가르친 것은 건물의 근본이다.

어떤 구조로 건물이 형성되며 어떠한 부재가 존재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부재가 결합되는지에 대한 도면을 작성하고 도면을 기반으로 모형도 만들었다.

기본도면을 작성한 이후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작업과 입신체비만 반복하니 처음에는 의욕이 넘치던 진해대군도 진이 빠지며 기계적으로 도면만 작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끝없이 말로 건축에 대한 기본기를 주입하였다.

나도 첫 회사 말고 제대로 된 두 번째 회사를 다닐 때에는 기본을 완벽하게 익히자면서 정밀실측 도면을 작성하며 실력이 급상승했는데 진해대군도 마찬가지겠지.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농담을 건넸다.

“본래 창작은 고통입니다. 고통을 연속적으로 가하면 끝없는 창작이 이루어지는 법이니 고통과 창작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혹여나 여송에 다니는 서반아 사람에게 배운 것은 아니요? 듣자 하니 서역의 흉한 풍속 가운데 자신을 채찍으로 두드리며 쾌감을 느끼는 풍속도 있다 하더구려.”

나를 무슨 피학성애자로 아나! 진해대군이 할 일이 없어서 잡서만 탐독하였다 하는데 대체 뭔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혹시나 뒤틀린 종교적 광신을 자학으로 푸는 이들의 소문을 들었나?

솔직하게 말해 진해대군의 말대로 때려치우고 싶다.

학부생 시절의 기억을 되새겨 정밀 모형을 만들고, 현대에서 회사 다닐 적에 가끔 했던 정밀실측의 상세도를 작성하는 반복 작업에 익숙해져서 버티는 것이지 힘이 들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목업(木業)을 만들면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겠소. 이런 방식이 정말 효험이 있는 거요?”

“빠르고 정확하게 배우는 법입니다. 전함사에서 잠시 일할 적에 이를 도입하니 전함사 관료들은 실제 선박을 만들지 않고 목업을 만들어 선박의 구조를 이해했습니다.”

“옳은 말이구려. 내가 대목장은 아니지만 목업을 만들며 건물의 구조를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구려. 그런데 목업 위에 서까래와 기와도 올려야 하오?”

“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기둥과 도리 그리고 보 이 세 가지만 온전히 만들어도 어떤 방식인지 알아낼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이 순진무구한 진해대군이 절망하지 않고 건축에 대성하게 만들면 좋은 일이라 여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치려고 상세한 도면과 1/20 정도의 비율을 가진 모형까지 거의 다 만들었다.

지금까지 시간에 허덕이거나 실무에 치이면서 기본도와 부분상세도 몇 개만 작성한 것과 달리 건물 네 개로 구성된 연희당의 기본도와 전체 상세도를 포함한 이백여 장의 도면을 작성하였다.

물론 입신체비도 거르지 않았으니 참 좋은 일이지.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기서 도면을 조금 더 만들고 싶습니다만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제 건물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슬슬 서까래를 올리고 있겠군요.”

“조금 더 만들자는 말에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어졌었소. 정말 여기서 끝이란 말이오?”

“물론 끝입니다. 이제 대군 어른과 제가 설계한 건물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확인하여 문제가 없으면 정말로 끝이지요. 닷새 뒤에는 도리와 보를 모두 설치할 때가 되었으니 나서기 좋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에게 비리를 들킬까 염려하여 매일같이 덕수정과 현장을 오가며 일을 열심히 하던 놈들도 요즘은 긴장이 풀렸는지 닷새마다 한 번 정도 와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내가 현장에 나선다면 비리를 잡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현장에 나가지 않고 막바지에 비리를 포착하려고 계획했는데 잘된 일이지.

도면을 바탕으로 물량을 산출하고 품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진해대군에게 가르치면 내 업무도 종료된다.

세자가 염려한 대로 진해대군에게 달라붙은 유음자제들을 소탕할 수 있으며 진해대군도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몇 년 동안 배움에 몰두하겠지.

* * *

내가 담당한 좌 연희당은 공조에서 십 년 이상 일한 대목장과 중간 관리들이 지었으니 설계를 거의 다 반영하여 완벽한 건물이 되었다.

진해대군도 자신이 작성한 도면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건물을 칭찬했으니까.

문제는 우 연희당이다.

진해대군이 도착하자마자 대목장이 갑자기 인사를 올리며 차를 내오고 의자를 가져왔는데 아무리 보아도 비리를 저지른 놈들이 긴급시찰에 걸렸을 때의 모습이 아닌가.

“다른 일은 되었고 내가 설계한 건물이 제대로 지어졌는지 궁금하구려.”

“이렇게 갑자기 당도하실 줄은 몰랐는데 지금 현장에 못이 널려있고 진흙과 잡목이 뒤엉켜 옷이 더럽혀질 일이 염려됩니다.”

“이미 다른 연희당도 다녀왔는데 옷이 더럽혀질 게 무엇이 있겠소. 정 여의치 않으면 옷을 헌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진흙이라 하는 데서 이미 촉이 왔다. 공사가 빨리 진척되었다 속이고 대충 만든 지붕 위에 기와를 뒤덮어 아예 보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해대군은 건물을 보자 의문을 표시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려. 공조에 속한 대목장보다 더욱 빠르게 건물을 완공하였단 말이오? 듣자 하니 닷새 전에 서까래를 올리기 시작하였는데 서까래를 이리 빨리 올리오?”

“저희가 손이 조금 빠른지라…….”

지붕 위에 올라온 진해대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맨 위에 올라온 서까래의 크기는 한눈에 보아도 우리가 규정한 영조척으로 지름 다섯 치(지름 약 15㎝)에 미치지 못하였다.

서까래는 이중으로 구성되어있다. 건물 안에 보이지 않는 단연과 건물 외부로 노출된 장연(長椽)인데 얼마나 남겨 먹으려 했는지 단연은 지름 네 치요, 장연은 지름 다섯 치를 지킨 것이다. 문제는 이거 하나가 아니었다.

“분명 도본에는 산자이음(잔가지를 엮어 서까래 위를 덮음)을 행하지 않고 목판으로 덮으라 하였는데 왜 개판 절반이고 산자도 절반이오?”

“산자가 차고 넘치며 목판이 부족하여 방도가 없었습니다.”

“습기가 스미면 곤란한 상부에 개판을 시공하고 보수하기 쉬운 하부 서까래에 산자를 엮는 일이 당연하지 않소! 애초에 여유가 있었는데 목판을 더 가져오면 될 일이 아니겠소!”

아주 남겨 먹으려고 작정을 했었네. 진해대군이 어마어마한 배신감으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지붕 아래로 내려가자 내 차례가 찾아왔다.

하나하나 뜯어보려고 대목장과 진해대군과 어울린 놈들을 지붕 위로 집결시켰다.

“서까래를 엮을 적에 긴 못으로 도리에 박아두라 하였는데 연침(서까래를 끈이나 나뭇가지로 엮음)으로 마무리하였구려. 혹여나 망치가 부족하셨소?”

못도 남겨 먹어서 아예 도끼를 가져와서 서까래를 뜯어냈는데 서까래 아래의 목재 상황은 더 가관이다.

아예 금이 간 목재를 구리 조각으로 보강해서 엮어두었는데 이렇게 두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당연히 좋은 재목 하나를 날로 먹은 것이다.

“목재에 금이 갔을 경우에는 필히 보고를 올리라 하였는데 내가 보고를 들은 적이 없었소. 대체 얼마나 남겨 먹은 것이오!”

목조건축의 비리에 대해서는 완벽히 알고 있으니 내 도끼는 쉴 새 없이 내리 찍히며 온갖 장소를 박살 냈다.

주심도리도 없고 서까래도 대충 만들고 대들보도 보이지 않는 장소의 녀석은 설계보다 작고.

신고를 받은 포졸이 출두하여 대목장을 비롯한 이들을 체포하여 호송하였다.

적막함이 남은 공사장에는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잡부와 하급관료만 남아 우리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진해대군이 이를 부득부득 갈다 입을 열었다.

“좌 연희당은 멀쩡하였는데 우 연희당은 어찌하여 이리 변했는지 알고 계시오?”

“대군 어른은 사람을 너무 믿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믿더라도 이 사람이 언제라도 변모할 수 있다 여겨 근본을 만들기 위해 품셈을 작성하고 내역을 산출하여 장계를 추가로 작성하지요.”

진해대군이 좌절하지 않게 어르고 달래느라 한참을 애쓴 덕분에 천만 다행히도 오 년 이상 건축에 대해 배우고 나에게 시험을 받은 뒤에야 다시 설계자의 길을 걷기로 하였다.

문제는 일을 좋게 해결하고 나서 벌어진 것이다.

공사장에 남아 있던 잡부와 하급관료들은 일의 전말에 대해 모르고 있기에 이상한 소문이 궁궐에 퍼졌다.

“저기 보게. 유 좌랑 저 사람은 대군 어른이 설계한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도끼로 때려 부숴 버렸다네. 세상에 스승을 자처한 자였는데 저리 매섭다니.”

“업무에 미친 괴물인 줄 알았는데 가르치는 손길도 매섭군. 저런 이와 업무를 함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설명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세자의 밀명을 누출하는 꼴이요.

차기 임금과 내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드러내는 초대형 자폭이 아니겠는가.

결국 나는 진해대군에게 모멸감을 준 일에서는 종친도 짓밟는 미친놈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작가의 말

저런 소문이 퍼진 이유는 현장 인부들이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명령만 받고 열심히 일했는데 갑자기 현장에 들이닥친 사람이 도끼질로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만든 건물을 박살 내면 뭐로 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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