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14화
2부 8장 7화 이미 정해진 비리
공사에 돌입한 지 넉 달이 지나 명나라에서 보낸 인부들도 원산 일대에 도착하였다.
어떠한 이들을 보냈는지 궁금했는데 금속세공이나 장식을 만드는 이들과 옻칠 장인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목수를 보낼 것이라 여긴 전함사에서도 이들의 정체를 알고 골머리를 썩이다가 대처법을 찾아냈다.
배에 설치될 화포가 화려하게 장식된 선박과 어울릴 수 있도록 장식을 새기는 일이다. 이들을 통솔하는 조선 관리들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함선명이 보선(寶船)도 아니고 금선(金船)이라 칭해야겠군. 포대에 은을 상감(象嵌)하고 포가를 장식하면 아주 휘황찬란하겠군.”
“화포에 금을 칠한다고 더 멀리 나가면 누구라도 금을 칠했을 것이 아닌가! 십 리 밖에서도 예순 개의 포문이 휘황찬란하게 빛날 것이니 노려 쏘기 아주 좋을 것일세.”
한 척에 설치될 화포만 60문에 달하며 갑판에 증설할 화포를 포함하면 총 400문에 달하는 화포이다.
여기에 죄다 상감작업을 하다니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없지만, 조선의 돈을 쓰지 않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배를 장식하려고 명나라와 조선 심지어 일본 일대의 옻을 죄다 사들이는 짓을 하면서 목수를 보내지 않는다니…….
그래도 물주인 명나라를 이해하려고 스스로를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하긴 기술을 빼내려면 십 년은 배워야지.”
“더 좋은 방법도 있습니다. 기술자를 사들이는 것이지요.”
뭐라 중얼거리고 있자니 볕에 온몸이 그을려 시커멓게 변한 노인이 한 마디를 보탰다.
듣자 하니 이번 공사는 기한이 3년으로 정해져 있고 실질적으로 항해법을 익혀야 하니 2년의 기한을 두었다던가.
덕분에 일손이 부족하여 조선 각지의 조선공들을 불러들였고 이들 모두가 충분한 급료를 받고 원산의 신규 조선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인은 짜증을 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부 가운데 이 할은 명국으로 건너가 팔자를 펼 마음을 먹고 원산에 왔을 것입니다. 이미 명국에 고용된 이들이 수십 명은 되니까요.”
“수십 명의 조선공들이 명국으로 이주했다는 말이오?”
“급료가 높거나 기술이 뛰어나 군선을 만드는 이들은 이주하지 않았지만 상선을 만드는 이들은 많이 이주하였지요.”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액수를 지급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법 아니겠소.”
아마 전함사의 관료들을 제외하면 은자 일천 냥 정도를 제공한다 말하면 즉시 가족과 함께 남경으로 이주해 배를 만들 것이다.
내 말을 듣자 노인은 다 빠져가는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고는 말하였다.
“그렇지요. 하지만 이주하여도 기본적인 기술이 부족하여 상단의 아래에서 일하며 쓰일 상선이나 만들지만 편한 일을 하며 보수를 많이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하면 얼마나 큰 배를 만들고 있소?”
“잘해야 이천 료(배수량 280톤) 정도가 한계이지요. 기본적인 기술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명국에는 목재가 부족하다 합니다. 우리야 경원이나 대양도에서 목재를 가져오니 편하지만 언젠가는 동나지 않겠습니까.”
쉬는 시간도 잠시, 다시 종이 울리고 인부들이 손을 털면서 배로 달라붙었다.
대체 명나라 조정에서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은자 일백만 냥을 보내며 배 여섯 척 아니 일곱 척을 만들라 하였다.
“용골에 흠을 냈으니까 끼울 준비해! 녹로(크레인) 돌려!”
“육 번 늑골 올려! 최 목장 그건 칠 번 늑골이야! 글자가 안 보이냐!”
본래 조선에는 없을 고정식 목재 크레인이 바삐 움직이며 늑골을 올렸고 인부들은 방향을 맞추어 용골에 접합시켰다.
하지만 이미 늑골이 접합된 구간에서는 다음 작업이 계속되었다.
“판재! 판재 더 없어? 미리 다 만들어 뒀다 했지 않았는가! 이놈의 순차건조인지 뭔지는 더럽게 복잡하구만!”
“판재를 지금 켜고 있으니 삼 번 용골의 작업을 보강해 주게! 판자를 나비장으로 이어갈 곳이 차고 넘쳐!”
“배는 십 년이나 쓰면 족한데 왜 목재에 촉을 넣고 나비장으로 다시 이어가는지 모르겠네.”
인부들이 푸념을 하여도 작업속도는 2할 가까이 올라갔다.
충분한 고려 없이 도입하였지만 이 순차건조(循次建造)라 명명된 새로운 건조방식의 효율성은 대단하였다. 내가 서류를 수정하고 있으니 유 제조가 다가와 슬쩍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두 번 일하는 꼴이 날까 염려하였는데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군.”
“저는 죽겠습니다. 당장 판재를 켜는 이들의 속도가 느리니 이십 명은 더 충원해야겠군요.”
“일이 한 번 한다고 되던가? 그나저나 가장 먼저 건조될 선박은 여섯 달 만에 만들어낼 수 있겠어. 화포도 없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견본 선박이지만 비용만 구만 냥이 소모되다니.”
“제가 계산해 보니 조금 가격이 내려 팔만 사천 냥 정도가 나올 겁니다.”
유 제조는 내가 계속 수정 중인 서류를 받아서 살펴보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형태가 만들어진 선박이니 내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여섯 척을 주문하였지만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한 척을 추가로 요청하였다.
아무 장식도 없고 순수한 선체와 기본 구조물만 갖춘 견본 선박이었다.
견본 선박으로 먼저 선원을 육성하며 구조를 분석하여 수리할 때 사용한다 하였던가.
처음에는 기술 유출이라 여겼지만 유 제조는 염려하는 이들에게 딱 잘라 말하였다.
‘자네들은 사자소학을 익히는 이들이 입신체비서를 독파할 수 있다 여기는가?’
명나라와의 기술격차가 너무 심하여 분석은커녕 모든 기술자가 모여도 제공한 선박을 그대로 본떠 만드는 것이 한계라 하였다.
하지만 완성되는 선박의 모습을 보자 다시 유 제조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좋게 봐도 쓸모가 없기는 매한가지야. 유 제조는 저 선박의 문제점이 뭐라 생각하는가?”
명나라에서 사용할 팔천 료(배수량 1,120톤) 급 함선은 내가 도면을 작성했다가 두고두고 욕을 먹은 삼층 갑판, 정확히는 이층 포갑판을 사용한 거대 함선을 기반으로 하였다.
본래는 단층 포갑판을 사용하여 안정성을 추구하려 하였지만 화포의 수를 두 배로 정한 명나라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계를 변경했다던가.
나도 배운 지식을 동원하여 답하였다.
“글쎄요…… 화포를 이층 갑판에 두 줄을 장착하여 균형이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하철(밸러스트)을 잔뜩 넣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자네는 맹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저하철을 잔뜩 넣으면 배가 아래로 가라앉고 흘수선(배가 잠기는 선)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겠지. 그러하면 아래의 포갑판을 사용할 방법이 있는가?”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잔잔한 바다라면 모를까 거친 원양에 나가면 하부 포갑판에 쉴 새 없이 물이 들어와 화포가 모조리 젖어버리리라.
유 제조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저하철을 많이 넣으면 육십 문의 화포 가운데 반을 활용하지 못할 것이며 걷는 것과 흡사한 속도가 나겠지. 반대로 저하철을 적게 넣으면 숙련된 수부들도 조함이 난해할 것이네.”
“그러하면 전투력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배가 거대하니 해적들은 손을 쓸 방법이 없을 것이네. 하지만 제대로 된 군선과 화포로 대결할 적에는 실질적으로는 속도가 느리고 체급이 큰 대신 화력도 대등하니 순방선 한 척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겠지.”
돈을 이렇게 퍼부은 함선이 조선에서는 40척을 넘게 굴리고 계속 수를 늘릴 순방선과 대등한 전투력이라니.
그래도 거대한 선체인지라 절반 조금 넘게 완성한 배의 모습은 위엄이 넘쳤다.
일반 상선 용적의 8배에 달하니 높이도, 길이도 폭도 두 배가 큰 녀석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어린아이와 입신체비사의 체격 차이이리라.
하지만 유 제조는 실패작을 만들어 기분이 영 좋지 않았는지 한숨을 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무렴. 명국의 상대는 기껏해야 해구(海寇)들이니 저런 함선이 전투에 나서는 일도 없을 것이니 안심하여도 좋을 것이네. 그나저나 첫 배를 저렇게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다음 배부터는 조금씩 개수해 나가야겠지.”
“그러하면 명국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습니까? 동일한 선박을 보내는 것이니 차츰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서 의심할 것이 아닙니까?”
“나는 분명히 이러한 문제를 장계에 적어 올렸다네. 하지만 명국에서는 속도가 느리고 조향도 힘들며 거친 바다에서 화력이 줄어드는 배라도 위용이 넘치면 상관이 없다 하였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그나마 현실적인 답을 내자면 저 거대한 선박을 대장선으로 두어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일이 전부이다.
실질적인 전투는 소형 전투함을 동원하는 것이 명나라의 전투 방침이리라.
해가 저물어 숙소로 돌아가 오늘의 입신체비를 하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유 좌랑님. 여해라는 분이 찾아오셨는데 술이나 한잔하자 하였습니다.”
“여해? 당장 나갈 것이니 잠시 기다리라 하게!”
이순신의 임기가 끝났다!
내가 도움을 주었으니 얼마나 편하게 지냈을지 궁금한데 일단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이니 간단히 세수만 해서 땀을 식히고 성큼성큼 달려갔다.
“자네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인가?”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 할 일을 많이 하였을 뿐이네.”
청년의 모습이 남은 이순신이 아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얼굴이 폭삭 늙어버려 나보다 더 삭은 것 같았다.
심지어 부장으로 이순신을 따라온 고란은 나를 보자 울먹거리며 다가서려다 이순신의 눈치를 보았다.
“머나먼 율도에서 고생이 많았던 것 같군. 머나먼 원산인지라 많은 물산은 없지만 미주(美酒)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아닐세. 자네는 잠시 고 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게나. 내가 생각이 짧아 포구에다 좋은 술을 두고 온 것을 지금 떠올렸군.”
이순신이 서둘러 사라지자 고란과 악수를 나누려 하였다.
하지만 고란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엉금엉금 기어와 징그럽게 내 허리를 부여잡고 엉엉 울어댔다.
“현감님! 아니 좌랑님! 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대체 저 사람은 간이 쇳덩어리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뱃가죽을 뚫고 나오는 간을 칼날로 수천 번 도려낸 사람입니까! 제 명줄이 이십 년은 줄어들었습니다!”
“진정하게!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가!”
“거대한 유빙이 넘쳐나는 빙해(오호츠크 해)를 스무 번이나 오갔습니다! 저게 사람입니까? 심지어…… 심지어……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성난 표범을 보아도 달려들고 반달곰이 덤벼도 간을 보다가 두개골을 도끼로 박살 내는 고란이 이렇게 겁에 질린 이유가 뭘까.
대체 이순신이 뭘 했단 말인가?
“진정하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그토록 담대한 사람이 어찌 이렇게 변했나?”
“제가 잘못할 때마다, 아니 모든 이들이 실수를 저지르면 입신체비를 시행하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이 부족하여 부하를 통솔하지 못하였다고 같이 입신체비를 행하였지요!”
아무리 하급 군관이라도 장수가 병졸들의 잘못을 책임진다고 병졸들과 함께 입신체비를 시행하면 다른 이들이 뭐라 보겠는가?
군관은 이순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주변 군관들과 병졸들은 잘못을 저지른 이를 책망할 것이다.
고란의 털털한 성격으로 짐작하면 몇 번 당한 이후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했어야 하리라.
그런데 이놈 공부는 했나?
“그런 성격일 줄은 몰랐다네. 하지만 자네가 학식을 익혀 훈련원 초모나 무과에 응시하였다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인데 어찌하여 하지 않았는가?”
“말씀 잘하셨습니다! 장구를 정비하고 훈련에 매진하며 간혹 빙해에 다녀온 이후에는 휴가를 주었지만 단박에 배를 박살 낼 유빙 사이를 오가니 정신이 혼미하여 술을 마셨습니다!”
“만도(滿都-고란의 호) 자네는 엄살이 너무 심하다네. 나는 돌아온 이후에도 밤늦게까지 병서를 읽는데 어찌하여 나의 절반도 하지 못한단 말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이순신과 눈이 마주친 고란은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지금 이순신이 자신의 절반만 하라는 소리를 했는데 그거 보통 사람이 할 일이 절대 아니다.
솔직하게 나도 유성룡의 두뇌를 가져서 이순신과 대등하다 여길 뿐이지 현대인 그대로 왔다면 이순신의 사분의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허탈한 웃음을 지은 이순신은 간단한 소반에 술과 안주를 놓고 나에게 한 잔을 따라 주었다.
“서애 자네는 누가 보아도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일세. 이런 머나먼 출장지에 와서도 입신체비를 행하니 몸에 열기가 느껴질 지경이 아닌가. 나도 피곤한 날에는 입신체비를 하지 못하였는데.”
“혹여나 병졸들에게 입신체비로 징계를 내린 이후 같이 입신체비를 하였던 날인가?”
“어떻게 알았나? 징계는 징계이고 입신체비는 입신체비이지.”
원리원칙에 철저한 이순신다운 태도였다.
잘못하면 몸이 망가질지도 모르지만 입신체비는 한 부위를 반복하여 할 수 있으니 부위를 바꾸면 그만이었다.
술이 오가고 취기가 오른 이순신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서애 자네가 부럽다네. 출장을 나와도 한결같으며 매번 중책(重責)을 담당하여도 태도가 변함이 없다 하였지. 더군다나 근손실이 일어나지도 않다니.”
“연유가 따로 있지 않다네. 그저 집에서 평안히 지내고 싶으니 열심히 할 뿐이지.”
집의 후원이 이이의 집과 연결되어 있으니 당연하지! 정시퇴근? 하자마자 이이는 내 몸을 평가하면서 어느 부위의 근육을 기르자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대놓고 야근을 하며 집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다.
아내와 자식들도 기다리는데 이이도 내 몸을 확인하며 인사권한을 소유한 이조 관원의 지위를 활용해 버린다!
얼마 전에 몸을 좀 게을리 관리하여 군살이 생기고 가벼운 몸살이 일어났는데 갑자기 이틀간의 휴가를 받고 야근을 금지당했다.
정시에 퇴근하니 진안군과 이이가 신나게 입신체비를 하자 권했고 나는 다음 날 일어서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이니 지금도 최소한의 몸 관리가 아닌 완벽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입신체비에 몰두한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니 칭찬을 늘어놓았다.
“자네는 일을 입신체비 하듯 행하고 입신체비를 맹렬히 행하니 분명 정승의 자리에 오를 것이네. 내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자네의 덕을 보아 장수가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헛웃음이 나와서 말을 이어가지도 못하고 술을 채워 건배를 하였다.
이렇게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달의 출장을 더 한 뒤에는 제도가 정립되어서 전함사 관원들이 나 없이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공조에 돌아가기 무섭게 세자가 동궁으로 나를 호출하였다.
#작가의 말
만력제가 어린 시절 주문한 보선, 아니, 금선은 바사호와 스페인 갤리온의 단점을 합친 배입니다.
기동성을 발휘하려고 밸러스트를 적게 넣으면 무게 중심이 위로 솟구쳐 기동이 극히 힘들어지며, 밸러스트를 많이 넣으면 파도가 거셀 경우 하부 화포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거정은 그런 배도 좋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