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12화
2부 8장 5화 전함사
전함사에 출근하여 도면을 만들고 선박을 분해해서 다시 상세 도면을 만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석 달이 흘렀고 입수한 최신식 갤리온을 모조리 분해하고 도면을 모조리 그려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되었어. 유 좌랑 자네의 도움이 아주 컸다네.”
“전함사의 힘이 아니라면 제가 어찌 상세한 도본을 작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상상한 것과 실제 선박의 구조는 천지 차이였으니 아예 학문을 새로 배우는 수준이다. 사실 석 달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선박을 만드는 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이 재능만 하여도 대단하게 여겼는지 전함사 관원들은 나에게 대놓고 권유를 하였다.
“본래 배를 만드는 일은 이십 년이 지나야 가까스로 기본을 알 수 있다네. 십 년을 작은 배를 만들며 기술을 키우다 다시 도제(徒弟)로 돌아와 십 년을 큰 배를 만들어야 하지. 자네는 오성(悟性: 학문을 배우는 능력)이 빼어나니 이 기한을 단축시킬 수 있다네.”
이 양반들의 태도와 내가 어림짐작한 학습속도를 감안해 보면 십 년은 걸려야 배를 설계할 짬이 되리라.
이 재능을 배 설계에 썩히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제가 너무 멀고 험난한 길을 단순히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나이에 처음부터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면 불혹(40세)은 되어야 성과가 날 것이지요.”
“아쉬운 일이네. 이제 도본을 완성하였으니 도본대로 새로 만들도록 하세. 나는 자네가 전함사에 투신할 줄 알았는데 싫다면 도리가 없지.”
다시 석 달이 흘러 어느덧 1569년 5월이 되었고 연호가 융경에서 만력으로 탈바꿈하였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만력제가 무능한 황제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드디어 만력제가 집권하는 시대가 되었다.
“만력제라? 황상이 삼 년마다 바뀌니 관직보다 빨리 바뀌는 황제라니요.”
“듣자 하니 올해 일곱 살에 불과한 황제라 하고, 전 황제인 융경제는 정무에 몰두하고 방사(房事)에도 몰두하다 변을 당했다더군. 명국에는 정력제도 많다 하던데 어찌…….”
명나라의 몰골을 보니 정력제의 정체가 수은이라서 급사한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인 가정제가 납으로 만든 화장품을 바르고 수은으로 만든 환약을 먹고도 오래 살았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체질을 이어받지 못했나 보다.
이젠 업무도 어느 정도 안정 상태에 접어들었다.
배를 새로 조립한다는 말은 도면 작성이 거의 다 끝났다는 뜻이요, 지난 석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목수들이 설계변경을 요구할 때에 이를 반영하는 것이 전부였다.
공조에서는 모든 일이 끝나고 장계까지 올려야 돌아오라고 했으니 나도 전함사를 은근슬쩍 개선하려 하였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현대의 크리틱(비평, 서로의 작품을 비교 분석함) 제도와 회령군이 창안하였다 전하는 도면 작성법을 퍼뜨렸다.
지식이 부족하니 내가 만든 배는 크기만 키워 바다 위에 떠다니는 관이라면서 대판 욕을 먹었지만 효과는 확실하였다.
경험과 사제관계로 얽힌 장인들에게 새로운 유행이 생긴 것이니 오늘도 가장 먼저 나서서 도면을 걸고는 말하였다.
“오늘의 도본은 이 녀석입니다. 판옥…… 아니, 평전선의 상부에 목판을 덧대면 적의 화살을 막아낼 수 있으니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쓸데없이 선체에 공을 들이지 않고 위에 덧대었군. 어디 한번 보세나.”
전함사 관료들은 발탁되기 이전에 포구에서 최소 십 년 이상 배를 만들었으니 이십 년 이상 경력의 전문가들이니 참으로 냉정하고 잔혹한 평가를 내렸다. 사실상의 최고책임자인 유 제조(提調)는 내 도면을 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실제로 쓰일 수는 있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함선이로군. 자네 판옥선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평전선이라는 단어 대신 내가 붙인 판옥선이라는 별칭이 쓰이고 있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지만 평가는 냉정해야지.
여하튼 약점이라 하니 단번에 대답하였다.
“지나치게 크기를 늘린 덕분에 흘수선(吃水線: 선체가 물에 잠기는 선)이 깊지 않아 선박이 쉽게 기울어진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포구에서 배를 내보낼 때 어려움을 겪지요.”
“그래도 배운 것이 있으니 다행이군. 판옥선이 처음 만들어질 적에는 기껏해야 일천 료(배수량 140톤) 정도의 작은 함선이었네. 다루기도 쉽고 흘수선도 깊어서 요긴하게 쓰이는 배였지. 그런데 절제사 영감이 크기를 계속 키우자 말하였다네.”
지금의 판옥선은 조선시대에 사용한 물건이 아니다. 판옥선은 계속 개수되고 크기가 증가하여 배수량 150톤 선박 무게 80톤 내외의 녀석이 임진왜란 당시 표준이요, 조선 말엽에는 배수량 300톤 선박 무게 150톤 내외가 표준이라 하였다.
하지만 정걸이 개조를 거듭한 판옥선은 2,500료, 배수량으로 따지면 350톤으로 조선 후기의 판옥선을 능가한 크기이다.
이렇게 커진 이유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체격이 너무 크시니 배 아래에서 몸을 다루기 힘들어서 크기를 계속 키우신 것이 아닙니까.”
“실제로는 수부(水夫)들이나 화포를 다루는 이들이 몸을 놀리기 쉬운 높이로 키워 화포를 놀리기 쉽게 만들 목적이었지. 부수적으로 왜구들이 쏘는 총이나 화살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지만 배를 다루기는 힘들어졌지.”
판옥선에 탑승해 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격꾼(노를 담당한 잡부)들이 전속력으로 움직이면 빠르지만 배의 방향을 전환하면 전복될 염려가 있다더라.
지나치게 크기를 키워 조향이 힘들고, 평저선과 갤리선(노를 젓는 배)의 한계 때문에 외양으로는 나가지 못하지만 화력이 월등한 선박이 판옥선이다.
그렇다면 거북선의 평가는 어떨까?
“자네가 표현한 대로 위에 목판을 덧대고 다시 얇은 철판을 붙이면 왜구를 상대로 무적이나 다름없는 선박이 될 것이네. 하지만 조향이 지나치게 힘들어질 것 같군.”
“사용하지 못하는 선박이란 말씀이십니까?”
“지극히 단련된 수부와 격꾼이면 배를 다룰 수 있을 것이요. 결정적으로 이들을 통솔하여 선박이 위태롭지 않게 완전히 선박에 대해 이해한 장수가 필요하지.”
예상대로 이순신 같은 장수가 아니면 다루지 못하는 물건이 이 시대의 거북선이다. 그냥 함대를 더욱 많이 만들어서 거북선이 필요 없는 강력한 함대를 만들면 될 것이다.
전함사 관료들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쓸 만한 물건을 가져왔군. 만약 왜구들이 지나치게 성할 일이 벌어지면 판옥선에 상판을 덧대 최전선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물건을 창안하지 않았는가.”
“제가 뭐라 하였습니까? 유 좌랑이 처음 가져온 팔천 료(배수량 1,120톤)의 거함보다는 좋지만 여전히 균형을 모릅니다. 저 친구가 함선의 균형을 이해하려면 삼 년은 걸린다니까요.”
“그것도 계속 만들어보아야 삼 년이지, 실지로는 오 년은 걸릴 것이네. 자네가 십 년 걸린 것과는 천양지차이지.”
전함사 관료들은 어느새 서로를 돌아보며 도면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린 대충 형태만 맞춘 도면이 아닌 회령군에게 배운(실제로는 내가 정립한) 도면을 전파하니 전함사도 차츰 변해가기 시작했다.
개중 오십이 넘은 장인이 도면을 펼치자 모두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계획도면으로는 쓸 수 있는 녀석인데 형태가 특이했다.
“이번에는 예전에 남명 대감께서 미주 관찰사로 계실 적에 요청한 선박입니다. 장계를 빨리 전송해야 하니 대양(태평양)을 왕복 오십 일 이내에 주파할 배를 만들라 하셨죠.”
“그래서 이런 꽁치처럼 생긴 배를 창안했단 말인가? 짐은 얼마나 올릴 수 있겠던가?”
도면을 보니 대체 무슨 배인지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정말 꽁치처럼 생겨서 선체의 세장(細長: 가는 면과 긴 면의 비례)비가 1:7에 달하였고 돛대가 네 개나 있었으니까.
당연히 언쟁이 시작되었다.
“제 생각으로는 구풍(颶風: 태풍)에 휩쓸리지만 않으면 충분히 됩니다!”
“배를 꺾을 적에도 되던가? 더군다나 이런 배를 만들려면 재목은 어디서 구하는가!”
“금봉치목(역기봉을 이용한 클립건조)을 행한 활엽수면 충분히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귀한 목재를 사용한다고? 자네는 예산이 남아도는 줄 아는가?”
한 달 가까이 경험한 일이라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 시대의 함선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보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를 개수하며 막대한 예산을 소모한다.
하지만 나도 건축과에 다니며 배운 사실이 있다. 정밀한 부분모형을 만든 사례는 중세이지만 완벽한 전체 모형을 만든 첫 사례는 18세기 영국 해군이라고.
그러니 더욱 일찍 전체 모형을 통한 선박 연구를 도입하려 하였다.
“제가 서반아의 선박의 도면을 온전히 그려둔 결과 이런 물건을 만들어 보았는데 앞으로는 언쟁을 벌일 때에 이걸 사용함이 어떻겠습니까?”
보름 동안 필사적으로 작업한 갈레온 모형을 가져오니 관료들의 눈이 커졌다.
아직 완성품은 아니지만 비율은 1/30을 지켜서 길이만 석 자가 넘는 거대한 모형이었다.
“보름 동안 하루 두 시진을 투자하니 만들 수 있더군요. 내부 부품들은 만들지 못하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게 목업입니다.”
“목업(木業)이라고?”
실수로 현대어인 목업(Mock up)이라 말했는데 한자로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영국 해군에서 설계도를 완벽히 재현한 모형을 만들어 물에 띄워 시험해보고 다시 설계를 변경하기를 반복하였으니까.
장인들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모형을 만져보면서 도면을 보았다.
“어쩐지 입신체비도 적당히 하며 일에 몰두하더니 자네는 일을 만드는데 소질이 있어.”
“일을 만들 줄 알면 줄이는 데도 소질이 있지 않습니까. 생각하여 보니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기 전에 도본을 바탕으로 한 목업을 만들어 시험해 보면 문제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업이라는 물건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기껏해야 큰 오차가 아니면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네. 여기에 화포나 저하철(밸러스트)을 얹어 사용하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한 큰 오차만 수정하여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듣자 하니 십 년 전에도 신형 함선을 진수하다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고는 막을 수 있겠지요.”
처음에는 서로 헛기침을 하던 장인들도 도면과 모형을 번갈아가며 보더니 눈을 빛내며 가공하기 쉬운 오동나무를 한아름씩 들고 작업실로 향하였다.
어느새 한 달이 지나자 선박 진수식이 다가왔음에도 장인들은 밤을 새워 모형을 만들었는데 이미 돛마저 완성한 녀석이라 완성도는 나와 비교할 수 없었다.
한 장인은 자신의 모형을 물에 띄우더니 부채로 마구 바람을 만들며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디가 꽁치 같은 배이며 어찌하여 측풍을 견디지 못합니까!”
“웃기는 소리 하고 있군! 해류가 측면으로 흐르는 것을 감안하지 못하였나!”
유 제조는 장인이 만든 배에 부채로 바람을 만들며 물을 손으로 휘저어 해류마저도 만들었고 배는 삽시간에 옆으로 기울어 침몰하였다.
좌절하는 장인의 배가 물에서 건져지니 다시 다음 배가 얹히고 언쟁이 계속되었다.
“진수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체 뭘 하고 계십니까!”
“의복을 정돈하고 금방 나가도록 하겠네! 유 좌랑 자네는 이제 공조로 돌아가도 될 것이네. 배를 모는 방법을 익히려면 시일이 일 년은 걸리겠지만 자네의 업무는 끝났네.”
천성이 장인들이라 새로운 방식을 전파하니 바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업무를 줄인다며 새로운 폭탄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내 일은 아니지.
* * *
북경에 다녀오는 정기 사신의 대표인 정사(正使)는 정2품 관료 가운데 선발하여 보냈다.
하지만 경조사나 특별한 업무에 대한 보고에는 언제나 왕제(王弟)나 가까운 종친을 보냈으니 이는 세종대왕 시절부터 내려온 전례였다.
“황상께 조선의 왕제인 이숭이 삼가 사죄의 말씀을 올리옵니다. 번국(藩國)으로서 소임을 충실히 행하였다면 불민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였사옵니다.”
“그러한 공치사는 되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여 보았지 아니 될 일이니 앞으로의 일을 논할 자리이니 염려하지 말라.”
일곱 살에 불과하여 젖살이 빠지지도 않고 어린아이에 불과한 만력제의 입에서 조선의 말이 흘러나오니 영천대군은 다시금 깊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새 황상이 어려도 영민한 모습이 돋보인다 하였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짐이 아직 어린지라 정무에 대한 일은 많이 모르고 있노라. 다만 조선에서 전해진 문물과 방식이 상국(上國)을 이롭게 하니 참으로 마땅한 일이니 청이 있구나.”
“청이라 하셨습니까? 감당하기 힘든 황명이 아니라면 번국으로서 마땅히 행할 것입니다.”
어린 황제를 대신해 권력을 휘두르는 고공과 그와 협력한 장거정은 세금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조선에서 토지를 측량할 때 사용한 평판측량기를 수입하여 토지제도를 정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만력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군사의 이야기였다.
“이미 조선에서 병사를 조련하는 법을 익힌 척계광은 육주(큐슈 남부)에 들끓는 왜구들을 도륙하고 변방을 통솔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훌륭한 일이다. 다만 아쉬운 일이 함선이 빈약하다는 점 하나이지. 그러하니 조선에서 함선을 만들고 싶구나.”
영천대군은 고개를 들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조선에서 전해진 함선 제조법은 알음알음 중국에도 영향을 끼쳐 명나라 상인들은 이미 천축까지 교역로를 뚫고 있었다.
다만 기술이 부족해 일천 료, 배수량 140톤 내외의 함선을 주로 사용하며 크기가 작으니 전투력도 부족하여 간혹 해적으로 돌변하는 서양 선박에 습격당하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자 외통수에 몰려 버렸다.
“물론 상국으로서의 위엄을 보일 것이다. 일천 명의 인부를 보내 일손을 도울 것이며 모든 비용을 제공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예전 영종(정통제의 시호)께서 보총을 들여올 적의 전례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황상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영천대군을 비롯한 사신들은 고개를 숙였지만 어린 황제의 머리에서 나올 생각은 아니었다.
일천 명의 인부를 보낸다면 그 인부들이 선박 제조법을 익힐 것이며, 조만간 중국에서는 무수한 함선을 쏟아낼 여력이 생길 것이다.
분명 고공이나 장거정 같은 명나라의 충신들이 내놓은 의견이지만 거절할 명분이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규모를 줄이거나 핵심기술을 넘기지 않는 방법만이 해결책일 뿐이었다.
“일전에 성조(영락제의 시호)께서 행하신 일이니 어렵지는 않을 것이니 일만 료(배수량 1,400톤) 급의 보선(寶船)을 여섯 대 만들도록 하여라. 백오십 년 전에도 행한 일이 아닌가.”
조선의 관료들은 예의가 아니지만 서로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수양대군의 기록이 틀리지 않다면 보선이라는 배는 기껏해야 육천 료(배수량 840톤)를 넘어서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에 남은 과제는 정말 명나라가 원한 배를 만들 수 있는지 기술을 확인하고 협상을 통해 이를 줄여 나가는 것이 유일한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