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311화
2부 8장 4화 갤리온
이름이 로케라라고 한 관료의 이야기를 다 들었지만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하지만 상대는 껄껄 웃으며 당시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두 번째 지휘관은 걸물이었지만 부하들이 잡졸이라 어떠한 명령도 이행하지 못하였습니다. 테르시오인지 뭔지 하는 병사들이었다면 우리가 패퇴했을 것이라 하지만 만약의 이야기지요.”
“어디에 있던 훌륭한 이는 있는 법이오. 그나저나 그놈의 이교(異敎)라는 소리는 왜 했는지 궁금하구려. 내가 듣기로는 솔로몬의 종교와 서반아의 종교는 뿌리가 같다 들었는데.”
솔로몬이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최소한 구약성경에 바탕을 둔 종교가 국교임은 확실하였다.
최 참의의 질문을 듣자 로케라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말하였다.
“아국과 서반아가 본격적으로 접촉한 것은 이십사 년 전(1544년)의 일입니다. 당시에 한창 해안가를 점령한 회회교(이슬람교) 세력을 몰아내던 차에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소? 하면 서로 도움을 얻은 동맹이 아니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상륙한 서반아인이 십자가를 보더니 전설 속의 사제왕의 군대가 살아 있었다고 하며 칭송을 늘어놓더군요. 그리하여 이들을 영접하고 수도에서 공식적인 외교를 실시하였지요.”
한창 전쟁을 치르는 나라에서 이방인에게 수도를 보여줬다는 말은 단순한 신뢰가 아닌 혈맹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로케라는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매만지면서 말하였다.
“모든 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칭송하고 만민이 뛰어나와 기도문을 외우며 머나먼 이국에서 온 형제들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몇 년이 지나자 우리를 꾸짖었습니다.”
“대체 무어라 꾸짖은 것이오?”
“이천 년에 가깝게 이어진 전례는 이교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니 자신의 방식으로 탈바꿈하라 강권하였습니다. 결국 군주께서는 격노하시어 단교를 선언하고 탄주에만 입항 허가를 내었지요.”
내가 종교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지만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가톨릭 성립 이전에 만들어진 원시 종교이다.
그런데 더 늦게 형성되고 천 년 넘게 교리가 변한 가톨릭을 따르라 강권했다고?
솔로몬 제국의 휘하 부족을 결속하는 요소는 무력도 문화도 아닌 종교라는 거대한 틀이겠지.
형성 자체가 노예사냥을 일삼는 아랍인들에 대한 반발심일 것이며 이들이 종교라는 매개로 뭉친 것이다.
내정간섭을 넘어서 서양의 방식에 순응하면 국가 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 있으니 당연히 단교를 선언하였을 것이다.
한심한 몰골에 머리를 감싸 쥔 최 참의가 질문을 하였다.
“그러하면 선박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소이까? 놈들이 항해술을 실토하기는 하였소?”
“실토는 하였지만 몇 달이 지나자 태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기초적인 사항은 배웠지만 진척이 없어서 마침 홍해 일대에서 기세를 떨치던 오사만국(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무찌르면 방면한다 하였지요.”
“참으로 훌륭한 방법이오. 결과는 어떻게 되었소?”
“놈들이 전투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열과 성을 다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잘 알려주지 않던 화포 사용법마저도 실토하였지요. 덕분에 배를 놀릴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방향을 잡고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선원의 육성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이순신과 서신을 주고받는데, 쓸 만한 선원을 기르는 데 십 년이 걸린다 하였고, 앞가림을 하는 선원을 기르는 데 오 년 이상 걸린다 하였지.
1568년 3월에 교육을 시작하여 지금은 11월이다. 오가는 시일을 생각하면 마사이인, 아니, 솔로몬 사람들은 6개월 속성 교육만 받았으니 초보 중의 초보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긴 했는지 코이네가 뭐라 말하였고 이를 들은 로케라는 본론을 시작하였다.
“배를 몰 줄 아는 선원들을 몇 년간 다루면 정황을 파악할 것이고 배를 몰고 도망칠지도 모르니 더 이상 다룰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여송도에 있는 서반아인 거주지에 이들을 방면하였지만 아직 많은 면에서 부족하지요.”
“하면 열두 척의 선박 가운데 다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이오?”
“두 척은 캐러벨인지 뭔가 하는 작은 구형 선박이라 분해하여 조사하고 기술을 습득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 이상의 함선은 이해할 길이 없으니 조선에 부탁하려 합니다.”
“우리가 서양 선박을 분석하여 이득을 얻을 것이니 그 대가로 선원을 육성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달라는 말이겠구려. 이는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선박부터 봅시다.”
공조 관원들은 선박만 보고도 상세를 알 수 있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때 전함사에서 근무하였던 공조판서 유잠은 한번 훑어보더니 이런저런 평가를 내렸다.
“이 녀석은 적게 잡아도 삼천 료(배수량 420톤) 정도에 달하는 거대한 선박이군. 서양 녀석들이 언제 이런 선박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크기로 따지자면 나오(스페인 제조 카락)라는 선박보다야 못하지요. 그 녀석은 거대한 녀석이 사천오백 료(배수량 630톤)에 육박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뜀박질하는 것보다 느린 배 말인가? 그러한 배를 사용하느니 평전선을 사용하고 말지. 힘차게 노를 놀리면 어지간한 배보다 빠르게 치고 나와 좋지 않던가.”
경험이 자리를 만든다고 공조에서 일하였던 관원들은 선박에 대한 평가를 내렸지만 내가 나설 자리는 아니었다. ‘료’라는 것이 무슨 단위인지도 모르겠고.
서로 대화를 나누던 상급자들은 나를 돌아보더니 말하였다.
“저기 보게나. 유 좌랑이 꿀 먹은 벙어리같이 눈만 굴리면서 사방을 살피고 있네. 자네가 아직 젊으니 선박에 관한 지식이 없지? 뭐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대감께서도 짓궂으십니다. 유 좌랑이 공조에 소속된 사람이지 어디 전함사에서 일하여 본 사람이겠습니까? 기껏해야 배나 몇 번 타본 것이 전부이겠지요.”
나는 선박에 대한 많은 지식은 없다. 기껏해야 선박 도면을 본 적은 있지만 그거야 본래 역사에서의 판옥선과 거북선 그리고 조운선의 ‘복원도’이며 변해 버린 역사에서 적용할 수 없지 않은가.
서양의 선박은 크고 날렵하며 상선주제에 화포도 잔뜩 달려 있다, 그게 내 감상의 끝이었다.
할 말이 없었으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직 경험이 일천하여 선박에 관한 상세한 일은 모르고 있습니다.”
“허어? 경험이 일천하면 어찌하여 공조에 왔는가? 자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당분간 선박의 도본을 작성하며 부족한 경험을 채우게나.”
이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내가 담당한 업무가 시급하거나 시일이 지체되면 악영향이 있는 업무라면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는 서류가 사라질 이유가 있던가?
더군다나 나는 도면을 잘 그리기로 소문이 났고 보이지 않는 목재를 재겠다고 세자의 거처인 자선당의 천장을 박살 냈으니 적임자이지.
유잠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전함사의 장인들을 도와 도본을 만들고 군기시의 장인들에게 자네의 도본을 설명하게나. 가급적이면 이 선박의 상세를 낱낱이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니 힘을 써주게.”
“제가 선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데 이를 어떻게 축적합니까? 서적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충청수영의 수군도절제사인 정송정(松亭: 정걸의 호)이 협력하기로 하였네. 자네와 같은 초임자도 끼어 있다고 서신을 보낼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업무에 매진하게나.”
며칠 정도 전함사의 관료와 함께 선박의 기초에 대한 배움을 이어갔는데 여러 종류의 선박이 도착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판옥선과 흡사하지만 더욱 거대해진 녀석이 도착하였는데 두정갑을 패용한 장수가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다.
“이게 서반아의 최신 선박인가? 이 녀석들 참으로 신묘한 선박을 가져왔군.”
정걸은 판옥선을 만든 사람으로 본래 역사에서 이름이 남아 있었고 변한 역사에서도 빼어난 군관이며 이순신이 자신의 무과 시험 감독관이라 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몸이 너무 두툼하다. 내가 듣기로는 환갑을 바라보는 노령에다 무인인 사람의 체격이 아니다. 무인은 훈영제식법을 익혀서 근육이 많이 붙지 않는다 하였으니까.
가만히 있자니 정걸은 나를 보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거 명망이 자자한 입암(유중영의 호)의 둘째 아들이 아닌가? 내가 입암과 함께 구주의 송포군에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 여기서 보게 되니 기쁘구나.”
“수군도절제사 영감을 뵙습니다.”
“벗의 아들을 만나 좋은 일이니 어른이라 하여라. 그나저나 이 선박을 보니 소름이 돋는군.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선실을 보고 싶다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수군에 종사한 장수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나 보다.
나야 그냥 날렵하다는 감상 하나가 전부였지만 정걸은 배에 오르더니 이리저리 둘러보고 선실 아래로 내려가려다가 좁은 틈에 어깨가 걸려서 짜증을 냈다.
“배의 크기는 크면서 문은 더럽게 폭이 좁군! 내가 이러니까 평전선의 크기도 다 늘렸지.”
“판옥선의 크기를 늘렸다 하셨습니까?”
“판옥…… 선이라? 그래 평전선의 모습이 판옥(板屋: 널빤지로 만든 집)과 흡사하기는 하지. 앞으로는 네 말대로 판옥선이라 부르면 좋겠구나. 거기 방 소감(少監: 종4품 관직) 있나?”
정걸은 젊은 시절 함께 판옥선을 만든 사람을 찾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다가 한 명의 사람이 선실에서 올라와 답하였다.
“방 소감은 얼마 전에 진급하여 내수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일을 잘하는데. 여하튼간 평전선은 내가 옛 방식을 참조하여 물골 사이로 숨어드는 왜구를 격퇴하려고 만든 선박이지. 처음에는 크기가 작았는데 내가 다니기 편하게 늘리다 보니 저렇게 커졌다네.”
판옥선을 만든 과정은 정걸의 덩치를 보면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비례에 맞게 선박을 만들었는데 너무 덩치가 커서 선실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고, 다시 전체적인 크기를 늘리기를 반복했겠지.
그래도 서양인들이 신장은 컸으니 높이는 맞았고 정걸은 선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옆걸음으로 억지로 내려가 안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이내 심각한 눈빛으로 화포를 쓰다듬었다.
“이 배는 분명 상선이라 들었네. 당연히 무장을 자기 보호를 위하여 갖추었을 것인데 화포의 크기가 지자총통과 맞먹지 않은가. 이 화포의 명칭이 무어라 하였지?”
“대미 걸바린(데미 컬버린)이라 하던 것 같습니다.”
“선체의 구조를 보아하니 여기에는 아국에서 널리 쓰이는 뇌력포(컬버린과 동급 함포)를 패용함은 물론이요 더욱 큰 함포를 올려도 버틸 수 있을 것이네. 이는 흉험한 징조가 아닌가.”
정걸이 왜 이런 시선을 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어느 정도 배웠는데 이 시대의 선박은 선주가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면 최대한 큰 화포를 올리고 아니면 보호용의 최소한의 화포만 장착하여 상선으로 굴린다.
그런데 고작 상선 주제에 지자총통 16문을 갖추고 있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 서양인들 기준에서 자기 보호가 가능한 상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갑판으로 나온 정걸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하였다.
“주상전하께서는 이어진 변란이 소강하여 병기의 개발을 중단하고 군축을 감행하시지만 그렇게 지체하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네. 이 상선이 군선으로 변용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지만 아국의 배가 더욱 크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경기수영이나 대양도수영에서 사용하는 선박은 이 배보다 거대한 사천 료(배수량 550톤)에 달합니다.”
“크기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네. 이 배를 제대로 몰아보면 알겠지만 군선으로서 가장 중요한 속력이 아국의 배보다 월등할 것이네. 만약 이 배가 제대로 된 군관과 화포를 패용하면 충분한 위협이 될 것이네.”
정걸의 말을 들으니 이상한 점이 있다. 이황의 말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대양도와 여송 일대에서 교역을 실시하며 심지어 미주에서도 조선과 간접적으로 접촉하는데 왜 모르고 있었을까.
이황이 말한 대로 서양인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정해진 장소에서 관원을 통해 화물만 교환하고 휴식만 취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해도 선박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르신의 말에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스승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서반아나 포도아의 상인들과 직접 교류할 일은 없지만 이런저런 장소에서 만나며 짐작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짐작하는 것과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은 다르지. 서반아의 상인들은 아국을 대할 적에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위험하다 여긴다네. 이들은 자신과 대등하다 여기면 절대 속내를 보이지 않는 법일세.”
“그러하면 탄주에 기꺼이 정박하고 난폭한 일을 벌인 일은 이들을 업신여겼기 때문입니까?”
“옳은 말이군. 만약 아국과 분쟁이 벌어져도 이들이 먼저 고개를 숙일 것이요. 싸움이 벌어지면 모든 선박을 자침시켜 입수할 길이 막혔을 것이라네. 선창 맨 아래에는 자침용 마개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말을 마친 정걸은 머릿속으로 이 배를 움직이는 상상을 하였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각을 거듭하다 이내 돛대를 올려보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거 두 함선의 장점만 합치면 좋은 배가 나오겠어. 범선을 개량하는 일은 최소한 십 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지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분해하여 알아보는 일이라네.”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설계 방식이 다르니 모든 부재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지. 내가 젊었다면 방 소감과 함께 몇 년을 매진하였겠지만 직무가 태산 같아 불가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걸이 거세게 등을 두들기니 삼대운동 700근에 가까워진 내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등이 얼얼했는데 배를 돌아보고 그 크기에 질겁하였다.
하지만 정걸은 흔쾌히 말하였다.
“배를 분해한다고 배를 만드는 법을 모조리 익히지는 못하지만 어디 가서 배를 설계할 때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행적을 보아하니 믿음직하지 않은가.”
이제 졸지에 경력에 ‘갤리온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도면 만들어 보았음’이라고 한 줄이 끼어들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