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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06화 (306/573)

근육조선 306화

2부 7장 4화 화려한 출장(2)

답답하다 못해 숨이 막혀오지만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다. 지금은 음력 3월이라 날이 풀렸지만 대만흰개미는 추위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가까스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양지에 있는 흰개미들은 따스한 햇볕을 받아 움직이지만 음지에 있는 흰개미들은 거의 멈춘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흰개미가 침입한 구멍 일대를 끌로 뜯어내 조사하다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도유사 어른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동서 양무와 대성전은 흰개미가 없는데 다른 방식으로 막아낸 겁니까?”

“연유라? 나도 잘 모르는 일이지만 제사를 올리는 곳이라 향냄새가 스미어 나무좀, 아니…… 자네의 말대로 흰개미가 침습하지 않았을 것 같군.”

향냄새 따위로 해결이 되겠나. 향나무를 기호식품처럼 갉아먹는 녀석들이 대만흰개미이니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녀석들의 특성을 알 수 있었다.

“이놈들 추위에는 엄청 약하네. 구들이 있는 명륜당과 동재, 서재, 그리고 고직사까지 침입했고 이외의 건물에는 기껏해야 먹은 흔적을 남겼다 겨울에 몰살당했잖아.”

진주향교 입구에 있는 왜구 토벌 공적비 근처에 걸터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반도의 지독한 추위 때문에 건물에 침입하더라도 겨울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기껏해야 경상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경상도의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가? 옻칠한 목재도 뜯어먹는 녀석들인데 여기서 90㎞ 떨어진 곳에는 해인사가 있다. 팔만대장경이 대만흰개미의 습격을 당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숨이 나오는데 공적비의 비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놈의 공적비는 무슨 과장이 이렇게 많아? 향교에 왜구가 침입하여 입신체비기구로 두들기고 내수린 기술로 격퇴하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여기 계셨군요. 정 교수님의 안내를 받아 진주 일대의 가옥을 조사하였습니다.”

“노 저작 아닌가? 자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군?”

노이네와 정여립이 이마에 내 천 자의 주름을 만든 채 터덜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려 하였지만 정여립이 먼저 분통을 터뜨렸다.

“정 교수 그 사람은 대체 무얼 하는 사람입니까? 관아에서 장계를 모아 품에 넣을 적에는 모범을 보이더니만. 집 하나를 오갈 때마다 술을 홀짝거려 술 냄새가 풍기니 열 집을 돌아볼 즈음에 만취하여 사지를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아직도 술을 끊지 못하였다고? 그 친구가 술을 끊느니 내가 일을 끊고 말지. 여하튼 여러 집을 돌아다녔다 하는데 상황은 어떠한가?”

“대다수는 민가가 아닌 양반가에 나무좀이 발생하였습니다. 간혹 민가의 부엌이나 외양간에 나무좀이 생기는 일은 있지만 피해는 크지 않더군요.”

대만흰개미는 한반도의 겨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확실했으니 적당히 방제를 하면…….

혹시 모를 일이라 해가 저물기 전에 관아로 돌아갔다.

“조사가 끝났는지 궁금하였는데 난데없이 돌아와 결빙과 서리 기록은 왜 찾아보는가.”

“벌레는 날이 따스할수록 번성하는 법입니다. 혹여나 나무좀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나도 현감으로 일하면서 물이 어는 날이나 서리가 내린 날을 모조리 기입하였지만 진주는 큰 고장인지라 30년 어치의 기록을 모아두고 있었다. 살펴보니 기온이 서서히 낮아지다가 한 번의 큰 추위가 있고 이외에는 대체로 포근했다.

“얼음이 어는 날이 스무 해 전에는 보름이 넘었는데 지금은 열흘에 불과하다니 날이 따스해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군요.”

“그래도 세조대왕께서 계실 적보다는 추워졌다네. 지금은 잠시 날이 풀리고 조만간 추위가 찾아올 것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게나.”

추위 하니 생각나는 사건이 있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17세기 말엽의 소빙기 기후변화의 산물 경신대기근이다. 당시에는 음력 5월까지 남부지방에 서리가 내렸다 했다.

아마 대만흰개미도 경신대기근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몰살당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최소한 백 년 동안은 남부지방을 떠돌면서 온갖 피해를 입히겠지.

“일단 이놈들의 집을 찾아서 까뒤집으면 겨울을 버티지 못하겠군.”

“네? 집을 찾아서 까뒤집는다 하였습니까?”

“가장 효과적인 대처가 아니겠는가. 어느 정도의 조사는 마쳤으니 이 녀석들이 들어온 경로를 알아내야 한다네. 다른 고장에 흰개미가 들어올 길을 막아야 하지 않는가.”

유입 경로를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아도 진주의 외항인 사천은 봄에는 나무를 들여오고 가을에는 곡식을 보내는 업무에 집중한다니 당장 다녀와야 하리라.

* * *

진주의 외항인 사천은 현대에는 항구로서 기능도 하지 않는 동네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충실히 기능을 다 하고 있었다.

동래는 배가 머무는 곳이요, 사천은 나무와 곡식이 넘친다 하는데 아주 정확한 표현이었다.

“장관이 따로 없군요. 동래가 삼남에서 가장 큰 항구라 하였지만 사천의 규모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게 다 나무란 말입니까?”

“나무이지. 동래에는 배가 너무 많이 드나드는 덕분에 나무를 적치할 공간이 없지만 사천은 가을에는 세곡을 거둬들여 도성으로 옮기니 봄에는 일손이 빌 것일세.”

나무는 바다를 통해 옮긴다.

정확히는 나무를 베어서 생나무인 채로 밧줄로 엮어 뗏목을 만들고 배의 뒤에 묶어서 끌고 오는 방식이다. 현대처럼 나무를 다듬어 배에 올리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항구의 인부들이 이 나무뗏목 위에 올라 노를 저어 끌어들였다. 썰물이 되면 갯벌에 뗏목이 놓일 것이며, 이걸 해체하여 하나씩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노이네는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섬에 살았습니다. 당시 나무를 사들이면 물가에서 나무를 끌어들이느라 장정 수십 명이 달라붙었는데 여기서는 편히 움직일 수 있군요.”

“편하기는. 물을 잔뜩 먹은 나무 한 그루만 하여도 일만 근(6.4톤)에 달할 것이네. 이걸 적재하고 물을 빼서 말리는 일만 하여도 한세월이 아니겠는가.”

“잘 알고 있군. 자네가 이현인가?”

진주목사 양응정(梁應鼎)이 우리 셋의 모습을 보더니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몸에 진흙이 묻어 있으니 현장을 확인하느라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지시를 내리더니 돌아와 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나무좀이 얼마나 번성하였고 이를 퇴치할 방법이 있는가? 요즘 들어 진주 일대의 나무가 부족하여 골치가 아프다네.”

“나무좀이 아니고 흰개미라 합니다. 이미 진주 일대의 숲에 가까운 집에는 대부분 흰개미가 침습하였고 퇴치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왜인들이 모색한 방법도 소용이 없다더군요.”

“이런 망측한 벌레들이 있다니. 참으로 골치 아픈 노릇이 아니겠는가.”

망측한 벌레들이 있어서 나무를 많이 사용하니 골치가 아프다. 이 시대 사람들의 감상은 이게 끝이다.

벼의 작황을 망가뜨리는 해충이라면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나설 것이지만, 문화재? 먹고사는 일이 바쁜데 무슨 문화재란 말인가.

이 시대는 왕실이나 자신의 조상과 관련된 일부 물품 외에는 그냥 예전부터 내려오는 물건이라 절실함이 없다.

아무튼 유입 경로를 확인하려고 뭍에서 말리는 나무를 확인했다.

하지만 나무는 물을 잔뜩 먹어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바닷물이 새어 나왔고 아직 베어내지 않은 잔가지에는 잎이 남아 있었다.

옆에서 인부들을 통솔하는 이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대양도(대만)에서 건너온 사람인가? 혹여나 이 나무를 어떻게 옮기는지 알고는 있던가?”

“나무요? 숲에서 자른 나무를 잔가지만 쳐내 그대로 강으로 흘려보내 바다에 두지요. 최소한 한 달 이상을 바닷물에 박아두어 진액을 모조리 빼버립니다.”

“생나무를 그대로 박아 진액을 빼낸다 하였소?”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나무를 잘 말려 바닷물에 넣어도 바닷물을 머금을 것이고, 뭍으로 끌어 올려 또 말려야 하는데 두 번 일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이야기를 들으니 사천포구는 흰개미의 유입 경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흰개미는 죽어서 수분이 빠져나간 목재를 뜯어먹지 생나무에 집을 만들지 않는다. 설령 집을 만들었다 해도 손가락으로 눌러도 물이 새어 나오는 목재라면 모조리 익사했으리라.

하지만 대만 사람이라고? 이 오십에 가까운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였다.

“잠시 나와 일을 하세나. 자네는 나무를 베는 사람이니 나무에 사는 벌레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 효험을 보이면 은자 다섯 냥을 줄 것이네.”

“일이라 하셨습니까? 나무에 사는 벌레라 하면 제가 대양도 토박이인지라 아주 잘 알고 있지요.”

대만 토박이라면 흰개미에 시달려 보았을 것이고 대처법도 알고 있겠지!

대만이 조선에 복속된 것은 백여 년 전의 일이라 하였으니 아직 원주민 특유의 생활방식이 남아 있을 게 아닌가!

* * *

은자 다섯 냥의 힘은 놀라웠다.

인부들의 피로를 확인한 진주목사는 업무를 계속 이어갈 수 없었으니 쉬라 하였지만, 이 노년에 가까운 남자는 은자를 받아들자마자 히죽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노이네는 워낙 털털한지라 군말이 없었지만, 정여립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다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였다.

“법도에 따르면 사람을 부를 적에는 검증된 사람만 불러야 하지 않습니까.”

“대양도에서 오십 년을 살아온 사람일세. 내가 듣기로는 대양도에도 흰개미가 있으며 왜인들이 가져온 흰개미 대처법이 통하지 않으면 대양도 사람이 해답을 알고 있지 않겠는가.”

향교로 돌아와 건물에 들어서니 특유의 나프탈렌 냄새가 다시 느껴졌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은 이리저리 건물을 확인하더니 돌아다니는 흰개미를 짓이기면서 말하였다.

“홍수벌레군요? 이거 대양도에서 보던 녀석이 여기에도 보이니 반가울 지경입니다.”

“홍수벌레라 하였는가?”

“놈들이 다른 집으로 옮겨갈 때에는 비가 내린 이후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출몰하니 홍수벌레요. 나무에서 쏟아져 나올 적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방도를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창고에 다녀온 남자는 세숫대야와 횃불 여러 개를 꺼내오더니 건물에 횃불을 하나씩 걸어두고는 아래에 세숫대야를 두고 비누를 풀은 물을 넣었다. 그러더니 손을 툴툴 털어내고는 말하였다.

“홍수벌레의 대처법입니다. 놈들은 대충 삼월부터 오월까지 날아다니는 놈을 통해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데, 비가 내린 뒤 며칠 동안 옮겨가지요. 그때 밤중에 횃불을 밝혀두면 거기에 끌려듭니다.”

“지금 뭐라 하였는가?”

“놈들은 나방처럼 밤중에 횃불을 켜면 홀려서 달려듭니다. 하지만 나방보다 몇 배는 민감하여 건물 한 채에 횃불을 켜두면 모조리 횃불로 달려들며 날개가 타들어 가 세숫대야에 떨어지는 겁니다.”

벌레유인등이라고 현대에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지만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건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유입되는 흰개미를 막아내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돈을 받을 생각에 싱글거리는 상대에게 다시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근원을 찾아서 해결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횃불을 켜두는 것을 잊거나 이끌리지 않은 흰개미가 건물로 침입하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세.”

“숲에서 홍수벌레의 집을 찾아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 조부님이야 옛적 사람이라 사람 목도 베고 별식으로 홍수벌레도 드셨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에 귀부한 다음이니까요.”

조선에 복속한 이후 급속히 조선화가 진행되었다 하였는데 옛 생활방식도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큰 도움을 주었으니 은자 다섯 냥을 지급하였다.

일이 끝났다 여긴 둘이지만, 아직 일 안 끝났다!

“흰개미의 집을 부수지 않으면 방법이 없을 것이네. 어떻게 부수는지 알아보기 위해 산에 올라갈 채비를 하세나.”

“여기서 일을 그만두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유 수찬께서는 마실 나오듯 편히 다녀오실 것이라 하였는데 사소한 업무에 몰두하니 명성이 헛된 분이 아닙니다.”

정여립 너야 중요하지 않지만 내 대처에 따라 경상도 일대의 문화재와 한옥의 운명이 갈리거든!

한숨이 나오려다가 설득할 방법도 없으니 직급으로 억누르기로 하였다.

투덜거리는 둘을 이끌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비봉산의 의곡사(義谷寺)였다.

“도대체 산사를 찾아가시는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여나 불씨의…….”

“불씨는 무슨! 산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는 약초꾼이요. 그다음으로 잘 아는 이는 산사에 기거하는 승려일세! 더군다나 의곡사는 수양대군의 손길이 닿은 사찰이 아닌가!”

정여립이 깐깐하다 했는데 매사에 굉장히 공격적이다. 이런 성격이니까 친구도 별로 없고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자결한 것인가.

여하튼 성격은 이래도 논리가 있으면 업무를 잘 따라오니 다행이었다.

한참을 산을 올라가니 저 멀리 절의 건물이 보였다.

내 시선은 건물의 몰골을 보고 멈추었고 다른 두 명도 건물을 보자마자 감탄을 내뱉었다.

“히야! 저거 옻칠이 아닙니까? 단청을 금하였는데 죄다 옻칠을 하다니 이 절이 얼마나 부유한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저게 다 시주를 받은 것인데 참으로 삿된 일을 행하는군요. 예진원 대제학이 후원하는 절이라 하였는데 옻을 칠할 줄은 몰랐습니다.”

둘은 단청으로 옻을 칠한 절의 부유함에 놀랐지만 내가 놀란 것은 기둥들이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으며 추녀가 축 처진 것이었다.

옻칠이 벗겨지지 않았는데 저렇게 상해 있다?

“이 사찰 모두가 흰개미에 침습 당했을 것이네! 어서 들어가 보세나!”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나프탈렌 냄새와 녹나무 특유의 은은한 향이 섞여서 속이 메스꺼웠다.

수양대군이 후원한 사찰은 그의 몸을 본뜬 사천왕상을 만든다 하였는데 사천왕상의 몰골을 본 순간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세상에! 이게 무슨 꼴입니까!”

“진귀한 아름드리 녹나무로 만든 사천왕상이 모조리 흰개미에게 물어 뜯겼군. 이런 상황이라면 절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할 것이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천왕상은 진귀한 녹나무를 통째로 조각했는데 흰개미에게 사방이 뜯겨나가 처참한 몰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들 모두가 이리저리 휘어 있었고 가장 거대한 금당은 추녀 하나가 부러져서 지붕이 허물어지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주지 스님에게 찾아가니 선객이 있었다.

“절을 오 년 전에 중건하였는데 이런 몰골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무좀이 너무 심각하게 발생하여 저희도 답이 없습니다. 선방이 무너져서 승려들이 거주할 수 없는지라 이번 겨울에는 읍내에 머무르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숙부님께서 신경을 많이 쓰신 사찰인데 불행이 겹치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선객이 누구인가 했더니 면식이 있는 사람이다.

한때 종친의 자리에서 쫓겨나 무관이 되었으며 다시 종친으로 돌아온 이균, 지금의 군호는 하성군이 이 절에 시주를 하러 온 것이다.

그는 나를 알아보더니 인사를 올렸다.

“명성이 자자한 이현전의 유 수찬이 아닌가?”

“하성군 대감을 뵙습니다. 진주에서 다시 만나 뵙게 되다니 황망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껄끄러운 상대를 만났다는 듯이 눈을 굴리는 하성군이지만 무관으로서의 명성은 어디 가지 않았는지 몸 전체가 잘 벼려낸 도끼처럼 굳건하였다.

그런데 숙부님께서 신경을 많이 쓴 사찰이라? 여기서 운을 띄우기로 하였다.

“실은 진주 목에도 나무좀 아니 흰개미가 침습하여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름드리 녹나무를 잘라 만든 사천왕상이 사찰의 입구에 있더군요.”

“그…… 나는 모르는 일일세. 십칠 년 전에 숙부님께서 특별히 만든 사천왕상이지.”

“녹나무의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데다 하나의 목재로 만든 상이니 전국팔도를 돌아보아도 이런 거대한 녹나무를 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혹여나 이 녹나무는 물로 들여오지 않고 배 위에 올린 녀석이 아닌지요.”

설마 아니겠지. 설마 순흥군의 실수로 진주에 대만흰개미가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데 하성군과 주지 스님 모두 돌아다니는 흰개미와 나를 번갈아 보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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