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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02화 (302/573)

근육조선 302화

2부 6장 6화 – 돌아갈 때가 되었다

애단현에 부임한 지도 이 년이 넘게 지났다. 부임한 직후에는 대충 있던 마을이 적당히 새로 만드니 제대로 된 마을이 되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주택도 실컷 만들어 마을을 이주시켰고 관아도 제대로 된 통나무집으로 거대하게 만들어뒀다. 덕분에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좋은 일이고 후임자도 도착했다.

내 후임자는 왜인 출신이다. 정확히는 큐슈에 있는 조선령 출신으로 향시(鄕試)를 보고 자격을 얻어 관직에 오른 산시양이라는 자이다. 본래 성은 야마모토(山本)라 하던가. 그는 관아 기둥을 흔들어보더니 감탄하였다.

“애단현이 북방의 벽촌이라 하여 염려하였는데 이렇게 다부진 건물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왜국에서 들여온 합장집을 사용하였는데 짚을 구하기 힘든 고장이라 변용해 보았소. 경원에 있는 대목장들도 이 집을 채택하여 퍼트리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마을의 집은 러시아의 혹한기후에 대응하는 주택으로 변했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설계를 알고 있어서 풍부한 나무를 잔뜩 활용해서 이중벽을 만들고 속에 점토와 숯을 채워서 여름철의 습기에도 대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듯한 큐슈출신이 혹한지에 부임하였으니 죽도록 고생하겠지만 집은 튼튼하고 구들장도 있으니 큰 병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주의사항을 이야기했다.

“익히 들은 일이지만 마을 남쪽에 흐르는 강물은 납에 오염되었소. 이 물을 당장에 마셔서 해는 없지만 수십 년이 지나면 몸을 가누지 못한다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일대에 환자가 있다 들었습니다만?”

“환갑이 넘은 노인들은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경원부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였소. 또한 증세가 약한 이들은 매년 탕약을 내려 몸을 보하면 될 것이오.”

납중독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피부독성과 신체축적에 대한 자료 모두가 의서에 공언될 예정이라니 역사가 변하지 않을까. 덕분에 광부도 2교대로 일하며 피해를 최소화한다더라. 이제 내가 하려다 못한 일을 알려줄 차례이다.

“다만 북쪽의 물골의 너무 깊고 폭이 좁으니 물골을 옆으로 두 보(3.2m)정도 늘려야 장마를 대처할 수 있지요. 또한 북쪽의 물길을 틀어막아 제방을 설치하시지요.”

“네? 물골의 폭을 늘리고 제방을 설치하면 마을을 새로 만드는 것과 동일하지 않습니까.”

“열심히 하다 보면 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실 것이니 식사나 합시다.”

식량은 조금 부족할 것 같았지만 내가 지금껏 개량해 온 감자는 충분한 효험을 발휘하였다. 밀밭을 개간하는 동안 마을의 주식은 어느새 감자가 되었지. 오늘 점심은 감자수제비다.

“차린 것은 없지만 드시오. 아직 밀밭이 충분히 개간되지 않아서 감자를 자주 먹어야 하지만 맛을 붙이니 좋은 음식이지요.”

“기껏해야 고구마를 먹었지 감자는 처음 접해봅니다.”

감자수제비는 이탈리아 음식인 뇨끼를 조선의 형편에 맞게 재해석한 물건이니까. 올리브유는 없으니 들기름을 사용해서 기묘한 맛이지만 이 시대 사람들의 입에는 잘 맞나 보다.

산시양은 처음 접하는 감자수제비를 옆에 내온 수란에 비벼 억지로 삼키지만 조만간 적응할 것이다. 후임자에 대해 알려줄 것은 차고 넘쳐서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내수린을 능숙히 행하면 겨울에 광부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즐겁게 놀 수 있을 것이오.”

“과······ 광부라 하였으니 애단현의 광산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서둘러 다녀오겠습니다!”

거참 인수인계도 싫어하고 스스로 터득하는 특이한 사람일세. 광부들을 위해 휴식공간도 마련해 두고 납중독을 제거하기 위해 따듯한 물이 나오는 샤워장도 설치해 두었는데 소개는 다 듣고 가야지.

사실 내가 모조리 해치울 일이었지만 작년인 1566년에 잠시 한양과 외가에 내려가서 후임자의 일이 되었다. 작년 여름에 회령군과 외할아버지인 김광수가 줄줄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덕분에 시간을 쪼개 한 달 반 정도 휴가를 다녀왔다. 상을 치르지 않았지만 이후 생활 방식이 틀어져서 살이 조금 붙어 복근이 뒤덮일 지경이었다. 뱃살을 매만지고 한숨을 쉬었다.

“비육지탄(髀肉之嘆)도 아니고 살이 붙은 일이 대수라고. 한양으로 돌아가서 아내랑 이이에게 시달리면 뱃살이 쪽 빠지니······ 아니다, 이이도 이조로 자리를 옮겼지.”

이현전의 사람들이 그립고 내가 애단현으로 출발한 날 회임한 둘째가 얼마나 자랐는지도 그리웠다. 앞으로 석 달 뒤인 1567년 10월에는 한양에 있으니 석 달만 남았다.

다시 관아로 돌아와 각종 서류와 인수인계할 물품을 작성하는데 이방이 문을 두드렸다. 이 시기에는 별다른 일도 없는데 누가 방문했나?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자가 찾아왔다. 이순신이다!

“자네가 지금 여기에 왜 있나?”

“왜 있기는. 심원(深原 - 유주노사할린스크) 인근의 시애포의 정9품 별장(別將)직을 역임하다 자네의 지혜를 빌릴 일이 있어 애단현에 잠시 들렀다네.”

이순신이 여기에 오다니 깜짝 놀랐다. 잠깐 그러면 내 집은?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이순신은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북방으로 부임하는 일을 알고 계시던 율곡 어르신께서 사람을 보내 집을 보전하게 하였으니 염려하지 말게.”

“생각하여 보니 자네도 덕수 이씨였지. 먼 친척이니 말은 나눠보았나?”

“아닐세. 이조의 고공사(考功司 - 관리의 공과를 분석하는 기관)에 소속된 분인지라 내 인사고과에 개입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리하여 인사만 나눈 일이 전부라네.”

여하튼 집이 무사하다니 다행인데 이순신의 표정은 내 몸을 훑어볼 때마다 실시간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연한 말이 튀어나왔다.

“자네 살이 붙었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그리 많은 살이 붙지는 않았다네. 기껏해야 일곱 근 정도 늘어났으니 염려하지 말게. 잠깐! 여해! 자네 어디로 가는가!”

관아는 마을 어귀에 있었다. 이건 내 욕심이 아니고 가장 나중에 세워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순신은 내가 세운 마을을 돌아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하였다.

“자네는 삼 년도 지나지 않아 마을을 세웠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벗에게 한낱 군관에 불과한 내가 심려를 끼치려 하다니 참으로 잘못된 일이네.”

“지금 뭐라 하였는가?”

“자네와 같이 훌륭한 이가 마을을 다시 세우는 모범을 보이는데 나도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감내하면 되는 사소한 문제이니 염려하지 말게나.”

내가 입신체비도 거를 정도로 일에 몰두하여 몸이 상했다 여기겠지. 하지만 이순신이 감내한다고? 역사가 변해 이순신이 파직당하기라도 하면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나는 웃통을 벗으며 말하였다.

“추위가 거센 지역인지라 살을 붙였다네. 하지만 날이 풀렸는데도 살을 걷어내지 않다니 부끄러운 일이로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산천을 뛰어다니려 하니 같이 나서세.”

재빨리 입신체비복으로 갈아입으니 갑주를 패용한 이순신도 골똘히 생각하다 싱긋 웃으며 입신체비복으로 갈아입었다. 물론 애단현의 지옥 같은 숲길에서 운동하려면 호위가 필요하다.

“병방! 절육을 행할 예정이니 자네도 함께 몸을 풀지 않겠나! 얼마 전에 매화범(표범)을 잡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데 내가 미끼가 되겠네!”

“아이고 현감님이 절육을 행하시다니 이거 해가 서쪽에서 뜰 일입니다?”

고란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지만 이순신의 눈빛을 마주하고 잔뜩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나야 사촌 동생 같으니 봐줬지만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인 이순신에 눈에는 예의 없게 보였나 보다.

이순신과 함께 산길을 뛰어다니고 삼십 분이 지났을 무렵 정말 표범이 그르렁거리며 이순신을 덮치려 하였고, 그르렁 소리를 듣고 내가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돌린 순간 병사들과 고란이 달려들었다.

“매화범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더니만 익숙한 사람이 아니니 덮치려 드는구나!”

지난 이 년 동안 고란은 아예 체격이 변했다. 이이 특유의 훈련법을 약간 변형해서 적용하고 등을 단련하라고 곡괭이질과 턱걸이를 중점적으로 시키니 근력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으니까.

단 두 방의 도끼질로 표범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솜씨는 보통 무인이 견줄 수 없는 실력이다. 이순신도 제법 놀랐는지 심드렁하던 표정이 변하였다.

“언행은 방정맞아도 실력 하나는 대단하군. 연배가 자네보다 많아 보이는데 이런 비장(裨將)은 어떻게 구하였나?”

“하마 니씨에서 식객을 하나 붙여주었다네. 하지만 아직 열아홉에 불과해 부족한 점이 많으니 무과에 응시시킬 방도가 없어 문제일세. 학식이 지독히 부족하거든.”

학식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고란은 투덜거리며 표범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는 몸을 돌렸다. 이 년 넘게 고란을 가르쳤지만 머리가 둔해 기초적인 한글을 가르친 것이 전부니까. 반면 이순신은 고란의 몸에 주목하였다.

“체격이야 내 벗인 승우(임차손의 자)와 견줄 만하지만 하체가 부족하네.”

“상체가 저렇게 역삼각형으로 빼어난데 하체가 부족할 수도 있지. 땀도 흘릴 만큼 흘렸으니 돌아가 보세나.”

이순신도 나에 대한 염려가 풀렸는지 관아로 돌아가 몸을 씻었고 간만에 열심히 산을 뛰어다녀 개운해진 몸으로 탁자에 앉았다. 이순신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은 아니고 공납(貢納)을 거두는 일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고 싶네. 자네도 북방에서 공납품을 어떻게 구하는지 알고 있는가?”

“당연히 알고 있지. 보통 사냥꾼이나 광부에게 세를 거두어 공납품을 거두지만 하급 군관의 훈련을 위하여 배를 띄우거나 산천을 돌아다니게 하여 거두는 경우도 많네.”

북방은 너무 척박한 지역이라 대부분의 세금이 면제이다. 여진족의 풍습이 남아 있어 군사는 오히려 예산을 보내야 할 정도로 많이 뽑히니 거두는 것은 오로지 토산물이다.

나도 하급군관을 시켜 훈련을 겸해 동물을 잡아오게 하고 모자라는 가죽은 사냥꾼에게 사들여 정해진 공납품을 보충하니까.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순신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하였다.

“지난 한 달 동안 병졸들의 훈련을 겸하여 북방해우(海牛)를 두 마리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를 이행하지 못하였다네. 어떻게 된 일인지 아예 보이지를 않더군.”

“북방해우라 하였나? 소보다 덩치가 크고 여럿이 모여 사는 녀석이었나?”

이 시대에는 현대에 멸종한 생물들이 많이 살았다. 간혹 궁궐에서 보이는 안양조라 불리는 도도도 그렇고 스텔라 해우도 조선의 권역에서 멀쩡히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이 나서자 자취를 감추다니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스텔라 해우가 단번에 멸종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 인과관계를 알아야 하는데 전임자는 알 가능성이 높다.

“전임자에게 서신을 보내 보았는가? 혹여나 해류가 변하거나 기후가 변하여 자네가 근속하던 지역을 떠났는데 전임자가 이 사실을 전달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전임자도 명확히는 모르고 내 상관의 전임자인 원 평중(平仲 - 원균의 호)이라는 이가 훈련을 맹렬히 하겠다며 일을 행한 덕분에 그가 알고 있다네.”

원균 그 돼지가 공납품을 모아오는 고생을 한다고? 아무리 보아도 수상한데 대체 뭔 짓을 했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자 뭔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부친인 수부(秀夫 - 원균의 아버지 원준량의 호)대감에게 부탁하여 사람을 보내 나라의 일을 돕게 하였다네. 덕분에 명성을 쌓아 타의 모범이 되었지.”

요즘 해달가죽의 값이 내려갔다 했는데 보이는 대로 해달을 사냥해서 돈을 챙겼겠지. 그 아들에 그 아버지라고 둘 다 하는 짓거리가 비슷해서 한숨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원균이 니양수의 집에서 대접을 받은 것도 귀한 해달가죽을 마구 풀어서 대접받은 것이 분명하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이니 애써서 표정을 펴며 말하였다.

“그자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여하튼 평중에게 서신은 보내 보았나?”

“변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네. 듣자 하니 자신이 개발하여 석쇄를 양손에 패용한 입신체비를 즐긴다 하였는데 사고가 발생하였지. 머리에 석쇄를 맞아 며칠간 앓다 세상을 떠났다 하네.”

내가 가르쳐 준 운동인데 자기 거라 말했다? 그리고 머리통에 석쇄를 왜 맞아? 내가 황당하게 바라보니 이순신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말하였다.

“평소부터 호탕한 기질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서른 근(19.2㎏)의 석쇄를 양손에 쥐고 마음대로 휘두르다 석쇄에 발등이 찍혀 고개를 숙이니 다른 석쇄가 뒤통수에 떨어졌다 하더군.”

“그것참 기묘한 일일세. 일단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은 간다네.”

유성룡의 뛰어난 지능으로 인과관계를 분석하니 이야기만 들어도 뭔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확인을 위해 이순신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일단 내 생각이 올바른지는 모르겠지만 확인할 것이 있네. 근처의 해달이 없지 않나?”

“해달? 생각하여 보니 토박이인 수부(水夫 - 하급선원)들이 해달도 자취를 감추었다 하였네.”

“이런 말을 하여서 고인에 대한 예의는 아니네만 원 평중은 분명 나라의 일을 돕는다 하며 사사로이 해달을 사냥하였을 것이네. 덕분에 해우도 자취를 감춘 것이지.”

“해달과 해우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해우는 다루기 힘든 물건이라 사사로이 잡았다면 소문이 퍼졌을 것이네. 하지만 잡혀 온 해우는 아예 없다 하였네.”

이순신도 머리는 좋지만 현대인의 관점은 가지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나에 대한 평가가 쓸데없이 올라갈 것 같았지만 할 말은 해야지.

“해달은 성게와 소라를 먹는데 이 성게와 소라는 해우의 먹이인 해초를 먹어치우지. 원 평중이 해달을 모조리 잡아들인 이후에는 바다가 어떻게 되겠나.”

“성게와 소라가 늘어날 것이지. 잠깐!”

“자네도 이해했군. 해우는 성게가 해초를 먹어서 먹이를 찾으러 떠난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이에 대한 장계를 작성할 것이니 자네는 염려하지 말고 병졸들의 조련에 힘쓰게.”

이순신의 상관이 누구였더라. 여하튼 내 이름을 걸고 예의가 넘치는 서신을 작성하였다. 해달을 너무 많이 잡아 해우가 자취를 감추었으니 이순신은 잘못한 일이 없으니 당분간 해우를 잡지 못한다고 적었다.

혹시나 이순신이 문책당할지도 모르니 내 악명을 조금은 이용했다. 장계 말미에 [이현전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해우의 생태를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적으면 위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이순신은 이천 리 떨어진 지역의 일을 손바닥 보듯 하는 나를 경외할 듯이 쳐다보았지만 그가 출세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도와줘야겠지. 생각해 보니 조금 더 도와줄 방법도 있다.

“고란 이 친구를 둘 곳이 없군. 본래 정음을 완전히 터득하게 하여 군관으로 보내려 하였는데 일이 바쁘니 많이 가르치지 못하였군. 자네가 키워보는 일은 어떠한가.”

“예의가 바르지 않은 사람이지만 체격 하나는 훌륭하군. 더군다나 흔들리는 배 위에서 고생하면 자연스럽게 하체가 단련되는 법이니 훌륭한 무관이 되겠어.”

고란은 이순신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글을 배우기보다는 몸을 놀리는 걸 좋아하니 깐깐한 무관 아래에서 활약하여 출세할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좋은 장수 아래에 훌륭한 무인을 보냈으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못해 날아갈 것 같았다. 이현전에서 보내온 서신에는 내가 돌아오면 정6품으로 승진하며 후임자의 교육이 끝나면 종5품 진급심사 대상자라 하였으니 삼 년을 고생한 보람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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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 북서쪽에는 조선에서 빙해(氷海)라 불리는 바다가 있었다. 현대에는 베링 해라 불리는 험난한 바다이며 조선과 친교를 맺은 유박(類博 - 유픽족)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험준하기로는 비견할 바다가 없어 유픽족의 이름을 딴 박해(薄海 - 오호츠크해)에는 자주 거니는 조선인들도 빙해에는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끔찍한 바다에 한 척의 선박이 당도하였다.

이순신은 유성룡이 작성할 서신을 읽어보고 스스로 결론을 도출하였다. 공납으로 보내야 하는 해우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면 더욱 북쪽의 바다로 이주했을 것이며. 이 빙해에는 해달도 해우도 넘쳐나니 이를 잡아들이면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길을 안내하는 유박족 젊은이도 바다를 보고 질려 하였으며 다른 이들은 끔찍한 공포에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결국 고란은 이순신에게 항변하였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저도 북방 사람인지라 빙해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나야 무관이니 험난한 일을 수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관이자 촉망받는 신하인 서애가 여기에 당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음력 9월에 배를 충분히 거꾸러트릴 파도가 몰아치고 조만간 유빙이 밀려올 예정이었는지 입김이 새어 나왔다. 무인으로서 곰도 상대할 수 있는 고란조차 거대한 자연 앞에는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하지만 이순신의 눈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자고로 내가 부족하여 벌어진 일이네. 평범한 사람은 죽도록 노력하여야 재능 있는 자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순신은 스물이 넘은 지 얼마 안 되는 나이에도 열심히 노력하기로 하였다. 그런 그가 어느 경지에 오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작가의 말

이 소설에서 자연 따위는 이순신을 못 죽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원균은 제가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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