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01화 (301/573)

근육조선 301화

2부 6장 5화 – 길을 정하다.

유성룡의 집에 본래 역사의 전설적인 명장 둘이 모여 있었다. 친구는 친구를 부른다 하여 이순신은 자연스럽게 권율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권율 또한 마찬가지였다.

둘은 유성룡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친분을 만들었다. 비록 권율은 대과에 재차 낙방하여 아직 훈도 생활이 전부인 생원이었지만 본래 서른 무렵에 과거에 합격하는 일이 보통이었기에 이순신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방 안에만 들어서면 서적이 넘쳐나니 이현(유성룡의 자)의 평상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은 이현의 등을 쫓아가기 바쁠 지경이라네.”

권율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기에 이순신에 속에 숨겨진 재능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 말하면 오만해질지도 모르지 않은가. 권율은 자신이 읽으려 챙겨온 조보(朝報)를 내려놓고는 속내를 숨기고 말하였다.

“이 서적을 모두 읽었으니 지식이 그렇게 많은 것이지. 하지만 이현도 맹한 구석이 있군. 내가 도성에서 이 년을 머무르기 힘든데 어찌 삼 년을 맡아두라 하였을까.”

“내가 언제 임지로 부임할지는 모르지만 일 년 정도는 머슴을 시켜 집을 관리할 수 있으니 넘겨짚은 것이 아닐까. 혹여나 정말 맹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네.”

초임 무관인 이순신이 한양에서 오래 근무하여도 이 년이 넘으면 자연스럽게 외방으로 나서야 한다. 문관이면 가급적 도성이나 경기도에서 근무하게 하지만 무관은 달랐다.

세종대왕의 치세에 산성을 겸한 훈련원이 머무는 남한산성의 시설을 이용하여 무과 합격자를 따로 모아 일 년 이상의 무관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전부이고 삼 년 넘게 도성에서 머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권율은 혀를 차며 말하였다.

“그 친구가 맹한 구석이 있기는 했지. 훈도로 일할 적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일에는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아서 내가 도움을 좀 주었다네.”

“삼을 쪄내듯 나무를 쪄낸 일을 말하는 것인가?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나왔는데. 세상에 나무를 땅에 묻어 쪄내는데 닭이라도 푸짐히 넣어 육질을 보충할 꾀는 나지 않던가?”

두 장수는 집안이 떠나가라 웃음을 늘어놓았다. 이순신의 강직한 성격과 권율의 능글맞고 여유가 넘치는 성격은 둘을 오랜 벗과 같이 만들었다. 이순신은 책장에 있는 서적 하나를 뽑아내어 권율에게 보여주었다.

본래 유중영이 읽던 병서는 유성룡의 소유가 되었다. 이 시대에는 서적에 대한 분류가 확실하지 않았기에 이순신은 유성룡이 병서를 읽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겼고 책에 묻은 두꺼운 손때는 그를 감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기유년(1549년)에 인쇄한 무경칠서(중국의 일곱 가지 대표 병법서)의 언해본인데 손때가 이리 많이 묻어있다니. 이현이 어린 시절부터 밤을 새워 서적을 읽은 것이 분명해.”

“그럼에도 근손실이 없다니 참으로 대단하군. 그 친구가 건축에도 자질이 있고 얼마 전에는 집현전과 홍문관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하는데, 어디까지 나아갈지 궁금하다네.”

“혹시 모르지, 마흔 무렵에 영의정의 자리에 올라 당상관에 미치지 못한 우리를 호되게 질책할 가망도 있지 않은가?”

“이현이 영의정이 되면 나라 전체가 일에 시달리다가 문무백관이 혼절하여 국운이 위태로울 것이네. 적어도 쉰이 넘어서 기력이 쇠한 이후 정승에 오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의 행적은 소문만 들어도 끔찍하였다. 그와 엮인 홍문관은 일 년 가까이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였고 이미 일에 미친 사람이라 머나먼 변방까지 소문이 퍼졌다 했었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멀리서 북소리가 들렸다. 밤이 늦었음을 알리는 북소리를 들은 권율이 귀가하자 이순신은 서재 구석에 꽂힌 서적을 펼쳤다.

“내 이 서적을 언신(권율의 호)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미완의 서적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군. 이현이 돌아오면 서적의 완성을 독촉해야겠어.”

유성룡이 작성하던 와중에 현감으로 부임하여 미완의 서적으로 남은 수성전수방략이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미완의 서적을 읽는 일은 아무리 친구라고 하여도 부끄러운 행동이지만 이순신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현과 같이 빼어난 지식을 가진 이가 서적을 왜 여기에 내버려 두었겠는가. 무관인 내가 읽고 평가하여 첨삭을 도와달라는 뜻이겠지.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라면 애단현에 가져갔을 것이야.”

서적은 일반적인 병서와 유사하면서 유성룡의 독특한 면모가 엿보였다. 그가 열 개에 가까운 산성들을 보수하고 점검하면서 산성의 기본 수비와 강화 계획을 작성하였고, 이를 통해 수성(守城) 전략을 새로 계획한 것이다.

사실 수성 전략에서 그치지 않았다. 서적이 미완인 이유도 이 때문이라 짐작한 이순신은 서적을 넘겨 수성 이후의 항목을 읽어보았다.

-포병은 군사의 으뜸이다. 어떠한 병종보다도 적의 사기를 꺾기 쉬우며 포탄이 망루를 무너뜨리지는 못하여도 망루를 흔들어 병졸을 도탄(塗炭)에 빠뜨릴 수 있다.

-석축은 전장에서 가장 흔한 기물이며 수성을 할 적에는 병졸들이 이에 의지한다. 하지만 포탄을 높이 쏘아 곡선으로 떨구면 적의 병졸 모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공황에 빠질 것이다.

-각 화포는 서로 위력과 사거리가 다르며 장전하는데 걸리는 품도 다르다. 무릇 전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소유한 화포가 언제 적에게 닿을지를 예측하는 일은 당연하다.

이순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내용이 이어졌지만 실은 빙의자인 유성룡이 자신이 즐겨 했었던 ‘세계의 전차’라는 게임에서 당했던 일을 고스란히 조선시대에 옮겨온 것이다.

곡사사격으로 엄폐물을 무시하고 전차를 즉사시키며 피폭자의 뇌혈관을 터뜨리는 자주포를 조선시대에 맞게 해석하니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화포는 대부분 직선으로 쏘았다.

신기전은 직사 사거리가 짧아 정확도를 희생시키며 곡사로 발사하며. 화포의 최대 사거리는 1,500보(2,400m)에 달하지만 실질적으로 목표를 적중시키려면 200보(320m)가 적합한 사거리니까. 이순신은 이를 달성할 방법을 상상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 친구는 바라는 것도 많군. 각도를 높여 곡사로 쏘면 총통을 가장 멀리 쏘아 보내는 것이요. 그러한데 사거리를 줄이려면 포병 개개인이 화약을 적게 넣고 각도를 맞추어 쏘라는 뜻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순신은 유성룡이 문관이며 아직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 희망사항을 적어나갔다 여기고 책을 덮었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이러한 방식을 하루아침에 실제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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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비롯한 무과 합격자들의 교육은 지지부진하였다. 다른 무엇도 아닌 명나라에서 온 병사들을 훈련원에서 위탁 교육하고 있었는데 여러 난항을 겪었다.

본래 훈련원에서 교육을 실시하는 이들은 훈련원 출신의 고참병이었다. 하지만 조선에 끌려와 훈련을 받는 명나라 출신 장수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털어놓았다.

‘남당(南塘 - 척계광의 호) 장군께서는 정3품의 지휘첨사(指揮僉事)로 부임하고 계시며 이는 조선의 품계로 네 품계를 올려 적용하여 정1품이잖소. 적어도 더 높은 사람이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요?’

‘하다못해 병졸들도 가려 뽑은 이들이니 이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시구려. 의식주야 부족할 것이 없이 좋지만 최소한 가르치는 이들이 무과에 합격한 무관이어야 하는 거요.’

상국의 자존심은 남아 있었다. 결국 총 책임자인 오겸은 실질 책임자로 직위가 하락하였고 바라는 대로 세자 이연이 총 책임자로 근무하게 되었다.

또한 병사의 훈련을 담당하던 훈련원 고참병 대신 무과 합격자들이 나서게 되었다. 물론 훈련의 난이도는 폭증하였다. 훈련을 하러 왔는데 투정을 부린답시고 사람이 망가지기 직전까지 굴려댄 것이다.

“거기! 오와 열을 똑바로 맞추도록 하게! 처지는 이가 생기지 않았나!”

“야 이 새끼들아! 왜구들이 니들이 지쳐서 멈추면 멈추는 허수아비더냐! 뛸 때는 뛰고 걸을 때는 걸어가란 말이다! 똥자루를 쌓아 올린 새끼들아! 그렇게 틈을 보이면 죽는다!”

“왜구들을 추포하는 일을 상상하고 발걸음을 옮기시오. 오열이 흐트러지면 틈을 탄 왜구들이 반격을 할 수 있소.”

말은 삼중으로 전달되었다. 무과 합격자가 기본적인 사항을 지시하면 훈련원 고참병이 이를 욕설과 비난을 포함하여 말하였고 다시 역관들이 적당히 검열하여 들려주었다.

석 달 동안 훈련을 반복한 명나라 병사들의 눈에도 독기가 올라왔지만 훈련원 고참병들의 눈에는 귀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격차가 있었기에 몸이 망가지기 직전까지 호된 교육이 이어졌다.

“그만! 정지!”

“멈춰라! 제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지 말고 편히 쉬어라!”

“멈추시오! 이번 훈련은 끝났소!”

입에서 단내를 풍기고 본래 사용하던 것 보다 두 배는 무거운 병장기와 등짐을 짊어졌던 명나라 병사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의 꿀 같은 휴식 동안 병사들을 조련하던 세 명은 건물 뒤로 돌아가 대화를 나눴다.

“제가 지시한 내용이 부적합한 점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만큼 가혹하니 훗날이 기대되는군요. 다른 이들은 너무 엉성하게 한계를 잡던데 이 정도는 훈련하여야 충분할 것입니다.”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사람에게 존대와 칭찬을 받은 이순신은 얼굴을 붉혔지만 엄연한 무과 합격자이며 4대손까지 양반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훈련원 출신들도 품계를 받지만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지만 역관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상국의 병사들이며 개중 하급 군관도 섞여 있었으니 욕설이 전달되지 못하게 검열을 한 덕분이었다. 결국 그는 한숨을 토하고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네는 명나라에 원한이라도 있나? 훈련원 병사들이 거칠다 하였지만 이렇게 거칠 줄은 몰랐는데 대다수가 험한 말을 늘어놓으니 내가 말을 전달하며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네.”

“교수(敎授 - 사역원 종6품 관원)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저도 분노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본래 무관들은 지금쯤 보직을 정하고 훈련에 매진하여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면 그놈의 유격인지 귀곡(鬼哭)훈련을 행할 때처럼 욕설을 하지 말고 진중하게 말하면 좋지 않겠나. 거기서는 잘 다독이고 타일러 주어서 편하였는데.”

지척에 있는 유격훈련장에서 비명과 고통에 겨운 신음이 들려왔다. 피투체조 어쩌고 하는 고함이 들린 이후 탄식과 원통한 곡소리가 들리니 훈련원 고참병도 안색을 찌푸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기서 욕설을 퍼부었다가는 불만이 폭발하여 난리가 벌어질 겁니다. 다시 하라 해도 거절할 고난이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잠시······ 저 양반 명나라의 장수가 아닌가?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있고 지금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화려한 백색 갑옷을 진흙으로 물들인 명나라 장수가 그물망을 오르다 손발이 꼬여 스무 장(7m)이 넘는 아래로 추락하였다. 그의 비명을 들은 고참병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말하였다.

“갑주를 보니 명나라의 지휘관인 척계광이라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듣자 하니 훈련원을 처음 이수한 이징옥 장군이 모든 훈련장을 돌파하였다는 말을 듣고 직접 행한다 했지요.”

“사람이 할 일이 있고 하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이징옥 장군님이야 전설적인 무인이시라 오십이 넘어서도 가능한 일이지요. 그나마 그물이 있으니 몸이 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몸이 상하지 않아도 척계광의 마음은 상하였다. 혼절하였다 그물 위에서 깨어난 척계광은 급작스러운 감기몸살에 시달리며 앓아누웠고 당분간은 훈련을 중단할 것이라 선언하였다.

보름이 지나 음력 11월이 되어 혹독한 겨울 추위가 닥쳐왔다. 명나라 장수들이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자신들의 틀에 맞추어 훈련원의 방식을 개량하는 동안 무과 합격자들도 본래의 교육으로 돌아갔다.

“많이 늦었지만 자네들의 보직을 정할 시일이 되었다네. 알다시피 무관 가운데 보직을 스스로 정하는 자는 스무 명에 불과하고 자리는 열다섯 개에 불과하네. 하지만 원하는 보직을 정하니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상위 합격자 20인만 모인 방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거 답안으로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문관과 달리 무관은 자신의 재능과 성향에 맞게 길을 정할 기회가 주어졌다.

기회라 하여도 기병을 담당하는 기마, 수군과 포병을 담당하는 화포 그리고 전반적인 병졸을 담당하는 보병만 있었지만 집중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오겸은 합격자 명단을 들고 이름을 호명하였다.

“이지시(李之詩), 자네는 갑과 장원이니 가장 먼저 보직을 정하게. 무엇인가?”

“기마입니다.”

“장수는 자고로 준마를 타고 전장을 호령해야 하는 법이네. 다음은 신립일세.”

“저 또한 기마입니다.”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 있는 19세의 청년 장수도 당연하게 답하였다. 하나같이 기병이라 답하고 총 순위 14위인 이순신의 차례가 되자 기병의 자리는 단 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상의 첫 근무지를 정하는 자리이며 여기서 다른 길로 들어서려면 적지 않은 손해를 겪어야 하리라. 하지만 이순신은 미완의 서적인 수성전수방략을 떠올렸다.

“다음은 이순신. 이순신 자네는 무엇을 택하겠는가?”

“저는 부족한 점이 많으니 화포를 택하겠습니다.”

“별일이 다 있군. 하필 택하여도 화포라 하였는가.”

훈련원 휘하의 화기도감 병사들이라면 화포를 우선시하지만 장수들은 화포를 담당하기를 꺼려 했다. 화포의 제원을 익히는 것도 어렵고, 경험이 많은 화기도감의 포대장들을 통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나머지 다섯 명 중 두 명이 기마, 셋이 보병을 택하고 모든 이들의 배정이 끝났다. 밖으로 나온 이순신의 등을 거세게 후려친 신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퍼부었다.

“여해 자네는 왜 화포를 택하였는가? 자네가 비록 기마에 능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장 멀리서 포를 쏘아대는 길을 택하였을 줄은 몰랐네.”

“나는 평범한 사람일세. 평범한 사람이 노력하여도 천부적인 자질이 필요한 기병을 다룰 수 있겠는가? 하지만 화포의 제원을 꿰고 아래 사람을 철저히 통솔하는 일은 가능할 것 같군.”

“쉬운 길을 내버려 두고 험난한 길을 가다니. 명장으로 이름난 남이 장군도 처음에는 기병으로 시작하여 수군을 인솔하고 화포를 매섭게 다루지 않았는가. 나는 자네가 대성할 것이라 믿으니 염려하지 말게.”

철릭을 휘적거리며 나아가는 신립의 모습을 보며 이순신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 여겼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화포를 담당하였던 하급 군관들이 일제히 군기시에 소집되었다.

“여해 자네는 병과에서 이등을 하였는데 어찌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군.”

“제가 택한 길이니 방도가 있겠습니까.”

군관을 소집한 정걸이 이순신을 보고 의아한 듯이 말했다. 무과 시험의 감독관이기에 이순신의 신상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당연히 기마를 택할 줄 알았던 것이다. 정걸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 것도 잠시. 실제로 군관들을 소집한 기대승이 등장하였다.

“화포의 길을 택한 이들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다른 일은 아니고 화포를 쏘는 방법을 연구하려 하는데 자료가 필요하여 자네들을 불러들였다네. 이 포가(砲架)를 보게나.”

철을 잔뜩 사용하여 벽력포나 뇌력포를 쏘아도 틀어지지 않을 것 같이 굳건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의 눈에 들어온 물건은 다른 무엇도 아닌 측면에 붙은 나침반이었다. 기대승은 서적을 내밀며 말하였다.

“내가 팔선(삼각함수)에 대하여 연구하다 좋은 사실을 알아냈다네. 화포의 각도를 올려 쏘면 팔선의 이치에 맞게 호를 그리며 날아가는데 이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지.”

“팔선이 대체 뭡니까?”

“산학의 한 갈래이니 익히게. 자네들은 좋든 싫든 이 포가를 사용하며 화약량과 각도 그리고 거리를 빠짐없이 기입하게나. 이를 통해 이치를 알아내면 석축과 목책을 넘어 화포를 적중시킬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네.”

이순신의 눈이 유성룡이 머물고 있을 머나먼 북방을 향해 움직였다. 수성전수방략은 희망사항이 아닌 자신이 보고 이론을 작성하던 현실적인 서적이었던 것이다.

기대승이 사라지자 다른 군관들이 푸념을 늘어놓으며 쓸데없는 일을 늘렸다 하였지만 이순신은 유성룡의 끝없는 지식에 감탄하며 자신에게 배정된 포가를 매만졌다.

#작가의 말

이순신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사람을 호되게 평가하였습니다.

정유재란까지 자신을 평범하다 여겼고 다른 사람을 자신 기준으로 평가하였는데 이 덕분에 난중일기에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내용이 많았지요.

물론 가장 냉정하게 평가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즉 극소수의 천재를 제외하면 죄다 이순신에게 부족하다 질책당하고 이순신 자신도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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