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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300화 (300/573)

근육조선 300화

2부 6장 4화 – 마을을 옮겨라

두 달이 흘러 음력 5월이 되었다. 파종이 끝난 밀이 한창 자라나는 와중에 한 달마다 오는 배가 아닌 다른 선박을 통해 조정에서 올라온 이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였다. 어의 김윤은이 보여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한낱 현감의 보고를 들으시고 먼 길을 건너 변방인 애단현에 순흔(김윤은의 호) 영감께서 당도하시니 불민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불민하단 말은 하지 말게. 내가 담재와 같은 증상을 가진 이들을 사방에서 찾아 열 명을 찾아낸 것이 전부였는데 이런 변방에 환자들이 넘쳐나니 확실히 알아볼 기회가 아닌가.”

현민들이 멀뚱멀뚱 보고 있자 자신이 데려온 의원 세 명에게 진료를 준비하라 시킨 김윤은은 단상 위로 올라가 고함을 쳤다.

“나는 내의원의 어의일세!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어 애단현의 현민 모두를 진맥하고 질병을 확인하려 하니 어서 나오게! 시침과 진맥 모두 값을 매기지 않을 것이네!”

이런 변방에 나라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어의가 당도하여 처방도 공짜요 시침과 진맥도 공짜라 한다면?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을 통솔하여 줄을 세우니 어느새 준비를 마친 이이가 다가와 악수를 나누었다.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알아차리다니. 이현 자네는 일을 만드는데 소질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일을 찾아내는 것에도 소질이 있군.”

“처음 현감으로 부임할 적에 광산이 있다 이야기만 들었지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받지 않아 납 광산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니까요. 더욱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으나 너무 늦었습니다.”

“이는 모두 조월진의 잘못이지. 처음에는 인수인계를 제대로 행하지 않았다 감봉을 당하였지만 백성들이 병에 시달리는 일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삭탈관직을 당할 것이네.”

관료로서 실책을 저지르면 직위해제 이후 승진이 막히고 외방만 떠돌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관행이며 명백한 범죄를 저지르면 형무소로 보낸다.

하지만 근무에 태만했다고 삭탈파직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주상전하가 애단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납을 찾아낼지가 궁금하였다.

“납의 독이 마을에 퍼진 것을 확인하였지만 이를 알아낼 방법이 문제입니다. 혹여나 서쪽의 광산에서 흘러나온 납을 알아낼 방법이 있습니까?”

“납은 금보다 가벼운 물건이지만 다른 무엇과 견주어도 확실히 무겁지. 그러하니 사금을 걸러내듯이 각지의 흙을 퍼내어 걸러내면 마지막에 납이 남지 않겠는가.”

광산사의 관원들은 서쪽의 광산으로 떠났고 나는 사람들을 통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어느 정도의 진료도 끝났고 짜증을 숨기지 않은 광부들이 돌아와서 투정을 부렸다.

“일을 쉬고 있으면 급료가 깎이지 않겠습니까? 그러하면 내년에 제 큰아이를 서당에 보낼 여유가 없어집니다.”

수명 좀 깎이고 돈을 벌어서 훗날을 기약하고 말자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라 설득할 방법이 없었는데 젊은 의원은 광부들 앞에 서서 이들에게 진료를 받으라 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하였다.

“납을 오래 다루면 근육이 손실됨은 물론이요······.”

“곡괭이질을 쉴 새 없이 하니 근육이 손실되는 대로 단련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일한 이후로 근육이 자라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납독으로 인하여 양기가 사라진다네. 환후가 중한 이들이 일 년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서지도 않고 반응도 하지 않더군. 참으로 애석한 일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원에서 가정을 꾸리며 일하러 온 광부들이거나 결혼 자금을 준비하려고 일하는 한창대의 사람들이었다. 의원의 말이 끝난 순간 모두의 표정이 변하였다.

“안에 계신 분이 어의라 하셨지요! 제 몸에 납독이 스몄는지 확인하여야 합니다!”

진맥을 편하게 받자면서 모두 웃통을 까뒤집은 것은 물론이요. 조금이라도 몸을 훤히 보여야 한다면서 냇물에 뛰어들어 비누로 몸을 비비는 이들도 있었다. 젊은 의원이지만 머리가 좋은 것 같아 늦게라도 인사를 나누려 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니 심계가 깊은 분이 분명하구려. 서로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풍천 유씨의 이현이고 호는 서애요.”

“아직 실력이 부족하여 광제원(廣濟院 - 의료 통합기관)의 봉사(종8품)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양천 허씨의 청원이며 호는 구암이지요.”

“구암? 구암이라 하셨소?”

구암 허준이었어? 입신체비로 인한 부상 덕분에 의원의 소모도 늘어났으니 출세가 빠를 것이라 예상은 하였는데 벌써 광제원의 소속된 의원이라니. 앞으로 많이 얽힐 것 같아 악수를 나누니 안에서 김윤은이 모두를 소집하였다.

“결과가 나왔습니까?”

“삼백 명의 사람을 더 진맥하기 전에 말해주겠네. 이 마을은 확실히 납독에 오염되었으며 자네의 말대로 납의 독성은 몸에 계속 쌓이는 것이 분명하네.”

김윤은이 내민 서류에는 병자의 연령과 숫자가 적혀 있었으며 증상도 포함 되었는데 명백히 나이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마흔이 넘어갈 무렵에는 복통과 두통으로 시작하여 쉰이 되면 입에 쇠붙이의 맛이 느껴지고 예순이 넘으면 사지가 쇠약해지고 경련한다네. 그리고 율곡 자네도 이야기할 것이 있지.”

“그렇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마을의 밭이나 계류지 그리고 강물의 진흙을 떠다가 확인하여 보았는데 밀밭의 배수로에도 납의 분말이 있었습니다.”

이이는 화공원 사람들을 시켜 이미 조사를 마쳤는지 제련하여 만들어 낸 것 같은 손가락만 한 납덩어리와 광택이 보이는 자잘한 결정을 대나무 통에서 꺼내 보여주며 말하였다.

“애단현은 장마철에 차오르는 물골에 보관하였다가 수차로 끌어올린다네. 당연히 진흙과 물이 뒤엉켜 올라오니 강에 있던 납이 밭에도 스미지 않았겠는가. 그러고 보니 광산은 어떻게 되었는가?”

광산사의 관원들은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지도 않고 보고를 올렸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보고의 내용은 내 예상보다 심각하였다.

“광산 인근에 목탄을 넣어 납을 제련한 구덩이가 수백 개는 되었으며 더 이상 찾아내기 힘들어 돌아왔습니다. 개중에 장마에 구덩이의 내용물이 비워진 것은 삼 할에 불과하였으니 앞으로 두 배의 납이 강으로 흘러들 것입니다.”

“앞으로 두 배라 하였는가. 이대로 마을이 유지되었다가는 훗날에는 서른이 되기도 전에 납독이 스며들어 증상이 나타날 것이네.”

참담한 일이었지만 심지어 광부 가운데서 칠십여 명이 가벼운 납중독 증상이 발견되었다. 결국 최종 보고서를 정리하여 박순에게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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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은 내 얼굴을 다시 보더니 짜증과 분노를 집어삼키며 뜨거운 커피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려 내뱉었다.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하고 장계를 읽고 나서는 나를 딱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였다.

“안타까운 일이야. 마을 전체에 납독이 스몄다면 마을을 통째로 옮기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으나 준비도 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자네가 준비하여 후임자에게 일을 넘기게나.”

“우연하게도 제가 업무에 힘쓴 결과 대부분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어떻게든 말년에 고생하기 싫어하던 박순은 나를 미친놈 보듯이 노려보았다. 뭐라 말을 못 하고 입을 벙끗거리면서 눈을 굴리다가 격하게 분노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단순한 집도 아니고 이백 호일세! 자네의 임기 이내에 마을을 옮긴다 하였으면 튼튼한 목재를 최소한 일천 재(材)를 준비하여 두어 매년 일백 호는 만들어야 할 것이네!”

“일천 재에 가깝게 준비하였습니다. 요역으로 베어낸 목재가 사백 재요, 광부들을 한 달간 시켜 베어낸 목재가 팔백 재인데 땔감으로 쓰고 남은 참나무가 일천 재에 달합니다.”

그늘에서 말리는 목재로 새 건물을 만드는 데 써야지. 나무가 두툼하니 미적으로 부족한 갓쇼즈쿠리 말고 제대로 된 통나무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박순은 기가 차다는 듯이 다음 질문을 퍼부었다.

“농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목재는 충분하여도 요역을 행하면 작물의 소출이 급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이를 모두 경원부에서 벌충한단 말인가?”

“숲을 베어낸 다음 감자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 해가 지났으니 감자가 무성히 자라 밀의 소출이 부족해진 양을 벌충할 것입니다. 이후에 감자밭을 개간하면 충분한 일입니다.”

“감자는 겨울을 지내는 동안 독이 스미지 않나!”

“제가 어린 시절부터 다뤄온 감자인지라 색이 연하여 독이 스민 감자를 단번에 골라낼 수 있습니다. 설령 독이 스며도 전분을 뽑아내면 국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감자도 많이 길러봤다. 현대보다 성장은 더디지만 음력 6월에 씨앗을 뿌리고 겨울을 나게 하면 손톱만 한 씨감자에서 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라나 식량으로 쓸 만한 크기가 된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지만 내가 마을을 만드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 결국 박순은 임기를 석 달 남기고 쏟아진 업무에 탁자를 부술 듯이 내려치고는 말하였다.

“그래 아주 잘 알겠네! 그러하면 자네에게 일임할 것이니 앞으로 경원을 오가며 필요한 물목을 작성하여 예산을 낭비하지 말게! 내 후임자에게 자네를 면밀히 감사하라 할 것이야!”

“생각하여 보니 화약도 필요합니다. 묵어서 굳어진 화약도 나쁘지 않으니 이것도 가져갈 수 있습니까?”

“이 망······ 자네는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것인가! 화약? 화약을 대량으로 사용하려면 병마절도사에게 찾아가게! 자네를 믿을 수 없으니 사람을 붙일 것이야!”

내가 나가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방방 날뛰던 박순은 그래도 착실한 사람을 붙여주었다. 착실하기보다는 내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의 후임자를 통해 나를 문책하려는 목적이겠지만.

절도사는 혼쾌히 화약 이백여 근을 내주었다. 본래 화약을 쌀뜨물에 녹이고 다시 풀어내야 하지만 폭발력이 약해져서 비료로나 쓴다 하던가. 가벼운 납중독 증상으로 광산에서 일하기를 거부한 광부들을 소집하여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마을을 옮길 터를 만들 것이니 자네들이 힘써주게나.”

“이거 땅을 파는 일은 잘합니다만 이런 야지(野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바위는 구멍을 내고 나무못을 박아 물을 부으면 쉽게 쪼개지지만 그루터기가 문제군요.”

숲을 개척할 때에 가장 난해한 일은 그루터기를 파내는 일이다. 뿌리를 도끼와 곡괭이로 찍어내고 황소를 여러 마리 동원해서 뽑아내고 다시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하지만 애단현은 맹수의 습격으로 소의 숫자가 적었지만 알고 있었기에 화약을 챙겨왔다. 광부를 시켜 그루터기의 중앙에 깊은 구멍을 낸 다음 굳은 화약 덩어리를 넣고 점화약을 약간 부은 다음 심지를 꽂았다.

“자고로 그루터기는 터트리면 조각이 나서 쉽게 뽑을 수 있다네.”

나는 오백 년 가까이 자연을 파괴한 법을 축적한 현대인이고 현대에도 지나치게 큰 그루터기는 폭약으로 파괴해 소형 크레인으로 뽑아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굉음이 들리며 땅이 진동했고 그루터기는 여러 갈래로 쪼개져 희뿌연 연기를 뿜어냈다. 거대한 그루터기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으니 광부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곡괭이와 도끼를 들었다.

고작 두 달이 지나기도 전에 숲이었던 곳은 집을 짓기 충분한 터가 되었다. 사람이 많으면 토지정비도 하고 평탄 작업도 하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으니 여기서 그만둬야지. 8월에 경원부로 돌아가 새로운 물건과 인부를 받아오려 하였다.

“자네가 조정을 또 뒤엎은 유성룡인가? 다음 달부터 새 경원부사로 부임할 김국원일세.”

“명성이 자자하신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순을 대신해 나를 반갑게 맞이한 이는 새 경원부사인 김국원, 이름은 김종인이었다. 본래 역사에는 없을 김시습의 손자라 하였는데 신장이 훤칠하다 못해 내가 올려다볼 정도로 거구인 데다 은으로 테를 두른 안경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평상시에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자하여 외관으로 부임하여 사방을 떠도는 이이며 아버지가 한때 벗으로 여겼지만 도저히 견줄 수 없다 여긴 사람이었다. 그는 내민 장계를 읽어보더니 안경을 고쳐 쓰고는 말하였다.

“일이 빠르고 매서운 사람이니 내가 자네를 통제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군. 본격적으로 건물을 세울 작정이라 철물과 대목장들이 필요하다 하였는가?”

“제가 세울 건물이 대부분 통나무를 켜내어 만들 것이라 품이 제법 많이 들어갑니다.”

“품이 많이 들어가도 좋은 일이지. 합장집(갓쇼즈쿠리)은 만들기는 편해도 짚단이 많이 들어가 애단현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네.”

건축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아버지가 유능하다 칭찬할 만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아도 밀짚이 부족해서 고사리를 꺾어 엮는 집이 있었으니까. 그는 서류를 모두 읽어보고 말하였다.

“소모되는 철물을 대략적으로 계산하였으니 이 할을 할증하여 보내주겠네. 그리고 내가 부임한 직후라 대목장을 아는 이가 적어 하마 니씨에게 일임해야 하겠군.”

“하마 니씨는 철물을 만드는 가문이 아닙니까?”

“철물의 태반은 병영으로 보내져 병장기를 만드는 데 쓰이지만 다른 철물은 대목장이 사용하는 일이 많아 인연이 있지. 자네가 아는 사람이라 하였으니 헛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네.”

새로 부임한 양반은 내 마음을 알아주니 다행이었다. 아니면 나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에 몰두하는 사람이거나. 다시 니양수의 집으로 향하니 의외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고 이게 누구신가? 이현전의 학사분이 아니십니까?”

멧돼지 새······ 아니, 원균이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욱 두툼해진 몸으로 웃통을 벗은 채 나를 맞이하였다. 이미 내수린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고함이 울렸으며 원균도 내수린을 한 판 치른 것 같았다.

“평중을 보게 되어 참으로 기쁘군요. 그런데 이런 변방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별다른 일은 아니고 무관인지라 변방에서 근무할 일도 있었지요. 심원목(유주노사할린스크, 율도의 중심지)에서 수군을 다루며 제법 명성을 쌓았습니다. 덕분에 여기서 내수린도 해 보고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법 명성을 쌓았다 하는데 북인들이 평중! 평중! 하면서 그의 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원균 이놈은 어느 사이에 북방에 무관으로 부임하여 그 덩치를 활용하여 내수린을 실시하며 북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놈의 본성을 아는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 이이도 지나가는 말로 ‘평중 그 친구는 너무 난폭하여 탈이지만 용맹한 장수의 자질이 보인다’라고 사람을 속일 재능은 있었다.

훗날이 되어 임진왜란 같은 전쟁이 벌어지면 북인들을 이끌고 칠전량 해전의 몇 배에 달하는 끔찍한 참사를 저지르지 않을까. 침을 꿀꺽 삼키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 원균에게 다가가 아부 아닌 아부를 시작하였다.

“이전보다 근육이 늘어나셨으니 무인의 자질이 보이는군요. 제 체격이 보잘 것 없어서 위용을 드러낼 수 없지만 이런 담대한 체격이 가능한 입신체비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입신체비라 하셨습니까? 혹여나 율곡 어르신께 배운 입신체비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창안하였지만 근육이 부족하여 시행하지 못한 입신체비지요.”

현대에서 속칭 ‘썸’을 타다 대실패한 영직이가 울분을 토해내며 나와 술을 마시며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케틀벨을 가져가 저글링을 하였는데 상대가 기겁을 하며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하였지.

여기서는 케틀벨 대신 석쇄를 사용한다. 열다섯 근의 석쇄를 양손에 들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서로를 교대로 주고받으며 사방으로 돌리니 원균도 감탄한 듯이 박수를 쳤다. 전완근이 뻐근했지만 원균에게 석쇄를 건네주며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제가 고작 열다섯 근을 양손에 드는 일이 전부였지만 이렇게 체격이 좋으시니 서른 근, 혹시나 마흔 근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이거 참 좋은 입신체비이군요. 역시 이현전에 계신 분이시니 학식이 빼어나서 제가 배움을 얻었습니다.”

“용맹한 장수라면 병장기를 휘두르는 일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더욱 무거운 석쇄를 굴리시면 병장기를 깃털처럼 휘두를 것입니다.”

원균은 나를 속이는 데 성공하여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석쇄를 가져다가 이리저리 굴리며 주고받았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건 영직이가 강력히 경고할 만큼 위험한 묘기이다.

위에 발등을 보호할 도구가 없이 실수를 하면? 수십㎏의 돌덩어리가 발등을 찍고 간단히 개방골절을 일으킨다. 이 시대에는 사실상 절름발이가 되는 것이다.

원균의 성품을 보건대 술을 마시고 신나게 석쇄를 휘두르다 한 번쯤은 놓칠 것이고, 그게 발등에 떨어지면 불구가 되어 무관은커녕 한직이나 전전하다가 사고를 치고 파면당할 것이다.

이후 정신없이 마을을 만드느라 돌아다녔다. 설계에 익숙하지 않은 목수들을 가르치고 세부 사항을 정하며 현의 업무를 하느라 임기도 어느새 육 개월이 남을 무렵 거의 모든 일이 끝나갔다.

#작가의 말

1부에서 영직이가 케틀벨 저글링을 안 한 이유는 저런 처절한 실패 때문이었습니다...

다음화에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건너뛰고 이 시점의 한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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