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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99화 (299/573)

근육조선 299화

2부 6장 3화 – 현감님 현감님(3)

많은 생각이 맴돌았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동원해 항구를 확충한다? 현재는 1564년 음력 10월이니 양력으로는 11월 초이며 다음 달부터 급격한 추위가 밀려온다. 인부들이 떼죽음을 당하겠지.

“내수린을 시행하는 일이 당연한가. 이게 다 내 잘못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현감님께서는 학식이 뛰어나신 분이니 내수린 실력도 뛰어나실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거친 이들이라 하여도 입신체비를 배운 만큼 내수린 실력도 빼어나다 하셨습니다.”

고란의 말대로 나는 병사도 훈련할 수 있고 입신체비를 통해 지식을 가르칠 수 있으니 당연히 내수린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기대 아닌 기대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고란이 덧붙인 한마디를 들으니 도저히 피할 구석이 보이질 않았다.

“혹여나 몸이 상하더라도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일입니다. 애단현의 의원은 탕약은 서툴러도 사냥꾼을 치료한 일이 많아 환부를 치유하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광부들의 힘을 빼놓으려고 북쪽 물골의 나무를 추가로 벌채하고 그루터기에는 끓는 물을 부어 뿌리를 말렸다. 하지만 광부들은 고된 노동에도 내수린이라 중얼거리며 내 실력을 가늠하고 있었다.

날이 추워져 숙소에만 머무는 광부들을 위해 예전에 해보았던 승근도를 순흥군이 맨몸운동으로 변형한 녀석을 전파했다. 이걸로 좀 힘이 빠질까 했는데 할 일이 없으니 몸을 단련하여 역효과만 났다. 결국 음력 12월에 눈이 내렸다.

“마구니의 똥가루가 내리는구나.”

“마구니라뇨 누가 듣겠습니다! 눈이 내리면 풍경이 달라지고 산천이 하얗게 물들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눈이 내린 다음 며칠간은 날이 포근하니 좋지요.”

산천을 모두 메울 기세로 내리는 폭설을 보면서 이방은 나에게 아부 아닌 아부를 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내수린을 생각하니 밥을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슬쩍 광부들의 거처로 가보니 한 광부가 얼룩덜룩한 몸으로 말하였다.

“이번에 분장할 녀석은 칸한군일세! 타이순 칸과 대총 한과 수양대군의 끝 글자만 합친 것이지! 이 정도면 현감님에게 대적할 수 있겠는가?”

여기의 내수린은 프로레슬링에 가깝다. 강해 보이는 분장을 하고 닥치는 대로 내수린 기술을 걸어버린다 하더라. 하지만 킹왕짱 같은 이름은 이해할 수 있는데 분장을 하는 이유는 뭘까. 고란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오십여 년 전에 복속을 거부한 북인들이 난동을 벌이고 산으로 도주하였습니다. 하지만 훈련원 병졸들이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이들을 제압한 이후 몸을 물들이는 일이 강함의 상징이라 하였지요.”

이런 끔찍한 혼종을 보았나! 훈련원 병사 가운데 임해도감에 소속된 이들의 특기인 위장술을 몸에 물감을 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다니. 결국 내수린을 시행하기 충분한 눈이 쌓였고 광부들 모두 관아로 집결하여 환호성을 질러댔다.

“현감님! 내수린을 시행해도 몸이 다치지 않을 만큼의 눈이 쌓였습니다!”

“현감님! 병방 양반과 함께 이 대 이로 겨루는 내수린을 내일 아침부터 합시다!”

모두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게 광대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무뚝뚝한 얼굴로 내수린 준비를 하는 고란을 보면서 분노를 삭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단 한 번의 경기로 상대를 질리게 만들면 앞으로 내수린의 ‘ㄴ’ 자도 꺼내지 않으리라. 이방이 정성스럽게 모아둔 안료를 보면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녀에게 검게 물들인 사슴가죽을 가져가서 고란의 복장을 먼저 만들어주었다.

“내가 만든 대로 병방이 사용할 의복을 만들어주게. 정확히는 코 위 모두를 덮는 가면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이라네.”

“네? 이거 토끼입니까 뭐입니까?”

“편복(蝙蝠 - 박쥐)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라네.”

처음에는 고란의 호에 걸맞게 코만도와 비슷한 복장을 만들어주려 하였는데 특색이 없으니 ‘그 영웅’을 본뜬 편복인이 고란의 배역이었다. 조선시대의 박쥐는 부와 복의 상징이니 충분한 효과가 있으리라.

내 분장은? 다음 날 아침부터 흰 분가루로 얼굴 전체를 덕지덕지 바른 다음 눈에 시커먼 숯가루를 바르고 입가가 찢긴 듯이 붉은 안료를 칠하였다. 한양에서 가져온 거울을 보니 조금 부족하지만 ‘그 악당’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현감님 지금 대체 뭔······.”

“가세나. 자네는 편복의 힘을 본떠 죄인을 때려잡는 편복인이고 나는 편복인의 상관인 허 도령이라네.”

유성룡의 고향인 안동지방의 탈춤에 쓰이는 탈은 변한 역사에서도 존재했다. 개중에 도령 탈이라고 눈가에 시커먼 색을 칠하고 입을 찢어 턱을 덜컥거릴 수 있게 만든 탈도 있었는데 이거라 변명을 해보았다.

수양대군도 문화를 능멸했으니 같은 빙의자인 나라고 못 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 모습을 본 하녀가 혼절하고 이방도 뒤로 나자빠졌는데 알게 뭐란 말인가. 관아 밖으로 나서니 광부들이 모조리 침묵하였다.

“저기 현감님······ 지금······.”

“왜 그리 심각한가? 어서 내수린을 행하러 가보세나! 나는 안동의 허 도령일세!”

경망스러운 발걸음으로 경쾌하게 눈밭을 헤치고 가는데 고란도 내 모습을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두 걸음 떨어져 따라왔고 광부들은 겁에 질려 저 멀리 따라오고 있었다.

나름 많이 내수린을 해보았는지 경기장은 눈을 두껍게 쌓아 튼튼하게 만들었고 내가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 어릴 적 보았던 하회탈춤을 따라 했다. 상체를 벗고 하체도 짧게 입은 ‘그 악당’이 춤을 추니 사람들 모두 침을 삼켰다.

나와 내수린을 하려고 뽑아 왔는지 어느 정도 체격이 굳건한 광부가 사지를 풀며 고함을 쳤다. 그놈의 칸한군인지 뭔지가 나에게 달려들어 단숨에 허리를 낚아챘다.

“으럇차아아아아아아!”

하늘이 뒤집히며 차디찬 눈 속으로 사지가 파묻혔다. 적당히 낙법을 한 덕분에 상반신이 모조리 파묻혔는데 이놈들은 정도라는 것을 모르는지 내 다리를 잡고 뽑아내 전력으로 휘두르려 하였다.

“역차 돌리기나 받으십시오!”

창원부정의 자이언트 스윙은 전력을 다해 몸을 돌리는 것이고 이건 불안정한 눈밭에서 억지로 몸을 돌리는 것이다. 속도가 형편없이 느려서 양팔을 눈 속으로 박아 넣으니 상대의 다리가 엉켜 자빠졌다.

“왜 기술을 걸지 않는 것입니까!”

“진정으로 뛰어난 사람은 힘을 다 드러내지 않는 법이지. 발은 손보다 강하다네!”

상대의 가슴팍을 발로 거세게 밀쳐 자빠트리고 가만히 서서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으니 상대는 분통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잡고 폭풍메치기를 날렸다. 창원부정에게 당했을 때에는 폐가 찌그러져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여기서는? 좀 아프다.

“젠장! 제대로 내수린에 임하란 말입니다!”

“이게 내 방식일세. 사람이 고통을 받으면 조금 이상해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럼 고통 더 받아서 한 바퀴 돌아 멀쩡해지십시오!”

상대도 나름 머리를 굴렸다. 쓰러진 나에게 전신투(바디프레스)를 날리니 눈이 충격을 모조리 흡수할 수 없어 창자가 쥐어짜 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작전대로 일어서는 상대의 명치에 무릎을 꽂아 넣고 머리를 잡아 두골헌(헤드락)을 걸었다.

“끄어어억! 이런 힘을 가지고서도 어찌 내수린을 대충 하십니까!”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일세. 내수린을 한다 하였지 그 이상을 지킬 연유가 있던가?”

“제발 좀 제대로 하란 말입니다!”

괴력으로 내 팔을 풀고 배신락(백 바디 드랍)을 날렸지만 생소한 싸움법에 상대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에도 온 몸을 던져가며 처절하게 나를 공격하였지만 나는 방어만큼은 충분히 배웠다.

내 몸에 작렬한 전신투가 열 번을 넘어갈 무렵. 상대는 전신에서 땀이 솟구치고 다리를 덜덜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미 분장이 지워져 털갈이하는 닭 몰골이 되었지만 나는 땀이 솟아오르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내수린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이 웃지 않는가? 익살은 최고의 약이니 최고의 내수린이지. 허 도령은 노여움을 받아내고자 몸을 불사른 사람이었는데 나 또한 허 도령을 본받을 것이네. 편복인! 그 기술을 날릴 것이니 어서 오게!”

이러다가 ‘그 영화’에 나오는 ‘그 악당’이 두들겨 맞기를 좋아하는 변태인 허 도령으로 나올지도 모르지만 뭘 어쩌겠는가. 여하튼 고란의 거대한 등을 밟고 뛰어올라 종극,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기술을 작렬시켰다.

“오성와락!(파이브스타 프로그 스플래쉬)”

아내에게 살아남기 위해 하체를 배우고, 이이가 중점적으로 복근을 단련한 덕분에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튼튼한 복근으로 상대의 가슴을 짓뭉개니 항복이라 말하였고 승부는 나의 승리로 끝났다.

“역시 현감님이시다! 오성와락을 시도하다 배가 터져 죽은 사람이 있었는데!”

“체격은 작아도 훌륭한 복근을 보세나! 두툼한 광배근도 보게! 학식이 깊으면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거라네!”

나에 대한 찬사와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변칙적인 방식으로 제압하면 더 이상 내수린을 하자는 이들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도 현감님과 내수린을 할래!”

“새로 부임한 병방도 체격 하면 대단하잖아! 나도! 나도 할래!”

분명 내수린을 처음 할 때에 흥을 돋우기 위해 현감이 참가한다 하였는데 어느새 나를 쓰러뜨리기 위한 사람들이 서로 힘을 겨루며 예선전을 치르고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까지 끝없는 내수린이 이어졌다. 나는 세 명을 상대한 이후 지쳐 쓰러졌으며 이후에 고란이 분노하여 네 명을 상대하고 같이 혼절하였다 하더라.

광부들은 이후에 나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내 앞에서는 내수린에 대한 이야기도 금하였고 내년에는 돈을 모아 내수린꾼을 불러오기로 했다. 물론 나는 한 달 동안 정양하느라 밖을 나서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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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은 겨울도 끝나 봄이 되었다. 마을에 쌓인 눈이야 알아서 녹을 것이니 아직 다 녹지 않은 강물로 대충 쑤셔 박았는데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생겨났다.

“올겨울 세 명이 명을 달리하였습니다. 한 명은 일흔일곱의 노인으로 관아에서 약을 받아갔지만 폐병과 중풍이 악화되어 사망하였으며 다른 둘은 집이 무너져 동사한 이였습니다.”

너무 변방이라 업무도 별로 없으며 마을 최고령자가 병사한 상황이라 직접 장례에 참석하기로 했다. 고인에 대해 예의를 차린 다음 상주에게 물어보았다.

“요즈음 겨울이 혹독하니 삼 년을 더 살아 벼슬살이를 해볼 사람이 세상을 떠나니 안타까운 일이군. 그나저나 폐병으로 돌아가셨다는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던가?”

“부친께서는 몇 년 전부터 풍(風 - 뇌일혈)에 시달려 사지를 가누지 못하였지요. 탕약을 드셔도 차도가 없으니 방 안에만 있었고 결국 폐병에 시달려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상주는 경원에서 일을 하다 와서 사투리가 적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을 최고령자의 장례인지라 마을 사람 대다수가 참석하였으며 사냥꾼들마저 장례에 참석하니 내가 와도 좋은 일이 아닐까.

고인에 대해 마지막으로 인사를 올리고 다른 노인들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내가 현감으로 있으면서 장례에 참가할지도 모르니 살아생전 모습을 봐야 하리라. 나와 눈이 마주친 노인이 부축을 받아 일어서서 인사를 올렸다.

“현감님이 여기 행차하시니 참으로 좋은 일입네다.”

“몇 년이 지나면 벼슬을 얻을 이를 떠나보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 와 보았소.”

이 노인도 중풍을 앓고 있었는지 아들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부축하고 있었다. 모두 일어나 인사를 올리는데 여섯 명의 노인 가운데 네 명이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남은 약재를 챙기던 의원을 불러 물어보았다.

“지금 확인하니 노인 가운데 넷이 사지를 가누지 못하는데 이 지역에서 중풍이 흔한가?”

“열 명가량이 중풍을 앓고 있으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본래 중풍은 화열(자극, 스트레스)나 기허(심한 피로)를 비롯하여 원인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우연이라 하자니 너무 빈도가 높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사촌마을에서도 중풍 환자가 있었지만 두 명에 불과하였으니까. 그리고 중풍이 일어났는데 사지를 가누지 못하는 선에서 끝난다고?

중풍의 대표증상은 사지가 마비되는 것이지 탈력이나 경련이 아니다. 멀리 마을 서쪽에 있는 광산에서 광석을 재련하느라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니 예전에 보았던 사람이 떠올랐다.

“담재 어르신의 증상과 일치하잖아!”

“네? 담재라니요? 어떤 분이십니까?”

“스승님의 벗이시며 납을 다루시다 몸이 상하여 사지를 가누지 못하는 분이네! 지금 관아에 보관된 처방전을 확인할 것이니 어서 따라오게!”

지금까지 광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자를 배정하여 보름에 한 번 광산으로 옮기는 일이 전부이며, 숙련된 광부들이라 광석도 알아서 제련해서 통나무 속에 넣어 물로 흘려보냈으니까.

하지만 광산이 납을 사용하는 광산이라면? 그 납이 천천히 축적되어 젊은이들은 멀쩡해도 노인이 되면 중독 증상이 발현된다면? 의원도 심각한 표정으로 처방전을 골라내 건네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두통으로 시작하여 복통과 창백함 그리고 사지의 경련으로 증세가 악화되었다. 의원을 쳐다보니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하였다.

“제가 다른 질병을 중풍으로 오인하여 처방한 것입니까?”

“아닐세.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내의원(內醫院 - 궁중 의원)의 의원들도 어떠한 병인지 증세를 찾아낼 수 없었으니 자네가 모를 이유가 있었네.”

주상전하가 나를 머나먼 변방으로 나를 보냈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세자의 거처를 뒤엎어 버린 것에 의한 징계라고 여겼지만 애단현에는 납 광산이 있다!

주상전하는 김인후를 불구로 만든 납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으니 나를 보냈으리라.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육방관속을 소집하고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다.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납의 해악이야 최근에 들어 알고 있다지만 물길에 섞여 흘러온 납을 조금씩 먹어도 납이 몸에 스며들어 해를 입힌다는 말씀이십니까?”

“믿기 힘들어도 도리가 있겠는가. 지천명(50세)이 넘어가면 증상이 서서히 생기고 이순(60세)이 넘어가면 대다수가 중풍과 유사한 병에 시달리니 납이 몸에 쌓이는 것이 분명하네.”

육방관속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형방이 사람을 보내 광부를 불러왔고 그에게 광산의 상세에 대해 확인했는데 나오는 말이 가관이었다.

“광산에서 캐내는 것은 방연광(황화납 광물)입니다. 제련할 적에는 땅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목탄을 넣어서 불을 때지요. 그러면 납이 녹아서 아래에 깔립니다.”

“불이 꺼지고 나서 아래에 깔린 납을 캐낸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위에는 재가 뜨고 중간에는 녹지 않은 광석이 뜨는데 이를 깨어내어 납만 추려 뭉치고 나머지는 본래 구덩이에 대충 묻어둡니다.”

이 지역은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며 폭우가 구덩이에 스며들어 밖으로 빠져나오리라. 강 전체가 납으로 오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해서 광산을 폐쇄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당연한 답이 돌아왔다.

“서쪽의 납 광산은 소출이 빼어납니다. 광맥이 땅 얕은 곳에 드러나 있으니 여기서 캐내는 납만 하여도 한 해 구천 근에 달하고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광산을 폐하면 보총 탄환이 부족한 지경이겠군. 결국 답은 마을을 옮기는 것 외에는 없다네.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부사 영감께 말씀을 올려보고 오겠네.”

본래 사람을 보내 보고를 하면 끝날 일이지만 이번 일은 사항이 워낙 중대하기에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다. 박순은 설명을 듣고 나를 씹어 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자네는 도대체 일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자네가 있는 곳에 일이 생기는 것인가! 지금까지 육십여 년 동안 문제가 없는 광산에서 광독이 나와 개천을 오염시켰다 하였는가?”

“엄연히 사실이기에 저도 이렇게 답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임기 말년에 상상하지도 못한 사태에 휩쓸린 박순은 이마를 움켜쥐더니 생각에 잠겼다. 경원부에 소속된 관원들도 내가 올린 장계와 처방전을 확인하고 결론을 내렸다.

“조정에 장계를 올려 상황에 대해 면밀히 보고하겠네. 하지만 광독이 아닌 돌림병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면 자네가 온전히 감내할 것이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만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하여 내의원에 속한 이와 화공원 그리고 광산사(농조의 속아문, 광산업 전담기관)에 소속된 관료들도 불러주십시오.”

박순은 내 얼굴을 보며 뭐라 욕설을 말하려다가 이를 악물고 쓰던 장계를 갈기갈기 찢더니 새 장계를 작성하였다. 제발 내가 파직당하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이미 내가 이긴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말

유성룡은 저 날 57번의 전신투를 당하고 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머나먼 변방까지 유성룡을 보낸 이유를 드디어 알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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