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98화
2부 6장 2화 – 현감님 현감님(2)
애단현은 ‘ㅗ’ 모양으로 형성된 골짜기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주민인 우데게 사람들이 옛 발해의 유적지의 돌을 빼어 마을의 주춧돌로 삼았다 하였다. 북쪽과 서쪽은 병사들의 주둔지로 쓰이는 건물 외에는 모조리 울창한 숲이었다.
서쪽 산에서 아련하게 총소리가 들리니 신나게 호랑이를 잡고 있겠지. 어제는 암호랑이를 잡았다 하던가. 벼농사를 짓는 남부지역에서 이 시기에 요역(徭役)을 시킨다 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는 밀농사를 짓는 고장이며 내가 도착한 직후 밀의 수확을 마쳤다. 작물을 모두 수확하고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요역을 시행하겠다 말하자 이방이 쭈뼛거리며 물어보았다.
“이미 수확을 마쳤으니 한창 풍족할 시기입니다. 다만 겨울 준비를 할 것이니 요역이 너무 길어지면 아니 됩니다.”
“염려하지 말게나. 그저 북쪽에 난 물골을 따라 나무를 베어내고 수풀을 뒤엎을 것이네.”
자연은 보존되어야 하지만 현대의 기준이다. 이 시대에는 자연이 강해도 너무 강력해서 많이 파괴해야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으며 이런 변방은 더욱 그렇다. 물론 명분이 있어야 하니 나도 현대에서 봤던 다큐멘터리를 떠올리며 말하였다.
“내가 산군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삵은 본 적이 많다네. 삵은 물을 좋아하고 물길의 옆에 난 수풀의 그늘을 따라 거니는 것을 보았는데 산군의 행동도 유사하지 않겠는가.”
“듣고 보니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제가 젊을 적에 사냥꾼으로 일하여 보니 산군들을 잡을 적에는 물가인 경우가 제법 있었지요.”
젊고 덩치가 큰 고란에게 밀려 병방(兵房)에서 형방(刑房)이 된 나이 지긋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하였다. 내 근거? 호랑이의 생태는 모르지만 현대에서 보호구역 건축설계를 할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 이 설계에서 외부공간이 수류를 침범하고 있으니 야생동물의 서식처가 파괴되고······.]
다른 이들이 허가한 설계를 환경 전문가들이 반발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당시에 들었던 주장을 정반대로 하면 자연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땅을 놀릴 이유도 없었다.
“새 땅에는 내가 가져온 감자 씨를 뿌리면 소출이 제법 나올 것이네. 또한 포상을 내릴 것이며 곡식을 풀어 미주(米酒)와 설탕을 잔뜩 넣은 떡을 내오면 좋겠군. 튼튼한 이를 가려 뽑아올 수 있겠는가?”
“지금 설탕이라 하셨습니까? 그 귀한 설탕을 어찌 가져오셨는지요?”
“인연이 있어서 가져왔다네. 건포도와 설탕을 섞어 떡을 쪄내면 아주 달콤할 것일세.”
“힘이 좋은 이들로 오십 명을 뽑아올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육방관속들도 침을 꼴깍 삼키고 무뚝뚝한 표정의 고란도 표정이 변하니 북방에서 설탕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제주도에서 기르던 바나나와 비슷한 기호식품이겠지. 삽시간에 소집된 인부들을 이끌고 북쪽 골짜기로 향하였다.
“항시 경계를 늦추지 말게나. 혹여나 산군의 흔적이 발견되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고.”
“경험이 없는 산군이라면 흙을 밟고 수풀을 넘나들며 털을 남기지만, 경험이 많은 산군이면 냇가의 돌을 밟고 움직이니 흔적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병사와 고란 그리고 사냥꾼으로 일했던 형방이 맨 앞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후방에서 병사 몇 명이 호위하는 인부들이 나무를 쉴 새 없이 베어냈다.
북방의 자연림은 얼마나 강한지 자연이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멀리서 뛰어다니던 약한 노루를 보는 것도 잠시, 사방에서 모기가 달라붙어 사지를 물어댔고 가려움을 넘어 쓰라림이 밀려왔다.
“이런 젠장! 산모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군!”
장정 세 명이 안아야 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는 물론이고 수풀도 억세기 그지없어 아예 도리깨를 들고 두들겨 수풀을 꺾은 이후 도끼로 후려칠 지경이었다. 나도 손을 놓을 수 없었으니 사방을 돌아다니며 지시를 내렸다.
“소나무는 그대로 말려서 땔감으로 쓰고 참나무는 남겨두어 목책을 만드는 데 사용하면 좋을 것이네. 그러하니 열두 자(4.2m) 길이로 잘라두게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지시를 내리니 모기가 달라붙지 않아서 차라리 좋았다. 그나마 육방관속에 속하는 이들은 한양과 비슷한 사투리를 사용하여 내 말을 알아들었지만 문제는 백성들이었다.
“예전 현감님은 딴따버리처럼 재물을 푸는 일도 적으셨습메다. 하지만 새 현감님은 하나하나 배워주시며 와자자하게 움직이시니 써거지겠습세다.”
“무슨 말인지 뜻은 알겠지만 정확히는 모르겠군. 여하튼 참나무는 함부로 다루지 말게.”
등에 매어둔 보총이 걸리적거렸지만 형방은 내 생명줄이라며 한사코 착용하기를 원하기에 도리가 없었다. 물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모기에 물린 손발을 긁적거리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으면서 섬뜩한 기분이 들고 온몸의 털이 쭈뼛 솟구쳤다. 다른 이들은 눈을 돌려 사방으로 흩어지며 주변을 경계했다.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하필 바위에서 자라는 이끼를 밟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현감님!”
지척에 있던 수풀에서 소만큼 거대한 누런 덩어리가 튀어나와 내가 있던 바위를 덮쳤다. 이끼에 미끄러져 바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저 덩어리에 치어 목숨이 날아갔으리라.
“저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놈이 현감님을 노린다! 보총수! 쏴라!”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멍해지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병사들이 보총을 쏘았는지 둔중한 총소리가 들리며 총알이 바위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니들 사수 맞아?! 훈련을 어떻게 한 거야!”
“저렇게 날뛰는 놈을 어떻게 맞춥니까! 놈이 돌아와 현감님을 노린다! 어서 막아라!”
고란의 고함이 그치자마자 몸을 일으키고 전력으로 다른 이들에게 뛰어갔다. 보총의 장전에 시간이 걸렸고 뒤에서는 육중한 뭔가가 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와 오금의 힘이 풀리는데 형방이 내 바로 옆을 향해 보총을 쏘았다!
“적중했다!”
맹수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린 순간 전력으로 뛰어 병사들 사이에 끼어들고 나서야 나를 습격한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물원에서 보았던 호랑이는 덩치만 큰 고양이에 불과했다.
군(君)이라는 칭호가 부족하다 느껴질 지경이었다. 털을 쭈뼛 세우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나를 노려보는데 살기에 주눅이 들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런 녀석을 메치거나 목을 조르라고? 놈이 몸을 웅크린 순간 거구의 사내가 앞을 막았다.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장전하시오! 내가 쇄자갑을 입었으니 발톱에는 버틸 재간이 있소!”
“지금 무엇 하는가! 창을 패용한 이들은 병방과 함께 산군을 위협하고 보총을 패용한 이들은 어서 장전을 마치고 쏠 준비를 하라!”
고란이 내 앞을 막아서자 호랑이는 살기를 품은 눈을 고란에게 돌렸다.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호랑이를 막아선 고란은 이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 버렸다.
“병방! 병방이 위험하다! 어서 쏘아라!”
도끼를 앞세워 한 합을 주고받은 순간 그의 방패가 박살 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고란과 병사들이 잠시의 틈을 내어 보총을 쏘아댔지만 호랑이는 옆으로 훌쩍 뛰어 양다리에 상처를 입은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리에 부상을 입어 도약을 할 수 없었는지 바로 앞에 쓰러져있던 고란을 덮쳤다. 고란도 전력을 다해 송곳니를 도끼로 막고 사슬갑옷으로 발톱을 막아냈지만 황소가 올라탄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아악! 현감님!”
“창으로 찔러! 뭘 하나!”
창날이 배와 등에 쑤셔 박혀도 고란을 물어 죽이려는 모습을 본 순간 등에 묵직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나에게도 보총은 있었다. 화승이 꺼져 있었지만 이미 장전이 완료된 보총이 아니겠는가.
거칠게 뛰어오느라 탄환이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쏘아 보고 알 일이다! 옆의 병사의 화승으로 불을 이어 붙이니 용기가 솟아올랐다.
앞으로 다가가 총을 들이대자 호랑이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나를 덮치려 하였고 그 순간 총구에서도 불이 뿜어졌다. 목덜미로 파고든 탄환이 급소를 꿰뚫었는지 휘청거리던 호랑이가 쓰러졌고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장성한 산군이 어찌하여 이리 미쳐 날뛴단 말인가.”
“장성한 산군이 날뛰는 일이 거의 없는가?”
“병에 들어 사지가 상한 산군이나 경험이 일천한 어린 산군은 사람을 상하게 하지만 장성한 산군은 사람이 자신을 해할 수 있다 여겨 몸을 피합니다.”
병사들과 함께 나를 공격한 호랑이를 확인해 보니 그 크기에 질릴 지경이다. 장성한 수컷인 데다 무게가 대충 육백 근에 달하는데 이 정도면 현대에서 존재하지 않는 괴물 호랑이일 것이다. 형방은 호랑이의 배를 만져보더니 안타까운 듯이 말하였다.
“이 산군은 배가 비어 있군요. 일대의 왕대(王大 - 호랑이의 번식 영역)에 속한 암컷들이 떼죽음을 당해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분노한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명령을 내리는 것을 이해하고 우두머리인 나를 노렸던 것인가?”
“영험한 녀석이니 명령을 내리던 현감님을 노렸을 겁니다. 다행인 일은 다른 산군은 경원부에서 온 병사들이 처리할 것이며 여기서 왕대의 우두머리를 죽였으니 당분간 일대의 산군들이 자취를 감추겠지요.”
형방의 말을 들으니 목숨이 위험했지만 이후에는 안심하고 내 현감 임기를 지낼 수 있으니 나쁜 일은 아니군. 솟아오른 식은땀을 수건으로 대충 훔쳤는데 형방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산군이 없으면 여우가 날뛴다고 왕대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곰이나 매화범(표범)들이 날뛸 것입니다. 그러니 목책을 설치해 두지요.”
다음에 어디에 부임할지는 모르지만 자연을 신속하게 죽이는 방법을 찾아내야겠다! 아마 현감 임기 내내 맹수들의 습격에 시달릴 것이니 나무가 건조되는 내년 가을에 바로 목책을 설치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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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가죽을 포함한 모든 부산물을 팔고 은자 팔십 냥이라는 거금을 받았지만 재물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였다. 내 재산은 풍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쩨쩨하게 내 몫을 많이 챙기느니 사람들의 인심을 사두는 것이 좋을 게 분명하니까.
“내 악명이 너무 많이 퍼졌으니 조금이라도 선행을 해야지.”
모든 수익은 공평하게 인원대로 나눠서 지급하였다. 허공에 총을 쏜 병사도 여덟 냥을 줬고 너무 놀라서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한 내 몫도 여덟 냥이 전부이니 충성심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아졌다.
각종 피륙을 보낼 서류를 작성하고 며칠 뒤인 9월 초하루에 도착하는 정기선에 선적하면 앞으로 큰일은 없으리라. 정기선을 통해 집에서 돈을 부쳐오기로 하였으니 남은 일은 고란을 가르치는 일이다.
마당으로 나서니 마을 장정들이 나에게 입신체비를 배울 준비를 마쳤고 고란과 병졸들은 따로 떨어져 훈영제식법 이후 사지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석쇄(케틀벨)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현감님! 석쇄 훈련을 완료하였습니다.”
“다 하였는가? 그러하면 나와 함께 배례거(굿모닝 리프트)로 심부근육을 단련하세나. 자네들은 몸을 덥혔으니 사지의 근골을 풀어 입신체비를 행할 준비를 하게나.”
고란은 호랑이를 상대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후 상처를 치료하고 사람이 변하였다. 내가 지어준 호, 만도(滿都)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며 술도 끊고 훈련에만 매진하였지.
나도 몸이 크게 성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면피인 삼대운동 600근을 넘어선 지 오래이며. 구 년 동안 입신체비를 배우고 이이에게 심화과정인 소룡식 입신체비를 이 년 가까이 배운 사람이다. 당연히 고란 정도는 가르칠 수 있었다.
“배례거는 단련하면 할수록 사람이 달라지는 운동이네. 나야 일백삼십 근(83㎏)의 체중에 사십 근을 행하지만 내 스승인 율곡께서는 체중의 절반만큼 배례거를 행할 수 있지.”
“체중의 절반이라니요! 그러하면 저는 얼마나 행하면 되겠습니까?”
“배례거는 상반신을 사용하니 체중을 포함한 중량을 설정한다네. 자네 체중이 일백칠십 근(109㎏)정도 성장하면 적합하다 할 경우에는 팔십 근을 행하면 좋겠군.”
고란이 부족한 모든 근육은 이황의 가르침과 이이의 가르침을 조합하여 보충하고 있었다. 병사는 자신을 가르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이전 현감님은 입신체비를 가르치는 일을 귀찮아하시고 학문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셨는데 새 현감님은 입신체비를 먼저 가르치시다니요.”
“입신체비를 가르쳐야 학문에 대성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법도가 있습니까? 현감님께서는 학식이 깊다 하셨는데 대단하신 분입니다.”
물론 대단하지. 나야 기억력이 좋다 못해 엄청난 사람이라 별로 고생하지는 않았지만 근면육연화기억술이라고 입신체비와 암기를 병행하는 교육 방법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교육법을 시행에 옮겨서 백성들을 가르칠 차례였다.
“내가 이틀 전에 가르친 것이 산술(算術)일세.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행하면 세상을 사는 데 좋으니 알아둬야 하지. 스물여섯에서 열둘을 빼면 몇인가?”
“어······ 열, 열, 열셋입네다!”
“열넷이라네. 그러하니 저 회역기를 등에 짊어지고 모두 공좌(스쿼트)를 십사 회 행하세.”
이황의 가르침도 이런 변방에서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적게 잡아도 열 명의 마을 장정들을 가르치려면 쇠로 만든 역기는 감당할 수 없지만 나무봉과 생석회 덩어리로 만든 가벼운 역기는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장정들은 셈법에 틀린 사람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으니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지. 이게 교육이 아니면 뭐겠는가. 당연히 다음 사람도 앞에 나와 문제를 풀었고 한 명이 틀릴 때마다 하체 운동을 실시하였다.
“산술은 이렇게 한 달 정도 배우면 될 일일세. 몸도 단련하고 학문도 익히니 학교흥(學校興 - 수령칠사의 하나. 교육을 흥하게 하라)에 해당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 다리를 들 수 없습네다!”
“처음에 하체를 하면 그러한 법이라네. 내일은 정음을 익힐 것이며 입신체비는 맨몸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네.”
날이 어두워질 무렵 머나먼 산에 희끗한 눈이 덮였다. 한양에서는 상상할 수 없이 추위가 빨리 찾아오니 산에서 거주하며 광물을 캐는 인부들이 내려올 시기라 하였던가.
아니나 다를까 서쪽과 남쪽의 광산에서 장정들이 산에서 캐내어 정제한 광물을 잔뜩 짊어지고 도착하였다. 준비해둔 인력거에 광물을 올리게 하니 인부들은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현감님께서 저희를 배려하여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 가운데 삼백여 명은 이번 배를 타고 경원으로 돌아갈 것이며 남은 일백여 명은 광산 일대의 정리를 마치고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인수인계를 받을 때의 내용과 마찬가지로군. 그나저나 한 해를 내내 일하고 열두 냥의 소득이라니 소득이 너무 적지는 않은가?”
“실제로는 식대를 제하지 않고 열두 냥을 받으니 땅을 파먹고 사는 것의 세 배는 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추위는 빨리 찾아오는 것 같은데 미리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리 준비? 추위가 빨리 찾아오니 월동 준비를 하라는 뜻이겠지? 현지인의 말을 들어둬서 나쁠 일은 없으니 땔감도 충분히 준비해 두고 모아둔 가죽도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다.
이윽고 음력 시월이 되어 광산의 뒷정리를 마친 인부들이 숙소로 들어서려 하였다. 어느새 눈이 발목까지 쌓였지만 쉬고 싶은 이들을 불러 은자를 한 냥씩 쥐여주면서 말하였다.
“생각하여 보니 자네들은 한 달을 더 일 한 사람들인데 한 냥 정도는 받아야 마음이 풀리지 않겠는가? 그러하니 추운 애단현을 떠나 경원에 가서 푹 쉬다 오게나.”
“아이고 세상에! 새 현감님이 영민하신 분이라 하셨는데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영민하다! 영민하니까 돈을 주었지! 일백 냥에 가까운 돈이 사라지자 피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나도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를 대신해 항구에 다녀온 고란의 보고를 듣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현감님! 항구에 유빙이 밀려와 배가 드나들 수 없습니다! 마을에서 시킨 물건도 현감님의 것만 가까스로 나룻배를 통해 받아왔지만 배가 부서질지도 몰라 바로 돌아간다 하였습니다!”
“지금 뭐라 하였는가?”
“여기에 머무르는 시일동안 유빙이 더욱 쌓일 것이니 다음 배는 이월에 당도하여 부족한 물자를 우선 지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지금까지 사람들의 행동들이 되새겨졌다. 왜 경원부로 돌아갈 인부들이 한 달을 더 일하지 않고 구월의 배를 탔을까? 지극히 간단한 일이었다.
변방이라 항구의 규모가 작으니 유빙을 버틸 수 없는 소형 선박만 정박할 수 있다. 요즘 기후가 추워져 시월부터 뱃길이 끊기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 뭐라 하였소! 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어허이! 그래도 은자가 있으니 속이 든든한 것 같군! 어서 몸을 씻고 푹 쉰 다음 내수린이나 행하세! 현감님! 은자는 고마운 일입니다만 내수린을 허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부들은 돈도 받았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억장이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었다. 돈은 돈대로 깨졌는데 왜 내수린을 해야 하니!
#작가의 말
이서결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pomibam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말을 해석하면 ‘예전 현감님은 주워 먹는 사람마냥 재물을 적게 풀었습니다. 하지만 새 현감님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며 정신없이 움직이니 죽겠습니다.’입니다. 주는게 많아 좋은데 일 좀 적당히 하자는 뜻이지요.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을 조사해 본 결과 본래 역사의 명종 말엽인 1562~1565년의 겨울은 혹독한 추위가 이어졌습니다. 죄수들을 방면할 정도로 추운 시기였죠.
다른 이들은 지혜가 쌓였으니 음력 10월쯤이면 유빙이 밀려들어 배를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 예측하였지지만 성룡이는 지능은 좋아도 지혜는 평범하여 이 사실을 유추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