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96화
2부 5장 5화 – 북방의 인연
부임지가 정해졌으니 바삐 움직였다. 작년에 병조참의로 부임하게 되신 아버지와 스승인 이황도 뒤늦게 내 소식을 접했는지 하인을 시켜 겨울에 사용할 물품을 잔뜩 챙기게 하셨다.
어머니는 웬 쇳덩이로 보이는 물건을 주었는데 정체는 사슬갑옷이었다. 조선시대에 사슬갑옷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현감이 왜 이걸 입는가. 하지만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북방의 연해도 일대에는 산군이 넘쳐난다. 듣자 하니 밖에서 잠시만 눈을 돌려도 산군에게 물려가는 일이 허다하다 하더구나.”
“소자는 밖에 나설 적에 군관들을 대동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그렇다 하여도 쇄자갑은 항시 착용하여야 한다. 북방에서 근무하던 군관이 입던 물건이라 하였는데 산군의 송곳니는 못 막아도 발톱은 막을 수 있다 하였다.”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신 다음 쇄자갑을 확인해 보았는데 보통 물건이 아니다. 강도를 보강하려고 철판을 둥글게 뚫어 틈이 없는 사슬과 철사로 만든 사슬을 교차해 둔 녀석이다.
뒤이어 찾아온 조식은 낮은 품계인 현감을 위해 비장(裨將 - 외부에서 들여온 향리)을 내어줄 수는 없다 하였고 경원부사인 박순과 인연이 있으니 도와줄 것이라 했다. 한숨을 푹 내쉬더니 방구석에 놓인 어머니가 가져온 갑옷을 슬쩍 걸치고는 말하였다.
“족친위의 기병들이 옛적에 패용하였던 물건일세. 작금에는 판금(板金)갑주를 패용하여 쓸 일이 없어져서 구하기 힘든 기물이지. 사부인(査夫人)께서 힘을 많이 쓰셨군.”
“혹여나 이 기물이라면······.”
“만에 하나 알량한 용력을 믿고 산군을 상대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게! 빼어난 군관이 병장기를 패용하고 맞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산군을 입신체비사가 어찌 손대나!”
조식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분노와 한탄이 섞인 말을 시작하였다. 그의 친구는 진양근을 달성해 육량전을 마음대로 쏠 수 있다면서 호랑이를 잡으러 나섰다. 하지만 수풀 속에 숨어 있던 호랑이의 발길질에 두개골이 부서지고 목뼈가 으스러져 버렸다.
다른 유생은 산길을 뛰어다니던 중 호랑이를 만났고.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호랑이를 거세게 밀치고 허리를 잡아 30장(약 11m) 절벽 아래로 함께 떨어졌다. 하지만 사람은 피를 토하다 죽어간 반면 호랑이는 절뚝거리며 달아났다.
현대에서 매체를 통해 접해봤지만 호랑이는 지상 최대의 맹수이며 무기가 없는 맨몸으로는 손쓸 수 없는 재앙이다. 조식은 겁에 질린 나를 보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산군이 입신체비사를 물어가서 먹거나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 내 생각으로는 근육이 많고 골격이 튼튼해서 놀란 것이 아닐까 싶군.”
결국 혼자 호랑이에게 습격당하면 중상을 입고 평생 병상에 누워 살거나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호랑이에 대해 상세히 아는 조식이라면 대책이 있지는 않을까?
“빙장어른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홀로 거닐 적에 산군을 만나면 어찌하여야 합니까?”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달려드는 것을 피하고 코를 때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게. 다음에는 필사적으로 등에 올라타 목을 조르게나.”
어디선가 봤던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어린 시절에 보았던 삼강행실도에 기록된 내용도 있었다. 그게 통하나? 조식은 혀를 차더니 나를 한심한 눈으로 보며 말을 이어갔다.
“태종대왕 시절에 안동의 부인이 남편을 잡아가는 산군의 머리를 잡고 계속 두들겨 산군을 도망치게 만든 적이 있었지. 나중에 사냥꾼에게 물어보니 코를 때리면 산군도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하였네.”
“하온데 사람의 힘으로 산군의 목을 조를 수는 있습니까?”
“세조대왕(홍위) 시절 영덕에서 변 생원이라는 자가 농사일을 하던 부친이 산군에게 물려가는 일을 보고 달려들어 목을 졸랐지. 숨이 막힌 산군이 자리에 쓰러졌지만 변 생원은 산군의 발톱에 찢긴 양팔을 절단하였다 하더군.”
호랑이에 대해 요약하면 발길질 한 방에 두개골을 으스러뜨리고, 충격에도 강해 삼 층 높이에서 떨어져도 약간의 부상이 전부인 괴물이다. 그나마 약점이라고 코가 있는데 물리면 팔다리가 날아가는 와중에 코를 치라고?
내수린 기술? 메치기는 절벽에서 떨어져도 멀쩡하니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목을 졸라도 발톱에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서 불구가 될 것이라 일회용이고. 조식은 더 이상 거론하기도 싫다는 듯이 일어서면서 말하였다.
“간혹 기록에 범을 맨손으로 잡았다고 적혀 있는 일이 있어 주랑이 녀석이 길길이 날뛴 일이 있었네. 하지만 산군도 범이라 적히고 매화범(표범)도 범이라 적힌다네. 그나마 매화범은 이 갑주를 입고 상대할 수 있으니 다행이군.”
“빙장어른의 조언을 명심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성에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외할아버지가 보낸 전문에 하마 니씨를 찾아 도움을 청하라 말했으니 예정보다 조금 빨리 움직여야 했다.
-----
도성에서 흥인지문을 빠져나와 동북쪽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관북로라 불리는 주요 도로를 통해 함흥과 경원까지 육로를 통해 갈 수 있었다. 물론 관북로는 태백산맥을 통과해야 하니 보통 험한 길이 아니었다.
역참에 들려 쉴 때마다 짐을 확인하였는데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챙겨두어서 다행이었다. 이이가 선물한 설탕 덩어리라든가 이국형이 선물한 양모 목도리라든가. 하지만 중요한 물건이 빠져 있었다.
“아······ 이런 책을 다 챙겼다 생각했는데 집필하던 수성전수방략을 집에 놓고 왔잖아?”
수성전수방략은 아직 집필 중인 서적이었다. 각 산성의 도면은 물론이고 산성의 강화방법을 작성해 두는 중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미래인인 내 지식을 활용하여 화포에 대한 예찬이 끊이지 않았다.
포병은 전쟁의 신이라는 말 대신 군사의 으뜸이라는 찬양부터 아직 이론적으로 저술하지 않은 곡사사격을 비롯한 지식들이 있었지. 내가 군대는 안 나왔지만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거나 병에 걸리는 전차게임은 한 적이 있었으니까.
“이순신이면 알아서 걸러 듣지 않을까. 튼튼한 철판을 덧대 화포를 쏘면 무적이라 했으니까 내가 바보 같은 소리를 했나 의심하지 않을까 모르겠어.”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으리라. 이순신이 나에 대해 뭐라 생각하던 서신을 보내 읽지 말라 할 수도 없으니 길을 나섰다. 도성을 출발한 지 열흘 만에 경원에 도착했는데 여기가 왜 북방 제일도시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여기가 도성이야?”
선원에게 듣기로는 두만강 하구인지라 토사가 계속 쌓여 항구가 쇠락하고 동쪽의 커다란 만의 하마를 주 항구로 사용한다 하였는데 그걸 감안해도 발달 정도가 차원이 달랐다.
기와집이 태반이며 벽이 두툼한 벽돌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추위를 감당할 수 없었는지 거대한 저택을 짓지 않은 덕분에 도심이 가로세로로 바둑판같이 정돈되어 있었다. 감상은 뒤로하고 경원부로 향하니 경원부사인 박순이 나를 맞이하였다.
“예정보다 보름이나 빨리 오다니. 역시 퇴계 대감님의 제자다운 모습일세.”
“아직 경험이 미천한지라 험지에 부임하기 이전에 배울 것이 많아 먼저 나서게 되었습니다.”
“험지에 부임한다 하여도 염려하지 말게. 자네가 애단현에 부임하여 일을 그르친다 하여도 경원에서 사람을 보내 자네를 돕도록 할 것이니. 제법 험한 곳이지만 염려하지 말게나.”
그렇게 말해도 염려스러운 눈빛을 숨기지 않더니만 군관을 불러 명령을 하달하였다. 군관을 불러서 뭘 하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 대책이었다.
“슬슬 애단현에 산군이 늘어날 때가 되었다네. 율 봉사(奉事 - 종8품 무관)와 훈련원 출신 포수들을 보내 산군과 매화범을 잡아들이게나.”
“한미한 현감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니 부족한 능력을 다하여 열심히 임하겠습니다.”
“아닐세! 본래 경원부에서 공납으로 올려야 하는 모피가 일백 개인데 이번에는 애단현을 지목하였을 뿐이니 염려하지 말게.”
내가 뭘 하려 하자 한참 높은 경원부사가 손사래를 치니 고문관 신세는 맞는 것 같다. 업무를 창조해 내서 고문해 대는 고문관이 아닐까. 나는 외할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보여드리며 본론에 들어갔다.
“실은 외조부님께서 서신을 보내시면서 하마 니씨에 속한 사람을 찾으라 하셨습니다.”
“뭐? 자네의 외조부라 하면 송은 어르신인데 아직도 세상에 계시니 대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마 니씨에 속한 이가 마침 야장들을 통솔하고 있으니 찾아가 보게. 자네! 유 현감을 야장들에게 안내해 주게!”
군관의 안내를 받아 멀리 떨어진 철장(鐵場 - 쇠를 만드는 곳)으로 향하였다. 경원은 철이 대단하다 하였는데 멀리서도 매캐한 유황 냄새와 시커먼 연기가 보여 입을 가려야 할 지경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유월의 열기와 더해져 찜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려! 눌러! 그렇지! 더! 어이쿠! 이건 왜 갈라져!”
“탄을 제대로 쪄내지 않으면 똥철이 된단 말이다! 이 정도면 화로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망할 놈들아!”
인부들이 화를 내면서 어디론가 사라졌고 주먹다짐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탄을 쪄낸다 했는가? 지금까지 느껴진 유황 냄새는 역청탄을 코크스로 변환하면서 생겨난 부산물이리라.
경원의 철이 으뜸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만든 코크스로 제련하여 철의 품질 자체를 높인 것이다. 더군다나 배에는 부식을 방지하려고 코크스 제련의 부산물인 타르를 칠해놓았으니 경원이 발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철장의 젊은 관리가 나와 나를 맞이하였다.
“아이고 유생께서 이 험한 곳에 어찌 오셨습니까. 저를 찾아오셨다 하였는데 제가 하마 니씨의 장손인 니당개(泥塘凱)입니다.”
“니당개라 하였소?”
어디선가 들어봤다 했는데 본래 역사에서 함경북도 일대에서 변란을 일으켰다가 신립에게 쓸려 나간 그 니탕개? 하지만 조상부터 조선에 복속한 덕분인지 여진족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와 악수를 나누고 외할아버지의 편지를 건네주며 말하였다.
“육십여 년 전에 외조부께서 하마 니씨에게 보답을 받을 것이라 약조하였다던데.”
“육십 년이요? 강산이 여섯 번 바뀔······ 잠시! 송은 어르신의 증손이십니까?”
“외손자요.”
니탕개 아니 니당개의 표정이 이리저리 일그러지다 펴지기를 반복하였다. 결국 입술을 깨문 니당개는 아직도 주먹다짐을 하던 사람들을 갈라놓은 다음 말을 타고 나를 안내하였다.
“송은 어르신께서는 용원도의 현령으로 계실 적에 북인의 일곱 가문 중 다섯 가문이 얽힌 문제를 중재하였습니다. 덕분에 군수로 품계가 올랐지만 이후 관직에 나서지 않았지요.”
“일곱 가문 중 다섯 가문이 얽힌 문제라 하였소?”
“그렇습니다. 예전에 여진이라 불리다 북인이 된 이들은 크게 일곱 가문으로 나뉩니다. 군관으로 두각을 드러내 예전부터 정계에 진출한 회령 정씨야 논외의 대상이지요.”
회령 정씨는 알고 있다. 대대로 오위 소속 부대 중에 으뜸이라 불리는 족친위의 수장을 역임하고 있으니 손꼽히는 무가(武家)이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자 외할아버지에 이 일을 왜 숨기고 싶어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육십 년 전에 저희 하마 니씨는 물론이고 금산 율씨, 계읍 아씨 등의 북인들은 조선에서 지정하는 공납품의 납품 권한에 대해 아귀다툼을 하였습니다. 서로 충심을 자랑하려 하였지요.”
“북변의 공납품이면 질 좋은 철물과 모피 그리고 약재가 아니오. 실은 공납을 바치고 되돌아오는 이문을 원한 것이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송은 어르신은 이를 꿰뚫어 보시고 현령의 몸으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가문 간의 의견을 조율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고 칼부림이 이어졌지요.”
말이 이러해도 외할아버지가 목격한 광경은 꽤나 끔찍했겠지. 육십 년 전이면 아직도 야인이라 천대받던 시절이고 난폭한 성정이 남아 있을 시기라고 알고 있다.
아마 자신이 담당하던 고을의 사람들이 다른 고장의 사람들과 싸우고 죽어 나가는 내전 직전의 상황을 목격하였겠지. 니당개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고는 말하였다.
“그나마 송은 어르신에게 지혜를 전한 이는 저희 증조부님이셨습니다. 각지의 물산을 늘어놓고 단가를 정하여 경쟁하되 가장 값싼 물건과 값비싼 물건을 제하라 하였지요.”
“가장 싼 물건은 남에게 약탈하여 싸게 내놓았을 것이며. 비싼 물건은 남에게 억지로 사들인 물건이기에 제하라 하였구려.”
“이거 하나를 알면 열을 아시는 분이시군요! 덕분에 기준이 정해져서 가문 간의 조율이 끝났습니다. 대신 저희는 가장 약한 철장 노릇을 하였지만 몇 년이 지나자 기세가 늘어나 지금은 회령 정씨의 바로 다음으로 꼽힐 정도가 되었습니다.”
가문의 위세가 대단하다 하니 얼마나 될지 궁금했는데 하마 니씨의 본가에 당도하니 입이 쩍 벌어졌다. 적게 잡아도 이백 칸(間)은 될 법한 거대한 저택이 있는데 중심 건물은 죄다 벽돌로 벽을 만들었다.
흔히 일백 칸이 넘으면 궁궐로 분류한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당장 강릉 선교장만 해도 본채가 도합 102칸에 하인이나 손님들을 위한 공간을 합치면 300칸이니까.
간혹 제한되는 이유는 흉년이나 지나친 사치를 방지하기 위해 규정된 것이다. 이후에 물욕을 버리고 검소를 추구한답시고 99칸만 지어두는 일이 유행했지. 기나긴 행랑을 통과하니 하마 니씨의 가주인 니양수가 나를 맞이하였다.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송은 어르신의 외손자가 경원까지 명성이 자자한 이현전의 학사라니요.”
“명성이 자자하다 하여도 악명이 자자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혹여나 경원부사로 부임하신다면 이주를 결심할지 몰라도 애단현에 부임하신다니 마음이 아플 지경입니다. 그나저나 체격이 담대하시니 내수린은 잘 행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내수린은 배워 둔 바가 있지만 상대를 잡아채거나 두들기는 일은 많이 배우지 못하였소.”
그놈의 내수린이 나왔군! 정원에 내수린장을 세웠던 공간이었는지 잔디도 심지 않은 터가 있었다. 아마 축제가 열리면 내수린꾼을 초청해 신나게 메치고 두들기겠지. 니양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이거 골치 아픈 일입니다. 산군이나 매화범이야 율가 녀석들이 알아서 소탕하니 한 해만 조용히 계시면 될 일이지만 마을을 습격할 산군이 문제로군요.”
“산군이 마을을 습격한다 하였소?”
“병졸들이 산군을 소탕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복수심에 불타는 산군들이 마을을 습격합니다. 더군다나 내수린에도 능숙하지 못하시니 이인일조 내수린을 시행할 비장이 필요하시겠군요.”
소탕은 가능하지만 그해 겨울은 호랑이가 마을에서 날뛴다는 말이지? 침을 꿀꺽 삼키고 니양수를 바라보니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북인들은 대대로 무관을 역임하는 정씨를 제외하면 중앙 정계에 진출할 끈을 마련하지 못했다 하였다. 결국 토관으로 살다 지방관을 역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일이 전부겠지.
아마 출세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를 통해 사람 하나를 넣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 이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리라.
“란(瀾)아! 거기 있느냐?”
“부르셨습니까?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요!”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며 거구의 청년이 내 뒤에서 성큼성큼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옆을 돌아보니 178㎝에 달하는 내 신장보다 반 뼘은 큰 데다 팔뚝이 두툼하니 입신체비나 훈영제식을 열심히 한 무골이리라.
하지만 외모가 특이하였다. 두툼한 사각턱에 낮은 광대뼈와 약간 개구리같은 입술까지. 서양인의 외모가 섞여 있으며 머리카락도 짙은 갈색이라 흠칫 놀랐는데 니양수가 친절하게 답하였다.
“제 식객인 고란입니다. 나이는 올해 스물하나이며 조부가 머나먼 서쪽에서 도주한 사람이라 하여 서역인의 외모가 조금 섞여 있지요. 이 분은 이현전의 학사이며 애단현의 현감으로 부임하실 분이다. 네가 무명(武名)을 떨치고 싶어 하였는데 잘된 일이구나.”
“높으신 분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을 맞잡으니 듬직한 근육이 보였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닮긴 했는데 약간 부족하지만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의 역삼각형 체형을 보니 어떤 영화가 떠올랐다.
“자네의 호는 만도(滿都)라 하세. 자네는 빼어난 무골이라 훗날의 명장이 될 것이며, 온갖 도읍에서 무명이 전해질 것이니 호를 미리 정해주겠네.”
“네? 벌써부터 호를 정하여 주시다니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합치면 고만도가 되는군요.”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호를 정해주니 기뻐했지만 나는 다른 생각만 맴돌았다. 아놀드의 배역은 코난도 있고 코만도도 있지. 코 대신에 고를 쓰면 되니까 너는 앞으로 코만도다!
#작가의 말
성룡이는 아무리 보정을 붙여도 호랑이를 단독으로 상대하면 죽거나 불구가 되는 일은 확정입니다. 그래서 여러 도움을 주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