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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94화 (294/573)

근육조선 294화

2부 5장 3화 함께할 수 없다

내가 회사를 세 번 옮겨왔지만 사장들은 자신들이 처음 하는 일에 대해서는 쉽다 여기는 일이 많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자는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이 일의 심각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그나마 자선당의 안주인인 왕세자빈 정빈(晶嬪) 민씨도 자리를 비웠고 나와 같은 품계의 내시인 상훤(尙煊)이 동궁을 지키고 있었다.

품계가 같으면 서로 존대를 하면 될 일이지만 이 사람 나이가 거의 60에 가까우니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오나 보다.

그는 세자가 가져온 내 도면을 훑어보면서 말하였다.

“내가 상설(종7품 내시, 궁궐을 보수하고 점검한다) 직책에 있던 적도 있지만 자네가 창안한 소비오래 사당의 도본은 처음 본다네. 자선당의 도본을 이렇게 만들려면 뭘 먼저 하는지 알고 있는가?”

“지금부터 천장의 우물반자를 헐고 안으로 들어가 목재를 잴 것입니다.”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나를 엿 먹인 집현전과 아무런 생각 없이 일을 시행하라는 세자에 대한 분노를 숨기고 있지만 제정신이지.

자고로 갑의 말이 진리이니 갑의 명령을 완벽하기 수행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파괴는 당연한 일이니까!

“본래 도본을 온전히 그리려면 건물을 약간 훼손하는 일이 당연합니다. 천장 내부의 도본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러한 도본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다.

입신체비의 도입 이후 근육이 거의 성장하지 않는 내시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남성임을 알리려고 말꼬리로 만든 가짜수염을 붙이고 다닌다던데 그 수염이 파들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상훤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자선당을 뒤엎어 놓을 생각이 분명하군! 정말 시행할 것이면 자네 책임이나 먼지를 빼낼 수 있도록 문을 모조리 해체하여 두겠네!”

“참고로 문 하나하나도 도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다가 구들을 뜯어내고 아궁이의 도본을 만든다 할 것은 아니겠지?”

“그러한 일이 가능하면 해보고 싶습니다.”

상훤은 나를 쳐다보더니 도본에 미친놈이라고 중얼거리며 아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명령을 내렸다.

인부들이 몸을 놀려 창과 문을 모조리 뜯어냈고 진해대군은 내가 회화를 그리는 도공이라 생각하고 있었는지 황당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제가 형…… 세자 저하께 듣기로는 도본을 능숙히 그린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지붕 아래에 들어가는 것이오.”

“본디 도본이라 하면 있는 그대로의 형상을 나타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하니 지붕 안의 목재를 재는 일은 당연한 일이지요.”

어린애에게 어른이라 존칭을 붙이니 우습지만 대군에 대한 공식 존칭이 맞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모든 준비가 끝났고 나는 사다리에 올라 지붕 내부를 실측할 구멍을 뚫으려 하였다.

“대군 어른! 잠시 피해 계십시오! 먼지가 떨어집니다!”

호기심이 많은 진해대군도 먼지를 뒤집어쓰기는 싫었는지 밖으로 쏜살같이 도망갔다.

잘된 일이라 여겨 끌로 천장을 뜯어낸 순간 십 년은 쌓여 있었을 먼지와 박쥐 똥이 쏟아졌다.

상상보다 훨씬 많은 양이 아닌가!

“우쿠웨에엑!”

“자네들은 뭘 하나! 유 박사가 저렇게 고생하는데, 일을 돕도록 하게!”

“잠시! 우물반자만 뜯어내서 내가 들어갈 틈을 만들어주게. 등잔 하나를 미리 준비하여 뒀으니 안에 들어가 재면 될 일이지.”

“유 박사는 몸을 소중히 여기시오! 저렇게 먼지가 쌓인 천장에 들어갔다가는 폐부가 상하여 쓰러질 것이 아니겠소! 먼지를 걷어내는 일이 우선이오!”

먼지를 대충 털어내는데 지붕 사이의 환기구를 통해 박쥐가 많이 살고 있었는지 찐득한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자연환경이 보존되었으니 박쥐가 많이 살 것이라 예상했는데 거의 구아노 수준이 아닌가.

“대군 어른께서 하신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생각하여 보니 병서에 처마 아래의 흙먼지를 모으면 염초를 만드는데 효능이 있다 하였는데 인부를 시켜 먼지를 모조리 걷어내야겠군요.”

“염초라 하였소? 듣자 하니 취토군(염초를 모으는 병사)이 처마 아래의 흙을 귀중히 여긴다 하였는데 이것 모두가 염초가 될지도 모르겠구려.”

화약의 재료인 염초는 대다수가 인도에서 수입한다 하였는데 나라에서도 무역이 끊길 경우를 대비해서 한 해 일만 근 정도의 화약을 조선에서 수집한 재료로 만들고 있다던가.

잡부들은 먼지를 챙겨서 팔아치울 생각이었는지 빗자루를 가져와 지붕 내부를 청소하였고 삽시간에 먼지가 밀려와 진해대군과 함께 멀리 도망쳤다.

진해대군은 뿌연 연기에 휩싸인 자선당을 보며 다시 질문을 시작하였다.

“유 박사가 헛일을 하는 것이 아니요? 수십 년이 지나면 목재가 썩으니 자연스럽게 새 목재로 고침이 마땅하오. 세월이 흐르면 교체할 목재인데 지금 잴 필요는 없지 않겠소.”

“세자 저하께서는 주요 전각에 한하여 소비오래 사당과 동일한 도본을 만들라 명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공조의 속아문인 수례사 관원들을 불러와야 가까스로 행할 일이 분명하구려. 정 칠 품의 학사가 행하기는 너무 험난한 일이오.”

그런 일을 시킨 너희 형이 너무하다. 이런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려다가 꾹 눌러 참았는데 불경죄로 곤장을 맞고(골병이 들지 않는 열다섯 대까지는 때린다더라) 형무소에서 평생 썩을 생각은 없다.

이게 다 내 잘못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세자를 감싸줘야지. 엄연히 세자가 갑이요 내가 계(癸)쯤 되고 진해대군은 을(乙) 정도니까.

나는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라 자신을 세뇌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만에 하나라도 벼락이 내리쳐 건물이 상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 건물을 옛 방식대로 복원할 길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여나 수백 년이 지나 옛 습속이 사라진다 하여도 그 습속을 기억할 길은 열려야 할 것입니다.”

“이십여 년 전 근정문 옆의 동수각에 벼락이 내리친 일이 있다 들었는데 틀린 말은 아니오.”

아직 어린아이라 천재지변은 무서워하는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지었다.

궁궐에 정말 벼락이 떨어졌다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피뢰침이라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있다.

한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궁궐의 지붕에 피뢰침을 설치한다면 도심 전체에 떨어지는 벼락이 모조리 궁궐로 몰려올 것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좋다 여긴 사람들도 나중에 가면 벼락을 부른다고 여길 것이다.

-벼락을 막는다 하였는데 오히려 끌어들이고 있으니 여름만 되면 궁궐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질 지경이 아닌가. 유 박사가 좋은 일을 했으니 자네의 보직을 미주 현감으로 정할 것이네. 십 년은 미주에서 살다 오게나.

처음에는 좋다 여겨도 번개에 시달린 주상전하가 나를 지구 반대편으로 쫓아낼지도 모른다.

진해대군은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지 내 소매를 잡아대며 요구사항을 늘어놓았다.

“아바마마께 말씀드려 개오동나무를 심으면 좋지 않겠소. 듣자 하니 개오동나무는 벼락을 피해가는 나무라 하였으며 대추나무는 벼락을 끌어들이는 나무라 하였소.”

“궁궐을 정비하며 빈자리에 나무를 심는 일이 좋을 것 같으니 이를 고해두겠습니다.”

진해대군은 왕위에서 먼 대군이라 학식 대신 잡학 지식을 쌓은 것이 분명하였다.

어지간한 사람들도 잡서를 많이 읽어야 알 수 있는 일을 열 살이 되기 전에도 알고 있다니.

대추나무라 말해서 생각난 건데 사람이 오지 않는 벌판에 대추나무를 몇 그루 심어두고 피뢰침을 꽂아두면 자연스럽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인 벽조목을 생산할 수 있지 않은가.

포상으로 적당한 황무지를 내려달라 해야겠다. 주변에는 겸손하다 칭찬을 듣고 적당한 용돈거리가 생겨서 좋겠는데?

어느새 세자가 돌아왔고 먼지로 뒤덮인 자선당의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달려들었다.

“뭘 하고 있소! 세자빈이 조만간 돌아올 것인데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놓았구려!”

“세자 저하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비오래 사당과 동일한 도본을 만들라 명하셨으니 지붕 내부의 목재를 철저히 알아두어야 하옵니다.”

나도 세자에게 쌓인 것이 있으니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다.

인부를 통솔하던 상훤이 세자에게 다가와 한마디를 보탰다.

“세자 저하께서 유 박사의 행적을 말려 주시옵소서. 구들을 뜯어보자고 하니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궁궐 전체를 해체하자 할지도 모르옵니다!”

“업무에 몰두하는 모습은 좋으나 지붕 속이나 아궁이를 재는 일은 그만두시구려! 혹여나 도본이 유출되면 간자(間者)들이 지붕 틈으로 파고들어 염탐할지도 모르지 않소!”

생각해 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변명이다.

세자는 내 모습을 보고 기가 찼는지 일을 줄이라 했고 목적을 달성했으니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신이 생각이 짧아 미처 판단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이는 중죄이니 엄히 다스려 주시옵소서.”

“오히려 내 생각이 짧았소. 도본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일이라 하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업무를 줄이는 일이 마땅하겠구려.”

이렇게 말해도 세자님이 만들라 했고 나는 업무에 지나치게 몰두한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지붕 내부를 상세히 잴 일은 없으니 간단히 구멍을 내어 구조를 확인하면 충분한 일이다.

그래도 업무의 양은 많았다.

건물 실측은 며칠은 걸리는 일이고 궁궐의 건물을 하루 종일 실측할 방법도 없으니 업무가 비는 틈을 타 인부들과 함께 실측하고 도면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였다.

업무가 종료된 시점은 1563년 3월이었고 바로 다음 업무가 하달되었다.

내가 만든 배치도를 회화로 만드는 동안 잠시 지방에 내려가라 했는데 이게 생각 외로 까다로운 업무였다.

* * *

종6품의 부수찬(副修撰)으로 승진하였으니 조계(朝啓: 국왕에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는 조회)에 참석할 자격이 주어졌지만 조회에 나서 본 적도 없다.

깊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니 뒤에 따라오는 이들이 내 모습을 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집현전과 이현전을 뒤엎은 학사라 들었는데 일에 미친 사람이 분명해.”

“조용히 하게! 이러다가 산성을 모조리 뒤엎자고 제안할지도 모른다네!”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라 변란이 발생하면 백성을 보호할 산성이 중요하다 하였다.

이에 대해 일제 점검을 시행한다 하였는데 이현전의 사람들이 나서게 하였다.

품계가 높은 사람들은 각지의 읍성을 진단하라 했지만 품계가 낮은 나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중부지방부터 산성 열 곳을 점검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인력은 충분했다.

지방군의 업무 가운데 하나는 산성을 비롯한 방어시설을 보수하는 일이었으니 내 뒤로 백여 명의 병사들이 장비와 식량을 지참하여 따라왔다.

하지만 이들은 내 정체를 알아차리고 겁에 질려 있었다.

“듣자 하니 세자께서 머무는 처소 지붕을 다짜고짜 뜯어냈다더군.”

“지붕만? 기둥을 들어냈다 하였는데 모르고 있었나? 초석을 재어야 한다고 기둥 두 개를 들어냈다가 결국 건물 전체를 새로 만들었다 하였는데?”

“지붕도 기둥도 안 들어내고 천장만 뜯어냈으니 헛소리는 그만하게. 그리고 품계가 올라 부수찬이 되었는데 언제까지 박사라 부르겠는가?”

이미 소문은 퍼질 만큼 퍼져 지방에 거주하는 병졸들조차 내 행적을 일에 미친 놈, 건물을 재려고 아예 새로 만든 놈이라 말하고 있었다.

입신체비로 다져진 몸이지만 산행은 힘들다 못해 머리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자고로 악(嶽)자가 들어가는 산은 올라가다 악 소리가 난다 하였는데 이 시대의 치악산은 격이 다르다.

국도? 없다. 등산로? 있기야 한데 발을 디딜 곳이 전부이다.

신발도 여러 개를 지참하였는데 중간에 장터에 들러 사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군관들도 힘이 들었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수통을 꺼내 목을 축이고는 말하였다.

“치악산이 험난한데 이 산성은 가장 험난한 지역에 지어졌습니다. 고을에서 백성들을 피난시킬 적에는 사흘 이내에 피난을 완료하라 하였는데 사흘도 빠듯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기는 임진왜란 당시 함락당한 영원산성이다.

탄금대 전투로 정예병이 모조리 쓸려나간 이후 잡병을 소집하여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못했지만 지형과 튼튼한 산성 덕분에 백성들이 피난할 시간을 번 곳이다.

현대에는 두 시간 만에 올라올 거리를 이틀 내내 등산하니 입에서 단내가 올라왔지만 어떻게든 산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십 년 넘게 보수하지 않은 산성은 일부분이 허물어져 있었다.

“산성을 돌며 산세와 관련된 도본을 작성할 것이니 먼저 허물어진 건물을 보수하고 석재를 되돌려놓게. 앞으로 보름 동안 여기서 머물며 지시를 내린 이후 여섯 달 뒤에 돌아올 것이네.”

평판측량기를 험한 산속에서 사용하자니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다. 삼각측량이 가능했다면 멀찍이 측량할 수 있지만 명주실을 사용하니 기껏해야 200보, 약 320m 거리를 재는 것이 전부니까.

중간에 건물들이 보였는데 군관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저기 있는 건물 세 개는 창고이고 나머지 하나는 숙소입니다. 병졸들이 조를 이루어 한 달을 주기로 순찰을 도니 건물도 온전히 남아 있는 형편이지요.”

“저건 둔전(屯田)인가? 지금은 순무를 기르는 것 같구려.”

“그렇습니다. 전시라면 여러 작물을 기르겠지만 지금은 손이 비는 대로 순무를 기르면 그럭저럭 효험이 있지요. 순찰을 돌다 순무를 끓여 국을 만들어 먹으면 아주 좋습니다.”

이백 년 이상 침략당하지 않은 내륙이지만 산성의 시설물들은 제법 온전했다.

더군다나 전쟁을 대비했는지 산성을 보수할 석재와 목재를 잔뜩 쌓아두었으니 임진왜란이 다시 일어나도 이전과는 다른 전쟁 양상을 보이리라.

하지만 둔전의 절반 이상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아무리 농사일을 경험한 병사라 해도 여기까지 와서 힘든 농사일을 병행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럴 때를 대비해서 좋은 물건을 가져왔다.

“터가 넓으니 감자를 심으면 효험이 있을 것 같군.”

“감자요? 그거 가만히 두면 독이 솟아올라 소먹이로나 쓰는 물건이 아닙니까?

“감자의 싹이 남아 있거나 겉이 새파랗게 변하면 독이 오른 감자가 되는 법이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연한 색의 감자를 계속 접붙여 그럭저럭 먹을 만한 물건이 되었소.”

휴식시간을 이용해 산성 안에 마련된 둔전에 감자를 심고 냇물을 떠다 부었다.

처음에는 감자를 먹지 않겠지만 갓 수확한 감자를 모닥불에 구워낸 것만큼 맛있는 물건이 어디 있겠는가.

순찰하던 군관들의 간식거리로 사용되다 점차 백성들에게 퍼져 나갈 것이다.

사실 농조에 종자를 보내서 퍼뜨리자 제안하였지만 나와 이황의 제자로 있었던 정구는 내 모습을 보더니 도망가 버려서 불가능했다.

“하여튼 사람들 하고는. 내가 위인인 유성룡의 몸에 들어와서 죽도록 일하는 것이지 정철의 몸에 들어왔다 생각해 봐. 정말 중요한 일 아니면 본래 역사대로 태업을 일삼다가 위기 상황에서만 능력을 보여줬지.”

건물 안에서 보수 계획을 작성하니 절로 푸념이 솟구쳐 올랐다.

어느새 일에 미친 사람이라 소문이 퍼진 것도 모자라 각지의 산성을 전전하니 악명만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산성의 보수는 석축을 쌓을 정도로 숙련된 석공 몇 명과 인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지방에서는 이십 년 주기로 시행하는 일이며 흉년이 발생하면 백성 구휼 목적으로 멀쩡한 산성을 덧대어 보수하는 일도 흔하다 하였다.

“여기에 나를 보낸 목적이 뭐지? 궁궐에서 난리를 피워서 징계에 가까운 업무를 내렸나?”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모를 일이다.

이번 업무가 끝나면 잠시 이현전을 떠나 한명회가 만든 법에 의거하여 지방 현령으로 900일 동안 근무해야 하는데 이전에 힘든 일이라도 해서 시골 생활에 적응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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