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91화
2부 4장 11화 알고 보니 나만
마음을 고쳐먹으니 세상이 달라졌다. 다른 이들에게 내가 당한 고통을 전해줄 수 있다는 심보로 정말 온 힘을 다하여 일에 매진하였다.
기분이 너무 좋아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였고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절대적 평가 말고 상대적 평가로 따지면 대기업도 이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은 없겠어.”
당장 자금성도 다녀와 봤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부족했다.
청소? 먼지 한 톨이 폐를 어지럽히고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여 고래 기름 등잔을 사용하니 눈이 아픈 일도 없다.
식사? 세 끼 식사는 단백질과 채소가 조금 많을 뿐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한다. 궁궐에서 숙식하는 관료들은 최소 5첩 반상이 기본이요 간혹 7첩 반상이 제공된다.
여기에 마음을 다잡으려고 매콤한 맛을 추가해야지.
“크으! 역시 맵싸한 맛이 제일이야!”
“유 박사, 참으로 맛있게 먹으니 나에게도 조금 줘보게나.”
고추는 집의 뒤뜰에서 계속 기르고 있었으며 씨를 받아내고 남은 고춧가루는 나만 먹으니 남아돌았다.
탕국에 고춧가루를 뿌리니 아주 독한 매운맛이 올라왔지만 기분이 좋으니 매운맛도 좋았다.
반면 기대승은 고춧가루의 매운맛에 적응하지 못하였는지 잔뜩 사레가 들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정신을 차렸다.
식사가 끝나자 다른 이들은 내 모습을 보면서 한 마디씩 보탰다.
“유 박사, 자네 눈에 귀기(鬼氣)가 서려 있는 것 같은데 무언가 우환이라도 생겼는가? 이토록 매운 고초를 탕국에 잔뜩 부어 넣다니.”
“귀기라 하셨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총기(聰氣)인 것 같습니다. 불현듯 생각이 떠오르니 이전의 논의하였던 내용과 인지의를 결부시킬 방안이 떠올랐습니다.”
유성룡의 뛰어난 기억력으로 회의 내용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던 것이 다행이다. 내가 만들 물건이 미래의 지식을 활용한 물건이 아니고 조선시대의 지식을 결합한 내용이라 말할 길이 열렸다.
회의가 열리고 나는 도면을 걸어놓고 말하였다.
“제가 창안한 기물은 일전에 말씀하신 명주실에 한 보(步: 1.8m) 거리로 먹을 매겨 측량에 쓸 것이라 하신 말씀과 기존에 사용한 인지의를 결합한 기구입니다. 이를 평판측량기(平板測量器)라 하겠습니다.”
“인지의와 일전에 말한 명주실을 결합하였다 했는가? 보아하니 실을 보내는 틀이 있군.”
“그렇습니다. 두껍고 튼튼한 명주실은 만들기는 어렵더라도 실을 연장하면 일백 보 거리는 잴 수 있지 않습니까. 길이가 부족하면 여러 번 재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설명하니 이현전 관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조하였다. 실로 길이를 재고 각도계로 수평, 수직 각도를 측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실효성이 문제라 여긴 것 같았다. 방법은 좋지만 측량 오차가 많이 발생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기대승에게 인계받아 이번 업무를 주도하는 이국형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토록 세밀한 방법이면 은결은 물론이고 기존에 측량하였던 토지도 온전히 측량할 수 있겠네. 품이 많이 들어가 힘들지만 시험은 해보았는가? 오차가 일 할이 넘어가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할 것일세.”
“이현전에서 집현전 정문까지를 재되 외조를 거쳐 크게 돌아가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중간중간 여러 장소를 재어 다시 확인하면 더욱 확실할 것입니다.”
“이현전과 집현전은 축을 두고 대칭으로 지어진 건물이니 불가한 일은 아니군. 자네는 기물을 만들고 나는 주상전하께 잠시 궁궐을 어지럽힐 것이라 청하고 오겠네.”
이국형은 내 의견을 받아들여 줬고 다른 관료들도 배운 내용을 정리하여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나를 좋게 보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니다 이 사람들 이해는 한 것 맞아?
며칠 뒤 공조에서 시제품을 보내왔고 나름 시험해 보았다. 각도계는 오차가 거의 없었지만 평판의 수평도가 문제였다.
평판에 물을 흘리자 한 방향으로 쏠리니 눈에 보이지 않게 일그러진 평판이리라.
공조에서 제법 잘 만들었지만 여전히 부족하였다.
황동으로 만든 평판과 나무로 만든 삼각대는 제법 번듯했지만 평판이 평평하지 않다니. 대충 적당히 해도 되지만 오차는 줄일수록 좋으니까.
그래서 사람을 불러들였다.
“박사님이 저희를 쓰실 일이 있다 하였습니까?”
“그렇소. 크나큰 일은 아니니 며칠만 수고를 해주시구려. 평판측량기라는 기물을 공조를 통해 받아왔으나 부족한 점이 있었소이다.”
이현전에는 천문기관인 관상감이 있으며 관상감에는 당연히 천리경을 만드는 장인들이 여럿 배정되었다.
이들은 내가 만든 평판을 보더니 무슨 기물인지 궁금해하며 말하였다.
“대체 무엇입니까? 삼각대를 보니 거대한 천리경을 달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조에서 만든 기물이오. 다만 이 기물에 문제점이 있는데 이 황동을 덧대 만든 평판이 지극히 평평해야 하는데 부족함이 있는 것이오.”
“목판에 황동을 덧대 만든 기물이 지극히 평평해야 하면 간단한 방법이 있습지요.”
장인들은 창고에서 커다란 철판을 가져왔는데 형태를 보니 무쇠를 틀에 붓고 무쇠가 완전히 굳기 직전에 아주 미세한 석영가루를 뿌려 만든 거대한 사포, 아니, 작업대였다.
“가장 평평한 물건은 접시에 담겨있는 물이 아니겠습니까. 그 방법을 응용하여 만든 기물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이걸로 갈아내고 겉을 규사로 매만지면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기물도 만들 수 있겠소?”
현대에서 측량을 할 때마다 사용하였던 유리 안에 물을 넣고 기포로 수평을 확인하는 수준기(水準器)의 도면을 보여주자 장인들은 감탄하며 말하였다.
“수준기는 커다란 석물을 만들 적에 사용하는 기물이며 흔하지 않은 녀석인데 이걸 이렇게 줄이시다니요. 저희도 생각만 하였지 실행에 옮긴 적은 없습니다.”
“큰 수준기라 하면 팔뚝 정도의 통을 말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수준기는 천리경을 만들다 남는 경통의 귀퉁이를 잘라 석영을 끼우고 물을 넣어 만드는데 이 녀석은 안경을 홈통 위에 끼운 것 같군요.”
수준기는 각종 물건의 수평을 맞추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본래 건설현장에서는 땅에 홈을 파고 물을 부어 수평을 맞췄으며 이는 피라미드를 세울 시절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다.
최초의 수준기는 17세기에 개발된 물건인데 백 년 이상 앞서다니.
하지만 천리경이라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수양대군을 통해 백 년 이상 빠르게 망원경을 개발한 조선이니 정밀도를 높일 목적으로 수준기를 사용했겠지.
안경을 만들다 실패한 녀석으로 보이는 석영 조각들을 챙겨온 장인은 이걸 줄기차게 갈아 엄지손톱만 한 판으로 만들었다.
생각보다 빠른 진척에 놀라는 일도 잠시, 장인들이 작은 나사를 조이며 수준기의 수평까지 맞춰서 건네주었다.
“수평기를 양쪽에 두 개를 두시면 얼마나 정밀한 기물을 만들려 하시는지요? 심지어 수평을 맞추기 쉽게 아래에 소라못(나사)을 두지 않았습니까.”
“가만히 있어 보시오. 내가 이 기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방법을 알려줄 것이니.”
마당에 쇠못을 박으려다가 왕이 사는 곳이라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대충 박고 기준점을 삼아 다림추(수직을 살피기 위해 늘어뜨리는 추)를 내렸다. 중력은 정확한 수직을 나타낼 수 있는 척도가 아니겠는가.
삼각대를 박아 밟고 나사를 돌려가며 수평을 맞추었다.
현대에서는 막내를 시켰지만 여기서는 내가 막내니까 어쩔 수 없지. 상부 수평도 맞추며 생각해 보니 이거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나 외엔 없잖아?
“몰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이걸 만들겠다 했는데 어쩌겠어.”
아래의 틀에 한 자 단위로 청색 먹을, 열 자 단위로 붉은 먹을 그리고 백 자 단위로 검은 먹을 새긴 두꺼운 명주실타래를 설치하였다.
평판에 뚫린 구멍으로 명주실이 새어 나오는데 평판은 튼튼히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시험할 차례이다!
* * *
생각해 보니 북 치고 장구 치고 내가 다 해야 한다.
평판측량기를 세우는 방법? 이국형이 몸소 세워봤지만 삼십 분 가까이 낑낑거리다가 기계를 부숴 버릴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어디를 어떻게 측량해야 하는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내가 나서야 한다.
이국형을 비롯한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멍하니 서서 명주실이 꼬이지 않게 잡아주고 늘어진 명주실을 감는 단순 작업이다.
“흥례문의 좌측 기둥입니다!”
“흥례문의 좌측 기둥! 백삼십칠 번 점은 칠십칠 자 하고 반에 각도는 서측으로 칠십사 도 앙각은 이 도일세!”
이국형은 실의 길이를 확인하고 따로 둔 종이에 좌표를 세밀하게 적어 내렸다.
벌써 기계를 세 번이나 옮겼지만 아직도 절반이 넘는 작업이 남았다.
정확도를 최대한 보증하기 위하여 각 건물의 기둥과 기단의 끝부분을 재는 작업이라 진척이 더디다.
사실상 궁궐 배치도를 그리는 격이라 답답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슬쩍 물어보았다.
“참으로 기묘한 일을 하고 있구려. 궐내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이기에 알아보려 하는데 대체 뭘 하는 것이오.”
“세자저하!”
왕이 입는 붉은색에 오조룡이 새겨진 곤룡포는 보이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여야 할 주상전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내 옆으로 은근슬쩍 다가온 용포는 짙은 보라색이지만 용이 있었다.
이건 세자가 입는 용포이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열다섯 정도 되어 앳된 얼굴이 남아 있는 세자가 이황을 비롯한 세자시강원 관료들과 함께 우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본래 세자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이후 세자가 된 영해대군은 동궁(東宮: 세자궁)에 머물며 학업에 열중하여 밖을 나서는 일이 적었는데?
나를 포함한 이들이 인사를 올리자 세자는 평판을 만지려다가 손을 떼고는 말하였다.
“나침반이 두 개나 있으니 정교한 기물임이 틀림이 없소. 명주실을 들고 사방을 뛰어다니던데 내가 배워왔던 물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정체가 무엇이오?”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인지의를 개량하여 오로지 가까운 거리의 땅을 측량하는 일에만 사용하는 기물인 평판측량기입니다.”
“가까운 거리의 땅을 측량한다 하였소? 사용하는 방법이 궁금하니 보여주시구려.”
목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흔히 이야기하는 회장님 아들도 아니고 차기 회장이자 임금이 될 사람이 내 앞에서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한동안 작업이 이어졌다.
거의 삼백 개가 넘는 지점을 적어나간 서류는 먹물로 빼곡하게 덮였고 다들 지쳐갔지만 내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장부를 도본으로 변환하여야 합니다. 중간에 도달하였으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편히 하시구려. 그나저나 우모필(깃펜)로 소과 답안을 작성하였다던데 세필 사용이 참으로 능숙하구려. 누가 가르쳐 주었소?”
“회령군 대감께서 제 은사나 마찬가지인 분이십니다. 그분 아래에서 학식을 쌓으며 우모필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혔사옵니다.”
촌수로 따지면 회령군이 세자의 할아버지 촌수이니 종친의 웃어른이리라.
세자가 멋쩍은 미소를 보이건 말건 나는 작업에 열중하였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거대한 종이에 기준점을 정하고 각도계를 설치하는 것이다. 각도계 또한 틀어지지 않게 세 점에 압정을 박아 고정한다.
“일 번 점은 이현전 좌측 기단이니 각도 육십삼 도에 거리는 이십 척 반이며 앙각(仰角)은 일 도이니 팔선표(삼각함수표)를 기준으로 하고 실의 늘어짐을 계산하면…….”
장부를 기준으로 하여 점을 하나 찍고 몇 번 점인지 기입한 다음 다른 점을 찍어나간다.
고된 반복 작업이 이어지고 다음으로 기계를 옮긴 점을 붉은 잉크로 기입하여 확실히 표시한다.
작업을 반복하니 세자는 지겨워졌는지 하품을 하려다 참느라 애썼다.
하지만 내 스승인 이황은 옆에 있던 연필을 집어 들고는 물어보았다.
“유 박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이 도본에 석묵필로 선을 그려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이 도본은 시험 삼아 만든 도본이기에 훼손되지만 않으면 충분한 일이지요.”
이황은 기둥의 선을 연결하여 건물을 표현하였다. 내가 측정한 모든 건물의 선이 이어지며 약간의 묘사가 추가되고 궁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세자도 놀라운 눈으로 도면을 바라보다 말하였다.
“이건 경복궁도(景福宮圖)가 아닙니까? 하지만 경복궁도에는 전각의 형태만 묘사하였을 뿐인데 이 도본에서는 모습이 확연히 틀립니다.”
“경복궁도를 만들 적에는 몇 걸음을 걸었는지 알아본 다음에 묘사에 치중하였습니다. 하지만 유 박사가 창안한 도본에는 명확한 위치와 크기가 드러나 있지 않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둘의 훈훈한 대화를 들으며 크게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자 앞에서 명확한 궁궐 배치도를 그릴 수 있다 말한 것이다! 이건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고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일은 일이고 닥칠 재난은 재난이다.
제발 내가 창안한 평판측량기의 오차가 크지 않길 바라며 도면을 온전히 작성하였다. 도면으로 측정한 이현전과 집현전의 거리는 184보(331m)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국형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제가 측정한 도본에는 이현전과 집현전의 거리가 백팔십사 보로 나옵니다. 실지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정확도를 높이려고 실을 다섯 번 늘어트려 측정하였다네. 다행이도 백구십일 보이니 서로 곱하면 오차는 일 할은커녕 팔 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야. 이 방안을 사용하면 될 것이네.”
8% 미만의 오차라면 충분한 정확도이다!
이 시대의 땅을 잴 때에는 오차를 감안하고 재며 세금이 늘어난 농민이 애걸복걸하면 일 할 정도는 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였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이다. 더 이상의 야근은 없을 것이고 이이도 나에게 그놈의 소룡식 입신체비를 강제할 방법도 없다!
한 달밖에 남지 않아서 억울하지만 이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 줄 것이다!
* * *
이국형이 주상전하에게 장계를 올리고 집현전에 나아가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짐을 잔뜩 짊어진 이이가 모두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 첨정과 함께 궐 밖으로 나서려 하였다.
“직전께서 어찌 궐 밖으로 나가시는지요.”
“수은을 사용한 약품이 어디서 유입되나 하였는데 대양도(대만)에서 교역하는 서반아(스페인) 상인들이 명국 상인에게 팔아넘긴다 하였네. 이를 조사하러 다녀올 것이니 소룡식 입신체비를 꾸준히 행하게나.”
장기 출장을 나가는 이이를 보면서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야근과 입신체비의 병행지옥을 탈출하려고 애썼는데 혼자 가버리면 어떻게 해?
뒤통수가 얼얼해질 지경이었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대체 뭘 만들었는지 몰랐지만 알고 보니 악랄하기 이를 데 없구려.”
“본래 토지대장은 본을 하나 뜨면 충분한 일인데 장부에 도본까지 베끼고 도본을 계산한 다른 도본도 베낀다 하였는가? 자네 홍문관 관원 모두를 과로로 죽이려 하는가!”
집현전 관료들이 몰려들어 이현전 관료들에게 분노를 쏟아내었다.
이 시대의 토지대장은 소유주의 이름, 허가자의 이름, 위치 그리고 면적을 적고 도장을 찍은 것이 전부이다.
반면 내가 만든 측량법에는 수십 개 이상의 측량점이 기록되며 그 측량점을 바탕으로 한 도면이 기록되어야 한다.
당연히 부정형 도형은 면적을 계산할 수 없으니 이걸 삼각형으로 나누어 계산하지.
아마 홍문관 관원들은 일 년 내내 지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서류를 베끼고 돌려보내다가 과로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괜찮은 일인데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이현전 관료들의 태도이다.
“나…… 나는 평판측량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없다네. 과거에서 아원으로 급제하였지만 유 박사가 나보다 빼어난 사람이 아니겠는가.”
“주상전하께서 내린 명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걸 가르칠 시일이 없을 것이네.”
이게 뭐가 힘들다고! 그냥 삼각대 세우고 평판 수평 맞추고 길이 재는 법 가르치면 충분하잖아!
답답한 마음에 공조로 찾아가 손을 빌리려 하였는데 김성일은 내 눈을 보자 고개를 돌리고 모르는 척을 하였다.
“자네 지금…….”
“나는 자네를 모른다네!”
이국형이 야근하느라 수고하였다고 며칠 동안 들어가 푹 쉬라 하였는데 세상이 어떻게 변했단 말인가.
누구를 가르쳐서 퍼뜨려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갑자기 세자가 이현전에 방문하였다.
“평판측량기라 하였소? 참으로 좋은 기물이지만 사용법이 난해하여 가르칠 이가 없는 것 같구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시오, 내가 좋은 사람을 찾아왔소.”
세자가 데려온 이들은 궁궐의 회화를 담당하는 도화서의 관원들이었다.
이제야 내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하필 세자 앞에서 궁궐 배치도를 그릴 수 있다 말한 것이다!
세자는 싱글싱글 웃고 있지만 아마 이 일이 끝나면 나를 옭아매어 경복궁 배치도를 다시 그리는 데 힘을 거들어 달라 할 것이 뻔히 보였다.
다시 야근이 시작되고 그때쯤 되면 이이가 한양으로 돌아올 시기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