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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90화 (290/573)

근육조선 290화

2부 4장 10화 지금부터 서로(2)

현대라면 간단하게 레이저 측량기를 사용했겠지만 이 시대에는 그런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먼저 조선시대의 측량은 어떤 모습일지 알아봐야 하리라.

이이는 기대승에게 나서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말하였다.

“저는 이번 일을 다루기에는 업무가 많습니다. 당장 명국에서 유행하는 단약의 정체를 파악하여 이를 대비하는 일이 옳지 않겠습니까.”

“나 또한 그러하네. 본래 부제학 영감께서 업무를 담당하여야 하지만 어명을 받든 분인지라 며칠 정도 내가 업무를 인솔하고 있다네. 이 직전 자네는 화공원으로 돌아가 직무에 충실하게나.”

측량이라 하면 사무실 세 개를 다니면서 모조리 해봤고 시행 방식도 여럿 알고 있었다.

수많은 측량방법이 떠올랐지만 당장 나설 이유가 없다. 이번에는 적당히 하다 적당히 마무리 지으면 좋은 일이지.

다들 참고 자료를 볼 목적이었는지 원탁 위에 책이 잔뜩 쌓여 있어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기대승은 나에게 서적 하나를 건네주며 말하였다.

“일단 기존의 측량법을 익히는 것이 먼저라네. 생원시의 문항으로 산술과 관련된 항목이 있으니 자네의 산학 실력은 알고 있지만 구장산술(九章算術)을 양전을 작성하는 이들이 첨삭한 서적을 보게나.”

구장산술은 수학이 발달하지 않은 이 시대는 몰라도 내 기준으로는 부족한 서적이다.

기껏해야 이차방정식이나 제곱근이 전부여서 고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볼 일이 없을 지경이니까.

그래도 뭔가 내용이 달라서 읽어봤는데 구장산술을 양안(量案: 토지대장)을 작성하는 용도로 쓰기 위해 쓸데없는 내용을 버리고 각종 설명을 추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많았다.

“토지의 형태는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정사각형의 방전, 직사각형의 직전, 직각삼각형의 구고전…… 이게 기준이 맞나 모르겠어.”

결론만 말하자면 이 시대의 토지는 적당하게 측량한다. 방위를 측정하기 위하여 인지의(印地儀)라는 기구를 사용하는데 각도와 대략적인 길이만 산출할 수 있는 도구이다.

인지의로 각도를 정하면 도보측량으로 거리를 재서 땅의 면적을 산출한다.

큰 토지의 경우에는 기리고차라 하여 일종의 거리측량기를 사용했는데 최소측정 거리가 나름 개량한 녀석이라 세밀해져서 열 보(18m)이다.

현대에서 사용한 윤정계(바퀴를 통해 길이를 산출하는 도구)가 밀리미터 단위까지 잴 수 있어도 오차가 심각하여 크게 신뢰하지 않는데 이 정도면 오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리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물어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토지를 측량하면 양안에 부정이 심각할 것입니다. 당장 지주들이 뇌물을 주어 기리고차의 종이 울린 횟수를 한 번만 줄여도 한 마지기의 토지가 어긋날 것입니다.”

“자네의 말이 옳다네. 하지만 이번 문제는 지주들이 아닌 조금씩 개척한 은결이 문제였다네. 지주들은 경관들이 내려가 기습적으로 토지를 재니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네.”

은결이면 숨겨진 농지이다.

임진왜란으로 토지대장이 전소한 이후 기존 토지의 세금을 면제하려고 대장에 기록하지 않았으며, 이후 조선의 세금제도를 엉망으로 만든 근원이다.

그리고 은결이라서 더욱 문제이다.

여럿이 나서서 누더기처럼 늘려대니 크기도 형태도 일정하지 않고 소유권도 불명확한 것이 분명하다. 기회를 잡아 바로잡지 않으면 각종 부정이 속출하리라.

기대승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수령이 백성들을 시켜 크게 개간한 농토는 양안에 기록되었지만 백성들이 조금씩 땅을 늘리면 알아챌 수 없었다더군. 작은 농토는 목측(目測: 눈대중으로 살핌)을 하는 것이 전부이니 수십 년 동안 늘어나는 은결이 쌓였다네.”

“은결의 양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 다급한 것입니까?”

“호조에서 대략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이십만 결이 넘을 것이라 하더군. 기존 농지가 이백이십만 결이니 일 할에 가까운 양일세.”

이러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십만 결 이상의 토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이 십 년간 누락되며 평년기준 총 560만 석의 세금이 소실됨을 뜻한다.

저녁에 퇴청할 이유도 없었다.

집으로 사람을 보내 아내에게 야근을 할 것이라 알렸으며 저녁을 먹고 이어지는 회의에 참석하였다.

한 관료가 먼저 의견을 제시하였다.

“토지를 측정할 적에 네 변에 사람을 두어 동일한 길이의 명주실을 사용하게 만듭시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을 두어 빗변으로 명주실을 보내 빗변의 길이도 재는 것이지요.”

“동일한 길이의 명주실은 어떻게 산출하는가.”

“명주실 한 보마다 먹을 매겨 먹의 총 개수를 파악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방전(정사각형) 여럿으로 토지를 나눌 수 있으니 오차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사람의 팔이 두 개이니 불가능하네. 적어도 열 사람은 있어야 일이 원활히 돌아가겠군.”

나름 머리가 좋은 이들이니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답이 쑥쑥 튀어나왔지만 크게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간혹 나에게 시선이 돌아가기에 나도 의견을 하나 제시하였다.

“기리고차를 작게 줄이고 세밀하게 만들어 사람이 편히 다룰 수 있게 만들고 인지의도 크기를 줄여 옮겨 다니며 측량하면 정확하고 편할 것입니다.”

“기한이 일 년만 되었어도 그리 행하였을 것이네. 자네의 의견이 옳지만 석 달 이내에 해결해야 하는 급한 일에는 적용할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일 년 정도의 기간이 있었다면 현대에서 배웠던 삼각측량법을 바닥부터 쌓아 올려서 차곡차곡 적립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 삼 개월 이내에 만들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리 급하지 않다 여겼다.

어디까지나 의견이 어긋나면 조금 지적해 주고 적당히 내 지식을 숨기며 알음알음 풀어나가면 충분하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이틀 만에 박살 났다.

* * *

첫날의 야근은 밤늦게 퇴청하며 끝났지만 둘째 날의 야근은 이어지는 회의에 한밤중이 되었고 퇴청은 꿈도 꾸지 못하여 이현전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내 단잠을 깨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이였다.

“유 박사, 입신체비를 행하기 좋은 시기이니 어서 일어나게.”

“이…… 직전님?”

잔뜩 흥분한 얼굴의 율곡 이이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밖으로 끌고 나가다시피 하였다.

이 표정을 한번 본 적 있는데 어린 시절 향교였다!

-입신체비를 시작할 적에는 마음대로지만 끝낼 적에는 아니란다. 하체를 행하면 끝까지 행해야지!

괴성을 지르며 향교 문밖으로 도망치려는 청년을 나이가 지긋한 유생이 끌고 들어가며 했던 말과 잔뜩 흥분한 표정이 생각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곧 현실이 되었다.

“후원에서 몸을 단련하는 특권은 호위청의 내금위 병사들과 양현전의 관료들 그리고 언론양사에게 주어진 특권일세. 세종대왕께서 몸을 단련하신 곳이니 이 어찌 영광이 아니겠는가.”

“그럼 저들은 누구입니까?”

“저들?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료들일세. 세종대왕께서 언론양사 관원들의 몸이 쇠함을 염려하시어 친히 몸을 단련하는 일에 참가시켰고 전통이 되었지.”

콧수염이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 속에서 수십 명의 관료들과 이백 명의 내금위 병사들과 함께 후원을 질주하였다.

사람들이 계속 뛰어다닌 덕분에 잔디가 사라지고 튼튼한 길이 있었다. 옛날 세종대왕이 뛰어다녔던 길을 기념할 목적이었는지 곳곳에 횃불이 밝혀져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이이는 복싱선수처럼 스텝을 밟으며 전력으로 질주하였다.

“하체를 놀리는 법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네. 자네처럼 몸이 처지면 아니 되는 법이고 내 행보(行步)를 따라 몸을 움직이게.”

일반적으로 달리기로 몸을 덥히고 근력 운동에 몰두하지만 이이는 다르다. 달리기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이내 후원을 한 바퀴 돌아 다른 이들을 넘어섰으니까.

관원들은 내 모습을 측은한 듯이 쳐다보며 한 마디씩 중얼거렸다.

“퇴계 대감의 제자가 아닌가. 대체 왜 저런 빈약한 사람과 어울려서…….”

“이 직전이 체격은 빈약하여도 언제나 열심이지 않았는가. 유 박사 또한 빼어나기로는 대단한 사람이니 이 직전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였을 것이네.”

남들이 뭐라 하여도 이이의 재빠른 발걸음을 따라가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후 구토가 올라오기 직전까지 줄넘기를 하고 처음으로 본격적인 입신체비를 시작하였다.

“사람의 몸은 각기 형태도 다르고 골격도 다르다네. 자네의 몸은 훤칠하고 사지가 뻗어 있으니 지나치게 불룩한 형상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 배부(등)와 복부가 먼저일세.”

이이가 추천한 것은 인체향상이라 불리는 턱걸이와 비신이라 불리는 크런치이다.

물론 이이의 철학이 존재하였다.

그는 근육이 자라지 않으니 언제나 절육(커팅)에 몰두하였다.

“체중이 한 근이 증가하면 관절은 다섯 근이 힘든 법이지! 절육은 입신체비의 정수일세.”

“이러다 죽겠습니다!”

“죽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그나마 편한 자세를 찾으려 했는데 이이는 내 자세를 정확히 광배근과 전완근에 하중이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끙끙거리는 내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박사는 참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일세. 상체를 퇴계 대감에게 배우고 하체를 남명 대감의 여식과 혼인하여 배우는데 여력이 남는단 말인가?”

필사적으로 팔에 힘을 주는데 기대승이 지나가는 말로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난 적당히 하고 싶었는데 인생이 꼬인 거라고!

하지만 이런 말을 해봤자 이해해 줄 사람이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 * *

하늘이 노랬다.

황사가 낀 것이 아니고 지난 한 달 동안 열흘의 야근과 열 번의 이이식 입신체비.

이이 자신이 칭하기를 내가 지어준 호를 따서 명명한 소룡(小龍)식 입신체비를 시행한 결과물이었다.

복근도 작살 내고 등도 작살 내고 팔도 작살 내고 다리도 작살 내고.

아내도 나에게 의무방어전을 요청하려다 몰골을 보고 사골곰탕을 끓여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두 달의 야근이 남았다.

“오늘도 또 출근해야 해…….”

지난 한 달 동안 체중 네 근(2.5㎏)을 감량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등근육과 복근이 늘어나서 근육량은 오히려 유지하거나 조금 증가한 것이 분명하였다.

우연히 마주친 이황도 혀를 차며 내 모습을 보고 위로하였고 조식은 아무 말도 없이 하늘소 애벌레를 보내왔다.

이이의 단련법은 그만큼 가혹했으니 나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냥 삼각측량 하자!”

한 달 동안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적도 많이 읽었고 관상감 관료들과 어울리며 나름 수학적인 지식도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관상감에서만 활용하는 삼각함수가 있었다. 삼각함수 8종류를 뭉뚱그려 팔선(八線)이라 불렀다.

삼각함수를 활용한 분야는 아직 많지 않았지만 3도 단위로 계산한 삼각함수표인 팔선표도 있고 관련 서적도 있으니 삼각측량이 가능할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기대승에게 찾아가 삼각측량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점차 발전시킬 것이기에 기본적인 항목만 이야기했지만 기대승은 설명을 듣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정현(正弦: sin 함수)을 비롯하여 팔선의 규칙을 응용하여 토지를 측량한다 하였는가?”

“아직 이론만 정립되었을 뿐 실질적인 내용은 마련하지 못했기에 조언을 구하려 왔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두 번째 사무소에서 소장이 배우고 자격증까지 따라 해서 억지로 익혔던 삼각측량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완벽하게 존재하였다. 물론 자격증은 따지 못했다.

측량기사자격증은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관련 직종 경력을 쌓은 사람만 취득할 수 있는데 애초에 조건에 맞지도 않아 허송세월을 하였으니까.

한참 고민하던 기대승은 내 이론을 종이 위에 연필로 끄적거리며 말하였다.

“이미 항해를 할 때에는 나침반을 통하여 방향을 판별하고 육분의로 위도를 측정하고 원하는 방향을 팔선의 법칙을 동원해서 정하지. 이런 활용법도 가능은 하겠어.”

“그러하니 저와 함께 이 방식을 만들면 될 것입니다. 듣자 하니 팔선표이라 하여 각도에 따른 비율을 나타낸 것이 있다 하더군요.”

“방안은 좋지만 불가하네. 산학관(算學官)들은 구고현(직각삼각형)의 규칙에 관하여 알아도 정현을 비롯한 팔선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가 열 명을 넘지 않을 것이네. 자네가 관상감의 사람들을 마주한 적이 많으니 다들 알고 있다 여겼겠군.”

생각해보니 중학생 정도에서 머무르는 조선시대의 산학관들이 삼각함수를 배울 이유가 없었다.

가르치려면 두 달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며 관상감 관료들이 측량에 나서면 나랏일이 망가질 것이다.

기대승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만약 산관 모두가 팔선의 이치에 대해 통달하면 행해보겠지만 몇 년은 지나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따로 연구하여 볼 것이니 어서 이현전으로 돌아가게나.”

“부족한 제 의견을 경청하여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뭘 해도 안 되는 현실에 절망하였다. 이대로 두 달을 시달리다가 업무에도 실패하고 인간적인 생활에도 실패하면 울화통이 터져 죽을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방법이 남았다.

“그래 산수는 잘한다 했지? 삼각함수표도 있다 했지? 내가 너희를 위해 가장 무식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측량법을 만들어주마.”

분노한 눈으로 직접 그린 도면을 들고 공조로 향하였다.

내 근황에 대해 소문이 퍼졌는지 김성일이 웃음이 들어찬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이이의 가혹한 입신체비에 시달리니 기분이 좋아 죽겠지.

“자네 얼굴이 반쪽이 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로군. 여기엔 무슨 일로 왔는가?”

“공조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네. 원을 삼백육십 개로 나눈 정교한 나침반이되 지남철이 없고 황동으로 만든 얇은 물건 두 개가 필요하고 내가 도본(도면)에 표현한 기물을 만들어주면 좋겠네.”

이 시대의 나침반은 귀한 물건이기에 각도를 세밀하게 표시해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남철이 없는 나침반이라 중얼거린 김성일은 도면을 펼쳐 보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뭔가? 자네는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토지를 측량해 달라 했었지. 내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방법으로 토지를 측량할 것이니 아무 말 없이 만들어주게나.”

가장 많은 단순 계산이 필요하며 가장 많은 일손이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내가 다녔던 첫 회사에서 문화재의 배치도를 만들 때 사용한 직접거리측량, 속칭 명주실 측량이라는 녀석이다.

정밀도는 제법 뛰어나다. 십 년 뒤에 다른 회사에서 같은 문화재를 레이저 측량기로 측량했었는데 오차가 한 뼘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이걸 적용하려면 약간의 문제점이 있고 지방 관료들이 고난을 겪겠지만 뭘 어쩌겠는가.

나도 고통받는 입장이니 고통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 하였다.

#작가의 말

이이가 말한 전통은 1부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세종대왕님이 사헌부와 사간원 관료들을 후원에서 굴린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후일 언론양사는 이 일을 부끄럽게 여겨 훈훈한 일화라 미화시켰지만 실록에는 제대로 적혀있습니다.

‘상께서 격노하시어 삿된 말을 꺼낸 언론양사의 관원들을 호되게 꾸짖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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