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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89화 (289/573)

근육조선 289화

2부 4장 9화 지금부터 서로(1)

화려한 중국 요리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지만 입신체비로 변질된 조선인들의 식성을 배려한 듯 어느 정도 기름이 절제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영천대군은 마지막 술을 들이켜고 말하였다.

“배도 그득히 채웠으니 며칠 동안 여독을 푸시구려. 입신체비기구는 없어도 몸을 놀릴 방법이야 여럿 있지 않겠소.”

일 년에 세 번 오는 사신을 위해 톤 단위의 쇳덩어리를 준비해 두는 짓은 명나라로서도 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연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삼삼오오 짝을 이룬 이들이 후원으로 향하였고 나도 이이와 함께 후원으로 향했다.

동지이다 보니 나이가 많은 관원들은 추위에 몸이 상할까 염려하여 창고 안에서 입신체비를 시작하였다.

역기가 없으니 맨몸운동을 하겠지만 이이와 나는 젊으니 추위를 버틸 수 있어 밖으로 나섰다.

“그나마 객사의 후원이 넓어서 다행이네. 본래 내가 다듬은 입신체비는 십 리를 세차게 뛰는 일로 시작하지만 몸을 놀릴 장소가 적을 때에는 이 방법이 제일이지.”

“이것은 도삭희(跳索戲)가 아닙니까?”

이황도 새끼줄 하나로 몸을 단련하니 좋은 운동이라 하였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서로 줄넘기를 시작하는데 이이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도삭희라 하여도 행하는 방법에 따라 천지차이일세. 자네는 껑충껑충 뛰지만 그리 하면 하체는 물론이고 전신을 단련할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나를 따라해 보게.”

내 줄넘기는 천천히 가볍게 움직이는 보편적인 줄넘기이다.

하지만 이이의 줄넘기는 영화에 나오는 권투선수나 할 법한 초고속 줄넘기가 아니겠는가.

이이는 뒤꿈치를 들고 줄 하나만 지나갈 정도로 낮은 도약을 반복하였다. 적게 잡아도 이백 회가 넘어간 순간 회전 방향을 바꿔서 역으로 줄넘기를 이어갔다.

“하체를 단련하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네. 내가 듣자 하니 자네는 어린 시절부터 인왕산을 돌아다니며 하체를 단련하였다 했었지. 하지만 부족하다네. 이 정도는 되어야지.”

어마어마한 속도로 팔을 움직이는데 다리는 제자리에서 번갈아가면서 제자리걸음, 아니, 뜀뛰기를 하였다.

잔디가 뜯기고 먼지가 피어오르니 이이는 멋쩍은 듯이 모랫바닥으로 나와 말하였다.

“높이는 낮으며 속도를 점차적으로 높이면 될 것이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면 더욱 효험이 좋다네. 나는 두 각(30분)을 행하는데 처음 한 각은 이천 회 정도. 다음 한 각은 삼천 회 정도를 행하지.”

줄넘기를 잡았지만 지금 뭐라 했지? 15분에 3,000회면 거의 초당 4번이 아닌가.

일단 첫걸음이 중요하니 줄넘기를 시작하였지만 이이의 호된 지적이 시작되었다.

“조금 더 낮게 뛰게! 너무 높이 뛰었다가는 한 각을 버티지도 못할 것이네!”

줄이 발끝에 걸렸는데 샌들과 비슷한 입신체비용 신발을 신었기에 발가락에 쓰라린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이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고 더더욱 맹렬하게 지시를 내렸다.

“쉴 적에는 호흡 서른 번을 할 정도면 충분하다네. 자네는 처음 행하는 자이니 호흡 예순 번을 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쉬고 있을 셈인가!”

“허리가 너무 구부러졌다네. 올바른 자세야말로 올바른 근육이 형성되는 지름길이니 허리를 세우게!”

본래 역사에서 이이는 비판을 서슴지 않아 악연이 많았다 하는데 역사가 변해도 이 기질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정확히는 학문이나 업무에 관련된 비판은 줄었지만 입신체비만큼은 더욱 심해졌다.

“입신체비를 애매모호하게 행하면 될 일도 아니 되는 법이라네! 육체의 한계는 나도 자네도 알고 있으니 한계를 넘어설 생각은 아니어도 근접할 생각은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내 맥박은 200에 도달했을 것이며 숨이 거칠어지고 입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율곡 이이의 기본 운동인 줄넘기가 삼대운동 600을 코앞에 둔 사람을 한계로 몰아넣은 것이다!

팔을 놀리고 다리를 놀리니 눈이 아른거리며 횡단보도가 보였다.

현대에서 내 허리를 박살 낸 원흉인 트럭이, 아니, 트럭이 왜 조선시대에 있어! 있다면 빨리 현대로 나를 돌려보내 줘!

“끄어어어어억!”

“첫날이니 그럭저럭 잘 행하였다네. 생각하여 보니 자네의 체중이 일백삼십 근(83㎏)에 달할 것이니 나보다 조금 적게 행해도 동일한 효험이 있을 것 같군. 이 정도를 매일 행하면 좋을 것이네.”

얼마나 격렬했는지 한겨울인데도 내 몸에서 피어나는 열기로 증기가 솟구칠 지경이었으며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려서 어지러웠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말하였다.

“이 정도를 매일 행한다 하시면 몸을 덥히기 위하여 뛰어다니는 일은…….”

“충분히 뛰어 몸을 덥힌 이후에 도삭희를 행할 것이네.”

이후 사흘 동안 죽어라 줄넘기에 매진하였다.

이이가 말하기를 ‘천 가지 입신체비를 한 번씩 행하면 대성할 수 없지만 한 가지 입신체비를 천 번 행하면 대성한다’라 하였는데 이거 이소룡의 말이 아닌가.

지옥 같은 입신체비도 막을 내렸다.

아니, 명나라에서는 막이 내렸지. 영천대군이 가정제와 만나 일의 진행을 알렸고 조선으로 귀환할 날이 코앞임을 알렸다.

본래 사신들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지만 이놈의 변질된 가치관 때문에 ‘오래 사신으로 머무름 = 근손실’이라는 논리가 적용되었고 참으로 합리적인 변명이 이어졌다.

“태감께서 저희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시니 번국으로서 낯을 들 면목이 없습니다.”

“허어! 사신이 한양에 머무를 적에는 보름 동안 기름진 음식과 귀한 술을 내오면서 이리도 검소한 모습을 보인단 말이오. 역시 조선만큼 빼어난 번국이 없구려.”

상국으로서 사신들을 대접하면 국고가 축나는 법이지만 조선은 검소한 식사를 하며 최대한 일정을 짧게 잡는다. 더군다나 명나라 사신을 대접할 때에는 충실히 하니 참으로 좋은 일이라 여긴 것이다.

내가 직접 나선 일은 없지만 명나라 신료들에게 내 이름 석 자와 얼굴을 알렸으니 훗날의 일이 편해질 것이다.

이이는 조선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대역기를 빌려와 자신의 삼대운동을 보여주었다.

“본래 조금 더 머물며 입신체비를 익히게 하고 싶었지만 앞으로는 짐을 꾸리고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을 마련해야 할 것이네. 그러니 내 삼대운동을 보여주겠네.”

삼대운동 510근이면 어디 가서 자랑하지도 못하는 체면치레 수준이다. 심지어 몸이 튼튼한 이들은 평생 역기를 잡아본 적 없어도 칠백 근을 달성한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이는 근육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체질이라 하였다.

이이가 단번에 의압(벤치프레스) 백오십 근(96㎏)을 실시하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나왔다.

이황에게 배운 대로라면 운동능력의 향상은 세 가지의 길이 있는데 각각 근육량 증가, 숙련도 증가 그리고 최적화이다.

점진적인 근육량 증가를 기본으로 삼고 숙련도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이는 기초 근육량이 극단적으로 적어서 숙련도와 최적화에 몰두한 것이다.

이이는 팔을 추스르면서 말하였다.

“내 나이 열넷에 입신체비를 처음 실시하였네. 일 년이 지나자 근육이 성장하지 않았고 모친께서는 각종 약재를 들이고 갖가지 육질(단백질)로 몸을 보하려 하였지.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네.”

“각종 육질이라 하시면 돌드레(하늘소)의 애벌레도…….”

“물론일세. 영동 지역의 돌드레의 일 할은 내 뱃속에 들어갔을 것이나 차도가 없었지. 의원은 내 체질이 입신체비의 창시자인 수양대군과 정 반대라 하였지. 하지만 내 몸에도 근육은 있었다네!”

광배근을 부풀린 특유의 모습을 보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엄밀히 말하면 타격에 최적화된 이소룡의 근육과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기능을 위해 생물들이 수렴(收斂)진화하듯 형태가 유사해진 것이다.

이이는 자신의 광배근을 더듬으며 말하였다.

“입신체비가 무엇인가? 효심을 이룩하기 위하여 몸을 단련하는 것이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매몰되지 말도록 하게! 부모께서 내려주신 몸을 중요하게 여기면 이룩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던가!”

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이 없지만 이이는 아버지 이원수와 사이가 지독히 좋지 않았다 한다. 정확히는 어머니와 얽힌 일 때문에 아버지와 절연하였다던가.

이이의 아버지인 이원수는 한미한 집안이라 데릴사위 생활을 지내며 열등감을 삭혀왔다 하였다.

이윽고 신사임당이 죽자 이원수는 첩을 집안으로 들였고 이이는 아버지와 절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이가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 궁금하기도 하다.

몸을 씻고 나와 슬쩍 물어보았다.

“제가 양친(兩親: 자신의 부모를 높이는 말)께 좋은 선물을 보내려 하는데 경험이 없어서 무엇을 사들여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혹여나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선물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양친께 선물을 마련하러 나갈 참이었네. 삼 년 전에 예조의 일원으로 북경에 온 적이 있으니 내 뒤를 따라오게나.”

정사인 영천대군에게 보고를 올리고 군관 한 명과 함께 시장으로 나섰다.

청계천처럼 정돈된 모습은 아니지만 대국답게 번잡한 모습이며 갖가지 물건들이 넘쳐났다.

이윽고 한 골목으로 향하자 향이 밀려와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게 다 무슨 향이랍니까? 세상에! 코가 아려올 지경입니다!”

“석감골목일세. 오사만국에서 들여온 석감 제조법을 명국 상인들이 배워간 이후 북경과 남경에는 명국 각지의 산물이 모인 석감골목이 생겨났지. 모친께서는 특히 명국의 은방울꽃 석감을 좋아하신다네.”

신사임당이 생각보다 오래 살고 있다니 놀랄 일이 아닌가.

이이가 들어서자 상인은 이이의 체격과 복장을 보고 의아해하다 내 체격을 보더니 단번에 조선 사람임을 알아챈 것 같았다.

“은방울꽃으로 만든 석감은 있소?”

“은방울꽃? 종란(鈴蘭)으로 만든 석감이 있지! 하지만 쓰는 법 아시나?”

“알고 있소이다. 세 번을 헹궈 몸을 말끔히 만들어야 독이 스미지 않는 법이 아니겠소.”

시제품을 가져다 놓은 듯 말린 은방울꽃이 있었는데 향을 맡아보니 아주 미약한 향이 느껴졌다.

반면 은방울꽃 비누에서는 강한 향이 진동하였으니 수천 개의 꽃을 짜내 하나의 비누에 담은 것이 분명하였다.

조선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구가 많은 명나라에서는 가능한 일이리라.

생각해 보니 중국은 돼지도 많이 먹으니 기름을 구하기도 쉬울 것인데 이건…… 무슨 기름이지?

항아리에 담긴 기름에 손을 대려 하니 주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유감람(油橄榄: 올리브) 폐유니 만지지 말라! 그걸로 우리 비누 만듭니다!”

“세상에…… 명국에서 유감람을 기른다 하였습니까?”

“대양도(대만)에서 기를 수 있는 물건을 강남에서 기르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가배도 재배하고 있으니 난항을 겪고 있다네. 다음은 부친께 보낼 약재를 사러 갈 것이네.”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비누를 잔뜩 사들였지만 은방울꽃 석감은 어머니에게 드릴 물건만 샀다.

집에는 진성이도 있는데 엄연한 독극물을 사 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는가.

약재 거리로 향하는데 담배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어느새 명나라 북경까지 퍼진 담배의 위력을 보면서 이이는 혀를 차면서 말하였다.

“부친께서도 고생이 많으셨지. 약이라 하여 연초를 배운 덕분에 입신체비가 부족해지셔서 늦게 관직에 출사하셨네. 이런 분들이 몸을 내려 주었는데 어찌 내 몸을 탓하겠는가.”

“늦게 출사하셨다 하셨습니까?”

“역적 윤가놈으로 인하여 연루된 이들이 줄줄이 파직당하였지. 부친께서는 당시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셨지만 이후 과거에 급제하시며 지금은 장악원(掌樂院: 음악 관련 기관)에서 모범을 보이시고 계신다네.”

본래 역사에서 이이의 아버지는 이원수는 놀기를 좋아한 사람이지만 인력난에 시달리는 조선에서는 이런 사람도 고쳐 쓰는 법이 아니겠는가.

아마 반 억지로 관료 생활을 시작하다 적성에 맞아 활로를 찾은 사람이겠지.

이이는 성큼성큼 걸어 한 골목으로 향하였다. 오소리나 너구리를 비롯한 짐승들이 걸려 있으니 분명 짐승을 사용한 약재를 다룰 것이다.

이런 일에는 배운 것이 있었다.

“혹여나 매화록(꽃사슴)의 녹용을 찾는 중이십니까?”

“잘 알고 있군. 부친께서 나에게 주신 녹용대보탕만 하여도 열 제(劑)는 될 것일세. 부친께서는 내 몸을 보하는 일이 우선이라 하셨는데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가 아니겠는가.”

이황은 입신체비에 지름길은 없으며 어떠한 영약도 닭가슴살 한 덩어리보다 못하다 했었으나 부상을 입으면 소염의 효과가 있는 약을 먹으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이같이 빈약한 체격에는 약의 효험이라도 빌리려 했었나 보다.

녹용을 한 아름 사 들고 나왔는데 기묘한 약을 팔아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아우성을 치니 무슨 일인지 궁금합니다. 서역 어쩌고 하는 말은 들을 수 있는데 대체 무엇일까요?”

“서역의 라마국(신성로마제국)에서 들여온 영약이며 피가 변하여 몸이 쇠하지 않는다 하더군. 조선인처럼 근육이 늘어나고…… 밤일도 능숙히 한다?”

어느새 탐구자의 눈빛으로 변하여 줄지어 선 이들을 파고든 이이는 이윽고 약을 사서 돌아왔다.

흰색과 누런색이 섞인 가루를 보니 불길한 느낌이 들었는데 마약이 아닐까?

“이 약이 무엇일지 지금 알아볼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몸에 해가 없다면 좋은 약이겠군.”

“무언가 무겁지 않습니까? 그리고 손에서 슬쩍 녹아나는 것이 불길한 것 같습니다.”

“쇳가루가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염려하지 말게나. 내가 화공원의 직전으로 부임한 일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러 방법을 익혔다네.”

화로와 얇은 철판을 빌려온 이이는 약을 철판 위에 약을 떨구었다. 달아오른 철판에서 약이 끓어오르는데 매캐한 유황 냄새가 진동하고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이가 나를 밀치고는 자신도 뒤로 자빠지면서 말하였다.

“이런 미친! 유황산(황산)과 섞은 수은이 아닌가! 수은을 왜 보약이라 속여 판단 말이야!”

“뭐? 수은? 저기 조선 사람이 수은이 들었다 했다네! 저 약은 제대로 된 단약이야!”

가만히 보고 있었다면 수은 증기를 쐬어 몸이 상했으리라.

하지만 수은의 유독성을 모르는 명나라 사람들, 심지어 막 퇴청한 것이 분명한 관료들마저 달려들었다.

이이는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예부 우시랑인 태악(太岳: 장거정의 호)이 아닌가. 명국 황상이 도교에 심취하여 단약을 섭취한다 하였는데 수은은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약재라네.”

“이미 알고 계신 분입니까?”

“태악은 지난번 북경에 왔을 때에 인연을 맺은 분일세.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며 진사(명나라의 진사는 조선의 대과 급제자)로 합격한 자이며 한림원의 자랑이라 하였지.”

이쯤 되면 명나라의 꼴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혹시나 수뇌부가 죄다 맛이 가서 척계광을 질시한 이들의 모함으로 이기지 못할 싸움에 참가하다 아무 해법도 없이 죽을지도 모르지.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관료들을 설득하여 명나라에서 사들인 단약을 모조리 폐기하였다. 처음에는 격렬히 거부하던 이들도 이이의 간절한 설득에 이기지는 못하였고.

하지만 도성으로 돌아오자 기다리는 것은 야근지옥이었다.

“아이고! 율곡 자네는 당장 화공원의 직무를 수행하게나. 그리고 이현 자네는 박사로 일하며 참으로 대단한 일을 했더군. 집현전에서 서신이 당도하였다네.”

서신에 적힌 내용은 엄연히 나를 지목하였다.

공조에서 각종 공사에서 인부들이 일하는 내역과 시일을 적었는데 이를 집현전에서 오 년간 분석하라는 어명이 전해졌다고.

기대승은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집현전에 한 방을 먹였다네. 집현전의 속아문은 홍문관이 있으며 홍문관은 조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저술하는 장소이지. 여기에 각종 공사의 내역이 적혀서 분석될 것이니 참으로 좋은 일이지.”

그럼 왜 나를 지목한단 말인가. 집현전과 공조가 고생하면 될 일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기대승은 어제도 야근을 했는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면서 말하였다.

“집현전에서 주상전하께 고하여 우리가 할 일을 정하였다네. 이번에 호구조사를 시행할 것인데 호구조사와 겸하여 토지를 모조리 측량할 것이라 하였지. 쉽고 빠르게 측량할 방안을 삼 개월 이내로 마련하라 하였네.”

“삼 개월 이내라 하셨습니까?”

“자네 덕분에 일이 밀려 뒤늦게 전해 주었다 하였네. 아마 자네를 지목하여 변명을 한 것이지만 삼 개월 정도 야근을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삼 개월 야근이라고? 집현전이 아주 단단히 열 받은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공조가 끼어들었으니 호조에서도 호응하여 이현전을 공격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측량이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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