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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88화 (288/573)

근육조선 288화

2부 4장 8화 명나라의 몰골

이틀 뒤에는 궁궐에서 출발하는 동지사에 합류할 예정이니 집에 돌아와서 옷가지를 비롯하여 필수적인 물품을 챙기려 하였다.

하지만 멍하니 봇짐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낭군님, 듣고 계십니까?”

“아…… 듣고 있소이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답하지 못했소.”

“동지사는 고난이 아니라 하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친께서도 기껏해야 명국의 산동 반도까지 배를 타고 가면 고난이 끝이 난다 하였습니다.”

내 앞에 놓인 고난은 동지사가 아니고 율곡 이이와 함께하는 신나는 절육과 분절이지!

절육이야 경험해 봤지만 근육의 결을 살리는 분절은 이황도 일과 병행할 수 없으니 할 필요가 없다 잘라 말했던 녀석이고.

결국 모두 내 잘못이었다. 하다못해 이이와 입신체비장이라도 다녀왔으면 착 달라붙는 입신체비복을 통해 정체를 예측할 방법도 있었겠지.

이런저런 물건을 준비해 주는 아내에게 묵묵하게 답했다.

“고난이 끝이라 하였소? 앞으로 관료로 일하며 수많은 고난을 겪게 될 것인데 아쉬운 일은 하나요. 진성이와 한 달 넘게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이지.”

진성이를 안아 들고 한 바퀴 도니 까르륵거리면서 내 수염을 잡아챘다.

지금까지 각종 업무와 아이를 핑계 삼아 의무방어전을 줄였지만 돌아와서는 또 거사를 치러야 하리라.

아내는 아이를 내려놓고는 쪽지를 건네주었다.

“명국의 도성인 북경에는 수많은 물산이 모이니 도성과 비견할 수 없는 장소라 하였습니다. 다녀오실 적에 이러한 선물을 들여오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선물이라 하였소? 명국의 물산이 이리도 다양하단 말이오?”

“부친께서 동지사를 다녀오실 적에 가져오신 물목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쪽지에 적힌 물건 가운데 가장 많은 녀석은 한약재인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대에는 저질의 중국산이라 낙인이 찍혔지만 본래 한의학의 근원은 중국이다.

궁궐에서도 중국에서 수입한 고급 약재를 사용하고 권세가에서도 가급적이면 중국에서 수입한 약재를 사용한다더라.

원산지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한약재는 조선에서 불티나게 팔리니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틀이 지나고 동지사가 출발하였다.

궐 밖으로 나선 동지사의 대표는 왕의 동생이자 몇 번이고 각종 사신의 정사(正使: 사신의 대표)로 활약한 영천대군이었다.

“이번 동지사는 제법 길어질 것이네! 병사들도 북경으로 향할 것이니 신속히 움직이지 않으면 명국의 황상께서 진노하실 것이라네.”

영천대군은 존재감이 없는 자였다. 왕의 동생이라 하면 재능이 보이는 대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였지만 재능도 부족하며 나이 터울이 열한 살이나 되니까.

실질적으로 이번 동지사의 우두머리는 얼굴마담인 영천대군이 아니고 문래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경기수군절도사 오겸(吳謙)이라는 자였다.

이번 동지사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내 문제는 바로 옆에 있었다.

“나의 방식은 몸의 한계를 몇 번이고 시험하는 일이라 문제라네. 하지만 염려하지 말게. 어떠한 일에도 한계를 두면 정체하는 법일세. 몸이 제자리에 머무를 수는 있지만 한계는 없는 법이지.”

“한계를 몇 번이나 넘어서셨습니까?”

“여섯 번 정도는 넘어선 것 같군.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용형각(龍形脚: 드래곤플래그)을 익힐 때였지. 숙소에서 보여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나.”

입신체비서에 적혀 있지만 어지간한 몸으로는 시도하지 말라는 운동이다.

누운 상태로 하체를 90도로 솟구친 다음 천천히 내리는 것인데 이거 영직이가 보디빌더 초창기에 무리해서 하다가 요추가 나간 운동이었다.

나도 입신체비에 익숙해져서 용형각이 내 몸을 어떻게 박살 낼 것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복근 전체를 박살 낸 다음 척추와 요추에 어마어마한 하중을 가하겠지.

이이는 내 표정을 보더니만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보탰다.

“염려하지 말게나. 한 가지 목표를 너무 많이 생각하면 성취할 수 없는 법이지. 자고로 이상적인 몸을 만들려면 매일 한 걸음씩 꾸준히 행해야 하는 법이네.”

그것참 이소룡처럼 말하네!

이미 자신의 별호를 소룡이라 칭하니 정말 조선시대의 이소룡을 만든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입신체비 동작 하나하나를 쉴 때마다 알려주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의 고난은 격이 다를 것 같았다.

* * *

벽란도에서 배에 올라 사흘간 항해하여 산동 반도에 도달하고, 다시 열흘간 북경을 육로로 향하였다.

이미 조선 사신단이 당도한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수많은 이들이 숙소 주변을 맴돌았다.

의주에 계신 아버지가 서신을 보내며 홍삼도 같이 보내주셨지.

사신으로 나설 적에 홍삼 한 근 정도는 필수적으로 챙겨서 은으로 바꿔 물건을 사들이라 했었는데 명나라에 오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홍삼 있습니까? 홍삼! 홍삼 한 근에 은 두 근으로 사겠습니다!”

사신단이 머무른 숙소 주변에 명나라 상인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래서는 조선이 상국이고 명나라가 번국이나 마찬가지이리라.

홍삼을 팔 때마다 은 덩어리가 소매로 빨려 들어가니 나도 즐겁게 홍삼을 팔고 북경에서 물건을 사들일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동지사 행렬이 북경에 닿았다. 본래 조선의 사신단은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한 달 가까이 북경에 머물며 환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환관들이 먼저 나서서 영천대군의 손을 잡아줬다.

“황상께서 동지사의 도착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른 이들이야 번국(藩國)으로써 예를 표시함이 마땅하지만 조선은 으뜸가는 번국이 아니겠습니까.”

“태감께서 이렇게 배려하여 주시니 내 손목이 무거워질 지경이오.”

영천대군도 입신체비에 능해서 최소한 삼대운동 팔백 근은 할 체격이다.

하지만 왜 손목이 무겁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일 처리를 빠르게 해서 고맙다는 뇌물로 금덩어리 여러 개를 건네준 것이다.

금덩어리를 받아들고 휘청거리며 돌아가는 태감의 모습을 보니 본래 역사와 달라진 조선의 힘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다음 날이 되자 조선의 사신 대표들은 자금성 본궁으로 입장하였다.

동지사에 참가해도 황제를 접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자금성의 태화전 앞의 조정(朝政)에서 도열하여 삼단 월대 위에 서 있는 황제에게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전부니까.

하지만 정말 황제를 접견할 이유가 있는 이들도 있었다. 동지사의 정사인 영천대군을 시작으로 명나라에 이런저런 보고를 올릴 이들이었다.

인사가 끝나고 추려진 이들이 도열하자 영천대군은 다시금 강조하였다.

“명심하게. 이번 동지사는 엄연히 명국 황상에게 사죄를 올리는 자리일세.”

부담감으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숨기지 못하는 영천대군을 보자 부담감이 밀려오긴 했다. 이번 동지사는 엄연히 명국의 황명을 어긴 상황이다.

명나라의 요청은 문래국의 수뇌를 끌고 오거나 죽이라는 것이었지만 실패하였다.

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병력을 죄다 박살 냈지만, 수뇌부는 높은 산 속으로 숨었다 하였지.

영천대군은 주변을 돌아보며 한 마디를 보탰다.

“물론 황상께서도 정세를 아는 분이시니 크게 책망하지는 않을 것이네. 하지만 세상만사는 모르는 일이니 혹여나 문초를 당할 일을 피하도록 하게나.”

영천대군의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눈은 사방을 돌아보았다.

현대에서 중국 여행은 다녀온 적이 있지만 북경의 자금성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든 궁궐의 내부를 담아두려 하였는데 환관이 나와 크게 소리쳤다.

“황제폐하 납시오!”

모두 부복하여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황제를 호위하는 병력과 문무백관이 도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헛기침 소리가 들리고 영천대군을 시작으로 모두 절을 올렸다.

“번국 조선의 왕제 영천대군이 지엄하신 황상을 뵙사옵니다.”

“과연 조선의 왕 이호의 동생다운 풍모로구나. 언제나 조선의 사신을 맞이할 적에는 짐의 기분이 풀리고 세상만사가 올바로 돌아가는 것 같구나.”

이게 황제라고?

얼굴에는 하얀 분을 발랐는데 분 아래로 시커멓게 기미가 떠오른 것을 보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또한 올해 54세라 하였는데 피부가 빳빳한 것이 기묘한 모습이었다.

수은으로 만든 약도 먹고 납으로 만든 백분도 발랐으니 중금속에 몸이 상하여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 것이다.

옥좌에 앉은 가정제는 손짓을 하며 내관을 가리켰다.

“간만에 이숭(영천대군의 이름)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짐이 마음을 맑게 할 것이니 선단을 하나 내오너라.”

환약을 먹고 물을 한 모금 마신 가정제는 몸이 풀린 듯이 단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병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앞을 가로막았는데 평소에도 이러나? 아니면 마약이라도 먹어서 흥분한 것인가?

가정제가 손짓을 하니 도사 복장을 입은 이가 미리 준비한 듯이 조선에서 보낸 외교문서를 건넸다.

외교문서를 직접 보는 행동도 좋고 사신들을 가까이서 보려는 태도도 좋지만 도사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꼴이라니.

가정제는 문서를 돌려주고 말하였다.

“이번에 올린 자문(咨文: 외교문서)을 보니 궁금한 점이 있구나.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알고 있더냐.”

“아국의 황상께서 내린 지엄한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점을 뉘우치러 왔나이다.”

“아니다. 어차피 문래국(브루나이)의 해적 따위야 문제가 없을 일이다. 내가 중요히 여기는 것은 백분을 금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독이 있다 하였느냐?”

영천대군이 슬쩍 눈치를 보내자 이이가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명나라가 이번 원정에 은자 칠십만 냥을 보탰다 하는데 화장품인 백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니.

가정제는 이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 말하였다.

“들은 적은 있다. 듣자 하니 여섯 번이나 장원 급제한 이이라는 자구나. 네가 백분의 해악을 증명한 것이 분명한데 방법이 궁금하구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백분의 원료인 납의 해악이옵니다. 동지사의 일원인 유성룡이 납이 녹은 물을 뿌린 연못의 물고기들이 모조리 죽어가고 납을 다루던 장인들이 쇠약해짐을 알게 되어 해악을 증명하였습니다.”

“백분이 몸을 쇠하게 한다고? 하긴 조선의 풍속은 쇠를 들어 몸을 키우는 것이니 쇠하다 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백분을 사용하면 군살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니 마음에는 좋은 법이다.”

군살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하면 납중독으로 인한 근력 감소와 기억 상실을 동시에 겪는다는 소리 아닌가?

아마 온몸이 중금속에 찌들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정제는 아쉬운 듯이 옥좌에 올라 말하였다.

“그러하면 조공으로 바치는 일백 근의 백분은 어찌하겠느냐.”

“아국에서는 백분을 금하였으나 명국은 아니라 사료됩니다. 하오니 백분의 명확한 제법을 알려드리고 이를 아국으로 되파는 일을 엄히 금해주시옵소서.”

“그것참 좋은 일이구나. 어서 백분의 제법을 알리도록 하고 다음은 상벌을 논할 자리이다. 조선의 장수인 오겸은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라.”

조만간 정승의 자리에 오를 오겸이 앞으로 나와 부복하였고 가정제는 화사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하였다.

이윽고 가정제의 입이 열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선에 극히 우호적인 말이었다.

“문래국의 도적들은 소탕하기가 힘들어 책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는 번국의 말석을 칭하며 복속하였지만 회회교(이슬람교)에 물들고 사특하게 변하였으니 조선이 징벌을 대신함은 마땅한 일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또한 더욱 좋은 일이 있으니 벌을 내릴 마음도 사라졌다.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광주에 머물다 왜구를 소탕하는 데 힘을 보태지 않았더냐.”

가정제가 손을 들자 오겸에게 줄 선물인지 수많은 비단과 백자, 그리고 각종 약재가 빼곡하게 담긴 상자 여럿이 앞에 놓였다.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이는 오겸을 본 가정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혹여나 상고(上告)할 이가 있다면 지금 나서도록 하여라. 자고로 명을 수행하느라 힘쓴 이에게는 벌을 함부로 내릴 수 없다 하였다.”

“부족한 신이 황상께 청할 것이 있사옵니다.”

서른 무렵의 명나라 군관이 앞으로 나서 무릎을 꿇었다. 다른 이들 모두가 기겁하였지만 가정제는 군관의 얼굴을 보더니 한참을 생각하다 가까스로 기억해 냈다.

“척계광 자네가 무슨 일인가? 자네는 대주(代州) 일대의 왜구를 소탕하는데 빼어난 자질을 보이고 있으니 따로 상을 내리려 하였는데 너무 일찍 나오지 않았는가?”

척계광이면 어디서 들어봤나 했는데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의 군제를 정비하는 데 참고한 기효신서의 저자였다.

그만큼 빼어난 무장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했는데 척계광의 말을 듣자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이 황상의 은혜를 입어 대주에 상륙한 왜구를 소탕하였다 하였지만 실상은 다르옵니다. 왜구와 치열한 격전을 벌이며 이들을 수세에 몰아넣는 데 성공하였지만 신의 능력으로는 부족하였사옵니다.”

“익히 알고 있다. 원정에서 돌아온 조선군이 잠시 광주(광저우)에 머물 적에 가세하였다 하였지. 하지만 직무에 충실하였으니 상을 내릴 것이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황상께서 상을 내리실 것이면 저와 제가 추린 정병들을 조선으로 보내주시옵소서. 그토록 사나운 왜구들이 조선군과 싸우자 반나절을 버티지 못하였으니 조선의 병법을 배우면 왜구를 소탕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옵니다.”

일종의 유학인가 아니면 조선을 정탐하려는 신호인가.

알 길이 없었지만 가정제는 척계광을 노려보다가 다시 영천대군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하였다.

“참으로 지극한 충심이로다. 조선의 군대보다 맹렬한 이들은 북방의 달자 외에는 없지 않겠는가. 생각 같아서는 절강병 모두를 조선에 보내 배우게 하고 싶지만 조선도 사정이 있을 것이다. 며칠을 숙고하고 답을 마련하도록 하여라.”

“황상의 은혜에 감읍하옵니다.”

감읍한다 하였지만 영천대군은 태화전을 나서자마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변했다. 본래 영천대군은 나이 터울도 많고 재능도 부족하여 각종 외교관련 직책을 수행하며 조용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외교가 아닌 군사와 관련된 일이니 그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속마음도 모르고 사신들이 머무는 객사에는 연회가 시작되었다.

동지사에 참가한 모든 이들도 상황을 알고 있기에 조용히 내온 음식을 먹으며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마침내 영천대군은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척계광이라 하였소? 듣자 하니 절강성 일대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장수라 하였는데 혹시나 어떤 이인지 아는 자는 있소이까?”

“제법 명성이 뛰어난 자라 하였습니다. 등주(登州: 산동 일대)의 명문가에 속하는 이였는데 여러 학문을 익히고 북변의 달자와 싸우며 경험을 쌓고 사천여 명의 장정을 소집하여 훈련시켰다 하였지요.”

“그래도 오위군에게는 견줄 수 없겠지. 훈련원도 없는 명국에서 정병을 만들어 보았자 아국의 병졸보다 부족함이 있을 것이 아니오. 혹여나 명국이 지나치게 강해질 가능성은 있소?”

군사와 관련된 일이니 오겸의 의견은 절대적 지표는 아니겠지만 엄연한 장수의 의견이라 경청할 이유는 있었다. 시선이 쏠리자 오겸도 한참 생각을 하다 마지못해 답하였다.

“만약 아국의 훈련원의 방식을 익히고. 다시 훈련원의 방식을 충분한 실전으로 십여 년 이상 반복하며 다듬으면 오위의 말석인 충무위와 비견할 군대는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충무위라 하였소?”

“그렇습니다. 의흥위나 용양위와 견주려면 최소 삼십 년의 경험을 쌓아 모든 군관이 정병으로 시작하여 장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

본래 역사에서는 명나라의 뛰어난 군사능력을 탐낸 선조가 유성룡을 보내 기효신서를 입수하고 훈련법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하였다.

하지만 변한 역사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 척계광 정도 되는 뛰어난 장수이니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영천대군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그러하면 아국이 감당할 수를 정해야 하지 않겠소. 오백 명 정도가 배우면 충분하겠소?”

“이천 명도 가능하지만 오백 명을 이야기하고 일천 명으로 높여 부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다만 모든 일을 가르치지는 않게 일 년 정도 시일을 두는 것이 좋겠지요.”

본래 역사에서 왜구를 쉴 새 없이 박살 냈던 척계광이 조선에 유학을 오는 꼴이라니.

하지만 나는 이이 아래에서 배울 예정이라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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