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287화
2부 4장 7화 소룡(小龍)
한동안 이이는 멍하니 나를 보다 술잔을 보기를 반복하였다.
분명 스승인 이황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사람이지만 이황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만약 대성하면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요 실패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대성한다는 뜻은 주변 사람들에게 입신체비를 덜 해도 됨을 입증하는 것이겠고 실패하면 억지로 입신체비를 하다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뜻이겠지.
이이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 술을 들이켜고 입을 열었다.
“자네…… 도 내 행적을 보아왔을 것인데.”
“물론입니다. 직전께서 식사도 적게 하시며 적은 중량의 입신체비를 다양하게 행함을 듣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험난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험난한 일이라. 내 자네가 대단함은 알고 있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군.”
이이의 체격에 대한 소문도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입신체비를 시작하면 삼 년 정도는 골격이 지탱할 수 있는 표준 근육량까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한다. 나는 미리 운동한 게 있으니 이 년 동안은 성장하였지.
하지만 이이는 일 년 만에 표준 근육량을 달성하였고 이후 근육의 성장이 없다고 했었다.
그의 삼대운동의 합은 510근(335㎏)으로 지극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신체비로 인정받았다. 이런 이이와 학파를 만든다면 영원한 근육의 길에서 조금이나마 쉴 장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이는 생각을 정리하려는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깊게 사유(思惟)할 것이니 잠시 주변을 다녀와 보게나.”
슬쩍 일어나 보니 어느새 주점에 사람이 들어차다 못해 넘쳐날 지경이었고 다들 담배 연기를 뿜으며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는데 사람들의 면모를 보아하니 죄다 무관인 것 같았다.
“아 맞아, 문래국(브루나이)의 해적들을 토벌하러 병력을 파병한 것이 과거 시험 직후였지?”
내 대과시험의 책문이기도 하였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듣자 하니 육군 칠천 명과 경기 수영 전체의 병력이 출동하여 도합 이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원정을 벌였다고 했다.
하지만 승전 개선식은 내년 이월에 시행한다 하였는데 벌써 도착하였다고?
주변이 시끄러운 와중에 술에 취한 척 주모에게 꿀물이나 내어오라 하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토벌에는 성공했으니 다행이지만 왜구보다 지독한 놈들이니 조만간 다시 준동하겠지. 본래 원정비용 때문에 손도 못 댈 지경이라 하였는데 명국이 은자를 내린 것이 대단하지 않은가.]
[명국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원정을 하였겠는가. 그나저나 명국에 개선식을 올리러 다녀오는 이들이 부럽군. 동지사와 함께 명국에 다녀오니 사들일 것도 많겠지.]
왜 개선식이 늦는지, 이 자리에 담배를 피우는 군인들이 많은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원정이 끝난 군인들이 돌아왔지만 아직 개선식을 하지도 않았으니 해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원정을 다녀온 수고비를 술을 마셔서 사용하는 이들이 많겠지.
가만히 보니 김인후가 왜 명나라가 두들겨 맞는 돼지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명나라는 군사를 키우기보다 조선의 군사력을 대신 사용하기를 즐겨 하여 군사력이 형편없이 감소했다 하던가.
귀를 기울여 군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야! 옥향아! 왜 이리 피부가 상한 것이냐!”
제법 좋은 술집이기에 기녀도 있었지만 이이와 나 둘 다 아내가 있었기에 기녀를 부르지 않았지.
하지만 좀 떨어져 있는 방에서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며 기녀와 한 남자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원인은 뻔했다.
두 달 사이에 백분은 도성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무관 입장에서는 자주 만나던 기녀의 얼굴이 상한 것과 같이 여겨질 것이다.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갔다.
“백분 대신에 쌀가루를 사용해서 얼굴이 고와지지 않은 것입니다. 듣자하니 백분이 근손실을 유발한다 하여서 도성에서 백분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백분이 근손실이라? 어이고 세상에! 대체 이현전에서 뭘 만들었고 뭘 금지한단 말이더냐!”
“저도 영문을 알 길이 없었지만 풍문으로는 스무 살의 젊은 박사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였습니다.”
거구의 군관이 기녀를 한 손으로 안아 들고는 얼굴을 살피다 내려놓았다.
저 덩치와 괴력을 보면 어지간한 입신체비사 수준인데 힘 하나는 장난이 아니군.
하지만 소란을 듣고 나온 기녀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려 있었다.
“왜들 그러시오?”
“나리가 다른 분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며 백분을 회수하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
“연배가 젊으시니 혹여나 백분의 해악을 찾아내신 이현전의 박사님이 아니십니까?”
화공원 관료들이 나와 함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백분을 회수하고 판매 대금을 반환했다. 결자해지라 하여 김인후의 돈이 들어간 일이었지만 시행한 사람은 우리지.
대화를 들은 군관은 그 거대한 몸을 돌려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투실투실한 얼굴인데 누구일까? 군관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현전의 박사께서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원주 원씨의 자는 평중(平仲)이라 합니다. 지금은 경기수영의 사맹(司猛: 정8품 군관)입니다.”
지금 뭐라 했지? 적게 잡아도 체중이 이백 근(128㎏)은 나갈 것 같은 돼지, 아니, 돼지보다는 근육이 있으니 멧돼지라 하자. 여하튼 이 사람이 원균이라고? 반사적으로 인사에 답했다.
“평중이라 하였소? 나는 풍천 유씨의 자는 이현이라 하오. 이현전에서 부족한 몸이지만 박사를 역임하며 힘쓰고 있소이다.”
내가 전통건축을 하며 역사를 익혀서 부족함은 있지만 특정 대상은 아니다.
원균의 후손과 현대부터 악연이 있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충 내가 빙의하기 오 년 전의 일이다.
-소장님! 평택의 원씨 종친회에서 기념관 건립 사업이 공고되었습니다. 총 공사비 칠억 규모인데 입찰하시겠습니까?
-내가 덕수 이씨 이십육 세손이며 충무공의 후손은 아니지만 원균을 떠받드는 일을 도우라고! 김 실장 자네는 전통건축을 하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나! 당장 따라 나오게!
옥상으로 불려 올라간 다음 한 시간 가까이 욕을 먹었지.
드라마 왜란비록의 세트장도 만들어 본 사람이 임진왜란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소리로 시작해서 귀가 아프도록 잔소리를 들었으니까.
일단 원균과 악수를 나누었는데 처음에는 덩치도 크고 성격도 호탕하니 살만 빼면 적당할 것이라 여겼지만 이놈은 다르다.
젊은 시절의 원균은 어느 정도 본성을 숨기고 있는 놈이다.
유성룡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그의 외모와 행적만 보고 용맹한 무관이라 오인하였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원균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며 체격만 봐도 그랬다. 가장 큰 고난인 절육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대상인 임차손의 몸에 최소한 사십 근(25.6㎏)의 지방이 덧입혀진 것이 원균의 몸이다. 이런 체중이면 군관이 아니고 그냥 멧돼지가 아니겠는가.
원균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백분이 근손실을 일으킨다 하였습니까?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박사님의 자(字)를 들어보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퇴계 대감께 배우신 분이니 근육과 관련된 일에 지식이 깊으시군요.”
“그렇소이다. 스승님께서 엄하신 분인지라 부족한 제자가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깊이 알아보다 가까스로 알 수 있었소.”
“그러하면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제가 문래국 해구들을 토벌하고 돌아와 근손실이 일어날 지경이니 가볍게 삼대운동으로 겨뤄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랑 네가 삼대운동으로 겨룬다고? 내 체중이 120근이라 약 77㎏인데 최소한 200근은 될 너와 덮어놓고 겨룬다고? 이황도 조식과 겨룰 적에 체중과 비례하는 입신체비가 공정하다 했는데 그런 조건도 없다고?
이건 허세를 부리는 것이 분명하다.
백분 때문에 자신이 평소 다니던 술집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했으니 만만한 나를 삼대운동 합으로 이기겠다는 뒤틀린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지.
품계로 억누를까 하였는데 원균의 아버지인 원준량은 내 아버지보다 높은 종2품의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이니 불가능하다.
이황을 들먹이니 거절할 수도 없고 응했다가는 패할 게 뻔해서 고민하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네가 무얼 하나 했는데 여기 있었군. 백분과 연관된 일에 명을 내린 이는 나일세. 이현전에서 직전을 역임 중인 덕수 이씨의 율곡일세.”
“명망이 자자하신 육도장원공(六度壯元公: 여섯 번 장원에 오름)께서 여기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원균은 원균답게 나에게는 거만함을 숨기지 않다가 이이가 오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이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몸을 풀면서 말하였다.
“삼대운동을 겨루자고 하였는가? 차라리 나와 입신체비를 겨뤄보면 어떻겠는가?”
“입신체비를 겨루신다 하셨습니까?”
“물론일세. 내 체중이 일백 근에 불과하고 자네의 체중은 백팔십 근에 달하니 체중에 비례하여 서로 자신 있는 입신체비를 행하는 것이지. 혹여나 체중이 백칠십 근인가?”
“이백 근으로 합시다! 그 정도면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원균은 이이의 체격만 보고 승리를 예상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호각이다. 체중 차이는 두 배이며 삼대운동으로는 무관인 원균이 불리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 있는 입신체비라 하니 마음에 걸린다.
군관은 팔과 등을 비롯하여 무기를 사용할 때 사용하는 부위를 단련한다. 원균이 이런 부위의 입신체비로 이이에게 덤비면 이이의 승산은 줄어드니까.
하지만 이이는 나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껏 내 몸을 부끄럽게 여겼다네. 하지만 서애 자네와 같이 빼어난 이가 나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하였으니 만천하에 나의 몸을 드러낼 수 있겠군. 보게!”
철릭의 옷고름을 단번에 풀어헤친 이이는 음력 11월의 싸늘한 공기를 뚫고 웃옷을 모조리 집어 던졌다.
64㎏에 불과한 몸에 어떤 근육이 숨어 있을까 궁금하였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근육이 자라지 않는 나는 본디 부모께서 부족한 몸을 내려주셨음을 원망하였네. 하지만 부족한 몸에도 근육은 있었고 내 방식이 잘못되었을 뿐이었네. 금강산의 산자락과 같이 근육을 드러내는 일이 먼저가 아니겠는가?”
“저런 상체가 이 세상에 있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근육이 있었다. 취미가 영화감상이지만 수많은 배우들의 근육을 비교해 보아도 이이와 동일한 수준의 배우는 단 한 명에 불과하였다.
“이 소룡(小龍)…….”
얇은 살가죽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등근육이 보일 지경이었다.
극단적으로 부풀어 오른 광배근과 최대한의 절제를 추구한 팔근육의 모습은 하나의 조각과 같았다. 개미와 같이 얇은 허리는 정점과 마찬가지였다.
웃옷을 벗으려던 원균도 놀란 눈을 숨기지 않았으며 기녀들은 내가 했던 말을 들었는지 이이의 등근육을 보고 잔뜩 흥분하여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본디 입신체비에 능하면 흑룡세(빅토리 포즈)를 취한다지만 저분은 등에 용이 있잖아!”
“학사 나리의 말씀이 맞아! 큰 용이 흑룡이면 등에 숨겨진 용은 작은 용이잖아!”
“광배근이 얼마나 두툼하면 허리가 개미처럼 잘록하게 보이겠어! 나도 광배근 키울래!”
이이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뒤를 돌아 호들갑을 떠는 기녀들을 바라보았다.
기녀들은 어쩔 줄 몰라 고개를 돌렸고 이내 나를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이런 얄궂은 일이 있는가. 내 아명이 현룡인데 자네가 창안한 별호는 소룡이 되다니. 하지만 이 부족한 몸으로 흑룡세를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적당한 별호겠어.”
“참으로 얄궂은 일이군요…….”
이황이 누누이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입신체비와 관직을 병행하려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며 극단적인 절육(커팅)과 고립운동(특정 부위에 부하가 집중되는 운동)을 통한 근육의 분절을 시행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이이는 입신체비를 저 두 가지에 몰입했다. 근육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않으며 이상적인 몸을 만드는데 치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이와 함께하겠다고 말한 나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이는 역기를 등 뒤에 올리고 말했다.
“내가 행할 것은 배례거(拜禮擧: 굿모닝 리프트)일세. 자네가 내 두 배를 행하면 되니 일백 근을 행하면 되겠군!”
“일백 근이라 하였습니까!”
원균은 놀란 눈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나도 그러고 싶었다.
초고난이도 운동인 배례거는 내 체격으로도 삼십 근을 하고 허리가 휘청거릴 지경이며 보조가 없으면 절대 하지 못하는 운동이다.
당연히 원균은 역기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제가 이러한 운동을 하다가는 허리가 단번에 박살 날 것입니다. 직전께서 이기셨습니다.”
“앞으로 이런 장소에서 삼대운동을 겨루지 말게. 지나가던 입신체비사가 자네를 벌하려 하면 피할 길이 없지 않겠는가. 수부(秀夫: 원준량의 자) 영감의 자제이니 특별히 나선 것일세.”
웃옷을 갖춰 입은 이이는 술집을 나서며 내 손을 맞잡고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이렇게 해맑은 표정이 된 것은 처음 보았으나 내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이다.
“일단 고립운동을 배우는 것이 우선일세. 자네의 연배를 보아하니 퇴계 대감께서 상세한 일은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네. 절육 또한 이현전에 다니는 동안 꾸준히 행하세. 서로 힘을 합치면 발전할 길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황의 제자가 되어 상체하고. 아내와 결혼해서 죽어라 하체하고 이제는 이이의 친구이자 제자가 되어 절육과 분절 그리고 고립운동에 몰두하라고? 이건 영직이도 힘들어한 일이다.
부위별로 특성화된 운동은 정확한 한계 측정이 필수이다.
현대라면 기구를 사용하지만 이 시대에 기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보충제도 없으니 식단관리는 끔찍할 것이다.
이이는 내 표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쐐기를 박았다.
“이틀 뒤에 동지사가 출발할 것이네. 사신으로 일을 행하지 않을 때에는 기본적인 사항을 배우며 자세를 잡아나가도록 하면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내가 자네의 편의를 충분히 봐 주겠네.”
목에서 침이 넘어갔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한 시간 전의 나는 같이 입신체비의 새 길을 열자고 하였는데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