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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83화 (283/573)

근육조선 283화

2부 4장 3화 경력직 신입(2)

“틀린 말은 아니네. 사지에 납환이 박히면 천하장사라 하여도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이며.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쇳독이 사지에 올라 급사할 것이라네.”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생각하여 보니 쇳독이 오르면 부상을 치유하기도 힘든 일이겠군요.”

“참으로 좋은 의견을 내었다네. 다만 우박과 녹은 납이 같은 이치로 만들어질지는 모르겠군.”

이이도 좋은 말을 했다.

현대에는 영화를 통해 산탄총이 악마 퇴치에도 효과적이며 대부분의 생명체를 죽이는 일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이 시대의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둘의 주제는 어느 사이에 산탄의 효율성에 대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이는 군관을 데려와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느 정도 직급이 있는 이가 분명하였다.

“내가 군문에 있던 적이 없어 포도탄을 쏘아본 적이 없다네. 자네가 만약 나팔총에 세밀한 탄환을 넣고 쏜다면 어떤 효험을 보일지 알고 있는가.”

“신기전이 터지면 철편이 폭발과 섞여 주변 사람을 찢어발깁니다. 최소한 작은 탄환이 살가죽은 뚫고 근육을 헤집을 위력이 나와야 할 것이니 탄환의 크기가 너무 작으면 효험이 없을 것입니다.”

이이와 자 첨정, 그리고 군관은 내가 던진 화두로 대화를 나누느라 바빴다.

틈을 노려 예전에 한번 조사해 보았던 샷 타워에 대한 기록을 되새기고 있었다. 이론은 18세기에 정립되어 19세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초기의 샷 타워는 낙차가 27m에 불과하여 동물 사냥용 탄환을 만드는 것이 한계였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최초로 대인용 산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는 폐허가 된 성당 첨탑을 개조한 덕분이었다.

취업 직전에 스페인을 시작으로 다녀온 유럽 여행에서 방문한 장소였는데 성당이면서 탄환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조사해 보았지. 덕분에 조선시대에도 쓰일 수 있는 정보를 얻어냈으니 다행이다.

셋의 이야기도 어느새 결론에 도달했다.

“우선 세세한 납환을 산탄(霰彈)이라 칭하지. 아무리 작아도 모래보다는 커야 하니 십 분의 일 치에서 사 분의 일 치까지 다양한 크기를 만들어서 위력을 시험함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직전께서 하시는 말씀이 옳습니다. 신기전에는 적어도 모래보다 큰 파편을 섞으니 제가 사람을 시켜 산탄을 종류별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위력을 시험한 다음에 유 박사가 말하였던 녹인 납을 떨어뜨리는 일을 시행해 봅시다.”

군관이 인사를 올리고 돌아가자 이이는 나를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여섯 살 차이니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친구 사이로 있어도 될 나이 차이지만 엄연히 내 상관이기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가 던진 화두로 많은 논의가 있으니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부족함이라 하였는가. 자네 덕분에 헛일을 하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으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혹여나 자네가 창안한 방법이 효험이 없어도 모든 일은 실패가 아닐세. 후세를 위하여 남겨두는 일이라네.”

후세를 위해 남겨둔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누군가가 발상을 창안하면 이를 검증하고 증명하는 일이 적으며 결과만 도출하는 일이 자주 있었으니까.

이이는 몸을 돌려 말에 오르며 말하였다.

“어서 이현전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본래 시작에만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자네 덕분에 몇 달의 시일을 아꼈는지 모르겠네.”

“저는 이만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다른 곳에서 일감을 보내온지라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군요.”

“어허, 혹여나 산탄이 화약의 제법에 따라 효험이 달라질지 모르지 않은가. 재료를 모아 배합을 달리 한 화약 여럿을 준비하여 두게.”

어차피 할 일이라 여겼는지 자 첨정은 실망한 표정으로 말에 올렸고 나도 직장인 이현전으로 돌아갔다.

내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업무에 참가한 것이지 보통 신입은 업무에 익숙해지는 일이 우선이었다.

“여기 자네가 관여한 업무의 서적이라네. 처음 관여하는 일에 부담을 가지지 말고 착실히 확인하여 지식을 쌓아나가도록 하게나.”

한 아름 건네진 서적에는 보총도해니 염초방이니 계묘년총기편람이니 하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느꼈지만 조선의 사상 자체가 변하였으며 그 부가적 효과로 인과관계에 대한 분석이 구구절절이 적혀 있었다.

[화약을 만들 때에 가장 좋은 물건은 천축에서 들여온 화약이나 아국의 염초전에서 나온 화약도 부족함이 없다. 염초전의 화약을 더욱 고르게 만드는 법은…….]

[보총의 위력을 정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총열이다. 총열의 길이가 석 자(104㎝) 이하가 되면 위력이 감소하며 가급적 석 자 다섯 치(121㎝) 이상으로 마련하며…….]

“이 정도면 제대로 된 대장장이와 도구만 있으면 즉석에서 총을 만들 수 있겠는걸. 보총이 완전히 소실되어도 현대에서 완전히 복원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현대에서 조선시대에 실전된 물건을 복원하는데 전문가들이 민간 기록을 포함한 자료를 찾아가며 과정을 도출한다. 결과물만 남아 있으니 현대인들조차 난항을 겪는 것이다.

그나마 조선왕실의궤나 실록같이 왕실과 관련된 일이면 세세하게 적혀 있지만 이외의 모든 서적은 부족하였다.

하지만 기록 문화가 바뀌고 이론을 정립하는 문화가 발전된 조선이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나도 힘내야지. 일단 샷…… 아니, 산탄탑(霰彈塔)이나 고안해 보자.”

이 시대에 돌로 만든 탑을 만든다면 장대(將臺: 장수의 지휘대. 높이는 10m가 넘는다)를 참고하기는 힘들다. 지휘관의 시야가 부각되어 장대가 축조될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니까. 그래도 석조 건축을 안 하는 시기는 아니었다.

목조로 25m 높이로 탑을 만들고, 하부는 흙을 다져 기초를 만든다. 아래에 공간을 두어 낙차 40m를 달성하면 충분할 것이 아닌가.

어느 정도 도면을 완성했는데 밖에서 소란이 벌어진 것 같았다.

나가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곤룡포가 보였다.

“유성룡 거기 있는가?”

“주상전하!”

주상전하가 여기 무슨 일인가 하였는데 다른 관원들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시험장에서 보았던 시선과 달리 푸근한 눈빛으로 방 안을 살펴보았다.

“조금 전에 이이가 장계를 올렸다네. 녹인 납을 하늘에서 떨어뜨려 굳힌다 하였는가. 참으로 신기한 발상이네만 그 도본은 무엇인가?”

“혹여나 효험이 있을 적을 대비하여 미리 창안해 둔 도본이옵니다. 아직 미흡한 물건인지라 주상전하께 불민한 솜씨를 자랑하는 일이 송구하옵니다.”

도면을 낚아채어 눈으로 살피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현대의 버릇을 버리고 세부 치수는 없이 그저 탑의 높이가 7장(70자, 약 24.2m)이라 적었는데 임금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자네의 문제점을 알겠네. 하지만 이이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니 자네의 부족함과 문제를 잘 파악하여 훌륭한 신료로 만들 것이라 믿을 수 있겠군.”

“제 불민함과 오만함이 주상전하의 눈을 어지럽힌 것이라 송구하기가 이를 데 없사옵니다.”

“아닐세. 새 신료가 들어온 집현전과 이현전을 들렸는데 참으로 신비한 일을 보았다네. 앞으로 정무에 임하며 정진하도록 하게. 그리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퇴청하게나.”

퇴청? 맨날 사람을 갈아 넣는 야근지옥에서 퇴청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뒤를 보니 이이도 서경덕도 입을 벙끗거리며 빨리 퇴청하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시하였다.

“신을 아끼는 마음이 하해와 같으시니 어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첫날부터 야근하는 일은 없었다.

이후 암묵적인 압력이 가해져서 아침 일찍 나와 입신체비를 같이하고 책을 읽으며 업무에 적응한 다음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보름이 흐를 무렵, 이이가 총을 잔뜩 쏘았는지 온몸에서 염초 특유의 지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

산탄 시험을 한 모양인데 흥분한 얼굴로 내 손을 잡고는 말하였다.

“효험이 있었다네! 산탄의 지름이 십 분의 일 치가 넘어가면 피부를 뚫고 근육을 헤집을 위력을 발휘하니 참으로 잘된 일일세.”

“정녕 효험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일이군요.”

“그렇다네. 다만 도성에서는 확인해 볼 수 없는 노릇이니 진산(鎭山: 북한산)에서 시험해 볼 것이네. 높은 곳에서 납을 녹여 떨어뜨린다 하였으니 당연히 절벽이 필요하지 않은가.”

아무리 목조로 만든 가설 건축물이라지만 만드는 비용은 부담이 되었나 보다.

내가 매달려서 실험해야 하나?

* * *

혹시 의견을 제시한 내가 나서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런 무식한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조금 덜 무식한 행위를 하였을 뿐이다.

북한산의 절벽 앞에서 군관들과 인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왜 군관이 필요하나 했는데 형조 관원들도 도착해 있으니 범죄자를 실험에 사용하는 것 같았다.

“혹여나 죄수가 상하지 않도록 유념하여 주십시오.”

“죄수를 밧줄로 묶어 녹로로 늘어뜨릴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만약 죄수가 상하여도 크게 다치는 일은 없고 사지가 부러지는 일이 전부이지.”

사지가 부러지는 것이 전부라는 살벌한 말이었지만 맨정신으로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절벽 위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해지다 못해 누더기로 변한 의복을 입은 죄수 여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죄수들은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형을 감면받을 목적으로 자원했음이 분명하였다.

이이는 죄수들 가운데 두 명을 지목하고는 손에 도구를 쥐여주었다.

“한 명은 납을 녹인 물을 들고 매달릴 것이며 다른 한 명은 구리로 만든 체를 들고 매달릴 것이네. 바닥에 둔 구유를 향해 납물을 체에 걸러 떨어뜨리게.”

“납물이 몸에 닿으면 피부가 타들어 가지 않습니까?”

“자네들이 형을 감면받는 일이 좋은가 몸에 납물이 튀어 피부가 좀 상하는 일이 좋은가? 참여하면 반년의 형기가 줄어드니 원치 않는 이는 행하지 않으면 될 것이네.”

죄수들 모두가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앞으로 나설 지경이라 군관들이 몽둥이를 들고 두들겨 패며 진압하였다. 인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현실이지만 그나마 나은 일이 아닐까.

이마에 큰 혹을 달고 있는 죄수가 융해된 납을 담은 용기를 들었다.

대략 맥주잔 정도 크기의 국자였는데 납이 무거운지 조금 덜어낸 이후 밧줄에 의지해 공중에 매달렸으며 다른 죄수가 커다란 체를 양손으로 들고 매달렸다.

“야! 똑바로 조준해! 바닥에 흘리면 치도곤을 맞을 것이니 정신 차리라고!”

“뜨거워 죽겠고 무거워 죽겠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두 죄수는 서로 합을 맞춰 천천히 납물을 체에 부었다. 바람이 불어 떨어지는 납덩어리가 이리저리 흩날렸지만 상당수는 구유에 담아둔 물에 떨어졌다.

체를 바꾸고 다시 융해된 납을 채워서 반복 시행하였다.

열 번이 넘는 시도가 이어졌으나 큰 사고는 없었다.

죄수들을 돌려보낸 이이는 구유에 떨어진 납을 건져내 분류한 것을 확인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세상일이 순탄하지는 않은 법일세. 보총과 운총에 쓰이는 반 치(17㎜) 크기의 탄환을 시도했을 적에는 아예 탄환의 형태조차 만들어지지 않았군.”

“대신 팔 분의 일 치(4.4㎜) 탄환은 제대로 된 형태가 보입니다. 완전한 원은 아니고 다소 찌그러져 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산탄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납을 떨군 절벽의 높이가 20장이 조금 안 된다 하였으니 180자 정도 될 것이며 미터로 따지면 62m에 달한다.

이렇게 높은데도 제대로 된 산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물론 바람도 불고 있으며 납에 불순물이 섞이는 등의 변수가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샷 타워의 제원과는 차이가 있다.

이대로라면 제대로 된 탄환을 만들어낼 수 없다. 하지만 이이의 표정은 밝다 못해 쾌활하였다.

“유 박사 자네는 왜 이리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가. 스무 장에 달하는 낙차만 확보하면 마음대로 산탄을 만들 수 있으니 일이 해결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밖에서 납환을 만들려면 매번 죄수를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건물을 만들려 하여도 어지간한 목탑이나 거대한 석탑을 두어도 힘든 일입니다.”

이게 문제이다.

62m 높이를 달성하려면 성당 첨탑처럼 석조로 거대한 건물을 만들거나 벽돌을 잔뜩 쌓아 조적조로 올려야 하며 건축비는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는 꿈에도 꾸지 못한다.

80m의 철근 콘크리트 탑을 만든다 하면 무게는 1,000톤에 달하고 철근은 2% 정도 포함되니 20톤이다. 말이 20톤이지 실질적으로는 상부에 어마어마한 양의 납을 올려야 하니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재료도 문제이다.

17세기 기준의 고급 철물은 현대 기준으로는 고로에 넣어 재생하기도 힘든 폐품이라 하였으며 철근을 만든다 해도 콘크리트와 골재의 성능이 부족하면 탑의 허리가 꺾일 것이다.

아마 군기시에서 제조하는 최상급 철을 일 년 내내 모아 철근을 만들고. 주변에 가마를 만들어 즉석에서 콘크리트를 찍어내야 하리라.

이래저래 막막한 와중에 이이가 환하게 웃으며 답하였다.

“자네는 생각은 깊지만 세상을 알지는 못한다네. 내가 알고 있는 목탑만 하여도 두 개 정도는 산탄을 만드는 일에 쓸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나도 문화재야 꿰고 있으며 현존하거나 이 시대에 남은 목탑이야 알고 있지만 산탄을 만드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은 없다.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고루식(高樓式: 누각 여럿을 겹친 형태)의 목탑이 필요한데 대부분 여몽 전쟁 때 불타버려서 내가 아는 문화재 목록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이는 고민하지도 않고 말하였다.

“실상사의 목탑을 사용하면 좋을 일이지만 지리산 기슭에 있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이네. 하지만 염려하지 말게나. 개성 인근에 연복사(演福寺)에는 빼어난 목탑이 있지.”

연복사?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절인데 개성 인근이면 북한이라 내 기억에 없을 법한 녀석이다. 당연히 내가 꿰고 있는 문화재는 남한 영역에 국한되어 있으니까.

이이는 납환을 소매에 넣고는 말하였다.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리고 연복사의 목탑을 사용하여 마무리를 지어보겠네. 새 건물을 만들어도 좋은 일이지만 기왕이면 기존 건물을 사용해야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며칠이 지나고 사람들과 함께 개성으로 향하였다. 연복사가 무슨 절인가 궁금했는데 북한이 연구결과를 단독으로 제시하였던 보제사(普濟寺)였다.

“대체 무엇이 있기에 당도한 것입니까.”

“연복사는 왕태조(태조 왕건)이 세운 열 개의 사찰 가운데 하나라 하였지. 이후 전조 말엽 공양왕이 중창을 요청하였지만 문헌공(文憲公: 정도전의 시호)께서 극렬히 반대하셨네. 하지만 탑만큼은 멀쩡하게 남아 있지.”

스님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마중을 나왔다.

쇠락할 대로 쇠락한 사찰이었지만 스님들의 몸은 다부지니 혹여나 입신체비를 했었나? 아니다! 이건 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데 거대한 근육 사천왕상이 있었다. 듣자 하니 수양대군이 사방의 사찰을 떠돌며 시주를 하였다는데 여기에 연복사가 끼어 있었나 보다.

주지 스님조차도 예순이 넘은 외모와 반비례하는 근육이 있었다.

“이미 말씀은 들었습니다. 이 불민한 사찰에 이현전의 관료께서 무슨 일로 당도하셨는지요.”

“불민한 사찰이라 하였소. 듣자 하니 예진원 대제학께서 사찰에 주기적으로 시주를 함에도 보수에 벅찰 지경이라 하였는데 우스운 일이구려. 오늘은 그 수고를 덜어주러 왔소.”

주변을 둘러보다 서쪽을 보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탑이 있다! 그마저도 창문이 빼곡하고 높이는 최소 50m 이상이며 하나하나의 충고가 지나칠 정도로 높다.

내가 탑에 시선이 빼앗겨 있으니 이이도 싱긋 웃으면서 탑을 가리켰다.

주지 스님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탑을 보았으나 이이가 간단하게 답하였다.

“저 탑에서 탄환을 만들 것이니 탑을 내어주시구려. 그리하면 주상전하께서 이 친구를 보내 절을 보수할 것이라 하였소.”

이이가 내 등을 떠밀어 앞으로 나서게 하는데 왜 나인가?

조금 억울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이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답했다.

“자네는 지식이 많고 사려가 깊으나 지혜가 부족한 것일세. 자네가 연복사의 목탑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일이 편하게 흘러갔을 것이라네. 그러니 내 아래에서 지혜를 채우게나.”

뭔가 처음부터 제대로 꼬였다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는다.

이쯤 되면 다음 업무는 무엇이란 말인가!

#작가의 말

주인공이 생각한 것과 진짜 샷 타워는 제법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알고 있는 샷 타워는 초기 모델입니다.

하부에서 바람을 불어넣어 위로 향하는 상승기류를 만들어 납의 낙하속도를 저하시키고 빨리 굳게 만들었는데 그런 과정이 없으니 직경 4㎜의 산탄을 만드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이이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제 역할을 못 했죠.

덕분에 주인공은 지식은 많지만 지혜가 없는 인물로 찍혀서 속성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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