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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82화 (282/573)

근육조선 282화

2부 4장 2화 경력직 신입(1)

가만히 보니 관원들은 세 무리로 나뉘었다.

아예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는지 몸을 씻고 왔음에도 졸음에 몸을 비틀거리는 이들, 야근을 하였는지 어느 정도 멀쩡한 이들, 그리고 나와 같이 새벽부터 출근한 이들로 나뉘었다.

“다들 무엇 하나! 주상전하께서 말씀하신 새 박사가 당도하였다네.”

하인이 커다란 주전자를 가져왔고 악수를 마친 관원들은 주전자에 가득 담겨있던 커피를 따라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이윽고 오천 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지폐 말고 사람이다.

“어허, 자네가 젊은 나이부터 명망이 자자한 서애로군. 참으로 반갑네.”

“이현전의 직전이신 이이 선생님을 뵙습니다.”

“선생님이라? 나에게도 깍듯이 예를 표하니 영전사이신 복재 대감님을 뵈면 그림자만 보아도 절을 할 것 같군. 연배 차이는 여섯 살에 불과하니 친하게 지내도 될 일이라네.”

이이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목의 힘줄이 조금 더 도드라지고 얼굴이 약간 말랐을 뿐, 좁은 어깨를 보니 입신체비를 별로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관원 하나하나를 소개받았는데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자리에 있는가? 자리에 있다면 논의를 시작하겠네.”

근무하기 이전에 간단히 설명을 들었지만 집현전과 이현전의 근무자는 겸직자를 제외하고 15인이며 휘하 속아문인 관상감과 화공원을 합치면 32인에 달하는 이가 근무한다 하였다.

이현전의 영전사이자 실질적 수뇌라 알려진 서경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양 현전의 공동 영전사인 성수침이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는 관원들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복재(復齋: 서경덕의 호) 대감께서는 여전히 쾌차하시지 못하셨나 보군.”

“올해 연세가 연세이신지라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담재(김인후의 호)도 없으니 아쉬운 노릇이군.”

담재면 이황이 가끔 이야기하였던 친구 김인후인데 얼마 전부터 중병을 앓았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하지만 둘이 없다고 놀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회의는 담담하게 진행되었다.

가장 처음 호명된 이는 기대승이었다.

“직제학 자네의 업무는 잘 진행되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파란(폴란드)의 학자가 저술한 서적을 넘어서기 위하여 일 년의 정확한 시일을 측정하는 중입니다. 관측 기록이 조금 더 쌓이면 더욱 정확해질 것입니다.”

“자고로 천문이란 약간의 오차가 머나먼 외방에서 거대한 차이로 변하는 법이라네. 이전에 중미국(멕시코)에서 서반아(스페인)의 병사들과 분쟁 직전에 몰리지 않았나.”

“그것이야 서반아의 천문이 형편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까. 위도는 정확한 이들이 경도를 심각할 정도의 오차가 나게 산출하다니 제대로 된 관원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천문 관측 기술이 세계 최고수준이란 말이었는데 잘만 하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조선에 유학을 와서 지동설을 정립하지 않을까.

어느 정도 회의가 진행되자 성수침은 이이에게 서신을 전달하였다.

“병조에서 요청이 있었다네. 나팔총(喇叭銃)의 화력이 부족하니 이를 개선해 달라 하더군.”

“나팔총이면 근래에 만든 기물이 아닙니까. 저는 부제학(종3품 관직)께서 부재중인 와중에 화공원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 상세한 일은 모릅니다.”

“중병을 앓고 있는 담재가 단숨에 쾌차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 새로운 인재를 들여왔으니 둘이서 기본적인 사항을 알아내고 논의를 시작하게.”

김인후가 화공원의 담당자였고 그가 병에 걸린 이후 이이가 화공원의 새 담당자가 된 것이 분명하였다.

회의가 끝나고 관원들이 모두 일어서자 성수침이 나를 앞으로 불러내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직접 만나서 연을 나누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어서 자네의 신상명세를 말하여 보게나.”

“이번 대과 전시에서 갑과 말석을 차지하여 이현전의 박사로 부임하게 된 풍천 유씨의 성룡이라 합니다. 자는 이현이며 호는 서애입니다.”

듣자 하니 변한 역사에서는 조선시대의 신고식인 면신례를 대신하여 면체례라는 이상한 의식을 한다던데 아직 그 시기는 아니었는지 관원들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하였다.

“자네가 예조 전체를 무너뜨린 우모필(깃펜)의 달인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네.”

“나도 자네의 답안을 읽어 보았다네. 회령군 대감께서 말년에 빼어난 제자를 두셨군.”

다들 칭찬을 늘어놓았는데 나는 전설적인 희귀생물 경력직 신입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지만 내가 한 짓이 있으니 방법이 없다.

관원 소개도 끝났고 내 사수로 배정된 율곡 이이는 천천히 이현전 내부를 소개하였다.

수면실과 샤워장도 있었고 입신체비장은 내금위 군관들과 공유한다 하였다.

하지만 관원들이 열정을 보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람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열정이 식어버리게 마련이니까.

이이는 마지막 특징을 설명하였다.

“이현전과 집현전 양 현전은 진급에 있어서 다른 관직과 차이가 있다네. 춘부장(春府丈)께서 의주목사로 계시는 분이니 관직의 진급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보통 가자법(加資法)과 고과법(考課法) 의하여 정해지지 않습니까. 하온데 진급에 차이가 있다 하셨습니까?”

가자법은 출근일수로 관직을 올리는 것이다.

6품 이상 관리는 출근 900일당 1품계, 이하 관리는 450일당 1품계를 진급한다. 여기에 당상관은 진급 일수가 채워져도 진급하지 못하니 내가 영의정에 진급하려면 27년 정도 걸리겠지.

하지만 일수만 채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6개월 주기로 포폄이라는 근무평가는 물론이요, 각종 인사고과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 고과법이 적용되어 승진 여부를 정한다.

“가자법과 고과법을 적용하되 일수에 차이가 있으며 고과 여부에도 차이가 있다네. 당하관(정3품 아래의 관료)들은 가자법에서 정해진 시일의 삼 분의 일을 감면한다네.”

“하오면 품계가 오르는데 참상관은 육백 일, 참하관은 삼백 일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실제로는 더 빠르지. 고과법에서 몇 안 되게 관직을 올리는 일이 있지 않던가. 강(講: 관원들의 내부시험) 말일세. 우리는 그 시험에서 무조건 통과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네.”

중시면 아버지도 모든 집안일을 내팽개쳐놓고 업무 관련 서적을 집어 들게 만든 시험이었다. 국왕 직속 연구기관답게 근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기회의 장이며 동시에 어마어마한 시련이기도 하였다. 버텨낸다면 이이처럼 26세의 나이에 종4품으로 승진할 수 있지만 버티지 못하면 다른 관직으로 좌천되는 것이다.

이이는 설명을 마치고는 화공원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궁금한 일은 차근차근 물어보도록 하게나. 혹여나 이현전에 머무는 이들 가운데 만나고 싶은 이는 있는가?”

“실은 별호나 자는 제가 불민하여 알 수 없었고 저보다 연배가 높은 이현전의 관원 가운데 김지(金墀)라는 분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본래 무관으로 관직을 시작하셨다가 문과 대과에 합격하여 이현전에 들어온 자헌(子獻: 김지의 호) 어르신이겠군. 화약에 몰입한 사람이라 주상전하께서 군기시로 보내셨네.”

무슨 폭탄마라도 되나? 화공원은 화학 관련 기관으로 알고 있는데 화약에만 몰입하였다고?

나중에 군기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니 이이를 따라 화공원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열리자마자 식초를 졸인 것 같은 독한 냄새가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이이는 익숙하다는 듯이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수정을 깎아 만든 풍안경(風眼鏡: 바람을 막기 위한 안경, 일종의 고글)을 끼고 비단을 입에 둘러 마스크 대신 착용하였다.

“오늘은 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군. 자네들은 대체 뭘 만들고 있는 겐가!”

“이 직전께서 당도하셨네! 어서 환기를 하게나!”

늘 벌어지는 일이었는지 관원들은 가마솥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있다가 이이에게 인사를 올리며 답하였다.

“상의원 제조께서 매염(옷감 염색)제를 만들라 하여서 아연을 활용해 보았습니다. 일전에 철과 염산을 섞은 물건은 색을 너무 진하게 만들어 쓸 수 없다 하였지요.”

“그렇다고 가마솥에 아연과 식초를 넣고 달이면 될 일이던가? 병조에서 총기의 화력을 더 높이는 방도를 마련해 보라 하였으니 자(慈) 첨정(종4품 관직)을 만나려 한다네.”

자씨면 희귀 성씨가 아닌가.

이윽고 구석에서 무언가를 주물럭거리던 이가 다가와 이이에게 인사를 올렸다.

자 첨정이 실질적인 화공원의 대표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이번에는 병조에서 청할 일이 있다 하였습니까? 그리고 옆에 있는 이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관원이군요.”

“옆에 있는 이 친구는 오늘부로 이현전에서 근무하게 된 이 박사라네. 이현전에 대한 소개를 할 것이라 내가 데려오게 되었다네.”

자 첨정과 악수를 나누었는데 손에 흉터가 많으니 화학약품에 손을 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피부가 조금 검을 뿐 혈색이 좋으니 입신체비를 즐기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자 첨정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리더니 말하였다.

“화력을 더 높이라 하였는데 제가 듣기로 보총과 운총 모두 십여 년 전에 개량을 마쳤다 하지 않았습니까?”

“장계에 의하면 나팔총이라 하였네. 장계를 간단히 읽어보도록 하겠네.”

[나팔총은 임해도감 장병들이 사용하기 편한 물건이지만 수석(燧石:부싯돌)을 달아 희귀한 기물이며 한 번에 사람을 제압할 수 없어 역공을 당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화약을 더 넣었다가 사람이 크게 상하였으며, 총의 무게를 늘리니 버틸 수 있었지만 손목이 부러졌습니다. 그러하니 화약 자체를 개량할 방도를 이현전에서 마련하심이 옳은 일입니다.]

이이도 자 첨정도 황당하다는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물건인지 모르겠지만 부싯돌을 사용하다니 값비싼 물건이 분명하였다.

자 첨정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양반들 대체 뭔 일을 하였단 말입니까?”

“나는 모를 일이라네. 기껏해야 보총을 몇 발 쏘아본 것이 전부가 아니겠는가.”

“생각하여 보니 보총도 나팔총도 한 번씩 쏘아보아야 알 일이겠군요. 나팔총은 내금위가 사용할 것이라 하여 몇 정 소유하고 있다 합니다.”

시험을 한다는 말에 흠칫 놀랐지만 이이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궁궐 입구의 내금위에게 다가갔고 내금위 병사 몇 명이 보조로 달라붙었다.

다만 사격 훈련을 하려면 한강 백사장까지 나가야 한다더라.

사격장에는 각지의 군관들이 모여 총기훈련이 한창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지린내가 풍겨오는데 내금위 군관은 나무상자를 열어 보총 몇 정을 꺼내고는 말하였다.

“우선 보총부터 다뤄봅시다. 나팔총은 제가 다뤄본 적이 없어서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내 기억으로 임진왜란의 주력 화기였던 조총의 길이는 1.3m 내외였으며 구경은 검지보다 좁았다.

하지만 보총이라 불리는 녀석은 차원이 달랐다. 내 목 가까이 올라오는 길이이니 거의 1.5m에 육박할 것이다.

제대로 된 개머리판도 있었으며 구경은 손가락이 들락거릴 정도에다 무게도 12근(7.7㎏)은 될 정도로 묵직하였다.

나에게 보총을 건네준 군관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보총은 반치총이라 불리었던 녀석이지요. 세종대왕께서 치세하실 무렵 세자이신 문종대왕께서 창안하신 기물입니다. 이후 서역도 명국도 유사한 물건을 사용하였으니 신묘한 일입니다.”

“서역도 명국도 유사한 물건을 사용한다 하였소?”

“아국의 보총보다 작은 물건을 사용하다 점점 크기를 늘려 근래에는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녀석을 사용합니다. 덕분에 크기를 한 번 늘려서 화력에 우위를 점하였습니다.”

군관은 능숙하게 보총을 받아들더니 화약과 총알을 담은 종이를 찢어 장전을 마치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은근슬쩍 주변을 보며 조준 방법을 따라 했는데 손이 무거워서 슬슬 처질 지경이었다.

“보총을 똑바로 들어 오십 보(80m) 앞에 있는 표적을 조준하십시오. 군관이면 단번에 명중해야 하지만 처음 행하시는 분이니 몇 발이고 연습해 보셔도 될 일입니다.”

“이거 팔이 처지면 탄환이 밖으로 굴러 나오는 것 아니오?”

“아차. 꽂을대를 앞에 두는 일을 깜빡하였군요.”

Y자로 끝이 갈라진 막대기를 세워두니 거치해서 어느 정도 편안하게 둘 수 있었다.

현대와 근대를 통틀어 처음으로 방아쇠를 당긴 순간 둔한 충격이 어깨를 강타하고 지린내가 풍겨왔다.

표적이 미동하지도 않자 이이와 자 첨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능숙한 솜씨로 보총을 장전하여 몇 발이고 거듭하여 쏘았고, 도합 열 발을 쏘자 표적이 기우뚱거리며 흔들렸다.

“명중이군요. 한번 확인하여 봅시다.”

표적은 녹이 슬어 부스러져 가는 찰갑을 나무에 씌워두었다.

하지만 보총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찰갑이 관통되었으며 나무에는 손가락이 들어가고 남을 구멍이 두 개나 생겼다.

“이걸 사람이 맞으면 어떻게 되겠소?”

“오십 보 거리에서는 내장이 비어져 나오고 피를 토하며 즉사하며, 팔십 보 거리가 되면 명중률이 급감하지만 급소를 맞으면 즉사요, 사지를 맞으면 중상입니다.”

“직전 나리! 나팔총을 가져왔습니다!”

나팔총이라는 물건이 도착했는데 뭔가 했더니만 권총이다.

나팔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냥 거대한 권총이었는데 왜 나팔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새로 도착한 군관은 설명을 시작하였다.

“나팔총은 미리 장전해 두었다가 적진으로 돌입하며 양손으로 한 발씩 쏘아 적을 제압하고 바로 뒤집어 둔기로 사용하는 녀석입니다. 앞에 달아놓은 깔때기는 장전을 편하게 만들지만 실전에서는 제외하지요.”

“실지로 나팔을 사용할 일이 없으니 권총(拳銃)이라 불려도 될 녀석이군.”

“그렇습니다. 크기도 작고 한 손으로 쏘는 녀석이라 화약이 두 돈(7.5g)이 들어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손목이 다칠 염려가 있어 한 돈 반을 넣고 쏘지요.”

장전을 마친 나팔총이 부싯돌에서 거친 불길이 일어나며 불을 뿜었지만 오십 보 거리의 과녁에 적중하지도 못하고 옆으로 대여섯 걸음 떨어진 백사장에 총알이 박혔다.

군관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이거 제가 중요한 사실을 놓쳤습니다. 나팔총의 사거리는 십오 보(24m)에서도 거의 적중하지 않는다 하더군요. 몇 발 쏘아보면 알 수 있으니 직접 행해 보심이 나을 것 같습니다.”

화약의 양이 적었지만 한 손으로 쏘는 녀석이라 손목이 뻐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대여섯 발 정도 쏘았을 무렵에 과녁이 휘청거렸지만 보총과 달리 움직임이 미미하였다.

“찰갑에 손상을 입힌 것이 전부가 아닌가.”

“화약 양도 적고 탄환 크기도 작으니 이게 전부입니다. 이 위력이면 급소에 맞으면 죽겠지만 사지에 맞으면 펄펄 날뛸 것이 분명하지요.”

조선군이 화력에 미쳤다 하는데 권총으로 사람을 단번에 제압하지 못하면 충분하지 못하다 하였다.

하지만 자 첨정은 도리어 화를 내면서 이이에게 항의하였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정 사람을 죽일 것이면 보총을 쏘면 될 것이고 위력이 부족하면 허리춤에 두 개를 더 묶어 네 발을 쏘아버리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값비싼 수석이 들어가니 네 정을 지니게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 보니 사람을 한 발에 한 명씩 제압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했는데 예전에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산탄총의 총열을 잘라서 근거리에서 제압 목적으로 사용했었나.

이이도 자 첨정도 난색을 표하니 손을 들고 나서서 말했다.

“사람은 사지가 상하면 제대로 대적할 수 없는 법입니다. 자모포에 포도탄을 사용해 사람을 상대하듯 나팔총에도 세세한 납환을 쏘게 만들면 될 일이 아닙니까.”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이이의 얼굴이 펴졌지만 자 첨정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자 첨정은 굵은 모래알을 집어 올리고는 말하였다.

“세세한 납환을 어찌 만들 수 있던가? 손으로 만들면 공임이 너무 많이 소모될 것이요 대충 납으로 만든 철사를 잘라 만들면 총열이 납으로 뒤덮일 것이네.”

“해결책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우박이 내릴 적에 비가 얼어 얼음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녹은 납을 하늘에서 떨어뜨리면 굳어져서 동그랗게 변할 것이 분명합니다.”

샷 타워, 처음에는 산탄총 탄환을 만들다 훗날 기술이 발전하여 머스킷 탄환까지 만들게 된 총알 제조공장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이 시대에는 나 이외에 없으리라.

물론 머스킷 탄환을 만들 수 있게 80m 높이로 만들면 좋겠지만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20m 높이의 샷 타워만 만들어도 산탄은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겠지.

이이는 턱에 손을 괴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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