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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80화 (280/573)

근육조선 280화

2부 3장 8화 뒤늦은 신혼여행(2)

고니시 류사를 보며 불현듯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내 적은 지식으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두각을 드러내기 이전이며 지금쯤이면 그의 주인인 오다 노부나가가 두각을 드러낼 예정이리라.

이야기가 끊겼으니 목을 가다듬고 아는 척을 하였다.

그나마 없는 지식을 쥐어짜 내 오다 노부나가가 오와리의 멍청이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듣자 하니 요즘 미장(尾張: 오와리)에서 빼어난 걸물이 출현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소이다. 대체 누구기에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오?”

“오와리겠군요. 오와리는 내란이 끝난 뒤라 번창하고 있을 무렵입니다. 다만 주변의 큰 세력이 다케다 신겐 이외에는 없으니 끝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끝이 좋지 않다 하였소?”

“그렇습니다. 오와리 일대는 군소영주들이 난립하여 세를 불리느라 정신이 없지만, 조만간 다케다 신겐이 숨통을 틀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선을 뒷배로 삼은 우에스기 겐신이 견제를 하지만 기세를 억누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데 일본 전국시대의 명장이었나?

일본 역사를 알아야 이야기에 호응하겠는데 정신없이 이어지는 내용을 다 듣지도 못하겠다.

여하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털어놓은 류사는 손을 싹싹 비비며 말했다.

“덕분에 저희 같은 상인들이 먹고살 길은 조선에 의탁하거나 남만인(서양인)들의 물품을 파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나마 조선 덕분에 큐슈 일대는 안정적이라 저 같은 약재상도 홍삼을 사 갈 수 있지요.”

“홍삼이 값비싸게 팔리는 모양이구려.”

“제가 가져온 약재가 수레로 스무 대 분량인데 홍삼 스무 근과 바꿔야 합니다. 대신 홍삼 스무 근을 팔면 은 마흔 근으로 되돌아오지요. 저와 같이 조선과 친한 상인이 아니라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입니다.”

인삼 교역이 정부 수입의 2할을 차지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과장은 아닌 것 같았다.

약재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형님이 아무리 보아도 담배가 분명한 물건을 피우면서 나에게 돌아왔다.

“참으로 고단하고 힘겨운 일이구나. 어느 정도 일이 끝났으니 이야기나 나누어보자꾸나.”

“혀…… 형님? 연초는 언제 배우셨습니까?”

“왜인들이 즐겨 피워서 한번 피워 보았는데 근심이 사라지고 몸이 노곤해져서 좋구나.”

형님은 일 년 만에 세상에 찌든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짧은 곰방대를 뻐끔뻐끔 피워대는데 이황을 비롯하여 명망 있는 입신체비사가 강조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연초? 연초는 마음을 다스리지만 몸을 상하게 만든다. 자고로 입신체비를 행하여 피로가 몰려오면 잠도 쉬이 오고 근심도 사라지는 법이지!

몸이 제일인 조선이기에 담배의 해악을 분석하였으며, 대부분의 유생들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와 몸을 축내는 해악 중의 해악을 우선시하여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형님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돌리더니 변명을 시작하였다.

“고자로 부임하였으면 무얼 하겠느냐. 창고의 물목을 관리하고 상하지 않게 보하며 하루하루를 같은 일만 행하며 지내는데. 그나마 연초가 내 유일한 벗이나 마찬가지구나.”

“거기 고지기 있는가! 견절(鰹節: 가쓰오부시)이 겨울 동안 모조리 상하였는데 대체 무얼 했는가! 당장 오게!”

형님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창고로 뛰어갔고 나도 형님을 쫓아갔다.

형님의 상관으로 보이는 관원은 거무튀튀한 물체를 창고에서 꺼내면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며칠 뒤에 왜국의 축제가 시작되어 각지의 명사들이 몰릴 예정인데 창고에 두었던 메주와 견절이 모조리 상하였다네! 이걸 보게! 대체 무얼 하였나!”

견절이 무언가 했는데 가쓰오부시였다. 교토 여행을 다니면서 시장에서 보았던 그 거무튀튀하고 표면에 곰팡이가 올라와 나무처럼 색이 덮인 녀석과 동일하니까.

하지만 형님은 말을 더듬으며 가쓰오부시를 쓰다듬었다.

“저도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창고 사이의 덧창(여기서는 통풍구)이 열려 있었다네. 자네가 약초를 담는 창고를 봉인할 적에 덧창을 닫지 않아서 쪄낸 약초에 남은 습기가 모조리 견절을 담은 창고로 스민 것이야!”

“직장(直長)님 제가 모조리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하니 당장 시장으로 나가 견절을…….”

내가 보기에는 이상이 없는데 대체 왜 그럴까.

형님의 상관인 직장은 눈에 불을 켜고 피를 토하듯이 형님을 몰아세웠다.

“축제 준비가 한창이라 견절을 구하기 힘들 지경인데! 왜국에서 몰려오는 명사들은 고기는 물론이요, 고깃국물을 먹는 이들도 드물지. 그리하여 탕국을 만들 적에 왜국의 방침대로 쓰는 물건이 견절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나!”

일꾼 몇 명이 나무 절구를 찧어댔지만 쇠만큼 단단한 녀석이 부서질 이유가 없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나무절구가 박살 나버렸고 직장은 흠집만 난 가쓰오부시를 땅바닥에 집어 던지며 말했다.

“어떻게든 책임을 지게나! 자네의 형 앞에서 자네를 책망하는 일은 옳지 않으나 줄줄이 파면 될 위기가 아니겠는가!”

“저는 형이 아니고 동생입니다. 그리고 이 견절이라는 녀석은 충분히 먹을 수 있어 보이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대패로 잘 밀어서 국물을 내면 되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직장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창고에 쌓인 가쓰오부시를 차곡차곡 인력거에 올려서 친절하게 말했다.

“형제간의 우애가 대단해 보이니 상한 견절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보게나.”

인력거를 잡고 터덜터덜 형님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런 형태의 가쓰오부시는 교토 수산물 시장에서도 비싼 값에 팔리는 녀석이었으니까.

“네가 나를 감싸려고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였구나. 견절은 가다랑어를 잡아 뼈를 발라내고 불과 연기에 그을려 만든다. 사용할 적에는 나무 절구에 넣고 부숴서 국물을 우려내는데 이 견절은 곰팡이가 슬어 쇠처럼 단단해지지 않았더냐.”

지금 뭐라 했지? 가쓰오부시를 훈제 과정만 거치고 발효를 시키지 않는다고? 맨날 일본인의 전통 하면서 발효식품이라 자랑하던 것이 현대의 일본인인데?

그렇다면 지금 인력거에 잔뜩 쌓인 가쓰오부시를 접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형님에게 적당히 핑계를 대면서 마음을 추슬러 주었다.

“제가 알기로 메주도 곰팡이가 올라와야 제맛이 나며 간장도 웃물에 누룩이 올라오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하니 곰팡이가 스민 견절은 옛 맛과 비견할 수 없이 좋을 것입니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어차피 새 견절을 구하여도 시일이 걸리지 않습니까. 형님이 사방을 도시며 견절을 발주하시는 동안 저는 곰팡이가 스민 녀석을 시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한계가 명확하였다. 이놈의 가쓰오부시를 말만 했지 직접 다뤄본 적이 없는 식자재였으며 왜인 출신인 머슴도 양을 조절하거나 맛을 조절하는 법을 몰랐다.

“대체 왜 이런 맛이 나는지 모르겠네.”

“낭군께서 창안하신 방법으로는 제맛이 우러나지 않으며 제 방법을 쓰면 맛이 독하여 들이켜기 힘들 지경입니다.”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지식은 있다. 그래서 현대에서 사용하는 대로 대패로 갈아 국물을 우려내면 맛이 너무 밍밍하였고, 아내의 방식대로 도끼로 찍어낸 덩어리를 삶아내면 맛 이전에 곰팡이 냄새가 우러나왔다.

“이거 너무 독해서 좀 더 우려내 술안주로 하면 좋겠군요. 하지만 향이 너무나 강합니다.”

“대팻날로 밀어내 우린 국물은 조선장(일본은 간장이 없었다) 맛만 나는뎁쇼.”

고니시 류사를 비롯한 상인 몇 명이 형님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그들의 입맛에도 적합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심지어 어린아이인 고니시 야쿠로는 내가 대패로 밀어낸 가쓰오부시를 질겅질겅 씹으며 무어라 말했다.

“저 아해가 무어라 하는 것이오.”

“맛이 짜릿해서 씹어 먹으면 입이 심심하지 않다 합니다.”

저게 무슨 군것질거리라고!

열이 올라와서 한입 씹어보니 짜릿한 조미료 맛이 올라오는 것이 이거 약간으로도 밥 한 공기는 뚝딱 해치울 기세였다.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에 수레에 쌓인 가쓰오부시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조선시대의 장맛도 어린 유성룡의 기억 덕분에 익숙해진 것이지 현대인의 입맛으로는 먹지 못할 물건이었다.

가쓰오부시가 어떤 가공과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며 곰팡이의 종류도 다를지도 모르지.

당당하게 나섰지만 형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서글퍼질 지경이었다.

“성룡아, 일단 견절은 필요한 양을 구했다만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제가 오만하였습니다. 이 녀석은 처음 접하는 재료인지라 맛은 나지만 어찌 다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당하게 나섰거늘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다니요.”

형님은 놀란 눈으로 대패로 밀어낸 가쓰오부시와 우려낸 국물들을 들이켜더니 눈을 굴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펄펄 끓고 있는 솥에 가쓰오부시를 데치더니 물에 풀어진 겉을 긁어내기 시작하였다.

“맛이 강하고 향도 강하다. 겉에 스민 곰팡이가 맛을 변질시켰으니 이를 긁어내고 얇게 썰어내어 국물을 내면 좋을 것 같구나.”

저녁이 늦어 해가 저무는 와중에도 형님은 사방으로 움직이며 가쓰오부시를 손질하고 국물을 내고 상인들에게 건네주기를 거듭하였다.

몇 번 반복하자 맛이 점점 나아졌고 마지막에는 상인들이 감탄할 지경이었다.

“이 국물은 마음에 듭니다. 독한 맛은 사라지고 혀에 스미는 맛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면을 넣고 봄나물을 올려서 한 입을 잔뜩 먹으면 진미가 따로 없겠군요.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습니까?”

나도 아내도 국물을 마셔봤는데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대체 형님은 뭘 하였기에 이런 대단한 요리 솜씨를 가졌단 말인가.

우울한 얼굴이 사라지고 당찬 모습으로 돌아온 형님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곰팡이가 스며야 맛이 올라올 것이라는 네 말이 맞았구나.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이지만 이 맛이 퍼지면 앞으로 견절은 모두 곰팡이를 피워낼 것이다.”

“사카이에 이 물건을 가져가면 모든 이들이 상회로 몰려들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건 약재로 보아야 될 것입니다.”

“약재? 우스운 소리 하고 있군! 자네가 믿는 데우스(Deus: 신)라는 사람에게 물어보게나. 이건 어물이지 약재가 아니야! 차라리 내 친척의 어물전에 팔게 할 것이네!”

일본 상인들이 천연덕스럽게 나누는 대화를 보니 축제에서 충분히 통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시 관청에 돌아가 보고를 올리려는 형님의 얼굴이 급격히 울적해졌다.

형님은 머리도 좋고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 가지의 일을 반복하는 창고지기로 일하며 그 뛰어난 감성이 마모되어 우울해진 것이겠지.

문을 나서려는 형님에게 다가가니 형님은 우울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지금 직장께 보고를 올리러 가는 중이다. 무슨 일이더냐.”

“형님. 제가 보기에 형님은 고지기가 성품에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경험은 없지만 형님은 숙수(熟手)로 길을 정함이 마땅한 것 같습니다.”

“숙수라? 잘하면 대령숙수(待令熟手: 궁중에 소속된 요리사)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네 이야기는 마음에 새겨둘 것이니 일이 끝나면 온천을 마련해 줄 것이다.”

형님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관아로 향하였다.

그나저나 데우스라는 단어를 들으니 고니시의 가문은 예전부터 가톨릭 신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서로 대화를 나누던 상인들은 일어서서 돌아가려 하였는데 형님 대신 동생인 나에게 손을 건네고 악수를 청하였다. 형님은 숙수가 될 것이라 여긴 것이 분명하리라.

개중 고니시 류사의 손을 잡고 이 가문을 끌어들일 이야기를 하였다.

“데우스라? 내가 강화도에 사당 하나를 보수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데우스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소이다. 나중에 조선과 교역을 행하여 벽란도에 들리면 강화도에도 한번 들르시구려.”

“사당이라 하셨습니까? 사당에 데우스라고요? 벽란도까지 나가 교역을 하려면 상인 가운데 으뜸이 되어야 하는데 사당을 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으뜸이 되어야겠군요.”

“건물이 무너져 보수한 일이 있는데 여러 번 보았소이다. 여하튼 오늘 고생이 많았소.”

고니시의 친척인 고니시 류사는 가톨릭 신도일 것이며 고니시 유키나가도 가톨릭 신자라 하였다.

자연스럽게 강화도에 있는 성당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성당을 보수한 나를 찾아오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하길 무얼 감사하더냐. 그리고 견절은 그만 먹거라, 속 버린다.”

이 꼬맹이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촌 형쯤 될 것이니 알아서 챙겨주겠지.

작별인사를 하는데 나를 계속 돌아보는 것이 내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다음 날 아예 숙수로 나서겠다고 이야기한 형님은 나와 아내를 인근 마을로 안내하였다.

열흘 동안 온천을 즐기고 밤의 전투를 벌이고 조선으로 돌아왔으며 공부에 매진하려 하였다.

다행히도 아내는 신혼여행은 아니더라도 칠월 즈음에 회임하였으며 이후로는 오로지 대과 준비와 이황에게 내수린을 배우는 두 가지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 * *

경전을 외우다시피 하였으니 대과 초시와 복시 통과는 쉬운 일이었다.

마침내 대과의 마지막 시험인 전시까지 올라왔지만 여기가 가장 큰 고비였다. 전시는 임금이 주제를 정하는 자유주제 논술이나 마찬가지니까.

덕분에 이황도 ‘주상전하께서 어떠한 대책(對策)을 여쭈어보실지 모른다’라며 어느 정도의 운이 있다 하였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좀이 쑤실 지경이었지만, 이윽고 대관이 나와 인사를 올리고 임금이 친림하였다.

“주상전하 납시오!”

조선시대에 태어난 지 12년, 현재 53세로 국정에 임한 지 24년이 된 임금 이호(昦)를 처음 보았다.

당연히 눈을 마주치지 않게 고개를 푹 숙여야 하였지만 얼핏 본 외모는 뚜렷한 사각턱에 목이 우람하였으니 임금이 아니고 무관이라 보아도 되리라.

체격만 보면 오십 대 노인이라고 믿기지도 않을 지경이었지만 입신체비의 도입과 각종 변화로 조선 임금의 평균수명은 60을 넘긴다 하였으니 십 년은 정정할 것이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잦아들자 그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해 전시에 참가한 이들의 명망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자고로 담대한 등이야말로 입신체비에 능한 유생의 상징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입신체비가 아닌 학문을 겨루는 장소이니 책문을 정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종이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책문이 공개되었을 것이고 한 명씩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순간 임금과 눈이 마주쳤는데 명백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만간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문래국(文萊: 브루나이) 해적들을 소탕하여 남방의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군문의 일은 무과로 초모한 이들이 행할 것이니 너희들은 질서를 바로잡은 이후 행해야 할 일에 대해 논하여라.”

문래국은 이황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 섬에서 해적질을 일삼는 집단이며 이황도 관찰사 시절에 끝없이 침략을 일삼는 이들로 많은 고생을 했다던가.

조선 함대가 나서면 수많은 섬들 사이로 숨어들고, 육지에 상륙하면 요새화된 고산지대로 대피하여 육군이 지쳐버릴 때까지 버티니 근절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였던가.

임금은 입술을 짓씹더니 한마디를 보탰다.

“질서를 바로잡는다 함은 해적들에게 침탈당한 고장을 되찾고 이들이 굳건히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또한 내가 지천명(50세)에 이르고 눈이 어두워졌으니 세필을 사용하는 일을 금하도록 하겠다.”

임금이 떠나가자 모두 인사를 올리고 붓에 먹을 잔뜩 묻혔다. 임금의 질문을 요약하면 ‘새로운 고장을 변방에 만들 때에 무엇을 하느냐’이며 군사적인 요소는 제외하라 하였다.

당연히 수많은 방법이 나오겠지만 나에게는 명확한 해답이 있었다.

대학교를 다니며 도시계획에 대해 배운 적도 있었으며 현장에서 업무를 진행하며 민속촌이나 마을 단위의 계획을 세운 일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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