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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77화 (277/573)

근육조선 277화

2부 3장 5화 낭중지추(1)

훈도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업무에 대해선 익숙해졌지만 아내와의 생활에는 익숙하지 않으니 하체를 좀 더 단련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 외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들먹이면서 모내기를 하며 하체를 단련했다.

‘만물이 생장하는 봄에는 하체를 단련하기 좋은 시기이다’라고 하니 정철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일품이었지.

아내가 불현듯 다가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제가 불민하게도 잊고 있었는데 아침에 시숙께서 보내온 서신이 있습니다.”

“어허, 형님께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시더니 서신을 보내오셨군. 박다(하카타)의 관원으로 발령받으셨다니. 부친께서 마음이 놓이시겠군.”

뻐근한 허리를 곧추세우며 형님이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느닷없이 발령되어 나를 만나지도 못했지만 두 달 사이에 큐슈의 하급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병(丙)과에 불과하여 정9품에 불과한 나를 부임할 시기부터 종8품으로 품계를 올리셨으니 이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라 하겠느냐. 그리하여 분수에도 맞지 않는 고자(庫子: 창고지기)가 되었다.]

형님이 고자가 되다니 이 무슨 상스러운 말인가!

한자 발음이 유사할 뿐이지 형의 관직은 지방 행정기관의 창고지기다. 현대로 따지면 물류 관련 직종이라 볼 수 있다.

박다는 강화도보다 한 등급 위인 목(牧)이며 당연히 군량미와 진휼미는 물론이요 수많은 물자가 집결되는 지방 거점이다. 형님도 이 수많은 물자창고의 하나를 관리하는 것 같았다.

형님의 재능도 부족한 편은 아니니 분명 두각을 드러내리라.

편지를 방에 보관한 다음 내일 강화도로 출발해야 하니 짐을 계속 정리하는데 누군가 찾아왔는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룡이를 만나보러 왔으니 어서 문을 열게.”

서둘러 마당으로 나가니 회령군은 물론이요 장인어른인 남명 조식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쏜살같이 뛰어나온 아내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과 빙장어른을 뵙습니다.”

“안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지만 마음이 놓이는구나. 부부간에는 마음이 중요한 법이나 남명의 여식이라면 성품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겠구나.”

“제 여식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애써 칭찬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다 하였지만 아내의 외모는 부족함이 없이 차고 넘쳤다.

조선시대 미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단아하고 갸름한 얼굴과 크고 또렷한 눈이면 족하다.

이 시대에는 입이 크니 밋밋하니 하면서 흠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견딜 수 없었다.

뚜렷한 복근과 근육이 발달하여 다소 굴곡져 있는 팔다리라는 미인의 조건이 있는데 아내의 복근과 하반신은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아 주제를 돌리려 하였다.

“두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어인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동안 열린 논의의 결과가 나와서 찾아왔지. 나도 남명도 네가 올린 장계 덕분에 곤욕을 치렀다.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였구나.”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조식이 딸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회령군은 피로에 전 눈을 비비며 대청마루에 걸터앉았다. 훌륭한 일이라 하면 단 하나 외에는 없다.

“훌륭한 일이라 하시면 옛 사당을 발견한 일입니까?”

“그렇지. 네가 올린 장계도 나에게 전해졌는데 어린 시절의 네 모습이 떠오르더구나.”

회령군은 건축 관련 자문위원이고 강화도에 있는 성당은 엄연한 문화재이다.

도호부사에게 올린 현황보고서는 장계가 되어 조정에까지 전해졌으니 회령군도 보았을 것이다. 어느새 돌아온 조식이 한마디를 보탰다.

“듣자 하니 자네가 놓친 파자를 정철이라는 젊은이가 해석해서 문종대왕께서 남기셨음을 알아냈다 하였지. 석천(石川: 정철의 스승 임억령의 호) 그 친구는 산림의 일원인데 훌륭한 제자를 키웠네.”

“다른 일은 몰라도 학문을 갈고닦는 일에 매진하는 모습만큼은 본받을 만하였습니다.”

‘직접 만나보시면 분통이 터져 대역기를 집어 던지실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하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어느새 아내가 다과상을 내놓았고 차를 한 모금 마신 조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문종대왕께서 발자취를 남기신 일을 알아냈으니 좋은 일이지만 안 좋은 일도 있더구나. 네가 외형만을 보고 판단하였지만 그 건물은 보수한 지 이십 년 가까이 흘렀다 하였지.”

“이십 년이라 하셨습니까?!”

석조 건축물이라도 지붕은 목조로 만들어져 있으며 나무가 모조리 삭아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이십 년간 보수를 안 했다면 목조 주택의 대들보까지 삭아버리기에 충분한 시일이다.

회령군도 차를 마시고는 한숨을 쉬고 덧붙였다.

“수양대군께서 머무른 적이 있던 사당이라 하여 처음에는 중요히 다뤘지만 관심에서 멀어져 잊혔다 하더구나. 그러하니 성룡이 네가 힘을 써야 할 것이다.”

“힘을 쓰라 하셔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사를 견학하여 식견을 넓힌다 하되 사방을 돌아보며 상세한 도본을 남기어서 훗날이 되어도 문종대왕이 계실 적의 모습을 되찾게 하여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정철이 했던 말을 전해주면 두 분 모두 격노하여 정철을 박살 내러 뛰어가겠지만 나이도 많은 분들에게 전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강화도에 도착하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 * *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훈도이기에 저녁 늦게 도착하였을 때에도, 술에 거나하게 취한 정철이 흐느적거리며 숙소로 향했을 때에도 별문제가 없다 여겼다.

하지만 숙소 앞에서 도호부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망한 일이 벌어졌다네. 자네들과 연관된 일이라 찾아왔는데 이 어찌하면 좋을지 영문을 모르겠군.”

나와 권율이 멀쩡한 상황이었기에 도호부사는 정철을 째려보았고 정철도 눈치는 있었는지 몸에 물을 끼얹어 정신을 되찾았다.

정철이 돌아오자 도호부사는 머리에 손을 짚으며 한탄하였다.

“어제 소비오래 사당의 지붕이 모조리 무너졌다네. 간밤에 내린 비가 제법 거셌지만 크나큰 변고가 아닌가. 알다시피 자네들이 올린 장계에 의하면 지붕에는 문제가 거의 없다 하였지.”

내부가 어두워서 상세히 볼 수 없었으니까 지붕에 올린 기와가 헝클어져서 물이 새어들었다 적었지.

정철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권율 또한 침을 삼키며 도호부사를 바라보았다.

만약 정철의 말에 따라 장계를 올리지 않았다면 도호부사의 책임이 되었을 일이지만 우리가 관여한 시점부터 책임이 약간은 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상세히 알아보지 않고 장계를 올린 제 잘못입니다.”

“잘못이라 하면 무엇을 하겠는가. 보름 뒤에는 채회파리(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로 만들 장인들이 온다 하였는데 장인들이 이 몰골을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도호부사를 비롯한 지방관들은 왕의 발길이 닿은 사당이 무너질 때까지 내버려 둔 죄로 품계가 깎일 것이요, 어설프게 손을 쓴 훈도들도 한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맥없이 있을 이유도 없어서 한 발자국 나서서 말했다.

“도호부사님께 말씀드리긴 어려운 일입니다. 만에 하나 지붕을 새로 만든다 하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질 좋은 목재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며 기와 정도야 사람을 보내 도성에서 구해올 수 있다네. 문제는 공조 출신의 관원이 나서야 대목장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공조 출신의 관원이라 하셨습니까?”

“지금은 지붕이 내려앉은 상황이 아닌가. 실력이 빼어난 관원이 나서야 옛 방식을 알아내어 무너진 지붕을 고스란히 되돌릴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공조 출신 관원을 불러 무너진 지붕을 보수한다면? 소문이 퍼질 것이고 사당의 관리를 소홀히 하였다고 훗날 탄핵당할 염려가 있다.

하지만 도호부사가 말한 일은 내가 가능하지 않은가.

“회령군 대감께서 제가 어린 시절부터 건물의 이치에 대하여 알려주신 바가 있습니다.”

“이치를 안다 하여도 시일이 너무나 촉박하네. 장마가 시작되면 건물 안에 물이 잔뜩 스며들 것이 아닌가. 기껏 하여야 두 달의 기한일세.”

“적어도 서까래를 올릴 시일을 벌면 충분할 것입니다. 기름을 먹인 거적을 여럿 덮어 지붕을 보하고 장마가 끝나면 기와를 새로 올릴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호부사도 어쩔 수 없었는지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건물을 보수하여 내 명성을 쌓거나 보수하지 못하여 관직에 나서기도 전에 이야깃거리를 만들거나 둘 중 하나다.

* * *

다음 날, 가장 먼저 도면을 그릴 종이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찾아갔다.

등에 짊어진 목화솜을 잔뜩 넣은 겨울용 이불을 보자 지장(종이 만드는 장인)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지금 여름이 될 무렵입니다만 훈도님은 어찌 이불을 가져오셨습니까?”

“아마와 목면을 섞은 종이를 만들려 하네. 목면은 이불에 가장 많으니 이 이불을 헐어서 종이를 만들어주게나. 아마 오 할에 목면 오 할이면 충분할 것이네.”

솜이불은 양반가 자제인 나도 집에 세 개만 두어 아내와 번갈아 쓰는 것이 전부이며 평민들은 대대손손 물려주는 물건이라 하였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려는 종이에는 이 이불이 필요하다.

지장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 여겼는지 놀라며 답했다.

“목면을 절반이나 섞은 종이라 하면 백면지(白綿紙) 가운데 최상품이 아닙니까? 닥나무도 아니고 아마와 목면을 섞는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과정이 더 있다네. 표면에 송진가루를 뿌리고 다시금 활석가루를 먹여 다듬이질을 하게나. 그리 하면 내가 원하는 종이가 될 것이네.”

“네? 송진 위에 다시 활석을 먹이라 하셨습니까? 그리하면 먹물이 스미지 않는 종이가 될 것이 아닙니까?”

“기름먹(잉크)을 사용하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나. 나는 자네만 믿겠네.”

기왕 일을 시작하면 확실히 할 일이다.

한지는 보풀이 일어나고 습기를 너무 잘 머금어 도면을 그리기 불편하며, 아마지는 천에 가까운 질감인지라 역시 내가 사용하기 불편하다.

역시 현대에서 도면을 그릴 때에 주구장창 사용했던 켄트지가 최고의 물건이지. 본래 닳을 대로 닳은 무명천을 사용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목면을 사용해야 하리라.

하지만 시간은 내 상상보다 더욱 촉박하였다.

작은 성당이라도 지붕 높이는 스무 자, 약 6.5m에 달하지만 나는 그 위에 올라가 자를 대고 길이를 재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래에서 권율의 염려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현! 자네 괜찮은가! 사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이 위험해 보인다네! 그만 내려와서 해체된 목재를 확인하지 않겠나!”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래에 해체된 목재는 도저히 쓸 방법이 없다네! 아예 시작부터 잘못 설계하였으니 썩은 나뭇더미나 다를 바가 없어!”

모조리 무너졌다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현장에 방문하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십 년 전에 이 건물을 보수했던 도호부사는 건물을 제대로 보수하지 않았다.

아래는 서양의 석조 방식으로, 위는 억지로 만든 동양식 목조로 구성하였으니 일부만 무너지지 않고 모조리 썩어서 붕괴한 것이다.

그나마 옛 도면이 지하에 있었지만 이 또한 쓸모없는 물건이긴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서역의 성현의 모습이란 말인가. 근육질의 몸으로 십자 버티기를 행하고 있으니 입신체비에 능한 이가 분명하군. 그리고 이 도본(도면)은 알아볼 수 없는걸.”

이십 년 동안 스며들어 온 빗물은 지하실에 쌓였다. 지하에 보관해 둔 십자가와 도면은 물에 젖어 썩어들었고 십자가의 형태만 가까스로 남아 있었다.

정철은 고문서라고 도면을 넘겨 보았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바닥에 내던졌다.

미리 가져온 목판에 연필을 대고 건물의 세부 치수를 잰 다음 다시 올라갔다. 현대처럼 줄자가 없으니 한 자 이하의 짧은 길이는 모조리 소매에 넣은 자로 재고 긴 길이는 무명실을 놓아가며 재야 한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지붕에 올랐지만 아직 잴 일이 산더미처럼 남았다.

가장 중요한 예전 지붕 높이를 확인하려고 건물 안으로 사다리를 옮겼다.

“권언신! 이번에는 더욱 높게 올라갈 것이니 꼭 잡아주게나!”

사다리를 오르내리니 하체가 성할 틈이 없었다. 현대라면 튼튼한 이동식 비계(건물 외부에 달아 작업하는 공간)를 임대하여 편히 작업했겠지만, 여기에 그런 물건이 있을 리가 없다.

사다리의 질 또한 형편없다. 목재 사다리라 휘청거리는 일은 당연하니 하반신에 힘을 꽉 주어 흔들리지 않게 하느라 하체의 힘이 다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옆에 사다리가 하나 놓이더니 권율이 불쑥 올라왔다.

“자네가 여기 왜 올라오는가! 사다리는!”

“사람을 불러 단단히 잡게 하였으니 염려하지 말게. 자네가 바삐 움직이니 지붕 위에서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대체 예전 지붕 높이를 알아서 무엇을 하려는가?”

권율은 내가 혼자서 고생하고 있으니 양심에 찔려서 같이 올라왔음이 분명하리라. 그래도 보조인원이 생겼으니 다행이다.

나는 끝에 돌멩이를 단 무명실로 수직 길이를 재며 말했다.

“옛 방식과 이십여 년 전의 방식이 다르니 지붕의 높이도 달라졌다네. 저기 기와가 달라붙어 회칠을 한 선을 보게나. 이전에 있던 지붕보다 훨씬 높지 않은가.”

“과연 그러하네. 처음 행하는 일이면서도 물 흐르듯 거침없이 움직이니 신기한 노릇일세.”

그나마 권율이 함께하니 부담이 줄어들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붕을 재는데 삼 일이 넘게 걸렸다.

현대라면 하루에 끝날 일이지만 도면을 그리니 더욱 큰 난관이 시작되었다.

“장인정신이 왜 이리 투철해? 이 작은 성당에 뭐하려고 목재 리브볼트를 사용했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도면과 내가 직접 측정한 건물의 모습 그리고 예전의 흔적으로 복원해 보니 성당의 완성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부를 두오모 성당과 유사하게 리브볼트, 이 시대의 용어로 궁륭(穹窿)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무를 둥글게 휘어 형태만 잡았기에 복원할 방법은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목재를 휘려면 목공 여러 명이 달라붙어 나무를 불에 쬐어가며 천천히 휘어야 하니 시간이 부족하다.

고증이고 뭐고 다 뭉개고 대충 설계할까 하였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현 자네 있는가? 도성에서 손님이 찾아왔다네!”

“손님? 도성에서 손님이라고?”

회령군이 내 상황을 파악하고 다른 제자를 보내 나를 도우려 했을 수도 있으니 버선발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발 목공이 오면 좋을 것이라 여겼는데 근육이 있었다.

처음에는 수양대군의 후손 순흥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순흥군과 외모는 닮았어도 훨씬 젊어 나와 비슷한 연배였으며 체격도 약간 작았다.

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부친께서 자네를 칭찬하신 적이 있었는데 역시 하체가 튼튼하군. 부족한 몸이지만 훗날 예진원 대제학을 물려받을 예정인 진안군일세. 자는 진수(眞數)이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근육조차 판박이로 닮아 있어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다른 이들을 데려왔으니 근육의 산이 아닌가.

“참으로 대단한 일이로군. 재능이 뛰어난 이는 은연중에 드러낸다 하였는데 훈도 시절부터 이렇게 두각을 드러내다니. 낭중지추가 따로 없을 것일세.”

은연중에 드러낸 게 아니고 살기 위해서 드러냈지만 상대가 칭찬을 하였으니 받아주는 것이 예의이다.

고개를 깊숙이 숙이지 않았지만 인사를 올렸다.

“며…… 명성이 자자한 진안군 대감을 뵙습니다.”

“아직 관직에 오르지도 않았으니 예를 표하지 않아도 좋다네. 자네가 문종대왕의 발길이 닿았던 사당을 고친다 하였는데 어려운 일이 있던가? 내 후손으로서 한 손 거들고자 하네.”

그냥 도면 만들기도 어렵고 목재 가공도 어렵고 다 어려운데?

하지만 발칙한 상상이 떠올랐다.

보통 목수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힘든 나무 가공을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진안군과 그의 동료들이 하면?

순흥군의 성품을 생각하면 진안군도 거부하지 않고 따를 것이다.

하지만 훗날의 예진원 대제학이 대목장도 아닌 일개 목수와 같은 일을 하라고 시키면 문책을 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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